제7권
1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그렇게 그곳에서 기도하는 동안, 노새 두 마리는 힘차게 아가씨를 도시로 실어 갔다. 아버지의 이름 높은 궁전에 이르자 아가씨는 문간에 수레를 세웠고, 불사의 신들과 같은 오라비들이 둘레에 몰려와 서서 수레에서 노새를 풀고 옷가지를 안으로 날라 들였다. 나우시카아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서는 아페이레에서 온 늙은 여인, 방 시중을 드는 에우리메두사가 불을 피워 주었다. 에우리메두사는 오래전 양 끝이 휜 배들이 아페이레에서 실어 온 여인이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을 알키노오스에게 명예의 몫으로 골라 바쳤으니, 알키노오스는 모든 파이아케스인을 다스리는 왕이었고 백성은 신의 말을 듣듯 그의 말을 들었다. 하얀 팔의 나우시카아를 그 집에서 길러 낸 것도 이 여인이었다. 그 늙은 여인이 이제 아가씨를 위해 불을 지피고 방 안에 저녁을 차렸다.
14 그때 오디세우스도 도시로 가려고 일어섰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아끼는 마음에서, 기상 높은 파이아케스인 누구와 마주치더라도 빈정대는 말을 듣거나 누구냐는 물음을 받지 않도록 그의 둘레에 짙은 안개를 부어 감쌌다. 그가 막 사랑스러운 도시로 들어서려 할 때,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물동이를 든 어린 처녀의 모습으로 그와 마주쳤다. 여신이 그의 앞에 멈춰 서자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물었다.
22 "얘야, 이 고장 사람들을 다스리는 알키노오스라는 분의 집으로 나를 데려다주지 않겠느냐? 나는 먼먼 나라에서 숱한 고생을 겪고 이곳에 온 나그네라, 이 도시와 이 땅에 사는 사람을 아무도 모른단다."
27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말을 받았다. "그럼요, 나그네 어르신, 말씀하신 그 집을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나무랄 데 없는 우리 아버지 댁 바로 가까이에 사시거든요. 그러니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따라오세요. 길은 제가 앞장설게요.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마시고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이곳 사람들은 나그네를 그리 너그럽게 봐주지 않고, 다른 데서 온 사람을 반가이 맞아 아껴 주지도 않아요. 대지를 흔드는 신께서 내려 주신 날래고 빠른 배를 믿고 큰 바다를 건너다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의 배는 새의 날개처럼, 아니 생각처럼 빨라요."
37 이렇게 말하고 팔라스 아테나가 날쌔게 앞장섰고, 오디세우스는 여신의 발자국을 밟으며 뒤따랐다. 배로 이름난 파이아케스인들은 그가 자기들 사이로 도시를 지나가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머리채 고운 아테나, 무서운 여신이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신묘한 안개를 그 위에 부어 놓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했다. 오디세우스는 포구들과 균형 잡힌 배들, 영웅들이 모이는 회의장, 뾰족한 말뚝 울타리를 둘러친 길고 높은 성벽을 보며 놀라워했다. 보기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왕의 이름 높은 궁전에 이르자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48 "나그네 어르신, 이게 바로 가르쳐 달라고 하신 그 집이에요. 들어가시면 제우스가 기른 왕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을 거예요. 안으로 들어가세요. 마음속으로 조금도 겁내지 마시고요. 대담한 사람은 어디 먼 데서 왔더라도 무슨 일에서든 더 잘 해내는 법이거든요. 홀에 들어가시면 맨 먼저 안주인을 찾으세요. 아레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분인데, 알키노오스 왕을 낳은 바로 그 핏줄에서 나신 분이에요. 맨 처음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과 페리보이아 사이에서 나우시토오스가 태어났어요. 페리보이아는 여인 가운데 생김새가 가장 빼어났고, 기개 높은 에우리메돈의 막내딸이었지요. 에우리메돈은 한때 기세 높은 거인족을 다스린 왕이었는데, 무모한 백성을 망하게 하고 자신도 망하고 말았어요. 포세이돈이 그 딸과 살을 섞어 낳은 아들이 기상 높은 나우시토오스로, 그분이 파이아케스인을 다스렸어요. 나우시토오스는 렉세노르와 알키노오스를 낳았고요. 렉세노르는 아들 없이 홀에서 갓 신랑이 되었을 때 은활의 아폴론에게 맞아 죽고, 외동딸 아레테 하나만 남겼어요. 알키노오스 왕은 그 딸을 아내로 맞아 높이 받들었는데, 지금 남편 밑에서 살림을 맡아 사는 여인들 가운데 이 땅의 어느 누구도 그만큼 받들어지지는 못해요. 그렇게 왕비님은 사랑하는 자식들과 알키노오스 왕에게서 진심으로 존중을 받아 왔고 지금도 그래요. 백성들도 왕비님을 신처럼 우러러보아, 도시를 지나가실 때면 인사말로 맞아요. 왕비님은 훌륭한 지혜도 조금도 모자라지 않으셔서, 마음에 드는 이들이라면 남자들 사이의 다툼도 풀어 주세요. 그분이 어르신을 마음속으로 좋게 여기시기만 하면, 어르신은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보고 지붕 높은 집과 고향 땅에 돌아갈 희망이 생길 거예요."
78 이렇게 말하고 빛나는 눈의 아테나는 거둘 것 없는 바다를 건너 떠나갔다. 여신은 사랑스러운 스케리아를 뒤로하고 마라톤과 길이 넓은 아테네에 이르러, 에레크테우스의 튼튼한 집으로 들어갔다. 한편 오디세우스는 알키노오스의 이름난 궁전으로 다가갔다. 청동 문지방에 이르기 전에 그는 멈춰 서서 가슴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굴렸다. 기개 높은 알키노오스의 지붕 높은 집 안에는 해나 달처럼 환한 빛이 어려 있었다. 문지방에서 안쪽 깊숙한 곳까지 이쪽저쪽으로 청동 벽이 뻗어 있었고, 그 위로는 검푸른 유리로 된 돌림띠가 둘러 있었다. 황금 문짝들이 튼튼한 집을 안쪽에서 막아 지켰다. 청동 문지방에는 은 문설주가 서 있었고, 그 위에 은 상인방이 얹혀 있었으며, 문고리는 황금이었다. 문 양쪽에는 황금 개와 은 개가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솜씨 좋은 마음으로 빚어 기개 높은 알키노오스의 집을 지키게 한 개들로, 죽지도 늙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지켰다. 안에는 문지방에서 안쪽 깊숙한 곳까지 이쪽저쪽 벽을 따라 의자들이 죽 붙어 놓여 있었고, 의자 위에는 여인들의 솜씨인 곱게 자은 얇은 덮개가 깔려 있었다.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은 그 의자에 앉아 먹고 마셨으니, 그들에게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해마다 넘쳐 났다. 잘 다듬은 받침대 위에는 황금 소년상들이 불타는 횃불을 손에 들고 서서, 밤이면 집 안에서 잔치하는 이들에게 빛을 비추었다. 집 안에는 하녀 쉰 명이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맷돌에 사과 빛 낟알을 갈았고, 어떤 이들은 앉아서 베를 짜거나 물렛가락을 돌렸다. 앉아서 일하는 그들의 손이 키 큰 백양나무 잎처럼 쉼 없이 나풀거렸고, 촘촘하게 짠 아마포에서는 매끄러운 올리브기름이 방울져 떨어졌다. 파이아케스 사내들이 누구보다도 바다에서 날랜 배를 모는 데 능한 만큼 여인들은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났으니, 아테나가 그들에게 더없이 아름다운 솜씨와 훌륭한 생각을 넉넉히 내려 주었다. 안뜰 밖, 대문 가까이에는 네 마지기쯤 되는 큰 과수원이 있었고, 양쪽으로 울타리가 둘러쳐 있었다. 그곳에는 키 큰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배나무와 석류나무, 열매가 탐스러운 사과나무, 달콤한 무화과나무, 무성한 올리브나무였다. 이 나무들의 열매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떨어져 없어지거나 끊기는 일이 없이 한 해 내내 맺혔다. 서풍이 언제나 불어와 어떤 열매는 맺게 하고 어떤 열매는 익게 했다. 배가 익으면 그 위에 배가 또 익고, 사과 위에 사과가, 포도송이 위에 포도송이가, 무화과 위에 무화과가 익어 갔다. 거기에는 또 열매가 많이 열리는 포도밭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한쪽 평평한 땅에서는 포도 말리는 마당이 햇볕에 말라 가고, 다른 쪽에서는 포도를 땄으며, 또 다른 쪽에서는 포도를 밟아 즙을 냈다. 앞쪽에는 꽃을 막 떨군 풋포도가 달려 있었고, 다른 송이들은 검붉게 물들어 갔다. 맨 끝 줄 너머에는 갖가지 채소를 가지런히 심은 밭이 한 해 내내 싱싱하게 빛났다. 그 안에는 샘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정원 곳곳으로 물을 흩뿌렸고, 다른 하나는 맞은편에서 안뜰 문지방 밑을 지나 높은 집 쪽으로 흘러갔는데, 도시 사람들은 거기서 물을 길었다. 알키노오스의 집에는 신들이 내린 이토록 빛나는 선물이 있었다.
133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거기 서서 바라보았다. 마음껏 모든 것을 둘러보고 나서 그가 재빨리 문지방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 아르고스를 죽인 눈 밝은 신께 잔을 들어 술을 따라 바치고 있었다. 그들은 잠자리에 들 생각이 나면 마지막으로 이 신께 술을 바치곤 했다. 오디세우스는 아테나가 둘러 부어 준 짙은 안개에 싸인 채 홀을 가로질러 걸어가 아레테와 알키노오스 왕 앞에 이르렀다. 오디세우스가 두 팔로 아레테의 무릎을 끌어안자, 바로 그때 신이 내린 안개가 그에게서 걷혀 흩어졌다. 홀 안에 웬 사내가 나타난 것을 보고 사람들은 말을 잃었고,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오디세우스가 간청했다.
146 "신에 버금가는 렉세노르의 따님, 아레테 왕비님, 숱한 고생 끝에 저는 왕비님의 부군과 왕비님의 무릎 아래, 그리고 여기 잔치하시는 분들 앞에 왔습니다. 신들께서 이분들께 복된 삶을 내려 주시고, 저마다 집 안의 재산과 백성이 준 명예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하시기를 빕니다. 그러니 제가 어서 고향에 닿을 수 있도록 저를 바래다줄 채비를 서둘러 주십시오. 저는 벌써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져 재앙을 겪고 있습니다."
153 이렇게 말하고 오디세우스는 화덕 곁 잿더미 속, 불 옆에 주저앉았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잠잠해졌다. 한참 만에야 늙은 영웅 에케네오스가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에케네오스는 파이아케스 사람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고, 옛일을 많이 알아 말솜씨가 빼어난 이였다. 그가 좋은 뜻에서 사람들 앞에 나서 말했다. "알키노오스 왕이시여, 손님이 화덕 곁 잿더미 속 맨바닥에 앉아 있는 것은 보기에 좋지도 않고 마땅하지도 않습니다. 여기 이분들은 왕의 말씀을 기다리느라 꼼짝 않고 있습니다. 자, 손님을 일으켜 은못 박은 의자에 앉히시고, 전령들에게 포도주를 섞으라고 이르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벼락을 즐기는 제우스께도 술을 따라 바칠 수 있습니다. 제우스께서는 존중받아야 할 탄원자들 곁을 늘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살림 맡은 여인에게 집 안에 있는 것으로 손님께 저녁을 내드리게 하십시오."
167 신성한 기운을 지닌 알키노오스는 그 말을 듣자, 슬기롭고 온갖 꾀를 지닌 오디세우스의 손을 잡고 화덕에서 일으켜 번쩍이는 의자에 앉혔다. 그 자리에는 씩씩한 아들 라오다마스가 앉아 있었는데, 왕은 바로 곁에 앉아 있던 이 아들, 누구보다 아끼던 아들을 일으켜 자리를 내주게 했다. 시녀가 손 씻을 물을 아름다운 황금 물병에 담아 와 은대야 위로 부어 손을 씻게 하고, 곁에 반들반들한 식탁을 펴 놓았다. 살림 맡은 점잖은 여인이 빵을 가져다 놓고, 있는 음식을 아낌없이 내어 여러 가지 찬을 곁들였다.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먹고 마셨다. 그러자 기운찬 알키노오스가 전령에게 말했다.
179 "폰토노오스, 술동이에 술을 섞어 홀 안의 모든 이에게 돌리시오. 그래야 우리가 벼락을 즐기는 제우스께도 술을 따라 바칠 수 있소. 제우스께서는 존중받아야 할 탄원자들 곁을 늘 지켜 주시는 분이오."
182 그가 이렇게 말하자 폰토노오스가 마음을 달게 하는 포도주를 섞어, 먼저 잔마다 신께 바칠 몫을 조금씩 따른 다음 모두에게 돌렸다. 신께 술을 따라 바치고 마음껏 마시고 나자 알키노오스가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186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여, 들어 보시오. 가슴속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하겠소. 이제 잔치를 마쳤으니 저마다 집에 돌아가 쉬시오. 내일 아침에는 원로들을 더 많이 불러 모아 홀에서 손님을 대접하고 신들께 훌륭한 제물을 바칩시다. 그런 다음 손님을 바래다줄 일을 궁리합시다. 손님이 아무리 먼 곳에서 왔더라도 우리가 바래다주어 수고도 괴로움도 없이 서둘러 기쁘게 고향 땅에 닿게 하고, 제 땅을 밟기 전에는 도중에 아무 해도 재앙도 겪지 않게 해야 하오. 그 뒤로는 어머니가 그를 낳았을 때 운명과 엄한 실 잣는 여신들이 갓 태어난 그에게 실로 자아 준 일을 무엇이든 겪어야 할 것이오. 그러나 만일 이 사람이 불사의 신들 가운데 하나로서 하늘에서 내려왔다면, 신들이 이번에는 무언가 다른 일을 꾀하고 있소. 지금까지 신들은 우리가 이름 높은 큰 제물을 바칠 때면 늘 똑똑히 모습을 드러내어,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앉아 잔치를 즐겼소. 길 가던 나그네가 혼자서 신과 마주치더라도 신들은 조금도 몸을 숨기지 않소. 우리는 키클롭스나 거인족의 사나운 무리처럼 신들과 가까운 핏줄이기 때문이오."
207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알키노오스 왕이시여, 마음에 그런 생각은 두지 마십시오. 저는 넓은 하늘에 사는 불사의 신들과는 생김새도 몸집도 닮지 않았고,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과 닮았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사람 가운데 누구보다 큰 고생을 짊어진 이가 있다면, 고통으로 치면 저는 바로 그런 이들과 견줄 만합니다. 신들의 뜻으로 제가 겪은 고생을 다 털어놓는다면 그보다 더 많은 불행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비록 시름에 잠겨 있어도 지금은 저녁을 먹게 해 주십시오. 지긋지긋한 배보다 더 염치없는 것은 없습니다. 몹시 지치고 가슴에 슬픔을 품은 사람에게도 배는 저를 잊지 말라고 억지로 다그칩니다. 저 또한 가슴에 슬픔을 품고 있는데도 배는 늘 먹고 마시라고 시키고,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깡그리 잊게 하며 배를 가득 채우라고 몰아세웁니다. 여러분은 날이 밝는 대로 서둘러, 고생은 숱하게 겪었으나 이 불행한 저를 고향 땅에 데려다주십시오. 제 재산과 종들과 지붕 높은 큰 집을 보고 나면 그때는 목숨이 저를 떠나도 좋습니다."
226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옳다고 하며 손님을 바래다주라고 했다. 이치에 꼭 맞는 말이었다. 신께 술을 따라 바치고 마음껏 마시고 나자 그들은 잠을 자러 저마다 제 집으로 돌아갔다.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홀에 남았고, 그 곁에 아레테와 신을 닮은 알키노오스가 앉았다. 시녀들은 잔치 그릇들을 치웠다. 하얀 팔의 아레테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가 입은 고운 겉옷과 윗옷을 보자마자 시녀들과 함께 몸소 지은 옷이라는 것을 알아본 아레테는 그에게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237 "손님, 이것부터 내가 먼저 묻겠소.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왔소? 그 옷은 누가 주었소? 바다를 떠돌다 이리로 왔다고 하지 않았소?"
240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왕비님, 하늘에 사는 신들께서 제게 시름을 하도 많이 안겨 주셔서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왕비님께서 묻고 캐물으시는 것은 말씀드리겠습니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 오기기아라는 섬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틀라스의 딸, 속임수에 능한 칼립소가 삽니다. 머리채 고운 무서운 여신으로, 신들도 죽을 인간들도 그 여신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이 불행한 저를 홀로 그 여신의 화덕 곁으로 데려갔습니다. 제우스께서 포도주 빛 바다 한가운데서 제 날랜 배를 번쩍이는 벼락으로 내리쳐 산산이 부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른 훌륭한 전우들은 모두 죽었고, 저는 양 끝이 휜 배의 용골을 두 팔로 끌어안고 아흐레 동안 떠밀려 다녔습니다. 열흘째 되는 검은 밤에 신들이 저를 오기기아섬에 닿게 해 주었습니다. 머리채 고운 칼립소, 무서운 여신이 사는 곳입니다. 칼립소는 저를 받아들여 다정하게 아끼고 돌보아 주었고, 언제까지나 죽지도 늙지도 않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 가슴속 마음을 끝내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일곱 해를 꼼짝없이 머물며, 칼립소가 준 불멸의 옷을 늘 눈물로 적셨습니다. 여덟째 해가 돌아오자 칼립소는 제우스께서 전갈을 보내셨는지, 아니면 여신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저더러 돌아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단단히 묶은 뗏목에 저를 태워 떠나보냈습니다. 빵과 달콤한 술을 넉넉히 주고 불멸의 옷을 입혀 주었으며, 해롭지 않고 따뜻한 순풍을 보내 주었습니다. 열이레 동안 바다를 건너다니다가 열여드레째 되는 날 이 나라의 그늘진 산들이 나타나자, 불운한 제 가슴은 기뻤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도 큰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이 그 고난을 일으켰습니다. 포세이돈은 바람을 몰아붙여 제 앞길을 막고 말할 수 없이 바다를 휘저었고, 물결은 거세게 신음하는 저를 뗏목 위에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폭풍이 뗏목을 산산이 흩어 놓았지만, 저는 헤엄을 쳐서 이 큰 바다를 가로질렀고, 마침내 바람과 물결이 저를 실어다 이 나라 땅에 닿게 했습니다. 뭍으로 올라서려는데 물결이 저를 사납고 반갑지 않은 곳의 큰 바위들에 내던져 부딪치게 할 뻔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러나 헤엄쳐서 강에 이르렀습니다. 바위가 없이 매끈하고 바람도 막아 주는 곳이라, 거기가 가장 좋은 자리로 보였습니다. 저는 남은 기운을 추스르며 뭍으로 쓰러지듯 나왔고, 거룩한 밤이 찾아오자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강에서 떨어진 곳으로 올라가 덤불 속에 누워 나뭇잎을 끌어모아 몸에 덮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신이 끝없는 잠을 쏟아부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가슴이 지칠 대로 지친 채 나뭇잎 속에서 밤새 잤고, 새벽이 지나고 한낮이 되도록 잤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에야 달콤한 잠이 저를 놓아주었습니다. 그때 바닷가에서 따님의 시녀들이 노는 것을 보았는데, 따님도 그 가운데 계셨고 여신 같았습니다. 저는 따님께 탄원했습니다. 따님은 훌륭한 분별을 조금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젊은 사람은 늘 생각이 모자라는 법이라, 그 나이에 낯선 이를 만나 그렇게 처신하리라고는 누구도 바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님은 제게 빵과 반짝이는 포도주를 넉넉히 주셨고, 강에서 씻게 하시고 이 옷을 주셨습니다. 마음은 괴롭지만 이것이 숨김없는 사실입니다."
298 알키노오스가 대답했다. "손님, 내 딸이 이 일만은 마땅하게 생각하지 못했구려. 당신이 맨 먼저 그 아이에게 탄원했는데도 시녀들과 함께 당신을 우리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으니 말이오."
302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영웅이시여, 그 일로 나무랄 데 없는 따님을 꾸짖지 마십시오. 따님은 시녀들과 함께 따라오라고 하셨지만 제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면 혹시 왕께서도 언짢아하실까 두렵고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사는 우리 인간의 무리는 의심이 많은 법입니다."
308 알키노오스가 대답했다. "손님, 내 가슴속 마음은 까닭 없이 성을 내는 그런 마음이 아니오. 무엇이든 도리에 맞는 것이 더 낫소. 아버지 제우스와 아테나와 아폴론이시여, 부디 지금 모습 그대로인 당신이,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서 내 딸을 아내로 맞아 여기 머물며 내 사위라 불린다면 얼마나 좋겠소! 당신이 스스로 원해 머문다면 집과 재산을 내주겠소. 그러나 당신이 원하지 않는데 붙잡아 둘 파이아케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런 일은 아버지 제우스께서도 반기지 않으실 것이오. 당신이 똑똑히 알도록 말해 두겠는데, 당신을 바래다줄 날은 내일로 정하겠소. 그때 당신은 잠에 겨워 누워 있고, 우리 젊은이들은 잔잔한 바다를 저어 당신이 고향과 집에, 어디든 당신이 바라는 곳에 닿을 때까지 데려다줄 것이오. 그곳이 에우보이아보다 훨씬 더 멀다 해도 상관없소. 우리 백성 가운데 금발의 라다만티스를 태우고 대지의 아들 티티오스를 만나러 갔던 이들이 에우보이아를 보았는데,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멀다고들 하오. 그들은 거기까지 갔다가 힘들이지 않고 일을 마치고 그날로 집에 돌아왔소. 내 배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내 젊은이들이 노깃으로 바닷물을 얼마나 잘 떠 올리는지 당신도 몸소 마음으로 알게 될 것이오."
329 그 말에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기뻐하며 기도했다. 그가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아버지 제우스여, 알키노오스가 말한 것을 모두 이루어 주소서. 그러면 곡식을 내는 땅 위에서 그의 명성은 꺼지지 않을 것이고, 저는 고향에 돌아갈 것입니다."
334 이렇게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하얀 팔의 아레테는 시녀들에게 주랑 아래 침대를 놓고, 그 위에 고운 자줏빛 깔개를 깔고 다시 그 위에 담요를 펴고, 덮고 잘 두툼한 외투를 얹어 두라고 일렀다. 시녀들은 손에 횃불을 들고 홀에서 나갔다. 서둘러 튼튼한 침대를 펴 놓고 나서 시녀들은 오디세우스 곁에 다가서서 말로 재촉했다. "손님, 일어나 주무시러 가십시오. 잠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343 시녀들이 이렇게 말하자 오디세우스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 반가웠다. 그렇게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소리 울리는 주랑 아래 구멍 뚫어 짠 침대에서 잠들었고, 알키노오스는 높은 집 안쪽 깊숙한 방에 누웠다. 안주인인 아내가 그 곁에 잠자리를 함께 펴고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