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권
1 오두막에서는 오디세우스와 고귀한 돼지치기가 날이 밝자 불을 피워 아침을 차리고, 목자들은 모아 놓은 돼지 떼와 함께 내보냈는데, 그때 텔레마코스가 다가오자 짖어 대던 개들이 짖지 않고 그의 둘레를 맴돌며 꼬리를 쳤다.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개들이 꼬리 치는 것을 보았고, 발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에우마이오스에게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8 "에우마이오스, 당신 동료나 아니면 다른 아는 사람이 이리로 오는 게 틀림없소. 개들이 짖지 않고 둘레를 맴돌며 꼬리를 치니 말이오. 발소리도 들리오."
11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문간에 섰다. 돼지치기가 놀라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반짝이는 포도주를 섞느라 손에 들고 있던 그릇들이 떨어졌고, 그는 주인에게 마주 나아가 그의 머리와 고운 두 눈과 두 손에 입을 맞추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먼 나라에서 열 해 만에 돌아온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반길 때가 있다. 늘그막에 얻은 외아들이요, 아버지가 그 아들 때문에 숱한 고생을 견뎌 온 아들이다. 꼭 그처럼 그때 고귀한 돼지치기는 신을 닮은 텔레마코스를 끌어안고, 죽음에서 벗어난 사람을 대하듯 온몸에 입을 맞추고는 흐느끼며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23 "왔구나, 텔레마코스, 내 달콤한 빛. 네가 배를 타고 필로스로 떠난 뒤로 나는 너를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다. 자, 얘야, 어서 들어오너라. 먼 데서 막 돌아와 집 안에 들어선 너를 바라보며 내 마음껏 즐거워하고 싶구나. 너는 들에도 목자들에게도 자주 오지 않고 늘 도시에 머물러 있지. 구혼자들의 몹쓸 무리를 지켜보는 것이 네 마음에 그리 맞는 모양이다."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그럴게요,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보러 여기 왔어요. 아저씨를 제 눈으로 보고, 어머니가 아직 홀에 계신지, 아니면 벌써 다른 사내가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오디세우스의 침대는 누울 사람이 없어 흉한 거미줄만 쳐져 있는지 이야기를 들으려고요."
36 일꾼들의 우두머리인 돼지치기가 말을 받았다. "그분은 참는 마음으로 네 홀에 꿋꿋이 머물러 계시고, 밤이고 낮이고 눈물을 쏟으며 비참하게 시들어 가신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텔레마코스에게서 청동 창을 받아 들었다. 텔레마코스는 돌 문지방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고, 그가 다가오자 아버지 오디세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내주려 했으나, 텔레마코스가 맞은편에서 그를 말리며 말했다.
44 "앉아 계시오, 손님. 우리 농장 다른 곳에서도 우리가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있소. 자리를 마련해 줄 사람이 여기 있으니 말이오."
46 그가 이렇게 말하자 오디세우스는 돌아가 다시 앉았다. 돼지치기가 텔레마코스를 위해 푸른 잎가지를 깔고 그 위에 양털 가죽을 펼치자, 오디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이 거기 앉았다. 돼지치기는 그들 앞에 전날 먹다 남긴 구운 고기를 담은 쟁반을 내놓고, 바구니에 빵을 서둘러 수북이 담았으며, 나무 사발에 꿀처럼 달콤한 포도주를 섞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신 같은 오디세우스와 마주 앉았다. 그들은 앞에 차려진 음식에 손을 뻗었다. 실컷 먹고 마셔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자, 텔레마코스가 고귀한 돼지치기에게 말했다.
57 "아저씨, 이 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뱃사람들이 어떻게 이분을 이타카로 데려왔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누구라고 하던가요? 이분이 걸어서 여기 오셨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60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여,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얘야, 사실을 다 말해 주마. 이 사람은 넓은 크레타 태생이라고 하고,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숱한 도시를 헤맸다고 하는데, 어떤 신이 이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자아 놓았다는구나. 이번에는 테스프로티아인들의 배에서 도망쳐 나와 내 농장에 왔다. 이제 너에게 이 사람을 맡기마. 네 뜻대로 하거라. 이 사람은 탄원자라고 자처한다."
68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에우마이오스, 그 말씀은 정말 가슴 아프네요. 제가 어떻게 이 손님을 집에 받아들이겠어요? 저는 아직 어려서, 누가 먼저 시비를 걸어올 때 그 사람을 물리칠 만큼 제 두 손을 믿지 못해요. 어머니는 마음이 둘로 갈려 갈피를 잡지 못하세요. 남편의 침대와 고을 사람들의 말을 어려워하며 여기 제 곁에 머물러 집을 돌보실지, 아니면 홀에서 구혼하는 아카이아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가장 많은 선물을 바치는 사내를 따라가실지 말이에요. 그래도 이 손님이 아저씨 집에 왔으니, 제가 외투와 윗옷, 고운 옷을 입혀 드리고, 양날 칼과 발에 신을 신발을 드리고, 이분 마음과 가슴이 가라는 곳으로 보내 드릴게요. 아니면 아저씨가 원하시면 이 농장에 붙잡아 두고 돌봐 주세요. 이분이 아저씨와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제가 이리로 옷과 먹을 빵을 모두 보낼게요. 하지만 저는 이분이 그곳에, 구혼자들 사이에 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어요. 그자들의 오만이 너무 무모하니까요. 그자들이 이분을 놀려 대면 제게도 끔찍한 괴로움이 될 거예요. 아무리 굳센 사내라도 여럿을 상대로 무슨 일을 해내기는 어려워요. 그자들이 훨씬 더 세니까요."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말을 받았다. "젊은이, 내게도 대답할 도리가 있으니 말하겠소. 당신 같은 사람이 버젓이 있는데도 구혼자들이 당신 뜻을 거슬러 홀에서 무모한 짓을 꾸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소. 말해 보시오. 당신이 스스로 굴복하고 있소, 아니면 어떤 신의 목소리를 따라 고을 사람들이 당신을 미워하고 있소? 그도 아니면, 큰 싸움이 벌어져도 사내가 믿고 기대는 형제들을 탓하는 것이오? 내가 지금 이 마음 그대로 젊다면, 나무랄 데 없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이거나 오디세우스 자신이라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면 내가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의 홀에 가서 그자들 모두에게 재앙이 되지 못할 경우, 낯선 사내가 곧바로 내 목을 베어 가도 좋소. 혹시 내가 혼자라 그 무리에 짓눌린다 해도, 내 홀에서 죽는 편이 차라리 낫겠소. 이런 볼썽사나운 짓을 늘 보느니 말이오. 손님들이 떠밀려 다니고, 그자들이 아름다운 집 안에서 하녀들을 볼썽사납게 끌고 다니고, 포도주를 퍼내 축내고, 끝도 없이 이룰 수도 없는 일에 매달려 공연히 빵을 먹어 치우는 꼴을 보느니 말이오."
112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손님, 숨김없이 다 말하겠소. 온 고을 사람들이 나를 미워해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큰 싸움이 벌어져도 사내가 믿고 기대는 형제들을 내가 탓하는 것도 아니오. 크로노스의 아들께서 우리 집안을 그렇게 외줄로 이어 오게 하셨소. 아르케이시오스는 외아들 라에르테스를 낳았고, 그 아버지도 외아들 오디세우스를 낳았고, 오디세우스는 나 하나만 홀에 낳아 두고 떠나서 나를 보는 기쁨도 누리지 못했소. 그래서 지금 집 안에는 원수가 셀 수 없이 많소. 둘리키온과 사메와 숲이 우거진 자킨토스, 이 섬들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들이 모두, 그리고 바위투성이 이타카에서 권세를 부리는 자들이 모두 내 어머니에게 구혼하며 이 집을 거덜 내고 있소. 어머니는 끔찍한 혼인을 마다하지도 못하고 끝을 내지도 못하시오. 그사이 저자들은 내 집을 먹어 치워 바닥내고 있으니, 머지않아 나마저 산산조각 낼 것이오. 그러나 이 일은 신들의 무릎 위에 놓여 있소. 아저씨, 어서 가셔서 분별 있는 페넬로페께 제가 무사히 필로스에서 돌아왔다고 전해 주세요. 저는 여기 있을 테니, 어머니에게만 소식을 전하고 이리로 돌아오세요. 다른 아카이아인은 아무도 알게 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이 제게 해코지를 꾸미고 있으니까요."
135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여,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다, 알아들었다. 생각 있는 사람에게 이르는 말이구나. 자, 이것을 말해 다오. 숨김없이 낱낱이. 내가 같은 길에 불운한 라에르테스께도 가서 소식을 전해 드릴까? 그분은 오디세우스 때문에 몹시 슬퍼하시면서도 지금까지는 일을 돌보시고, 가슴속 마음이 내키면 집에서 종들과 함께 드시고 마시곤 하셨는데, 네가 배를 타고 필로스로 떠난 뒤로는 그전처럼 드시지도 마시지도 않고, 일을 돌보러 나가지도 않으신다고 한다. 한숨과 울음 속에 앉아 슬퍼하시니, 뼈에 붙은 살이 말라 간다는구나."
146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더 안된 일이지만, 마음이 아파도 그분은 그냥 두기로 해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모두 제 손으로 고를 수 있다면, 저는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의 귀향의 날을 고를 거예요. 아저씨는 소식을 전하고 곧장 돌아오세요. 그분을 찾아 들판을 헤매지 마시고요. 그 대신 어머니께 살림 맡은 시녀를 되도록 빨리 몰래 보내시라고 말씀드리세요. 그 시녀라면 노인께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154 이렇게 말하고 그는 돼지치기를 재촉했다. 돼지치기는 신을 집어 들어 발에 매어 신고 도시로 떠났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농장을 떠나는 것을 아테나가 놓치지 않았다. 여신은 가까이 다가왔다. 그 모습은 아름답고 훤칠하며 빛나는 솜씨를 아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여신은 오두막 문 맞은편에 서서 오디세우스에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텔레마코스는 마주 보면서도 여신을 보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신들은 누구에게나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디세우스와 개들만 여신을 보았는데, 개들은 짖지 않고 낑낑거리며 농장 저편으로 겁을 먹고 달아났다. 여신이 눈썹으로 신호를 보내니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알아차리고 홀에서 나와 안뜰의 큰 담장을 따라 걸어가 여신 앞에 섰고, 아테나가 그에게 말했다.
167 "제우스의 핏줄, 라에르테스의 아들, 재간 많은 오디세우스여, 이제 그대 아들에게 말해 주어라. 숨기지 마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 구혼자들에게 내릴 죽음과 죽음의 운명을 마련해 널리 이름난 도시로 가도록 하여라. 나도 싸우고 싶어 몸이 달아 있으니 그대들 곁을 오래 떠나 있지 않겠다."
172 이렇게 말하고 아테나가 황금 지팡이로 그를 건드렸다. 여신은 먼저 깨끗이 빤 겉옷과 윗옷을 그의 가슴에 둘러 주고, 몸집을 키우고 젊음을 돋우었다. 그의 살갗은 다시 검게 그을린 빛이 되고, 두 볼은 팽팽해졌으며, 턱 둘레에는 검푸른 수염이 났다. 이렇게 해 놓고 여신은 다시 떠나갔고, 오디세우스가 오두막으로 들어오자 사랑하는 아들은 그를 보고 깜짝 놀라, 신이 아닌가 싶어 두려워 눈을 돌리고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181 "손님, 아까와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구려. 옷도 다르고 살갗도 전과 같지 않소. 당신은 분명 넓은 하늘에 사는 신들 가운데 한 분이시오. 부디 자비를 베푸시오. 우리가 기꺼이 받으실 제물과 잘 만든 황금 선물을 바치겠소. 우리를 아껴 주시오."
186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나는 신이 아니오. 어찌하여 나를 불사의 신들에 견주시오? 나는 네 아버지다. 네가 탄식하며 숱한 고통을 겪고 사람들의 횡포를 받아 낸 것이 바로 나 때문이었다."
190 이렇게 말하고 그는 아들에게 입을 맞추었고, 그때까지 내내 참아 왔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땅으로 떨어졌지만, 텔레마코스는 아직 그가 제 아버지라고 믿지 못해 다시 그에게 대답했다.
194 "당신은 오디세우스, 내 아버지가 아니오. 어떤 신이 나를 홀려 더욱 슬퍼하며 탄식하게 하려는 것이오. 신이 몸소 와서 마음먹은 대로 쉽사리 젊은이로도 늙은이로도 만들어 주지 않는 한, 죽을 운명의 인간이 제 생각만으로 이런 일을 꾸며 낼 수는 없소. 당신은 방금 전만 해도 늙은이였고 볼품없는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지금은 넓은 하늘에 사는 신들과 닮았소."
201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텔레마코스, 사랑하는 아버지가 집에 와 있는데 지나치게 놀라거나 어리둥절해하는 것은 너답지 않다. 다른 오디세우스는 이제 여기 오지 않을 것이다. 바로 내가 그 사람이다. 숱한 고생을 겪고 숱한 곳을 떠돈 끝에 스무 해 만에 고향 땅에 돌아왔다. 이것은 전리품을 몰아오는 아테나가 한 일이니, 여신은 그럴 힘이 있어서 마음먹은 대로 나를 이렇게 만든다. 어떤 때는 거지와 닮게 만들고, 어떤 때는 고운 옷을 몸에 걸친 젊은이로 만든다. 넓은 하늘에 사는 신들에게는 죽을 운명의 인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도 비참하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213 이렇게 말하고 그가 자리에 앉자, 텔레마코스는 훌륭한 아버지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으며 울었고, 두 사람 모두 가슴속에서 울고 싶은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둘은 목 놓아 날카롭게 울었다. 물수리나 발톱 굽은 독수리가 날개가 돋기도 전에 들판 사람들에게 새끼를 빼앗기면 쉴 새 없이 울부짖을 때가 있다. 꼭 그처럼, 아니 그 새들보다 더 애달프게, 두 사람은 눈썹 아래로 가엾은 눈물을 흘렸다. 텔레마코스가 얼른 아버지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울고 있는 사이에 햇빛이 졌을 것이다.
222 "아버지, 뱃사람들이 무슨 배로 아버지를 이리로, 이타카로 모셔 왔습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아버지께서 걸어서 여기 오셨을 리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얘야, 사실을 일러 주마. 배로 이름난 파이아케스 사람들이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찾아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바래다준다. 그들은 잠든 나를 날랜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 이타카에 내려놓았고, 빛나는 선물, 청동과 황금과 짠 옷을 넉넉히 주었다. 그것들은 신들의 뜻으로 동굴 속에 놓여 있다. 이제 나는 아테나가 일러 준 대로 이리로 왔다. 우리 원수들을 죽일 궁리를 하려고 왔다. 자, 구혼자들을 하나하나 세어 보고 일러 다오. 몇 명이며 어떤 자들인지 알아야겠다. 그러면 내가 나무랄 데 없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헤아려, 우리 둘이 남의 도움 없이 단둘이서 맞설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할지 궁리해 보겠다."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크나큰 명성을 늘 들어 왔습니다. 손으로는 창을 잘 쓰시는 용사요, 생각은 지혜로우시다고요. 그러나 너무 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두 사람이 많고 굳센 자들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구혼자들은 딱 열 명도 스무 명도 아니고, 훨씬 더 많습니다. 여기서 곧 그 수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둘리키온에서 골라 뽑은 젊은이 쉰두 명이 시종 여섯을 거느리고 왔고, 사메에서는 사내 스물네 명이, 자킨토스에서는 아카이아인의 젊은이 스무 명이 왔습니다. 이타카에서는 가장 뛰어난 자들이 모두 열두 명입니다. 그들과 함께 전령 메돈과 신과 같은 노래꾼이 있고, 고기를 나누는 솜씨가 좋은 시종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집 안에 있는 그들 모두와 맞선다면, 아버지께서 돌아와 그들의 횡포를 앙갚음하시는 일이 쓰디쓰고 끔찍하게 끝날까 두렵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혹시 도와줄 사람을 생각해 내실 수 있다면, 우리 둘을 기꺼이 도와줄 사람이 누구일지 궁리해 보십시오."
258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내가 말해 주마. 잘 새겨듣고 귀 기울여라. 아테나가 아버지 제우스와 함께 우리 둘에게 넉넉한 도움이 될지, 아니면 내가 다른 도와줄 사람을 생각해 내야 할지 헤아려 보아라."
262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말씀하신 그 두 분은 훌륭한 도우미이십니다. 저 높이 구름 속에 앉아 계시면서, 다른 사람들과 불사의 신들까지도 다스리시는 분들입니다."
266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말을 받았다. "우리 홀에서 구혼자들과 우리 사이에 아레스의 기운이 승부를 가를 때, 그 두 분은 치열한 싸움에서 오래 떨어져 계시지 않을 것이다. 자, 너는 이제 날이 밝자마자 집으로 가서 방자한 구혼자들 틈에 섞여 있거라. 나는 나중에 돼지치기가 도시로 데려갈 것이다. 비참한 거지, 늙은이와 닮은 꼴로 말이다. 그자들이 집 안에서 나를 업신여기더라도, 내가 험한 꼴을 당하는 동안 네 가슴속 사랑하는 마음은 꾹 참아야 한다. 그자들이 내 발을 붙잡고 집 안을 가로질러 문밖으로 끌어내거나 무엇을 던져 맞히더라도, 너는 지켜보며 참고 있어라. 다만 부드러운 말로 달래며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라고 일러라. 그러나 그자들은 네 말을 조금도 듣지 않을 것이다. 그자들의 운명의 날이 벌써 곁에 와 있으니 말이다. 또 한 가지 일러 줄 테니 가슴에 새겨 두어라. 지략이 많은 아테나가 내 마음에 일러 주시면 나는 너에게 고개로 신호를 보내겠다. 그것을 알아차리거든 너는 홀에 놓여 있는 아레스의 무기를 모두 들어다 높은 방 깊숙한 곳에 넣어 두고, 구혼자들이 무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묻거든 부드러운 말로 둘러대라."
288 "'연기에 그을지 않게 치워 두었소.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나면서 남겨 두었던 그때 모습과는 더 이상 닮지 않고, 불기운이 닿은 탓에 몹시 상해 버렸소. 게다가 크로노스의 아들께서 내 마음에 더 큰 걱정을 넣어 주셨소. 혹시 당신들이 술에 취해 서로 다투다가 서로 다치게 하고, 잔치와 구혼을 욕되게 할까 두렵소. 쇠붙이는 저절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법이니 말이오.' 그러나 우리 둘을 위해서는 칼 두 자루와 창 두 자루, 손에 쥘 쇠가죽 방패 두 개만 남겨 두어라. 우리가 달려들어 그것들을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팔라스 아테나와 꾀 깊은 제우스께서 그자들을 홀리실 것이다. 또 한 가지 일러 줄 테니 가슴에 새겨 두어라. 네가 정말 내 아들이고 우리 핏줄이라면, 오디세우스가 집에 와 있다는 것을 아무도 듣게 하지 마라. 라에르테스께서도 알지 못하게 하고, 돼지치기도, 집안사람 누구도, 페넬로페 자신도 알지 못하게 하라. 너와 나 둘이서만 여자들의 속셈을 알아보자. 그리고 남자 종들도 시험해 보자. 누가 우리를 받들고 마음으로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누가 우리를 개의치 않고 이렇게 의젓한 너를 업신여기는지 말이다."
308 그의 빛나는 아들이 대답했다. "아버지, 제 마음이 어떠한지는 나중에라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제게는 경솔함이라고는 조금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둘에게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농장마다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시험하시려면 오래도록 헛되이 다니셔야 할 것이고, 그동안 그자들은 홀에서 태평하게 재산을 거리낌 없이 마구 먹어 치우며 아끼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누가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누가 죄 없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사내들을 농장마다 찾아다니며 시험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 일은 나중에 하시지요. 아버지께서 정말로 아이기스를 지닌 제우스의 징조를 알고 계시다면 말입니다."
321 이렇게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텔레마코스와 그의 동료들을 모두 태우고 필로스에서 오던 잘 지은 배가 이타카에 닿았다. 그들은 깊은 포구 안에 이르자 검은 배를 뭍으로 끌어 올렸고, 기세 높은 시종들이 그들의 장비를 날라 갔다. 그리고 곧바로 더없이 아름다운 선물을 클리티오스의 집으로 가져갔다. 또 오디세우스의 집으로 전령을 먼저 보내, 사려 깊은 페넬로페에게 소식을 전하게 했다. 텔레마코스는 들에 있고, 배는 도시로 가라고 일렀다는 소식이었다. 기품 있는 왕비가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며 여린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려는 뜻이었다. 전령과 고귀한 돼지치기는 같은 소식을 왕비에게 전하러 가다가 서로 마주쳤다. 그들이 신 같은 왕의 집에 이르자, 전령이 하녀들 한가운데서 말했다. "왕비님, 사랑하는 아드님께서 벌써 돌아오셨습니다."
338 돼지치기는 페넬로페 곁에 다가서서, 왕비의 사랑하는 아들이 전하라고 한 말을 모두 전했다. 분부받은 말을 다 전하고 나자 그는 안뜰과 홀을 떠나 돼지들에게로 돌아갔다.
342 구혼자들은 마음이 언짢고 풀이 죽었다. 그들은 홀에서 나와 안뜰의 큰 담장을 따라 걸어가 문 앞에 그대로 앉았다. 폴리보스의 아들 에우리마코스가 그들 가운데서 먼저 말을 꺼냈다.
346 "벗들이여, 텔레마코스가 이번 길을 방자하게도 큰일을 해내듯 해치웠네. 우리는 그 아이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하리라 여겼는데 말일세. 자, 검은 배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바다에 띄우고, 바다에 익숙한 노잡이들을 모으세. 저쪽 사람들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서둘러 알리도록 말일세."
351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암피노모스가 자리에서 몸을 돌리다가 깊은 포구 안으로 들어오는 배를 보았다. 사람들이 돛을 내리고 손에 노를 쥐고 있었다. 그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리며 동료들 가운데서 말했다.
355 "이제 소식을 보낼 것 없네. 저들이 벌써 안에 들어왔으니 말일세. 어떤 신이 저들에게 일러 주었거나, 아니면 저들이 지나가는 그 배를 보고도 따라잡지 못했나 보네."
358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일어나 바닷가로 갔다. 곧 검은 배를 뭍으로 끌어 올렸고, 기세 높은 시종들이 그들의 장비를 날라 갔다. 그들은 모두 함께 회의장으로 가서, 젊은이든 노인이든 다른 사람은 아무도 함께 앉지 못하게 했다. 에우페이테스의 아들 안티노오스가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364 "허, 신들께서 저자를 재앙에서 건져 주셨구먼. 낮에는 망보는 자들이 바람 부는 산마루에 번갈아 쉴 새 없이 앉아 있었고, 해가 지면 우리는 한 번도 뭍에서 밤을 보내지 않고 날랜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떠다니며 고귀한 새벽 여신을 기다렸네. 텔레마코스를 붙잡아 죽이려고 숨어서 기다린 것인데, 그사이 어떤 신이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버렸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텔레마코스에게 비참한 파멸을 꾸미세. 그 아이가 우리 손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일세. 그 아이가 살아 있는 한 이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네. 그 아이는 생각과 꾀가 밝은 데다, 백성들은 이제 우리 편을 조금도 들지 않으니 말일세. 자, 그 아이가 아카이아인들을 회의장에 불러 모으기 전에 서두르세. 그 아이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걸세. 오히려 앙심을 품고 모든 사람 앞에 일어서서, 우리가 자기를 죽이려고 가파른 죽음을 꾸미다가 놓쳤다고 말할 걸세. 그러면 사람들은 그 못된 짓을 듣고 우리를 옳다고 하지 않을 걸세. 그들이 우리에게 해코지를 해서 우리를 우리 땅에서 쫓아내고, 우리가 남의 고장으로 가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세. 그러니 우리가 먼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들이나 길에서 그 아이를 잡아 버리세. 그런 다음 그 아이의 살림과 재산은 우리끼리 몫에 맞게 나누어 차지하고, 집은 그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아내로 맞는 사람에게 넘겨주세. 그러나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 아이가 살아서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차지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더는 여기 모여 마음에 드는 그 아이 재산을 넉넉히 먹어 치우지 말고, 저마다 제 집에서 구혼 선물을 내밀며 구혼하세. 그러면 그 여인은 가장 많은 것을 바치고 운명이 정한 사람과 혼인하겠지."
393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숨을 죽이고 잠잠해졌다. 그때 암피노모스가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그는 아레토스의 아들인 니소스 왕의 빛나는 아들로, 밀이 많이 나고 풀이 무성한 둘리키온에서 온 구혼자들을 이끌었으며, 말솜씨로 누구보다 페넬로페의 마음에 들었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좋은 뜻을 품고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400 "벗들이여, 나는 텔레마코스를 죽이고 싶지 않네. 왕가의 핏줄을 죽이는 것은 무서운 일일세. 먼저 신들의 뜻을 물어보세. 큰 제우스의 신탁이 옳다고 하면 내가 몸소 그 아이를 죽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모두 나서라고 하겠네. 그러나 신들께서 말리시면 그만두라고 하겠네."
406 암피노모스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그 말을 반겼다. 그들은 곧 일어나 오디세우스의 집으로 가서 반들반들한 의자에 앉았다.
409 그때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또 다른 생각을 해냈다. 거리낌 없이 오만을 부리는 구혼자들 앞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홀에서 제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꾀를 엿들은 전령 메돈이 왕비에게 일러 주었다. 왕비는 시녀들과 함께 홀로 갔고, 여인 중에 고귀한 페넬로페는 구혼자들 앞에 이르자, 튼튼하게 지은 지붕을 받친 기둥 곁에 서서, 반들거리는 머릿수건을 두 뺨 앞으로 드리웠다. 그러고는 안티노오스를 나무라며 이름을 불러 말했다.
418 "안티노오스, 오만하고 나쁜 꾀를 꾸미는 자여, 이타카 고을에서 당신이 또래들 가운데 생각과 말이 가장 뛰어나다고들 하더니,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구려. 미친 사람, 어찌하여 당신은 텔레마코스에게 죽음과 죽을 운명을 꾸미고, 제우스께서 증인이 되어 주시는 탄원하는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소? 서로 해코지를 꾸미는 것은 신성한 도리가 아니오. 당신 아버지가 고을 사람들이 무서워 도망쳐 이곳에 왔던 일을 모르오? 사람들이 몹시 노해 있었소. 그가 타포스의 해적들을 따라가 우리와 사이좋던 테스프로티아인들을 괴롭혔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그를 죽여 그 사랑하는 목숨을 끊고, 그의 넉넉하고 많은 살림을 먹어 치우려 했소.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그들이 그토록 날뛰는데도 막아서서 말렸소.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분의 집을 업신여기며 먹어 치우고, 그분의 아내에게 구혼하고, 그분의 아들을 죽이려 하고, 나를 몹시 괴롭히고 있소. 그만두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만두라고 이르시오."
434 폴리보스의 아들 에우리마코스가 대답했다. "이카리오스의 따님, 사려 깊은 페넬로페 님, 용기를 내십시오. 그런 일로 속을 썩이지 마십시오. 제가 살아서 땅 위를 보고 있는 한, 왕비님의 아드님 텔레마코스에게 손을 대는 사내는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생겨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니, 이 말은 정녕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자가 있다면 그자의 검은 피가 곧 제 창 둘레로 뿜어져 나올 것입니다. 도시를 무너뜨린 오디세우스께서도 저를 자주 무릎에 앉히시고 구운 고기를 손에 쥐여 주시고 붉은 포도주를 입에 대 주셨습니다. 그러니 텔레마코스는 제게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구혼자들 손에 죽을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르십시오. 그러나 신에게서 오는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448 에우리마코스는 이렇게 왕비를 안심시키며 말했지만, 실은 자신이 텔레마코스에게 파멸을 꾸미고 있었다. 페넬로페는 반들거리는 위층 방으로 올라가 사랑하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그리며 울었다. 마침내 빛나는 눈의 아테나가 그 눈꺼풀 위에 달콤한 잠을 내려 주었다.
452 저녁 무렵 고귀한 돼지치기가 오디세우스와 그 아들에게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한 살배기 돼지를 잡아 함께 일하며 저녁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때 아테나가 가까이 다가서서,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를 지팡이로 쳐서 다시 늙은이로 만들고 몸에 초라한 옷을 입혔다. 돼지치기가 그를 마주 보고 알아차려, 분별 있는 페넬로페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하고 마음속에 담아 두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뜻이었다. 텔레마코스가 먼저 그에게 말했다. "오셨어요, 고귀한 에우마이오스. 도시에는 무슨 소식이 있어요? 거만한 구혼자들이 매복을 그만두고 벌써 집에 돌아와 있나요, 아니면 아직도 집으로 가는 저를 노리고 숨어 기다리고 있나요?"
464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여, 그대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도시로 내려가서 그런 것을 묻고 캐물을 마음은 없었다. 소식을 전하고 어서 이리로 돌아오라고 내 마음이 재촉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네 동료들이 보낸 날랜 심부름꾼, 전령 하나가 나와 마주쳤는데, 그 사람이 맨 먼저 네 어머니께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가 안다. 이 눈으로 보았으니까. 내가 벌써 도시 위쪽, 헤르메스 언덕이 있는 곳을 지나 걸어가고 있을 때, 날랜 배 한 척이 우리 포구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배에는 사내들이 많이 타고 있었고, 방패와 양날 창이 가득 실려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바로 그자들이라고 생각했지만, 확실히는 모르겠다."
476 그가 이렇게 말하자, 신성한 힘을 지닌 텔레마코스는 빙그레 웃으며 아버지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돼지치기의 눈은 피했다.
478 그들은 일을 마치고 잔치를 차린 다음 함께 먹었는데, 고루 나눈 잔치에 누구 하나 마음에 모자람이 없었다. 실컷 먹고 마셔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자, 그들은 잠자리를 생각하고 자리에 누워 잠의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