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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제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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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권

1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이 나타나자, 신성한 기운을 지닌 알키노오스가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제우스의 핏줄인, 도시를 무너뜨린 오디세우스도 일어났다. 알키노오스는 배들 곁에 마련된 파이아케스인의 회의장으로 앞장서 갔고, 그곳에 이르자 두 사람은 반들반들한 돌 위에 나란히 앉았다. 그사이 팔라스 아테나는 슬기로운 알키노오스의 전령 모습을 하고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기개 높은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궁리하던 여신은 사람마다 곁에 다가서서 이렇게 말했다.

11 "자,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여, 회의장으로 가십시오. 바다를 떠돌다 얼마 전 슬기로운 알키노오스의 집에 온 손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생김새가 불사의 신들과 같은 분입니다."

15 이렇게 말하며 여신은 사람마다 기운과 마음을 북돋웠다. 금세 회의장과 자리마다 모여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테나가 그의 머리와 어깨에 신묘한 기품을 부어 주고 보기에 더 크고 더 듬직하게 만들어 놓았으므로, 많은 이들이 라에르테스의 슬기로운 아들을 보고 감탄했다. 그가 모든 파이아케스인에게 호감을 사고 두려움과 존경을 받으며, 파이아케스인들이 오디세우스의 솜씨를 시험하려고 내놓을 여러 시합을 거뜬히 해내도록 하려는 여신의 뜻이었다. 사람들이 다 모여 한자리에 들어차자 알키노오스가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26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여, 들어 보시오. 가슴속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하겠소. 여기 이 손님이 누구인지는 나도 모르오. 해 뜨는 쪽 사람들에게서인지 해 지는 쪽 사람들에게서인지, 떠돌다가 내 집에 왔소. 이 손님은 바래다주기를 재촉하며 그 약속을 굳게 지켜 달라고 비오. 우리도 예전처럼 서둘러 그를 바래다줍시다. 내 집에 온 사람 가운데 바래다주기를 기다리며 여기서 오래 슬퍼하며 머문 이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소. 자, 처음 바다에 나가는 검은 배를 빛나는 바다로 끌어내리고, 고장에서 지금까지 가장 뛰어나다고 꼽힌 젊은이 쉰두 명을 뽑으시오. 모두 노 젓는 자리에 노를 단단히 매어 둔 다음 배에서 내려 내 집으로 와서 서둘러 잔치를 준비하시오. 모두에게 넉넉히 내가 대겠소. 젊은이들에게는 이렇게 이르겠소. 그리고 왕홀을 든 다른 왕들은 내 아름다운 집으로 오시오. 홀에서 손님을 정답게 대접합시다. 아무도 마다하지 마시오. 신과 같은 노래꾼 데모도코스도 부르시오. 신께서 그에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노래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재주를 누구보다 넉넉히 내려 주셨소."

46 이렇게 말하고 그가 앞장서자 왕홀을 든 이들이 함께 따라갔고, 전령은 신과 같은 노래꾼을 데리러 갔다. 뽑힌 젊은이 쉰두 명은 왕이 이른 대로 거둘 것 없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배와 바다에 이르자 그들은 검은 배를 깊은 바다로 끌어내리고, 검은 배에 돛대를 세우고 돛을 실었으며, 가죽 고리에 노를 끼워 모든 것을 제대로 갖춘 다음 흰 돛을 활짝 폈다. 그리고 배를 물가에서 떨어진 앞바다에 띄워 매어 두고 슬기로운 알키노오스의 큰 집으로 갔다. 주랑과 안뜰과 방들이 모여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무척 많았다. 알키노오스는 그들을 위해 양 열두 마리와 흰 엄니의 돼지 여덟 마리, 발을 끌며 걷는 소 두 마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손질하여 흥겨운 잔치를 차렸다.

62 전령이 정다운 노래꾼을 데리고 가까이 왔다. 무사 여신은 이 노래꾼을 무척 아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주었으니, 두 눈은 빼앗고 달콤한 노래를 주었다. 폰토노오스가 잔치하는 이들 한가운데에 은못 박은 의자를 놓아 그를 앉히고 높은 기둥에 기대게 했다. 전령은 낭랑한 리라를 그의 머리 바로 위 못에 걸어 두고, 손으로 더듬어 잡는 법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곁에 바구니와 아름다운 식탁을 놓고, 마음이 내킬 때 마시도록 포도주 잔도 놓아 주었다. 그들은 앞에 차려진 음식에 손을 뻗었다. 실컷 먹고 마셔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자, 무사 여신이 노래꾼을 부추겨 영웅들의 이름난 일을 노래하게 했다. 그 무렵 명성이 넓은 하늘에까지 닿은 노래의 한 가락으로, 오디세우스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다툰 이야기였다. 두 사람이 일찍이 신들께 제물을 바치는 풍성한 잔치 자리에서 사나운 말로 맞서자,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은 아카이아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이 다투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뻐했다. 아가멤논이 신탁을 물으려고 성스러운 피토의 돌 문지방을 넘어섰을 때 포이보스 아폴론이 바로 그렇게 일러 준 일이 있었다. 위대한 제우스의 뜻에 따라 트로이인과 다나오스인에게 재앙의 시작이 굴러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83 널리 이름난 노래꾼이 이것을 노래하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억센 두 손으로 커다란 자줏빛 겉옷을 집어 머리 위로 끌어당겨 잘생긴 얼굴을 가렸다. 눈썹 아래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파이아케스인들에게 보이기가 부끄러웠다. 신과 같은 노래꾼이 노래를 멈출 때마다 그는 눈물을 닦고 머리에서 겉옷을 걷어 낸 뒤, 손잡이 둘 달린 잔을 들어 신들께 술을 따라 바쳤다. 그러나 파이아케스인 가운데 뛰어난 이들이 노랫말을 즐기며 다시 노래하라고 부추겨 노래꾼이 또 노래를 시작하면, 오디세우스는 다시 머리를 감싸고 흐느껴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다른 이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 곁에 앉아 있던 알키노오스만은 그것을 눈여겨보고 알아차렸으며 그가 무겁게 신음하는 소리도 들었다. 알키노오스는 곧 노 젓기를 좋아하는 파이아케스인 가운데서 말했다.

97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여, 들어 보시오. 우리는 이제 고루 나눈 잔치와, 풍성한 잔치의 짝인 리라를 마음껏 즐겼소. 이제 밖으로 나가 온갖 시합을 겨루어 봅시다. 손님이 고향에 돌아가서, 우리가 주먹 싸움과 씨름과 멀리뛰기와 달리기에서 남들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말이오."

104 이렇게 말하고 그가 앞장서자 모두 함께 따라갔다. 전령은 낭랑한 리라를 못에 걸어 두고, 데모도코스의 손을 잡아 홀 밖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시합을 구경하러 가는 다른 파이아케스 귀족들이 가는 바로 그 길로 그를 데려갔다. 그들이 회의장으로 가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함께 따라갔고, 훌륭한 젊은이들이 많이 일어섰다. 아크로네오스와 오키알로스와 엘라트레우스, 나우테우스와 프림네우스와 앙키알로스와 에레트메우스, 폰테우스와 프로레우스, 토온과 아나베시네오스, 그리고 텍톤의 아들 폴리네오스의 아들 암피알로스가 일어섰다. 사람을 죽이는 아레스와 같은 나우볼로스의 아들 에우리알로스도 일어섰는데, 나무랄 데 없는 라오다마스 다음으로는 모든 파이아케스인 가운데 생김새도 몸집도 가장 빼어난 젊은이였다. 나무랄 데 없는 알키노오스의 세 아들, 라오다마스와 할리오스와 신에 버금가는 클리토네오스도 일어섰다. 먼저 그들은 달리기를 겨루었다. 출발점에서부터 경주로가 길게 뻗어 있었고, 그들은 모두 한꺼번에 들판에 먼지를 일으키며 날듯이 내달았다. 달리기에서 단연 뛰어난 이는 나무랄 데 없는 클리토네오스였다. 노새 두 마리가 묵정밭을 가는 한 고랑 길이만큼 앞서 내달려 구경꾼들에게 이르렀고, 다른 이들은 뒤처졌다. 다음에는 힘겨운 씨름을 겨루었는데, 이번에는 에우리알로스가 뛰어난 이들을 모두 이겼다. 멀리뛰기에서는 암피알로스가 누구보다 앞섰고, 원반던지기에서는 엘라트레우스가 단연 으뜸이었으며, 주먹 싸움에서는 알키노오스의 훌륭한 아들 라오다마스가 으뜸이었다. 모두가 시합을 마음껏 즐기고 나자 알키노오스의 아들 라오다마스가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133 "벗들이여, 이리 오게. 저 손님이 무슨 시합을 알고 익혔는지 물어보세. 몸집으로 보면 못난 사람이 아니네. 넓적다리와 정강이, 위쪽의 두 팔, 굵은 목덜미를 보게. 대단한 힘이네. 한창때가 지난 것도 아닌데, 숱한 불행에 짓눌려 꺾였을 뿐이네. 내 생각에는 아무리 억센 사내라도 바다보다 더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은 없네."

140 에우리알로스가 대답했다. "라오다마스, 자네 말이 참으로 옳네. 이제 자네가 몸소 가서 그에게 겨루자고 청하고 그 말을 전하게."

143 알키노오스의 훌륭한 아들은 그 말을 듣자 한가운데로 나가 서서 오디세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나그네 어르신, 이리 와서 당신도 시합을 겨루어 보시오. 혹시 익힌 것이 있다면 말이오. 당신은 시합을 아는 사람처럼 보이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제 발과 손으로 이루는 일보다 더 큰 명성은 없소. 자, 겨루어 보고 마음에서 시름을 떨쳐 버리시오. 당신의 길도 이제 오래 미루어지지 않을 것이오. 배는 벌써 바다에 끌어내려 두었고 함께 갈 뱃사람들도 채비를 마쳤소."

152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라오다마스, 어찌하여 당신들은 나를 놀리듯 이런 일을 시키오? 내 마음속에는 시합보다 시름이 더 크오. 나는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일을 겪고 숱한 고생을 했소. 이제는 귀향을 애타게 바라며 당신들의 회의장에 앉아 왕과 온 백성에게 비는 몸이오."

158 그러자 에우리알로스가 대답하며 맞대 놓고 꾸짖었다. "이보게, 내가 보기에 자네는 사람들 사이에 흔히 있는 시합을 잘 아는 사내 같지가 않네. 노 젓는 자리가 많은 배를 타고 들락거리며 장사치 뱃사람들을 부리는 우두머리 같네. 짐을 잘 기억하고 돌아오는 짐과 움켜쥘 잇속을 살피는 자 말일세. 자네는 시합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네."

165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노려보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 말이 곱지 않네. 무모한 사내 같군. 신들은 모든 사람에게 고운 것을 다 주지는 않는 법이네. 생김새도, 생각도, 말솜씨도 말일세. 어떤 사내는 생김새가 보잘것없어도 신이 그 모습에 말로 화관을 씌워 주니,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네. 그는 상냥한 염치를 지니고 흔들림 없이 말하여 모인 사람들 가운데서 돋보이고, 도시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그를 신처럼 우러러보네. 또 어떤 사내는 생김새가 불사의 신들과 닮았어도 그 말에는 고운 맛이 둘러 있지 않네. 자네가 바로 그렇군. 생김새는 빼어나서 신이라도 달리 빚지 못하겠지만 생각은 텅 비었네. 자네가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여 내 가슴속 마음을 휘저어 놓았네. 나는 자네 말처럼 시합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네. 한창때를 믿고 내 두 손을 믿던 동안에는 으뜸가는 축에 들었다고 생각하네. 지금은 불행과 고통에 사로잡혀 있지. 사내들의 싸움과 사나운 물결을 헤치며 숱한 일을 견뎌 왔으니 말일세. 그래도 숱한 불행을 겪은 몸이지만 시합을 겨루어 보겠네. 자네 말이 가슴을 물어뜯어 나를 부추겼으니."

186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겉옷을 걸친 채로 벌떡 일어나, 파이아케스인들이 서로 던지던 것보다 더 크고 두툼하며 훨씬 무거운 원반을 집어 들었다. 그는 원반을 빙 돌려 억센 손에서 날려 보냈다. 돌이 윙 소리를 내자 긴 노를 젓는 파이아케스인들, 배로 이름난 사내들이 돌이 날아가는 기세에 눌려 땅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원반은 손을 떠나 가볍게 날아가 모든 이의 표지를 넘어갔다. 사내의 모습을 한 아테나가 떨어진 자리에 표지를 놓고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195 "손님, 당신의 표지는 눈먼 사람이라도 더듬어 보면 가려낼 수 있겠소. 다른 표지들 무리에 섞여 있지 않고 훨씬 앞에 있으니 말이오. 이번 시합만큼은 걱정하지 마시오. 파이아케스 사람 누구도 여기까지 던지지 못할 것이고, 이것을 넘지도 못할 것이오."

199 그 말에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기뻐했다. 경기장에서 친절한 동무를 만난 것이 반가웠다. 그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파이아케스인 가운데서 말했다.

202 "젊은이들, 이제 여기까지 던져 보게. 나는 곧 하나를 더 던질 텐데, 아마 이만큼이나 이보다 더 멀리 날아갈 걸세. 자네들이 나를 몹시 화나게 했으니, 다른 사람들 가운데 가슴과 마음이 시키는 이는 누구든 이리 나와 겨루어 보게. 주먹 싸움이든 씨름이든 달리기든 나는 조금도 마다하지 않겠네. 파이아케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네. 라오다마스만은 빼고 말일세. 그는 나를 손님으로 맞아 준 사람이니, 누가 자기를 아껴 주는 이와 싸우겠는가? 남의 나라에 와서 자기를 맞아 준 주인에게 시합을 걸어 다투는 사내는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자일세. 제 앞길을 모두 스스로 깎아 버리는 셈이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절하지 않고 깔보지도 않겠네. 맞서서 겨루며 서로 알아보고 싶네. 사내들 사이에 있는 시합이라면 무엇이든 나는 서툴지 않네. 잘 다듬은 활을 다룰 줄도 잘 알지. 적의 무리 속에서 화살을 쏘면 내가 맨 먼저 사람을 맞힐 걸세. 많은 전우가 내 곁에 서서 사람들을 겨누어 쏘더라도 말이네. 트로이 땅에서 우리 아카이아인들이 활을 쏠 때, 활로 나를 앞선 사람은 필록테테스 하나뿐이었네. 지금 땅 위에서 빵을 먹고 사는 다른 인간들 가운데서라면 내가 훨씬 낫다고 말하겠네. 그러나 옛사람들과는 겨루고 싶지 않네. 헤라클레스나 오이칼리아의 에우리토스와는 말일세. 그들은 불사의 신들과도 활 솜씨를 다투곤 했으니까. 그래서 위대한 에우리토스는 일찍 죽어 제 집에서 늙지도 못했네. 그가 활쏘기를 겨루자고 아폴론에게 도전하자 아폴론이 노하여 그를 죽였지. 창이라면 나는 다른 누가 화살을 쏘아 보내는 만큼 멀리 던진다네. 오직 달리기에서만은 파이아케스 사람 누가 나를 앞지를까 두렵네. 거센 물결 속에서 참담하게 시달린 데다 배 위에서 몸을 돌볼 양식도 넉넉지 않았으니, 그래서 내 팔다리가 풀려 버렸네."

234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숨을 죽이고 잠잠해졌다. 알키노오스만이 그에게 대답했다.

236 "손님, 당신이 우리에게 한 말은 언짢은 말이 아니었소. 이 사내가 경기장에서 당신 곁에 다가서서 꾸짖은 것에 화가 나서, 당신이 지닌 빼어남을 드러내 보이려 한 것이오. 제 속으로 옳은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당신의 빼어남을 흠잡지 못할 것이오. 자, 이제 내 말을 들어 보시오. 훗날 당신이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 곁에 앉아 잔치를 벌일 때, 우리의 빼어남을 떠올리며 다른 영웅에게도 들려줄 수 있도록 말이오. 제우스께서 조상 때부터 줄곧 우리에게 맡겨 오신 일이 어떤 것인지 말이오. 우리는 나무랄 데 없는 주먹꾼도 씨름꾼도 아니오. 그러나 발이 빨라 잘 달리고, 배를 부리는 데는 으뜸이오. 우리는 언제나 정다운 잔치와 리라와 춤, 갈아입을 옷과 따뜻한 목욕과 잠자리를 좋아하오. 자, 파이아케스의 춤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은 춤을 추어 보이시오. 손님이 고향에 돌아가서, 우리가 뱃일과 달리기와 춤과 노래에서 남들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사랑하는 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말이오. 누가 얼른 가서 데모도코스에게 낭랑한 리라를 가져다주시오. 우리 집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이오."

256 신을 닮은 알키노오스가 이렇게 말하자, 전령이 왕의 집에서 우묵한 리라를 가져오려고 일어섰다. 고을에서 뽑은 심판관 아홉 명이 모두 일어섰다. 경기 때마다 모든 일을 잘 처리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춤출 자리를 고르게 다지고 경기장을 아름답고 넓게 터놓았다. 전령이 낭랑한 리라를 데모도코스에게 가져오자 그는 한가운데로 나아갔고, 춤에 능한 갓 피어난 젊은이들이 그 둘레에 둘러서서 발로 신이 내린 듯한 춤마당을 굴렀다. 오디세우스는 번득이는 발놀림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266 데모도코스는 리라를 타며 아레스와 고운 관을 쓴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두 신이 처음 헤파이스토스의 집에서 몰래 살을 섞은 이야기였다. 아레스는 선물을 많이 주고 헤파이스토스 왕의 침대와 잠자리를 더럽혔다. 두 신이 사랑으로 몸을 섞는 것을 본 헬리오스가 곧바로 헤파이스토스에게 알리러 왔다. 가슴 아픈 소식을 듣자 헤파이스토스는 속으로 앙갚음을 궁리하며 대장간으로 가서, 모루 받침에 커다란 모루를 올려놓고 끊을 수도 풀 수도 없는 사슬을 두들겨 만들었다. 두 신을 그 자리에 꼼짝없이 붙잡아 둘 사슬이었다. 아레스에게 노한 그는 그렇게 덫을 다 만들고 나서, 아끼는 침대가 놓인 방으로 가 침대 기둥 둘레에 빙 돌아가며 사슬을 쏟아부었다. 지붕 들보에서도 많은 사슬이 가는 거미줄처럼 드리워졌는데, 복된 신들조차 누구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교묘하게 만든 덫이었다. 침대 둘레에 덫을 모두 둘러치고 나서 헤파이스토스는 잘 지은 도시 렘노스로 가는 척했다. 렘노스는 그가 온 땅 가운데 가장 아끼는 곳이었다. 황금 고삐의 아레스도 허투루 망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솜씨로 이름난 헤파이스토스가 멀리 떠나는 것을 보자마자, 아레스는 고운 관을 쓴 키테라의 여신과의 사랑을 애타게 그리며 널리 이름난 헤파이스토스의 집으로 갔다. 아프로디테는 힘이 막강한 아버지, 크로노스의 아들에게서 막 돌아와 앉아 있었다. 아레스는 집 안으로 들어가 여신의 손을 꼭 잡고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292 "이리 오오, 내 사랑. 침대로 가서 함께 누워 즐깁시다. 헤파이스토스는 이제 이 고장에 없소. 벌써 말소리 거친 신티에스족을 찾아 렘노스로 떠났을 것이오."

295 그가 이렇게 말하자 여신은 잠자리에 드는 것이 반가웠다. 두 신은 침대에 올라 누웠다. 그러자 지혜 많은 헤파이스토스가 교묘하게 만든 사슬이 둘레로 쏟아져 내려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들어 올릴 수도 없게 되었고, 그제야 두 신은 더는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알았다. 두 발이 굽은 널리 이름난 신이 렘노스 땅에 닿기 전에 되돌아와 가까이 다가왔다. 헬리오스가 그를 위해 망을 보다가 알려 주었다. 헤파이스토스는 가슴이 쓰라린 채 제 집으로 가서 문간에 섰고, 사나운 노여움에 사로잡혀 무시무시하게 고함을 지르며 모든 신에게 외쳤다.

306 "아버지 제우스와 영원히 사는 다른 복된 신들이시여, 이리 오셔서 우습고도 참을 수 없는 꼴을 보십시오. 제우스의 딸 아프로디테는 제가 절름발이라고 늘 저를 업신여기고 파괴를 일삼는 아레스를 사랑합니다. 아레스는 잘생기고 다리가 성한데 저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탓은 다른 누구도 아닌 두 부모에게 있습니다. 차라리 저를 낳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두 신이 제 침대에 올라가 사랑하며 누워 있습니다. 그 꼴을 보니 가슴이 쓰립니다. 아무리 서로 사랑한다 해도 이제는 저렇게 잠깐이라도 누워 있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곧 둘 다 자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테지요. 그래도 그 아버지께서 저 낯 두꺼운 딸 때문에 제가 손에 쥐여 드린 구혼 선물을 모두 돌려주실 때까지, 이 덫과 사슬이 두 신을 붙잡아 둘 것입니다. 딸은 아름답지만 제 마음을 다스릴 줄 모르니까요."

321 그가 이렇게 말하자 신들이 청동 바닥을 깐 집으로 모여들었다. 대지를 떠받치는 포세이돈이 왔고, 복을 주는 헤르메스가 왔으며, 멀리 쏘는 아폴론 왕이 왔다. 여신들은 부끄러워 저마다 집에 머물렀다. 좋은 것을 베푸는 신들이 문간에 서서 지혜 많은 헤파이스토스의 솜씨를 바라보자, 복된 신들 사이에서 꺼지지 않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옆 사람을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329 "못된 짓은 잘되지 않는 법이오. 느린 자가 빠른 자를 따라잡는구려. 올림포스에 사는 신들 가운데 누구보다 빠른 아레스를, 느린 데다 절름발이인 헤파이스토스가 솜씨로 붙잡지 않았소. 그러니 아레스는 남의 아내를 범한 값을 물어야 하오."

333 이렇게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 왕이 헤르메스에게 말했다.

335 "헤르메스, 제우스의 아들, 길잡이, 좋은 것을 베푸는 이여, 너라면 저렇게 단단한 사슬에 꽁꽁 묶이더라도 황금빛 아프로디테 곁에 누워 자고 싶어?"

338 아르고스를 죽인 길잡이가 대답했다. "멀리 쏘는 아폴론 왕이여,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야! 저 사슬보다 세 곱절이나 되는 끝없는 사슬이 나를 휘감고 너희 신들과 여신들이 모두 지켜본대도, 나는 황금빛 아프로디테 곁에서 자겠어."

343 그가 이렇게 말하자 불사의 신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포세이돈은 웃지 않고, 솜씨로 이름난 헤파이스토스에게 아레스를 풀어 주라고 줄곧 간청했다. 포세이돈이 그에게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347 "그를 풀어 주시오. 당신이 바라는 대로, 불사의 신들 앞에서 그가 마땅한 값을 다 치르게 하겠다고 내가 약속하오."

349 두 발이 굽은 널리 이름난 신이 말을 받았다. "대지를 떠받치는 포세이돈이여, 그런 일을 내게 시키지 마시오. 하찮은 자를 위한 보증은 하찮은 보증일 뿐이오. 아레스가 빚도 사슬도 벗어나 달아나 버리면, 내가 불사의 신들 앞에서 무슨 수로 당신을 묶어 두겠소?"

354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이 말을 받았다. "헤파이스토스, 아레스가 빚을 피해 달아나 버리면 내가 몸소 그 값을 치르겠소."

357 두 발이 굽은 널리 이름난 신이 대답했다. "당신 말을 거절할 수도 없고, 거절하는 것은 마땅하지도 않소."

359 이렇게 말하고 기운찬 헤파이스토스는 사슬을 풀었다. 그토록 단단한 사슬에서 풀려나자 두 신은 곧바로 튀어 일어나, 아레스는 트라키아로 가고 웃음을 사랑하는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의 파포스로 갔다. 그곳에 여신의 성역과 향 피우는 제단이 있었다. 거기서 카리테스가 여신을 씻기고, 영원히 사는 신들의 몸에 감도는 불멸의 기름을 발라 준 뒤, 보기에도 놀랍도록 고운 옷을 입혀 주었다.

367 널리 이름난 노래꾼이 이것을 노래하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들으면서 속으로 즐거워했고, 긴 노를 젓는 다른 파이아케스인들, 배로 이름난 사내들도 즐거워했다.

370 알키노오스는 아무도 겨룰 수 없는 할리오스와 라오다마스에게 둘이서만 춤을 추라고 일렀다. 두 사람은 슬기로운 폴리보스가 만들어 준 아름다운 자줏빛 공을 손에 들었다. 한 사람이 몸을 뒤로 젖혔다가 그늘진 구름을 향해 공을 던져 올리면, 다른 사람은 땅에서 높이 뛰어올라 발이 땅에 닿기 전에 가볍게 받아 냈다. 공을 곧장 위로 던지는 솜씨를 겨루고 나자, 두 사람은 많은 것을 길러 내는 땅 위에서 자주 자리를 바꾸어 가며 춤을 추었다. 경기장에 둘러선 다른 젊은이들이 발로 박자를 맞추자 요란한 소리가 일었다.

381 그때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알키노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알키노오스 왕이시여, 모든 백성 가운데 우뚝하신 분이여, 이곳 춤꾼들이 으뜸이라고 장담하시더니 과연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보고 있자니 놀라움에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385 그 말에 신성한 기운을 지닌 알키노오스는 기뻐하며, 곧 노 젓기를 좋아하는 파이아케스인 가운데서 말했다.

387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여, 들어 보시오. 내가 보기에 이 손님은 참으로 의젓한 사람이오. 자, 마땅히 그에게 손님 선물을 줍시다. 이 고장에서는 빼어난 왕 열두 명이 우두머리로서 다스리고, 나 자신이 열셋째 왕이오. 여러분은 저마다 그에게 깨끗이 빤 겉옷과 윗옷, 그리고 귀한 황금 한 탈란톤씩을 가져다주시오. 어서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아 가져옵시다. 손님이 손에 그 선물을 쥐고 흐뭇한 마음으로 저녁 자리에 갈 수 있게 말이오. 그리고 에우리알로스는 말과 선물로 몸소 손님의 마음을 풀어 주시오.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을 했으니 말이오."

398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옳다고 하며 그렇게 하라고 했고, 저마다 선물을 가져오라고 전령을 보냈다. 에우리알로스가 대답했다. "알키노오스 왕이시여, 모든 백성 가운데 우뚝하신 분이여, 그렇다면 분부하신 대로 제가 손님의 마음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이 온통 청동으로 된 칼을 드리겠습니다. 손잡이는 은이고, 갓 켜 낸 상아로 만든 칼집이 둘러 있습니다. 손님께 값진 것이 될 것입니다."

406 그렇게 말하고 그는 은못 박은 칼을 오디세우스의 손에 쥐여 주며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나그네 어르신, 부디 평안하시오. 혹 내가 심한 말을 했다면, 당장 회오리바람이 그 말을 낚아채 날려 보내기를 바라오. 신들께서 당신이 아내를 보고 고향에 닿게 해 주시기를 비오. 당신은 벌써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져 재앙을 겪고 있으니 말이오."

412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젊은이, 자네도 부디 평안하게. 신들께서 자네에게 복을 내려 주시기를. 말로 내 마음을 풀어 주며 내게 준 이 칼을 훗날 아쉬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416 그렇게 말하고 그는 은못 박은 칼을 어깨에 둘러멨다. 해가 지자 이름난 선물들이 그에게 와 있었다. 당당한 전령들이 그것을 알키노오스의 집으로 날랐고, 나무랄 데 없는 알키노오스의 아들들이 받아서 그 더없이 아름다운 선물들을 존귀한 어머니 곁에 놓았다. 신성한 기운을 지닌 알키노오스가 그들을 이끌고 가서 모두 높은 의자에 앉자, 기운찬 알키노오스가 아레테에게 말했다.

424 "부인, 여기 가장 좋은 훌륭한 궤를 가져오시오. 거기에 당신이 몸소 깨끗이 빤 겉옷과 윗옷을 넣어 두시오. 그리고 손님을 위해 불에 청동 솥을 올려 물을 데우시오. 손님이 목욕을 하고, 나무랄 데 없는 파이아케스인들이 이리로 가져온 선물이 모두 가지런히 놓인 것을 본 다음, 잔치를 즐기며 노래 가락도 들을 수 있게 말이오. 나도 이 더없이 아름다운 내 황금 잔을 그에게 주겠소. 그가 평생 나를 기억하며 제 집에서 제우스와 다른 신들께 술을 따라 바칠 수 있도록 말이오."

433 그가 이렇게 말하자 아레테는 하녀들에게 되도록 빨리 불 위에 큰 세발솥을 걸라고 일렀다. 하녀들은 목욕물 데우는 세발솥을 활활 타는 불 위에 걸고 물을 부은 다음, 장작을 가져다 밑에 불을 지폈다. 불길이 세발솥의 배를 휘감고 물이 데워지는 동안, 아레테는 방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궤를 손님에게 가져와 파이아케스인들이 그에게 준 아름다운 선물인 옷과 황금을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몸소 고운 겉옷과 윗옷을 넣고서 그에게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443 "이제 손수 뚜껑을 살피고 얼른 끈으로 묶어 두시오. 검은 배를 타고 가다가 달콤한 잠에 빠졌을 때, 길에서 누가 당신 물건에 손대지 못하도록 말이오."

446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그 말을 듣자 곧 뚜껑을 맞추고, 일찍이 존귀한 키르케가 가르쳐 준 교묘한 매듭으로 얼른 끈을 묶었다. 그러자 곧바로 살림 맡은 여인이 그에게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라고 권했다. 따뜻한 목욕물을 보자 그는 마음이 반가웠다. 머리 고운 칼립소의 집을 떠나온 뒤로는 이렇게 보살핌을 받는 일이 드물었지만, 그 집에 있는 동안에는 신처럼 늘 보살핌을 받았다.

454 하녀들이 오디세우스를 씻기고 올리브기름을 발라 준 뒤 고운 외투와 윗옷을 입혀 주자, 그는 욕조에서 나와 술 마시는 사내들에게로 갔다. 신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받은 나우시카아는 튼튼하게 지은 지붕을 받친 기둥 곁에 서서, 오디세우스를 눈앞에 바라보며 감탄했다. 나우시카아가 그에게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461 "나그네, 잘 가시오. 고향 땅에 돌아가서도 언젠가 나를 기억해 주시오. 당신은 누구보다 먼저 내게 목숨을 빚졌으니 말이오."

463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기개 높은 알키노오스의 따님 나우시카아 아가씨, 헤라의 남편, 우렛소리 요란한 제우스께서 부디 제가 집에 돌아가 귀향의 날을 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면 거기서도 저는 날마다 언제까지나 신께 하듯 아가씨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제 목숨을 살려 주셨으니까요."

469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알키노오스 왕 곁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은 벌써 고기를 몫몫이 나누고 포도주를 섞고 있었다. 전령이 정다운 노래꾼, 백성에게 존경받는 데모도코스를 데리고 가까이 와서, 잔치하는 이들 한가운데에 앉히고 높은 기둥에 기대게 했다. 그때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흰 엄니의 돼지 등심에서 고기를 한 점 베어 내어 전령에게 말했다. 둘레에 기름진 비계가 두툼하게 붙은 고기였고, 베어 내고도 더 많이 남아 있었다.

477 "전령, 자, 이 고기를 데모도코스에게 갖다주어 먹게 하시오. 슬픔에 잠긴 몸이지만 나는 그를 반가이 맞이하고 싶소.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서 노래꾼들은 존경과 염치를 받을 몫이 있소. 무사 여신이 그들에게 노래의 가락을 가르쳐 주었고, 노래꾼의 무리를 아끼기 때문이오."

482 그가 이렇게 말하자 전령이 고기를 가져가 영웅 데모도코스의 손에 쥐여 주었고, 데모도코스는 그것을 받아 들고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그들은 앞에 차려진 음식에 손을 뻗었다. 실컷 먹고 마셔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자,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데모도코스에게 말했다.

487 "데모도코스, 나는 모든 인간 가운데 당신을 가장 높이 칭송하오. 제우스의 따님인 무사 여신이 당신을 가르쳤거나 아폴론이 가르쳤을 것이오. 아카이아인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겪었으며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아카이아인들의 운명을 당신은 마치 몸소 그 자리에 있었거나 거기 있던 이에게 들은 것처럼 참으로 제대로 노래하니 말이오. 자, 이제 노래를 바꾸어 나무 말을 지은 이야기를 노래해 주시오. 에페이오스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고,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일리오스를 무너뜨린 사내들을 그 속에 가득 채워 계략으로 성채 위로 끌어들인 그 말 말이오. 당신이 그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준다면, 나는 곧바로 모든 사람에게 말하겠소. 신께서 기꺼이 당신에게 신묘한 노래를 내려 주셨다고 말이오."

499 그가 이렇게 말하자 노래꾼은 신에게 이끌려 노래를 시작해 펼쳐 보였다. 노래꾼이 노래를 꺼낸 곳은, 아르고스인들이 막사에 불을 지르고 갑판 튼튼한 배에 올라 떠나가던 대목이었다. 그때 다른 이들은 벌써 이름 높은 오디세우스를 둘러싸고 말 속에 숨은 채 트로이인의 회의장에 앉아 있었다. 트로이인들이 몸소 그 말을 성채 위로 끌어올려 놓았다. 말은 그렇게 서 있었고, 트로이인들은 그 둘레에 앉아 이러쿵저러쿵 갈피 없는 말을 숱하게 늘어놓았다. 그들의 의견은 세 갈래로 갈렸다. 무자비한 청동으로 속이 빈 나무를 꿰뚫어 버리자는 이도 있었고, 산꼭대기로 끌고 가 바위 아래로 내던지자는 이도 있었으며, 신들을 달랠 큰 봉헌물로 그대로 두자는 이도 있었다. 결국 마지막 뜻대로 되고 말 운명이었다. 아르고스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이 모두 트로이인에게 살육과 죽음의 운명을 안기려고 들어앉은 큰 나무 말을 도시가 제 안에 품어 들이는 날, 도시는 망하게 되어 있었다. 노래꾼은 또 아카이아인의 아들들이 숨어 있던 속 빈 매복처를 버리고 말에서 쏟아져 나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이야기를 노래했다. 그들이 저마다 여기저기서 가파른 도시를 짓밟았고, 오디세우스는 신에 버금가는 메넬라오스와 함께 아레스처럼 데이포보스의 집으로 갔다고 노래했다. 그곳에서 오디세우스는 가장 끔찍한 싸움을 무릅쓰고, 기상 높은 아테나의 힘을 입어 마침내 이겼다고 노래했다.

521 널리 이름난 노래꾼이 이것을 노래하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녹아내리듯 무너졌고 눈물이 눈꺼풀 아래로 흘러 두 뺨을 적셨다. 한 여인이 사랑하는 남편을 끌어안고 울 때가 있다. 그 남편은 제 도시와 백성 앞에서, 도시와 자식들에게서 무자비한 날을 막아 내려다 쓰러진 사람이다. 여인은 남편이 숨을 몰아쉬며 죽어 가는 것을 보고 그 몸 위에 쓰러져 날카롭게 울부짖는다. 그러나 뒤에서 적들이 창으로 여인의 등과 어깨를 내리치며 고된 일과 비참함을 견디라고 여인을 종으로 끌고 가니, 여인의 두 뺨은 더없이 가엾은 슬픔으로 여위어 간다. 꼭 그처럼 오디세우스는 눈썹 아래로 가엾은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다른 이들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 곁에 앉아 있던 알키노오스만은 그것을 눈여겨보고 알아차렸으며 그가 무겁게 신음하는 소리도 들었다. 알키노오스는 곧 노 젓기를 좋아하는 파이아케스인 가운데서 말했다.

536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여, 들어 보시오. 이제 데모도코스는 낭랑한 리라를 멈추게 하시오. 그가 부르는 이 노래가 모두를 즐겁게 하지는 못하는 듯하오. 우리가 저녁을 들고 신과 같은 노래꾼이 노래를 시작한 뒤로 손님은 한시도 비통한 울음을 그치지 않았소. 큰 슬픔이 그의 가슴을 휘감은 게 틀림없소. 자, 노래꾼은 그만 멈추어, 손님을 맞은 우리나 손님이나 모두 함께 즐겁게 지냅시다. 그러는 편이 훨씬 아름답소. 이 모든 것은 존중받아야 할 손님을 위해 마련한 것이오. 우리가 정을 담아 그에게 주는 배웅과 정다운 선물 말이오.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그네와 탄원하는 사람을 형제처럼 여기는 법이오. 그러니 손님, 이제 내가 묻는 말에 잇속을 따지는 꾀로 숨기지 마시오. 털어놓는 편이 더 아름답소. 당신 고향에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도시 안팎에 사는 다른 이들이 당신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그 이름을 말해 주시오. 못난 사람이든 잘난 사람이든, 사람이라면 아예 이름이 없는 이는 아무도 없소. 누구나 처음 태어나면 낳아 준 부모가 이름을 지어 붙여 주니까 말이오. 당신의 땅과 고장과 도시도 말해 주시오. 우리 배들이 스스로 생각해 그곳을 겨냥해 당신을 데려다줄 수 있도록 말이오. 파이아케스인에게는 키잡이가 없고, 다른 배들이 지닌 키도 없소. 배들이 스스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알고, 모든 사람의 도시와 기름진 들판을 알며, 안개와 구름에 싸인 채 큰 바다를 누구보다 빨리 건너가오. 그 배들은 해를 입거나 망가질까 두려워할 일이 결코 없소. 그러나 일찍이 내 아버지 나우시토오스가 하시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소. 우리가 누구든 해 입지 않게 바래다주니 포세이돈께서 우리를 언짢아하신다고 하셨소. 그리고 언젠가 파이아케스 사람들의 잘 만든 배가 사람을 바래다주고 아득한 바다를 건너 돌아올 때 포세이돈께서 그 배를 부숴 버리고, 우리 도시를 큰 산으로 둘러 덮어 버리실 것이라고 하셨소. 노인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소. 그 일은 신께서 마음 내키시는 대로 이루실 수도 있고 이루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이오. 자, 이것을 말해 주시오. 숨김없이 낱낱이. 당신은 어디를 떠돌았고 어떤 사람들의 땅에 갔소? 그 사람들과 살기 좋은 그들의 도시를 말해 주시오. 모질고 사나워 도리를 모르는 자들인지, 아니면 나그네를 반기고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자들인지 말이오. 아르고스인, 다나오스인과 일리오스의 운명을 듣고 당신이 왜 마음속으로 울며 슬퍼하는지도 말해 주시오. 그 운명은 신들이 지어낸 것이오. 신들은 사람들에게 파멸의 실을 자아 주어 뒷사람들에게도 노래가 되게 하였소. 혹시 당신의 처가 쪽 훌륭한 이가 일리오스 앞에서 죽기라도 했소? 사위나 장인 말이오. 제 피붙이와 핏줄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아니겠소. 아니면 당신 마음에 꼭 맞는 훌륭한 전우가 죽기라도 했소? 생각 깊은 전우는 형제 못지않은 법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