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오디세이아제19권
차례
로그인

제19권

1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아테나와 함께 구혼자들을 죽일 궁리를 하며 홀에 남았다. 그러다 곧 텔레마코스에게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4 "텔레마코스, 싸움에 쓰는 무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안으로 치워 두어야 한다. 구혼자들이 무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묻거든 부드러운 말로 둘러대라. '연기에 그을지 않게 치워 두었소.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나면서 남겨 두었던 그때 모습과는 더 이상 닮지 않고, 불기운이 닿은 탓에 몹시 상해 버렸소. 게다가 어떤 신이 내 마음에 더 큰 걱정을 넣어 주었소. 혹시 당신들이 술에 취해 서로 다투다가 서로 다치게 하고, 잔치와 구혼을 욕되게 할까 두렵소. 쇠붙이는 저절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법이니 말이오.'"

14 그가 이렇게 말하자 텔레마코스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그는 유모 에우리클레이아를 불러내어 말했다.

16 "유모, 자, 여인들을 안채에 붙잡아 두세요. 그동안 저는 아버지의 좋은 무기를 방에 치워 둘게요. 아버지가 떠나신 뒤로 집 안에서 돌보는 이 없이 연기에 그을려 상해 가고 있어요. 그때 저는 아직 철없는 아이였으니까요. 이제는 불기운이 닿지 않는 곳에 치워 두고 싶어요."

21 정다운 유모 에우리클레이아가 말을 받았다. "얘야, 네가 언젠가 정녕 생각이 깊어져서 집안을 돌보고 재산을 모두 지키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런데 자, 그러면 누가 따라가며 너에게 불을 들어 주겠느냐? 불을 밝혀 줄 하녀들은 나가지 못하게 하지 않았느냐."

26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이 손님이 들어 줄 거예요. 제 양식 됫박에 손을 대는 사람이라면, 먼 데서 왔다 해도 그냥 놀게 두지는 않겠어요."

29 그가 이렇게 말하자, 에우리클레이아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날아오르지 않았다. 유모는 살기 좋은 홀의 문들을 잠갔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빛나는 아들은 벌떡 일어나 투구와 배꼽이 돋은 방패와 날 선 창을 안으로 날랐고, 그들 앞에서는 팔라스 아테나가 황금 등잔을 들고 더없이 아름다운 빛을 밝혔다. 그때 텔레마코스가 곧 아버지에게 말했다.

36 "아버지, 참으로 놀라운 일을 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홀의 벽과 아름다운 들보 사이 칸들, 전나무 서까래, 높이 솟은 기둥들이 활활 타는 불처럼 제 눈에 환히 빛납니다. 넓은 하늘에 사는 신들 가운데 어느 분이 정녕 안에 와 계신 게 틀림없습니다."

41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조용히 하고 생각은 속에 담아 두어라. 캐묻지도 마라. 그것이 올림포스에 사는 신들의 법도이다. 자, 너는 가서 누워라. 나는 여기 남아서 하녀들과 네 어머니의 속을 좀 더 떠보겠다. 네 어머니는 슬피 울며 나에게 하나하나 물어볼 것이다."

47 그가 이렇게 말하자 텔레마코스는 환히 타오르는 횃불 빛을 받으며 홀을 가로질러 자러 제 방으로 갔다. 달콤한 잠이 찾아오면 늘 잠들던 곳이었다. 그날 밤에도 그는 거기 누워 고귀한 새벽 여신을 기다렸다.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아테나와 함께 구혼자들을 죽일 궁리를 하며 홀에 남았다.

53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방에서 나왔다. 아르테미스와도 같고 황금빛 아프로디테와도 같았다. 하녀들이 불 곁에 페넬로페가 늘 앉던 의자를 놓아 주었다. 상아와 은을 둥글게 돌려 박은 의자로, 일찍이 목수 이크말리오스가 만들면서 아래에 발을 올려놓을 발판을 붙여 달았고, 그 위에는 커다란 양털 가죽이 깔려 있었다. 사려 깊은 페넬로페는 거기 앉았다. 하얀 팔의 하녀들이 홀에서 나와 남은 빵 무더기와 식탁과 잔들을 치웠다. 기세등등하던 사내들이 술을 마시던 잔이었다. 하녀들은 화로의 불을 바닥에 쏟아 버리고 그 위에 장작을 수북이 쌓아 빛을 내고 몸을 녹이게 했다. 그때 멜란토가 또다시 오디세우스를 나무랐다. "나그네, 아직도 여기서 밤새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귀찮게 굴고 여자들을 훔쳐볼 셈이냐? 이 딱한 인간아, 썩 문밖으로 나가서 얻어먹은 것으로나 만족해라. 안 그러면 곧 횃불에 얻어맞고 문밖으로 쫓겨날 거다."

70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노려보며 말했다. "이 사람아, 어찌하여 이렇게 앙심을 품고 나에게 덤비느냐? 내가 때가 꼬질꼬질하고 누더기를 몸에 걸치고 고장을 돌며 빌어먹어서냐? 어쩔 수 없는 사정에 쫓겨서 그런다. 거지와 떠도는 사내란 다 그런 법이다. 나도 한때는 사람들 사이에서 넉넉한 집을 꾸리고 부유하게 살면서 떠돌이가 어떤 사람이든 무엇이 아쉬워 찾아왔든 자주 베풀었고, 종도 셀 수 없이 많았으며 사람들이 잘 살며 부자라 불리는 데 필요한 다른 것들도 많았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가 그 모든 것을 앗아 갔다. 아마 그것이 그의 뜻이었겠지. 그러니 여인아, 지금 하녀들 사이에서 으스대는 그 아름다움을 너도 언젠가 모두 잃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라. 안주인이 너에게 노해 엄하게 다스릴지도 모르고, 오디세우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아직 바랄 몫은 남아 있다. 설령 그가 그렇게 죽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아폴론의 은덕으로 그 아들 텔레마코스가 벌써 그만큼 자랐다.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니니, 홀의 여인들 가운데 누가 무모한 짓을 하면 결코 그의 눈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89 그의 말을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들었다. 페넬로페는 시녀를 나무라고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91 "이 뻔뻔한 것, 겁도 없는 개 같은 것아, 네가 저지르는 고약한 짓을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그 죗값은 네 머리로 고스란히 치르게 될 것이다. 너는 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몹시 비통해서 이 손님에게 내 홀에서 남편 소식을 물어보려 한다고 내 입으로 하는 말을 네가 직접 들었으니까."

96 그렇게 말하더니 페넬로페는 살림 맡은 여인 에우리노메에게 말했다. "에우리노메, 의자를 가져오고 그 위에 양털 가죽을 깔아 주게. 손님이 앉아서 내게 이야기도 하고 내 말도 들을 수 있도록. 이 손님에게 물어볼 것이 있네." 페넬로페가 이렇게 말하자 에우리노메는 서둘러 반들반들 다듬은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양털 가죽을 깔았다.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거기 앉았다.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먼저 말을 꺼냈다.

104 "손님, 먼저 내가 직접 이것부터 묻겠소.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왔소? 고향은 어디고 부모는 누구요?"

106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부인, 끝없는 땅 위의 인간 가운데 누구도 부인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인의 명성은 넓은 하늘까지 닿아 있으니, 나무랄 데 없는 어느 왕의 명성과도 같습니다. 그런 왕은 신을 두려워하며 굳센 백성을 많이 다스리고 바른 다스림을 받들어 지킵니다. 그러면 검은 땅은 밀과 보리를 내고 나무는 열매로 휘어지며, 양 떼는 끊임없이 새끼를 낳고 바다는 물고기를 대 주니, 다스림이 좋아서 그 아래 백성이 번성합니다. 그러니 지금 이 댁에서 다른 것은 무엇이든 물으셔도 좋지만 제 혈통과 고향 땅만은 묻지 마십시오. 그것을 떠올리면 제 마음이 더욱 괴로움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의 집에 앉아 울고불고해서는 안 됩니다. 끝도 없이 늘 슬퍼하는 것은 더욱 몹쓸 일입니다. 하녀들 가운데 누가, 아니면 부인께서 몸소, 제가 술에 정신이 무거워져 눈물 속을 헤엄친다며 언짢아하실지도 모릅니다."

123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대답했다. "손님, 아르고스인들이 일리오스로 배를 타고 갈 때, 내 남편 오디세우스가 그들과 함께 떠날 때, 불사의 신들이 나의 빼어남과 얼굴과 몸매를 앗아 갔소. 그이가 돌아와 내 삶을 돌보아 준다면 내 명성은 그렇게 더 크고 더 아름다워질 것이오. 그러나 지금 나는 괴롭소. 어떤 신이 그토록 많은 재앙을 내게 몰아 보냈소. 섬들을 휘어잡은 으뜸가는 자들이 둘리키온과 사메와 숲이 우거진 자킨토스에서 몰려오고, 멀리서도 환히 보이는 이타카 바로 이곳에 사는 자들까지 내가 싫다는데도 내게 구혼하며 집을 거덜 내고 있소. 그래서 나는 나그네도, 탄원하는 사람도, 고장의 일을 맡아 하는 전령도 돌보지 못하고 오디세우스만 그리며 가슴이 녹아내리고 있소. 저들은 혼인을 서두르고, 나는 속임수를 실꾸리처럼 감아 나가오. 처음에 어떤 신이 내 속에 수의를 지으라는 생각을 불어넣었소. 나는 홀에 커다란 베틀을 세워 놓고 가늘고도 넓은 천을 짜기 시작하고는, 곧 저들에게 이렇게 말했소."

141 "'내게 구혼하는 젊은이들이여,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죽었으니 내 혼인을 서두르고 싶더라도 이 천을 다 짤 때까지, 애써 자은 실이 헛되이 버려지지 않도록 기다려 주시오. 이것은 영웅 라에르테스의 수의라오. 긴 슬픔을 안기는 죽음의 운명이 그분을 쓰러뜨릴 때 쓰려는 것이오. 그 많은 재산을 모은 분이 수의도 없이 누워 계신다면, 이 고장 아카이아 여인들 가운데 누가 나를 두고 분개할지도 모르니까.'"

148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들의 굳센 마음도 그 말에 따랐소. 그때부터 나는 낮에는 커다란 베틀에서 천을 짜고, 밤이면 횃불을 곁에 두고 짠 것을 풀었소. 그렇게 세 해 동안 나는 아카이아인들을 속여 넘기고 믿게 했소. 그러나 네 해째가 되어 계절이 돌아오고, 달이 이울며 숱한 날이 다 차자, 아무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개 같은 하녀들이 일러바치는 바람에 저들이 들이닥쳐 나를 붙잡고 큰소리로 꾸짖었소. 그래서 마지못해, 억지로 천을 다 짜고 말았소. 이제는 혼인을 피할 수도 없고 다른 꾀를 찾을 길도 없소. 부모님은 어서 혼인하라고 몹시 재촉하고, 아들은 저들이 살림을 먹어 치우는 것을 알고 애를 태우오. 이제 그 애도 집안을 돌볼 줄 아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고, 제우스가 그에게 영광을 내려 주고 있소. 그래도 당신 혈통을 말해 주시오. 어디서 왔소? 옛이야기 속 참나무나 바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 아니오."

164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라에르테스의 아드님 오디세우스의 존귀하신 부인이시여, 제 혈통을 묻는 일을 끝내 그만두지 않으시렵니까? 그렇다면 말씀드리지요. 지금 사로잡힌 슬픔보다 더 많은 슬픔에 저를 내맡기시는 셈이지만 말입니다. 지금의 저만큼 오래 제 고향을 떠나 숱한 인간들의 도시를 떠돌며 고통을 겪은 사내라면 그런 것이 법도입니다. 그래도 물으시고 캐물으시는 것에 대답하겠습니다. 포도주 빛 바다 한가운데 크레타라는 땅이 있습니다. 아름답고 기름지며 사방이 바닷물로 둘러싸인 땅인데, 거기에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도시가 아흔 개나 됩니다. 말도 저마다 다른 것이 뒤섞여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카이아인도 있고 기개 높은 에테오크레테스족과 키도네스족, 세 갈래로 나뉜 도리스인, 고귀한 펠라스고이족도 삽니다. 그 도시들 가운데 크노소스라는 큰 도시가 있습니다. 위대한 제우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미노스가 거기서 아홉 해마다 왕 노릇을 했는데, 그분이 제 아버지, 기상 높은 데우칼리온의 아버지입니다. 데우칼리온은 저와 이도메네우스 왕을 낳았습니다. 이도메네우스는 뱃머리가 굽은 배들을 거느리고 아트레우스의 아들들과 함께 일리오스로 떠났습니다. 제 이름은 이름난 아이톤이고, 나이로는 아래입니다. 형은 저보다 먼저 났고 더 뛰어났습니다. 거기서 저는 오디세우스를 보았고 손님 선물을 주었습니다. 트로이로 가려던 그를 거센 바람이 말레아곶에서 떠밀어 크레타로 몰아왔으니, 그는 해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의 동굴이 있는 암니소스, 드나들기 험한 포구에 배를 대고 사나운 바람을 겨우 피했습니다. 그는 곧장 도시로 올라와 이도메네우스를 찾으며, 그 사람이 자기에게 정답고 존귀한 손님 벗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도메네우스가 뱃머리가 굽은 배들을 거느리고 일리오스로 떠난 지 벌써 열흘째인가 열하루째 되는 새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집 안에 넉넉히 있는 것으로 극진히 아껴 주었고, 그를 따라온 다른 전우들에게도 고장 사람들에게서 보릿가루와 반짝이는 포도주를 거두어 주고 제물로 잡을 소를 내주어 마음껏 배를 채우게 했습니다. 고귀한 아카이아인들은 거기서 열이틀을 머물렀습니다. 거센 북풍이 몰아쳐 뭍에서조차 서 있지 못하게 했으니, 어떤 사나운 신이 그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열사흘째 되는 날 바람이 잦아들자 그들은 배를 띄워 떠났습니다."

203 그는 거짓말을 숱하게 늘어놓으며 참말처럼 꾸며 댔다. 그 말을 듣는 페넬로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살갗이 녹아내렸다. 높은 산꼭대기에 쌓인 눈이 녹아내릴 때가 있다. 서풍이 쏟아부은 눈을 동풍이 녹이면, 녹은 눈 때문에 강물이 불어나 넘쳐흐른다. 꼭 그처럼 페넬로페는 눈물을 쏟으며 고운 두 뺨이 녹아내렸고, 바로 곁에 앉아 있는 제 남편을 그리며 울었다. 오디세우스는 슬피 우는 아내가 마음속으로 가여웠지만, 그의 두 눈은 뿔이나 쇠로 만든 것처럼 눈꺼풀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 그는 속임수로 눈물을 감추었다. 페넬로페는 눈물 많은 울음을 실컷 울고 나서 다시 그에게 대답했다.

215 "자, 손님, 이제 당신을 시험해 보아야겠소. 당신 말대로 정녕 그곳에서 신에 버금가는 전우들과 함께 있던 내 남편을 당신 집에 손님으로 맞아 대접했는지 말이오. 그이가 몸에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그이 생김새는 어땠는지, 그이를 따르던 전우들은 어떠했는지 말해 주시오."

220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부인, 그토록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가 그곳을 떠나 제 고향을 떠나간 지 벌써 스무 해째입니다. 그래도 제 가슴에 떠오르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두 겹으로 된 두툼한 자줏빛 외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핀을 꽂는 대롱이 둘 달린 황금 걸쇠가 달려 있었고, 앞쪽에는 정교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개 한 마리가 앞발로 얼룩무늬 새끼 사슴을 움켜쥐고 버둥거리는 그것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황금으로 된 것인데도 개는 새끼 사슴의 목을 조르며 노려보고 새끼 사슴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으니, 모두가 그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가 몸에 걸친 반들거리는 윗옷도 보았는데, 마른 양파 껍질처럼 부드러웠고 해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 정녕 많은 여인이 그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 일러 드릴 테니 가슴에 새겨 두십시오. 오디세우스가 그 옷들을 집에서부터 입고 왔는지, 아니면 날랜 배에 오를 때 전우 가운데 누가 주었는지, 어쩌면 어느 손님 벗이 주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많은 이와 벗으로 지냈고, 아카이아인 가운데 그와 견줄 만한 이가 드물었으니까요. 저도 그에게 청동 칼과 두 겹으로 된 아름다운 자줏빛 외투와 발끝까지 내려오는 윗옷을 주었고, 갑판 튼튼한 배에 태워 정중하게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전령 하나가 그를 따랐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말씀드리지요. 등이 굽고 살갗이 검고 머리털이 곱슬곱슬했으며, 이름은 에우리바테스였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다른 전우들보다 그 사람을 유난히 아꼈습니다. 서로 속이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249 그가 이렇게 말하자, 오디세우스가 일러 준 표지들이 틀림없음을 알아본 페넬로페는 울고 싶은 마음이 더욱 북받쳤다. 페넬로페는 눈물 많은 울음을 실컷 울고 나서 그에게 대답했다.

253 "손님, 당신은 전에도 가엾게 여길 만한 사람이었지만, 이제 내 집에서 정답고 존귀한 손님이 될 것이오. 당신이 말하는 그 옷은 내가 직접 방에서 꺼내 개어서 그이에게 주었고, 그이의 장식이 되라고 반짝이는 걸쇠도 달아 주었소. 그러나 나는 그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다시는 맞지 못할 것이오. 오디세우스는 궂은 운명을 따라 우묵한 배를 타고,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은 몹쓸 일리오스1를 보러 떠났으니 말이오."

261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라에르테스의 아드님 오디세우스의 존귀하신 부인이시여, 이제는 고운 살갗을 상하게 하지 마시고 남편을 그리며 마음을 녹이지도 마십시오. 그렇다고 제가 부인을 언짢게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떤 여인이든 사랑으로 몸을 섞어 자식을 낳아 준 젊은 날의 남편을 잃으면 슬피 울기 마련입니다. 신들과 같다는 오디세우스 같은 남편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울음을 그치시고 제 말을 새겨들으십시오.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습니다. 바로 가까이, 테스프로티아인들의 기름진 고장에서 그가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고장을 돌며 얻은 값지고 좋은 보물을 많이 싣고 오는 길입니다. 다만 정다운 전우들과 우묵한 배는 트리나키아섬을 떠나오다가 포도주 빛 바다에서 잃었습니다. 그의 전우들이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은 탓에 제우스와 헬리오스가 그에게 노여워했습니다. 전우들은 모두 파도가 사납게 치는 바다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배의 용골에 매달려 있다가 파도에 밀려 뭍에 닿았습니다. 신들과 가까운 핏줄인 파이아케스인들의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신처럼 진심으로 떠받들고 많은 선물을 주었으며, 해를 입지 않게 손수 집까지 보내 주려 했습니다. 그러니 오디세우스는 벌써 오래전에 여기 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땅을 돌아다니며 재물을 모으는 편이 더 이득이라고 마음속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오디세우스는 죽게 마련인 인간들 가운데 잇속 차리는 꾀를 누구보다 많이 알아서, 다른 어떤 인간도 그와 겨룰 수 없습니다. 테스프로티아인의 왕 페이돈이 제게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왕은 집에서 신께 술을 따라 바치며 제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배를 이미 바다에 띄워 두었고, 그를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데려다줄 전우들도 채비를 마쳤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왕은 저를 먼저 보냈습니다. 마침 테스프로티아인들의 배가 밀이 많이 나는 둘리키온으로 떠나려던 참이었습니다. 페이돈은 오디세우스가 모은 재물도 보여 주었는데, 그 왕의 홀에 쌓여 있는 보물은 열 대에 이르도록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릴 만했습니다. 페이돈의 말로는 오디세우스가 도도나로 갔다고 했습니다. 잎이 높이 우거진 신의 참나무에서 제우스의 뜻을 듣고, 이미 오래 떠나 있던 그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드러내 놓고 돌아갈지 몰래 돌아갈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무사하고 곧 아주 가까이 돌아올 것이며, 사랑하는 이들과 고향 땅에서 더는 오래 떨어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부인께 맹세를 드리겠습니다. 이제 신들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신 제우스께서 먼저, 그리고 제가 찾아온 나무랄 데 없는 오디세우스의 화덕이 증인이 되어 주소서. 이 모든 일은 정녕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해 안에, 이 달이 기울고 새 달이 차오를 무렵 오디세우스가 여기로 돌아올 것입니다."

308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말을 받았다. "손님, 그 말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면 당신은 곧 내게서 우정과 많은 선물을 받게 될 것이고, 당신을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을 복 받은 사람이라 부를 것이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일이 이렇게만 될 것 같소. 오디세우스는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당신도 바래다줄 배를 얻지 못할 것이오. 오디세우스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처럼, 아아, 그런 사람이 정녕 있기는 했던가, 존귀한 손님들을 맞아들이고 바래다줄 만한 주인이 이제 이 집에는 없기 때문이오. 자, 시녀들아, 손님의 발을 씻기고 잠자리를 펴 드려라. 침상과 외투와 반들거리는 깔개를 마련해 손님이 따뜻하게 지내다가 황금 옥좌의 새벽 여신을 맞게 하여라.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목욕을 시키고 기름을 발라 드려라. 그래서 손님이 홀 안에서 텔레마코스 곁에 앉아 식사를 들도록 하여라. 저들 가운데 누구든 마음을 해치는 자가 되어 손님을 괴롭힌다면 그자에게는 그만큼 더 고약한 일이 닥칠 것이오. 아무리 끔찍하게 화가 난다 해도 이 집에서는 더는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할 것이오. 손님, 당신이 꾀죄죄한 몰골로 누더기를 걸친 채 홀에서 식사를 한다면, 내가 슬기와 사려 깊은 꾀에서 다른 여인들보다 조금이라도 낫다는 것을 당신이 어찌 알겠소? 인간이란 잠깐 살다 가는 목숨이오. 스스로 모질고 모진 생각을 품는 사람에게는 살아서는 모든 인간이 뒷날 고통을 받으라고 저주를 퍼붓고, 죽은 뒤에는 다들 비웃소. 그러나 스스로 나무랄 데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생각을 품는 사람은, 그 명성을 손님들이 온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실어 나르고 많은 이가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 일컫소."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라에르테스의 아드님 오디세우스의 존귀하신 부인이시여, 저는 노가 긴 배를 타고 눈 덮인 크레타의 산들을 떠나온 그날부터 외투와 반들거리는 깔개가 싫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우던 대로 그냥 이렇게 눕겠습니다. 저는 숱한 밤을 초라한 잠자리에 누워 지새우며, 아름다운 옥좌의 고귀한 새벽 여신을 기다렸습니다. 발 씻을 물도 제 마음에 반갑지 않습니다. 이 댁에서 일하는 여인들 가운데 누구도 제 발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다만 저만큼 많은 일을 속으로 견뎌 낸, 믿음직한 늙은 할멈 하나가 있다면 그 할멈이 제 발을 만지는 것은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349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말을 받았다. "정다운 손님, 먼 나라에서 내 집에 온 정다운 손님들 가운데 당신만큼 생각 깊은 사람은 아직 없었소. 당신은 무엇이든 참으로 조리 있고 생각 깊게 말하는구려. 내게는 속에 빈틈없는 생각을 품은 노파 한 사람이 있는데, 저 불운한 사람의 어머니가 그를 처음 낳았을 때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잘 먹이고 길러 준 사람이오. 이제 기운이 없기는 해도 그 노파가 당신 발을 씻겨 줄 것이오. 자, 사려 깊은 에우리클레이아, 일어나서 자네 주인과 동갑인 이 사람의 발을 씻겨 주게. 오디세우스도 아마 지금쯤 발이며 손이 이 사람과 같겠지. 인간은 불행 속에서 금세 늙어 버리니까."

361 페넬로페가 이렇게 말하자 노파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서럽게 말했다.

363 "아아, 얘야,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구나!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녔는데도 제우스께서는 인간들 가운데 너를 가장 미워하셨구나. 벼락을 즐기는 제우스께 너만큼 기름진 넓적다리뼈와 골라 뽑은 큰 제물을 바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평안한 노년에 이르러 빛나는 아들을 길러 내게 해 달라고 빌며 그토록 많이 바쳤건만, 이제 제우스께서는 너 하나에게서만 귀향의 날을 송두리째 앗아 가 버리셨다. 그이가 먼 나라 어느 이름난 집에 이르렀을 때, 아마 그곳 여인들도 그이를 이렇게 비웃었을 것이오. 손님, 여기 이 개 같은 것들이 모두 손님을 비웃듯이 말이오. 손님은 저것들의 모욕과 숱한 수치스러운 짓을 피하려고 저것들에게는 발을 맡기지 않는데, 이카리오스의 따님, 사려 깊은 페넬로페 님께서 내게 시키시니 나는 기꺼이 하겠소. 그러니 페넬로페 님을 위해서도, 손님을 위해서도 손님의 발을 씻겨 드리리다. 내 속에서 마음이 시름으로 들끓으니 말이오. 자, 이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시오. 고생에 지친 나그네가 이곳에 숱하게 왔지만, 손님처럼 몸매며 목소리며 발까지 오디세우스를 그토록 닮은 이는 아직 본 적이 없소."

382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할멈, 우리 두 사람을 제 눈으로 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하오. 할멈이 눈여겨보고 말한 대로, 우리 둘이 서로 꼭 닮았다고 말이오."

386 그가 이렇게 말하자 노파는 늘 발을 씻기는 데 쓰던 번쩍이는 대야를 가져와 찬물을 듬뿍 붓고 그 위에 더운물을 떠 부었다. 오디세우스는 화덕 곁에 앉아 있다가, 노파가 발을 잡으면 흉터를 알아채 모든 일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대뜸 마음속에 들어 얼른 어둠 쪽으로 몸을 돌렸다. 노파는 가까이 다가가 제 주인의 발을 씻기다가 곧 그 흉터를 알아보았다. 일찍이 그가 아우톨리코스와 그 아들들을 찾아 파르나소스산에 갔을 때 멧돼지가 흰 엄니로 찢어 놓은 흉터였다. 어머니의 훌륭한 아버지 아우톨리코스는 도둑질과 맹세 솜씨로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 재주는 헤르메스가 몸소 내려 주었다. 아우톨리코스가 그 신이 반기는 새끼 양과 새끼 염소의 넓적다리뼈를 태워 바쳤으니, 헤르메스는 기꺼이 그와 함께했다. 아우톨리코스가 이타카의 기름진 고장에 왔을 때 딸이 막 아들을 낳은 참이었다. 그가 저녁 식사를 마치자 에우리클레이아가 그 아기를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403 "아우톨리코스 님, 따님이 낳은 이 사랑스러운 아기에게 붙여 줄 이름을 이제 몸소 찾아 주십시오. 빌고 또 빌어서 얻은 아이입니다." 아우톨리코스가 대답했다. "사위와 딸아, 내가 일러 주는 이름을 붙이게. 나는 기름진 대지 곳곳에서 숱한 남자와 여자에게 노여움을 품은 채 여기 왔으니, 이 아이 이름을 오디세우스2라 하여 그 노여움을 이름에 담게.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파르나소스산에 있는 외가의 큰 집에 오면, 거기 내 재산이 좀 있으니 그 가운데서 나눠 주고 기쁘게 돌려보내겠네."

413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빛나는 선물을 받으러 그곳에 갔다. 아우톨리코스와 아우톨리코스의 아들들은 손을 맞잡고 다정한 말로 그를 반겼다. 외할머니 암피테아는 오디세우스를 끌어안고 머리와 아름다운 두 눈에 입을 맞추었다. 아우톨리코스가 영광스러운 아들들에게 저녁을 차리라고 이르자, 아들들은 재촉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곧 다섯 살 난 수소를 끌고 와서 가죽을 벗기고 손질하여 통째로 각을 뜬 다음, 솜씨 좋게 잘게 썰어 꼬챙이에 꿰고 정성껏 구워서 몫을 나누었다. 그렇게 그들은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잔치를 벌였고, 고루 나눈 잔치에 아무도 마음에 모자란 것이 없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그제야 그들은 자리에 누워 잠의 선물을 받았다.

428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이 나타나자, 개들과 아우톨리코스의 아들들이 사냥을 나섰고 고귀한 오디세우스도 그들과 함께 갔다. 그들은 숲으로 뒤덮인 파르나소스의 가파른 산을 올라 곧 바람 부는 골짜기에 이르렀다. 해가 고요히 깊게 흐르는 오케아노스에서 막 솟아올라 들판을 비추기 시작할 무렵, 몰이꾼들은 산골짜기에 다다랐다. 개들이 발자국을 냄새 맡으며 앞서가고 그 뒤로 아우톨리코스의 아들들이 따랐는데,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그들과 함께 개들 바로 뒤에서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창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그곳 빽빽한 덤불 속에 커다란 멧돼지가 누워 있었다. 그 덤불은 축축하게 부는 바람의 기운도 뚫고 들지 못하고 빛나는 해의 햇살도 내리꽂지 못하며 빗물도 꿰뚫고 스미지 못할 만큼 빽빽했고, 안에는 떨어진 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람과 개들이 몰아오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멧돼지의 귀에 닿았다. 멧돼지는 덤불에서 뛰쳐나와 등의 갈기를 곤두세우고 눈에서 불을 뿜으며 그들 바로 앞에 버티고 섰다. 오디세우스가 맨 먼저 억센 손에 긴 창을 치켜들고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멧돼지가 먼저 비스듬히 덤벼들어 그의 무릎 위를 들이받고 엄니로 살을 깊숙이 찢었으니, 뼈에는 닿지 않았다. 오디세우스는 멧돼지의 오른쪽 어깨를 겨냥해 찔렀고, 번쩍이는 창끝이 몸을 꿰뚫고 나갔다. 멧돼지는 비명을 지르며 먼지 속에 쓰러졌고 목숨이 날아가 버렸다. 아우톨리코스의 사랑하는 아들들은 멧돼지를 손질하고, 나무랄 데 없는 신에 버금가는 오디세우스의 상처를 솜씨 좋게 동여매고 주문을 외어 검은 피를 멎게 한 다음, 곧장 사랑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우톨리코스와 아우톨리코스의 아들들은 그를 잘 치료하고 빛나는 선물을 주어 서둘러 기쁘게 사랑하는 고향 이타카로 돌려보냈다. 그가 돌아오자 아버지와 존귀한 어머니는 기뻐하며 그 흉터를 어쩌다 얻었는지 하나하나 물었다. 오디세우스는 아우톨리코스의 아들들과 파르나소스산에 갔다가 사냥하던 중에 멧돼지가 흰 엄니로 들이받았다고 두 사람에게 낱낱이 이야기해 주었다.

467 노파는 손바닥으로 그 흉터를 쓰다듬다가 알아보았다. 노파가 발을 놓아 버리자 정강이가 대야 속으로 떨어졌다. 청동이 쩌렁 울리며 대야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물이 땅바닥에 쏟아졌다. 기쁨과 고통이 한꺼번에 노파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고 낭랑하던 목소리가 막혔다. 노파는 오디세우스의 턱을 만지며 말했다.

474 "정녕 네가 오디세우스로구나, 얘야! 내 주인을 이렇게 온몸 더듬어 보기 전까지는 너를 알아보지 못했구나."

476 그렇게 말하더니 노파는 사랑하는 남편이 안에 와 있다고 알리고 싶어 페넬로페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테나가 그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놓아서, 페넬로페는 마주 바라보지도 알아채지도 못했다. 오디세우스는 손을 더듬어 오른손으로 노파의 목을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 노파를 바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482 "유모, 어째서 나를 죽이려 하나? 자네가 바로 자네 젖으로 나를 먹여 길러 주지 않았나. 나는 숱한 고통을 겪은 끝에 스무 해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왔네. 이제 자네가 알아차렸고 신이 자네 마음에 그 생각을 넣어 주었으니 조용히 하게. 홀 안의 다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네. 내 분명히 말해 두는데, 이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걸세. 신이 내 손으로 당당한 구혼자들을 쓰러뜨리게 해 준다면, 내 홀의 다른 하녀들을 죽일 때 자네가 내 유모라 해도 봐주지 않겠네."

491 사려 깊은 에우리클레이아가 말을 받았다. "얘야, 무슨 말이 네 이빨 울타리를 빠져나왔느냐? 내 기운이 얼마나 굳고 꺾이지 않는지 너도 알지 않느냐. 단단한 돌이나 쇠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으마. 또 한 가지 일러 줄 테니 가슴에 새겨 두어라. 신이 네 손으로 당당한 구혼자들을 쓰러뜨리게 해 준다면, 그때 홀 안의 여인들 가운데 누가 너를 업신여기고 누가 죄가 없는지 하나하나 일러 주마."

499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유모, 어째서 자네가 그것들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가? 그럴 필요 없네. 나 스스로 잘 살펴서 하나하나 알아낼 걸세. 자네는 입을 다물고 신들께 맡겨 두게."

503 그가 이렇게 말하자 노파는 발 씻을 물을 가지러 홀을 가로질러 나갔다. 먼저 떠 온 물은 모두 쏟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노파가 발을 씻기고 올리브기름을 듬뿍 발라 주자, 오디세우스는 몸을 녹이려고 다시 의자를 불 가까이 끌어당기고 흉터를 누더기로 덮어 가렸다.

508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손님, 아직 조금 더 내가 직접 물어볼 것이 있소. 아무리 시름에 잠긴 사람이라도 달콤한 잠이 찾아오기만 한다면 곧 달콤한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될 것이오. 그러나 어떤 신이 내게는 헤아릴 수 없는 슬픔까지 내려 주었소. 낮에는 집 안에서 내 일과 시녀들의 일을 살피며 슬피 울고 탄식하는 것을 낙으로 삼지만, 밤이 오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면 나는 침상에 누워 있고, 날카로운 근심들이 촘촘히 내 들끓는 가슴을 에워싸고 울고 있는 나를 들쑤시오. 그러면 내 마음도 두 갈래로 나뉘어 이리저리 흔들리오. 판다레오스의 딸 아에돈, 푸른 숲의 밤꾀꼬리가 봄이 막 시작될 무렵 우거진 나뭇잎 사이에 앉아 아름답게 노래할 때가 있소. 그 새는 가락을 자주 바꾸어 가며 울림 많은 목소리를 쏟아 놓는데, 일찍이 어리석게도 청동으로 죽인 제 사랑하는 아들, 제토스 왕의 아들 이틸로스를 애도하는 노래요. 꼭 그처럼 내 마음도 두 갈래로 나뉘어 이리저리 흔들리오. 남편의 잠자리와 백성의 소문을 어려워하며 아들 곁에 머물러 내 재산과 하녀들과 지붕 높은 큰 집을 모두 굳게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이제 아카이아인들 가운데 홀에서 내게 구혼하며 셀 수 없이 많은 구혼 선물을 내는 가장 뛰어난 이를 따라갈 것인가. 내 아들은 아직 어리고 철이 없을 때는 내가 남편의 집을 떠나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제 그 애가 다 커서 젊음의 한창때에 이르니, 아카이아인들이 제 재산을 먹어 치우는 것에 속을 끓이며 오히려 내가 이 집에서 나가기를 바라오. 자, 내 꿈 이야기를 듣고 풀이해 주시오. 우리 집에 거위 스무 마리가 물에서 나와 밀을 쪼아 먹는데,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오. 그런데 산에서 부리가 굽은 큰 독수리가 날아와 거위들의 목을 모조리 꺾어 죽였소. 거위들은 홀에 한 무더기로 널브러지고 독수리는 거룩한 창공 높이 날아올랐소. 나는 꿈속에서도 울며 소리쳐 통곡했고, 독수리가 내 거위들을 죽였다고 내가 서럽게 울부짖으니 머리채 고운 아카이아 여인들이 내 둘레에 모여들었소. 그러자 독수리가 돌아와 튀어나온 들보 위에 내려앉더니 사람의 목소리로 나를 달래며 말했소."

546 "'용기를 내시오, 멀리까지 이름난 이카리오스의 딸이여. 이것은 꿈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좋은 생시요. 거위들은 구혼자들이고, 나는 아까는 독수리였지만 이제는 당신 남편이 되어 돌아왔소. 내가 구혼자들 모두에게 비참한 최후를 안겨 주겠소.'"

551 "그가 이렇게 말하자 꿀처럼 달콤한 잠이 나를 놓아주었소. 둘러보니 거위들이 여느 때처럼 홀 안의 구유 곁에서 밀을 쪼아 먹고 있었소."

554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부인, 그 꿈을 달리 비틀어 풀이할 길은 없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몸소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부인께 일러 주지 않았습니까. 구혼자들 모두에게 파멸이 보입니다. 누구 하나 죽음과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559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말을 받았다. "손님, 꿈이란 종잡을 수 없고 뜻을 가리기 어려워서 사람들에게 다 이루어지지는 않소. 덧없는 꿈들이 드나드는 문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뿔로 만들었고 하나는 상아로 만들었소. 그 가운데 톱으로 켠 상아 문으로 나오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헛말을 싣고 와서 사람을 속이고, 반들반들하게 다듬은 뿔 문으로 나오는 꿈은 인간 누구든 그것을 보면 참된 일을 이루어 주오.3 그러나 나의 그 무서운 꿈은 그 문으로 나온 것 같지 않소. 그랬다면 나와 내 아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소. 또 한 가지 일러 줄 테니 가슴에 새겨 두시오. 이제 곧 이름조차 불길한 새벽이 밝아 와 나를 오디세우스의 집에서 떼어 놓을 것이오. 나는 이제 시합을 내걸겠소. 그이가 홀에 배의 용골 받침목처럼 줄지어 세워 두던 도끼 열두 자루 말이오. 그이는 멀리 떨어져 서서 그 도끼들을 화살로 꿰뚫곤 했소. 이제 그 시합을 구혼자들에게 내걸겠소. 그 활에 가장 손쉽게 시위를 얹어 손바닥으로 당기고 열두 자루 도끼를 모두 꿰뚫는 사람을 나는 따라가겠소.4 처녀로 시집와 살아온 이 집, 참으로 아름답고 살림이 가득한 이 집을 떠나서 말이오. 이 집을 나는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것 같소."

582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라에르테스의 아드님 오디세우스의 존귀하신 부인이시여, 이제 그 시합을 집에서 더 미루지 마십시오. 저들이 이 잘 다듬은 활을 만지작거리며 시위를 얹고 쇠를 꿰뚫기 전에,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먼저 이곳에 돌아올 것입니다."

588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말을 받았다. "손님, 당신이 홀에서 내 곁에 앉아 나를 즐겁게 해 주려 한다면 잠이 내 눈꺼풀 위에 내려앉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인간이 늘 잠을 자지 않고 지낼 수는 없소. 불사의 신들은 곡식을 내는 땅 위에서 죽게 마련인 인간 하나하나에게 저마다 몫을 정해 두었소. 이제 나는 위층 방으로 올라가, 오디세우스가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은 몹쓸 일리오스를 보러 떠난 뒤로 늘 내 눈물에 젖어 탄식의 자리가 된 침상에 눕겠소. 나는 거기 눕겠소. 당신은 이 집 안에서 누우시오. 바닥에 자리를 깔든지, 하녀들이 침상을 놓아 주게 하든지 하시오."

600 이렇게 말하고 페넬로페는 반들거리는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 혼자가 아니라 다른 시녀들도 함께 갔다. 시녀들과 함께 위층 방에 오른 페넬로페는 사랑하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그리며 울었다. 마침내 빛나는 눈의 아테나가 그 눈꺼풀 위에 달콤한 잠을 내려 주었다.

주

  1. 1. 「몹쓸 일리오스」는 그리스어 카코일리오스(Kakoilios)를 옮긴 말이다. '나쁜, 몹쓸'을 뜻하는 카코스(kakos)를 트로이의 다른 이름 일리오스 앞에 붙여 한 낱말로 만든 이름이다. 남편을 앗아 간 곳을 제 이름으로 부르지 못하는 페넬로페의 말로, 19.260·19.597·23.19에 나온다.

  2. 2. 아우톨리코스는 '노여워하다, 미워하다'를 뜻하는 동사 오디소마이(odyssomai)에 빗대어 오디세우스(Odysseus)라는 이름을 지었다. '노여움의 사람'으로 들리는 이름이다. 같은 동사가 이 이름의 주인을 따라다닌다. 1.62에서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어찌하여 그에게 그토록 노여워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5.340에서 이노가, 5.423에서 오디세우스 자신이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말할 때, 19.275~276에서 "제우스와 헬리오스가 그에게 노여워했습니다"라고 할 때 모두 이 동사를 쓴다.

  3. 3. 그리스어로 상아(elephas)는 '속이다'(elephairomai)와, 뿔(keras)은 '이루다'(krainō)와 소리가 비슷하다. 상아 문의 꿈은 속이고 뿔 문의 꿈은 이룬다는 말에 이 말장난이 겹쳐 있다.

  4. 4. 도끼 열두 자루를 한 줄로 세워 두고 화살 한 대로 모두 꿰뚫는 시합이다. 도끼 머리의 자루 구멍(또는 날 끝의 고리)이 일직선으로 늘어서게 세우고, 멀리 떨어져 서서 화살이 그 구멍들을 꿰고 지나가게 한다고 풀이해 왔다. 정확한 모양은 옛날부터 해석이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