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제III권 제IX장) 전쟁 제4년과 제5년 · 미틸레네의 반란
이듬해 여름, 곡식이 막 익어 갈 무렵 펠로폰네소스인과 그 동맹들은 스파르타 왕 제욱시다모스의 아들 아르키다모스의 지휘 아래 아티카를 침입해 진을 치고 땅을 유린했다. 아테네 기병대는 여느 때처럼 할 수 있는 곳마다 그들을 공격해, 경보병의 주력이 진영에서 나와 도시 가까운 곳을 짓밟지 못하게 막았다. 침입군은 가져온 식량이 버티는 동안 머물다가 물러갔고 저마다 제 도시로 흩어졌다.
펠로폰네소스인의 침입이 끝난 직후 메팀나를 뺀 레스보스 전역이 아테네에 반란을 일으켰다. 레스보스인은 전쟁 전에도 반란을 원했으나 스파르타인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막상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을 때는 뜻했던 것보다 이른 시기에 떠밀려 나서야 했다. 그들은 항구의 방파제와 짓고 있던 함선과 성벽이 완성되기를, 또 폰토스에서 들여오던 궁수와 곡식과 그 밖의 물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그들과 사이가 나빴던 테네도스인과 메팀나인, 그리고 미틸레네 자체의 파당 사람 몇, 곧 아테네의 프록세노스1였던 자들이 아테네인에게 알렸다. 미틸레네인이 섬을 힘으로 눌러 제 주권 아래 하나로 묶는 중이며, 그토록 부지런히 벌이고 있는 준비는 모두 반란을 노려 같은 혈족인 보이오티아인과 스파르타인과 짜고 하는 일이니, 당장 막지 않으면 아테네가 레스보스를 잃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테네인은 역병에 시달리고 얼마 전 터져 지금 한창인 전쟁에 지쳐 있었으므로, 함대를 갖추고 재원이 아직 온전한 레스보스를 적의 명단에 더하는 일을 중대한 문제로 여겼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 고발을 믿으려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나친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낸 사절이 문제가 된 통합과 준비를 그만두도록 미틸레네인을 설득하지 못하자, 아테네인은 불안해져 먼저 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하여 펠로폰네소스를 돌 준비가 되어 있던 함선 40척을 데이니아스의 아들 클레이피데스와 다른 두 사람의 지휘 아래 갑작스레 보냈다. 도시 밖에서 말레아의 아폴론을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미틸레네 사람 전체가 그것을 지킨다는 말이 들어왔으므로, 서둘러 가면 그들을 불시에 덮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이 계획이 들어맞으면 그것으로 좋고, 그러지 않으면 미틸레네인에게 함선을 내놓고 성벽을 허물라고 명하며 따르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하라는 것이 지시였다. 함선들은 그렇게 떠났고, 동맹 조항에 따라 아테네 함대에 와 있던 미틸레네 몫의 함선 10척은 아테네인이 억류하고 그 승무원들을 가두었다. 그러나 미틸레네인은 그 원정을 미리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아테네에서 에우보이아로 건너가 육로로 게라이스토스까지 간 뒤, 마침 바다로 나서려던 상선을 붙잡아 거기서 배를 타고 아테네를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미틸레네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틸레네인은 말레아의 신전으로 나가는 일을 그만두었고, 그뿐 아니라 아직 절반밖에 짓지 못한 성벽과 항구의 자리에 방벽을 두르고 둘레에 파수를 세웠다.
오래지 않아 아테네인이 배를 몰고 들어와 사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자, 장군들은 지시받은 명령을 전했고 미틸레네인이 따르기를 거부하자 싸움을 시작했다. 미틸레네인은 예고도 없이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전쟁에 떠밀린 처지였으나, 처음에는 함대를 끌고 나와 항구에서 조금 앞쪽에서 싸울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아테네 함선들에 밀려 물러나자 곧바로 지휘관들에게 교섭을 청했는데, 견딜 만한 조건이면 어떤 것이든 받아들여 당장은 그 함선들을 물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테네 지휘관들은 그 청을 받아들였다. 레스보스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힘이 모자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휴전이 맺어지자 미틸레네인은 이미 제 행실을 후회하고 있던 밀고자 한 사람과 그와 함께 갈 다른 이들을 아테네로 보내, 자기들의 의도에 잘못이 없음을 아테네인에게 설득하고 함대를 되돌리게 하려 했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에서 좋은 답이 오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사절을 태운 함선 한 척을 스파르타로도 보냈는데, 도시 북쪽 말레아에 정박해 있던 아테네 함대의 눈에 띄지 않게 한 일이었다.
이 사절들이 큰 바다를 건너는 어려운 길을 지나 스파르타에 닿아 구원을 보내 달라고 교섭하는 사이, 아테네로 갔던 사절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자 미틸레네인과 레스보스의 나머지가 곧바로 싸움을 시작했다. 다만 메팀나인은 임브로스인과 렘노스인, 그리고 다른 동맹 몇과 함께 아테네인을 도우러 왔다. 미틸레네인은 전군을 끌고 아테네 진영으로 출격했다. 싸움이 벌어져 그들이 얼마간 유리함을 얻었으나 그래도 물러났는데, 싸움터에서 밤을 지낼 만큼의 자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그들은 조용히 있었다. 두 번째로 나서기 전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지원군이 올 기회를 기다리고 싶었던 것인데, 라코니아인 멜레아스와 테베인 헤르마이온다스가 온 것이 힘이 되었다. 두 사람은 봉기 전에 파견되었으나 아테네 원정대보다 먼저 레스보스에 닿지 못했다가 이 싸움 뒤에 함선 한 척으로 몰래 들어온 것이었고, 함선 한 척과 사절을 자기들과 함께 돌려보내라고 권했으며 미틸레네인은 그대로 했다.
그동안 아테네인은 미틸레네인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크게 힘을 얻어 동맹들을 불러 도움을 청했고, 레스보스인이 이렇다 할 기세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동맹들은 그만큼 더 빨리 왔다. 아테네인은 함선들을 도시 남쪽의 새 정박지로 돌려 세우고 도시 양쪽에 각각 하나씩 진영 둘을 쌓아 요새로 만든 뒤 두 항구를 모두 봉쇄했다. 이로써 바다는 미틸레네인에게 닫혔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자기들에게 합류한 나머지 레스보스인과 함께 시골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아테네인이 쥔 것은 제 진영 둘레의 한정된 구역뿐이어서 말레아는 주로 함선을 세우는 자리와 장터로 쓰고 있었다.
미틸레네에서 전쟁이 이렇게 진행되는 동안, 아테네인은 이해 여름 거의 같은 무렵에 함선 30척을 포르미온의 아들 아소피오스의 지휘로 펠로폰네소스에 보내기도 했다. 아카르나니아인이 보내는 지휘관은 포르미온의 아들이거나 친족이어야 한다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함선들은 해안을 따라가며 라코니아의 연안을 유린했다. 그 뒤 아소피오스는 함대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12척을 이끌고 나우팍토스로 갔다가, 아카르나니아의 전 주민을 일으켜 오이니아다이를 치는 원정에 나섰으니 함대는 아켈로오스강을 따라 올라가고 육군은 땅을 짓밟았다. 그러나 주민들이 굴복할 낌새를 보이지 않자 그는 육군을 해산하고 자신은 레우카스로 배를 몰아 네리코스에 상륙했는데, 물러나는 길에 그 지역 사람들과 그들을 도운 해안 수비대에 가로막혀 자신과 병력 대부분이 죽었다. 그 뒤 아테네인은 휴전을 맺고 레우카스인에게서 전사자들을 거두어 배를 타고 떠났다.
그동안 첫 배로 보내진 미틸레네 사절들은 나머지 동맹들이 그 말을 듣고 그들의 일을 결정할 수 있도록 올림피아로 오라는 말을 스파르타인에게서 들었고, 그래서 그곳으로 떠났다. 로도스의 도리에우스가 두 번째 우승을 거둔 올림피아 제전의 해였다. 사절들은 축제가 끝난 뒤 연설하도록 안내를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파르타인과 동맹 여러분, 그리스인 사이에 세워진 통례를 우리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 중에 반란을 일으켜 전에 속했던 연합을 버린 자들은, 받아들이는 쪽에 쓸모가 있는 한 호의로 대접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전의 벗들을 배신한 자로 여겨져 낮게 평가됩니다. 반란을 일으킨 쪽과 그들이 떨어져 나온 세력이 정책과 마음에서 하나이고 재원과 힘에서 서로 맞먹으며 반란에 합당한 근거가 없는 경우라면, 이런 판단이 부당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와 아테네인 사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때에 그들에게서 예우를 받다가 위험이 닥쳤을 때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이유로 우리를 낮추어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정의와 정직을 우리 연설의 첫 주제로 삼겠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청하는 것이 동맹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서로가 상대의 정직함을 믿고 대체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든든한 우정이란 결코 있을 수 없고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 이름값을 하는 결합도 있을 수 없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다른 데서 행동의 다름도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와 아테네인 사이의 동맹은 여러분이 페르시아 전쟁2에서 물러나고 그들이 남아 그 일을 마무리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인을 굴복시키기 위해 아테네인의 동맹이 된 것이 아니라, 메디아인에게서 그리스인을 해방하기 위해 그리스인의 동맹이 된 것입니다. 아테네인이 우리를 공정하게 이끄는 동안 우리는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메디아인에 대한 적의를 늦추고 동맹들을 예속시키는 일을 꾀하려 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때부터 우리의 근심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표를 가진 연합 성원의 수가 많아 하나로 뭉쳐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으므로, 우리와 키오스인을 뺀 동맹 전부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 둘만은 독립된 처지로, 이름으로는 자유로운 자로서 계속 우리 몫의 병력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미 눈앞에 나온 선례들로 판단할 때 우리는 더는 아테네를 지도자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함께 연합에 있던 자들을 굴복시킨 아테네가 힘이 생기기만 하면 남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지 않으리라고는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여전히 독립을 지키고 있었다면 그들이 어떤 변화도 꾀하지 않을 것이라고 좀 더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수가 그들의 예속민이 된 반면에 우리는 대등한 자로 대접받고 있었으니, 다수의 복종과 견주어 홀로 남은 이 독립의 사례를 그들이 못마땅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그들은 날마다 더 강해지고 우리는 더 궁핍해져 갔으므로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동맹의 유일하게 확실한 토대는 양쪽이 서로를 똑같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침범하고 싶어 하는 쪽은 형세가 자기에게 유리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억제됩니다. 또한 우리가 독립한 채 남겨진 것은, 그들이 힘의 길보다 겉만 번듯한 말과 정략의 길로 가는 것이 제국에 이르는 길을 더 뚜렷하게 보여 준다고 여겼기 때문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 자신처럼 표를 가진 세력이라면 공격받는 쪽에 잘못이 없는데도 제 뜻을 어겨 가며 그들의 원정에 따라나설 리 없다는 증거로 쓸모가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같은 방식은 그들이 더 강한 나라들을 앞세워 더 약한 나라들을 먼저 치게 하고, 그렇게 해서 강한 쪽은 마지막까지 남겨 두어 제 자연스러운 동맹들을 빼앗기고 저항할 힘이 줄어든 상태가 되게 하는 것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아직 제 재원을 제 손안에 두고 있고 모여 결집할 중심이 있던 때에 그들이 우리부터 시작했다면, 굴복시키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 해군이 그들에게 얼마간 근심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나 다른 어떤 세력과 합쳐 아테네에 위험이 될 가능성이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민중과 그때그때의 지도자들에게 바친 비위 맞추기도 우리가 독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터지지 않았더라도, 그들이 나머지를 어떻게 대했는지 우리가 보아 온 선례들로 보건대 그것을 그리 오래 지켜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가진 것 같은 우정이나 자유에 어떻게 믿음을 둘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마음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두려움이 전쟁 때는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비위를 맞추게 하고 평화 때는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비위를 맞추게 했습니다. 신뢰의 통상적 토대인 서로에 대한 마음은 그 자리를 공포에 내주었고, 우리를 그 동맹에 붙들어 둔 것은 우정보다 두려움의 몫이 컸습니다. 그리하여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먼저 마음이 동한 쪽이 상대에게 신의를 깨뜨릴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일격을 그들이 미루고 있다는 이유로, 그것이 내려질지 아닐지를 확실히 알게 될 때까지 우리 쪽에서 미루지 않고 먼저 떨어져 나왔다고 우리를 나무라는 것은 이 일을 그릇되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음모에 맞서고 그들처럼 미룰 수 있는 힘을 그들과 대등하게 갖추었다면 우리는 그들과 동등한 자일 것이고 그들의 예속민이 될 까닭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격의 자유가 늘 그들의 것이라면 방어의 자유는 분명 우리의 것이어야 합니다.
스파르타인과 동맹 여러분, 우리 반란의 근거와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 행동이 온당하다는 것을 듣는 이들에게 납득시키기에 충분히 분명하고, 우리 자신을 불안하게 해 어떤 안전의 방도로 돌아서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기를 바랐고 아직 평화가 이어지던 때에 그 일로 여러분에게 사람을 보냈으나, 여러분이 우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뜻이 꺾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보이오티아인이 우리를 부르자 우리는 곧 그 부름에 응해 두 겹의 이반을 결정했습니다. 그리스인에게서 떨어지고 아테네인에게서 떨어진다는 것인데, 아테네인을 도와 그리스인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의 해방에 함께하려는 것이며, 아테네인이 끝에 가서 우리를 없애 버리게 두지 않고 때를 놓치기 전에 그들에게 맞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반란은 때 이르게,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일어났습니다. 그런 만큼 여러분이 우리를 동맹으로 받아들여 신속한 구원을 보내는 일이 더욱 마땅하며, 그리하여 여러분이 벗들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이면서 동시에 적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 더욱 마땅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전에 가져 본 적 없는 기회가 있습니다. 병과 지출이 아테네인을 소진시켰습니다. 그들의 함선은 여러분의 해안을 돌고 있거나 우리를 봉쇄하는 데 매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번 여름에 바다와 육지로 두 번째 침입을 한다면 그들에게 여유로 남을 함선이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배들에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거나, 우리 양쪽의 해안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또 이것이 여러분의 것이 아닌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레스보스가 멀리 있어 보일지 모르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충분히 가까이 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전쟁이 결판나는 곳은 아티카가 아니라 아티카를 떠받치는 나라들입니다. 아테네의 수입은 동맹들에게서 나오며 그들이 우리를 굴복시키면 그 수입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다른 어느 나라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재원이 그들의 것에 더해질 것이고, 우리는 앞서 노예가 된 자들보다 더 나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를 선선히 지지한다면 여러분 편에 큰 해군을 가진 나라를 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크게 모자란 것입니다. 또 아테네인에게서 그 동맹들을 떼어 내어 그들을 무너뜨리는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며, 그 동맹들은 넘어올 마음을 크게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봉기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여러분에게 던져진 비난에서 스스로를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스스로를 해방자로 드러내 보이기만 하면 이 전쟁에서 우세를 잡으리라고 여러분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인이 여러분에게 걸어 둔 희망을 존중하고, 우리가 진정한 탄원자로서 그 신전 안에 서 있는 올림피아의 제우스를 존중하십시오. 미틸레네인의 동맹이자 수호자가 되어 주시고, 목숨을 걸고 나선 우리를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성공하면 그 일에서 모두에게 두루 좋은 것이 돌아오고, 여러분이 도움을 거절하는 바람에 우리가 무너지면 그만큼 더 두루 해가 미치는 일입니다. 그리스인이 여러분을 그렇다고 여기고 우리의 두려움이 그렇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미틸레네인의 말은 이러했다. 스파르타인과 연합 성원들은 끝까지 다 듣고 나서 그들이 청한 것을 받아들여 레스보스인을 동맹으로 삼았고, 아티카 침입에 찬성하는 쪽으로 결정한 뒤 그 자리에 있던 동맹들에게 병력의 3분의 2를 이끌고 되도록 빨리 이스트모스로 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자기들이 먼저 그곳에 이르러, 바다와 육지에서 한꺼번에 공격하고자 함선을 코린트에서 아테네 쪽 바다로 옮겨 넘길 끄는 기계를 마련해 두었다. 그러나 그들이 보인 열의를 나머지 연합 성원들은 따라 하지 않았고, 곡식을 거두는 일에 매여 있었고 원정에 나서는 일에도 넌더리가 나 있었으므로 더디게 모여들었다.
그동안 아테네인은 적이 그런 준비를 하는 것이 자기들이 약하다고 확신한 데서 나온 일임을 알고 있었고, 그 생각이 틀렸음을, 또 레스보스에 있는 함대를 움직이지 않고도 펠로폰네소스에서 오는 위협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음을 적에게 보이고자 했다. 그래서 기사 계층과 펜타코시오메딤노이3를 뺀 아테네 시민과 거류 외국인을 태워 함선 100척에 승무원을 채웠고, 이스트모스로 나아가 힘을 과시하며 마음에 드는 곳마다 펠로폰네소스에 상륙했다. 이토록 두드러진 실망을 맛본 스파르타인은 레스보스인이 참말을 하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연합 성원들이 나타나지 않는 데다 펠로폰네소스를 돌던 함선 30척이 스파르타 가까운 땅을 유린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겹쳐 곤란해져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뒤에 그들은 레스보스로 보낼 함대를 마련해, 동맹의 여러 도시에서 모두 40척을 내라고 명하고 해군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알키다스를 그 원정의 지휘자로 세웠다. 그동안 함선 100척에 타고 있던 아테네인은 스파르타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저들도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함대가 바다에 나가 있던 때에 아테네가 한 시점에 보유한 것으로는 거의 가장 많은 수의 일급 함선을 현역에 두고 있었다면, 전쟁이 시작되던 때에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두고 있었다. 그때에는 100척이 아티카와 에우보이아와 살라미스를 지켰고 또 100척이 펠로폰네소스를 돌고 있었으며, 그 밖에 포티다이아와 다른 곳들에 쓰인 함선이 있었으니, 한 해 여름에 실전에 투입된 함선이 모두 합쳐 250척이었다. 아테네의 수입을 가장 크게 바닥낸 것이 포티다이아와 더불어 바로 이것이었다. 포티다이아는 중장보병 부대가 봉쇄하고 있었는데(한 사람이 하루에 2드라크메4를 받았으니 자기 몫으로 1드라크메, 종의 몫으로 1드라크메였다) 처음에 3,000명이었고 포위가 끝날 때까지 이 수가 유지되었으며, 그 밖에 포르미온과 함께 있던 1,600명이 포위가 끝나기 전에 떠났고, 함선들에도 모두 같은 비율로 값을 치렀다. 이렇게 해서 아테네의 돈은 처음부터 소진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아테네가 여태 승무원을 채운 함선 가운데 가장 많은 수였다.
스파르타인이 이스트모스에 있던 것과 거의 같은 무렵, 미틸레네인은 용병을 데리고 육로로 메팀나를 치러 나아갔는데, 내응으로 그 도시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도시를 공격했으나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하자 그들은 안티사와 피라와 에레소스로 물러났고, 이 도시들의 방비를 더 낫게 할 조치를 취하고 성벽을 튼튼히 한 뒤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떠난 뒤 메팀나인이 안티사로 나아갔으나 안티사인과 그들의 용병이 출격해 와 패했고, 많은 수를 잃은 뒤 급히 물러났다. 이 소식이 아테네에 이르고 미틸레네인이 시골을 장악했으며 자기들의 병사들이 그들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테네인이 알게 되자, 그들은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 에피쿠로스의 아들 파케스를 지휘를 맡도록 보내고 아테네 중장보병 1,000명을 함께 보냈다. 이들은 스스로 노를 저어 건너갔고, 미틸레네에 이르러 도시를 한 바퀴 둘러싸는 성벽 하나를 쌓고 가장 견고한 몇 곳에는 요새를 세웠다. 이로써 미틸레네는 육지와 바다 양쪽에서 빈틈없이 봉쇄되었다. 그리고 이제 겨울이 가까워졌다.
아테네인은 포위에 쓸 돈이 필요했으므로, 처음으로 자기 시민들에게서 200탈란톤5의 분담금을 거두었으면서도 이제 동맹들에게서 돈을 걷으려고 리시클레스와 다른 네 사람을 지휘로 하여 함선 12척을 내보냈다. 여러 곳을 돌며 돈을 물린 뒤, 리시클레스는 카리아의 미우스에서 내륙으로 올라가 마이안드로스 평야를 지나 산디오스 언덕까지 갔다가, 카리아인과 아나이아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자기 병사 다수와 함께 죽었다.
같은 겨울, 여전히 펠로폰네소스인과 보이오티아인에게 포위되어 있던 플라타이아인은 식량이 다하여 시달리고 아테네에서 오는 구원의 희망도 다른 어떤 안전의 방도도 보이지 않자, 함께 포위되어 있던 아테네인들과 함께 가능하다면 적의 성벽을 힘으로 넘어 달아날 계획을 세웠다. 이 시도를 내놓은 이는 예언자인 톨미데스의 아들 타이아이네토스와 그들의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인 다이마코스의 아들 에우폼피데스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함께하기로 했으나 뒤에 절반이 위험이 크다고 여겨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220명쯤이 제 뜻으로 그 시도를 밀고 나갔고, 그것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적의 성벽 높이에 맞추어 사다리를 만들었는데, 높이는 벽돌의 층으로 재었으니 그들 쪽으로 향한 면이 회칠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돌층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세었다. 몇몇은 셈을 놓칠 수 있었으나 대다수는 맞게 세었을 것이다. 특히 그들이 거듭거듭 세었고 성벽에서 그리 멀지 않아 그 목적에 맞게 볼 만큼은 충분히 보였기 때문이다. 사다리에 필요한 길이는 이렇게 벽돌의 두께에서 셈해 얻었다.
펠로폰네소스인의 성벽은 다음과 같이 지어져 있었다. 그것은 도시 둘레로 두 겹으로 둘러 세워졌는데, 하나는 플라타이아인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깥에서 아테네가 올 공격을 막는 것으로, 두 겹 사이는 16피트6쯤 떨어져 있었다. 그 16피트의 사이 공간은 파수 보는 병사들에게 나누어 준 막사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한 덩어리로 지어져 양쪽에 흉벽이 달린 두꺼운 성벽 하나처럼 보였다. 흉벽 열 개마다 한 번씩 상당한 크기의 탑이 있었는데, 성벽과 같은 너비로 안쪽 면에서 바깥쪽 면까지 가로질러 뻗어 있었고 그 가운데를 통하는 길 말고는 지나갈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폭풍이 불고 비가 오는 밤에는 흉벽을 비워 두고 탑에서 파수를 보았는데, 탑들은 서로 멀지 않았고 위에 지붕이 덮여 있었다.
플라타이아인을 봉쇄한 성벽의 구조가 이러했다. 준비가 끝나자 그들은 바람과 비가 몰아치고 달이 없는 밤을 기다렸다가 이 일을 꾸민 자들의 인도를 받아 나섰다. 먼저 도시를 둘러 난 호를 건넌 뒤 파수병들에게 들키지 않고 적의 성벽에 이르렀는데, 파수병들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보지 못했고 바람이 그 울부짖음으로 다가오는 소리를 지워 버렸으므로 듣지도 못했으며, 그 밖에도 그들은 무기가 부딪는 소리에 들키지 않으려고 서로 꽤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또 그들은 가볍게 차렸고 진창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왼발에만 신을 신었다. 그들은 흉벽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알고 있던 사이 공간 가운데 한 곳에서 흉벽에 다가갔다. 사다리를 든 자들이 먼저 가서 그것을 세웠고, 다음으로 단검과 흉갑만 갖춘 경무장 병사 열둘이 올랐는데 그들을 이끈 것은 코로이보스의 아들 암미아스였고 성벽에 가장 먼저 오른 것도 그였으며, 그의 뒤를 따르는 자들이 그를 따라 올라가 탑마다 여섯씩 갔다. 이들 뒤로 창을 든 또 한 무리의 경보병이 왔는데, 더 쉽게 나아가도록 그들의 방패는 뒤에 있는 사람들이 들고 왔고 적과 마주치게 되면 건네주기로 되어 있었다. 꽤 많은 수가 올랐을 때 탑에 있던 파수병들에게 들켰는데, 플라타이아인 한 사람이 흉벽을 붙잡다가 기와 한 장을 떨어뜨려 낸 소리 때문이었다. 곧 경보가 울리고 병사들이 성벽으로 달려왔으나, 어두운 밤과 몰아치는 날씨 때문에 위험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도시 안의 플라타이아인도 포위하는 자들의 주의를 돌리려고, 자기들 쪽 사람들이 넘어가고 있는 곳의 반대편에서 펠로폰네소스인의 성벽을 향해 출격하려고 바로 그때를 골라 두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마다 제 초소에서 갈팡질팡했고, 아무도 자기 자리를 떠나 도우러 움직이려 하지 않았으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비상시에 쓰도록 따로 떼어 둔 300명이 경보가 난 쪽으로 성벽 밖으로 나갔다. 공격을 알리는 봉화도 테베 쪽으로 올렸다. 그러나 도시 안의 플라타이아인이 바로 이 일을 위해 미리 마련해 둔 여러 개의 다른 봉화를 곧 올렸는데, 적의 신호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나간 동료들이 탈출을 마치고 안전해지기 전에 적의 벗들이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알고 도우러 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동안 올라간 등반대의 선두는 탑 두 개를 모두 빼앗고 파수병들을 칼로 베어 넘긴 뒤, 자기들에게 맞서 지나오는 자가 없도록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성벽에서 사다리를 세워 여러 사람을 탑 위로 올려 보내, 그 정상과 밑에서 올라오는 적 모두를 던지는 무기로 막아 세웠다. 그러는 사이 본대는 성벽에 사다리 여러 개를 걸치고 흉벽을 무너뜨려 탑들 사이로 넘어갔고, 넘어간 사람은 저마다 곧 호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동료들의 통행을 막으려고 성벽을 따라 오는 자들에게 화살과 창을 퍼부었다. 모두가 넘어가자 탑에 있던 무리가 내려왔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 사람들은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들이 호로 나아갈 때 마침 300명이 횃불을 들고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호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플라타이아인은 상대를 잘 볼 수 있었으므로 그들 몸의 무장하지 않은 부분에 화살과 창을 날렸고, 반면 자기들은 횃불 때문에 어둠 속에서 그만큼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마지막 사람까지 호를 건넜으나 힘과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호에 얼음이 얼어 있었는데 걸어 다닐 만큼 단단하지 않고 북쪽보다 동쪽에 가까운 바람이 불 때 흔히 생기는 물기 많은 얼음이었으며, 그 바람이 밤새 내리게 한 눈으로 호의 물이 불어 있어 건널 때 가슴으로 물을 가르기가 힘겨웠다. 그러나 그들이 탈출을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주로 폭풍이 거셌던 덕분이었다.
호에서 출발한 플라타이아인은 영웅 안드로크라테스의 사당을 오른쪽에 두고 테베로 가는 길을 따라 모두 함께 나아갔다. 펠로폰네소스인이 그들이 갔으리라고 가장 마지막에나 의심할 길이 적들의 나라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적이 횃불을 들고 키타이론과 드루오스케팔라이, 곧 '참나무 머리'로 향하는 아테네 길에서 추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테베로 가는 길을 반 마일이 조금 넘게 간 뒤 플라타이아인은 길을 벗어나 산으로, 에리트라이와 히시아이로 가는 길을 잡았고, 산에 이르러 아테네로 무사히 달아났으니 모두 212명이었다. 그들 가운데 몇은 성벽을 넘기 전에 도시 안으로 되돌아갔고 궁수 한 사람은 바깥 호에서 포로가 되었다. 그동안 펠로폰네소스인은 추격을 그만두고 제 초소로 돌아갔다. 도시 안의 플라타이아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되돌아온 자들에게서 한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날이 밝자 곧 전령을 보내 주검을 거두기 위한 휴전을 맺으려 했으나 사실을 알고 나서 그만두었다. 이렇게 해서 플라타이아 사람들의 무리는 성벽을 넘어 목숨을 건졌다.
같은 겨울이 끝나 갈 무렵 스파르타인 살라이토스가 함선 한 척에 실려 스파르타에서 미틸레네로 보내졌다. 그는 바다로 피라까지 가고 거기서부터는 육로로 가서 포위 성벽의 선을 지날 수 있는 급류의 바닥을 따라 들어갔고, 그렇게 들키지 않고 미틸레네에 들어가 정무관들에게 말했다. 아티카는 반드시 침입을 받을 것이고 그들을 구원하도록 정해진 함선 40척도 올 것이며, 자기는 이를 알리고 일을 전반적으로 감독하도록 먼저 보내졌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미틸레네인은 용기를 얻어 아테네인과 교섭하려던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제 이 겨울이 끝났고, 그와 함께 투키디데스가 그 역사를 기록한 이 전쟁의 제4년이 끝났다.
이듬해 여름 펠로폰네소스인은 함선 42척을 해군 총사령관 알키다스의 지휘로 미틸레네에 보내고, 자기들과 동맹들은 아티카를 침입했다. 두 방향의 움직임으로 아테네인의 주의를 갈라, 미틸레네로 가는 함대에 맞서 움직이기 어렵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침입의 지휘자는 클레오메네스였는데, 그의 조카로 아직 어린 나이였던 플레이스토아낙스의 아들 파우사니아스 왕을 대신한 것이었다. 침입군은 전에 짓밟았던 곳에서 다시 돋아난 것을 못 쓰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앞선 침입에서 지나쳤던 땅까지 유린을 넓혔으므로, 이 침입은 두 번째 것을 빼면 어느 침입보다도 아테네인에게 혹독하게 느껴졌다. 적은 레스보스에서 자기들의 함대가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소식이 오기를 기대하며 나라의 대부분을 휩쓸 때까지 계속 머물러 있었는데, 그 함대가 이제는 건너갔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한 결과를 하나도 얻지 못하고 식량도 떨어져 가기 시작하자 그들은 물러나 저마다 제 도시로 흩어졌다.
그동안 미틸레네인은 식량이 다해 가는데 펠로폰네소스에서 오는 함대는 미틸레네에 나타나지 않고 길에서 어물거리고 있음을 알고, 다음과 같은 경로로 아테네인과 화약을 맺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살라이토스 자신도 함대가 오리라는 기대를 버렸으므로, 이제 민중에게 전에는 갖지 못했던 중장 무구를 주어 아테네인을 향해 출격할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민중은 무기를 손에 쥐게 되자마자 더는 상관들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했고, 무리를 지어 모여서는 관헌에게 식량을 공개된 자리로 내와 모두에게 나누라고, 그러지 않으면 자기들이 직접 아테네인과 화약을 맺고 도시를 내주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를 막을 힘이 자기들에게 없음을, 또 항복 조건에서 제외되면 스스로 위험에 놓일 것임을 알았으므로, 파케스와 그 군대와 공개로 합의해 미틸레네를 상대의 처분에 맡겨 항복하고 군대를 도시에 들이기로 했다. 다만 미틸레네인이 아테네에 사절을 보내 제 처지를 변호하게 하고, 그 사절이 돌아오기까지 파케스가 시민 누구도 가두거나 노예로 삼거나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항복의 조건은 이러했다. 그럼에도 스파르타와의 교섭을 주도한 자들은 군대가 들어오자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제단 옆으로 가서 앉았고, 파케스는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일으켜 세운 뒤 아테네인이 그들에 대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 그들을 테네도스에 두었다. 파케스는 함선 몇 척을 보내 안티사도 차지했고, 그 밖에 자기가 적절하다고 여긴 군사 조치들을 취했다.
그동안 함선 40척에 타고 있던 펠로폰네소스인은 미틸레네를 구원하려고 온 힘을 다해 서둘러야 했으나, 펠로폰네소스 자체를 돌아오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남은 항해도 느긋하게 이어 가, 아테네에 있던 아테네인의 눈에 띄지 않고 델로스에 이르렀다. 거기서 이카로스와 미코노스에 닿았을 때 미틸레네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사실을 알고자 그들은 도시가 함락된 지 이레쯤 뒤에 에리트라이 땅의 엠바톤에 들어갔다. 여기서 그들은 사실을 알게 되어 무엇을 해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고, 엘리스인 테우티아플로스가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말했다.
알키다스, 그리고 이 군세의 지휘를 나와 함께 맡고 있는 펠로폰네소스 여러분, 내 조언은 우리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지금 이대로 미틸레네로 배를 몰자는 것입니다. 도시를 막 함락시킨 자들이 흔히 그렇듯 아테네인도 그만큼 경계를 풀고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반드시 그럴 것인데, 거기서는 적이 자기들을 공격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고 마침 우리 힘이 주로 놓여 있는 곳도 바로 그곳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육군까지도 승리에 마음을 놓아 집집에 흩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밤에 불시로 그들을 덮친다면, 도시 안에 아직 남아 있을 우리 편 사람들의 도움까지 받아 그곳의 주인이 되리라는 희망이 나에게는 있습니다. 위험을 꺼려 물러서지 말고, 이야말로 전쟁에 흔한 근거 없는 공황이 일어날 자리임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제 쪽에서는 그런 공황을 막아 내고 공격이 적을 그런 불리한 처지에서 맞닥뜨리게 될 순간을 알아내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장군을 만드는 것입니다.
테우티아플로스의 이 말이 알키다스를 움직이지 못하자, 원정에 함께한 이오니아 망명자 몇과 레스보스인들이 그에게 권하기 시작했다. 그 일이 너무 위험해 보인다면 이오니아의 도시 하나나 아이올리스의 도시 키메를 차지해 이오니아의 반란을 일으키는 근거지로 쓰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오는 것을 어디서나 반겼으므로 이는 결코 희망 없는 일이 아니었다. 이 움직임으로 노리는 것은 아테네에게서 수입의 주된 원천을 빼앗는 것이자, 아테네가 그들을 봉쇄하기로 한다면 그 지출까지 떠안기는 것이었다. 또 그들은 아마 피수트네스를 끌어들여 전쟁에 함께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키다스는 이 제안도 앞의 것과 마찬가지로 나쁘게 받아들였다. 미틸레네에는 너무 늦게 왔으니 되도록 빨리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가 있고 싶은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엠바톤에서 나와 해안을 따라 나아갔고, 테오스령 도시 미온네소스에 들러 오는 길에 잡은 포로 대부분을 그곳에서 죽였다. 그가 에페소스에 닻을 내렸을 때 아나이아에 있던 사모스인들이 사절을 보내와, 자기에게 손 한 번 든 적 없는 사람들, 그의 적이 아니고 제 뜻을 어겨 가며 아테네의 동맹이 된 사람들을 학살하면서 그리스를 해방하려 하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니라고, 또 그만두지 않으면 적을 벗으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많은 벗을 적으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알키다스는 이 말에 수긍해 아직 자기 손에 있던 키오스인 전부와 잡아 둔 다른 이들 일부를 놓아주었다. 주민들은 그의 배를 보고 달아나기는커녕 오히려 다가왔는데, 그것을 아테네 배로 여겼기 때문이고, 아테네인이 바다를 장악하고 있는 동안 펠로폰네소스 함선이 감히 이오니아까지 건너오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키다스는 에페소스에서 서둘러 배를 띄워 달아났다. 그는 클라로스 앞바다에 아직 닻을 내리고 있을 때 마침 아테네에서 항해해 오던 살라미니아호와 파랄로스호7에 목격되었다. 추격을 두려워한 그는 이제 큰 바다를 가로질러, 되도록 펠로폰네소스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도 들르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동안 그에 관한 소식이 에리트라이 땅에서, 실로 사방에서 파케스에게 들어왔다. 이오니아에는 성벽이 없었으므로, 해안을 따라 지나가는 펠로폰네소스인이 머물 뜻이 없다 해도 지나는 길에 상륙해 도시들을 약탈할지 모른다는 큰 두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파랄로스호와 살라미니아호가 클라로스에서 그를 본 일을 스스로 알려 왔다. 그래서 파케스는 맹렬히 뒤를 쫓아 파트모스섬까지 추격을 이어 갔으나, 알키다스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나갔음을 알고 되돌아왔다. 그러면서 그는 큰 바다에서 그들과 마주치지 못한 터에 그들이 진을 칠 수밖에 없는 어느 곳에서 그들을 따라잡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그랬다면 그들을 봉쇄하는 수고를 그가 지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안을 따라 돌아오는 길에 그는 여러 곳에 들렀고 그중에 콜로폰의 항구 노티온도 있었다. 파당 싸움에서 어떤 개인들이 불러들인 이타메네스와 이방인들에게 위쪽 도시가 함락된 뒤 콜로폰인이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그 도시의 함락은 펠로폰네소스인의 두 번째 아티카 침입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피난민들은 노티온에 자리를 잡은 뒤 다시 파당으로 갈렸고, 그 가운데 한쪽이 피수트네스에게서 아르카디아인과 이방인 용병을 불러들여 따로 떨어진 한 구역에 그들을 참호로 둘러 세우고, 위쪽 도시에서 그들에게 합류한 콜로폰인 가운데 메디아 편에 선 자들과 함께 새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들의 반대편은 망명해 물러나 있다가 이제 파케스를 불러들였고, 파케스는 요새화된 구역에 있던 아르카디아인의 지휘자 히피아스를 회담에 불렀는데,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그를 탈 없이 온전하게 그 요새로 돌려보낸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히피아스가 그에게 나오자 파케스는 그에게 쇠사슬을 채우지는 않았으나 감시 아래 두었고, 갑작스레 공격해 그 요새를 불시에 빼앗고 그 안에 있던 아르카디아인과 이방인들을 칼로 베어 넘겼다. 그런 뒤 약속한 대로 히피아스를 그 안으로 들여보냈다가, 그가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붙잡아 화살로 쏘아 죽였다. 그 뒤 파케스는 메디아 편이 아닌 콜로폰인들에게 노티온을 넘겼다. 나중에 아테네에서 이주자들이 보내졌고, 여러 도시에서 찾아낸 콜로폰인을 모두 모은 뒤 그곳은 아테네의 법에 따라 식민지로 세워졌다.
미틸레네에 이른 파케스는 피라와 에레소스를 굴복시켰고, 스파르타인 살라이토스가 도시 안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 테네도스에 두었던 미틸레네인들과 반란에 관여했다고 여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아테네로 보냈다. 그는 병력의 대부분도 돌려보내고 나머지와 함께 남아, 미틸레네와 레스보스의 나머지를 자기가 가장 좋다고 여긴 대로 정리했다.
살라이토스와 함께 포로들이 도착하자 아테네인은 살라이토스를 곧 죽였는데, 그가 여러 가지를 내놓으며 여전히 포위되어 있던 플라타이아에서 펠로폰네소스인이 물러나게 해 주겠다고까지 했으나 그러했다. 그리고 포로들을 어떻게 할지 논의한 뒤, 그 순간의 격분에 사로잡혀 아테네에 있는 포로들만이 아니라 미틸레네의 성년 남자 전부를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삼기로 결정했다. 미틸레네는 나머지처럼 제국에 예속되어 있지 않은 처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리고 아테네인의 분노를 무엇보다 크게 부풀린 것은 펠로폰네소스 함대가 미틸레네를 돕고자 감히 이오니아까지 건너왔다는 사실이었는데, 그것은 오래 곱씹어 준비한 반란임을 말해 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선 한 척을 보내 이 결의를 파케스에게 전하고 지체 없이 미틸레네인을 처리하라고 명했다. 이튿날이 후회를 가져왔고, 죄 있는 자들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운명을 도시 전체에 선고한 그 결의가 얼마나 끔찍하게 잔혹한지를 되짚어 보게 했다. 아테네에 있던 미틸레네 사절들과 그들을 지지하던 아테네인들이 이를 알아차리자마자 그들은 관헌을 움직여 그 문제를 다시 표결에 올리게 했는데, 관헌이 그렇게 하는 데 더 쉽게 응한 것은 시민 대다수가 누군가 이 일을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들 자신도 뚜렷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 민회가 소집되었고, 양쪽에서 많은 의견이 나온 뒤에 클레아이네토스의 아들 클레온이 다시 나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틸레네인을 죽이자는 앞선 동의를 통과시킨 바로 그 사람이며, 아테네에서 가장 격한 인물이고 그때 민중에게 단연 가장 큰 힘을 가진 자였다.
나는 전부터 민주정이 제국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번 확신해 왔으나, 미틸레네 일에서 여러분이 지금 마음을 바꾼 것만큼 그것을 확신하게 한 일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오가는 사이에서 두려움도 음모도 모르고 지내므로 동맹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느끼며,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거나 스스로의 동정심에 굽히는 데서 끌려드는 잘못이 여러분 자신에게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무름에 대해 동맹들에게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얻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제국은 전제이며 여러분의 예속민은 앙심을 품은 음모자들이고, 그들의 복종을 붙들어 두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죽이는 양보가 아니라 그들의 충성이 아닌 여러분 자신의 힘이 여러분에게 준 우위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주 잊고 있습니다. 이 일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가 늘 방침을 바꾸리라는 위협에 놓인 듯 보인다는 것이고, 다음의 사실을 우리가 모르는 듯 보인다는 것입니다. 곧 결코 바뀌지 않는 나쁜 법이 권위 없는 좋은 법보다 도시에 낫고, 배우지 못한 충직함이 재빠른 불복종보다 쓸모 있으며, 보통 사람이 저보다 재능 있는 동료들보다 나랏일을 대개 더 잘 다스린다는 사실입니다. 뒤쪽 사람들은 늘 법보다 더 지혜롭게 보이고 싶어 하고 앞에 나온 제안이라면 무엇이든 뒤집으려 하며, 더 중대한 일에서는 제 재치를 보일 데가 없다고 여겨 그런 짓을 하다가 너무 자주 제 나라를 망칩니다. 반면 제 영리함을 믿지 않는 이들은 법보다 덜 배운 자로 있는 데 만족하고 훌륭한 연설자의 말에서 흠을 찾아내는 데 덜 능한 것으로 만족하며, 겨루는 선수가 아니라 공평한 판관이 되어 일을 대개 성공으로 이끕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이들이며, 영리함과 지력의 겨룸에 끌려가 우리의 진짜 생각과 다른 것을 여러분 백성에게 권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 자신은 앞서의 의견을 그대로 지키며, 미틸레네인의 사건을 다시 열자고 제안한 자들에게 놀랍니다. 그들이 이렇게 만들어 내는 지체는 온전히 죄 있는 자들에게 이로우며, 해를 입은 자로 하여금 분노의 날이 무디어진 채로 가해자를 상대하게 만듭니다. 복수가 잘못에 가장 가까이 뒤따를 때 그것이 잘못과 가장 잘 맞먹고 가장 넉넉하게 되갚는데도 그렇습니다. 반대를 주장하며 미틸레네인의 범죄가 우리에게 이롭고 우리의 불행이 동맹들에게 해롭다는 것을 보여 주는 척할 사람이 누구일지도 나는 의아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분명히 둘 중 하나입니다. 한번 확정된 것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증명해 보이겠다고 나설 만큼 제 말재주를 믿는 자이거나, 돈을 받고 공들인 궤변으로 우리를 속이려 드는 자입니다. 그런 겨룸에서 나라는 상은 남에게 주고 위험은 제가 집니다. 나무랄 사람은 이런 겨룸을 벌여 놓을 만큼 어리석은 여러분입니다. 구경거리를 보러 가듯 연설을 보러 가고, 사실은 남의 말로 주워 담으며, 어떤 계획이 될 만한 일인지를 그것을 주장하는 자의 재치로 판단하고, 지난 일의 진실을 두고 제 눈으로 본 사실보다 귀로 들은 영리한 논평을 믿는 여러분입니다. 새로 꾸며진 논변에 쉽게 걸려들고 이미 받아들여진 결론은 따르려 하지 않으며, 새 역설이라면 무엇에나 종처럼 매이고 흔한 것은 업신여기는 여러분입니다. 사람마다 첫 소원이 제가 직접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다음 소원은 말할 수 있는 자들과 겨루는 것이어서, 한 방이 터지기도 전에 미리 갈채를 보내며 그들의 생각을 이미 다 따라잡은 듯 보이려 하고, 논변을 붙잡는 데는 그 결과를 내다보는 데 더딘 만큼이나 빠른 여러분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과는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면서 바로 그 조건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여러분이며, 귀의 즐거움에 철저히 매인 종이어서 도시의 평의회라기보다 웅변가의 청중에 더 가까운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을 이런 데서 지켜 내기 위해, 나는 어느 한 나라도 미틸레네만큼 여러분을 해친 적이 없음을 이제 보이겠습니다. 우리의 지배를 견딜 수 없어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나 적에게 떠밀려 그렇게 한 자들은 내가 참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벽을 갖춘 섬을 가졌고, 우리의 적을 바다에서만 두려워할 처지였으며 거기서는 자기들을 지킬 제 함선 부대를 가졌고, 독립을 누리며 여러분에게 가장 높은 예우를 받던 자들이 이들이 한 것처럼 행동했다면 그것은 반란이 아닙니다. 반란이라는 말에는 억압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뜻을 세워 저지른 까닭 없는 침략이고, 우리의 가장 독한 적들 편에 서서 우리를 망치려 한 시도이며, 힘을 얻고자 제 몫으로 벌인 전쟁보다 더 무거운 죄입니다. 이미 반란을 일으켰다가 굴복한 이웃들의 운명도 그들에게는 교훈이 되지 않았고, 자기들의 번영도 그들이 위험에 맞서려는 것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앞날을 두고 눈먼 자신에 차고 제 힘을 넘어서지만 제 야심을 넘어서지는 않는 희망으로 가득해, 그들은 전쟁을 선포하고 옳음보다 힘을 앞세우기로 결정했으며, 그 공격을 정한 것은 어떤 도발이 아니라 유리해 보이던 그 순간이었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큰 행운이 갑작스럽게 뜻밖에 찾아오면 백성은 오만해지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에게는 이치를 벗어난 성공보다 이치에 맞는 성공이 더 안전하며, 번영을 지켜 내기보다 역경을 막아 내기가 더 쉽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은 미틸레네인을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특별하게 가려 대한 것입니다. 오래전에 나머지와 똑같이 대했더라면 그들이 그토록 제 분수를 잊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단호함에 눌리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배려에 오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죄가 요구하는 대로 그들을 벌하십시오. 그리고 귀족들을 단죄하면서 민중은 면해 주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확실한 것은 그들이 모두 가림 없이 여러분을 공격했다는 것이며, 우리 편으로 넘어와 지금 다시 제 도시를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귀족들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겨 그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해 보십시오. 적에게 떠밀려 반란한 동맹과 제 뜻으로 그렇게 한 자를 여러분이 같은 벌에 내놓는다면, 그들 가운데 아주 작은 구실만으로도 반란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성공의 보상은 자유이고 실패의 벌은 그리 끔찍할 것도 없다면 말입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한 나라 한 나라를 상대로 우리 돈과 목숨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성공한다 해도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은 폐허가 된 도시뿐이고 우리 힘이 걸려 있는 수입을 거기서 더는 끌어낼 수 없습니다. 실패한다면 우리 손에 적이 하나 더 늘어날 것이고, 지금 있는 적들과 싸우는 데 쓸 수 있을 시간을 우리 자신의 동맹들과 전쟁하는 데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재주가 심어 줄 수 있거나 돈이 사들일 수 있는 희망, 곧 사람의 약함에 응당 돌아가는 자비의 희망을 미틸레네인에게 내밀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죄는 본의가 아닌 것이 아니라 악의에서 나온 것이고 뜻을 세워 저지른 것이며, 자비는 마음에 없이 잘못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여러분이 첫 결정을 뒤집는 것에, 또 제국에 가장 치명적인 세 가지 허물, 곧 연민과 감상과 관용에 굽히는 것에 끝까지 맞섭니다. 동정은 그 마음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며, 결코 우리를 되불쌍히 여기지 않을 자들, 본래부터 필연으로 우리의 적인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 아닙니다. 감상으로 우리를 홀리는 연설자들은 제 재주를 펼칠 다른 덜 중요한 무대를 찾아보면 됩니다. 도시는 한순간의 즐거움에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그들 자신은 번듯한 말솜씨로 번듯한 칭송을 받는 이런 자리 대신에 말입니다. 그리고 관용은 앞으로 우리의 벗이 될 자들에게 보여야 할 것이며, 전에 그러했던 그대로 남아 전과 똑같이 우리의 적일 사람들에게 보일 것이 아닙니다. 짧게 추리면 내 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내 조언을 따르면 미틸레네인에게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로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 다르게 결정한다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 자신에게 선고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들이 반란한 것이 옳다면 여러분이 지배하는 것이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옳든 틀리든 지배하기로 작정했다면, 여러분은 그 원칙을 끝까지 밀고 나가 여러분의 이익이 요구하는 대로 미틸레네인을 벌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겠다면 제국을 내놓고 위험 없이 정직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받은 그대로 되돌려 주기로 마음을 굳히십시오. 음모를 피해 살아난 쪽이 그것을 꾸민 자들보다 더 무감각하게 굴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을 이겼다면 어떻게 했겠는지를 되짚어 보십시오. 더욱이 먼저 침략한 쪽은 그들이었습니다. 까닭 없이 이웃에게 해를 입히는 자들이야말로 제 희생자를 죽음까지 몰아붙이는데, 적을 살려 두는 데서 앞날의 위험을 내다보기 때문입니다. 까닭 없는 해를 입은 자는 그것을 따질 거리가 없는 적보다, 살아남았을 때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에게 배신자가 되지 말고, 고통을 겪던 그 순간과 그때 그들을 굴복시키는 일에 여러분이 두었던 지극한 중대함을 되도록 생생하게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차례로 되갚으십시오. 지금의 무름에 굽히지도 말고 한때 여러분 머리 위에 걸려 있던 위험을 잊지도 마십시오. 그들이 마땅히 받을 대로 벌하고, 반란의 벌은 죽음이라는 것을 다른 동맹들에게 뚜렷한 본보기로 가르치십시오. 그들이 이것을 한번 깨닫기만 하면, 여러분이 제 연합의 성원들과 싸우는 동안 적들을 내버려 두어야 하는 일이 그렇게 자주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클레온의 말은 이러했다. 그 뒤로 에우크라테스의 아들 디오도토스가 나와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앞선 민회에서도 미틸레네인을 죽이는 데 가장 강하게 반대해 말한 사람이었다.
나는 미틸레네인의 사건을 다시 연 사람들을 나무라지 않으며, 중대한 문제를 자주 논의하는 데 반대해 우리가 들은 항의에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좋은 숙의에 가장 어긋나는 두 가지는 서두름과 격정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서두름은 대개 어리석음과 손을 맞잡고 가고, 격정은 거칢과 좁은 마음과 손을 맞잡고 갑니다. 말이 행동을 설명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논변을 두고 말하면, 그것을 쓰는 사람은 분별이 없거나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앞날을 다른 어떤 수단으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면 분별이 없는 것이고, 부끄러운 방안을 통과시키고 싶으면서 나쁜 명분을 두고 잘 말할 제 능력이 의심스러워 잘 겨눈 비방으로 반대자들과 듣는 이들을 겁주려 한다면 속셈이 있는 것입니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연설자가 돈을 받으려고 재주를 부린다고 몰아붙이는 일입니다. 무지만을 뒤집어씌운다면 뜻을 이루지 못한 연설자도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평은 못 얻을지언정 정직하다는 평은 지닌 채 물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직하다는 혐의는 그가 뜻을 이루면 그를 의심받게 만들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그를 바보일 뿐 아니라 악당이라고까지 여기게 만듭니다. 이런 관행으로 도시가 얻는 것은 없습니다. 두려움이 도시에서 조언하는 이들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상 우리 연설자들이 그런 주장을 하려 든다면 그들이 아예 말할 수 없는 편이 나라에 더 나을 것인데, 그러면 우리가 저지르는 실책이 줄 테니 말입니다. 훌륭한 시민은 반대자들을 겁주어서가 아니라 논변에서 정당하게 이겨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도시는 가장 나은 조언자들을 지나치게 떠받들지는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지 않으며, 운이 나빴던 조언자를 벌하기는커녕 그를 수치를 입은 자로도 여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뜻을 이룬 연설자들이 더 높은 명예를 바라 제 확신을 인기에 내놓고 팔 유혹을 가장 적게 받고, 뜻을 이루지 못한 연설자들이 다수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같은 인기 수법에 손을 뻗을 유혹도 가장 적게 받을 것입니다.
우리 방식은 이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한다 해도 그것을 부정한 동기에서 한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우리는 결국 그가 정말 받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그 이득을 두고 그에게 그만한 앙심을 품어, 도시에서 확실한 이익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하여 명백히 좋은 조언도 나쁜 조언에 못지않게 의심받게 되었습니다. 가장 괴이한 방안을 주장하는 자가 백성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써야 하는 정도와, 가장 훌륭한 조언자가 믿음을 얻기 위해 거짓을 말해야 하는 정도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잔재주 때문에 오직 이 도시만은 드러내 놓고 감춤 없이 섬김을 받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드러내 놓고 도시를 섬기는 자는 그 대가로 남몰래 제 이익을 챙긴다는 의심을 늘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걸려 있는 이해의 크기와 일의 형세를 헤아릴 때, 우리 연설하는 자들은 대뜸 판단하는 여러분보다 조금 더 멀리 보는 것을 제 일로 삼아야 합니다. 더구나 조언하는 우리는 책임을 지는데 듣는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조언한 자들과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이 똑같이 고통을 겪는다면 여러분은 더 차분하게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순간의 변덕이 여러분을 끌어들인 재난을 여러분은 조언자 한 사람에게 쏟아붓고, 잘못의 길에 함께한 수많은 동행인 여러분 자신에게는 쏟아붓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틸레네 일에서 반박하려고도 고발하려고도 나선 것이 아닙니다. 실로 분별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그들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이익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를 아무리 많이 증명한다 해도 그것이 이롭지 않다면 그들의 죽음을 권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에게 관용을 요구할 근거가 있다 해도 그것이 나라의 좋음에 분명히 들어맞지 않는다면 관용을 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현재보다 앞날을 위해 숙의하고 있다고 봅니다. 반란을 죽음으로 다스리면 유용한 억지 효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클레온이 그토록 단정하는 자리에서, 앞날의 이익을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헤아리는 나는 그와 똑같이 단정하여 반대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에게 요구합니다. 그의 겉만 번듯한 고려를 위해 나의 유용한 고려를 물리치지 마십시오. 미틸레네를 향한 지금 여러분의 기분에는 그의 말이 더 정의롭게 보이는 매력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곳은 법정이 아니라 정치의 민회이며, 문제는 정의가 아니라 미틸레네인을 어떻게 아테네에 유용하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물론 공동체들은 이보다 훨씬 가벼운 여러 죄에도 죽음의 벌을 정해 두었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사람을 모험으로 이끌며, 제 계획이 성공할 것이라는 속마음의 확신 없이 스스로를 위험에 내놓은 사람은 여태 아무도 없었습니다. 또한 반란을 일으키면서, 제 안에든 제 동맹에든 그 일에 알맞은 재원을 갖추었다고 믿지 않은 도시가 여태 있었습니까? 나라든 개인이든 모두가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며 그것을 막을 법이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악을 저지르는 자들에게서 스스로를 지킬 법조를 찾느라 벌의 목록을 남김없이 소진할 까닭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이른 시대에는 가장 큰 죄에 대한 벌도 덜 혹독했을 것이고, 그것이 무시되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차츰 죽음의 벌에 이르렀을 것이며, 그 죽음의 벌 또한 똑같이 무시됩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수단을 찾아내야 하거나, 이 억제가 쓸모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난이 사람에게 궁지의 용기를 주고 넉넉함이 오만과 교만에 딸린 야심으로 사람을 채우며 그 밖의 삶의 조건들이 저마다 어떤 치명적인 주인 격정의 굴레 아래 남아 있는 한, 사람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충동이 모자라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희망과 탐욕도 그렇습니다. 하나는 앞장서고 다른 하나는 뒤따르며, 하나는 그 시도를 품고 다른 하나는 성공하기가 쉽다고 속삭이면서 가장 넓은 파멸을 불러오는데, 보이지 않는 작용자이면서도 눈에 보이는 위험들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운수 또한 그 미혹을 강하게 돕고, 이따금 뜻밖의 도움을 내주어 사람들이 뒤떨어지는 수단으로도 모험에 나서게 꾀어냅니다. 공동체에서는 특히 그러한데, 걸린 판돈이 자유나 제국이라는 가장 큰 것이고 모두가 함께 움직일 때에는 사람마다 제 능력을 이치에 닿지 않게 부풀리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법의 힘으로도 다른 어떤 억지의 힘으로도 사람의 본성이 한번 마음을 굳힌 일을 하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하며, 그것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크게 단순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벌이 효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그릇된 정책에 스스로를 맡겨서도 안 되고, 반란한 자들에게서 회개하고 제 잘못을 일찍 속죄할 희망을 빼앗아서도 안 됩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은 이미 반란을 일으킨 도시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아직 비용을 물어 줄 수 있는 동안에 화약을 맺고 그 뒤로 조공을 바칠 것입니다. 다른 경우라면 어떻겠습니까? 늦게 항복하든 일찍 항복하든 마찬가지라면, 지금보다 더 잘 준비하고 포위하는 자들에게 끝까지 버티지 않을 도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항복이란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우리가 포위의 비용을 치르게 되고, 도시를 빼앗는다 해도 적에 맞선 우리의 진짜 힘을 이루는 수입을 더는 끌어낼 수 없는 폐허가 된 도시를 얻게 되는 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해롭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손해가 되도록 죄지은 자들의 엄한 재판관으로 앉아 있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절도 있는 징계로 우리 예속국들의 수입을 낳는 힘에서 앞날에 이익을 얻을 길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켜 줄 것을 법의 공포에서가 아니라 주의 깊은 통치에서 찾기로 마음을 굳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정확히 그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힘으로 예속에 붙들려 있던 자유로운 공동체가 당연한 일로 일어나 제 독립을 주장하면, 그것을 굴복시키자마자 우리는 그것을 혹독하게 벌해야 마땅하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그러나 자유인을 다루는 옳은 길은 그들이 일어났을 때 그들을 호되게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기 전에 호되게 지켜보아 그런 생각을 아예 품지 못하게 막는 것이며, 봉기가 진압된 뒤에는 되도록 적은 수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클레온이 권하는 대로 한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큰 실책을 저지르게 될지 생각만이라도 해 보십시오. 지금의 형세로는 모든 도시에서 민중이 여러분의 벗이며, 소수 지배자들과 함께 반란하지 않거나 억지로 그렇게 하게 되더라도 곧 봉기한 자들의 적이 됩니다. 그래서 적이 된 도시와의 전쟁에서 여러분은 다수를 제 편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반란과 아무 상관도 없었고 무기를 손에 쥐자마자 제 뜻으로 도시를 내준 미틸레네의 민중을 학살한다면, 첫째로 여러분은 은인을 죽이는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은 상층 계급의 손에 곧바로 패를 쥐여 주는 것인데, 그들이 제 도시를 일으켜 세울 때에는 곧 민중을 제 편에 두게 됩니다. 죄 있는 자와 죄 없는 자에게 같은 벌을 내린다고 여러분이 미리 알린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죄가 있었다 해도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척해야 하며, 아직 우리에게 우호적인 유일한 계층을 등 돌리게 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제국을 지키는 데는, 살려 두는 것이 우리에게 이로운 자들을 아무리 정의롭게라도 죽이는 것보다 부당함을 제 뜻으로 참아 내는 것이 훨씬 더 유용하다고 나는 봅니다. 벌을 내리면서 정의의 요구와 이로움의 요구를 모두 채울 수 있다는 클레온의 생각을 두고 말하면, 그런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사실들이 확인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임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연민에도 관용에도 지나치게 양보하지 말고, 이 두 동기에 여러분이 움직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나도 클레온과 다르지 않으니, 여러분 앞에 놓인 사안의 명백한 시비만을 놓고 내 말에 설득되어, 파케스가 죄 있는 자로 보낸 미틸레네인들을 차분하게 재판하고 나머지는 건드리지 말고 두십시오. 이것이 앞날에 가장 좋은 길이면서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적들에게 가장 무서운 길입니다. 적을 상대할 때 좋은 정책이 우악스러운 힘의 눈먼 공격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디오도토스의 말은 이러했다. 이렇게 나온 두 의견이 서로 가장 정면으로 맞선 것이었다. 아테네인은 마음이 바뀐 터였음에도 이제 표결로 나아갔고, 손을 든 수는 거의 같았으나 디오도토스의 동의가 이겼다. 그 사이에 첫 배가 레스보스에 닿아 도시가 이미 파괴된 것을 보게 될까 두려워 곧 다른 함선 한 척을 서둘러 보냈으니, 첫 배는 하루와 한 밤쯤 앞서 떠난 터였다. 미틸레네 사절들이 그 배에 포도주와 보리떡을 마련해 주고 때맞추어 닿으면 큰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항해에 그토록 힘을 다해 기름과 포도주에 반죽한 보리떡을 노를 저으면서 끼니로 먹었고 다른 이들이 노를 잡고 있는 동안 번갈아 잠만 잤다. 다행히 그들은 맞바람을 만나지 않았고, 첫 배는 그토록 끔찍한 심부름 길에 서두르지 않았던 데다 두 번째 배는 앞서 말한 대로 밀어붙였으므로, 첫 배가 그들보다 앞서 닿은 것이 아주 조금이어서 파케스가 결의를 읽고 그 선고를 집행할 준비를 할 겨를밖에 없었을 때 두 번째 배가 항구에 들어와 학살을 막았다. 미틸레네의 위험은 실로 컸다.
파케스가 반란의 주된 주도자로 보낸 다른 쪽 사람들은 클레온의 동의에 따라 아테네인의 손에 죽었는데, 그 수는 1,000명이 조금 넘었다. 아테네인은 미틸레네인의 성벽도 허물고 그들의 함선을 차지했다. 그 뒤 레스보스인에게 조공은 물리지 않았다. 그러나 메팀나인의 땅을 뺀 그들의 온 땅을 3,000몫으로 나누어 그 가운데 300몫은 신들에게 바치는 거룩한 몫으로 남겨 두고, 나머지는 섬으로 보내진 아테네인 지분 보유자들에게 제비로 배정했다. 레스보스인은 이들과 한 몫마다 해마다 2므나8의 지대를 내기로 합의하고 땅은 자기들이 갈았다. 아테네인은 미틸레네인에게 속한 대륙 쪽 도시들도 차지했고, 그 도시들은 이로써 앞으로 아테네에 예속되었다. 레스보스에서 일어난 일은 이러했다.
주
1. 프록세노스 — 다른 도시의 이해를 제 도시에서 대변하고 그 도시 사람을 맞아 주던 명예직. 아테네의 프록세노스란 미틸레네에 살면서 아테네 쪽의 이해를 돌보던 미틸레네 사람을 뜻한다.
2. 페르시아 전쟁 — 원문은 Median War다. 그리스인은 페르시아 제국과 그에 앞선 메디아를 뭉뚱그려 '메디아'라 불렀으므로, 이 말이 가리키는 것은 기원전 490년과 480년의 페르시아 침공이다. 같은 이유로 본문의 '메디아인' 역시 페르시아 쪽 군세와 그 왕을 뜻한다.
3. 펜타코시오메딤노이 — '500메딤노스 계층'. 해마다 곡물 500메딤노스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리는 아테네의 최상위 재산 등급으로, 기사 계층과 마찬가지로 중장보병이나 기병으로 복무했으므로 노 젓는 자리에는 태우지 않았다.
4. 드라크메 — 그리스의 은화 단위.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숙련 노동자의 하루 품값이 대략 1드라크메였다고 전한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5.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탈란톤은 6,000드라크메에 해당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6. 16피트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뒤에 나오는 '반 마일'도 같다.
7. 살라미니아호·파랄로스호 — 아테네가 공적인 사명에 쓴 두 척의 전용 함선. 사절을 보내고 국가의 명령을 전하는 일을 이 두 배가 맡았다.
8. 므나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00드라크메에 해당했고 60므나가 1탈란톤이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