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제V권 제XVI장) 펠로폰네소스에 퍼진 스파르타에 대한 반감 · 만티네이아인·엘리스인·아르고스인·아테네인의 동맹 · 만티네이아 전투와 동맹의 해체
10년 전쟁 뒤에 스파르타의 플레이스톨라스가 감독관(에포로스)1이고 아테네의 알카이오스가 아르콘2이던 때에 맺어진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 사이의 조약과 동맹이 이루어진 뒤, 그것을 받아들인 나라들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코린트인과 펠로폰네소스의 몇몇 도시가 그 합의를 흔들려 들면서 동맹들이 스파르타를 겨냥한 새로운 동요를 곧바로 일으켰다. 나아가 스파르타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약의 몇몇 조항을 이행하지 않은 탓에 아테네인에게 의심을 샀고, 6년 10개월 동안 양쪽이 서로의 영토를 침입하는 일은 삼갔으나 바깥에서는 불안정한 휴전이 어느 쪽도 상대에게 더없이 실효성 있는 해를 입히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마침내 양쪽은 10년 전쟁 뒤에 맺은 조약을 깨고 드러내 놓고 싸움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의 역사도 같은 아테네인 투키디데스가 여름과 겨울로 사건의 차례를 좇아 적었으니,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이 아테네의 제국을 끝장내고 장성과 피레우스를 차지한 때까지이다. 그때까지 전쟁은 통틀어 27년 동안 이어졌다. 조약이 이어진 기간을 전쟁에 넣는 데 반대할 수 있는 것은 잘못된 판단뿐이다.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 기간을 평화 상태로 여기는 것이 이치에 닿지 않음이 드러날 것이니, 어느 쪽도 합의한 것을 다 내주지도 다 돌려받지도 않았고, 그것 말고도 만티네이아 전쟁과 에피다우로스 전쟁을 비롯한 여러 경우에 양쪽에서 조약을 어긴 일이 있었으며, 트라키아 방면의 동맹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드러내 놓고 적대하고 있었고 보이오티아인은 열흘마다 갱신하는 휴전밖에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10년 전쟁과 그 뒤를 이은 믿을 수 없는 휴전과 그다음의 전쟁은, 계절로 헤아려 보면 내가 말한 햇수를 며칠 차이로 채우며, 신탁에 둔 믿음이 이번만은 사건으로 입증된 한 사례를 보여 줄 것이다. 나는 전쟁이 아홉 해의 세 곱절 동안 이어지리라는 말이 흔히 오가던 것을 전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사건을 이해할 나이가 되어 그 전부를 살아 넘겼고, 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알고자 거기에 마음을 쏟았다. 또한 나는 암피폴리스에서 지휘를 맡은 뒤에 20년 동안 조국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는 운명을 맞았는데, 양쪽 편에 다 있어 보았고 추방된 탓에 특히 펠로폰네소스인 쪽에 있었던 만큼 일들을 어느 정도 꼼꼼히 살필 여유가 있었다. 그러니 이제 10년 전쟁 뒤에 생긴 불화와 조약의 파기와 그 뒤에 이어진 싸움을 이야기하겠다.
50년 휴전과 그에 뒤이은 동맹이 맺어진 뒤, 이 일로 소집되었던 펠로폰네소스의 사절단들이 스파르타에서 돌아갔다. 나머지는 곧장 제 나라로 갔으나 코린트인은 먼저 아르고스로 발길을 돌려 그곳에서 공직을 맡고 있는 몇 사람과 협의를 열고,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를 복속시키는 것 말고는 좋은 목적을 품고 있을 리 없으며 그렇지 않다면 한때 미워하던 아테네인과 결코 조약과 동맹을 맺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짚었으며, 이제 펠로폰네소스의 안전을 도모할 의무가 아르고스에 떨어졌으니 아르고스는 원하는 그리스 나라라면 어디든 그 나라가 독립을 지키고 있고 법과 정의라는 공정하고 대등한 바탕 위에서 다른 나라를 상대하는 데 익숙하기만 하다면 아르고스인과 방어 동맹을 맺으라고 부르는 포고를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며, 민중을 협상의 통로로 삼는 대신 전권을 가진 몇 사람을 세워 두어야 하니 그것은 청하러 온 자가 거절당하는 경우에 그가 말을 꺼냈다는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스파르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많은 나라가 넘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코린트인은 이렇게 제 뜻을 밝힌 뒤 제 나라로 돌아갔다.
코린트인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그 제안을 제 정부와 민중에게 보고했고, 아르고스인은 포고를 통과시켜 원하는 그리스 나라라면 어디와도 동맹을 맺을 열두 사람을 뽑되 아테네와 스파르타만은 빼놓았으니, 이 둘은 아르고스 민중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가입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아르고스가 이 계획에 선뜻 들어간 것은 휴전이 곧 만료될 참이라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고, 또 펠로폰네소스의 패권을 쥐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무렵 스파르타는 잇단 재난으로 세상의 평판이 크게 떨어져 있었던 반면, 아르고스인은 아티카 전쟁에 전혀 끼지 않았을뿐더러 도리어 중립으로 크게 이득을 본 터라 더없이 번성한 형편에 있었다. 이리하여 아르고스인은 그리스인 가운데 원하는 자라면 누구든 동맹으로 받아들일 채비를 했다.
스파르타인을 두려워한 나머지 가장 먼저 넘어온 것은 만티네이아인과 그 동맹이었다. 그들은 아테네와의 전쟁을 틈타 아르카디아의 큰 부분을 복속시켜 둔 터라 이제 스파르타가 끼어들 여유가 생겼으니 저희가 차지한 것을 건드리지 않고 두지는 않으리라 생각했고, 그리하여 스파르타인의 오랜 적이자 같은 민주정을 가진 아르고스 같은 강한 도시로 기꺼이 돌아섰다. 만티네이아가 떨어져 나가자 펠로폰네소스의 나머지도 곧바로 그 본을 따르는 것이 옳은지를 두고 술렁이기 시작했으니, 만티네이아인이 그럴 만한 까닭 없이 편을 바꾸지는 않았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여러 이유 가운데서도 스파르타가 아테네와의 조약에 양쪽 당사자, 곧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이 각자의 재량에 따라 조약에 무엇을 더하거나 거기서 빼는 것이 그 맹세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어 둔 것에 화가 나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에 퍼진 공황의 참된 근원은 바로 이 조항이었으니,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저희의 자유를 겨냥해 손을 잡았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조약을 고치는 일은 마땅히 동맹 전체의 동의를 조건으로 삼았어야 했다. 이런 걱정 속에서 나라마다 아르고스와 동맹을 맺으려는 마음이 아주 널리 퍼졌다.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인은 펠로폰네소스에서 동요가 일고 있으며 코린트가 그 장본인이고 코린트 스스로도 아르고스인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꾸며지고 있는 일을 막으려는 뜻으로 그곳에 사절을 보냈다. 사절들은 코린트가 이 모든 일을 일으켰다고 나무라고, 신이나 영웅이 가로막지 않는 한 동맹 다수의 결정이 구속력을 가진다고 분명히 합의해 두었음에도 아테네와의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아 이미 저지른 죄에 맹세를 어긴 죄까지 더하지 않고서는 스파르타를 저버리고 아르고스의 동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린트는 저와 마찬가지로 조약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동맹들을 미리 불러 모아 그 앞에서 답을 내놓았는데, 아테네인에게서 솔리온이나 아낙토리온을 되찾지 못한 일이라든가 제가 손해를 보았다고 여긴 다른 어떤 점이라든가 스스로 호소하는 피해를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고, 트라키아 방면의 동맹을 저버릴 수 없다는 구실 뒤로 몸을 숨겼으니 그들이 포티다이아와 함께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와 그 뒤의 여러 경우에 코린트가 그들에게 따로 제 몫의 보증을 준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코린트는 아테네와의 조약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동맹에게 한 맹세를 어긴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으니, 신들을 두고 트라키아의 벗들에게 맹세한 터라 그들을 정직하게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항의 표현은 "신이나 영웅이 가로막지 않는 한"이었다. 그런데 코린트가 보기에 여기서는 신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것이 코린트가 앞서 한 맹세에 관하여 한 말이었다. 아르고스와의 동맹에 관하여는 벗들과 상의해 옳은 대로 하겠다고 했다. 스파르타 사절들이 제 나라로 돌아가는 참에 마침 코린트에 와 있던 아르고스 사절 몇이 코린트에 더 미루지 말고 동맹을 맺으라고 재촉했으나, 코린트에서 열릴 다음 회의에 참석하라는 답을 들었다.
그 직후에 엘리스 사절단이 이르러, 먼저 코린트와 동맹을 맺고 거기서 받은 지시대로 아르고스로 건너가 아르고스인의 동맹이 되었으니, 그 무렵 엘리스가 스파르타 및 레프레온과 사이가 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레프레온인과 아르카디아인 얼마 사이에 전쟁이 있었는데, 레프레온인이 제 땅의 절반을 주겠다며 불러들인 엘리스인이 그 전쟁을 끝냈고, 땅은 그것을 부치던 레프레온인의 손에 그대로 두되 그들에게 올림피아의 제우스에게 바칠 1탈란톤3의 공납을 물렸다. 레프레온인은 아티카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이 공납을 냈으나 그때 전쟁을 구실 삼아 더는 내지 않았고, 엘리스인이 힘을 쓰자 스파르타에 호소했다. 이리하여 사건은 스파르타의 중재에 부쳐졌으나, 엘리스인은 그 법정이 공정한지 의심스러워 중재를 물리고 레프레온의 영토를 짓밟았다. 그럼에도 스파르타인은 레프레온인이 독립되어 있고 엘리스인이 침략자라고 판정했으며, 엘리스인이 중재에 따르지 않자 레프레온으로 중장보병 수비대를 보냈다. 이에 엘리스인은 스파르타가 저희에게 반기를 든 속국 하나를 받아들였다고 여겨, 동맹국은 저마다 아티카 전쟁에 들어갈 때 가지고 있던 것을 그대로 지닌 채 그 전쟁에서 나온다고 정한 협정을 내세웠고, 정의가 저희에게 베풀어지지 않았다고 보아 아르고스인 쪽으로 넘어갔으며 그 일을 하도록 지시를 받은 사절들을 통해 이제 동맹을 맺었다. 그들 바로 뒤에 코린트인과 트라키아 방면의 칼키디케인이 아르고스의 동맹이 되었다. 한편 함께 움직이던 보이오티아인과 메가라인은 잠자코 있었으니, 스파르타가 그들을 내버려 두어 좋을 대로 하게 했고, 그들은 아르고스의 민주정이 저희의 귀족정과는 스파르타의 국제만큼 잘 맞지 않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거의 같은 무렵에 아테네는 스키오네를 굴복시키는 데 성공해 성인 남자를 죽이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삼았으며 그 땅은 플라타이아인이 살도록 주었다. 아테네는 또 들에서 겪은 불운과 델포이의 신이 내린 명에 움직여 델로스인을 델로스로 데려왔다. 그러는 동안 포키스인과 로크리스인이 싸움을 시작했다. 이제 동맹이 된 코린트인과 아르고스인은 테게아를 스파르타에서 떼어 놓으려고 그곳으로 갔으니, 그만한 무게를 가진 나라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체가 저희 편이 되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게아인이 스파르타를 거스르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때까지 열성을 다하던 코린트인은 움직임을 늦추고 이제 나머지 가운데 아무도 넘어오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들은 보이오티아인에게 가서 아르고스 및 저희와 동맹을 맺고 대체로 함께 움직이자고 설득하려 했고, 또 저희와 함께 아테네로 가서 50년 조약이 맺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테네인과 보이오티아인 사이에 이루어진 것과 같은 열흘 휴전을 저희를 위해 얻어 달라고, 그리고 아테네인이 거절하면 그 휴전을 내던지고 앞으로는 코린트 없이 어떤 휴전도 맺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이것이 코린트인이 청한 바였다. 보이오티아인은 아르고스 동맹에 관하여는 그들을 말렸으나 함께 아테네로 가기는 했는데, 거기서 열흘 휴전을 얻는 데는 실패했으니 아테네인의 대답은 코린트인이 스파르타인의 동맹인 만큼 이미 휴전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보이오티아인은 신의를 저버린다고 코린트인이 빌고 나무랐는데도 제 열흘 휴전을 내던지지 않았고, 코린트인은 아테네와 사실상의 휴전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해 여름 스파르타인은 스파르타의 왕이자 파우사니아스의 아들인 플레이스토아낙스의 지휘 아래 온 병력을 이끌고 아르카디아로 진군해 파라시아인을 쳤으니, 그들은 만티네이아의 속민이었고 그 가운데 한 파벌이 스파르타의 도움을 청해 온 터였다. 스파르타인은 또 할 수만 있다면 만티네이아인이 라코니아의 스키리티스 지구를 괴롭히려고 파라시아 영토에 세워 수비대를 둔 킵셀라 요새를 헐어 버릴 작정이었다. 이리하여 스파르타인은 파라시아 땅을 짓밟았고, 만티네이아인은 제 도시를 아르고스 수비대의 손에 맡긴 뒤 저희 동맹을 지키는 데 나섰으나 킵셀라도 파라시아의 도시들도 구할 수 없어 만티네이아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인은 파라시아인을 독립시키고 그 요새를 허문 뒤 제 나라로 돌아갔다.
그해 여름 브라시다스와 함께 나갔던 트라키아의 병사들이 돌아왔으니, 조약이 맺어진 뒤에 클레아리다스가 그곳에서 데려온 것이다. 스파르타인은 브라시다스와 함께 싸운 헬롯4을 자유민으로 삼고 원하는 곳에서 살게 한다고 포고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네오다모데이스5와 함께 라코니아와 엘리스의 접경에 자리 잡은 레프레온에 정착시켰으니, 이 무렵 스파르타는 엘리스와 사이가 틀어져 있었다. 그러나 섬에서 사로잡혀 무기를 내놓았던 스파르타 시민6들은 저희가 겪은 불운 탓에 어떤 격하를 당하리라 여겨, 시민권을 그대로 가진 채로 두면 변란을 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그 가운데 더러가 그때 공직에 있었음에도 곧바로 시민권을 잃어, 공직을 맡거나 무엇을 사고파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들에게 시민권이 되돌아왔다.
그해 여름 디온인이 아토스 곁 악테에 있으며 아테네와 동맹을 맺고 있던 도시 티소스를 차지했다. 이해 여름 내내 아테네인과 펠로폰네소스인 사이의 왕래는 이어졌으나, 조약에 적힌 곳들이 돌려지지 않은 탓에 조약이 맺어진 직후부터 양쪽이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먼저 암피폴리스와 그 밖의 도시들을 돌려주는 일이 제 몫으로 떨어져 있던 스파르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스파르타는 트라키아 방면의 동맹에게도 보이오티아인이나 코린트인에게도 조약을 받아들이게 하지 못한 것이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이 더 오래 거부하면 아테네와 손잡고 따르게 만들겠다고 줄곧 약속하면서도 그러했다. 스파르타는 또 그때까지도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양쪽 모두의 적으로 선포할 시한을 거듭 못 박으면서도, 문서로 된 어떤 합의로도 스스로를 묶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인은 이 약속들 가운데 무엇도 실제로 이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스파르타가 품은 뜻이 정직한지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필로스를 돌려 달라는 스파르타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섬에서 데려온 포로를 내준 것을 뉘우치고 스파르타 몫의 조약이 이행될 때까지 그 밖의 곳들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스파르타는 스파르타대로 제 손에 있던 아테네 전쟁 포로를 내주고 트라키아에서 물러나고 그 밖에 제 힘이 닿는 일은 다 했으니 할 수 있는 바를 했다고 말했다. 암피폴리스를 돌려주는 것은 제 힘 밖의 일이지만, 보이오티아인과 코린트인을 조약에 끌어들이고 파낙톤을 되찾고 보이오티아에 있는 아테네 전쟁 포로를 모두 돌려보내도록 애써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파르타는 필로스를 돌려주든지, 아니면 적어도 제 군대가 트라키아에서 물러난 것처럼 메세니아인과 헬롯을 그곳에서 물리고 필요하다면 아테네인 자신이 그곳에 수비대를 두라고 요구했다. 여름 내내 여러 차례 회담을 거듭한 끝에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설득해 필로스에서 메세니아인과 나머지 헬롯과 라코니아에서 도망해 온 자들을 물리게 하는 데 성공했고, 스파르타는 이들을 케팔레니아의 크라니이에 정착시켰다. 이리하여 이해 여름에는 두 민족 사이에 평화와 왕래가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겨울에는 조약을 맺을 당시의 감독관들이 더는 자리에 있지 않았고, 그 뒤를 이은 자들 가운데 더러는 조약에 정면으로 반대했다. 이제 스파르타 동맹에서 사절단이 이르렀고 아테네인과 보이오티아인과 코린트인도 스파르타에 나타났는데, 저희끼리 많은 논의를 하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저마다 제 나라로 흩어졌다. 그때 조약을 깨뜨리기를 누구보다 바라던 두 감독관 클레오불로스와 크세나레스가 이 기회를 틈타 보이오티아인 및 코린트인과 몰래 이야기를 나누어, 되도록 함께 움직이라고 권하면서 먼저 보이오티아인에게 아르고스와 동맹을 맺은 다음 저희와 아르고스인을 함께 스파르타와의 동맹으로 끌어들여 보라고 일러 주었다. 그렇게 하면 보이오티아인이 아티카 조약에 들어오도록 강요당할 가능성이 가장 낮아질 것이고, 스파르타인은 아테네와 적대하고 조약이 깨지는 값을 치르더라도 아르고스의 우호와 동맹을 얻는 쪽을 더 좋아하리라는 것이었다. 보이오티아인은 아르고스와의 떳떳한 우호가 오래전부터 스파르타의 바람이었음을 알고 있었으니, 스파르타인은 그렇게 되면 펠로폰네소스 바깥에서 전쟁을 치르기가 훨씬 수월해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두 감독관은 보이오티아인에게 파낙톤을 스파르타의 손에 맡겨 달라고 청했으니, 할 수만 있다면 그것과 바꾸어 필로스를 얻고 그리하여 아테네와 싸움을 다시 벌일 처지에 더 가까이 서려는 것이었다.
스파르타에 있는 크세나레스와 클레오불로스와 그 벗들에게서 제 정부에 전할 이 지시를 받은 뒤 보이오티아인과 코린트인은 길을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아르고스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이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과 합류했는데, 이 두 사람은 보이오티아인이 코린트인·엘리스인·만티네이아인과 함께 아르고스의 동맹이 될 수 있겠는지를 떠보았으니, 그 일이 이루어진다면 이렇게 뭉친 힘으로 스파르타를 상대로든 다른 어떤 세력을 상대로든 저희 뜻대로 화약을 맺거나 전쟁을 벌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보이오티아 사절들은 스파르타에 있는 제 벗들이 하라고 일러 준 바로 그 일을 뜻밖에도 남에게서 청받는 것을 듣고 기뻐했고, 두 아르고스인은 제 제안이 받아들일 만하게 여겨지는 것을 알아채고 보이오티아인에게 사절을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떠났다. 보이오티아인은 제 나라에 이르자 스파르타에서 들은 말과 저희를 만난 아르고스인이 한 말을 보이오타르케스7에게 보고했고, 보이오타르케스는 그 생각을 반겼거니와 스파르타에 있는 제 벗들이 바라던 바로 그것을 아르고스가 청해 온 운 좋은 우연에 더욱 기꺼워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얼마 뒤 아르고스에서 사절들이 앞서 말한 제안을 가지고 나타났고, 보이오타르케스는 그 조건을 옳다고 보아 동맹을 매듭지을 사절을 아르고스로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사절들을 돌려보냈다.
그러는 동안 보이오타르케스와 코린트인과 메가라인과 트라키아에서 온 사절들은 먼저 저희끼리 맹세를 주고받아 언제든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돕고 함께가 아니면 전쟁도 화약도 맺지 않기로 하고, 그런 뒤에 함께 움직이는 보이오티아인과 메가라인이 아르고스와 동맹을 맺기로 정했다. 그러나 맹세를 주고받기에 앞서 보이오타르케스는 이 제안을 최고 권력이 놓여 있는 보이오티아의 네 평의회에 알리고, 보이오티아인과 방어 동맹에 들어오려는 도시라면 어디와도 맹세를 주고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보이오티아 평의회의 의원들은 동맹을 저버린 코린트와 한편이 되어 스파르타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 두려워 그 제안에 동의하기를 거부했다. 보이오타르케스가 스파르타에서 오간 일과 클레오불로스와 크세나레스와 그곳의 보이오티아 편 사람들이 준 조언, 곧 스파르타와 손잡는 데로 가는 첫걸음으로 코린트 및 아르고스의 동맹이 되라던 조언을 평의회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은 이 일을 말하지 않더라도 평의회가 보이오타르케스가 정하고 권한 바를 거슬러 표를 던지지는 않으리라 여겼던 탓이다. 이 난관이 생기자 코린트인과 트라키아에서 온 사절들은 아무것도 매듭짓지 못한 채 떠났고, 이 일을 이룬 뒤에 아르고스와의 동맹을 성사시켜 보려던 보이오타르케스는 이제 아르고스 문제를 평의회에 내놓지도 약속했던 사절을 아르고스로 보내지도 않았으니, 이 일에는 전반적으로 냉담함과 지체가 뒤따랐다.
바로 그해 겨울에 메키베르나가 올린토스인의 공격을 받아 떨어졌으니, 그 안에는 아테네 수비대가 있었다.
그동안 내내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 사이에는 양쪽이 아직 쥐고 있는 정복지를 두고 협상이 오가고 있었는데,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보이오티아인에게서 파낙톤을 되찾는다면 저도 필로스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 바라고 이제 보이오티아인에게 사절을 보내어 파낙톤과 저희가 가진 아테네 포로를 제 손에 맡겨 달라고, 그리하여 그것들을 필로스와 바꾸게 해 달라고 청했다. 보이오티아인은 스파르타가 아테네와 맺은 것처럼 저희와도 따로 동맹을 맺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스파르타는 어느 쪽도 다른 쪽 없이 화약을 맺거나 전쟁을 벌이지 않기로 합의해 둔 터라 이것이 아테네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필로스와 바꾸기를 바라던 파낙톤을 얻고 싶었고 조약을 깨자고 몰아붙이던 쪽이 보이오티아와의 관계에 강하게 마음이 쏠려 있던 터라, 스파르타는 마침내 겨울이 봄으로 넘어갈 무렵에 그 동맹을 맺었으며 파낙톤은 곧바로 헐렸다. 이리하여 전쟁 제11년이 끝났다.
이듬해 여름 첫머리에 아르고스인은 보이오티아에서 오기로 약속된 사절이 이르지 않는 것과 파낙톤이 헐리고 있는 것과 보이오티아인과 스파르타인 사이에 따로 동맹이 맺어진 것을 보고, 아르고스만 홀로 남겨지고 동맹 전체가 스파르타 쪽으로 넘어갈까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이오티아인이 스파르타인의 설득에 넘어가 파낙톤을 헐고 아테네인과의 조약에 들어간 것이며 아테네도 이 합의를 알고 있으니 아테네와의 동맹마저 이제는 저희에게 열려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스파르타와의 조약이 이어지지 않을 경우에 양쪽 사이에 있는 불화를 믿고 아르고스인이 줄곧 기대 온 방책이었다. 이 궁지에서 아르고스인은 스파르타와의 조약을 갱신하기를 거부하고 펠로폰네소스의 패권을 바란 끝에 스파르타인과 테게아인과 보이오티아인과 아테네인을 한꺼번에 상대하게 될까 두려워, 이제 서둘러 에우스트로포스와 아이손을 스파르타에 사절로 보냈으니 이들이 가장 환영받을 만한 사람들로 보였기 때문이며, 그 뜻은 얻을 수 있는 조건이라면 어떤 조건으로든 스파르타인과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조약을 맺어 평온히 지내려는 것이었다.
스파르타에 이른 아르고스 사절들은 맺고자 하는 조약의 조건을 두고 협상에 들어갔다. 아르고스인이 먼저 요구한 것은 키누리아 땅 문제를 어느 나라나 어느 개인의 중재에 부치게 해 달라는 것이었으니, 그 땅은 양쪽이 예로부터 늘 다투어 온 접경의 한 조각으로 티레아와 안테네 두 도시를 품고 있으며 스파르타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스파르타인은 처음에는 이 점을 논의에 부칠 수 없으며 예전 조건대로 맺을 뜻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끝내 아르고스 사절들은 스파르타인에게서 이런 양보를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우선은 50년 휴전을 두되, 스파르타에도 아르고스에도 역병이나 전쟁이 없는 때라면 어느 쪽이든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어 이 땅 문제를 싸움으로 가릴 수 있게 하며, 그것은 양쪽이 다 이겼다고 주장한 예전의 경우와 같은 방식이되 아르고스나 스파르타의 국경 너머로 뒤쫓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파르타인은 처음에는 이것이 어리석은 소리일 뿐이라고 여겼으나, 마침내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아르고스의 우호를 얻고 싶었던 터라 요구받은 조건에 동의하고 그것을 글로 적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무엇이든 구속력을 갖기에 앞서 사절들은 아르고스로 돌아가 제 민중에게 알리고, 민중이 옳다고 하면 히아킨티아8 축제 때 와서 맹세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사절들이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아르고스인이 이 협상에 매달려 있을 때, 보이오티아인에게서 포로를 받아 그들과 파낙톤을 아테네인에게 돌려주기로 되어 있던 스파르타 사절 안드로메데스와 파이디모스와 안티메니다스는 보이오티아인이 이미 스스로 파낙톤을 헐어 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구실은 그 일을 두고 다툼이 있은 뒤에 예로부터 저희 백성과 아테네인 사이에 맹세가 오갔는데 그 맹세가 어느 쪽도 그곳에 살지 않고 함께 가축을 먹이게 한다는 것이었다는 말이었다. 보이오티아인의 손에 있던 아테네 전쟁 포로는 안드로메데스와 그 동료들에게 넘겨졌고, 그들이 아테네로 데려가 돌려주었다. 사절들은 동시에 파낙톤이 헐렸음을 알렸으니, 그곳이 더는 아테네의 적을 들이지 않을 터라 그들이 보기에 그것은 돌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테네인은 이 통고를 크게 분개하며 받아들였으니, 스파르타인이 저희를 속였다고 여겼기 때문이며, 그것은 서 있는 채로 돌려주었어야 할 파낙톤을 헐어 버린 일에서도 그러하고 조약에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따르게 만드는 데 아테네와 함께하겠다고 앞서 약속해 놓고도 이제 들은 대로 보이오티아인과 따로 동맹을 맺은 일에서도 그러했다. 아테네인은 스파르타가 제 약정을 지키지 못한 다른 점들도 아울러 헤아렸고, 저희가 속아 넘어갔다고 여겨 사절들에게 노여운 답을 주어 돌려보냈다.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 사이의 틈이 이만큼 벌어지자 아테네에서도 조약을 무르고자 하던 쪽이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으뜸은 클레이니아스의 아들 알키비아데스였으니, 다른 어느 그리스 도시에서라면 아직 나이가 어린 사람이었으나 가문의 빛나는 명성으로 두드러진 자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아르고스와의 동맹이 참으로 더 낫다고 보았으되, 개인의 앙심이 그가 조약에 맞선 데 크게 작용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스파르타인이 니키아스와 라케스를 통해 조약을 협상하면서 저가 젊다는 이유로 저를 지나쳐 버린 것에, 또 제 조부가 내놓은 뒤로 프록세노스9로서 제 가문이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인연에 마땅히 보였어야 할 존중을 보이지 않은 것에 언짢아하고 있었는데, 그 인연은 그가 섬에서 사로잡힌 그들의 포로를 돌보아 줌으로써 얼마 전 스스로 되살려 볼 생각을 하던 터였다. 이렇게 사방에서 홀대받았다고 여긴 그는 처음부터 조약에 반대해, 스파르타인은 믿을 만한 자들이 아니며 그들이 조약을 맺은 것은 오직 이를 빌미로 아르고스를 짓밟은 뒤에 아테네를 홀로 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위의 일이 벌어지자마자 그는 아르고스인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어 만티네이아인과 엘리스인을 데리고 동맹을 제안하러 되도록 빨리 아테네로 오라고 일렀으니, 때가 무르익었고 저도 그들을 돕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르고스인은 이 전갈을 받고 아테네인이 보이오티아 동맹을 알고 있기는커녕 스파르타인과 심각한 다툼에 얽혀 있음을 알게 되자, 조약 문제로 방금 스파르타에 보낸 사절단에는 더 마음을 쓰지 않고 오히려 아테네인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니, 전쟁이 벌어질 경우에 이렇게 하면 아르고스의 오랜 동맹일 뿐 아니라 같은 민주정이며 바다에서 매우 강한 도시를 제 편에 두게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곧바로 동맹을 맺으러 아테네로 사절을 보냈고, 엘리스와 만티네이아에서 온 사절들이 그들과 함께 갔다.
같은 무렵 스파르타에서 아테네인에게 호의를 품었다고 알려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절단, 곧 필로카리다스와 레온과 엔디오스가 서둘러 이르렀으니, 아테네인이 화가 난 나머지 아르고스인과 동맹을 맺을까 두려웠기 때문이고, 또 파낙톤과 바꾸어 필로스를 돌려 달라고 청하고 보이오티아인과의 동맹을 변호하여 그것이 아테네인을 해치려고 맺은 것이 아님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사절들이 평의회에서 이 점들을 두고 말하면서 저희가 양쪽 사이에 걸린 다른 모든 문제를 매듭지을 전권을 가지고 왔다고 밝히자, 알키비아데스는 그들이 이 말을 민회에서 되풀이하면 다수를 얻어 아르고스와의 동맹이 물리쳐질까 두려워 다음과 같은 꾀를 썼다. 그는 스파르타인에게 민회에서 전권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저가 필로스를 그들에게 돌려주겠고(그 반환에 지금 반대하고 있는 저 자신이 아테네인에게서 그것을 얻어 내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다른 걸린 문제들도 매듭지어 주겠다고 엄숙히 다짐하여 그들을 설득했다. 그의 계획은 그들을 니키아스에게서 떼어 놓고, 그들이 품은 뜻에 진실함이 없고 말에 최소한의 일관성조차 없는 자들임을 드러내어 민중 앞에서 망신을 주며, 그리하여 아르고스인과 엘리스인과 만티네이아인을 동맹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들어맞았다. 사절들이 민중 앞에 나서서 물음을 받았을 때 평의회에서 한 것과 달리 전권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지 않자, 아테네인은 참을성을 모두 잃었고 여느 때보다 더 우렁차게 스파르타인을 성토한 알키비아데스에게 휩쓸려 곧바로 아르고스인과 그 일행을 들여 동맹으로 받아들일 참이었다. 그러나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지진이 일어나 이 민회는 미루어졌다.
이튿날 열린 민회에서 니키아스는 스파르타인이 스스로 속아 넘어간 데다 전권을 가지고 왔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저까지 속게 내버려 두었음에도, 여전히 스파르타인과 벗으로 지내는 것이 가장 좋으며 아르고스의 제안은 미루어 두고 스파르타에 한 번 더 사람을 보내어 그 뜻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을 미루는 것은 저희의 위세를 높이고 맞수의 위세를 해칠 뿐이니, 저희 형편이 더없이 좋은 만큼 이 번영을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지키는 것이 저희에게 이로운 반면 스파르타의 형편은 너무나 절박해 그쪽으로서는 운을 다시 시험해 보는 것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저를 포함한 사절을 보내도록 아테네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으니, 스파르타인이 참으로 진실하다면 파낙톤을 온전한 모습으로 암피폴리스와 함께 돌려주고 보이오티아인이 조약에 들어오는 데 동의하지 않는 한 그들과의 동맹을 버리라고, 어느 쪽도 다른 쪽 없이 협상하지 못하게 한 약정에 따라 그리하라고 청하려는 것이었다. 사절들은 또 아테네인이 거짓을 부리려 했다면 이미 아르고스인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으며 실제로 아르고스인이 바로 그 일로 아테네에 와 있다고 말하도록 지시받았고, 아테네인이 내놓을 그 밖의 불만에 관한 지시도 받아 떠났다. 스파르타에 이른 사절들은 받은 지시를 전했고, 보이오티아인이 조약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에 스파르타인이 그들과의 동맹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테네인은 아테네인대로 아르고스인 및 그 벗들과 손을 잡겠다는 말로 끝맺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보이오티아와의 동맹을 버리기를 거부했으니, 감독관 크세나레스의 무리와 그 견해를 함께하는 자들이 이 점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 망신당하기를 두려워한 니키아스의 청에 따라 맹세를 갱신해 주었는데, 그것이 참으로 그가 맞은 운명이었으니 그는 스파르타와의 조약을 만든 장본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가 돌아와 스파르타에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아테네인이 듣자 그들은 화를 터뜨렸고, 저희에게 신의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알키비아데스가 들여놓은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이 와 있는 것을 이용해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그들과 조약과 동맹을 맺었다.
아테네인과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과 엘리스인은 저희 자신과 저마다의 지배 아래 있는 동맹을 대신하여 100년 조약을 맺으니,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속임도 해침도 없어야 한다.
1. 아르고스인·엘리스인·만티네이아인과 그 동맹이 아테네인이나 아테네의 지배 아래 있는 동맹을 상대로, 또는 아테네인과 그 동맹이 아르고스인·엘리스인·만티네이아인이나 그 동맹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일은 어떤 방식이나 수단으로도 허용되지 않는다.
아테네인과 아르고스인과 엘리스인과 만티네이아인은 다음 조건으로 100년 동안 동맹이 된다.
2. 어떤 적이든 아테네인의 나라를 침입하면, 아르고스인과 엘리스인과 만티네이아인은 아테네인이 전갈로 요청하는 바에 따라 제 힘이 닿는 한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테네를 구원하러 간다. 다만 침입자가 그 땅을 약탈한 뒤에 떠나 버린 경우에는, 그 죄를 지은 나라를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과 엘리스인과 아테네인의 적으로 삼아 이 도시들이 모두 그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위의 도시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는 한 어느 한 도시도 그 나라와 화약을 맺을 수 없다.
3. 마찬가지로 어떤 적이든 엘리스나 만티네이아나 아르고스의 나라를 침입하면, 아테네인은 위의 도시들이 전갈로 요청하는 바에 따라 제 힘이 닿는 한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르고스와 만티네이아와 엘리스를 구원하러 간다. 다만 침입자가 그 땅을 약탈한 뒤에 떠나 버린 경우에는, 그 죄를 지은 나라를 아테네인과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과 엘리스인의 적으로 삼아 이 도시들이 모두 그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위의 도시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는 한 그 나라와 화약을 맺을 수 없다.
4. 어떤 무장 병력도 적대할 뜻으로 조약을 맺은 세력이나 저마다의 지배 아래 있는 동맹의 나라를 지나가거나 바닷길로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다만 모든 도시, 곧 아테네와 아르고스와 만티네이아와 엘리스가 그 통과에 찬성표를 던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5. 구원하러 간 병력은 그들을 요청한 도시에 이른 날부터 30일 동안 그들을 보낸 도시가 부양하며, 돌아갈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한다. 그 복무가 더 오래 필요하면 그들을 부른 도시가 부양하되, 중장보병과 궁수와 경보병에게는 하루에 아이기나 오볼로스10 3닢, 기병에게는 아이기나 드라크메 1닢의 비율로 한다.
6. 전쟁이 제 나라에서 벌어지는 경우에는 병력을 부른 도시가 지휘권을 가진다. 다만 도시들이 함께 원정에 나서기로 정하는 경우에는 지휘권을 모든 도시가 똑같이 나눈다.
7. 이 조약은 아테네인이 저희 자신과 그 동맹을 대신하여,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과 엘리스인과 그 동맹이 나라마다 저마다 맹세한다. 저마다 다 자란 제물을 놓고 제 나라에서 가장 구속력이 큰 맹세로 맹세하며, 맹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 동맹과 그 조항을 정의롭게, 흠 없이, 진실하게 지키며 어떤 방식이나 수단으로도 그것을 어기지 않겠다."
맹세는 아테네에서는 평의회와 정무관들이 하되 프리타니스11가 이를 주관하고, 아르고스에서는 평의회와 '80인'과 아르티나이가 하되 '80인'이 이를 주관하며, 만티네이아에서는 데미우르고이와 평의회와 그 밖의 정무관들이 하되 테오로이와 폴레마르코스가 이를 주관하고, 엘리스에서는 데미우르고이와 정무관들과 '600인'이 하되 데미우르고이와 테스모필라케스12가 이를 주관한다. 맹세의 갱신은 아테네인이 올림피아 경기가 열리기 30일 전에 엘리스와 만티네이아와 아르고스로 가서 하고,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과 엘리스인이 판아테나이아13 대제가 열리기 열흘 전에 아테네로 가서 한다. 조약의 조항과 맹세와 동맹은 아테네인이 아크로폴리스에, 아르고스인이 장터의 아폴론 신전에, 만티네이아인이 장터의 제우스 신전에 돌기둥을 세워 새긴다. 그리고 청동 기둥 하나를 곧 열릴 올림피아 경기에서 그들이 함께 세운다. 위의 도시들이 이 조항에 무엇을 더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면, 위의 도시들이 모두 함께 의논한 뒤에 합의하는 바는 무엇이든 구속력을 가진다.
이렇게 조약과 동맹이 맺어졌음에도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 사이의 조약은 어느 쪽도 파기하지 않았다. 한편 코린트는 아르고스인의 동맹이면서도 이 새 조약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에 앞서 엘리스인과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 사이에 맺어진 공수 동맹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코린트는 방어만을 위한 것으로서 서로 돕게 하되 함께 남을 치도록 묶지는 않는 첫 동맹으로 만족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이리하여 코린트인은 제 동맹들과 거리를 두고 다시 스파르타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그해 여름에 열린 올림피아 경기에서는 아르카디아인 안드로스테네스가 레슬링과 권투를 겸한 종목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는데, 이 경기에서 스파르타인은 엘리스인에게 신전 출입을 막혀 제물을 바치지도 겨루지도 못했으니, 엘리스인이 올림피아의 법에 정해진 벌금을 물렸으나 스파르타인이 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엘리스인은 스파르타인이 올림피아 휴전 기간에 피르코스 요새를 치고 제 중장보병을 레프레온에 들여보냈다고 주장했다. 벌금의 액수는 2,000므나14로, 법이 정한 대로 중장보병 한 사람에 2므나였다. 스파르타인은 사절을 보내어 그 부과가 부당하다고 항변하면서, 중장보병을 보냈을 때 스파르타에는 아직 휴전이 선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스인은 저희와 맺은 휴전이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고(엘리스인은 그것을 저희 사이에서 먼저 선포한다) 단언하면서, 저희가 평화로운 때처럼 조용히 지내며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고 있는데 스파르타인의 공격이 불시에 닥쳤다고 했다. 이에 스파르타인은 엘리스인이 참으로 저희가 공격을 저질렀다고 믿었다면 그 뒤에 스파르타에서 휴전을 선포한 것은 쓸데없는 일이었을 텐데도 엘리스인이 그런 일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는 듯이 선포를 했으며 그때부터 스파르타인은 엘리스의 나라를 조금도 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엘리스인은 공격이 저질러지지 않았다는 말에는 무엇으로도 설득되지 않으리라던 제 말을 굽히지 않았고, 다만 스파르타인이 레프레온을 돌려준다면 저희 몫의 돈은 포기하고 신의 몫은 그들을 대신해 내주겠다고 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엘리스인은 두 번째 것을 내놓았다. 레프레온을 돌려주는 것에 반대한다면 그 대신에, 스파르타인이 그토록 신전에 들어가기를 바라니 올림피아의 제우스 제단에 올라가 벌금을 뒷날 반드시 내겠다고 그리스인 앞에서 맹세하라는 것이었다. 이것마저 거부되자 스파르타인은 신전과 제사와 경기에서 배제되어 제 나라에서 제물을 바쳤고, 참석하지 않은 다른 그리스인은 레프레온인뿐이었다. 그래도 엘리스인은 스파르타인이 힘으로 제물을 바칠까 두려워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중장보병 부대를 두어 지켰고, 아르고스인 1,000명과 같은 수의 만티네이아인이 그들과 합류했으며 축제 동안 하르피나에 머무른 아테네 기병도 얼마 있었다. 모여든 무리 사이에는 스파르타인이 무장하고 들어올까 하는 두려움이 컸으니, 아르케실라오스의 아들인 스파르타인 리카스가 경기장에서 심판들에게 매를 맞은 뒤로 더욱 그러했다. 그가 매를 맞은 것은 제 말들이 이겼는데 그에게 출전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보이오티아 백성이 우승자로 선포되자, 그 전차가 제 것임을 보이려고 경기장으로 나아가 마부에게 관을 씌워 주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은 뒤로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워하며 소동이 일어나리라 굳게 내다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본 대로 스파르타인은 잠자코 있어 축제가 지나가게 두었다. 올림피아 경기가 끝난 뒤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은 코린트로 가서 저희 편으로 넘어오라고 청했다. 거기서 그들은 스파르타 사절 몇을 만났고 오랜 논의가 이어졌으나,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결국 아무 결말도 없이 저마다 제 나라로 흩어졌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이듬해 겨울에는 트라키니아의 헤라클레이아인과 아이니아니아인·돌로피아인·말리스인과 테살리아인 얼마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으니, 이들은 모두 그 도시와 접경해 있으면서 제 나라를 곧바로 위협하는 그곳에 적대하던 부족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 도시가 세워진 바로 그때부터 제 힘이 닿는 온갖 수단으로 그곳에 맞서고 그곳을 괴롭혀 온 끝에, 이제 이 싸움에서 헤라클레이아인을 무찔렀고 그들의 스파르타 지휘관인 크니디스의 아들 크세나레스가 죽은 자들 가운데 있었다. 이리하여 겨울이 끝나고 이 전쟁의 제12년도 함께 끝났다. 이 싸움 뒤에 헤라클레이아는 형편이 너무나 참혹하게 기울어, 이듬해 여름 첫머리에 보이오티아인이 그곳을 차지하고 스파르타인 아게십피다스를 잘못 다스렸다는 이유로 내보냈으니, 스파르타인이 펠로폰네소스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그 도시가 아테네인에게 떨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파르타인은 그들이 한 일에 언짢아했다.
그해 여름 이제 아테네의 장군 가운데 하나가 된 클레이니아스의 아들 알키비아데스는 아르고스인 및 그 동맹과 손발을 맞추어, 아테네 중장보병과 궁수 얼마와 지나는 길에 거두어들인 그 지방 동맹의 병력 얼마를 데리고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갔고, 이 군대를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이곳저곳을 누비며 동맹과 얽힌 여러 일을 처리했으며, 그 가운데 파트라이인을 설득해 성벽을 바다까지 내려 쌓게 했고 저도 아카이아의 리온 가까이에 요새를 세울 작정이었다. 그러나 코린트인과 시키온인과 그것이 세워지면 손해를 볼 그 밖의 모든 자가 올라와 그를 막았다.
그해 여름 에피다우로스인과 아르고스인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구실은 에피다우로스인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도 저희 목초지에 대한 봉헌물을 아폴론 피타이오스에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었으니, 그 신전의 관리를 주로 맡고 있는 것은 아르고스인이었다. 그러나 이 구실과는 별개로 알키비아데스와 아르고스인은 할 수만 있다면 에피다우로스를 손에 넣어 코린트의 중립을 확실히 해 두고, 아테네인이 스킬라이온을 돌아 배를 몰아야 하는 경우보다 아이기나에서 오는 증원 부대에게 더 짧은 길을 내어 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이리하여 아르고스인은 봉헌물을 받아 내려고 저희 힘만으로 에피다우로스를 칠 채비를 했다.
같은 무렵 스파르타인은 아르키다모스의 아들 아기스의 지휘 아래 온 백성을 이끌고 리카이온산 맞은편 제 접경의 레욱트라로 나아갔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니 병력을 보낸 도시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국경을 넘기에 앞서 바친 제사가 길하지 않은 것으로 나오자 스파르타인은 저희는 제 나라로 돌아가면서 동맹에게는 다음 달이 지난 뒤에 진군할 채비를 하고 있으라고 전갈을 보냈는데, 그 달은 마침 도리스인에게 거룩한 때인 카르네이오스 달15이었다. 스파르타인이 물러가자 아르고스인은 카르네이오스 앞 달의 마지막 날에서 사흘 앞선 날에 나아갔고, 밖에 나가 있는 내내 그날을 그대로 붙들어 두면서 에피다우로스를 쳐서 약탈했다. 에피다우로스인은 제 동맹에게 도우러 오라고 불렀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그달을 구실로 내세웠고 더러는 에피다우로스의 접경까지 와서 거기 머무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르고스인이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동안 아테네인의 초청으로 여러 도시의 사절단이 만티네이아에 모였다. 회담이 시작되자 코린트인 에우파미다스는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말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그들이 앉아서 화평을 의논하고 있는 사이에 에피다우로스인과 그 동맹과 아르고스인이 무장하고 서로 맞서 늘어서 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양쪽에서 대표를 보내어 두 군대를 갈라 놓고 그런 뒤에 화평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고 했다. 이 제안에 따라 그들은 가서 아르고스인을 에피다우로스에서 데리고 돌아왔고 그 뒤에 다시 모였으나 결론에 이르는 데는 조금도 더 나아가지 못했으며, 아르고스인은 두 번째로 에피다우로스를 쳐서 그 땅을 약탈했다. 스파르타인도 카리아이로 나아갔으나 국경의 제사가 다시 길하지 않은 것으로 나오자 되돌아갔고, 아르고스인은 에피다우로스 영토의 3분의 1쯤을 짓밟은 뒤 제 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 중장보병 1,000명이 알키비아데스의 지휘 아래 그들을 도우러 와 있었으나, 스파르타의 원정이 끝나 저희가 더는 필요하지 않음을 알고 다시 돌아갔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갔다. 이듬해 겨울에 스파르타인은 아테네인의 감시를 따돌리고 아게십피다스의 지휘 아래 수비대 300명을 에피다우로스에 들여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에 아르고스인은 아테네인에게 가서, 동맹이 적을 제 나라로 지나가게 두지 못하도록 한 조약의 조항이 있는데도 아테네인이 적을 바닷길로 지나가게 두었다고 따졌다. 그러므로 아테네인이 이제 스파르타인을 괴롭히도록 메세니아인과 헬롯을 필로스에 들여놓지 않는다면 저희 아르고스인은 저희에게 신의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여기겠다는 것이었다. 아테네인은 알키비아데스의 설득에 따라 라코니아 기둥 아래쪽에 스파르타인이 제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고 새기고 크라니이에 있는 헬롯을 필로스로 옮겨 그 땅을 약탈하게 했으나, 그 밖의 일에서는 전처럼 잠자코 있었다. 이해 겨울 동안 아르고스인과 에피다우로스인 사이에 싸움이 이어졌으나 제대로 진을 친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고 습격과 매복만 있었을 뿐이어서, 잃은 것은 적었고 그것도 이쪽저쪽에 번갈아 떨어졌다. 겨울이 저물어 봄으로 접어들 무렵에 아르고스인은 사다리를 지고 에피다우로스로 갔으니, 전쟁 탓에 그곳이 지키는 자 없이 비어 있어 들이쳐 차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리하여 겨울이 끝나고 전쟁 제13년도 함께 끝났다.
이듬해 여름 한가운데에 스파르타인은 제 동맹인 에피다우로스인이 곤경에 빠져 있고 펠로폰네소스의 나머지도 반기를 들거나 마음이 떠나 있는 것을 보고, 이 병폐가 번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이제야말로 끼어들 때라고 판단했으며, 그리하여 헬롯까지 포함한 온 병력을 이끌고 스파르타의 왕인 아르키다모스의 아들 아기스의 지휘 아래 아르고스를 치러 나섰다. 테게아인과 스파르타의 다른 아르카디아 동맹도 이 원정에 함께했다. 펠로폰네소스의 나머지 지역과 바깥에서 온 동맹은 플리우스에 모였으니, 보이오티아인은 중장보병 5,000명과 같은 수의 경보병과 기병 500명과 같은 수의 말에서 내려 싸우는 병사를 데려왔고, 코린트인은 중장보병 2,000명을 데려왔으며, 나머지는 저마다 형편 되는 대로였고, 플리우스인은 군대가 제 나라에 있었던 만큼 온 병력을 냈다.
스파르타인의 준비는 처음부터 아르고스인에게 알려져 있었으나, 아르고스인은 적이 플리우스에서 나머지와 합류하러 길에 오를 때까지 나서지 않았다. 만티네이아인과 그 동맹, 그리고 엘리스 중장보병 3,000명의 증원을 받아 그들은 나아가 아르카디아의 메티드리온에서 스파르타인과 맞닥뜨렸다. 양쪽은 저마다 언덕에 자리를 잡았고, 아르고스인은 스파르타인이 홀로 있는 동안에 싸움을 걸 채비를 했다. 그러나 아기스는 밤중에 진을 거두어 그들을 따돌리고 플리우스에서 나머지 동맹과 합류하러 나아갔다. 아르고스인은 동이 틀 무렵에 이를 알아채고 먼저 아르고스로 갔다가 네메아 길로 나아갔으니,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이 그 길로 내려오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기스는 그들이 예상한 이 길을 잡는 대신 스파르타인과 아르카디아인과 에피다우로스인에게 명령을 내리고 험한 다른 길로 나아가 아르고스 평원으로 내려갔다. 코린트인과 펠레네인과 플리우스인은 또 다른 가파른 길로 나아갔고, 보이오티아인과 메가라인과 시키온인은 아르고스인이 진을 치고 있는 네메아 길로 내려오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적이 평원으로 나아가 아기스의 병력을 치면 저희 기병으로 그 뒤를 들이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배치를 마친 뒤 아기스는 평원으로 쳐들어가 사민토스를 비롯한 여러 곳을 짓밟기 시작했다.
이를 알아챈 아르고스인은 이제 날이 밝은 뒤에 네메아에서 올라왔다. 오는 길에 그들은 플리우스인과 코린트인의 병력과 맞닥뜨려 플리우스인 얼마를 죽였고 저희 쪽 사람은 그보다 조금 더 코린트인에게 죽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보이오티아인과 메가라인과 시키온인은 지시대로 네메아로 나아갔으나 아르고스인이 더는 그곳에 없음을 알았으니, 아르고스인은 제 재산이 짓밟히는 것을 보고 내려가 이제 싸움을 위해 대열을 짜고 있었고 스파르타인도 그 본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고스인은 이제 완전히 에워싸였다. 평원 쪽에서는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이 그들을 제 도시에서 갈라놓았고, 그들 위쪽에는 코린트인과 플리우스인과 펠레네인이 있었으며, 네메아 쪽에는 보이오티아인과 시키온인과 메가라인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군대에는 기병이 없었으니, 동맹 가운데 아테네인만이 아직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의 대다수는 제 처지가 위태로움을 보지 못하고, 스파르타인을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 도시 가까이에 가로막았으니 이보다 더 좋은 싸움터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르고스 군대에 있던 두 사람, 곧 다섯 장군 가운데 하나인 트라실로스와 스파르타의 프록세노스인 알키프론은 두 군대가 막 맞붙으려는 참에 아기스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싸움을 벌이지 말아 달라고 권했으니, 아르고스인은 스파르타인이 저희에게 품은 불만이 무엇이든 공정하고 대등한 중재에 부칠 뜻이 있고 조약을 맺어 앞으로 평화롭게 지낼 뜻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한 아르고스인 두 사람은 민중의 명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 판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고, 아기스 또한 제 판단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여 다수와 상의하지도 않고 그저 원정에 따라온 고위 장교 하나에게만 그 일을 알린 뒤 아르고스인에게 그 약속을 이행할 넉 달의 휴전을 주었으며, 그러고는 다른 동맹 누구에게도 아무 설명 없이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떠났다.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은 법을 존중해 제 장군을 따라갔으나, 저희끼리는 그토록 좋은 싸움터를 두고(적은 보병과 기병에게 사방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제 힘에 값하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떠나 버렸다고 아기스를 큰 소리로 나무랐다. 참으로 이것은 그때까지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던 단연 가장 훌륭한 그리스 군대였다. 그것은 아직 네메아에서 하나로 뭉쳐 있을 때 보았어야 할 군대였으니, 온 병력을 낸 스파르타인과 아르카디아인과 보이오티아인과 코린트인과 시키온인과 펠레네인과 플리우스인과 메가라인이 있었고, 이들이 모두 저마다 제 나라의 정예여서 아르고스 동맹뿐 아니라 그만한 군대가 하나 더 보태진다 해도 맞설 만하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이리하여 군대는 아기스를 나무라며 물러갔고 저마다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르고스인은 민중과 상의하지 않고 휴전을 맺은 자들을 훨씬 더 큰 소리로 나무랐으니, 저희 도시의 성벽 아래에서 그것도 많고 용감한 동맹을 곁에 두고 싸울 수 있었을 터라 다시는 보지 못할 기회를 스파르타인과 함께 놓쳐 버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돌아오자 카라드로스 강바닥에서 트라실로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으니, 그곳은 그들이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군무에 관한 모든 사건을 재판하는 자리였다. 트라실로스는 제단으로 달아나 목숨을 건졌으나, 그의 재산은 그들이 몰수했다.
그 뒤에 라케스와 니코스트라토스의 지휘 아래 아테네 중장보병 1,000명과 기병 300명이 이르렀다. 그럼에도 스파르타인과 맺은 휴전을 깨기를 꺼린 아르고스인은 그들에게 떠나 달라고 청하며 아테네인이 전할 말이 있다는데도 그들을 민중 앞에 데려가기를 거부했으나, 아직 아르고스에 있던 만티네이아인과 엘리스인이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그 자리에 와 있던 사절 알키비아데스의 입을 빌려 아테네인은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에게, 동맹국들의 동의 없이 휴전을 맺을 권리가 그들에게는 애초에 없으며 이제 아테네인이 이토록 알맞은 때에 이르렀으니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논변이 동맹들에게 먹혀들자 그들은 곧바로 오르코메노스로 나아갔는데, 아르고스인만은 남들처럼 동의해 놓고도 처음에는 뒤에 처져 있다가 끝내 다른 이들과 합류했다. 이제 그들은 모두 자리를 잡고 오르코메노스를 에워싸 공격을 퍼부었으니, 이곳을 얻으려 한 까닭 가운데 하나는 스파르타인이 아르카디아에서 데려온 인질을 그곳에 맡겨 두었기 때문이다. 오르코메노스인은 제 성벽이 약하고 적이 많으며 구원이 이르기 전에 죽을 위험이 있음에 놀라, 동맹에 들어오고 저희 인질을 만티네이아인에게 내주고 스파르타인이 맡겨 둔 인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항복했다. 이렇게 오르코메노스를 손에 넣은 뒤 동맹들은 남은 곳 가운데 어디를 다음으로 칠 것인지 의논했다. 엘리스인은 레프레온을 밀어붙였고 만티네이아인은 테게아를 밀어붙였는데, 아르고스인과 아테네인이 만티네이아인을 거들자 엘리스인은 그들이 레프레온에 표를 던지지 않은 것에 화가 나 제 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동맹들은 테게아를 치러 갈 채비를 만티네이아에서 했으니, 그 안에 있는 한 무리가 그 도시를 저희 손에 넘겨주기로 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인은 넉 달 휴전을 맺고 아르고스에서 돌아온 아기스를, 저희가 여태 가져 본 적이 없다고 여긴 그런 기회를 잡고도 아르고스를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맹렬히 나무랐으니, 그토록 많고 그토록 좋은 동맹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르코메노스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이르자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성이 나, 앞선 예를 모두 저버리고 치미는 대로 그의 집을 헐고 그에게 10,000드라크메의 벌금을 물리기로 정할 뻔했다. 그러나 아기스는 그런 일은 하나도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며 싸움터에서 훌륭히 봉사해 제 잘못을 갚겠고 그러지 못하면 그때 가서 저를 마음대로 하라고 약속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으름장을 놓은 대로 그의 집을 헐거나 벌금을 물리는 일은 삼갔으며, 다만 그때까지 스파르타에 없던 법을 만들어 스파르타 시민 10명을 조언자로 그에게 붙였으니, 그들의 동의 없이는 도시 밖으로 군대를 이끌 권한이 그에게 없게 한 것이다.
바로 이때 테게아에 있는 벗들에게서, 저희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테게아가 아직 넘어가지 않았더라도 스파르타에서 떨어져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에게 넘어가리라는 전갈이 왔다. 이 소식에 스파르타 시민과 헬롯과 온 백성으로 이루어진 병력이 스파르타에서 나아갔으니, 그것도 곧바로 그리고 전에 없던 규모였다. 마이날리아의 오레스테이온까지 나아간 그들은 동맹에 든 아르카디아인에게 뒤를 바짝 따라 테게아로 오라고 지시했고, 저희는 오레스테이온까지 간 뒤 거기서 스파르타 시민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자와 가장 어린 자로 이루어진 6분의 1을 제 고장을 지키라고 돌려보내고 나머지 군대와 함께 테게아에 이르렀으며, 그곳에서 아르카디아 동맹이 곧 그들과 합류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코린트와 보이오티아인과 포키스인과 로크리스인에게 사람을 보내어 되도록 빨리 만티네이아로 올라오라고 명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기별은 촉박했고, 다 함께 모여 서로를 기다린 뒤가 아니면 적의 나라를 지나가기가 쉽지 않았으니 그 나라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오가는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있는 대로 서둘렀다.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인은 합류한 아르카디아 동맹과 함께 만티네이아의 영토로 들어가 헤라클레스 신전 가까이에 진을 치고 그 땅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들은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에게 발견되었고,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은 곧바로 튼튼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자리를 잡아 싸움 대형을 갖추었다. 스파르타인은 즉시 그들을 향해 나아가 돌을 던지거나 투창을 날릴 만한 거리까지 다가갔는데, 그때 나이 든 사람 하나가 적의 자리가 튼튼한 것을 보고 아기스에게 지금 하나의 잘못을 다른 잘못으로 고치려 하고 있다고 외쳤으니, 그 뜻은 아기스가 그토록 많은 나무람을 산 아르고스에서의 물러남을 지금의 때 이른 성급함으로 갚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기스는 이 외침 탓이었는지 제 머리에 갑자기 떠오른 새 생각 탓이었는지 싸움을 벌이지 않고 얼른 군대를 되돌려 이끌었고, 테게아의 영토로 들어가 만티네이아인과 테게아인이 늘 다투는 그 물을 만티네이아 땅으로 돌리기 시작했으니, 두 나라 가운데 어느 쪽으로 흘러들든 크나큰 피해를 입히는 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그의 뜻은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이 물길이 돌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언덕에서 내려오게 하려는 것이었으니 그들이 그 일을 알면 틀림없이 그러할 터였고, 그리하여 평원에서 싸움을 벌이려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그날은 있던 자리에 머무르며 물길을 돌리는 일에 매달렸다.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은 적이 그토록 가까이 다가왔다가 갑자기 물러난 것에 처음에는 놀라 어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했으나, 적이 떠나 사라져 버렸는데도 저희가 뒤쫓으러 움직이지 않은 뒤로는 제 장군들을 새삼 탓하기 시작했으니, 장군들이 앞서 아르고스 앞에서 그토록 다행스럽게 가로막았던 스파르타인을 놓아준 것만이 아니라 이제 다시 아무도 뒤쫓지 않는 가운데 그들이 달아나 느긋하게 빠져나가도록 두었으며 그러는 사이에 아르고스 군대는 느긋하게 배신당했다는 것이었다. 장군들은 그 자리에서는 얼이 빠져 있다가 나중에 그들을 언덕에서 이끌고 내려와 평원으로 나아가 진을 쳤으니, 적을 칠 작정이었다.
이튿날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은 적과 마주치게 되면 싸울 작정이었던 대형으로 늘어섰고, 물길에서 헤라클레스 신전 곁의 예전 진지로 돌아오던 스파르타인은 적이 바로 앞에 완전히 대형을 갖추고 언덕에서 내려와 있는 것을 갑자기 보았다.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충격을 스파르타인은 겪어 본 기억이 없었다. 채비할 겨를이 거의 없어 그들은 즉시 서둘러 제 대열에 들어섰고, 왕인 아기스가 법에 따라 모든 것을 지휘했다. 왕이 싸움터에 있을 때는 모든 명령이 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왕이 폴레마르코스에게 말을 전하면 그들이 로카고스에게, 이들이 펜테콘테르에게, 이들이 다시 에노모타르케스에게, 마지막으로 이들이 에노모티아16에 전한다. 요컨대 필요한 모든 명령이 같은 방식으로 내려가 병사들에게 빨리 이르니, 스파르타 군대는 작은 일부를 빼고는 거의 전부가 장교 밑에 장교가 있는 구조여서 해야 할 일을 챙기는 책임이 여러 사람에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서 왼쪽 날개를 이룬 것은 스키리타이였으니, 스파르타 군대에서 그 자리는 언제나 그들만의 것이었다. 그들 옆에는 트라키아에서 온 브라시다스의 병사들과 그들과 함께 있는 네오다모데이스가 있었고, 그다음에 스파르타인 자신이 부대별로 늘어섰으며 그 곁에 헤라이아의 아르카디아인이 있었다. 이들 뒤에는 마이날리아인이 있었고, 오른쪽 날개에는 테게아인이 있었으며 맨 끝에 스파르타인 얼마가 있었다. 기병은 양쪽 날개에 배치되었다. 스파르타의 대형은 이러했다. 맞선 편의 대형은 다음과 같았다. 오른쪽에는 만티네이아인이 있었으니 싸움이 그들의 나라에서 벌어졌기 때문이고, 그들 옆에는 아르카디아에서 온 동맹이 있었으며, 그다음에 아르고스인 가운데 뽑힌 1,000명이 왔으니 나라가 이들에게 공공의 비용으로 오랜 군사 훈련을 시켜 온 터였다. 그들 옆에는 나머지 아르고스인이 있었고, 그 뒤에 그들의 동맹인 클레오나이인과 오르네아이인이 있었으며, 맨 왼쪽 끝에는 아테네인이 있었고 그들 자신의 기병이 함께 있었다.
두 싸움꾼의 대형과 병력은 이러했다. 스파르타 군대가 더 커 보였다. 그러나 어느 쪽 군세든, 또 그것을 이룬 각 분견대의 수든 적어 두는 일이라면 나는 어떤 정확함도 갖추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파르타인의 수는 그 나라 정부가 비밀을 지키는 탓에 알려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제 나라의 병력을 부풀려 자랑하기 쉬운지라 맞선 편이 어림한 수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셈하면 이때 나와 있던 스파르타인의 수를 어림할 수 있다. 600명이었던 스키리타이를 빼고 싸움터에는 일곱 부대가 있었다. 부대마다 펜테코스티스가 넷이었고 펜테코스티스마다 에노모티아가 넷이었다. 에노모티아의 첫 줄은 병사 4명으로 이루어졌다. 줄의 깊이로 말하자면 모두가 똑같이 늘어선 것은 아니고 부대장이 저마다 고른 대로였으나 대체로 여덟 겹으로 늘어섰으며, 스키리타이를 뺀 전열 전체의 첫 줄은 448명으로 이루어졌다.
두 군대가 이제 막 맞붙으려 할 때 각 분견대는 제 지휘관에게서 얼마간의 격려하는 말을 들었다. 만티네이아인은 제 나라를 위해 싸우러 가는 것이며 제국의 맛을 본 뒤에 예속의 경험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것임을 되새겼고, 아르고스인은 제 옛 패권을 두고 겨루어 그토록 오래 빼앗겨 온 펠로폰네소스의 예전 몫을 대등하게 되찾고 천 가지 잘못을 저지른 적이자 이웃을 벌하려는 것임을 되새겼으며, 아테네인은 무장한 그토록 많고 용감한 동맹과 함께 그날의 영예를 얻는 영광을, 그리고 펠로폰네소스에서 스파르타인을 이기면 제 제국이 굳어지고 넓어질뿐더러 앞으로 아티카가 모든 침입에서 지켜지리라는 것을 되새겼다.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에게 주어진 북돋움은 이러했다.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인은 사람마다 서로에게 대열 속에서 군가를 부르며 용감한 동료 하나하나에게 전에 배운 바를 잊지 말라고 권했으니, 오랜 실전 훈련이 아무리 잘 전해진들 짧은 말의 권고보다 목숨을 지키는 힘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싸움을 붙었으니,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은 서둘러 성난 기세로 나아갔고 스파르타인은 천천히 여러 피리 부는 자의 가락에 맞추어 나아갔는데, 그것은 그들의 군대에 늘 있는 제도로서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큰 군대가 맞붙는 순간에 흔히 그러하듯 대열이 흐트러지는 일 없이 박자를 맞추어 고르게 나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싸움이 붙기 바로 전에 아기스 왕은 다음과 같은 기동을 하기로 정했다. 모든 군대가 이 점에서는 한가지다. 싸움에 들어갈 때 군대는 오른쪽 날개 쪽으로 밀려 나가게 되고 양쪽이 다 이 날개로 상대의 왼쪽을 넘어서게 되니, 저마다 두려움 탓에 제 오른쪽에 있는 사람의 방패로 무방비인 옆구리를 가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방패가 촘촘히 맞물릴수록 저가 더 잘 지켜지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일차 책임은 오른쪽 날개의 맨 앞에 선 사람에게 있으니, 그는 늘 제 무방비인 옆구리를 적에게서 빼내려 애쓰며 같은 걱정이 나머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우에 만티네이아인은 제 날개로 스키리타이를 한참 넘어섰고, 스파르타인과 테게아인은 제 군대가 더 컸던 만큼 아테네인을 그보다 더 멀리 넘어섰다. 아기스는 제 왼쪽이 에워싸일까 두렵고 만티네이아인이 그것을 너무 멀리 에두른다고 여겨, 스키리타이와 브라시다스 부대에게 대열의 제자리에서 나가 만티네이아인과 전열을 나란히 맞추라고 명했고, 폴레마르코스 힙포노이다스와 아리스토클레스에게는 오른쪽 날개에서 빼낸 두 부대를 그리로 던져 넣어 그렇게 생긴 틈을 메우라고 일렀으니, 제 오른쪽은 그러고도 남을 만큼 튼튼할 것이고 만티네이아인과 마주한 전열은 더 단단해지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이 명령을 적이 덮쳐 오는 순간에 촉박하게 내린 탓에, 아리스토클레스와 힙포노이다스가 옮겨 가지 않는 일이 벌어졌고 그 죄로 그들은 나중에 비겁했다는 이유로 스파르타에서 추방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적이 다가왔으니, 두 부대가 옮겨 가지 않는 것을 본 아기스가 제자리로 돌아오라고 명한 스키리타이가 그 틈을 메울 겨를을 갖기도 전이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바로 이때 솜씨에서는 완전히 밀렸으되 용기에서는 저희가 더 낫다는 것을 보였다. 적과 몸을 맞대자마자 만티네이아인의 오른쪽이 그들의 스키리타이와 브라시다스 부대를 무너뜨렸고, 제 동맹과 뽑힌 아르고스인 1,000명과 함께 아직 메워지지 않은 전열의 틈으로 밀고 들어가 스파르타인을 베어 넘기고 에워쌌으며 그들을 온통 흩뜨려 짐수레까지 몰아붙이고 거기서 지키던 나이 든 사람들 얼마를 죽였다. 그러나 싸움터의 이 부분에서 밀린 스파르타인은 나머지 군대로, 특히 이른바 300명의 기사가 아기스 왕을 둘러싸고 싸운 중앙으로, 아르고스인 가운데 나이 든 자들과 그렇게 불리는 다섯 부대와 그들 옆의 클레오나이인과 오르네아이인과 아테네인을 덮쳐 즉시 흩뜨렸으니, 그 대다수는 한 대 칠 것도 기다리지 않고 그들이 덮쳐 오는 순간에 물러났으며 더러는 뒤쫓아 오는 자들에게 따라잡힐까 두려워하다 발에 밟히기까지 했다.
이쪽에서 무너져 내린 아르고스인과 그 동맹의 군대는 이제 완전히 둘로 갈렸고, 동시에 스파르타와 테게아의 오른쪽이 아테네인을 에워쌀 만큼 뻗어 나간 병력으로 그들을 둘러싸자, 아테네인은 한쪽에서는 에워싸이고 다른 쪽에서는 이미 무너진 채 두 불길 사이에 놓인 자신을 발견했다. 참으로 그들과 함께 있던 기병이 애써 주지 않았더라면 아테네인은 군대의 어느 부분보다 심하게 당했을 것이다. 아기스 또한 만티네이아인과 아르고스인 1,000명을 마주한 제 왼쪽이 곤경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온 군대에 무너진 날개를 도우러 나아가라고 명했다. 이 일이 벌어지는 사이에 적이 곁을 지나 비스듬히 멀어져 갔으므로 아테네인은 느긋하게 빠져나갔고, 무너진 아르고스 부대도 그들과 함께 빠져나갔다. 그러는 동안 만티네이아인과 그 동맹과 아르고스인 가운데 뽑힌 무리는 적을 밀어붙이기를 그치고, 제 편이 무너진 것과 스파르타인이 저희를 향해 한껏 나아오는 것을 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만티네이아인은 많이 죽었으나 아르고스인 가운데 뽑힌 무리는 대부분 무사히 빠져나갔다. 그러나 달아남도 물러남도 서두른 것이 아니었고 길지도 않았으니, 스파르타인은 적이 흩어질 때까지 오래 끈질기게 싸우지만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잠시만 뒤쫓고 멀리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내가 적은 것과 될 수 있는 대로 가깝게 그러했으니, 아주 오랜만에 그리스인 사이에서 벌어진 가장 큰 싸움이었고 가장 무게 있는 나라들이 함께 끼어든 싸움이었다. 스파르타인은 적의 주검 앞에 자리를 잡고 곧바로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죽은 자들의 무장을 벗겼으며, 제 죽은 자들을 거두어 테게아로 데려가 그곳에 묻고 적의 죽은 자들은 휴전 아래 돌려주었다. 아르고스인과 오르네아이인과 클레오나이인은 700명이 죽었고, 만티네이아인은 200명, 아테네인과 아이기나인도 200명이 죽었으며 두 장군도 함께 죽었다. 스파르타 쪽에서는 동맹이 말할 만한 손실을 입지 않았다. 스파르타인 자신에 관하여는 참된 수를 알기 어려웠으나, 그들 가운데 300명쯤이 죽었다고 한다.
싸움이 임박해 있는 동안 다른 왕인 플레이스토아낙스는 가장 나이 많은 자와 가장 어린 자로 이루어진 증원 부대를 이끌고 나아가 테게아까지 갔는데, 거기서 승리의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갔다. 스파르타인은 또 사람을 보내어 코린트와 이스트모스 너머에서 오던 동맹을 돌려보냈고, 저희도 돌아가 동맹을 흩어 보낸 뒤 마침 그 무렵에 든 카르네이아 축제를 지켰다. 섬에서 겪은 재난을 두고 비겁하다느니 대체로 일을 그르치고 굼뜨다느니 하며 그때 그리스인이 그들에게 씌운 허물은 이 한 번의 싸움으로 모두 씻겼다. 운이 그들을 낮추었을 수는 있어도 사람들 자신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라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 싸움이 있기 하루 전에 에피다우로스인은 온 병력을 이끌고 비어 있던 아르고스 영토로 쳐들어가, 아르고스 군대가 없는 사이에 그곳에 남겨져 있던 수비병 여럿을 베었다. 싸움이 끝난 뒤 엘리스 중장보병 3,000명이 만티네이아인을 도우러 이르고 아테네인 1,000명의 증원이 오자, 스파르타인이 카르네이아를 지키는 사이에 이 동맹들은 모두 곧바로 에피다우로스를 치러 나아갔고, 일을 저희끼리 나누어 그 도시 둘레에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그만두었으나 아테네인은 헤라이온 곶 둘레에 저희에게 맡겨진 몫을 곧바로 끝냈고, 모두가 함께 그 방어 시설에 수비대를 남겨 둔 뒤 저마다 제 도시로 돌아갔다.
이제 여름이 끝났다. 이듬해 겨울 첫머리에 카르네이아 축제가 끝나자 스파르타인은 싸움터로 나아가 테게아에 이른 뒤 아르고스로 화해의 제안을 보냈다. 그들에게는 전부터 그 도시 안에 민주정을 뒤엎고자 하는 한 무리가 있었는데, 앞서 치러진 싸움 뒤로 이들은 이제 민중이 조건에 귀를 기울이도록 설득할 처지에 훨씬 가까이 서 있었다. 그들의 계획은 먼저 스파르타인과 조약을 맺고 이어서 동맹을 맺은 뒤에 민중을 덮치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아르고스의 프록세노스인 아르케실라오스의 아들 리카스가 스파르타에서 온 두 가지 제안을 가지고 아르고스에 이르렀으니, 아르고스인이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가에 따라 전쟁의 조건을 정하거나 화평의 조건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알키비아데스가 마침 그 도시에 있는 가운데 많은 논의가 오간 끝에, 이제 드러내 놓고 움직일 엄두를 내게 된 스파르타 편 무리가 아르고스인을 설득해 화해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했으니, 그 제안은 다음과 같았다.
스파르타인의 민회는 다음 조건으로 아르고스인과 조약을 맺는 데 동의한다.
1. 아르고스인은 오르코메노스인에게 그 아이들을 돌려주고 마이날리아인에게 그 사람들을 돌려주며, 만티네이아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스파르타인에게 돌려준다.
2. 아르고스인은 에피다우로스에서 물러나고 그곳의 방어 시설을 헌다. 아테네인이 에피다우로스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하면, 그들을 아르고스인과 스파르타인과 스파르타인의 동맹과 아르고스인의 동맹의 적으로 선포한다.
3. 스파르타인이 맡아 두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하나하나 그 도시로 돌려보낸다.
4. 신에게 바칠 봉헌물에 관하여는, 아르고스인이 원하면 에피다우로스인에게 맹세를 지우고 원하지 않으면 저희가 스스로 그 맹세를 한다.
5. 펠로폰네소스의 모든 도시는 크든 작든 제 나라의 관습에 따라 독립을 유지한다.
6. 펠로폰네소스 바깥의 어떤 세력이든 펠로폰네소스의 영토를 침입하면, 조약을 맺은 당사자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물리치되 펠로폰네소스인에게 가장 공정한 것으로서 저희가 합의하는 조건에 따라 그리한다.
7. 펠로폰네소스 바깥에 있는 스파르타인의 모든 동맹은 스파르타인과 같은 처지에 서고, 아르고스인의 동맹은 아르고스인과 같은 처지에 서며, 저마다 제 소유를 그대로 누린다.
8. 이 조약은 동맹들에게 보이며, 동맹들이 옳다고 하면 맺는다. 동맹들이 알맞다고 보면 이 조약을 제 나라로 보내어 검토하게 할 수 있다.
아르고스인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했고, 스파르타 군대는 테게아에서 제 나라로 돌아갔다. 그 뒤에 양쪽 사이에 왕래가 되살아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무리가 아르고스인으로 하여금 만티네이아인·엘리스인·아테네인과의 동맹을 버리고 스파르타인과 조약과 동맹을 맺게끔 꾸몄으니,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그 일이 이루어졌다.
스파르타인과 아르고스인은 다음 조건으로 50년 동안 조약과 동맹을 맺는 데 동의한다.
1. 모든 다툼은 두 나라의 관습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한 중재로 가린다.
2. 펠로폰네소스의 나머지 도시들은 독립된 주권국으로서 제 소유를 온전히 누리며 이 조약과 동맹에 들어올 수 있고, 모든 다툼은 그 도시들의 관습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한 중재로 가린다.
3. 펠로폰네소스 바깥에 있는 스파르타인의 모든 동맹은 스파르타인 자신과 같은 처지에 서고, 아르고스인의 동맹은 아르고스인 자신과 같은 처지에 서며, 저마다 제 소유를 그대로 누린다.
4. 어디서든 함께 원정에 나설 필요가 생기면, 스파르타인과 아르고스인이 그 일을 의논하여 동맹에게 가장 공정한 대로 정한다.
5. 펠로폰네소스 안에 있든 바깥에 있든 어느 도시가 국경 문제든 그 밖의 문제든 걸린 것이 있으면 그것을 매듭지어야 한다. 다만 동맹 도시 하나가 다른 동맹 도시와 다투게 되면, 그 일은 양쪽이 다 공평하다고 보는 제삼의 도시에 부쳐야 한다. 개인들 사이의 다툼은 저마다 제 나라의 법에 따라 가린다.
조약과 위의 동맹이 맺어지자 양쪽은 전쟁으로 얻었든 다른 방식으로 얻었든 모든 것을 곧바로 놓아주었고, 그때부터는 함께 움직여 아테네인이 제 요새에서 물러나 펠로폰네소스를 떠나지 않는 한 아테네인에게서 전령도 사절도 받지 않으며 함께가 아니면 누구와도 화약도 전쟁도 맺지 않기로 표결했다. 열의가 모자라지 않아 양쪽은 트라키아 방면의 여러 곳과 페르디카스에게 사절을 보냈고, 페르디카스를 설득해 제 동맹에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그는 제 가문이 본디 나온 곳인 아르고스가 길을 보여 주는 것을 보고 그럴 마음이 들었으면서도 아테네와 곧바로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그들은 또 칼키디케인과 맺은 옛 맹세를 갱신하고 새 맹세도 받았다. 그 밖에 아르고스인은 아테네인에게 사절을 보내어 에피다우로스의 요새에서 물러나라고 명했다. 아테네인은 제 사람들이 나머지 수비대보다 수가 적음을 보고 데모스테네스를 보내어 그들을 빼내 오게 했다. 이 장군은 그곳에 이르러 마련한 체육 경기를 구실 삼아 나머지 수비대를 그곳에서 끌어낸 뒤 그들 뒤로 성문을 닫아걸었다. 그 뒤에 아테네인은 에피다우로스인과 조약을 갱신하고 저희 손으로 그 요새를 내주었다.
아르고스가 동맹에서 떨어져 나간 뒤 만티네이아인은 처음에는 버티었으나, 끝내 아르고스인 없이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음을 알고 저희도 스파르타와 조건을 맺어 그 도시들에 대한 지배권을 내놓았다. 이제 스파르타인과 아르고스인은 저마다 1,000명씩 함께 싸움터로 나아갔으니, 먼저 스파르타인이 저희만으로 시키온에 가서 그곳의 정부를 전보다 더 과두정으로 만들었고, 그런 뒤에 둘이 힘을 합쳐 아르고스의 민주정을 무너뜨리고 스파르타에 우호적인 과두정을 세웠다. 이 일들은 겨울이 저물어 봄이 오기 바로 전에 일어났고, 전쟁 제14년이 끝났다. 이듬해 여름 아토스의 디온 사람들이 아테네인에게서 떨어져 칼키디케인 쪽으로 넘어갔고, 스파르타인은 아카이아의 일을 제 나라의 이익에 더 맞는 방향으로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아르고스의 민중 편은 조금씩 새로 결속과 용기를 모아, 스파르타에서 김노파이디아 축제17가 열리는 때를 기다렸다가 과두정 사람들을 덮쳤다. 도시에서 싸움이 벌어진 끝에 승리는 민중에게 돌아갔고, 민중은 맞선 자들 가운데 더러를 죽이고 더러를 내쫓았다. 스파르타인은 아르고스에 있는 제 벗들이 보낸 전갈을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마침내 그들은 김노파이디아를 미루고 그들을 구하러 나아갔으나, 테게아에서 과두정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고 빠져나온 자들이 간곡히 청하는데도 더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제 나라로 돌아가 축제를 지켰다. 나중에 동맹들도 스파르타에 와 있을 때 도시 안의 아르고스인과 쫓겨난 자들에게서 온 전갈을 가지고 사절들이 이르렀고, 양쪽에서 많은 말이 오간 끝에 스파르타인은 도시 안의 무리가 잘못했다고 판단해 아르고스를 치러 나아가기로 정했으나 이 일을 자꾸 늦추고 미루었다. 그러는 동안 아르고스의 민중은 스파르타인이 두려워 다시 아테네와의 동맹을 구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저희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다까지 긴 성벽을 쌓는 일에 나섰는데, 뭍에서 봉쇄를 당할 경우에 아테네인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것을 바다로 들여오는 이점을 누리려는 것이었다. 펠로폰네소스의 몇몇 도시도 이 성벽을 쌓는 일을 알고 있었다. 아르고스인은 여자와 노예까지 빼놓지 않고 온 백성이 이 일에 나섰고, 아테네에서는 목수와 석공이 그들에게 왔다.
이제 여름이 끝났다. 이듬해 겨울에 스파르타인은 쌓이고 있는 성벽 이야기를 듣고 코린트인을 뺀 동맹과 함께 아르고스를 치러 나아갔으니, 그 도시 안에 내통하는 자들이 없지도 않았다. 그들의 왕인 아르키다모스의 아들 아기스가 지휘를 맡았다. 도시 안에서 기대하던 내통은 아무 결실도 맺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쌓이고 있던 성벽을 차지해 헐어 버렸고, 아르고스의 도시 히시아이를 차지해 손에 들어온 자유민을 모두 죽인 뒤 돌아가 저마다 제 도시로 흩어졌다. 그 뒤에 아르고스인은 플리우스로 쳐들어가 그곳을 약탈했으니, 쫓겨난 저희 사람들 대다수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플리우스가 그들을 받아 주었기 때문이며, 그러고는 제 나라로 돌아갔다. 그해 겨울 아테네인은 마케도니아를 봉쇄했으니, 페르디카스가 아르고스인 및 스파르타인과 동맹을 맺은 것을 문제 삼은 것이고, 또 니케라토스의 아들 니키아스의 지휘 아래 트라키아 방면의 칼키디케인과 암피폴리스를 치려고 아테네가 마련한 원정 때에 그가 약속을 어긴 것을 문제 삼은 것이었으니, 그 원정은 주로 그가 저버린 탓에 흩어져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적으로 선포되었다. 그렇게 겨울이 끝나고 전쟁 제15년도 함께 끝났다.
주
1. 에포로스 — 스파르타의 최고 정무관. 해마다 5명을 뽑았고 왕까지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이 번역에서는 '감독관'으로 옮기고 첫 등장에만 원어를 함께 밝혔다. 그해의 으뜸 감독관의 이름으로 그해를 불렀다.
2. 아르콘 — 아테네의 정무관직. 해마다 뽑았고 그 가운데 수석 아르콘의 이름으로 그해를 불렀다.
3.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탈란톤은 60므나, 곧 6,000드라크메에 해당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4. 헬롯 — 스파르타에 예속되어 땅을 갈던 신분.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딸린 예속민으로 스파르타 시민의 토지를 부쳤다.
5. 네오다모데이스 — 해방된 헬롯으로 이루어진 스파르타의 병력. 자유는 얻었으나 시민권은 갖지 못했고 주로 국외의 임무에 쓰였다.
6. 스파르타 시민 — 스파르타 사회는 완전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 시민, 주변 자유민, 헬롯으로 나뉘었다. 원문에서 저자는 이 좁은 뜻의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를 구분해 쓴다.
7. 보이오타르케스 — 보이오티아 연방의 최고 정무관. 해마다 11명을 뽑았고 연방의 군사와 외교를 맡았다.
8. 히아킨티아 — 아미클라이에서 아폴론과 히아킨토스를 기려 해마다 사흘 동안 치른 스파르타의 큰 축제.
9. 프록세노스 —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 두었던 명예 대표. 제 나라에 살면서 상대 나라의 사절과 시민을 돌보았고, 그 직분은 흔히 집안 대대로 이어졌다.
10. 오볼로스·드라크메 — 그리스의 화폐 단위. 6오볼로스가 1드라크메였다. 아이기나 기준의 화폐는 아테네 기준보다 무거웠으므로 조약은 어느 기준인지를 밝혀 적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11. 프리타니스 — 아테네 평의회의 당번 기간, 또는 그 기간에 당번을 맡은 평의원들. 열 부족이 차례로 한 해의 10분의 1씩 평의회의 일을 주재했다.
12. 아르티나이·데미우르고이·테오로이·테스모필라케스 — 차례로 아르고스와 만티네이아·엘리스의 정무관직 이름이다. 도시마다 정부의 짜임과 관직 이름이 달랐으므로 조약은 맹세를 주관할 관직을 도시별로 따로 적었다. 본문의 '80인'과 '600인'도 각각 아르고스와 엘리스의 통치 기구다.
13. 판아테나이아 — 아테나를 기려 아테네가 치른 큰 축제. 4년마다 돌아오는 해의 것을 특히 성대하게 치러 대제라 불렀다.
14. 므나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00드라크메에 해당했고 60므나가 1탈란톤이었다.
15. 카르네이오스 달·카르네이아 — 카르네이아는 아폴론 카르네이오스를 기려 도리스계 도시들이 치른 축제로, 그 기간에는 군사 행동을 삼갔다. 카르네이오스는 그 축제가 든 달의 이름이다. 본문에서 아르고스인이 날짜를 그대로 붙들어 둔 것은 이 거룩한 달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쳐서 싸움을 이어 가려는 것이었다.
16. 폴레마르코스·로카고스·펜테콘테르·에노모타르케스 — 스파르타군의 지휘 계통이다. 폴레마르코스가 가장 큰 부대를, 로카고스가 로코스를, 펜테콘테르가 펜테코스티스를, 에노모타르케스가 가장 작은 단위인 에노모티아를 맡았다.
17. 김노파이디아 — 스파르타가 한여름에 여러 날에 걸쳐 치른 축제. 벌거벗은 젊은이들의 춤과 겨루기가 중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