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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23장 (제VII권 제XXIII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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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제VII권 제XXIII장) 전쟁 제19년 · 대항구의 해전 · 아테네군의 퇴각과 궤멸

아테네인들이 이렇게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리는 동안 길리포스와 시카노스가 시라쿠사에 이르렀다. 시카노스는 아크라가스를 얻는 데 실패했으니, 그가 아직 겔라에 있는 동안 시라쿠사에 우호적인 당파가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리포스는 시칠리아에서 모은 많은 병력뿐 아니라 봄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수송선에 실려 떠났다가 리비아를 거쳐 셀리누스에 닿은 중장보병까지 데리고 왔다. 그들은 폭풍에 밀려 리비아로 실려 갔는데, 키레네인에게서 갤리선 2척과 물길잡이를 얻어 해안을 따라 항해하던 중 에우에스페리타이 편에 서서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리비아인을 무찔렀고, 거기서 다시 해안을 따라 카르타고의 교역장이자 시칠리아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이어서 이틀 낮과 하룻밤이면 건널 수 있는 네아폴리스까지 간 다음, 바다를 건너 셀리누스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르자마자 시라쿠사인들은 다시 뭍과 바다에서 한꺼번에 아테네인을 칠 채비를 했다. 아테네 장군들은 적에게 새 군대가 와서 돕는 것을, 그리고 제 처지가 나아지기는커녕 나날이 나빠지는 것을 보고, 무엇보다 병사들의 병으로 괴로워하던 터라 이제 더 일찍 떠나지 않은 것을 뉘우치기 시작했고, 니키아스도 공개 투표를 하지 말자고 고집하는 것 말고는 전처럼 반대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되도록 은밀하게 신호가 있으면 모두 진영에서 배를 띄울 채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 막 떠나려던 참에 마침 보름이던 달이 먹혔다. 아테네인 대부분이 이 일에 크게 마음이 흔들려 장군들에게 기다리자고 재촉했고, 점치는 일과 그런 따위에 다소 지나치게 빠져 있던 니키아스는 그때부터 예언자들이 이르는 대로 아홉 날씩 세 번을 기다리기 전에는 떠나는 문제를 의논하는 것조차 마다했다.

포위하던 자들은 이리하여 그 땅에 머물러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시라쿠사인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채고 전보다 더 기세를 올려 아테네인을 몰아붙이려 했으니, 아테네인 스스로가 이제 바다에서도 뭍에서도 자기들보다 낫지 않다고 인정한 셈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배를 띄워 떠날 궁리를 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라쿠사인들은 그들이 시칠리아의 다른 어느 곳에 자리를 잡아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되도록 빨리 저희에게 유리한 자리에서 해전을 하도록 몰아붙이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배에 사람을 태우고 넉넉하다고 여겨지는 날수만큼 훈련했다. 때가 오자 그들은 첫날 아테네의 방벽을 쳤고, 중장보병과 기병 얼마가 몇몇 성문으로 나와 맞서자 그 가운데 보병 일부를 끊어 내고 나머지를 무찔러 방벽까지 쫓았는데, 들어가는 어귀가 좁았으므로 아테네인은 말 70마리와 중장보병 몇을 잃었다.

그날은 군대를 물렸다가 이튿날 시라쿠사인들은 함선 76척으로 바다에 나가는 한편 육군으로 방벽을 향해 나아갔다. 아테네인은 86척으로 마주 나가 가까이 붙어 싸웠다.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먼저 아테네군의 중앙을 무찌른 다음, 적을 에워싸려고 전열에서 뭍 쪽으로 더 나가 항해하던 오른쪽 날개의 지휘관 에우리메돈을 항구의 후미진 구석으로 몰아넣어 그를 죽이고 그를 따르던 배들을 부수었으며, 그러고 나서는 아테네 함대 전체를 앞으로 몰아 뭍으로 밀어붙였다.

길리포스는 적의 함대가 패하여 그들의 방책과 진영 너머 뭍으로 밀려난 것을 보고, 배에서 내리는 자들을 끊어 내고 또 해안이 아군의 땅이 됨으로써 시라쿠사인이 배를 끌어내기 쉽게 하려고 병력 얼마를 데리고 방파제로 달려 내려갔다. 아테네인을 위해 그 지점을 지키던 티레니아인들은 그들이 대오 없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마주 나가 그 선두를 쳐서 무찔러 리시멜레이아 늪으로 몰아넣었다. 뒤이어 시라쿠사와 동맹의 병력이 더 많이 이르자 아테네인들도 배가 걱정되어 구하러 올라와 맞붙었고, 그들을 무찔러 얼마쯤 쫓으며 중장보병 몇을 죽였다. 그들은 배 대부분을 구해 내어 진영 옆으로 끌어내렸으나, 18척은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에게 빼앗겼고 그 배에 탔던 사람은 모두 죽었다. 적은 나머지 배를 태우려고 낡은 수송선에 섶과 관솔을 가득 채우고 불을 붙여 아테네인 쪽으로 곧장 부는 바람에 떠내려 보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배가 걱정되어 그것을 막고 끄는 수단을 마련해 불길과 수송선이 더 다가오는 것을 막았고, 그리하여 위험을 벗어났다.

그 뒤 시라쿠사인들은 해전에 대해, 그리고 방벽 위쪽에서 끊어 내고 말을 빼앗은 그 중장보병에 대해 전승 기념물을 세웠고, 아테네인들은 티레니아인이 늪으로 몰아넣은 보병을 무찌른 일과 나머지 군대로 거둔 저희 승리에 대해 세웠다.

시라쿠사인들은 이제 바다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니, 그때까지는 데모스테네스가 데려온 증원군을 두려워하던 터였다. 그리하여 아테네인의 낙담은 깊었고 실망은 컸으며 원정에 나선 것을 뉘우치는 마음은 더욱 컸다. 그들이 이제까지 맞닥뜨린 도시 가운데 성격이 저희와 비슷하고 저희처럼 민주정 아래 있으며 함선과 기병을 갖추고 규모도 상당한 곳은 이들뿐이었다. 그들은 정체를 바꿀 전망을 내걸어 이 도시들을 갈라 제 편으로 끌어들이지도, 압도적인 병력으로 눌러 부수지도 못한 채 시도한 일 대부분에서 실패했고, 이미 어찌할 바를 모르던 터에 이제 패배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여기던 바다에서 지고 말았으니, 그리하여 전보다 더 깊은 곤경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시라쿠사인들은 곧바로 항구를 마음대로 오가기 시작했고, 아테네인이 앞으로는 바란다 해도 몰래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 어귀를 막기로 했다. 실로 시라쿠사인들은 이제 저희를 지키는 것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적이 달아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도 생각했으니, 저희가 이제 훨씬 강하다고, 그리고 아테네인과 그 동맹들을 뭍과 바다에서 이기면 그리스에서 큰 영광을 얻으리라고 여겼고 그 생각은 옳았다. 그러면 나머지 그리스인은 곧바로 해방되거나 두려움에서 풀려날 것이니, 아테네에 남은 병력으로는 앞으로 그 나라를 상대로 벌어질 전쟁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편 시라쿠사인 저희는 이 해방을 이룬 자로 여겨져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사람뿐 아니라 뒷사람에게도 크게 우러름을 받을 터였다. 이 싸움에 무게를 더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테네인뿐 아니라 그 수많은 동맹까지 이기게 될 것이요,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싸우는 이들과 더불어, 코린트인 및 스파르타인과 나란히 지휘하며 이기게 될 것이며, 제 도시를 내놓아 위험의 맨 앞에 서게 했고 해전의 성공을 크게 앞장서 이끈 터였다.

실로 한 도시 앞에 이토록 많은 민족이 모인 일은 일찍이 없었으니, 이 전쟁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아래 모인 전체를 빼면 그러하다. 시칠리아를 위해 또는 시칠리아에 맞서 싸우려고, 이 섬을 정복하는 일을 돕거나 지키는 일을 도우려고 시라쿠사로 온 양편의 나라는 아래와 같다. 이들을 묶은 끈은 정의나 핏줄의 공통이라기보다 그때그때의 이해나 강제였다. 아테네인 저희는 이오니아인이면서 도리스인인 시라쿠사인을 제 뜻으로 치러 갔고, 아직 아티카 말을 쓰고 아테네의 법을 따르는 이들, 곧 렘노스인과 임브로스인과 아이기나인, 다시 말해 그때 아이기나를 차지하고 있던 자들이 그 식민인 까닭에 함께 갔다. 여기에 에우보이아의 헤스티아이아에 사는 헤스티아이아인도 더해야 한다. 나머지 가운데 일부는 아테네의 속국으로, 일부는 독립된 동맹으로, 일부는 용병으로 원정에 함께했다. 공납을 바치는 속국에 속한 것은 에우보이아에서 온 에레트리아인과 칼키스인과 스티라인과 카리스토스인, 섬들에서 온 케오스인과 안드로스인과 테노스인, 이오니아에서 온 밀레토스인과 사모스인과 키오스인이었다. 다만 키오스인은 공납을 바치지 않고 함선을 대는 독립된 동맹으로 함께했다. 이들 대부분은 이오니아인이고 아테네인의 후예였으나 카리스토스인은 그렇지 않아 드리오페스족이었고, 속국으로서 복무해야 하는 처지이면서도 도리스인에 맞서 싸우는 이오니아인이기는 했다. 이들 말고도 아이올리스 혈통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공납이 아니라 함선을 대는 속국인 메팀나인, 그리고 공납을 바치는 테네도스인과 아이노스인이었다. 이 아이올리스인들은 시라쿠사군에 있던 제 창건자 아이올리스인, 곧 보이오티아인과 맞서 싸웠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반면, 보이오티아인에 맞선 유일한 토박이 보이오티아인인 플라타이아인은 정당한 원한 때문에 그리했다. 둘 다 도리스인인 로도스인과 키테라인 가운데 뒤의 사람들은 스파르타의 식민이면서 아테네 대열에 서서 길리포스와 함께 있는 제 스파르타 동족과 맞서 싸웠고, 로도스인은 혈통으로는 아르고스인이면서 도리스인인 시라쿠사인과, 시라쿠사인 편에서 복무하는 제 식민인 겔라인에 맞서 무기를 들도록 강요당했다. 펠로폰네소스 둘레의 섬사람 가운데 케팔레니아인과 자킨토스인은 독립된 동맹으로 아테네인을 따라갔으나, 섬에 산다는 처지 때문에 아테네의 제해권 앞에서 실은 달리 고를 길이 거의 없었다. 한편 코르키라인은 도리스인일 뿐 아니라 코린트인이면서도 코린트인과 시라쿠사인에 맞서 드러내 놓고 싸웠으니, 앞의 사람들의 식민이고 뒤의 사람들과 같은 혈통이면서도 강제를 내세웠을 뿐 실은 코린트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제 뜻으로 그리한 것이었다. 지금 나우팍토스에서 그렇게 불리는 메세니아인과 그때 아테네인이 쥐고 있던 필로스에서 온 메세니아인도 이 전쟁에 함께 데려갔다. 메가라에서 쫓겨난 이들도 얼마 있었는데, 이제 메가라 계통인 셀리누스인과 맞서 싸우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나머지가 함께한 것은 더 자발적인 성격이었다. 도리스인인 아르고스인이 이오니아인인 아테네인 편에 서서 도리스인과 싸우는 전쟁에 들어간 것은 동맹 때문이라기보다 스파르타인을 미워하는 마음과 저마다의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 때문이었다. 한편 그때그때 가리키는 적에게 나아가는 데 익숙한 만티네이아인과 그 밖의 아르카디아 용병들은 이익에 이끌려 코린트인 편에서 복무하는 아르카디아인도 다른 누구 못지않은 적으로 여겼다. 크레타인과 아이톨리아인도 삯을 받고 복무했으며, 로도스인과 함께 겔라를 세웠던 크레타인은 그리하여 제 식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 맞서 삯을 받고 싸우는 데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삯을 받고 복무하는 아카르나니아인도 얼마 있었으나, 그들이 온 것은 주로 데모스테네스를 아끼는 마음과 저희가 그 동맹이었던 아테네인에 대한 호의에서였다. 이들은 모두 이오니아만의 그리스 쪽에 살았다. 이탈리아 그리스인 가운데는 투리이인과 메타폰티온인이 있었는데 내란의 시절이 안긴 모진 필요에 끌려 이 다툼에 들어왔다. 시칠리아 그리스인 가운데는 낙소스인과 카타나인이 있었고, 이민족 가운데는 아테네인을 불러들인 에게스타인과 시켈인 대부분이, 그리고 시칠리아 밖에서는 시라쿠사와 원수진 티레니아인 얼마와 이아피기아 용병이 있었다.

아테네인과 함께 복무한 민족은 이러했다. 이들에 맞서 시라쿠사인 편에는 이웃인 카마리나인과 그 곁에 사는 겔라인이 있었고, 중립을 지킨 아크라가스인을 건너뛰면 섬 건너편에 자리 잡은 셀리누스인이 있었다. 이들은 리비아를 바라보는 쪽의 시칠리아에 산다. 히메라인은 티레니아 바다 쪽에서 왔는데, 그 지역에서 유일한 그리스인 주민이었고 그곳에서 시라쿠사인을 도우러 온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시칠리아 안의 그리스인 가운데 위의 민족들이 이 전쟁에 함께했으니 모두 도리스인이고 독립되어 있었으며, 이민족 가운데는 시켈인만이, 곧 아테네인 편으로 넘어가지 않은 자들만이 함께했다. 시칠리아 밖의 그리스인 가운데는 지휘를 맡을 스파르타 시민1 한 사람과 네오다모데이스2, 곧 해방된 자들과 헬롯3으로 이루어진 병력을 댄 스파르타인이 있었고, 홀로 해군과 육군을 함께 보낸 코린트인이 레우카스와 암브라키아의 동족과 더불어 있었으며, 코린트가 아르카디아에서 보낸 용병 얼마와 억지로 복무하게 된 시키온인 얼마,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밖에서는 보이오티아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 바깥에서 온 원군에 견주면 시칠리아 그리스인의 큰 도시들이 모든 부문에서 더 많이 댔으니, 중장보병과 함선과 기병의 수가 그러했고 그 밖에도 엄청난 무리가 모였다. 그리고 다시 이 모두를 합한 것에 견주어도 시라쿠사인 저희가 더 많이 댔다고 말할 수 있으니, 도시가 큰 까닭도 있고 저희가 가장 큰 위험에 빠져 있었던 까닭도 있다.

양편에 모인 원군은 이러했고, 이때까지 모두 합류하여 어느 쪽도 그 뒤로는 더 보태지 못했다. 그러므로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이 최근 해전의 승리에 이어 아테네 함대 전체를 사로잡아 바다로도 뭍으로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큰 영광을 얻으리라고 여긴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곧바로 거룻배와 상선과 갤리선을 대항구의 어귀에 옆으로 늘어세워 매어 두고 그 어귀를 막기 시작했으니, 그 너비는 1마일4에 가깝다. 그리고 아테네인이 다시 바다에서 싸움을 걸어올 경우에 대비해 다른 모든 채비까지 갖추어 놓았다. 실로 그들의 계획에도 그 생각에도 작은 것이라고는 없었다.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항구를 막는 것을 보고 또 그 밖의 계획도 전해 듣고서 군사 회의를 열었다. 장군들과 대장들이 모여 처지의 어려움을 놓고 의논했는데, 가장 다급한 것은 당장 쓸 양식이 더는 없다는 것(떠날 참이라고 여겨 카타나에 사람을 보내 보내지 말라고 일러 두었던 것이다)과 바다를 장악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도 양식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위쪽 방벽을 비우고, 배에 가까운 좁은 터를 가로벽으로 둘러 지키되 그 터는 물자와 병자를 들일 만큼만 잡기로 했으며, 바다를 견딜 만하든 아니든 모든 배에 나머지 육군에서 뺄 수 있는 사람을 다 태워 바다에서 끝장을 보기로, 그래서 이기면 카타나로 가고 이기지 못하면 배를 태운 뒤 대오를 촘촘히 지어 그리스인의 것이든 이민족의 것이든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우호적인 곳을 향해 뭍으로 물러나기로 했다. 이렇게 정하자마자 곧 실행에 옮겨, 그들은 위쪽 방벽에서 차츰 내려와 모든 배에 사람을 채웠고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을 나이면 누구나 배에 오르도록 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통틀어 110척쯤에 사람을 태우는 데 성공했고, 그 배에 아카르나니아인과 그 밖의 외국인에게서 뽑은 궁수와 투창병을 여럿 태웠으며, 계획의 성격과 그 계획을 강요한 절박함이 허락하는 한 다른 모든 채비도 갖추었다. 이제 준비가 거의 끝났을 때, 니키아스는 병사들이 일찍이 없던 뚜렷한 해전 패배로 기가 꺾여 있고 양식이 모자란 탓에 되도록 빨리 끝장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고, 그들 모두를 불러 모아 먼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테네와 동맹의 병사 여러분, 다가오는 싸움에 우리는 모두 똑같은 몫을 걸고 있으니, 거기에는 적에게 그러한 것 못지않게 우리에게도 목숨과 나라가 걸려 있습니다. 우리 함대가 오늘 이기면 저마다 제 고향 도시를, 그것이 어디에 있든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낙심해서는 안 되며, 첫 시도에서 실패하고는 그 뒤로 내내 앞일도 그만큼 참혹하리라고 겁에 질려 점치는 경험 없는 자들처럼 되어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미 여러 전쟁을 겪어 본 아테네인과 그 많은 원정에 우리와 함께한 동맹들은 전쟁이 얼마나 뜻밖의 일을 안기는지 떠올리고, 운이 늘 우리를 등지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여러분 스스로 보시는 그 수에 어울리게 다시 싸울 채비를 하십시오.

이렇게 좁은 항구에서 배들이 뒤엉키는 것에 맞서, 또 앞서 우리를 괴롭힌 적의 갑판 위 병력에 맞서 도움이 되리라고 우리가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조타수들과 함께 다 헤아렸고 우리 형편이 허락하는 데까지 갖추어 두었습니다. 궁수와 투창병이 여럿 배에 오를 것이며, 트인 바다에서 벌이는 싸움이라면 배가 무거워져 우리 기량이 굳어 버릴 터이니 쓰지 않았을 만큼 많은 수가 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 위에서 벌일 수밖에 없는 이번의 육지 싸움에서는 이 모든 것이 쓸모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적의 배 모양에 맞서 우리 배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 알아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힌 저들의 두꺼운 뱃머리 귀들보에 맞서서는 쇠갈고리를 갖추었으니, 여기 갑판 위의 병사들이 제 할 일을 한다면 적이 들이받은 뒤 노를 저어 물러나지 못하게 막아 줄 것입니다. 우리는 함대에서 육지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터이므로, 우리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것도 적이 물러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우리에게 이로운 듯하며, 우리 병력이 잡고 있는 만큼을 빼면 해안이 적의 땅인 만큼 더욱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새기고 힘이 닿는 한 끝까지 싸워야 하며, 뭍으로 밀려나도록 두어서는 안 되고, 일단 배가 맞붙거든 적의 갑판에서 중장보병을 쓸어 내기 전에는 떨어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혀야 합니다. 이 말은 수부보다 중장보병에게 하는 것이니 갑판 위 사람들의 몫이 더 크기 때문이며, 우리 육군은 지금도 전체로 보아 가장 강합니다. 수부들에게는 권하는 동시에 간청합니다. 이제 우리 갑판이 더 잘 무장되고 배도 더 많아진 터이니 겪은 불운에 너무 기죽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운데는 우리 말을 알고 우리 풍습을 따랐기에 실제로는 아테네인이 아니면서도 늘 아테네인으로 여겨져 그리스 전역에서 존중받았고 우리 패권이 주는 이로움을 남김없이 누렸으며 우리 속국들에게 공경을 받고 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받는 데서는 제 몫 이상을 누린 이들이 있으니, 그 즐거움이 얼마나 지킬 만한 것인지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패권을 거리낌 없이 함께 나누는 오직 여러분에게, 이제 그 패권이 끝에 몰린 이때 그것을 저버리지 말 것을 우리는 정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자주 이긴 코린트인과, 우리 해군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감히 우리 앞에 맞서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시칠리아 그리스인을 업신여기고서 그들을 물리쳐 주기를, 병들고 불운한 가운데서도 여러분의 기량이 다른 누구의 운이나 기세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청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테네인에게는 이 생각 하나를 다시 덧붙입니다. 여러분은 이만한 배를 조선소에 더 남겨 두고 오지 않았고, 한창때의 중장보병도 더 남겨 두고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이기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한다면 이곳의 적은 곧바로 그리로 배를 몰 것이며, 아테네에 남은 우리 사람들은 이 새 동맹까지 얻은 적이 제 나라를 치는 것을 막아 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곧장 시라쿠사인의 손에 떨어질 것이요(여러분이 어떤 뜻을 품고 그들을 쳤는지는 굳이 일깨우지 않겠습니다), 고향의 동포는 스파르타인의 손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양쪽의 운명이 이 한 번의 싸움에 걸려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굳게 설 때입니다. 그리고 저마다 새기십시오. 지금 배에 오르는 여러분이 아테네인의 육군이요 해군이며 나라와 아테네의 큰 이름에서 남은 전부라는 것을. 그것을 지키는 데 기량이든 용기든 남보다 나은 것이 있는 사람은 지금이 그것을 보일 때이며, 그리함으로써 제 몸을 구하고 모두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니키아스는 곧바로 배에 사람을 태우라고 명했다. 그러는 사이 길리포스와 시라쿠사인들은 눈앞에서 진행되는 준비를 보고 아테네인이 바다에서 싸울 작정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은 쇠갈고리에 대해서도 전해 들은 터라 그에 맞서 따로 대비했으니, 던진 갈고리가 걸리지 않고 미끄러지도록 뱃머리와 배 윗부분의 많은 데에 가죽을 씌웠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나자 장군들과 길리포스가 다음과 같이 병사들에게 말했다.

시라쿠사인과 동맹 여러분, 우리가 지금껏 이룬 일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그리고 다가오는 싸움에 걸려 있는 결과가 그에 못지않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는 여러분 대부분이 알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이토록 뜨겁게 이 싸움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알아야 할 만큼 사실을 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그에게 밝히겠습니다. 아테네인은 먼저 시칠리아를 정복하려고 이 땅에 왔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그다음에는 펠로폰네소스와 나머지 그리스를 정복하려고 왔으니, 그들은 이미 지금이든 예전이든 그리스인 가운데 일찍이 알려진 바 가장 큰 패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들은 어디서나 저희를 주인으로 만들어 준 그 해군에 맞선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났으니 곧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앞선 해전에서 이미 그들을 이겼고 이번에도 십중팔구 다시 이길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특별히 뛰어나다고 여기던 바로 그 점에서 한번 꺾이면, 처음부터 제 우월함을 믿지 않았을 때보다 자신에 대한 생각 전체가 더 크게 흔들리며, 자부심이 뜻밖에 받은 충격 탓에 실제 힘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물러섭니다. 지금 아테네인이 아마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다릅니다. 서투르던 시절에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던, 스스로에 대한 처음의 평가는 더 굳어졌고, 거기에 가장 뛰어난 자들을 이겼으니 우리가 이 시대 최고의 뱃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까지 더해져 우리 하나하나에게 갑절의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개 희망이 가장 큰 곳에 행동의 열의도 가장 큽니다. 그들이 우리 장비를 흉내 내어 우리와 맞설 수단을 찾으려 한 것은 우리 싸움 방식에 낯익은 것이니 알맞은 대비로 맞설 것입니다. 한편 그들이 제 관례와 달리 갑판에 중장보병을 여럿 두고 투창병을 여럿 둔다면(말하자면 타고난 뭍사람인 아카르나니아인과 그 밖의 사람들을 배에 태운 것이니, 가만히 서 있어야 할 때 무기를 어떻게 던져야 할지 모를 자들입니다) 배가 거추장스러워지고 저희끼리 온통 뒤엉키지 않을 수 없으니, 제 전술대로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가 많다고 해서 그들에게 득이 될 것도 없습니다. 이 말은 수가 적은 쪽에서 싸우는 것이 걱정스러운 분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좁은 데에 배가 많으면 필요한 움직임을 하는 데 더 굼떠질 뿐이고 우리 공격 수단에 가장 크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실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고자 하신다면, 믿을 만한 소식에 따르면 그들이 겪은 고통이 너무 크고 지금의 곤경이 너무 절박해 그들은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제 병력을 믿지 못하고 다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운에 걸어 보려는 것이니, 길을 뚫고 배로 빠져나가든지 그도 안 되면 뭍으로 물러나든지 하려는 것이며,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는 처지인 까닭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의 운이 이렇게 제 바닥을 드러냈고 그들의 어지러움이 제가 말씀드린 그대로이니, 분노를 안고 싸움에 들어갑시다. 적과 적 사이에서 먼저 친 자를 벌하며 제 마음의 노여움을 남김없이 푸는 것보다 더 정당한 일은 없으며, 속담에 있듯 원수에게 갚는 것보다 더 단 것은 없다는 것을 굳게 믿읍시다. 이제 그 갚음이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적이요 철천지원수라는 것은 여러분 모두 아십니다. 그들은 우리 나라를 노예로 만들려고 이곳에 왔으며, 뜻을 이루었더라면 우리 남자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것을, 우리 아이들과 아내들에게는 가장 욕된 것을, 도시 전체에는 가장 큰 치욕을 담은 이름을 마련해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마음을 누그러뜨리거나, 그들이 우리에게 더 위험을 끼치지 않고 물러간다면 그것으로 득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이기더라도 어차피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바라는 대로 그들을 벌하고 시칠리아 전체에 옛 자유를 더 굳고 튼튼하게 물려주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결코 작지 않은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드문 위험이란 실패해도 잃는 것이 적고 성공하면 얻는 것이 가장 큰 위험입니다.

제 편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한 뒤, 시라쿠사 장군들과 길리포스는 아테네인이 배에 사람을 태우는 것을 알아채고 곧바로 저희도 배에 사람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니키아스는 일이 돌아가는 꼴에 질려, 이제 막 해안에서 배를 띄우려는 마당에 위험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가까운지를 깨닫고, 큰 고비에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 할 일을 다 하고도 아직 할 일이 남은 것 같고 할 말을 다 하고도 아직 다 말하지 못한 것 같다고 여겨, 다시 선장들을 하나하나 불러 저마다 아버지의 이름과 제 이름과 제 부족의 이름을 불러 가며 저마다 제가 쌓은 명성을 저버리지 말 것과 조상들이 이름을 떨친 그 물려받은 덕을 흐리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그는 그들에게 자유로운 나라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제 나라를,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구나 제 뜻대로 살도록 허락된 그 얽매이지 않은 자유를 일깨웠다. 그리고 그런 고비에 사람이 쓸 법한, 그리고 조금만 바꾸면 어느 자리에나 똑같이 쓰이는 다른 말들, 곧 아내와 아이들과 나라의 신들에 호소하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것이 진부하게 여겨지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순간의 경악 속에서는 쓸모가 있으리라고 믿으며 큰 소리로 불렀다. 이렇게, 스스로 느끼기에 원하는 만큼은 아니고 할 수 있는 만큼 당부하고 나서 니키아스는 물러나 군대를 바다로 이끌고 가 될 수 있는 대로 길게 늘어세웠으니, 배에 탄 사람들의 용기를 되도록 북돋우기 위해서였다. 한편 배 위에서 지휘를 맡은 데모스테네스와 메난드로스와 에우티데모스는 제 진영에서 배를 띄워 항구 어귀를 가로막은 방책과 열린 채로 남겨진 통로를 향해 곧장 몰고 가 힘으로 뚫고 나가려 했다.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이미 전과 거의 같은 수의 배로 나와 있었는데, 그 일부는 어귀를 지키고 나머지는 항구의 다른 데를 빙 둘러 지켜 아테네인을 사방에서 한꺼번에 치려 했으며, 육군은 배가 뭍에 닿을 만한 지점마다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시라쿠사 함대는 시카노스와 아가타르코스가 지휘하여 저마다 전체 병력의 한쪽 날개를 맡았고 가운데는 피텐과 코린트인이 맡았다. 나머지 아테네인이 방책에 이르러 첫 돌격의 충격으로 거기 배치된 배들을 눌러 이기고 매어 놓은 것을 풀려 하자,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이 사방에서 덮쳐 왔고, 싸움은 방책에서 항구 전체로 번져 앞선 어느 싸움보다 끈질기게 다투어졌다. 양편의 노잡이들은 갑판장의 명령에 따라 배를 몰아붙이는 데 큰 열의를 보였고, 조타수들은 배를 부리는 데 큰 기량을 보이며 서로 앞다투었다. 배가 일단 맞붙으면 배에 탄 병사들은 갑판 위의 임무가 다른 이들에게 뒤지지 않게 하려고 애썼으니, 요컨대 저마다 제가 맡은 부문에서 첫째임을 보이려고 힘썼다. 그리고 좁은 데에 많은 배가 얽혀 싸운 까닭에(이제껏 알려진 가장 좁은 자리에서 싸운 가장 큰 함대들로 둘을 합쳐 200척에 조금 못 미쳤다) 뱃부리로 들이받는 제대로 된 공격은 드물었으니, 노를 저어 물러나거나 적의 전열을 끊고 지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배가 다른 배를 피하다가 또는 제삼의 배를 치려다가 우연히 다른 배에 부딪히는 일이 더 잦았다. 배 한 척이 들이받으러 다가오는 동안에는 갑판 위의 사람들이 그 배에 투창과 화살과 돌을 퍼부었고, 일단 맞붙으면 중장보병들이 서로 상대의 배에 뛰어들어 맞잡고 싸우려 했다. 여러 곳에서 자리가 좁은 탓에 한 배가 한쪽에서는 적을 들이받으면서 다른 쪽에서는 제가 들이받히는 일이 벌어졌고, 두 척이 또는 때로 더 많은 배가 한 척을 둘러싸고 어쩔 수 없이 뒤엉키는 일이 벌어져, 조타수는 여기서는 막고 저기서는 치는 일을 한 번에 한 가지가 아니라 사방에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살펴야 했다. 한편 그 많은 배가 서로 부딪히며 내는 엄청난 굉음은 공포를 퍼뜨렸을 뿐 아니라 갑판장의 명령도 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양편의 갑판장들은 제 임무를 다하느라, 또 싸움의 열기 속에서 쉴 새 없이 제 부하들에게 명령을 외치고 호소를 외쳤다. 아테네인에게는 길을 뚫고 나가라고, 지금이야말로 제 기개를 보이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붙들라고 다그쳤고,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에게는 적이 달아나는 것을 막고 이겨서 제 나라를 드높이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외쳤다. 게다가 양편의 장군들은 싸움의 어느 자리에서든 누가 어쩔 수 없는 까닭도 없이 뒤로 물러나 뭍으로 가는 것을 보면 그 선장의 이름을 불러 물었으니, 아테네 쪽은 세 겹으로 적의 땅인 저 해안이 그토록 애써 얻은 저 바다보다 더 제 것이라고 여겨 물러나느냐고 물었고, 시라쿠사 쪽은 달아나는 아테네인에게서 달아나는 것이냐고, 그들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한편 뭍에 있던 양쪽 군대는 승패가 저울 위에 걸려 있는 동안 더없이 괴롭고 서로 어긋나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그 땅의 사람들은 이미 얻은 것보다 더 큰 영광에 목말라했고 쳐들어온 자들은 전보다 더 못한 처지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아테네인의 전부가 그 함대에 걸려 있었으므로 그 결과를 두고 느끼는 두려움은 일찍이 느껴 본 어떤 것과도 같지 않았고, 싸움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야는 싸움 자체와 마찬가지로 얼룩덜룩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터 가까이에서 모두가 한 지점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떤 이들은 제 편이 이기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하늘을 향해 구원을 빼앗지 말아 달라고 부르짖었고, 지는 쪽으로 눈을 돌린 다른 이들은 소리 내어 울며 부르짖었고 구경하는 자이면서도 실제로 싸우는 자들보다 더 무너졌다. 또 다른 이들은 싸움이 팽팽한 어느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다툼이 판가름 나지 않은 채 길어지자 흔들리는 몸이 그 마음의 요동을 그대로 비추었고, 늘 구원에 손이 닿을 듯하다가 또 늘 파멸의 문턱에 선 채로 그들이 그 가운데 가장 심한 괴로움을 겪었다. 요컨대 그 하나의 아테네 군대 안에서는 해전의 승패가 정해지지 않은 동안 온갖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으니, 비명이 있었고 환호가 있었고 "우리가 이긴다" "우리가 진다" 하는 소리가 있었고, 큰 무리가 큰 위험에 처하면 낼 수밖에 없는 그 밖의 온갖 외침이 있었다. 함대에 있던 사람들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마침내 오래 이어진 싸움 끝에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이 아테네인을 몰아내고, 큰 소리로 외치고 환호하며 그들을 뭍까지 여지없이 쫓았다. 해군은 이리로 저리로 흩어져 바다에서 사로잡히지 않은 만큼은 이제 뭍으로 달려들어 배에서 내려 제 진영으로 달아났다. 한편 육군은 더는 갈라지지 않고 한 충동에 휩쓸려 모두가 비명과 신음으로 그 일을 애통해하며 달려 내려갔으니, 어떤 이들은 배를 도우러, 어떤 이들은 성벽에 남은 것을 지키러 갔고, 남은 대다수는 이미 제 몸을 어떻게 구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실로 그 순간의 공황을 넘어서는 것은 일찍이 없었다. 그들은 필로스에서 저희가 안겼던 것과 거의 같은 것을 이제 겪었으니, 그때 스파르타인이 함대를 잃으면서 섬으로 건너간 사람들까지 잃었던 것처럼, 이제 아테네인도 무슨 뜻밖의 일이 돕지 않는 한 뭍으로 빠져나갈 희망이 없었다.

해전이 모진 싸움이었고 양편이 배도 목숨도 많이 잃은 터에, 이긴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이제 부서진 배와 시신을 거두고 도시로 돌아가 전승 기념물을 세웠다. 아테네인들은 불운에 짓눌린 나머지 시신이나 부서진 배를 거두게 해 달라고 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바로 그날 밤에 물러나고자 했다. 그러나 데모스테네스는 니키아스에게 가서 남은 배에 사람을 태워 이튿날 아침 다시 한번 길을 뚫고 나가 보아야 한다는 뜻을 밝혔으니, 아직 쓸 만한 배가 적보다 많이 남아 있어 아테네 쪽은 60척쯤인 데 견주어 적은 50척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니키아스도 아주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배에 사람을 태우려 하자 수부들이 오르기를 마다했으니, 패배에 하도 무너진 나머지 더는 이길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모두 뭍으로 물러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는 사이 시라쿠사인 헤르모크라테스는 그들의 뜻을 짐작하고, 그만한 규모의 병력이 뭍으로 물러나 시칠리아의 다른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전쟁을 다시 일으키도록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여겨, 당국자들에게 가서 제 생각을 밝히고 적을 밤에 빠져나가게 두어서는 안 되며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 전부가 당장 나아가 길을 막고 고갯길을 차지해 지켜야 한다고 일렀다. 당국자들은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그리해야 마땅하다고 여겼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기쁨에 저를 내맡기고 큰 해전을 치른 뒤 편히 쉬고 있는 백성을 따르게 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그날은 헤라클레스에게 제물을 바치는 축제를 지내고 있었고, 대부분은 승리에 도취해 축제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터라, 지금 이 순간에 무기를 들고 나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엇이든 다른 일에 동의할 법했다. 이런 까닭에 정무관들에게는 그 일이 될 성싶지 않아 보였다. 헤르모크라테스는 그들과 더 어찌해 볼 수 없음을 알고 이제 제 나름의 다음과 같은 꾀를 썼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아테네인이 밤사이에 가장 어려운 곳을 지나 조용히 앞서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땅거미가 지자마자 제 친구 몇을 기병 얼마와 함께 적의 진영으로 보냈고, 그들은 말소리가 닿을 만한 데까지 말을 타고 다가가 마치 아테네인을 위하는 사람인 양 몇몇을 불러내어, 니키아스에게(그에게는 실제로 성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라쿠사인이 길을 지키고 있으니 밤에 군대를 이끌고 나서지 말고 느긋하게 준비해 낮에 물러나라고 전하라고 일렀다. 그들은 이 말을 하고 떠났고, 그 말을 들은 자들이 아테네 장군들에게 알리자 장군들은 그 말이 진심임을 의심하지 않고 그 전갈을 믿어 그날 밤 떠나는 것을 미루었다.

결국 곧바로 떠나지 못했으므로 그들은 이튿날도 머물기로 했으니, 병사들이 가장 쓸모 있는 물건을 되도록 잘 꾸리고 나머지는 다 버려 두고 저마다 제 목숨을 부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만 지니고 떠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사이 시라쿠사인과 길리포스는 군대를 이끌고 나가 아테네인이 지날 법한 길을 그 땅 곳곳에서 막았고, 개울과 강의 여울을 지켰으며, 그들을 맞아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자리에서 그 군대를 멈춰 세우도록 진을 쳤다. 한편 저희 함대는 해안으로 올라가 아테네인의 배를 끌어냈다. 몇 척은 아테네인 자신이 뜻한 대로 태웠고, 나머지는 뭍에 밀려 올라와 있는 채로 시라쿠사인이 느긋하게 제 배에 잡아매어 아무도 막으려 하지 않는 가운데 도시로 끌고 갔다.

그 뒤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가 이제 준비는 넉넉히 되었다고 여겨, 군대의 이동은 해전이 있은 지 이틀째 되는 날에 이루어졌다. 그것은 참담한 광경이었으니, 배를 모두 잃고 큰 희망이 사라진 채 저희도 나라도 위태로운 가운데 물러난다는 그 한 가지 사정 때문만이 아니라, 진영을 떠나면서 눈과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은 묻히지 못한 채 누워 있었고, 그 가운데서 아는 이를 알아볼 때마다 사람들은 슬픔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한편 뒤에 남겨 두고 가는 산 자들, 곧 다치거나 병든 자들은 산 자들에게 죽은 자들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었고 죽은 자들보다 더 가여웠다. 이들은 애원하고 통곡하기 시작해 친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들었으니, 저를 데려가 달라고 빌면서 눈에 띄는 동료나 친족 하나하나를 큰 소리로 불렀고, 떠나려는 막사 동무들의 목에 매달렸으며, 힘이 닿는 데까지 따라가다가 몸의 힘이 다하면 거듭 하늘을 부르며 뒤에 남겨진 채 소리 높여 울부짖었다. 그리하여 온 군대가 눈물에 젖고 이런 꼴로 마음이 흐트러져, 이미 눈물로도 감당 못 할 재앙을 겪었고 앞에 놓인 알 수 없는 앞날에서 더 겪을까 두려워하는 적의 땅에서조차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낙담과 자책도 그들 가운데 널리 퍼져 있었다. 실로 그들은 굶주려 빠져나가는 도시에, 그것도 작지 않은 도시에 견줄 수 있을 뿐이었으니, 길을 가는 무리 전체가 4만 명을 밑돌지 않았다. 모두가 쓸모 있을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들고 갔고, 중장보병과 기병은 평소와 달리 무장을 한 채로 제 양식을 제가 날랐으니, 시종이 없어서 그런 이들도 있었고 시종을 믿지 못해 그런 이들도 있었다. 시종들은 오래전부터 달아나고 있었고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달아났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도 넉넉히 지니지는 못했으니, 진영에 양식이 더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당한 치욕 전체와 그 고통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닥쳤다는 사실은, 함께 겪는다는 것으로 얼마간 덜어지기는 했으나 그 순간에는 여전히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으니, 떠나올 때의 화려함과 영광을 끝에 이른 이 초라함과 견주어 볼 때 더욱 그러했다. 이것은 일찍이 그리스의 군대에 닥친 것 가운데 단연 가장 큰 뒤집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을 노예로 만들러 왔다가 제가 노예가 될까 두려워하며 떠나고 있었다. 그들은 기도와 파이안5과 함께 배를 띄워 나왔다가 이제는 그와 정반대의 조짐을 안고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바다가 아니라 뭍으로 가고 있었고 함대가 아니라 중장보병을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머리 위에 걸려 있는 위험이 워낙 커서 이 모든 것이 견딜 만해 보였다.

니키아스는 군대가 낙심하고 크게 달라진 것을 보고 대열을 따라 지나가며 그 형편에서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을 북돋우고 위로했으며, 한 부대에서 다른 부대로 옮겨 갈수록 간절함에, 그리고 제 말의 도움이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목소리를 점점 더 높여 갔다.

아테네인과 동맹 여러분, 지금 우리가 처한 자리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한 궁지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이제껏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겪은 재난 때문에도, 지금 겪고 있는 분에 넘치는 고통 때문에도 스스로를 너무 모질게 나무라서는 안 됩니다. 저 자신은 힘으로 여러분 가운데 누구보다 나을 것이 없고(실은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제가 병중에 있습니다), 운이 준 것으로 치면 사사로운 삶에서든 그 밖에서든 누구와도 맞먹는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은 여러분 가운데 가장 낮은 이와 똑같은 위험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 삶은 신들을 향한 정성으로, 사람들을 향한 올바름과 허물없음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앞날에 대해 여전히 굳은 희망을 품고 있으며, 우리가 겪는 불운이 그럴 법한 만큼 저를 두렵게 하지는 않습니다. 실로 그 불운이 가벼워지리라고 바랄 만합니다. 우리 적들은 이미 넉넉한 행운을 누렸고, 신들 가운데 누가 우리 원정에 노여워했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벌을 받았습니다. 우리 앞에도 이웃을 친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이 으레 하는 일을 하고서 감당 못 할 만큼 겪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 신들이 더 너그러우시기를 마땅히 바랄 수 있으니, 우리는 이제 그분들의 시샘보다 연민을 받기에 더 알맞은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보십시오. 여러분 대열에 서서 행군하는 중장보병의 수와 그 힘을 헤아리고, 낙담에 너무 내맡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내려앉는 곳마다 여러분 자신이 곧 하나의 도시이며, 시칠리아에는 여러분의 공격을 쉽게 막아 내거나 여러분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몰아낼 수 있는 곳이 달리 없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행군을 안전하고 질서 있게 하는 일은 여러분 자신이 살필 몫입니다. 저마다 오직 한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그 자리가 어디든 그곳을 이겨서 제 나라요 제 성채로 삼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양식이 넉넉지 않으니 밤이나 낮이나 걸음을 재촉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라쿠사인이 두려워 아직 우리에게 충실한 시켈인의 우호적인 어느 곳에 닿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그 즉시 스스로 안전하다고 여기셔도 좋습니다. 그들에게는 양식을 가지고 우리를 맞으라는 지시와 함께 이미 전갈을 보냈습니다. 요컨대 병사 여러분, 이것을 굳게 믿으십시오. 여러분은 용감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비겁함이 몸을 숨길 곳이 가까이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적에게서 빠져나간다면, 여러분 모두 마음이 바라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며, 여러분 가운데 아테네인은 비록 무너졌을지라도 나라의 큰 힘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도시를 이루는 것은 사람이지, 사람 없는 성벽이나 배가 아닙니다.

니키아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대열을 따라 지나가며 줄에서 벗어나 흩어지는 병사가 보이면 제자리로 데려왔고, 데모스테네스도 제가 맡은 쪽 군대에 그렇게 하며 아주 비슷한 말로 그들에게 말했다. 군대는 가운데가 빈 네모꼴로 행군했으니, 니키아스가 이끄는 부대가 앞서고 데모스테네스의 부대가 뒤따랐으며, 중장보병이 바깥을 이루고 짐꾼과 군대의 대부분이 가운데에 들었다. 그들이 아나포스강의 여울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는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의 부대가 늘어서 있었는데, 그들을 무찌르고 무사히 건너 앞으로 나아갔으나 시라쿠사 기병의 돌격과 경보병의 투창에 시달렸다. 그날 그들은 4.5마일쯤 나아가 어느 언덕에서 밤을 지냈다. 이튿날은 일찍 떠나 2마일쯤 더 나아갔고, 들판의 어느 자리로 내려가 거기에 진을 쳤으니, 사람이 사는 곳이어서 집집에서 먹을 것을 얻고 거기서 물을 길어 가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가려는 쪽으로 앞쪽 여러 펄롱에 걸쳐 물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시라쿠사인들은 앞으로 나아가 앞쪽 고갯길에 방벽을 쌓았으니, 그곳에는 가파른 언덕이 있고 그 양쪽에 바위 골짜기가 있어 아크라이온 벼랑이라고 불렸다. 이튿날 아테네인이 나아가려 하자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의 기병과 투창병이 둘 다 아주 많아 그 투창과 돌격에 길이 막혔고, 오래 싸운 끝에 마침내 같은 진영으로 물러났는데 거기에는 이제 전처럼 양식이 없었고 기병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들은 다시 떠나 방벽이 쌓인 언덕으로 밀고 나아갔는데, 거기에는 적의 보병이 그 방벽을 지키려고 여러 겹으로 방패를 겹쳐 늘어서 있었고 고갯길은 좁았다. 아테네인은 그 방벽을 쳤으나 언덕에서 퍼붓는 투창을 맞았으니, 언덕이 가팔라 그만큼 더 잘 맞았다. 그리하여 길을 뚫지 못하고 다시 물러나 쉬었다. 그러는 사이 가을에 흔히 그러하듯 천둥이 몇 차례 치고 비가 내렸는데, 그것이 아테네인의 마음을 더욱 꺾었으니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제 파멸이 다가온다는 조짐으로 여겼다. 그들이 쉬는 동안 길리포스와 시라쿠사인들은 군대의 일부를 보내 그들이 지나온 길에 그 뒤쪽으로 방벽을 쌓게 했으나, 아테네인이 곧바로 사람을 얼마 보내 막았다. 그 뒤 그들은 들판 쪽으로 더 물러나 밤을 지냈다. 이튿날 그들이 나아가자 시라쿠사인들은 그들을 에워싸고 사방에서 쳐서 많은 사람을 싸울 수 없게 만들었으니, 아테네인이 나아가면 뒤로 물러나고 물러나면 다가왔으며, 특히 그 뒤쪽을 쳐서 토막토막 무찔러 군대 전체에 공황을 일으키려 했다. 아테네인은 오래도록 이런 식으로 버텼으나, 4, 5펄롱을 나아간 뒤에는 들판에서 쉬려고 멈추었고 시라쿠사인들도 제 진영으로 물러났다.

밤사이에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제 병사들의 딱한 형편을 보고, 이제 온갖 필요한 것이 다 모자라고 적의 잦은 공격으로 많은 수가 싸울 수 없게 된 터라, 되도록 많은 불을 피워 놓고 군대를 이끌고 나가되 이제는 앞서 뜻했던 것과 같은 길이 아니라 시라쿠사인이 지키는 쪽과 반대되는 바다 쪽으로 가기로 했다. 이 길 전체는 군대를 카타나가 아니라 시칠리아의 다른 쪽으로, 곧 카마리나와 겔라와 그쪽에 있는 다른 그리스인과 이민족의 도시들 쪽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을 많이 피우고 밤에 떠났다. 그런데 모든 군대는, 그리고 큰 군대일수록 더욱, 두려움과 소동에 빠지기 쉬우니 특히 적의 땅을 밤에 적이 가까이 있는 가운데 지날 때 그러하다. 아테네인도 그런 공황에 하나 빠져, 앞선 부대인 니키아스의 부대는 뭉쳐서 한참 앞으로 나아갔으나 군대의 절반이 조금 넘는 데모스테네스의 부대는 떨어져서 다소 흐트러진 채로 행군했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그들은 바다에 이르러 헬로로스 길로 들어섰고, 카키파리스 강에 닿아 그 물길을 따라 내륙으로 올라가려고 걸음을 재촉했으니, 거기서 사람을 보내 부른 시켈인을 만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강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도 시라쿠사의 한 부대가 방벽과 울짱으로 여울을 막고 있었는데, 그 수비대를 힘으로 밀어내고 강을 건너 길잡이들의 말에 따라 에리네오스라는 다른 강으로 나아갔다.

한편 날이 밝아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이 아테네인이 떠난 것을 알자 대부분은 길리포스가 일부러 놓아주었다고 나무랐고, 그들이 간 길을 찾아내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서둘러 그 길로 뒤쫓아 저녁 끼니 무렵에 따라잡았다. 그들은 먼저 데모스테네스가 이끄는 병력과 마주쳤으니, 앞서 말한 밤의 공황 탓에 뒤처져 다소 더디게 흐트러진 채로 행군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쳐서 맞붙었고, 시라쿠사 기병은 이제 그들이 나머지에서 떨어져 나온 터라 한결 쉽게 에워싸 한자리에 몰아넣었다. 니키아스의 부대는 5, 6마일 앞서 있었으니, 그는 사정이 이러한 이상 안전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머물러 싸우는 데 있지 않고 되도록 빨리 물러나는 데 있으며 싸움은 어쩔 수 없을 때만 하는 것이라고 여겨 더 빨리 이끌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데모스테네스는 대체로 더 쉴 새 없이 시달렸으니, 뒤에 선 자리 탓에 적의 공격에 먼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시라쿠사인이 뒤쫓는 것을 알고 그는 제 병사들을 싸움 대형으로 세우려고 앞으로 밀고 나아가기를 그만두었고,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뒤쫓는 자들에게 에워싸여 그 자신과 함께 있던 아테네인이 더없이 딱한 자리에 놓였으니, 사방에 담이 둘린 터 안에 몰려 이쪽에도 저쪽에도 길이 나 있고 올리브나무가 아주 많은 곳에서 사방에서 투창이 쏟아져 내렸다. 시라쿠사인이 가까이 붙어 싸우기보다 이런 방식의 공격을 골라 쓴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으니, 이제 죽기를 각오한 자들과 맞붙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저희보다 아테네인에게 더 이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승리가 워낙 확실해진 터라 그들은 승리의 순간에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제 몸을 조금 아끼기 시작했고, 이대로도 적을 눌러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실제로 온종일 사방에서 아테네인과 그 동맹들에게 투창을 퍼부은 끝에 그들은 마침내 적이 상처와 그 밖의 고통으로 지쳐 버린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길리포스와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섬사람 가운데 제 편으로 넘어오고자 하는 자에게는 자유를 주겠다고 널리 알렸고, 몇 안 되는 도시가 넘어왔다. 그 뒤 나머지 전부에 대해 데모스테네스와 항복 조건이 맺어졌으니, 누구도 폭력으로나 가둠으로나 목숨을 이을 것이 모자라서나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무기를 내려놓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들은 모두 6,000명이 항복했고, 지니고 있던 돈을 다 내놓으니 방패 네 개의 우묵한 곳을 채웠다. 그들은 곧바로 시라쿠사인에게 이끌려 도시로 옮겨졌다.

한편 니키아스는 제 부대와 함께 그날 에리네오스 강에 이르러 건넌 다음 건너편의 높은 데에 군대를 자리 잡게 했다. 이튿날 시라쿠사인들이 그를 따라잡아 데모스테네스가 이끌던 병력이 항복했다고 알리고 그도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니키아스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해 기병 한 사람을 보내어 보게 하겠다며 휴전을 청했고, 그 사자가 그들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자 길리포스와 시라쿠사인에게 전령을 보내어, 시라쿠사인이 이 전쟁에 쓴 돈이 얼마든 아테네인을 대신해 갚기로 합의할 뜻이 있으니 제 군대를 보내 달라고 말했고, 돈을 갚을 때까지 1탈란톤6마다 한 사람씩 아테네인을 볼모로 주겠다고 했다. 시라쿠사인과 길리포스는 이 제안을 물리치고 이 부대도 다른 부대에게 했던 것처럼 쳐서, 사방을 둘러싸고 저녁때까지 투창을 퍼부었다. 니키아스의 병사들도 제 동료들만큼이나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이 딱하게 모자랐다. 그런데도 그들은 밤이 고요해지기를 기다려 다시 행군하려 했다. 그러나 무기를 집어 드는 참에 시라쿠사인이 그것을 알아채고 파이안을 불렀고, 이에 아테네인들은 들킨 것을 알고 무기를 도로 내려놓았으나, 300명쯤은 파수를 뚫고 나가 밤사이에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

날이 밝자마자 니키아스는 군대를 움직였고, 전처럼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에게 몰리며 사방에서 투창을 맞고 창에 찔려 쓰러졌다. 아테네인은 수많은 기병과 떼를 이룬 다른 병종이 사방에서 퍼붓는 공격에 밀려 아시나로스 강으로 나아갔으니, 강만 건너면 한결 숨을 돌릴 수 있으리라고 여겼고 지친 몸과 물을 찾는 갈증에도 내몰렸던 것이다. 거기에 이르자 그들은 뛰어들었고 질서는 끝장이 났으니, 저마다 먼저 건너려 했고 적의 공격 탓에 건너기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로 엉겨 붙을 수밖에 없게 되자 그들은 서로 부딪히고 서로 밟았으며, 어떤 이들은 곧바로 창에 찔려 죽었고 어떤 이들은 서로 뒤엉켜 짐짝에 걸려 넘어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건너편 기슭은 가팔랐는데 거기에 시라쿠사인이 늘어서서 아테네인에게 투창을 퍼부었으니, 아테네인 대부분은 강의 우묵한 바닥에 어지러이 몰려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인도 내려와 그들을 베었는데 물속에 있는 자들을 특히 그리했고, 물은 그리하여 곧바로 더러워졌으나 그들은 진흙이 섞이고 피가 어렸어도 그대로 계속 마셨으며 대부분은 그 물을 차지하려고 싸우기까지 했다.

마침내 많은 시신이 물줄기 안에 겹겹이 쌓이고 군대의 일부가 강에서 무너지고 거기서 빠져나간 몇 안 되는 자들마저 기병에게 끊긴 뒤, 니키아스는 시라쿠사인보다 더 믿었던 길리포스에게 제 몸을 넘기며 자기는 그와 스파르타인이 마음대로 하되 병사들을 죽이는 일만은 그만두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 뒤 길리포스는 곧바로 사로잡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나머지는 병사들이 몰래 빼돌린 많은 수를 빼고 모두 산 채로 한데 모였으며, 밤사이에 파수를 뚫고 나간 300명을 뒤쫓는 부대가 보내져 그들도 나머지와 함께 사로잡혔다. 공공의 재산으로 거두어진 적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몰래 빼돌려진 수는 아주 많아 시칠리아 전체가 그들로 채워졌으니, 데모스테네스와 함께 사로잡힌 자들과 달리 이들에게는 아무 협정도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큰 몫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으니 살육이 아주 컸고 이 시칠리아 전쟁의 어느 것도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행군 중에 있었던 그 많은 다른 싸움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쓰러졌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빠져나갔으니, 그 자리에서 빠져나간 이들도 있었고 노예로 부려지다가 나중에 달아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카타나에서 몸을 붙일 곳을 얻었다.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이제 한데 모여 전리품과 사로잡을 수 있는 대로 사로잡은 포로를 거두고 도시로 돌아갔다. 아테네인과 그 동맹 가운데 사로잡힌 나머지는 채석장에 가두었으니 그것이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길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길리포스의 뜻을 거슬러 죽임을 당했으니, 길리포스는 적의 장군들을 스파르타로 데려갈 수 있다면 그것이 제 승리의 면류관이 되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마침 그 가운데 하나인 데모스테네스는 섬과 필로스의 일 때문에 스파르타의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였고, 다른 하나인 니키아스는 같은 그 일 때문에, 곧 아테네인을 설득해 화약을 맺게 함으로써 포로들을 풀려나게 하려고 애쓴 까닭에 스파르타의 가장 큰 벗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까닭에 스파르타인은 그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고, 니키아스 자신이 길리포스에게 몸을 넘길 때 주로 믿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시라쿠사인 가운데 그와 연락을 주고받던 이들이 그가 고문을 받아 제 입으로 밝히는 바람에 승리에 탈이 날까 두려워했다고 하며, 다른 이들 특히 코린트인은 그가 부자인 만큼 뇌물로 빠져나가 살아남아 저희에게 더 해를 끼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들이 동맹을 설득해 그를 죽였다. 이것이, 또는 이와 같은 것이, 내가 사는 동안의 그리스인 가운데 그런 운명을 가장 받을 만하지 않았던 사람이 죽게 된 까닭이니, 그는 삶의 모든 과정을 덕에 엄격히 마음을 쏟으며 다스려 온 사람이었다.

채석장의 포로들은 처음에 시라쿠사인에게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지붕 하나 없는 좁은 구덩이에 빽빽이 갇혀 낮에는 햇볕의 열기와 숨 막히는 공기에 시달렸고, 이어 가을이 되어 밤이 쌀쌀해지자 그 급격한 변화로 병이 들었다. 게다가 자리가 없어 모든 일을 같은 자리에서 해야 했고, 상처로 죽거나 기온의 변화로 죽거나 그런 비슷한 까닭으로 죽은 자들의 시신이 겹겹이 쌓인 채로 버려져 있었으므로 견딜 수 없는 악취가 일었다. 그러는 동안 굶주림과 목마름이 그치지 않고 그들을 괴롭혔으니, 여덟 달 동안 한 사람에게 날마다 주어진 것이 물 반 파인트7와 곡식 1파인트뿐이었다. 요컨대 그런 곳에 던져진 사람이 겪으리라 여길 만한 고통은 하나도 그들에게서 면제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70일쯤을 다 함께 지냈고, 그 뒤에는 아테네인과 원정에 함께한 시칠리아 그리스인과 이탈리아 그리스인을 빼고 모두 팔렸다. 사로잡힌 자의 총수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7,000명보다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이 전쟁에서 그리스인이 이룬 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고,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 역사를 통틀어도 그러했으니, 이긴 쪽에게는 더없이 빛나고 진 쪽에게는 더없이 참혹한 일이었다. 그들은 모든 점에서 남김없이 졌다. 그들이 겪은 것은 무엇 하나 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들은, 흔히 말하듯, 온전한 파멸로 파멸했으니 함대도 군대도 그 모든 것이 부서졌고 많은 사람 가운데 집으로 돌아간 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시칠리아에서 있었던 일은 이러했다.

주

  1. 1. 스파르타 시민 — 스파르타 사회는 완전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 시민, 주변 자유민, 헬롯으로 나뉘었다. 원문에서 저자는 이 좁은 뜻의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를 구분해 쓴다.

  2. 2. 네오다모데이스 — 해방된 헬롯으로 이루어진 스파르타의 병력. 자유는 얻었으나 시민권은 갖지 못했고 주로 국외의 임무에 쓰였다.

  3. 3. 헬롯 — 스파르타에 예속되어 땅을 갈던 신분.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딸린 예속민으로, 수가 많아 스파르타인은 늘 그들의 봉기를 경계했다.

  4. 4. 1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이 장의 다른 거리 표기도 모두 같다.

  5. 5. 파이안 — 신에게 바치는 노래. 그리스인은 싸움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6. 6.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탈란톤은 6,000드라크메에 해당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7. 7. 파인트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