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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22장 (제VII권 제XXII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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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제VII권 제XXII장) 전쟁 제19년 · 데모스테네스의 도착 · 에피폴라이에서의 아테네인 패배 · 니키아스의 어리석음과 고집

그동안 시라쿠사인들이 바다와 뭍 양쪽에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데모스테네스와 에우리메돈이 아테네에서 오는 증원을 이끌고 도착했으니, 외국 배를 합쳐 함선 약 73척, 아테네와 동맹의 중장보병 거의 5,000명, 그리스인과 이민족의 투창병 다수, 그리고 투석병과 궁수와 그 밖의 모든 것이 그에 걸맞은 규모였다.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데켈레이아에 요새가 세워졌는데도 앞선 것과 거의 맞먹는 새 군대가 도착하고 아테네의 힘이 어느 방면에서나 그토록 크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제 위험에 한계도 끝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한동안 적잖이 낙담했다. 반면 먼저 와 있던 아테네 원정군은 불운한 가운데서도 얼마간 자신감을 되찾았다. 데모스테네스는 형편이 어떠한지 보고서, 니키아스처럼 질질 끌다 같은 꼴을 당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니키아스는 시라쿠사를 곧바로 치는 대신 카타나에서 겨울을 난 탓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두려움이 업신여김으로 바뀌어 사그라지게 두었고 길리포스가 펠로폰네소스에서 병력을 이끌고 올 시간을 내주었으니, 그가 즉시 쳤더라면 시라쿠사인들은 그 병력을 부르러 보내는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만으로도 그를 당해 낼 만하다고 여겼으므로 이미 포위되고 나서야 제가 모자란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그때 가서 증원을 부르러 보낸다 해도 그 도착을 똑같이 이롭게 쓰지는 더 이상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떠올리고, 또 자기도 니키아스와 마찬가지로 도착한 다음 첫날인 지금이 적에게 가장 두려운 때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데모스테네스는 제 군대가 당장 불러일으킨 경악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끌어내는 데 조금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테네인이 시라쿠사를 에워싸지 못하게 막고 있는 시라쿠사인의 맞선 성벽이 하나뿐이며, 에피폴라이로 오르는 길을 손에 넣고 이어서 그곳 진영을 손에 넣는 자라면 아무도 그 공격을 기다리고 있지조차 않을 터이니 그 성벽을 빼앗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서둘러 그 일에 나섰다. 그는 이것이 전쟁을 끝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보았으니, 성공하여 시라쿠사를 손에 넣거나, 아니면 원정에 나선 아테네인의 목숨과 나라 전체의 재원을 헛되이 갉아먹는 대신 원정군을 데리고 돌아가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테네인은 먼저 나아가 아나포스 부근 시라쿠사인의 땅을 짓밟고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뭍에서나 바다에서나 거칠 것 없이 밀고 나갔으며, 시라쿠사인은 올림피에이온에서 나온 기병과 투창병으로 맞서는 것 말고는 어느 쪽에서도 대적하려 들지 않았다. 다음으로 데모스테네스는 먼저 공성 기계로 맞선 성벽을 쳐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끌어온 기계가 성벽에서 싸우는 적에게 불타고 나머지 병력도 여러 지점에서 공격했다가 물러난 뒤, 그는 더 미루지 않기로 하고 니키아스와 동료 지휘관들의 동의를 얻어 에피폴라이를 치려던 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낮에는 들키지 않고 다가가 올라가기가 불가능해 보였으므로, 그는 닷새 분 식량을 갖추라 명하고 석공과 목수를 모두 데려갔으며, 화살을 비롯해 일이 잘되었을 때 요새를 쌓는 데 필요할 만한 그 밖의 온갖 것을 챙겨, 첫 야경이 지난 뒤 에우리메돈과 메난드로스와 군대 전체를 이끌고 에피폴라이로 떠났고, 니키아스는 진지에 남았다. 적의 파수에게 들키지 않고 에우리엘로스 언덕(앞서 온 군대가 처음에 올라갔던 곳이다)으로 올라간 그들은 시라쿠사인이 그곳에 둔 요새로 다가가 그것을 빼앗고 수비대 일부를 칼로 베었다. 그러나 더 많은 수가 곧바로 달아나 진영에 위급을 알렸으니, 에피폴라이에는 외곽 보루로 지켜지는 진영이 셋 있어 하나는 시라쿠사인의 것, 하나는 나머지 시칠리아 그리스인의 것, 하나는 동맹의 것이었고, 에피폴라이의 이 구역을 본래 지키던 시라쿠사인 600명에게도 알렸다. 이들은 곧장 쳐들어온 쪽을 향해 나아갔다가 데모스테네스와 아테네인과 마주쳐 거세게 버틴 끝에 무너졌고, 이긴 쪽은 제 기세가 식을 틈을 주지 않고 이 공격의 목표를 이루려는 마음에 즉시 밀고 나갔으며, 그러는 사이 다른 이들은 처음부터 수비대가 버리고 간 시라쿠사인의 맞선 성벽을 빼앗고 흉벽을 허물고 있었다. 시라쿠사인과 동맹들, 그리고 제 휘하 병력을 거느린 길리포스가 외곽 보루에서 구하러 나왔으나, 야습이란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담한 짓이었으므로 적잖이 경악한 채로 맞붙었고 처음에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승리에 달아오른 아테네인이 공격의 고삐를 늦추거나 적에게 다시 모일 틈을 주지 않고 아직 싸움에 들지 않은 적 병력 전체를 되도록 빨리 뚫고 나가려 하여 대열이 흐트러진 채 나아가던 참에, 보이오티아인이 처음으로 그들에게 맞서 버티고 그들을 쳐서 무너뜨리고 달아나게 했다.

이제 아테네인은 큰 혼란과 당혹에 빠졌으니, 어느 쪽에서도 이 일의 자세한 전말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낮이라면 물론 싸우는 자들이 더 또렷이 알기는 하나 그때도 벌어지는 일 전부를 아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누구도 제 바로 곁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런데 밤에 벌어진 싸움에서(이 전쟁 동안 큰 군대들 사이에 벌어진 밤 싸움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누가 무엇을 확실히 알 수 있었겠는가? 밝은 달이 떠 있었으나 그들은 달빛 아래서 사람이 보는 만큼으로만 서로를 보았으니, 곧 몸의 윤곽은 가려낼 수 있었으되 그것이 아군인지 적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양쪽 다 좁은 자리에서 수많은 중장보병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테네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미 지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아직 꺾이지 않은 채 첫 공격을 하러 올라오고 있었다. 나머지 병력의 큰 몫도 이제 막 올라왔거나 아직 오르는 중이어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앞서 무너진 일 때문에 앞쪽은 온통 혼란에 빠졌고, 소란 탓에 무엇 하나 가려내기 어려웠다. 이긴 시라쿠사인과 동맹들은 밤에는 그것만이 서로 뜻을 통할 수 있는 길이었으므로 큰 소리로 외치며 서로를 북돋웠고, 그러면서 저희에게 달려드는 자를 모두 받아 냈다. 반면 아테네인들은 서로를 찾아다니며, 앞에 있는 자가 이제 달아나고 있는 제 편일 수도 있건만 그들을 모두 적으로 여겼고, 서로를 알아볼 유일한 수단인 암구호를 끊임없이 물어 댄 탓에 모두가 한꺼번에 묻는 바람에 저희끼리 큰 혼란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에게 알려 주기까지 했으며, 정작 적의 암구호는 그만큼 쉽게 알아내지 못했으니 시라쿠사인은 이기고 있어 흩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그만큼 잘못 알아볼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테네인이 저희보다 약한 적의 무리와 마주치면 그 무리는 아테네인의 암구호를 알고 있어서 빠져나갔고, 반대로 아테네인 자신이 대답하지 못하면 칼에 베였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 무엇보다도 그들을 해친 것은 파이안1 노래였으니, 그것이 양쪽에서 거의 같았던 탓에 당혹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군대 안의 아르고스인과 코르키라인, 그 밖의 도리스계 사람들은 제 파이안을 올릴 때마다 적에 못지않게 아테네인에게 두려움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한번 어지러워지고 나자 그들은 싸움터 여러 곳에서 저희끼리, 동지가 동지와, 시민이 시민과 부딪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서로 겁을 주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맞붙어 싸우기까지 하여 겨우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쫓기는 중에 많은 이가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으니 에피폴라이에서 내려가는 길이 좁았기 때문이고, 무사히 평지로 내려온 자들 가운데 많은 수, 특히 먼저 와 있던 원정군에 속한 이들은 그 지역을 더 잘 알았던 덕에 빠져나갔으나, 새로 온 이들 가운데 얼마는 길을 잃고 들판을 헤매다가 아침에 시라쿠사 기병에게 끊겨 죽임을 당했다.

이튿날 시라쿠사인은 전승 기념물 둘을 세웠으니, 하나는 에피폴라이에서 아테네인이 올라온 자리에, 다른 하나는 보이오티아인이 처음으로 그들을 막아선 자리에 세웠고, 아테네인은 휴전 아래 제 전사자를 거두어 갔다. 아테네인과 동맹들 가운데 아주 많은 수가 죽었으나 거두어들인 무구는 죽은 자의 수로 셈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았으니, 방패를 버리고 벼랑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던 자들 가운데 얼마는 목숨을 건져 나머지처럼 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이 있은 뒤 시라쿠사인은 뜻밖에 찾아온 이런 행운에 옛 자신감을 되찾아, 내란이 일어난 아크라가스로 시카노스를 함선 15척과 함께 보내 될 수 있으면 그 도시를 제 편에 끌어들이게 했고, 한편 길리포스는 증원을 데려오려고 다시 뭍길로 시칠리아의 나머지 지역으로 갔으니, 에피폴라이 일의 결말을 본 뒤로 이제 아테네 진지를 들이쳐 빼앗을 수 있으리라 바랐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테네 장군들은 벌어진 재앙과 군대 전체의 쇠약함을 두고 의논했다. 그들은 제가 벌인 일들이 성공하지 못했고 병사들이 이곳에 머무는 데 진저리 친다는 것을 보았으며, 한 해 가운데 병이 도는 철인 데다 진을 친 자리가 늪지고 몸에 좋지 않은 곳이어서 병이 널리 퍼져 있었고, 형편은 전반적으로 가망 없다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데모스테네스는 더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으니, 에피폴라이를 치는 모험에 나설 때 품었던 본래 생각대로, 그것이 실패한 지금은 아직 바다를 건널 수 있고 늦게 온 증원 덕에 적어도 바다에서만은 우세할 수 있는 동안에 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떠나자는 데 표를 던졌다. 그는 또 이제 굴복시키기가 쉽지 않은 시라쿠사인을 상대로 하기보다 아티카에 요새를 쌓고 있는 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이어 가는 편이 나라에 더 이롭다고 말했으며, 그 밖에도 포위를 계속하여 큰돈을 아무 보람 없이 탕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데모스테네스의 의견은 이러했다. 니키아스는 형편이 나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제 쪽의 약함을 드러내어 말하거나 아테네인이 전원 회의에서 드러내 놓고 퇴각에 표를 던졌다는 것이 적에게 알려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으니, 그리 되면 정작 물러나고자 할 때 들키지 않고 해내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가 따로 얻은 정보는, 아테네인이 포위를 굳게 이어 가기만 하면 적의 형편이 머지않아 제 쪽보다 나빠지리라고 바랄 만한 근거를 여전히 주고 있었으니, 특히 지금의 함대가 가져다준 더 넓은 제해권으로 돈이 모자라게 하여 시라쿠사인을 지치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이뿐 아니라 시라쿠사 안에는 그 도시를 아테네인에게 넘기려는 무리가 있어 그에게 계속 전언을 보내며 포위를 풀지 말라고 이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를 알고 있었고 실은 두 길 사이에서 망설이며 앞일을 더 또렷이 보고 싶어 기다리고 있던 그는,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며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기를 거부했고, 아테네인이 제 표결 없이 돌아오는 것을 결코 승인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한 일을 두고 표를 던질 자들은 이곳의 저희처럼 제 눈으로 본 자로서 사실을 판단하지 않고 적의를 품은 비판자에게서 들었을 말로 판단할 것이니 그저 말 잘하는 첫 연설자의 중상에 이끌릴 뿐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이 자리의 병사들 가운데 많은 수, 아니 대부분은 지금은 제 처지가 위태롭다고 그토록 큰 소리로 떠들지만 아테네에 닿으면 그 반대를 똑같이 큰 소리로 떠들면서 장군들이 뇌물을 받고 저희를 배신하여 돌아온 것이라고 말하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아테네인의 기질을 아는 자기로서는 아테네인의 손에 불명예스러운 죄목을 쓰고 부당한 판결로 죽느니 차라리 운에 맡겨, 죽어야 한다면 적의 손에 군인답게 죽는 편을 택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시라쿠사인이 저희보다 형편이 더 나빴다. 용병에게 삯을 주고 요새 진지에 돈을 들이고 이제 꼬박 한 해 동안 큰 함대를 유지하느라 그들은 이미 쪼들리고 있었고 머지않아 옴짝달싹 못 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탈란톤2 2,000을 썼고 그 밖에도 무거운 빚을 졌으며, 삯을 주지 못해 지금의 병력 가운데 아무리 작은 몫이라도 잃는다면 그 일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으니, 아테네처럼 복무의 의무를 진 병사보다 용병에 더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머물러 포위를 이어 가야 하며 훨씬 우세한 돈의 면에서 지고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니키아스가 이토록 단정해 말한 것은 시라쿠사의 재정난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곳에서 포위를 풀지 말라는 전언을 그에게 계속 보내던 친아테네 파의 세력이 컸기 때문이며, 그 밖에도 전보다 제 함대를 더 믿어 적어도 그것의 성공만은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모스테네스는 포위를 이어 간다는 말을 한순간도 들으려 하지 않고, 아테네의 결의 없이 군대를 이끌고 물러날 수 없고 머물러야만 한다면 탑소스나 카타나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곳이라면 뭍의 병력이 휩쓸고 다닐 넓은 지역을 얻어 적에게서 빼앗아 먹고살 수 있어 그로써 적에게 해를 입히게 되고, 함대는 싸울 열린 바다를 얻게 되어, 곧 온통 적에게 유리한 좁은 자리 대신 제 기술이 쓸모 있을 넓은 바다를, 배를 내보낼 때나 들일 때나 갇히거나 에워싸이지 않고 물러나거나 나아갈 수 있는 바다를 얻는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지금 있는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데는 전적으로 반대하며 당장, 되도록 빨리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고집했고, 에우리메돈도 이 판단에 동의했다. 그러나 니키아스가 여전히 반대하자 그들에게 얼마간 자신 없는 마음과 망설임이 스몄으니, 니키아스가 저토록 단정하는 데는 무언가 더 아는 정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

  1. 1. 파이안 — 신에게 바치는 노래. 그리스인은 싸움에 들어가기 직전이나 승리를 기릴 때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시라쿠사인은 도리스계였고 아테네 쪽 동맹에도 아르고스인과 코르키라인 같은 도리스계가 섞여 있어, 양쪽이 올리는 파이안이 거의 같게 들렸다.

  2. 2.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은의 무게로 셈했고 큰 액수를 헤아릴 때 썼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