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제IV권 제XIV장) 전쟁 제8년과 제9년 · 보이오티아 침공 · 암피폴리스 함락 · 브라시다스의 빛나는 전과
같은 해 여름 미틸레네인이 앞서 뜻했던 대로 안탄드로스에 성벽을 두르려 할 때, 분담금을 거두는 일을 맡은 아테네 함대의 지휘관 데모도코스와 아리스테이데스가 헬레스폰토스에서 그곳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해 들었다(동료 지휘관 라마코스는 함선 10척을 이끌고 폰토스로 들어가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이 제2의 아나이아가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아나이아는 사모스에서 쫓겨난 자들이 자리를 잡고 사모스를 괴롭히던 곳으로, 펠로폰네소스 함대에 수로 안내인을 보내 거들고 도시를 뒤숭숭하게 만들며 사모스에서 추방된 자를 모조리 받아들이던 터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동맹들에게서 병력을 그러모아 배를 띄웠고, 안탄드로스에서 맞서 나온 군세를 싸움에서 이겨 그곳을 되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폰토스로 들어갔던 라마코스는 헤라클레이아 땅의 칼렉스 강에 대어 두었던 배를 잃었으니, 내륙에 비가 내려 불어난 물이 갑자기 그들에게 덮쳐 내려왔던 것이다. 그와 그의 군사는 아시아 쪽에 사는 비티니아의 트라키아인의 땅을 육로로 지나 폰토스 어귀의 메가라 식민시인 칼케돈에 이르렀다.
같은 해 여름 아테네의 장군 데모스테네스는 메가라 땅에서 돌아온 직후 함선 40척을 이끌고 나우팍토스에 이르렀다. 히포크라테스와 그는 보이오티아 여러 도시의 어떤 자들에게서 제안을 받아 둔 터였는데, 그들은 정체를 뒤엎고 아테네에서와 같은 민주정을 세우고자 하는 자들이었고 이 음모를 앞장서 꾸민 것은 테베에서 쫓겨난 프토이오도로스였다. 테스피아이 땅 크리사 만에 있는 항구 도시 시파이는 한 무리가 그들에게 넘겨주기로 했고, 카이로네이아는 (전에는 미니아의 오르코메노스라 불렸고 지금은 보이오티아의 오르코메노스라 불리는 도시에 딸린 곳이다) 그 도시의 다른 무리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하기로 했으니, 그곳에서 쫓겨난 자들이 이 일에 몹시 부지런해 펠로폰네소스에서 사람을 사들이고 있었다. 포키스인 몇 사람도 음모에 끼어 있었으니, 카이로네이아가 보이오티아의 변경 도시로서 포키스의 파노티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테네인은 에우보이아를 바라보는 타나그라 땅의 아폴론 성소 델리온을 차지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모든 일은 미리 정해 둔 하루에 한꺼번에 일어나야 했는데, 보이오티아인이 곳곳의 소란에 발이 묶여 델리온에서 힘을 모아 맞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일이 뜻대로 되어 델리온에 성벽이 서기만 한다면, 설령 보이오티아에 당장 정변이 따르지 않더라도 이 자리들을 손에 쥐고 그 땅을 들이쳐 시달리게 하며 일을 벌이는 파당 사람들이 저마다 가까운 데 피할 곳을 두게 되는 이상 형세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아테네인의 뒷받침을 받고 과두파의 힘은 갈라질 터이니 얼마 뒤에는 제 뜻대로 일을 매듭지을 수 있으리라고 이 계획을 꾸민 자들은 자신 있게 내다보았다.
꾸미고 있던 음모는 그러했다. 히포크라테스는 본국에서 일으킨 병력을 거느리고 보이오티아로 나아갈 알맞은 때를 기다렸고, 그러는 동안 데모스테네스를 앞서 말한 함선 40척과 함께 나우팍토스로 보냈다. 그 지방에서 아카르나니아인과 다른 동맹들의 군대를 일으킨 뒤 배를 띄워 음모에 가담한 자들에게서 시파이를 넘겨받으라는 것이었고, 두 작전을 한꺼번에 치를 날을 미리 맞춰 두었다. 데모스테네스는 이르러 보니 오이니아다이가 이미 힘을 합친 아카르나니아인에게 눌려 아테네 동맹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그 지방의 동맹을 모조리 일으켜 살린티오스와 아그라이아인을 치고 굴복시켰으며, 그런 다음 정한 때에 시파이에 닿는 데 필요한 준비에 매달렸다.
같은 해 여름 그 무렵에 브라시다스는 중장보병 1,700명을 거느리고 트라키아 지방을 향해 떠났고, 트라키스의 헤라클레이아에 이르자 그곳에서 파르살로스에 있는 벗들에게 전령을 보내 자기와 자기 군대를 그 땅으로 데려가 달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아카이아의 멜리티아로 파나이로스와 도로스와 히폴로키다스와 토릴라오스와 칼키디케의 프록세노스1인 스트로파코스가 왔고, 그는 이들의 인도를 받아 다시 길을 떠났는데 다른 테살리아인도 따라왔으며 그 가운데에는 페르디카스의 벗인 라리사의 니코니다스가 있었다. 인도하는 자 없이 테살리아를 가로지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그리스 전역에서 무장한 군세가 이웃 나라의 땅을 허락 없이 지나가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테살리아 백성은 늘 아테네인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실제로 테살리아에 여느 때와 같은 좁은 과두정 대신 법에 따른 정체가 서 있었더라면 그는 결코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그는 에니페우스 강가에서 반대편 파당의 몇 사람에게 가로막혀 더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고, 나라의 동의 없이 그런 일을 꾀한다는 나무람을 들었다. 이에 그를 인도하던 자들은 그들의 뜻을 거슬러 그를 데려갈 생각은 없으며, 뜻밖에 찾아온 손님을 벗으로서 모시고 갈 뿐이라고 대답했다. 브라시다스 자신도 말을 보태, 자기는 테살리아와 그 주민에게 벗으로 왔고 무기는 그들이 아니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아테네인을 겨누고 있으며, 테살리아인과 스파르타인 사이에는 서로의 땅을 오가지 못하게 할 만한 다툼이 있다고 들은 바 없으나 그들의 뜻을 거슬러 나아갈 생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니 다만 자기를 막지 말아 달라고 청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들은 이 대답을 듣고 물러갔고, 그는 자기를 인도하던 자들의 말을 좇아 자기를 막으려는 더 큰 군세가 모이기 전에 멈추지 않고 밀고 나아갔다. 그리하여 멜리티아를 떠난 그날 안에 파르살로스까지 그 거리를 모두 달려 아피다노스 강가에 진을 쳤고, 이어 파키온으로, 거기서 다시 페라이비아로 갔다. 여기서 테살리아인 인도자들은 돌아갔고, 테살리아에 딸린 페라이비아인이 그를 페르디카스의 영토인 디온에 내려놓았으니, 올림포스산 아래 테살리아를 바라보는 마케도니아의 도시였다.
이렇게 해서 브라시다스는 누구도 막을 채비를 갖추기 전에 테살리아를 서둘러 지나 페르디카스와 칼키디케에 이르렀다. 펠로폰네소스에서 군대가 떠나오게 만든 것은 아테네에 반란을 일으킨 트라키아 지방의 도시들과, 아테네인의 잇단 성공에 놀란 페르디카스였다. 칼키디케인은 아테네가 원정을 나선다면 자기들이 첫 목표가 되리라고 여겼는데, 아직 반란을 일으키지 않은 이웃 도시들도 몰래 그 청에 함께 나서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페르디카스 역시 드러내 놓고 싸움을 벌이고 있지는 않았으나 아테네인과의 묵은 다툼 탓에 두려움을 품고 있었고, 무엇보다 링케스티스인의 왕 아르라바이오스를 굴복시키고자 했다. 마침 그때 스파르타인의 처지가 좋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군대를 펠로폰네소스 밖으로 내보내게 하기가 그만큼 덜 어려웠다. 아테네인이 펠로폰네소스를, 그중에서도 특히 라코니아를 치는 것은 맞받아 그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동맹에게 군대를 보냄으로써 가장 잘 돌려놓을 수 있으리라는 바람이 있었고, 더구나 그 동맹들은 군대를 먹여 살리겠노라 하며 반란을 도우라고 청하고 있던 터였다. 스파르타인으로서도 헬롯2을 얼마간 나라 밖으로 내보낼 구실이 생긴 것이 반가웠으니, 지금의 형세와 필로스의 점령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실제로 헬롯의 수와 그 고집스러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파르타인은 이제 내가 적으려는 일까지 저질렀으니, 그들의 정책은 언제나 헬롯을 경계해야 한다는 필요에 매여 있었다. 헬롯에게 포고가 내려, 적을 맞아 가장 크게 공을 세웠다고 내세울 만한 자들을 저희들 가운데서 뽑으라 했고 자유를 주겠노라 했다. 이는 그들을 시험해 보려는 것으로, 먼저 나서서 자유를 요구하는 자들이 가장 기개가 높고 반란을 일으키기 쉬운 자들이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00명이나 뽑혔고, 이들은 머리에 관을 쓰고 새로 얻은 자유를 기뻐하며 신전을 돌았다. 그러나 스파르타 시민3들은 얼마 뒤 그들을 없애 버렸고, 그들이 저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한 스파르타 시민들이었으므로 이제 기꺼이 700명을 중장보병으로 삼아 브라시다스와 함께 보냈고, 나머지 병력은 브라시다스가 펠로폰네소스에서 돈을 들여 모았다.
브라시다스를 내보낸 것은 무엇보다 그 자신이 바랐기 때문이었으나, 칼키디케인 또한 스파르타에서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철저함을 보여 준 이 사람을 몹시 얻고 싶어 했다. 그가 뒷날 나라 밖에서 한 일은 제 나라에 더할 나위 없이 쓸모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때에 그가 여러 도시를 상대로 보인 올바르고 절도 있는 처신은 계략으로 손에 넣은 자리들 말고도 여러 도시가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고, 그리하여 스파르타인이 뒷날 실제로 그렇게 했듯이 화평을 논하고자 했을 때 내어 줄 자리를 손에 쥐고 있게 되었으며, 그동안 전쟁의 짐은 펠로폰네소스에서 다른 데로 옮겨 갔다. 전쟁이 한참 뒤로 흘러 시칠리아의 일이 있고 난 뒤, 어떤 이는 겪어서 알고 어떤 이는 소문으로 들어 알던 이때 브라시다스의 용맹과 처신이야말로 아테네의 동맹들에게 스파르타 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일으킨 가장 큰 까닭이었다. 그는 맨 먼저 나라 밖에 나가 어느 모로 보나 훌륭한 사람임을 보여 주었고, 나머지도 그와 같으리라는 믿음을 남겼다.
한편 그가 트라키아 지방에 이르렀다는 것이 아테네인에게 알려지자마자 그들은 이 원정을 꾸민 자로 본 페르디카스에게 싸움을 선포했고, 그쪽 동맹들을 더 바짝 살폈다.
브라시다스와 그의 군대가 이르자 페르디카스는 곧바로 그들과 제 군세를 거느리고, 이웃해 있으면서 다툼이 있어 굴복시키고자 하던 링케스티스의 마케도니아인의 왕이자 브로메로스의 아들인 아르라바이오스를 치러 나섰다. 그러나 군대와 브라시다스를 거느리고 링코스로 들어가는 고개에 이르렀을 때 브라시다스는 그에게, 싸움을 벌이기에 앞서 가서 아르라바이오스를 설득해 스파르타의 동맹으로 삼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르라바이오스 쪽에서 이미 브라시다스를 둘 사이의 중재자로 삼겠다는 뜻을 비쳐 제안해 온 데다, 함께 온 칼키디케의 사절들이 페르디카스의 두려움을 없애지 말라고, 그래야 그가 저희 일에 더욱 열심을 내리라고 그에게 일러 둔 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르디카스의 사절들은 스파르타에서 그가 제 둘레의 여러 자리를 스파르타와 동맹 맺게 하겠노라 말한 일이 있었으므로, 브라시다스는 아르라바이오스의 문제를 더 넓게 볼 수도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페르디카스는 저희 다툼을 중재하라고 그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리키는 적을 무찌르라고 데려온 것이며, 자기가 군대의 절반을 먹여 살리고 있는 터에 브라시다스가 아르라바이오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짓이라고 맞받았다. 그럼에도 브라시다스는 페르디카스의 뜻을 저버리고 그가 반대하는데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말에 설득되어 아르라바이오스의 땅을 치지 않은 채 군대를 물렸다. 그러자 페르디카스는 자기에게 신의가 지켜지지 않았다 하여 군대를 먹이는 몫으로 절반이 아니라 3분의 1만을 내놓았다.
같은 해 여름 브라시다스는 때를 놓치지 않고 칼키디케인과 함께 안드로스의 식민시인 아칸토스로 진군했으니, 포도를 거두기 조금 전이었다. 그곳 주민은 그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두 패로 갈렸는데, 칼키디케인과 함께 그를 불러들인 자들과 민중파였다. 그러나 아직 거두지 않고 밭에 있던 열매에 대한 걱정 덕분에 브라시다스는 뭇사람을 설득해 자기 혼자만 들어가게 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할 말을 들어 보게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안으로 들어가 백성 앞에 섰고, 스파르타인치고는 말이 서투르지 않았으므로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말했다.
아칸토스인 여러분, 스파르타인이 저와 제 군대를 내보낸 것은 우리가 이 전쟁을 시작하면서 내세웠던 그 이유를 참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곧 그리스를 자유롭게 하고자 아테네인과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는 것이 늦어진 것은 본국의 전쟁을 잘못 내다본 탓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의 도움 없이 우리 힘만으로, 여러분이 아무것도 걸지 않은 채로 아테네인을 이내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바랐던 것입니다. 이 일로 우리를 탓하지는 마십시오. 우리는 할 수 있게 된 바로 그때에 왔고, 여러분의 도움을 얻어 그들을 굴복시키는 데 온 힘을 다할 채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성문이 제 앞에 닫혀 있고 제가 더 나은 맞이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니 저는 놀랍습니다. 우리 스파르타인은 여러분을 우리를 간절히 맞고자 하는 동맹으로 여겼고, 우리 몸이 여러분 곁에 닿기에 앞서 마음이 먼저 가 닿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 기대로 우리는 낯선 땅을 여러 날 걷는 온갖 위험을 무릅썼으니, 우리의 열의가 우리를 그만큼 멀리까지 데려왔던 것입니다. 그러고도 여러분이 다른 뜻을 품고 여러분 자신의 자유와 그리스의 자유를 가로막으려 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저를 막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제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저에게 덜 붙으려 할 것이니, 제가 맨 먼저 찾아온 여러분이, 아칸토스처럼 무게 있는 도시가, 아칸토스인처럼 사려 깊은 이들이 저를 받아들이기를 마다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내세우는 이유가 참된 것임을 밝힐 길이 저에게 없어집니다. 제가 내놓는 자유에 온당치 못한 구석이 있다고들 하거나, 제 군세가 모자라 아테네의 공격에서 여러분을 지켜 줄 수 없다고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거느린 이 군대로 니사이아를 구하러 갔을 때 아테네인은 저보다 군세가 많았는데도 감히 저와 맞붙지 못했습니다. 또 그들이 니사이아에 두었던 만큼 많은 군대를 바다 건너 여러분에게 보내는 일은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로 말하자면 그리스인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러 왔으니, 제가 끌어들이는 동맹은 독립을 누리게 하겠다고 제 나라를 묶어 둔 엄숙한 맹세가 그 증인입니다. 게다가 제가 온 뜻은 힘이나 속임수로 여러분의 동맹을 얻어 내자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주인 노릇을 하는 아테네인에 맞서 여러분을 돕도록 제 동맹을 내어 드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내놓는 보증을 보고도 제 뜻을 의심하는 데 대해, 또 여러분을 지킬 제 힘을 의심하는 데 대해 저는 똑같이 항의하며, 망설이지 말고 저에게 함께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사사로운 원수가 있어 제가 도시를 어느 한 파당의 손에 넘기지나 않을까 두려워 뒤로 물러서는 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마음을 놓아도 좋습니다. 저는 이 파당이나 저 파당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또 제가 여러분의 정체를 저버리고 다수를 소수에게, 또는 소수를 다수에게 종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참된 뜻에서 여러분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낯선 나라의 멍에보다 무거울 것이며, 우리 스파르타인은 애쓴 보람으로 고마움을 받기는커녕 명예도 영광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나무람을 들을 것입니다. 아테네인과의 싸움에서 우리 손을 굳세게 해 주는 그 고발들을 우리 스스로 받아 마땅한 것으로 만들게 되고, 정직한 척하지도 않는 자들에게서보다 우리에게서 그것이 더 미움을 살 것입니다. 이름 있는 자가 탐내는 것을 드러난 힘으로 빼앗기보다 그럴듯한 속임수로 빼앗는 편이 더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의 침해는 운이 준 힘이라는 구실이라도 있으나 뒤의 것은 그저 영리한 도둑질일 따름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닿은 일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그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지킵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린 맹세에 더해, 우리의 말을 실제로 드러난 사실과 견주어 볼 때 우리가 말한 대로 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다는 확신이 절로 생기는 것을 보시는 마당에, 이보다 더 굳센 보증이 여러분에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가 드린 이 말씀에 여러분이 할 수 없노라는 핑계를 내놓고 벗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으니 거절하더라도 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신다면, 또 여러분이 보기에 자유에는 위험이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며 자유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에게 내어 주는 것이 옳지 아무에게나 그 뜻을 거슬러 억지로 씌울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이 땅의 신들과 영웅들을 증인으로 삼아 제가 여러분을 위해 왔다가 물리침을 받았음을 밝히고, 여러분의 땅을 짓밟아 여러분을 억지로 따르게 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거리낌 없이 그렇게 하겠으며, 저를 몰아대는 필요가 저를 옳게 해 줍니다. 첫째로는 여러분이 우리 편에 붙지 않을 경우 벗인 여러분이 아테네인에게 바치는 돈으로 스파르타인이 해를 입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리스인이 종살이를 떨쳐 내는 것을 여러분이 가로막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하려는 대로 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모두의 이익이라는 이름을 빼고 나면, 원하지도 않는 이들을 자유롭게 할 무슨 까닭이 우리 스파르타인에게 있겠습니까? 제국은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무너뜨리려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에게 내어 주는 독립을 여러분이 가로막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더 많은 이에게 그른 일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슬기롭게 결정하도록 힘쓰시고, 그리스인을 해방하는 일을 시작하는 자가 되도록 애쓰시며, 끝없는 명성을 스스로 쌓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사사로운 손해를 면하고 여러분의 나라를 영광으로 덮게 될 것입니다.
브라시다스의 말은 그러했다. 아칸토스인은 이 문제를 놓고 양쪽에서 말이 많이 오간 끝에 몰래 표를 던졌고, 브라시다스의 꾀는 논변과 열매에 대한 걱정에 이끌린 다수가 아테네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다만 그가 나오기 전에 그의 나라가 맹세한 바, 곧 그가 끌어들이는 동맹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맹세에 대해 그에게서 몸소 보증을 받아 내기 전에는 군대를 들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드로스의 식민시인 스타기로스가 그 본을 따라 반란을 일으켰다.
이 여름의 일은 그러했다. 보이오티아의 자리들이 아테네 장군 히포크라테스와 데모스테네스의 손에 넘어오기로 되어 있던 것은 그해 겨울로 접어든 첫 며칠 사이였으니, 데모스테네스는 함선을 거느리고 시파이로, 히포크라테스는 델리온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저마다 떠나야 할 날을 헤아리는 데 잘못이 있었다. 먼저 시파이로 배를 몬 데모스테네스는 아카르나니아인과 그 지방 동맹 여럿을 배에 싣고 갔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으니, 파노티스 출신의 포키스인 니코마코스가 음모를 일러바쳐 스파르타인에게 알렸고 스파르타인이 다시 보이오티아인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보이오티아 곳곳에서 구원병이 몰려들었는데 히포크라테스가 아직 그곳에 이르지 않아 적의 힘을 갈라 놓지 못한 터였고, 시파이와 카이로네이아는 곧바로 지켜졌으며, 잘못을 전해 들은 음모자들은 감히 도시 안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히포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민과 거류 외국인과 외국인을 총동원하여 목적지에 이르렀으나 보이오티아인은 이미 시파이에서 돌아온 뒤였고, 그는 군대를 앉히고 아폴론의 성소 델리온에 성벽을 두르는 일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신전과 신에게 바쳐진 땅을 빙 둘러 도랑을 파고 파낸 흙을 쌓아 올려 성벽을 삼았으며, 거기에 말뚝을 박고 성소 둘레의 포도나무를 베어 던져 넣었으며 가까운 집에서 헐어 낸 돌과 벽돌도 함께 넣었으니, 한마디로 방벽을 서둘러 올리는 데 쓸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썼다. 나무로 만든 망루도 필요한 자리마다 세웠고, 전에 있던 주랑이 무너져 내린 쪽처럼 신전 건물이 남아 있지 않은 자리에도 세웠다. 이 일은 본국을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시작해 나흘째 되는 날 내내 이어졌고 닷새째 되는 날 저녁 먹을 때까지 이어졌는데, 그때 일이 거의 끝났으므로 군대는 델리온에서 약 1.25마일4을 돌아가는 길로 물러났다. 이 자리에서 경보병은 대부분 그대로 나아갔고 중장보병은 멈추어 그 자리에 머물렀다. 히포크라테스는 초소를 배치하고 아직 끝내지 못한 바깥 방어 시설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하느라 델리온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날을 보내는 동안 보이오티아인은 타나그라에 모이고 있었고, 모든 도시에서 병력이 들어왔을 무렵에는 아테네인이 이미 돌아가는 길에 오른 것을 알았다. 보이오타르케스5 11명 가운데 나머지는 싸움을 벌이는 데 반대했으니, 적이 더는 보이오티아 안에 있지 않고 아테네인이 멈추어 섰을 때 그들은 이미 오로포스 경계를 막 넘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베의 보이오타르케스이자(다른 한 사람은 리시마키다스의 아들 아리안티데스였다) 그때 총사령관이던 아이올리다스의 아들 파곤다스는 싸움에 걸어 보는 것이 가장 낫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모두가 한꺼번에 무기를 놓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중대별로 차례차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아테네인을 치고 싸움의 결판을 보자고 다그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이오티아인 여러분, 보이오티아 안에서 아테네인을 따라잡은 것이 아니라면 그들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여러분의 장군인 우리 가운데 누구의 머리에도 떠올라서는 안 될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이 경계를 넘어 우리 땅에 요새를 세운 것은 보이오티아를 괴롭히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보기에 그들은 우리가 어디서 따라잡든 우리의 적이며, 적이 하는 짓을 하러 어디에서 왔든 마찬가지로 적입니다. 그리고 누가 안전을 이유로 그런 생각을 품었다면 이제야말로 그 생각을 바꿀 때입니다. 제 나라가 위험에 빠져 공격을 받는 쪽은, 가진 것을 온전히 누리면서 더 얻으려고 이웃을 칠 궁리나 하는 자들처럼 태연하게 무엇이 신중한 길인지 따지고 있기 어렵습니다. 제 나라 안에서든 밖에서든 쳐들어온 외적에게 똑같이 맞서는 것이 여러분 나라의 습속입니다. 더구나 그 외적이 아테네인이고 게다가 여러분의 경계에 붙어 사는 자라면 그렇게 해야 할 까닭은 갑절이 됩니다. 이웃끼리라면 대개 자유란 제 것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뜻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데나 먼 데나 가리지 않고 종으로 삼으려 드는 이런 이웃을 두고서는 끝까지 싸워 결판을 내는 것 말고는 길이 없습니다. 에우보이아인의 처지와 그리스 나머지 땅 대부분의 처지를 보시고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남들은 이 경계냐 저 경계냐를 놓고 이웃과 싸우면 되지만, 우리로서는 그들에게 진다는 것이 온 나라를 두르는 경계가 하나만 남고 그 경계를 놓고는 다툴 여지조차 없다는 뜻이니, 그들은 그저 와서 우리가 가진 것을 힘으로 빼앗아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이웃에게서 두려워할 것이 다른 이웃에게서보다 그만큼 큽니다. 게다가 지금의 아테네인처럼 제 힘을 믿는 자만에 이끌려 이웃을 치는 자들은 대개 가만히 앉아 제 나라 안에서 지키기만 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더없이 자신만만하게 진군해 오지만, 경계 밖으로 나와 저희를 맞고 틈이 보이면 먼저 치는 자들과 붙는 데는 두 번 생각합니다. 아테네인 스스로 우리에게 이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끼리의 다툼 탓에 그들이 이 땅을 차지했던 그때 코로네이아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안긴 패배가 오늘날까지 보이오티아에 큰 안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것을 마음에 새겨 나이 든 이들은 지난날의 공적에 못지않아야 하고, 젊은이들은 그때 그 용사들의 아들이니 타고난 용맹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신전이 불경하게 요새로 바뀌어 버린 신의 도우심을 믿고 우리 제사에서 길하게 나온 제물을 믿고, 우리는 적을 향해 진군하여 그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거든 맞서지 않을 자를 찾아가 치라고, 그러나 제 나라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싸울 채비가 되어 있고 남의 나라를 부당하게 종으로 삼는 일은 결코 없음을 영광으로 아는 사람들은 그를 그냥 보내 주지 않으리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논변으로 파곤다스는 보이오티아인을 설득해 아테네인을 치게 했고, 서둘러 진영을 거두어 군대를 앞으로 이끌었으니 이미 날이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적에게 가까이 이르자 그는 가운데 놓인 언덕이 두 군대가 서로를 보지 못하게 막아 주는 자리에 멈추어 대오를 짜고 싸울 채비를 했다. 그동안 델리온에 있던 히포크라테스는 보이오티아인이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에 대오를 갖추라는 명령을 보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몸소 그들과 합류하면서 기병 300명쯤을 델리온에 남겨 두었으니 공격이 있을 경우 그곳을 지키게 하는 동시에 틈을 보아 싸움이 벌어지는 사이에 보이오티아인을 덮치게 하려는 것이었다. 보이오티아인은 이들을 맡을 한 부대를 떼어 두었고, 모든 것이 뜻대로 갖추어지자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내어 정해 둔 대오대로 멈추어 섰으니, 중장보병 7,000명과 경보병 10,000명이 넘는 수와 기병 1,000명과 경방패병6 500명이었다. 오른편에는 테베인과 그 관할 지역 사람들이, 가운데에는 할리아르토스인과 코로네이아인과 코파이인과 그 밖에 호수 둘레에 사는 사람들이, 왼편에는 테스피아이인과 타나그라인과 오르코메노스인이 있었고, 기병과 경보병은 양 날개 끝에 있었다. 테베인은 방패를 25겹으로 세웠고 나머지는 저마다 좋을 대로 세웠다. 보이오티아 군대의 세력과 배치는 그러했다.
아테네인 쪽에서는 군대 전체에 걸쳐 중장보병이 8겹으로 섰으니 수로는 적과 같았고, 기병은 양쪽 날개에 있었다. 제대로 무장한 경보병은 이 군대에 없었고 아테네에 일찍이 그런 병종이 있어 본 적도 없었다. 침공에 따라나섰던 자들은 적의 경보병보다 여러 곱절 많았으나 대부분 아테네의 시민과 외국인을 총동원한 데 따라 무장하지 않은 채 따라왔을 뿐이었고, 돌아가는 길에 먼저 떠났던 터라 그 자리에 있는 수가 많지 않았다. 두 군대가 이제 대오를 이루어 맞붙기 직전에 이르자 장군 히포크라테스는 아테네 대열을 따라 지나가며 다음과 같이 그들을 북돋웠다.
아테네인 여러분, 저는 몇 마디만 하겠습니다. 용감한 사람에게는 그 이상이 필요 없기 때문이며, 이 말은 여러분의 용기보다 여러분의 판단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남의 나라에서 굳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러 나섰다고 여기는 이가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싸움은 그들의 땅에서 벌어지지만 우리 땅을 위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이기면 펠로폰네소스인은 보이오티아 기병 없이는 결코 여러분의 나라를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여러분은 한 번의 싸움으로 보이오티아를 얻고 어떤 뜻에서는 아티카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에서 으뜸이라고 자랑하는 나라의 시민답게, 또 미로니데스와 함께 오이노피타에서 그들을 쳐부수고 그리하여 보이오티아를 차지했던 아버지들의 아들답게 나아가 그들을 맞으십시오.
히포크라테스가 군대의 절반쯤을 지나며 북돋우고 있을 때 보이오티아인은 파곤다스가 몇 마디를 급히 더 보탠 뒤 파이안7을 올리며 언덕에서 그들을 향해 내려왔고, 아테네인도 맞으러 나아가 달음질로 맞붙었다. 양쪽 군대의 맨 끝 날개는 싸움에 들지 못했으니 이쪽도 저쪽도 앞을 가로막은 물길에 걸렸기 때문이며, 나머지는 방패를 방패에 맞대고 더없이 끈질기게 싸웠다. 보이오티아의 왼편은 가운데에 이르기까지 아테네인에게 밀렸다. 그 자리의 테스피아이인이 가장 심하게 당했다. 곁에 있던 병력이 물러나 버리자 그들은 좁은 자리에 에워싸여 손과 손을 맞대고 싸우다 베여 쓰러졌다. 아테네인 가운데에도 적을 에워싸다 어지러워져 서로를 잘못 알아보고 서로 죽인 자들이 있었다. 싸움터의 이쪽에서는 보이오티아인이 밀려 아직 싸우고 있던 병력 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테베인이 있던 오른편은 아테네인을 눌러 처음에는 조금씩이었으나 점점 더 멀리 밀어냈다. 게다가 마침 파곤다스가 제 왼편이 어려움에 빠진 것을 보고 기병 두 무리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하여 언덕을 돌아 보냈는데, 그들이 갑자기 나타나자 이기고 있던 아테네 날개는 또 다른 군대가 저희를 치러 오는 줄 알고 겁에 질렸다. 마침내 싸움터의 양쪽 모두가 이 겁에 흔들리고 밀고 들어오는 테베인에게 대오가 무너지면서 아테네 군대 전체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델리온과 바다로, 어떤 이는 오로포스로, 또 어떤 이는 파르네스 산으로, 저마다 살아날 가망이 있다고 본 곳으로 달아났고, 보이오티아인이 그들을 뒤쫓아 베었으니 그중에서도 패주가 시작될 무렵에 막 도착한, 얼마는 보이오티아인이고 얼마는 로크리스인인 기병대가 그러했다. 그러나 밤이 와서 추격이 끊긴 덕분에 달아나던 무리는 그러지 않았을 경우보다 수월하게 벗어났다. 이튿날 오로포스와 델리온에 있던 병력은 델리온에 수비대를 남긴 뒤 바닷길로 돌아갔고, 패배를 당하고도 그곳은 계속 지켰다.
보이오티아인은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저희 죽은 자를 거두었으며 적의 죽은 자에게서는 무구를 벗겨 낸 뒤, 그 위에 파수를 남겨 두고 타나그라로 물러나 거기서 델리온을 칠 방책을 세웠다. 그동안 아테네인에게서 전령이 와서 죽은 자를 돌려 달라고 청했으나 보이오티아의 전령을 만나 되돌려 보내졌으니, 보이오티아 전령이 저 자신이 돌아오기 전에는 그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보이오티아 전령은 아테네인에게 가서 보이오티아인을 대신해, 그들이 그리스인의 법을 어겨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쳐들어간 나라의 신전을 지켜 주는 그 두루 통하는 관례가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아테네인이 델리온에 성벽을 두르고 거기서 살면서 마치 신에게 바쳐지지 않은 땅에 있기라도 한 듯이 굴고, 보이오티아인이 거룩한 일에 쓸 때 말고는 결코 손대지 않는 물을 길어다 제 필요에 쓴다면 말이다. 그리하여 보이오티아인은 신을 위해서나 저희 자신을 위해서나, 관련된 신들과 아폴론의 이름으로, 저희에게 딸린 죽은 자를 거두어 가고자 한다면 먼저 신전에서 물러나라고 그들에게 청했다.
전령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아테네인은 저희 전령을 보이오티아인에게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들은 신전에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만큼을 넘어서는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고, 애초에 그런 뜻으로 그곳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저희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에 맞서 그곳을 근거로 삼아 저희를 지키려 한 것이라고 했다. 넓든 좁든 어떤 나라를 정복하면 그 나라의 신전을 차지하는 것이 그리스인의 법이며, 적어도 할 수 있는 한 여느 때의 예식을 이어 갈 의무가 따라온다고 했다. 보이오티아인과 그 밖에 어떤 나라의 주인을 내쫓고 힘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남의 것을 빼앗은 자로서 들어간 신전을 이제 제 권리로 쥐고 있다고 했다. 아테네인이 보이오티아를 더 많이 정복할 수 있었더라면 저희도 그러했을 것이며, 형세가 이러한 만큼 손에 넣은 그 한 조각은 제 것으로 다루어야 하고 어쩔 수 없게 되지 않는 한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물은 저희가 함부로 불러들이지 않은 필요에 몰려 건드린 것이니, 먼저 아티카를 쳐들어온 보이오티아인에 맞서 저희를 지키느라 그 물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게다가 전쟁과 위험에 짓눌려 한 일이라면 신의 눈으로 보아도 마땅히 너그러움을 청할 수 있으며, 그러지 않다면 제단이 어찌하여 마음먹지 않고 지은 죄의 피난처가 되겠느냐고 했다. 또 어김이란 뻔뻔하게 죄를 짓는 자에게 쓰는 말이지 형세에 밀린 자에게 쓰는 말이 아니라고 했다. 요컨대 어느 쪽이 더 불경한가? 죽은 몸을 거룩한 자리와 맞바꾸려는 보이오티아인인가, 아니면 제 권리로 저희 것인 것을 얻기 위해 거룩한 자리를 내놓기를 마다하는 아테네인인가? 그러므로 보이오티아를 떠나라는 조건은 거두어야 한다고 했다. 저희는 더는 보이오티아에 있지 않다고 했다. 저희가 선 자리에 선 것은 칼의 권리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보이오티아인이 할 일은 나라의 관례에 따라 휴전 아래 죽은 자를 거두어 가라고 저희에게 말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보이오티아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들이 보이오티아에 있다면 죽은 자를 거두기 전에 그 나라를 떠나야 하고, 저들의 땅에 있다면 저들이 좋을 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마침 주검이 놓인 곳인 오로포스 땅이(싸움이 경계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아테네에 딸린 곳이기는 하나, 저희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테네인이 그것을 거두어 갈 수 없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테네 땅을 위해 저희가 무엇하러 휴전을 허락하겠는가? 청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보이오티아를 떠나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온당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리하여 아테네 전령은 이 대답을 받아 든 채 뜻한 것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동안 보이오티아인은 곧바로 말리아 만에서 투창병과 투석병을 불러오게 했고, 싸움이 끝난 뒤 합류한 코린트 중장보병 2,000명과 니사이아에서 물러난 펠로폰네소스 수비대와 그들과 함께 온 메가라인 얼마를 거느리고 델리온으로 진군해 요새를 쳤으며, 여러 번 애쓴 끝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기계로 그곳을 손에 넣었다. 그들은 큰 통나무를 둘로 켜서 끝에서 끝까지 속을 파낸 뒤 다시 잘 맞추어 붙여 관처럼 만들었고, 한쪽 끝에 사슬로 큰 솥을 달았으며, 그 솥은 통나무에서 뻗어 나온 쇠 대롱으로 통나무와 통하게 했고 통나무 자체도 대부분 쇠를 입혔다. 이것을 멀리서 수레에 실어 주로 포도나무와 재목으로 이루어진 성벽 쪽으로 끌고 갔으며, 가까이 이르자 제 쪽 통나무 끝에 커다란 풀무를 끼워 바람을 불어넣었다. 좁은 통로에 갇힌 채 지나간 바람이 불붙은 숯과 유황과 역청이 담긴 솥으로 들어가 큰 불길을 일으켜 성벽에 불을 붙였고, 성벽은 이내 지키던 자들이 버틸 수 없는 곳이 되어 그들이 그곳을 버리고 달아났으니, 이렇게 하여 요새는 함락되었다. 수비대 가운데 얼마는 죽고 200명은 사로잡혔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배에 올라 본국으로 돌아갔다.
델리온이 떨어진 것은 싸움이 있은 지 17일 뒤였는데, 그 직후에 아테네 전령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채 죽은 자를 청하러 다시 왔고, 보이오티아인은 이제 처음처럼 대답하지 않고 죽은 자를 돌려주었다. 이 싸움에서 보이오티아인은 50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가 쓰러졌고, 아테네인은 장군 히포크라테스를 포함해 1,000명에 가까운 수가 쓰러졌으며, 그 밖에 경보병과 군을 따라다니던 자들도 많이 쓰러졌다.
이 싸움이 있은 직후 데모스테네스는 시파이로 간 항해와 그 도시에 대한 음모가 실패로 끝난 뒤, 아카르나니아인과 아그라이아인의 병력과 배에 태우고 있던 아테네 중장보병 400명을 써서 시키온 해안에 상륙했다. 그러나 그의 배가 모두 바닷가에 닿기 전에 시키온인이 몰려와, 이미 내린 자들을 쳐부수어 배까지 쫓으며 얼마는 죽이고 얼마는 사로잡았다. 그런 다음 그들은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휴전 아래 죽은 자를 돌려주었다.
델리온의 일이 있던 그 무렵에 오드리사이인의 왕 시탈케스가 죽었으니, 트리발리인을 치는 싸움에서 패했던 것이다. 그의 조카인 스파라도코스의 아들 세우테스가 오드리사이인의 왕위와 시탈케스가 다스리던 트라키아의 나머지 땅을 이어받았다.
같은 해 겨울 브라시다스는 트라키아 지방의 동맹들과 함께 스트리몬 강에 있는 아테네의 식민시 암피폴리스로 진군했다. 지금 그 도시가 서 있는 자리에 앞서 정착을 꾀한 것은 밀레토스인 아리스타고라스였으나(다레이오스 왕에게서 달아나던 때였다) 에도니인에게 밀려났고, 그로부터 32년 뒤에 아테네인이 그 일을 꾀해 제 시민 가운데 정착민 10,000명과 그 밖에 가고자 하는 자들을 그곳으로 보냈다. 이들은 드라베스코스에서 트라키아인에게 몰살되었다. 그 뒤 29년이 지나 아테네인이 다시 와서(니키아스의 아들 하그논이 식민시의 지도자로 보내졌다) 에도니인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도시를 세웠으니, 전에는 엔네아 호도이, 곧 아홉 길이라 불리던 곳이었다. 그들이 출발한 근거지는 강 어귀에 있는 저희 교역 항구 에이온으로, 지금의 도시에서 3마일이 넘지 않았다. 하그논은 스트리몬이 그 도시의 두 면을 감돌아 흐르므로 그 도시를 암피폴리스라 이름 지었고, 바다에서나 땅에서나 한눈에 들어오도록 세웠으며, 강에서 강으로 긴 성벽을 가로질러 뻗어 둘레를 완성했다.
브라시다스는 이제 칼키디케의 아르네를 떠나 이 도시로 진군했다. 해 질 무렵 볼베 호수가 바다로 흘러드는 아울론과 브로미스코스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을 먹고 밤새 나아갔다. 날씨는 거칠고 눈발이 조금 날렸으니, 그것이 그를 재촉해 서둘러 나아가게 했다. 될 수만 있다면 도시를 넘겨줄 자들만 빼고 암피폴리스의 모든 사람이 뜻밖의 일을 당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음모를 꾸민 것은 암피폴리스에 살던 안드로스의 식민시 아르길로스 출신 몇 사람이었고, 그곳에는 페르디카스나 칼키디케인이 끌어들인 다른 한패도 있었다. 그러나 이 일에 가장 부지런했던 것은 가까이 있는 아르길로스 자체의 주민이었으니, 그들은 늘 아테네인에게 의심을 받아 왔고 그곳을 노려 온 터였다. 이제 이들은 브라시다스와 함께 기회가 왔음을 알아보았고, 얼마 전부터 암피폴리스에 있는 제 고향 사람들과 그 도시를 넘겨주는 일을 두고 편지를 주고받던 터였으므로 곧바로 그를 아르길로스로 받아들이고 아테네인에게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날 밤 그를 강 위의 다리로 데려갔다. 거기서 그는 자기를 막아서는 작은 파수만을 보았으니, 도시가 그 건널목에서 얼마간 떨어져 있었고 성벽이 지금처럼 거기까지 내려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파수를 쉽게 쫓아냈으니, 얼마는 그 대열 안에 배신이 있었던 탓이고 얼마는 날씨가 거칠었던 탓이며 그의 공격이 갑작스러웠던 탓이었다. 그리하여 다리를 건넜고 곧바로 성벽 밖의 모든 재물을 손에 넣었으니, 암피폴리스인이 그 구역 곳곳에 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시다스가 건너온 것은 도시 안 사람들에게 아주 뜻밖의 일이었다. 성벽 밖에 있던 자들이 많이 붙잡히고 나머지가 성벽 안으로 달아난 것이 겹쳐 시민들 사이에 큰 혼란을 일으켰으니, 그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브라시다스가 멈추어 서서 약탈하는 대신 곧바로 도시를 향해 나아갔더라면 아마 그곳을 손에 넣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는 있던 자리에 자리를 잡고 성벽 밖의 땅을 휩쓸었으며, 안에 있는 자기 편이 나서 주기를 헛되이 기다리면서 그때로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동안 배신자들에게 맞선 쪽은 성문이 곧바로 열리는 것을 막을 만큼 수가 많았고, 그곳을 지키려 아테네에서 와 있던 장군 에우클레스와 뜻을 합쳐 트라키아의 또 다른 지휘관인 올로로스의 아들 투키디데스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하러 와 달라고 했으니, 이 역사를 쓴 자로서 암피폴리스에서 반나절 뱃길인 파로스의 식민시 타소스섬에 있던 터였다. 이 전갈을 받자 그는 곁에 두고 있던 함선 7척으로 곧바로 배를 띄웠으니, 될 수만 있다면 암피폴리스가 항복하기 전에 닿아 그것을 막고, 그러지 못한다 해도 에이온만은 지키려는 것이었다.
그동안 브라시다스는 타소스에서 바닷길로 구원병이 올 것을 두려워하고, 또 투키디데스가 트라키아 그 지방의 금광을 캘 권리를 지녔으므로 대륙의 주민들에게 큰 세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서, 될 수만 있다면 서둘러 그 도시를 얻고자 했다. 암피폴리스 사람들이 그가 왔다는 것에 힘을 얻어, 그가 바다와 트라키아에서 동맹의 군세를 그러모아 저희를 지켜 줄 수 있으리라 바라고 항복을 마다하게 되기 전에 얻으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온건한 조건을 내놓아, 암피폴리스인과 아테네인 가운데 원하는 자는 누구든 온전한 시민권을 누리며 제 재산을 그대로 지닐 수 있고,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닷새 안에 제 재산을 가지고 떠날 수 있다고 포고했다.
주민의 대부분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으니, 시민 가운데 아테네인은 적은 수뿐이고 대다수는 여러 곳에서 온 자들이었으며 성벽 밖에서 붙잡힌 자들 가운데 성벽 안에 친척을 둔 이가 많았으므로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두려움이 저희에게 떠올려 주었던 것에 견주면 그 포고가 온당하다고 여겼다. 아테네인은 저희가 남들보다 더 큰 위험에 놓였다고 여기고 게다가 구원이 빨리 오리라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나가는 것이 반가웠고, 뭇사람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그대로 지니게 되고 뜻하지 않게 위험에서 놓여난 것에 만족했다. 브라시다스 편에 선 자들은 백성의 마음이 바뀌었고 그 자리에 있는 아테네 장군의 말에 더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이제 드러내 놓고 이 길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항복이 이루어졌고 브라시다스는 자기 포고의 조건에 따라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도시를 내놓았고, 같은 날 늦게 투키디데스와 그의 배들이 에이온 항구로 들어왔으니, 브라시다스가 암피폴리스를 막 손에 넣은 뒤였고 에이온을 차지하기까지 하룻밤이 남았을 뿐이었다. 배들이 구원에 그만큼 빠르지 않았더라면 아침에는 에이온도 그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 뒤 투키디데스는 브라시다스가 지금이든 뒷날이든 공격해 오더라도 지킬 수 있도록 에이온의 모든 것을 갖추어 두었고, 맺은 조건에 따라 내륙에서 그곳으로 오기로 한 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브라시다스는 갑자기 배 여러 척으로 강을 따라 에이온으로 내려와, 성벽에서 뻗어 나온 곶을 차지해 그 입구를 눌러 볼 수 있을지 살폈고 같은 때에 육지로도 그것을 꾀했으나 양쪽에서 다 물리쳐졌으므로, 암피폴리스와 그 근방의 일을 갖추는 데 만족해야 했다. 에도니인의 도시 미르키노스도 그에게 넘어왔으니, 에도니인의 왕 피타코스가 고악시스의 아들들과 자기 아내 브라우로에게 죽임을 당한 뒤였다. 또 타소스의 식민시인 갈렙소스와 오이시메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본을 따랐다. 페르디카스 역시 그곳이 함락된 직후에 올라와 이 일들을 갖추는 데 함께했다.
암피폴리스가 적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아테네에 큰 놀라움을 일으켰다. 그 도시는 배를 짓는 데 쓸 재목을 내주고 돈을 벌어들이게 해 주므로 값진 곳이기도 했으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테살리아인의 인도가 스파르타인에게 스트리몬까지 아테네의 동맹들에게 닿을 길을 내주었다 해도, 그들이 다리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에이온 쪽에서는 아테네 함선들에게 감시를 받고 육지 쪽에서는 강물이 이룬 크고 넓게 퍼진 호수에 막혀 있는 동안은 더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길이 열린 듯이 보였다. 또 동맹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으니, 브라시다스가 무슨 일에서나 보여 준 절도 있는 처신 때문이었고, 자기는 그리스를 자유롭게 하려고 나왔노라고 곳곳에서 내놓던 말 때문이었다. 아테네에 딸린 도시들은 암피폴리스가 함락된 일과 그곳에 주어진 조건과 브라시다스의 부드러움을 전해 듣고 제 처지를 바꾸고 싶은 마음을 그 무엇보다 크게 품었으며, 그에게 몰래 전갈을 보내 자기들에게 와 달라고 청했으니 저마다 먼저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데 아무 위험이 없어 보였다. 아테네의 힘을 헤아리는 데서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그 힘이 뒷날 드러난 그 크기만큼이나 컸고, 그들의 판단은 어떤 온전한 앞헤아림이 아니라 눈먼 바람에 더 많이 기대고 있었다. 사람이란 바라는 것은 무심한 희망에 맡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성을 제 마음대로 휘둘러 밀어내 버리는 것이 습성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테네인이 얼마 전 보이오티아에서 입은 호된 타격에, 아테네인이 니사이아에서 그의 군대 하나를 감히 맞붙으려 하지 않았다는 브라시다스의 꾀는 말이 참되지는 않았으나 함께 겹쳐, 동맹들에게 자신을 심어 주고 아테네 군세가 저희를 치러 오지는 않으리라고 믿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당장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싶은 바람과 스파르타인이 시작할 때에는 열의로 가득할 것이라는 그럴 만한 짐작이 그들에게 걸어 볼 마음을 일으켰다. 아테네인은 이것을 보고 그처럼 갑작스러운 통고에 겨울철이기까지 한 사정에서 할 수 있는 한 여러 도시에 수비대를 보냈고, 그동안 브라시다스는 스파르타로 글을 보내 증원을 청하고 스스로도 스트리몬에서 함선을 지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은 그에게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으니, 얼마는 그 나라 으뜸 되는 자들의 시샘 때문이었고 얼마는 섬에서 잡힌 포로들을 되찾고 전쟁을 끝내는 데 더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겨울 메가라인은 아테네인이 차지하고 있던 긴 성벽을 손에 넣어 바닥까지 허물었다. 그리고 브라시다스는 암피폴리스를 손에 넣은 뒤 동맹들과 함께 악테로 진군했으니, 왕의 운하에서 안으로 굽어 뻗어 나가 에게해를 바라보는 높은 산 아토스에서 끝나는 곶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도시가 있는데, 운하 가까이 에우보이아 쪽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안드로스의 식민시 사네가 있고, 그 밖에 티소스와 클레오네와 아크로토이와 올로픽소스와 디온이 있어 두 언어를 쓰는 여러 야만 종족이 섞여 살고 있다. 칼키디케 사람도 조금 있으나 대다수는 한때 렘노스와 아테네에 자리 잡았던 티레노펠라스기인과 비살티아인과 크레스토니아인과 에도니인이며, 도시는 모두 작다. 이들 대부분은 브라시다스에게 넘어왔으나 사네와 디온은 버텼고 그와 그의 군대에게 제 땅이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굴복하지 않으므로 그는 곧바로 칼키디케의 토로네로 진군했으니, 아테네 수비대가 지키던 곳으로 그 도시를 넘길 채비를 해 둔 몇 사람이 그를 불렀던 것이다. 날이 밝기 조금 전 어둠 속에 이르러 그는 도시에서 4분의 1마일이 조금 넘게 떨어진 디오스쿠로이 신전 가까이 군대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토로네의 다른 사람들과 수비대의 아테네인은 그가 다가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의 편 사람들은(그중 몇은 몰래 나가 그를 맞았다) 그가 이르기를 살피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단검을 든 경무장한 자 7명을 데려갔으니, 이 임무를 받은 20명 가운데 오직 이들만이 감히 들어가려 했고 올린토스인 리시스트라토스가 그들을 이끌었다. 이들은 바다 쪽 성벽을 지나 눈에 띄지 않게 올라가 언덕 위에 선 도시의 가장 높은 초소의 수비병을 칼로 베었고, 카나스트라이온 쪽의 뒷문을 깨어 열었다.
그동안 브라시다스는 조금 더 가까이 와서 주력과 함께 멈추어 섰고, 경방패병 100명을 앞서 보내 약속대로 성문이 열리고 봉화가 오르는 순간 맨 먼저 달려 들어갈 채비를 하게 했다. 얼마를 기다리며 왜 늦어지는지 의아해하다가 경방패병들은 차츰 도시 가까이 다가갔다. 그 사이 안에서 들어간 일행과 함께 일하던 토로네인은 뒷문을 부수고 빗장을 잘라 장터로 이어지는 성문을 열어 두었으며, 먼저 몇 사람을 둘러 데려와 뒷문으로 들여보냈으니, 뜻밖의 일을 당한 도시 사람들을 등 뒤에서 양쪽으로 한꺼번에 갑자기 쳐서 겁에 질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약속대로 불 신호를 올리고 장터 쪽 문으로 나머지 경방패병을 들였다.
브라시다스는 신호를 보고 군사들에게 일어나라 이르고 앞으로 달려 나갔으며, 그의 군사들이 크게 지르는 함성이 얼이 빠진 도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퍼뜨렸다. 어떤 자들은 곧바로 성문으로 밀고 들어갔고, 어떤 자들은 돌을 끌어올리려고 성벽에 대어 둔 네모진 재목을 밟고 넘어 들어갔다(성벽이 무너져 다시 쌓는 중이었다). 브라시다스와 대부분은 곧바로 언덕을 올라 도시의 높은 쪽으로 향했으니, 위에서 아래까지 한꺼번에 아주 끝을 내려는 것이었고, 남은 무리는 사방으로 퍼졌다.
도시는 토로네인 대부분이 뜻밖의 일과 혼란에서 미처 깨어나기 전에 함락되었다. 그러나 음모를 꾸민 자들과 그들 편에 선 시민들은 곧바로 쳐들어온 자들과 합류했다. 마침 아테네 중장보병 50명쯤이 장터에서 잠들어 있다가 소란이 그들에게 닿았다. 이 가운데 몇은 싸우다 죽고 나머지는 벗어났으니, 얼마는 육지로, 얼마는 그곳에 대어 둔 배 두 척으로 갔으며, 바다로 뻗어 나가 좁은 지협으로 끊긴 도시의 한 구석에 있는, 저희 군사가 지키던 요새 레키토스로 피했다. 거기서 저희 편 토로네인이 그들과 합류했다.
이제 날이 밝고 도시가 확보되자 브라시다스는 아테네인에게로 피한 토로네인에게 포고를 내려, 원하는 자는 누구든 제 권리나 몸을 걱정하지 말고 나와 제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며, 전령을 보내 아테네인에게 휴전을 받아들이고 레키토스는 칼키디케의 땅이니 제 재산을 가지고 거기서 물러나라고 청했다. 아테네인은 이 제안을 마다했으나 죽은 자를 거둘 하루의 휴전을 청했다. 브라시다스는 이틀을 허락했고, 그 이틀 동안 가까운 집들을 요새로 다지는 데 힘을 썼으며 아테네인도 저희 자리에 같은 일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토로네인을 불러 모아 아칸토스에서 했던 말과 거의 같은 말을 했다. 곧 도시를 손에 넣는 일을 두고 자기와 이야기를 나눈 자들을 나쁜 사람이나 배신자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으니,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썩은 동기에서나 도시를 종으로 만들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토로네의 좋음과 자유를 위해서였다고 했다. 또 이 일에 함께하지 않은 자들도 그 열매를 똑같이 거두지 못하리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 자기는 도시든 개인이든 무너뜨리러 온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테네인에게로 피한 자들에게 포고를 내린 까닭이 이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아테네인과 벗이었다 하여 그들을 낮추어 보지 않으며, 그들이 스파르타인을 한번 겪어 보기만 하면 그만큼, 아니 훨씬 더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믿으니 스파르타인이 훨씬 더 올바르게 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지금 스파르타인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렇게 겪어 보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그러는 한편 그는 그들 모두에게 미리 일러, 흔들리지 않는 동맹이 될 채비를 하고 앞으로 저지르는 잘못에는 모두 책임을 지게 될 것임을 알아 두라고 했다. 지난 일로 말하자면 그들이 스파르타인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저희보다 너무 강한 다른 자들에게서 잘못을 입은 것이며, 그들이 자기에게 맞섰다 해도 그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러한 말로 그들을 북돋운 뒤 휴전이 끝나자 그는 곧 레키토스를 쳤다. 아테네인은 허술한 성벽과 흉벽을 올린 몇 채의 집에 의지해 저희를 지켰다. 하루는 그를 물리쳤다. 그러나 이튿날 적은 나무로 된 방어 시설에 불을 던지려고 기계를 끌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군사들은 기계를 끌어올리기에 가장 좋다고 여긴, 또 그 자리가 가장 치기 쉽다고 여긴 지점까지 이미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 아테네인은 마주 보이는 집 위에 나무 망루를 올리고 물이 든 항아리와 통을 여럿과 큰 돌을 많이 끌어올렸으며 사람도 많이 올라갔다. 이렇게 너무 무겁게 실린 집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가까이 있어 그것을 본 사람들은 겁을 먹기보다 짜증이 났으나, 그만큼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들, 더욱이 가장 멀리 있던 사람들은 그 자리가 이미 함락된 줄 알고 서둘러 바다와 배로 달아났다.
브라시다스는 그들이 흉벽을 버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고서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달려 나갔으며, 곧바로 그 요새를 손에 넣고 그 안에서 만난 자를 모두 칼로 베었다. 이렇게 하여 그곳은 아테네인에게서 비워졌고, 그들은 저희 배와 함선으로 팔레네로 건너갔다. 그런데 레키토스에는 아테나의 신전이 있었고, 브라시다스는 공격을 벌이던 그때 성벽에 맨 먼저 오르는 자에게 은 30므나8를 주겠노라고 포고해 둔 터였다. 그는 이제 그곳을 손에 넣은 것이 사람의 힘으로 된 일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여겼으므로, 그 30므나를 여신의 신전에 바쳤고, 레키토스를 허물어 치운 뒤 그 전부를 신에게 바쳐진 땅으로 만들었다. 그해 겨울의 나머지는 손에 넣은 자리들을 다스리고 나머지 자리들을 꾀하는 데 썼으며, 겨울이 다하면서 이 전쟁의 제8년이 끝났다.
이듬해 여름이 시작되는 봄에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은 1년 기한의 휴전 협정을 맺었다. 아테네인은 이렇게 하면 브라시다스가 저희 도시를 더 반란으로 이끌기 전에 넉넉히 틈을 두어 대비할 수 있고, 또 저희에게 알맞다면 전면적인 화약까지 맺을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스파르타인은 아테네인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고생과 괴로움에서 한번 놓여나는 맛을 보고 나면 그들이 화해에 동의하고 포로를 돌려주며 더 긴 기한의 조약을 맺는 쪽으로 더 기울리라고 여겼다. 스파르타인의 가장 큰 생각은 브라시다스의 좋은 운이 이어지는 동안에 제 사람들을 되찾는 것이었다. 승리가 더 이어지면 칼키디케에서 벌이는 싸움이 덜 기울어진 것이 될지는 몰라도 저희 사람들은 여전히 빼앗긴 채일 터이고, 칼키디케에서조차 아테네인과 맞먹는 정도에 그쳐 승리를 결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스파르타와 그 동맹은 다음 조건으로 휴전 협정을 맺었다.
1. 피티아의 아폴론의 신전과 신탁소에 관하여는, 원하는 자는 누구든 조상의 관례에 따라 속임도 두려움도 없이 그곳에 드나들 수 있다는 데 우리가 합의한다. 스파르타인과 그 자리에 있는 동맹들은 이에 합의하며, 보이오티아인과 포키스인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도 이에 합의하도록 설득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한다.
2. 신의 재물에 관하여는, 우리와 그대들과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그 밖의 모든 자가 다 함께 조상의 관례를 참되고 정직하게 따라, 그 재물을 함부로 쓴 자를 모두 찾아내는 데 힘쓰기로 합의한다. 이 점들에 관하여 스파르타인과 그 밖의 동맹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합의한다.
3. 다음 일들에 관하여 스파르타인과 그 밖의 동맹들은, 아테네인이 조약을 맺을 경우 우리가 저마다 제 영토에 머물며 각자 얻은 것을 그대로 지니기로 합의한다. 코리파시온의 수비대는 부프라스와 토메우스 안에 머문다. 키테라의 수비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어떤 왕래도 꾀하지 않으며, 우리가 그들과도 그들이 우리와도 왕래하지 않는다. 니사이아와 미노아의 수비대는 니소스 신전의 문에서 포세이돈 신전의 문으로, 거기서 곧바로 미노아의 다리로 이어지는 길을 넘지 않는다. 메가라인과 그 동맹도 똑같이 이 길을 넘지 않을 의무를 지며, 아테네인은 저희가 차지한 섬을 그대로 지니되 어느 쪽도 왕래하지 않는다. 트로이젠에 관하여는 양쪽이 저마다 가진 것을 그대로 지니며, 아테네인과 맺어 둔 바에 따른다.
4. 바다를 쓰는 일에 관하여는, 저희 해안과 저희 동맹의 해안에 관한 한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이 노로 젓는 배로서 적재량이 500탈란톤9을 넘지 않는 배라면 어떤 배로든 그 바다를 오갈 수 있으며, 군선은 안 된다.
5. 전쟁을 끝내고 청구를 조정하기 위한 모든 전령과 사절은 저희가 원하는 만큼의 수행원을 데리고, 육로와 해로로 펠로폰네소스나 아테네에 오가는 자유로운 통행을 누린다.
6. 휴전 기간에 도망한 자는 종이든 자유민이든 그대들도 우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7. 나아가 그대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그대들에게 각자 나라의 공법에 따라 만족을 주며, 모든 다툼은 싸움에 의지하지 않고 법으로 가린다.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은 이 조항들에 합의한다. 그러나 그대들에게 더 온당하거나 더 올바른 제안이 있다면 스파르타로 와서 우리에게 알리라. 올바른 것이라면 무엇이든 스파르타인에게서도 동맹에게서도 반대를 받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오는 자들은 그대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대로 전권을 가지고 오게 하라. 휴전은 1년으로 한다.
백성이 이를 승인하였다.
아카만티스 부족이 프리타니스10를 맡았고 포이니포스가 서기였으며 니키아데스가 의장이었다. 라케스는 아테네인의 좋은 운의 이름으로,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이 합의한 조건에 따라 휴전 협정을 맺을 것을 발의했다. 그리하여 민회에서 합의된 바는, 휴전을 1년으로 하고 바로 그날인 엘라페볼리온11 달 14일에 시작하며, 그 기간에 사절과 전령이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며 화평의 바탕을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또 장군들과 프리타네스가 민회를 불러, 아테네인이 그 자리에서 먼저 화평에 관하여, 그리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사절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관하여 의논한다는 것이었다. 또 지금 와 있는 사절단은 이 휴전을 1년 동안 참되고 온전하게 지킨다는 약속을 백성 앞에서 곧바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으로 스파르타인은 스파르타 달 게라스티오스12 12일에 아테네인과 그 동맹과 협정을 맺었고, 동맹들도 맹세했다. 협정을 맺고 헌주를 따른 자들은 스파르타인으로 에케티미데스의 아들 타우로스와 페리클레이다스의 아들 아테나이오스와 에릭시다이다스의 아들 필로카리다스, 코린트인으로 오키토스의 아들 아이네아스와 아리스토니모스의 아들 에우파미다스, 시키온인으로 나우크라테스의 아들 다모티모스와 메가클레스의 아들 오나시모스, 메가라인으로 케칼로스의 아들 니카소스와 암피도로스의 아들 메네크라테스, 그리고 에피다우로스인으로 에우파이다스의 아들 암피아스였으며, 아테네 장군으로는 디이트레페스의 아들 니코스트라토스와 니케라토스의 아들 니키아스와 톨마이오스의 아들 아우토클레스였다. 휴전 협정은 그러했고, 그 기간 내내 화평을 두고 회담이 이어졌다.
이 회담을 오가며 보내던 그 며칠 사이에 팔레네에 있는 도시 스키오네가 아테네에 반란을 일으켜 브라시다스에게 넘어갔다. 스키오네인은 저희가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팔레네인이며, 저희를 처음 세운 이들이 트로이에서 배를 타고 오다가 아카이아인이 만났던 그 폭풍에 밀려 이 자리로 들어와 여기 자리를 잡았다고 말한다. 스키오네인이 반란을 일으키자마자 브라시다스는 밤에 스키오네로 건너갔으니, 우군 함선 한 척을 앞세우고 자기는 그 뒤로 얼마쯤 떨어져 작은 배에 타고 갔다. 작은 배보다 큰 배를 만나면 자기를 지켜 줄 함선이 있게 되고, 그 함선과 맞먹는 배라면 큰 배를 치려고 작은 배는 그냥 지나칠 것이 그럴 법하니 그동안 자기가 빠져나갈 틈이 생긴다는 생각이었다. 건너가는 일을 마친 뒤 그는 스키오네인을 불러 모아 아칸토스와 토로네에서 했던 것과 같은 뜻의 말을 했고, 거기에 그들이 더없이 큰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말을 보탰다. 아테네인이 포티다이아를 차지하여 지협 안쪽의 팔레네가 끊겨 있고 저희 처지가 사실상 섬과 같은데도, 그들이 겁먹은 채 저희에게 뚜렷이 좋은 것을 힘으로 강요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제 뜻으로 나아가 제 자유를 맞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아무리 큰 시련이라도 용맹하게 견뎌 낼 것임을 보여 주는 표지라고 했다. 또 자기가 뜻한 대로 일을 갖추게 되면 그들을 스파르타인의 가장 참되고 가장 진실한 벗으로 헤아릴 것이며 그 밖의 모든 길로도 그들을 높이겠다고 했다.
스키오네인은 그의 말에 크게 들떴고, 처음에는 벌어지고 있는 일을 좋게 여기지 않던 자들조차 그 두루 퍼진 자신에 물들었으므로, 그들은 전쟁을 힘차게 밀고 나가기로 결정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영예로 브라시다스를 맞았으며 그리스의 해방자로서 그에게 나라의 이름으로 금관을 씌웠다. 그러는 동안 사사로운 사람들도 그를 둘러싸고 몰려들어 마치 그가 경기의 승자라도 되는 듯이 화환을 걸어 주었다. 그러는 한편 브라시다스는 그때로서는 작은 수비대만을 그들에게 남기고 다시 건너갔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병력을 보냈으니 아테네인이 이르기 전에 스키오네인의 도움을 얻어 멘데와 포티다이아를 꾀해 볼 뜻이었다. 스키오네가 섬과 너무나 비슷해 아테네인이 그곳을 구하러 오지 않을 수 없다고 그는 느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앞서 말한 도시들을 넘겨받는 일에 대해 안에서 통하는 연락을 두고 있었다.
그가 이 도시들을 꾀하는 한가운데에 휴전 협정의 소식을 돌려 알리는 위원들이 함선을 타고 이르렀으니, 아테네인 쪽에서는 아리스토니모스, 스파르타인 쪽에서는 아테나이오스였다. 이제 병력은 토로네로 되건너갔고 위원들은 브라시다스에게 협정을 알렸다. 트라키아에 있던 스파르타의 동맹은 모두 이미 이루어진 바를 받아들였다. 아리스토니모스도 나머지에 대해서는 어렵게 굴지 않았으나, 날을 헤아려 보니 스키오네인이 협정을 맺은 날보다 뒤에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고 그들을 협정에 넣기를 마다했다. 이에 브라시다스는 반란이 그보다 앞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며 힘써 맞섰고 그 도시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리스토니모스가 이 일을 아테네에 알리자 백성은 곧바로 스키오네로 원정을 보낼 준비를 했다. 그러자 스파르타에서 사절이 와서, 그것은 휴전을 깨는 일이 될 것이라 하며 브라시다스의 주장을 믿는다며 그 도시에 대한 권리를 내세웠고, 그러는 한편 이 문제를 중재에 맡기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중재란 아테네인이 걸어 볼 마음이 없는 것이었으니, 곧바로 그곳에 군대를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고 이제 섬사람들까지도 스파르타인의 육지 세력에 헛되이 기대어 감히 반란을 일으킨다는 데 노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란의 사실은 아테네인이 주장하는 쪽에 가까웠으니, 스키오네인은 협정을 맺은 지 이틀 뒤에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클레온은 스키오네인을 굴복시켜 죽이라는 결의를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고, 아테네인은 이제 누리게 된 틈을 원정 준비에 썼다.
그러는 동안 팔레네에 있는 도시이자 에레트리아인의 식민시인 멘데가 반란을 일으켰고, 브라시다스는 그곳이 휴전 기간에 넘어온 것이 뚜렷했음에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으니, 아테네인이 휴전을 어긴 데가 몇 가지 있다고 그가 주장했기 때문이다. 멘데의 이 대담함은 얼마는 브라시다스가 이 일에 앞장서는 것을 본 데서, 또 그가 스키오네를 내놓기를 마다한 데서 끌어낸 결론에서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멘데의 음모자들은 수가 적었고, 내가 이미 비쳐 둔 대로 그 일을 너무 오래 벌여 온 터라 저희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고 뭇사람의 마음을 억지로 돌려놓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식은 아테네인을 그 어느 때보다 노엽게 만들었고, 그들은 곧바로 두 도시를 겨누어 준비했다. 브라시다스는 그들이 올 것을 내다보고 스키오네인과 멘데인의 여자와 아이들을 칼키디케의 올린토스로 실어 보냈으며, 두 도시로 펠로폰네소스 중장보병 500명과 칼키디케 경방패병 300명을 건네보내 모두 폴리다미다스의 지휘 아래 두었다.
아테네인이 곧 이를 것에 맞서 두 도시가 함께 준비하도록 남겨 둔 뒤, 브라시다스와 페르디카스는 두 번째로 함께 링코스로 들어가 아르라바이오스를 치러 나섰다. 페르디카스는 자기에게 딸린 마케도니아인의 군세와 그 나라에 사는 그리스인으로 이루어진 중장보병 한 부대를 거느렸고, 브라시다스는 아직 곁에 두고 있던 펠로폰네소스인과 칼키디케인과 아칸토스인과 그 밖의 사람들을 저들이 낼 수 있는 만큼의 군세로 거느렸다. 모두 합해 그리스 중장보병이 3,000명쯤이었고, 거기에 마케도니아 기병 전부가 칼키디케인과 함께 1,000명에 가까운 수로 따랐으며, 그 밖에 야만인이 엄청난 무리로 따랐다. 아르라바이오스의 땅에 들어서자 그들은 링케스티스인이 진을 치고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고, 저희도 마주 보는 자리를 잡았다. 양쪽 보병은 언덕 위에 있었고 그 사이에 들판이 있었는데, 두 군대의 기병이 먼저 그 들판으로 달려 내려가 기병끼리 싸움을 벌였다. 그런 뒤에 링케스티스의 중장보병이 제 언덕에서 내려와 기병과 합류하며 싸움을 걸었고, 이에 브라시다스와 페르디카스도 내려와 그들을 맞아 붙어 크게 죽이며 쳐부수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높은 데로 피해 거기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긴 쪽은 이제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페르디카스와 합류할 예정이던 일리리아 용병을 이틀이나 사흘 기다렸다. 그때 페르디카스는 더 나아가 아르라바이오스의 마을들을 치고 더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브라시다스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아테네인이 배를 몰고 올까, 멘데에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했고 게다가 일리리아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으므로, 이 바람을 거들기는커녕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들이 이렇게 다투고 있을 때 일리리아인이 실제로 페르디카스를 배신하고 아르라바이오스에게 붙었다는 소식이 이르렀고, 그들의 싸움을 잘하는 성질이 일으킨 두려움 때문에 이제 두 쪽 모두 물러나는 것이 가장 낫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툼 탓에 언제 떠날 것인가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였다. 밤이 오자 마케도니아인과 야만인 무리는 큰 군대가 흔히 겪는 그 알 수 없는 겁의 하나에 순식간에 사로잡혀, 실제로 이른 군세보다 여러 곱절 많은 군대가 밀려와 바로 저희 앞에 닿았다고 믿고서 갑자기 무너져 고향 쪽으로 달아났으며, 그리하여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던 페르디카스까지 브라시다스를 보지 못한 채 떠나게 만들었으니 두 군대가 서로 꽤 멀리 떨어져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날이 밝을 무렵 브라시다스는 마케도니아인이 가 버렸음을, 그리고 일리리아인과 아르라바이오스가 저희를 칠 낌새임을 알아차리고, 중장보병을 네모진 대형으로 짜고 경보병을 가운데 두었으며 자신도 물러날 준비를 했다. 그는 가장 젊은 군사들을 배치해 적이 치고 드는 곳마다 달려 나가게 했고, 자기는 골라 뽑은 300명과 함께 뒤에 서서 물러나는 동안 돌아서서 맞서며 가장 앞서 덮쳐 오는 자들을 물리치려 했다. 그러는 한편 적이 다가오기 전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급한 격려의 말로 군사들의 용기를 지탱하려 했다.
펠로폰네소스인 여러분, 수가 많은 야만의 적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홀로 받아 내게 되었다 하여 여러분이 낙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제게 없었더라면, 저는 여느 때처럼 더 설명하지 않고 몇 마디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세에서, 우리 벗들이 떠나 버리고 적의 수가 많은 것을 앞에 두고 저는 몇 가지 조언과 알려 드릴 것이 있으니, 짧게 말할 수밖에 없으나 더 중요한 대목에는 넉넉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싸움에서 늘 보여 주는 용맹은 이 싸움에서나 저 싸움에서 동맹이 곁에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타고난 용기에 달린 것입니다. 또 여러분의 나라와 같은 나라의 시민에게는 적의 수가 두려울 것이 없으니, 그런 나라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다스리지 않고 오히려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며 그 자리를 얻은 것은 싸움터에서의 뛰어남 말고 다른 무엇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야만인을 두려워하는 것은 겪어 보지 못한 탓입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마케도니아인과 힘을 겨루어 본 일과, 다른 이들에게서 들은 바로 굳어진 저 자신의 판단만으로도 그들이 두려워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납득하기에 넉넉할 것입니다. 적이 강해 보이나 실은 약한 경우에는 사실을 참되게 아는 것이 맞서는 자를 더 담대하게 만들며, 만만치 않은 적수를 가장 자신만만하게 맞는 자가 그를 알지 못하는 자인 것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적은 겪어 보지 못한 이의 상상을 겁먹게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덩치가 두렵고 크게 질러 대는 소리는 견디기 어려우며 허공에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은 위협하는 꼴입니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상대와 참으로 싸우게 되면 그들은 보이던 것과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대오가 없으므로 심하게 몰릴 때 제자리를 버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달아나는 것과 치고 드는 것이 똑같이 명예로운 일이어서 용기를 가릴 척도가 되지 못하며, 저마다 따로 싸우는 그들의 방식은 달아나고 싶은 자에게 그럴듯한 구실을 언제나 남겨 줍니다. 요컨대 그들은 안전한 거리에서 여러분을 겁주는 것이 손과 손을 맞대고 맞서는 것보다 더 확실한 노름이라고 여깁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뒤의 것을 하고 앞의 것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처음에 걸치고 있던 그 두려움이 눈과 귀에는 매우 두드러지나 실은 하찮은 것임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밀고 들어올 때는 자리를 지키고, 다시 틈을 기다려 대오를 지켜 물러나십시오. 그러면 그만큼 더 빨리 안전한 곳에 이를 것이며, 이런 오합지졸이란 저희의 첫 공격을 받아 내는 자들에게는 멀찍이서 앞으로 저지를 무서운 일을 위협해 보이는 것으로 용기를 자랑할 뿐이지만 저희에게 물러서 주는 자들에게는 위험 없이 그럴 수 있게 되자마자 재빨리 뒤쫓으며 영웅인 양 나선다는 것을 그 뒤로 영원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짧은 말을 마치고 브라시다스는 군대를 이끌어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 야만인들은 그가 달아나는 줄로, 저희가 그를 따라잡아 끊어 낼 수 있으리라 여기고 크게 소리치며 떠들썩하게 밀고 왔다. 그러나 그들이 덮치는 곳마다 젊은 군사들이 저희를 향해 달려 나올 채비를 하고 있었고, 그동안 브라시다스는 골라 뽑은 부대와 함께 그들의 첫 기세를 받아 냈다. 그리하여 펠로폰네소스인은 적이 놀랄 만큼 첫 공격을 버텨 냈고, 그 뒤로도 그들이 밀고 오는 대로 맞아 물리쳤으며 맞선 자들이 잠잠해지는 대로 물러났다. 그러므로 야만인의 주력은 열린 들에서 브라시다스와 함께 있는 그리스인을 괴롭히기를 그쳤고, 그 행군을 시달리게 할 얼마간을 뒤에 남겨 둔 채 나머지는 달아나는 마케도니아인을 뒤따라가 마주치는 자를 베었으며, 그렇게 하여 아르라바이오스의 땅으로 이어지는 두 언덕 사이의 좁은 고개를 때맞추어 차지했다. 그들은 이것이 브라시다스가 물러날 수 있는 하나뿐인 길임을 알고 있었고, 이제 그가 그 길의 가장 지나기 어려운 자리로 들어서는 바로 그때 그를 에워싸 끊어 내려 들었다.
브라시다스는 그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자기가 거느린 300명에게, 대오를 갖추지 않고 저마다 있는 힘껏 빨리 달려 가장 차지하기 쉬워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주력이 그들과 합치기 전에 이미 거기 있는 야만인을 몰아내 보라고 일렀다. 이들은 언덕 위의 무리를 쳐서 눌렀고, 그리하여 그리스인의 주력은 이제 덜 힘들게 그 언덕으로 나아갔다. 야만인은 저쪽의 제 군사가 높은 데서 밀려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렸으며, 그들이 보기에 이미 경계에 이르러 무사히 빠져나간 주력을 더는 뒤따르지 않았다. 높은 데를 차지하자 브라시다스는 이제 더 안전하게 나아가 그날 안에 페르디카스의 영토에서 첫 도시인 아르니사에 이르렀다. 군사들은 마케도니아인이 떠나 버린 것에 노여워하여, 길에서 만난 멍에 멘 소를 모두 풀어 베어 넘기고 (밤중에 겁에 질려 물러날 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떨어져 나뒹구는 짐이 있으면 무엇이든 제 것으로 챙기는 것으로 노여움을 풀었다. 이때부터 페르디카스는 브라시다스를 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아테네인의 적수가 품기에는 걸맞지 않은 미움을 펠로폰네소스인에게 품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제 본디의 이익에서 벗어나 아테네인과는 화해하고 펠로폰네소스인은 떨쳐 내려 힘쓰게 되었다.
브라시다스는 마케도니아에서 토로네로 돌아와 아테네인이 이미 멘데의 주인이 된 것을 알았고, 이제 팔레네로 건너가 멘데인을 돕는 것이 제 힘 밖의 일이라고 여겨 있던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으나 토로네는 잘 지켰다. 링코스에서 싸움이 벌어졌던 것과 같은 무렵에 아테네인은 우리가 멘데와 스키오네를 겨누어 준비하는 것으로 두고 온 그 원정에 배를 띄웠으니, 함선 50척으로 그중 10척은 키오스의 것이었고, 아테네 중장보병 1,000명과 궁수 600명, 트라키아 용병 100명과 근방의 동맹에서 뽑은 경방패병 얼마를 거느렸으며 니케라토스의 아들 니키아스와 디이트레페스의 아들 니코스트라토스가 지휘했다. 함대는 포티다이아에서 닻을 올려 포세이돈 신전 앞에 배를 대고 멘데로 나아갔다. 멘데 사람들은 스키오네인 300명을 더 얻고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원군과 함께 모두 중장보병 700명으로 폴리다미다스의 지휘 아래 도시 밖 험한 언덕에 진을 치고 있었고 아테네인은 그들을 거기서 보았다. 니키아스는 경무장한 메토네인 120명과 아테네 중장보병에서 골라 뽑은 60명과 궁수 전부를 거느리고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그들에게 닿으려 했으나 상처를 입고 그 자리를 밀어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동안 니코스트라토스는 나머지 군대 전부를 거느리고 본래부터 험한 그 언덕을 더 멀리 돌아 다른 쪽에서 올라갔다가 아주 어지러워졌고, 아테네 군대 전체가 패배를 겨우 면했다. 그날은 멘데인과 그 동맹이 물러설 낌새를 보이지 않았으므로 아테네인은 뒤로 물러나 진을 쳤고, 멘데인은 밤이 들자 도시로 돌아갔다.
이튿날 아테네인은 배를 돌려 스키오네 쪽으로 가서 도시 밖 마을을 차지하고 하루 내내 그 땅을 약탈했으나 아무도 그들을 맞으러 나오지 않았으니, 얼마는 도시 안의 내분 탓이었다. 그다음 밤에 스키오네인 300명은 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이튿날 니키아스는 군대의 절반을 거느리고 스키오네의 경계까지 나아가 그 땅을 짓밟았고, 그동안 니코스트라토스는 나머지를 거느리고 포티다이아로 가는 길에 있는 윗문 가까이 도시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성벽 안에서 멘데인과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원군의 무기가 그 구역에 쌓여 있었으므로, 폴리다미다스는 거기서 그들을 싸울 대오로 세우기 시작하며 멘데인에게 밖으로 치고 나가라고 북돋웠다. 그때 민중파의 한 사람이 그에게 파당의 말투로, 저희는 나가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대답한 탓에 폴리다미다스에게 팔을 잡혀 끌리며 얻어맞았다. 이에 노여움이 오른 민중은 곧바로 무기를 쥐고 펠로폰네소스인과 맞선 파당의 저희 동맹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습격을 당한 병력은 곧바로 무너졌으니, 얼마는 싸움이 갑작스러웠던 탓이고 얼마는 성문이 아테네인에게 열릴까 두려워한 탓이었으며 이 공격이 아테네인과 짜고 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자들은 모두 처음부터 지키고 있던 성채로 피했다. 그때쯤 니키아스도 돌아와 도시 가까이 있었으므로 아테네 군대 전체가 이제 아무 협정 없이 문을 열어 준 멘데로 밀고 들어가, 마치 힘으로 쳐서 함락시킨 듯이 그곳을 노략했으니 장군들이 주민을 학살하는 것까지 막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런 뒤 아테네인은 멘데인에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그대로 지녀도 되며 반란을 꾀했다고 여겨지는 자들을 저희가 스스로 재판해도 된다고 말했고, 성채에 있는 무리는 양쪽에서 바다까지 성벽을 쌓아 끊어 놓은 뒤 병력을 두어 봉쇄를 지키게 했다. 이렇게 멘데를 확보한 뒤 그들은 스키오네로 나아갔다.
스키오네인과 펠로폰네소스인은 그들을 맞아 밖으로 나와 도시 앞의 험한 언덕을 차지했으니, 적이 그곳을 포위하려면 먼저 이 언덕을 손에 넣어야 했다. 아테네인은 그 언덕을 쳐서 그곳을 차지한 자들을 쳐부수고 몰아냈으며, 진을 치고 전승 기념물을 세운 뒤 포위벽을 쌓는 일에 들어갔다. 그들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멘데의 성채에 갇혀 있던 원군이 바닷가 쪽 파수를 밀어내고 밤에 스키오네에 이르렀으며, 그 대부분이 포위하는 군대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스키오네를 에워싸는 일이 진행되는 동안 페르디카스는 아테네 장군들에게 전령을 보내 아테네인과 화평을 맺었으니, 링코스에서 물러난 일로 브라시다스에게 품은 앙심 때문이었고 실은 그때부터 이미 교섭을 시작했던 것이다. 마침 그때 스파르타인 이스카고라스가 군대를 거느리고 육로로 브라시다스와 합치러 떠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페르디카스는 이제 니키아스에게서 아테네인과의 화해가 진실하다는 증거를 얼마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고 자신도 더는 펠로폰네소스인을 제 나라에 들일 마음이 없었으므로, 늘 그 으뜸 되는 자들과 관계를 맺어 두던 테살리아의 벗들을 움직여 그 군대와 그 준비를 어찌나 효과 있게 막았던지 그들은 테살리아인에게 말을 걸어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스카고라스 자신은 아메이니아스와 아리스테우스와 함께 브라시다스에게 이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형세를 살펴보라는 임무를 스파르타인에게서 받은 터였고, 도시들이 그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 맡겨지지 않게 하려고 지휘를 맡길 저희 젊은이 몇을 (온갖 전례를 어겨 가며) 스파르타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리하여 브라시다스는 클레오니모스의 아들 클레아리다스를 암피폴리스에, 헤게산드로스의 아들 파시텔리다스를 토로네에 앉혔다.
같은 해 여름 테베인은 아테네 편향이라는 죄목으로 테스피아이의 성벽을 헐었으니, 늘 그렇게 하고 싶어 했고 이제 테스피아이 젊은이의 꽃이 아테네인과의 싸움에서 죽었으므로 그것이 쉬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여름 아르고스의 헤라 신전도 불에 타 무너졌다. 여사제 크리시스가 불붙은 횃불을 화환 가까이 두고 잠들었으므로 화환에 모두 불이 붙어, 그가 알아차리기 전에 이미 불길에 휩싸였던 것이다. 크리시스는 바로 그날 밤 아르고스인이 두려워 플리우스로 달아났고, 아르고스인은 그런 경우의 법에 따라 파이이니스라는 이름의 다른 여사제를 세웠다. 크리시스는 달아날 때까지 이 전쟁의 여덟 해와 아홉째 해의 절반 동안 여사제로 있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스키오네를 에워싸는 일이 마무리되었고, 아테네인은 봉쇄를 지킬 부대를 남기고 나머지 군대와 함께 돌아갔다.
그해 겨울에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은 휴전 협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만티네이아인과 테게아인은 저마다의 동맹과 함께 오레스티스 땅의 라오디키온에서 싸움을 벌였다. 양쪽이 저마다 마주한 날개 가운데 하나씩을 쳐부수었으므로 승리는 가릴 수 없는 채로 남았고, 두 쪽 모두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델포이로 전리품을 보냈다. 양쪽에 큰 손실이 있었으나 싸움은 결판이 나지 않았고 밤이 와서 싸움이 끊겼다. 그래도 테게아인은 싸움터에서 밤을 지내고 곧바로 전승 기념물을 세웠으며, 만티네이아인은 부콜리온으로 물러난 뒤에 저희 것을 세웠다.
같은 해 겨울이 끝날 무렵, 실은 거의 봄이었을 때 브라시다스는 포티다이아를 꾀했다. 그는 밤에 이르러 들키지 않고 성벽에 사다리를 대는 데 성공했으니, 종을 돌리는 자가 지나간 뒤 그것을 되가져오는 자가 돌아오기까지의 그 틈에 사다리를 걸었던 것이다.13 그러나 곧이어 수비대가 알아차렸고 그의 군사가 올라오기 전이었으므로, 그는 날이 밝기를 기다리지 않고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물러났다. 이렇게 겨울이 끝나고, 투키디데스가 그 역사를 쓴 이 전쟁의 제9년이 끝났다.
주
1. 프록세노스 —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 두었던 명예 대표. 제 나라에 살면서 상대 나라 사람들의 편의를 돌보고 그 이익을 대변했다. 칼키디케의 프록세노스란 테살리아에 살면서 칼키디케 쪽의 이해를 돌보던 테살리아 사람을 뜻한다.
2. 헬롯 — 스파르타에 예속되어 땅을 갈던 신분.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딸린 예속민으로, 수가 많아 스파르타인은 늘 그들의 봉기를 경계했다.
3. 스파르타 시민 — 스파르타 사회는 완전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 시민, 주변 자유민, 헬롯으로 나뉘었다. 원문에서 저자는 이 좁은 뜻의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를 구분해 쓴다.
4. 약 1.25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스타디온을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이 장의 다른 거리 표기도 모두 같다.
5. 보이오타르케스 — 보이오티아 연방의 최고 정무관. 해마다 11명을 뽑았고 연방의 군대를 지휘했으며, 테베는 그 가운데 두 자리를 차지했다.
6. 경방패병 — 작은 방패와 투창으로 무장한 경보병. 중장보병처럼 밀집 대형으로 싸우지 않고, 흩어져 던지고 물러나는 방식으로 싸웠다.
7. 파이안 — 신에게 바치는 노래. 그리스인은 싸움에 들어가기 직전이나 승리를 기릴 때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8. 므나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00드라크메에 해당했고 60므나가 1탈란톤이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9.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여기서는 배의 적재량을 무게로 헤아린 것이다. 현대 단위로 환산하지 않는다.
10. 프리타니스 — 아테네 평의회의 당번 기간. 열 부족이 차례로 한 해의 10분의 1씩 평의회의 상임 업무를 맡았고, 그 기간에 당번을 맡은 부족의 평의원을 프리타네스라 불러 민회를 소집하는 일을 맡겼다.
11. 엘라페볼리온 — 아테네 달력의 아홉째 달. 오늘날의 3월에서 4월에 걸친다.
12. 게라스티오스 — 스파르타 달력의 한 달 이름. 도시마다 달력과 달 이름이 달랐으므로 저자는 두 나라의 날짜를 따로 적었다.
13. 종을 돌리는 자 — 그리스의 수비대는 밤에 종을 초소에서 초소로 차례로 넘기게 하여 파수병이 깨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종을 넘기는 자가 지나간 직후가 성벽이 가장 허술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