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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10장 (제III권 제X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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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제III권 제X장) 전쟁 제5년 · 플라타이아인의 재판과 처형 · 코르키라 내란

같은 여름, 레스보스를 굴복시킨 뒤 니케라토스의 아들 니키아스가 이끄는 아테네인은 미노아섬을 겨누어 원정에 나섰다. 이 섬은 메가라 앞바다에 있었고, 메가라인이 그 위에 망루를 세워 요새 거점으로 쓰고 있었다. 니키아스가 바란 것은 아테네인이 부도론과 살라미스가 아니라 더 가까운 이 거점에서 봉쇄를 유지하게 하는 것, 펠로폰네소스의 전선과 사략선이 지금까지 하던 대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그 섬에서 빠져나가는 일을 막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메가라로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바다에서 공성 기계를 써서 니사이아 쪽으로 튀어나온 망루 둘을 빼앗고 섬과 해안 사이 물길의 입구를 치운 다음, 늪을 건너지르는 다리가 있어 섬으로 구원병을 들여보낼 수 있는 자리에 육지 쪽으로 성벽을 쌓아 모든 연락을 끊는 일에 착수했다. 섬은 대륙에서 멀지 않았다. 이 일은 며칠이면 되었고, 그 뒤 그는 섬에도 몇 가지 시설을 세웠으며 거기에 수비대를 남겨 두고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이 여름 거의 같은 때에 플라타이아인은 이제 먹을 것이 없어 포위를 더 버틸 수 없게 되어 다음과 같은 경위로 펠로폰네소스인에게 항복했다. 성벽에 공격이 있었는데 플라타이아인은 그것을 물리칠 수 없었다. 스파르타 지휘관은 그들이 약해진 것을 알아보고 그 도시를 강습으로 빼앗는 일은 피하려 했다. 스파르타에서 내려온 지시가 그런 뜻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인데, 뒷날 언제든 아테네와 평화가 맺어져 양쪽이 전쟁 중에 빼앗은 곳을 서로 돌려주기로 합의하게 될 경우 플라타이아는 제 발로 넘어온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목록에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전령을 보내, 죄가 있는 자는 벌하되 법의 절차를 밟지 않고는 아무도 벌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스스로 도시를 스파르타인에게 넘기고 그들을 심판관으로 받아들일 뜻이 있는지 물었다. 플라타이아인은 이미 힘이 다한 끝에 있었으므로 전령이 전언을 전하자마자 도시를 넘겼다. 펠로폰네소스인은 스파르타에서 오는 심판관 다섯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며칠 동안 그들을 먹였다. 심판관들이 도착했으나 죄를 묻는 고발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플라타이아인을 불러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준 일이 있는지 물었다. 플라타이아인은 더 길게 말할 기회를 달라고 청하고 자기들 가운데 두 사람을 대표로 세웠다. 아소폴라오스의 아들 아스티마코스와, 스파르타인의 프록세노스1인 아에임네스토스의 아들 라콘이었다.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스파르타인 여러분, 우리가 도시를 넘길 때 우리는 여러분을 믿었고, 지금 이것보다는 법의 절차에 더 맞는 재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놓이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맡기기로 동의한 심판관은 여러분이었고 오직 여러분뿐이었으니, 여러분에게서라면 올바른 판결을 얻을 가망이 가장 크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지금, 우리는 우리가 두 겹으로 속은 것이 아닌가 두렵습니다. 그렇게 의심할 까닭은 넉넉합니다. 재판에 걸린 사안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공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답해야 할 고발이 먼저 제기되지 않고 우리 쪽에서 말할 기회를 청해야 했다는 사실, 그리고 물음이 하도 짧게 던져진 탓에 그것에 참되게 답하면 우리에게 불리하고 거짓으로 답하면 곧 반박당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런 궁지에서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길, 아니 실로 하나뿐인 길은 무슨 위험이 있더라도 말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가 놓인 자리에서 잠잠히 있다가는, 말을 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저 저주스러운 생각에 시달리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맞서야 할 또 하나의 어려움은 여러분을 설득하는 일의 어려움입니다.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새 사실을 내놓아 이득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정이 이러하니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은 것을 우리는 하나도 말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우리가 여러분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단정하고 그것을 우리 죄로 삼았다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를 기쁘게 하려고 결과가 이미 정해진 재판에 우리가 끌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정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을 여러분 앞에 놓겠습니다. 테베인이 우리를 걸어 일으킨 다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머지 그리스인에게 말하는 자로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친 훌륭한 봉사를 여러분에게 일깨우고, 여러분을 설득해 보려 애쓰겠습니다.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준 일이 있느냐는 여러분의 짧은 물음에 우리는 이렇게 답합니다. 여러분이 적으로서 묻는 것이라면, 여러분에게 도움을 바치지 않은 것은 여러분에게 해를 입힌 것이 아닙니다. 벗으로서 묻는 것이라면, 우리를 겨누어 진군한 여러분에게 더 큰 허물이 있습니다. 평화로운 때에도, 메디아인에 맞서서도 우리는 훌륭히 처신했습니다. 이번에 평화를 먼저 깨뜨린 것은 우리가 아니며, 그때 메디아인에 맞서 그리스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함께 나선 보이오티아인은 우리뿐이었습니다. 내륙 사람이었으나 우리는 아르테미시온의 싸움에 나가 있었고, 우리 땅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여러분과 파우사니아스 곁에 서서 싸웠으며, 그때의 다른 모든 그리스인의 공적에서도 우리 힘에 전혀 걸맞지 않을 만큼 큰 몫을 맡았습니다. 게다가 여러분은 스파르타인으로서 잊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지진이 있은 뒤 헬롯2이 이토메로 떨어져 나가 스파르타가 큰 공포에 빠졌을 때, 우리는 시민의 3분의 1을 보내 여러분을 도왔습니다.

이 크고 역사에 남은 자리들에서 우리가 고른 몫이 그러했습니다. 뒷날 우리가 여러분의 적이 되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의 탓이었습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테베인에 맞서 여러분의 동맹을 청했을 때 여러분은 우리 청을 물리쳤고, 여러분은 너무 멀리 사니 이웃인 아테네인에게 가라고 일렀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청했을 때 우리가 아테네인을 버리기를 마다했다면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물러선 자리에서 그들이 테베인에 맞서 우리를 도왔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명예를 지키면서 그들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청으로, 또 그들의 손에서 은혜를 입은 뒤에 그들의 동맹을 얻고 그들의 시민권까지 받았으니, 그들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 우리의 분명한 의무였습니다. 게다가 여러분 두 세력 가운데 어느 쪽이든 패권을 쥐고서 저지르는 허물은 따르는 자들에게가 아니라 그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우두머리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테베인을 두고 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거듭 해를 입혔으며, 우리를 지금의 이 처지로 몰아넣은 그들의 마지막 침해는 여러분 자신이 알고 있는 일입니다. 평화로운 때에, 게다가 그달의 거룩한 날에 우리 도시를 덮쳐 빼앗았으니 그들은 우리의 복수를 마땅히 받은 것이며, 침입자에게 맞서는 것을 허락하는 만민의 법에 그것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그들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 옳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당장의 이익과 그들의 원한을 정의의 척도로 삼는다면, 여러분은 옳음을 재는 심판관이 아니라 편의에 굽실거리는 자임을 스스로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저들이 지금 여러분에게 쓸 데가 있어 보인다 해도, 더 다급했던 때에 우리와 나머지 그리스인이 여러분에게 준 도움은 그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치는 편이고 남들이 여러분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그 위기의 때, 곧 이방인이 모두를 노예로 만들겠다고 위협하던 때에 테베인은 그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우리가 보인 나라 사랑을 지금 우리의 잘못과 나란히 놓고 재는 것이 옳습니다. 잘못이 있었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공적이 허물보다 무겁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공적이 크세르크세스의 힘에 맞서 제 용기를 내놓을 그리스인이 몇 없던 때, 침공을 앞두고 제 이익을 헤아리는 안전한 길보다 명예의 위험한 길을 고른 자들에게 더 큰 칭송이 돌아가던 때에 드러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몇 안 되는 이들에 속했고 그 일로 높은 기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같은 원칙에 따라 다시 행동했다는 것, 스파르타와 더불어 지혜롭게 처신하기보다 아테네와 더불어 훌륭하게 처신하기를 골랐다는 것 때문에 죽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로 보자면 같은 경우는 같게 판결해야 하며, 정책이라는 것도 좋은 동맹이 바친 봉사에 오래가는 고마움을 지니는 일에 자기 당장의 이익을 알맞게 돌보는 일을 더한 것 말고 다른 무엇을 뜻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도 헤아려 보십시오. 지금 그리스인은 대체로 여러분을 훌륭함과 명예의 본으로 여깁니다. 이 사건은 이름 없는 사건이 아니고, 심판관인 여러분이 이름 높은 것과 갇힌 자인 우리가 죄 없는 것이 서로 맞먹는 사건입니다. 그런 사건에서 여러분이 부당한 선고를 내린다면, 명예로운 사람들의 일을 그들보다 더 명예로운 사람들이 값없이 판결한 것을 두고, 또 그리스의 은인인 플라타이아인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온 나라의 신전에 바친 것을 두고 불쾌함이 일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스파르타인이 플라타이아를 무너뜨리는 일은 실로 끔찍하게 보일 것입니다. 훌륭한 봉사를 했다 하여 여러분의 아버지들이 델포이의 세발솥3에 그 이름을 새긴 도시가 테베인을 기쁘게 하려고 여러분의 손에 그리스의 지도에서 지워지는 일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그토록 깊은 불운으로 떨어졌습니다. 메디아인이 이겼다면 그것이 우리의 파멸이었을 텐데, 이제는 테베인이 한때 우리를 향했던 여러분의 애정 속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 위험, 그 어떤 것보다 큰 위험에 놓였습니다. 도시를 넘기지 않았다면 그때 굶어 죽었을 위험과, 지금 목숨을 걸고 재판을 받는 위험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인의 대의를 위해 우리 힘에 넘치도록 애쓴 우리 플라타이아인은 모두에게 내쳐져 버림받고 도움 없이 남았으며, 동맹 가운데 누구도 우리를 돕지 않으니 우리의 하나뿐인 희망인 여러분이 흔들리지 않을지조차 의심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한때 우리 동맹을 지켜보던 신들의 이름으로, 또 그리스인의 대의에 우리가 바친 훌륭한 봉사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마음을 풀어 주십시오. 테베인이 여러분에게서 이미 얻어 냈을까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결정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들이 우리를 죽여 여러분에게 수치를 입히지 못하도록, 여러분이 그들에게 준 선물을 되돌려 달라고 하십시오. 죄 있는 고마움이 아니라 깨끗한 고마움을 얻으십시오. 남을 기쁘게 하고 그 보답으로 여러분 자신이 수치를 받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 목숨은 금세 거두어 갈 수 있겠으나, 그 행위의 오명을 씻는 일은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정당하게 벌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 여러분에 맞서 무기를 들도록 몰린 벗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목숨을 허락하는 것이 올바른 판결일 것입니다. 우리가 제 발로 항복하여 목숨을 구하려 손을 내민 포로이며 그리스의 법이 그런 자를 죽이는 것을 금한다는 것, 게다가 우리가 언제나 여러분의 은인이었다는 것까지 헤아리신다면 말입니다. 메디아인의 손에 죽어 우리 땅에 묻힌 여러분 아버지들의 무덤을 보십시오. 우리는 해마다 옷과 그 밖의 모든 예물로, 또 철마다 우리 땅이 낸 모든 것의 맏물로 그들을 기렸습니다. 벗의 나라에서 온 벗으로서, 옛 전우들에게 바치는 동맹으로서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옳게 판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처신은 우리의 처신과 정반대가 될 것입니다. 이것만 헤아려 보십시오. 파우사니아스는 그들을 벗의 땅에, 그만큼 벗다운 사람들 가운데에 누인다고 생각하며 묻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를 죽이고 플라타이아의 땅을 테베의 것으로 만든다면, 여러분은 아버지와 친족을 적의 흙 속에, 그들을 죽인 자들 가운데에 남겨 두고 그들이 지금 받는 예우를 빼앗는 것이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인의 자유를 얻어 낸 땅을 노예로 만들고, 그들이 메디아인을 이기기 전에 기도를 올렸던 신들의 신전을 황폐하게 하며, 여러분 조상의 제사를 그것을 세우고 정한 자들에게서 빼앗는 것이 됩니다.

스파르타인 여러분, 이렇게 그리스인의 공통된 법과 여러분 자신의 조상에게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도, 여러분 자신은 아무 해를 입지 않았는데 남의 미움을 기쁘게 하려고 여러분의 은인인 우리를 죽이는 것도 여러분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살려 주고 도리에 맞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 몸을 맡기는 것이 더 큰 영광입니다. 우리에게 닥칠 무서운 운명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받는 자들의 됨됨이도, 또 그럴 까닭이 없는 이들에게조차 불운이 얼마나 빨리 닥칠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도 함께 헤아리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권리가 있는 자로서, 또 우리의 절박함에 몰린 자로서 여러분에게 빕니다. 모든 그리스인이 그 앞의 같은 제단에서 예배하는 신들을 큰 소리로 부르며, 우리 청을 들어 달라고, 여러분의 아버지들이 맹세했고 우리가 지금 근거로 삼는 그 맹세를 잊지 말아 달라고 빕니다. 우리는 여러분 아버지들의 무덤을 걸어 탄원하며, 우리가 테베인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그들의 가장 가까운 벗이 그들의 가장 미워하는 원수에게 넘겨지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이미 가신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또 여러분 아버지들 곁에서 우리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을 해낸 그날을 여러분에게 일깨웁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무서운 운명을 받게 될 듯한 우리가 그날 그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반드시 해야 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을 하겠습니다. 곧 말을 끝내는 일입니다. 말이 끝나면 우리 목숨의 위험이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결론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도시를 테베인에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기보다는 영광 없이 굶어 죽기를 택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믿고 여러분에게 항복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여러분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우리를 전과 같은 자리로 되돌려 놓고 우리에게 떨어지는 운을 우리가 맞게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우리를 내주지 마십시오. 스파르타인 여러분, 여러분에게 탄원하는 자들이며 그리스의 애국자 가운데 으뜸인 플라타이아인을 여러분의 손과 신의에서 떼어 내 우리가 가장 미워하는 원수인 테베인에게 넘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 주십시오. 나머지 그리스인을 자유롭게 하면서 우리를 파멸로 몰아넣지는 마십시오.”

플라타이아인의 말은 그러했다. 테베인은 스파르타인이 들은 말에 마음이 움직일까 두려워 앞으로 나와, 플라타이아인이 물음에 짧게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들의 뜻과 달리 길게 말할 것을 허락받았으니 자기들도 말하고 싶다고 했다. 허락이 내려지자 테베인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플라타이아인 쪽에서 물음에 짧게 답하는 데 만족했더라면, 그리고 돌아서서 우리를 걸어 고발하지 않았더라면, 게다가 지금의 심문 밖에 있고 고발의 대상조차 아닌 일들을 두고 길게 자기 변호를 늘어놓고 아무도 허물 삼지 않는 것을 칭송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 연설을 하게 해 달라고 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했으니 우리는 그들의 고발에 답하고 그들의 자기 칭송을 논박해야 합니다. 우리의 나쁜 이름도 그들의 좋은 이름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게 하고,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여러분이 참된 사실을 듣고서 판결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다툼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우리는 보이오티아의 나머지 땅을 얻은 뒤 얼마 지나 플라타이아에 사람을 들였고, 섞여 살던 주민을 몰아낸 다른 곳들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플라타이아인이 처음 정한 대로 우리의 패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나머지 보이오티아인에게서 떨어져 나가 제 겨레를 배신하는 자로 드러났으므로 우리는 힘을 썼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테네인 편으로 넘어가 그들과 함께 그만큼 해를 입혔고, 우리는 그 일에 보복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이방인이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메디아 편에 붙지 않은 보이오티아인은 자기들뿐이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대목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가장 크게 내세우고 우리를 가장 심하게 헐뜯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메디아 편에 붙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테네인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뒷날 아테네인이 그리스인을 쳤을 때 아테네 편에 선 보이오티아인이 또다시 플라타이아인뿐이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각기 그렇게 행동했을 때 양쪽 정치 체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그때 우리 도시에는 귀족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과두 체제도 없었고 민주 체제도 없었습니다. 있었던 것은 법과 좋은 통치에 가장 어긋나며 참주 정치에 가장 가까운 것, 곧 좁은 패거리의 지배였습니다. 이들은 메디아인이 이기면 제 개인의 권력이 굳어지리라 바라면서 힘으로 민중을 억눌렀고 그를 도시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도시 전체는 그렇게 행동할 때 제 주인이 아니었으니, 제 체제를 빼앗긴 동안에 저지른 잘못을 두고 책망받아서는 안 됩니다. 메디아인이 물러가고 체제가 회복된 뒤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만 살펴보십시오. 아테네인이 나머지 그리스를 치고 우리 나라를 정복하려 애쓰던 때, 당파 싸움이 이미 우리 나라의 대부분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던 그때 말입니다. 우리가 코로네이아에서 싸워 이기고 보이오티아를 해방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이 대의에 기병을 내놓고 동맹의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는 병력을 내놓으면서 나머지 땅의 해방에 힘껏 이바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메디아 편에 붙은 일에 대한 변명은 이것으로 넉넉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플라타이아인 여러분이 우리보다 더 크게 그리스인에게 해를 입혔으며 마땅한 벌을 받을 자격이 우리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이려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맞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아테네의 동맹이 되고 그 시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우리에 맞서 아테네인을 불러들이는 데서 그쳐야 했고, 그들과 함께 남들을 치는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이 따라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여러분을 이끈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면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할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그토록 힘주어 말하듯이 스파르타가 이미 메디아인에 맞선 여러분의 동맹이었으니 말입니다. 그것이면 우리를 떼어 놓기에, 무엇보다 여러분이 안전한 가운데 의논하기에 틀림없이 넉넉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제 뜻으로, 아무 강요도 없이 아테네와 운명을 함께하기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은인을 배신하는 것이 비루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를 노예로 만들고 있던 아테네인 하나를 버리는 것보다, 그리스를 해방하고 있던 여러분의 동맹 동료인 그리스인 전체를 희생시키는 것이 훨씬 더 비루하고 더 사악한 일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들에게 한 보답은 대등한 것도 명예로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말로는 여러분 자신이 짓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불러들였다는데, 그러고는 남을 짓누르는 일에서 그들의 공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루함이란 정당하게 갚아야 할 것이되 갚으려면 부당해지는 것을 갚지 않는 데보다, 받은 것을 받은 그대로 갚지 않는 데 더 있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만 메디아 편에 붙지 않은 것이 그리스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테네인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여러분이 그들 편에 서서 나머지에게 맞서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렇게 뚜렷이 드러났는데도, 여러분은 이제 이웃을 기쁘게 하려고 한 훌륭한 일의 값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테네인을 골랐으니 그들과 함께 서거나 그들과 함께 넘어져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그때 맺어진 동맹을 근거로 들어 그것이 이제 여러분을 지켜 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동맹을 버렸고, 그 구성원인 아이기나인과 다른 이들이 정복당하는 것을 막기는커녕 돕는 것으로 그 동맹을 어겼습니다. 그것도 강요를 받아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지금 이 시간까지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제도를 누리는 가운데, 우리 경우와 달리 아무도 여러분에게 강요하지 않는 가운데 그렇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봉쇄당하기 전에 어느 편에도 들지 말고 중립을 지키라는 청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명예의 가면을 쓰고 그리스인의 파멸을 노린 여러분보다 그리스인의 미움을 더 마땅히 받을 자가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내세우는 지난날의 덕이 여러분의 됨됨이에 본래 딸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은 이제 스스로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본성이 참으로 기울어 있는 쪽이 마침내 벗어날 길 없이 드러났습니다. 아테네인이 불의의 길로 갔을 때 여러분은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없이 메디아 편에 붙은 일과 여러분이 제 뜻으로 아테네 편에 선 일에 대한 우리 설명은 이러합니다. 여러분이 불평하는 마지막 잘못은, 여러분 말로는 우리가 평화로운 때에 축제 기간에 법을 무시하고 여러분의 도시를 침입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서도 우리가 여러분보다 더 큰 허물을 지었다고는 우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제 뜻으로 여러분 도시를 무장하고 쳐서 여러분 땅을 짓밟았다면 우리에게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재산과 가문에서 여러분 가운데 으뜸인 사람들이 외국과의 인연을 끊고 여러분을 보이오티아 공동의 나라로 되돌리려는 뜻에서 제 뜻으로 우리를 불렀다면, 우리 죄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말대로, 잘못이 저질러진 자리에서는 따르는 자보다 이끄는 자가 더 큰 책망을 받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잘못은 없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시민이며 여러분보다 더 많은 것을 걸고 있던 그들은 제 손으로 성벽을 열어 우리를 제 도시로 들였습니다. 원수로서가 아니라 벗으로서였고, 여러분 가운데 나쁜 자들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고 정직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것을 주며 사람을 치지 않고 원칙을 고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도시에서 내쫓기는 것이 아니라 제 친족에게 돌아오는 것이었고, 누구의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한결같은 벗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뜻이 적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처신이 증명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았고, 겨레의 정부인 보이오티아의 통치 아래 살기를 바라는 자들은 우리 쪽으로 넘어오라고 공개로 청했습니다. 처음에 여러분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 우리와 합의를 맺고 잠잠히 있었으며, 우리 수가 적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야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의 민중이 동의하지 않은 채로 우리가 들어간 일에 온전히 공정하지 못한 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여러분은 우리에게 받은 대로 갚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폭력을 삼가고 협상으로 우리를 물러가게 하는 대신, 여러분은 합의를 어기고 우리에게 덮쳐들었습니다. 싸움에서 우리 가운데 몇을 죽인 일은 그리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거기에는 얼마간의 정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손을 내밀어 목숨을 보장받았고 여러분이 나중에 그 목숨을 우리에게 약속하기까지 한 다른 이들을 여러분은 법을 무시하고 도륙했습니다. 이것이 가증스러운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 가증스러운 일입니까? 그리고 이 세 가지 죄를 잇달아 저지르고서도, 곧 합의를 어긴 일과 그 뒤에 사람들을 죽인 일과 우리가 들의 재산을 해치지 않으면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던 약속을 거짓으로 깨뜨린 일을 저지르고서도, 여러분은 여전히 죄인은 우리라고 우기며 여러분 자신은 정의를 피해 가려 합니다. 여기 이 심판관들이 옳게 판결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은 그 모든 일에 대해 한꺼번에 벌을 받을 것입니다.

스파르타인 여러분, 사실은 그러합니다. 우리가 이 일들을 얼마간 길게 다룬 것은 여러분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저 갇힌 자들에게 유죄를 내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복수에 정당함을 하나 더 얻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또 여러분이 저들의 지난 덕을 듣고 마음이 녹는 일을 막고자 합니다. 저들에게 그런 덕이 있었다 해도 그렇습니다. 그런 덕은 불의를 당한 자들이라면 정당하게 내세울 수 있으나 죄인에게는 죄를 무겁게 할 뿐입니다. 죄인은 제 더 나은 본성에 어긋나게 행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저들이 울부짖는 것으로, 여러분 아버지들의 무덤과 자기들의 버림받은 처지를 들먹이는 것으로 무엇을 얻게 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그것에 맞서 저들의 손에 도륙된 우리 젊은이들의 훨씬 더 무서운 운명을 가리킵니다. 그 젊은이들의 아버지들은 보이오티아를 여러분 편으로 데려오면서 코로네이아에서 쓰러졌거나, 불 꺼진 화로 옆에 외로운 노인으로 앉아 저 갇힌 자들에게 여러분의 정의를 내려 달라고 훨씬 더 큰 까닭을 가지고 빌고 있습니다. 저들이 호소하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그럴 까닭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들처럼 마땅히 고통받는 자들은 오히려 승리를 기뻐할 거리입니다. 지금 저들이 버림받은 처지에 있는 것은 저들 자신의 탓입니다. 더 나은 동맹을 제 뜻으로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법을 무시한 행위는 우리의 어떤 행동에도 자극받은 것이 아닙니다. 저들의 결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정의가 아니라 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들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은 넉넉하지 않습니다. 저들은 법의 선고로 고통받게 되는 것이며, 저들이 내세우는 대로 싸움 중에 목숨을 구하려 손을 내미는 탄원자로서가 아니라 재판을 받기로 합의하고 항복한 포로로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파르타인 여러분, 저들이 깨뜨린 그리스의 법을 바로 세우십시오. 그리고 그 침해를 당한 우리에게는 우리의 열심이 받을 만한 보답을 내리십시오. 저들의 장황한 연설에 우리가 여러분의 호의에서 밀려나게 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그리스인을 부르는 겨룸은 말의 겨룸이 아니라 행동의 겨룸임을 그들에게 본으로 보이십시오. 훌륭한 행동은 짧게 말할 수 있으나, 잘못이 저질러진 곳에서는 그 흉한 꼴을 가리려고 말이 넉넉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장서는 세력들이 지금 여러분이 하는 대로 한다면, 곧 모두에게 똑같이 짧은 물음 하나를 던지고 그 답에 따라 판결한다면,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가리려고 고운 말을 찾으려는 마음은 덜할 것입니다.”

테베인의 말은 그러했다. 스파르타 심판관들은 전쟁에서 플라타이아인으로부터 무슨 도움이라도 받은 일이 있느냐는 물음을 자기들이 던지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메디아인을 물리친 뒤 파우사니아스가 맺은 본래의 약정에 따라 자기들은 늘 플라타이아인에게 중립을 지키라고 청해 왔고, 봉쇄 전에도 같은 조건을 다시 분명히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그 제안이 거절되었으므로 자기들은 이제 그 뜻이 정직했던 만큼 약정에서 풀려났다고 그들은 여겼다. 또 자기들이 플라타이아인의 손에 해를 입었다고 보았으므로, 그들은 플라타이아인을 다시 하나씩 불러들여 저마다에게 같은 물음, 곧 전쟁에서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준 일이 있느냐는 물음을 던졌고, 없다고 답하면 끌어내 죽였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그렇게 살육된 플라타이아인은 200명에 못 미치지 않았고, 포위를 함께 겪은 아테네인 25명도 함께 죽었다. 여자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도시는 테베인이 1년쯤 메가라에서 온 정치적 망명자들과 자기들 편에 섰던 살아남은 플라타이아인에게 주어 살게 했고, 그 뒤 주추까지 남기지 않고 땅바닥으로 헐어 버렸으며, 헤라의 성역에 붙여 사방 200피트4의 숙사를 지었는데 위아래로 방을 죽 둘러 넣고 그 일에 플라타이아인의 집에서 나온 지붕과 문을 썼다. 성벽에 있던 나머지 재료인 청동과 쇠로는 침상을 만들어 헤라에게 바쳤고, 헤라를 위해 사방 100피트의 돌 사당도 지었다. 땅은 몰수하여 10년 기한으로 테베인 차지인들에게 임대했다. 플라타이아 사건 전체에서 스파르타인이 취한 적대적인 태도는 주로 테베인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때 벌어지고 있던 전쟁에 테베인이 쓸 데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플라타이아의 끝은 그러했다. 아테네의 동맹이 된 뒤 93년째의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레스보스인을 구원하러 갔다가 아테네인의 추격을 받으며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달아나는 것으로 우리가 두고 온 펠로폰네소스의 함선 40척은 크레타 앞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거기서부터 흩어진 채 펠로폰네소스로 돌아갔고, 킬레네에서 레우카스와 암브라키아의 전선 13척과, 얼마 전 알키다스의 조언자로 와 있던 텔리스의 아들 브라시다스를 만났다. 스파르타인은 레스보스 원정이 실패한 뒤 함대를 보강하여 내란이 터진 코르키라로 가기로 결의했는데, 나우팍토스에 있는 아테네 함선 12척이 아테네에서 증원을 받기 전에 그곳에 이르려는 것이었다. 브라시다스와 알키다스는 그에 맞추어 준비에 들어갔다.

코르키라의 내란은 에피담노스 앞바다의 해전에서 잡힌 포로들이 돌아온 데서 시작되었다. 코린트인은 그들을 놓아주었는데, 겉으로는 그들의 프록세노스들이 내놓은 800탈란톤5의 보증을 받고서였으나 실제로는 코르키라를 코린트 편으로 넘기겠다는 그들의 약속을 받고서였다. 이 사람들은 시민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설득에 나섰고 도시를 아테네에서 떼어 낼 셈으로 일을 꾸몄다. 사절을 태운 아테네 배와 코린트 배가 도착하자 회의가 열렸고, 코르키라인은 합의에 따라 아테네인의 동맹으로 남되 예전처럼 펠로폰네소스인의 벗이 되기로 표를 던졌다. 그러는 동안 돌아온 포로들은 아테네인의 자발적 프록세노스이며 민중파의 지도자인 페이티아스를 코르키라를 아테네에 노예로 넘긴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걸었다. 그는 무죄로 풀려난 뒤 맞받아쳐서, 그들 가운데 가장 부유한 다섯 사람을 제우스와 알키노오스에게 바쳐진 땅에서 말뚝을 잘라 냈다는 죄로 고발했다. 법에 정해진 벌은 말뚝 하나마다 1스타테르6였다. 유죄가 선고되고 벌금 액수가 매우 커지자 그들은 나누어 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며 신전에 탄원자로 앉았다. 그러나 평의회의 한 사람이던 페이티아스는 그 기구를 움직여 법을 그대로 집행하게 했다. 그리하여 고발당한 자들은 법에 몰려 다급해졌고 게다가 페이티아스가 아직 평의회 의원인 동안에 민중을 설득해 아테네와 공수 동맹을 맺게 할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단검으로 무장하고 한데 뭉쳐 갑자기 평의회로 들이닥쳐 페이티아스와 다른 60명을 죽였는데 의원도 있고 사인도 있었다. 페이티아스 편에 섰던 자들 가운데 몇 사람만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던 아테네 전선으로 도망해 목숨을 건졌다.

이 난행을 저지른 뒤 음모자들은 코르키라인을 민회로 불러 모아, 이 일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며 아테네에 노예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어느 편이든 배 한 척으로 평화롭게 오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그보다 많은 수로 오면 적으로 다루자는 동의를 그들은 냈다. 동의를 낸 뒤 그들은 그것이 채택되도록 강요했고, 곧바로 아테네로 사절을 보내 저지른 일을 정당하다고 변명하고 그곳에 있는 망명자들이 반동을 불러올 만한 적대적인 움직임을 하지 않도록 말리게 했다.

사절단이 도착하자 아테네인은 사절들과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 자들을 모두 내란을 꾸민 자로 붙잡아 아이기나에 가두었다. 그러는 동안 코린트 전선 한 척이 스파르타 사절을 태우고 섬에 도착하자, 코르키라에서 권세를 쥔 당파가 민중파를 쳐서 싸움에서 이겼다. 밤이 되자 민중파는 아크로폴리스와 도시의 높은 지역으로 피해 거기에 힘을 모았고 힐라이코스 항구도 손에 넣었다. 맞선 편은 자기들 대부분이 살던 시장과 그에 붙은, 대륙을 바라보는 항구를 차지했다.

이튿날은 대수롭지 않은 접전으로 지나갔고, 양편은 시골로 사람을 보내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내밀며 자기 편에 들어오라고 청했다. 노예의 대다수는 민중파의 부름에 응했다. 그 맞선 편은 대륙에서 온 용병 800명으로 보강되었다.

하루를 건너 싸움이 다시 붙었고 승리는 민중파에게 돌아갔는데, 그들이 수와 자리에서 유리했고 여자들도 용감하게 그들을 도와 집에서 기와를 던지며 제 성에 걸맞지 않은 굳셈으로 난전을 떠받쳤기 때문이었다. 해 질 무렵 완전히 무너져 달아나던 과두파는 이긴 민중파가 무기고를 덮쳐 빼앗고 자기들을 칼로 베어 버릴까 두려워, 그들이 나아오는 길을 막으려고 시장 둘레의 집들과 셋집들에 불을 질렀다. 제 집도 이웃의 집도 가리지 않았다. 그 불에 상인들의 물건이 많이 타 버렸고, 바람이 일어 불길을 부추겼다면 도시 전체가 없어질 수도 있었다. 싸움이 그치자 양편은 잠잠히 지키며 밤을 지냈고, 코린트 배는 민중파가 이긴 것을 보고 몰래 바다로 빠져나갔으며 용병 대부분도 남의 눈을 피해 대륙으로 건너갔다.

이튿날 아테네 장군 디이트레페스의 아들 니코스트라토스가 함선 12척과 메세니아 중장보병 500명을 이끌고 나우팍토스에서 올라왔다. 그는 곧 화해를 이루려 애썼고, 주모자 열 사람을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는 서로 조건을 맞추어 평화롭게 살며 아테네인과 공수 동맹을 맺기로 양편이 함께 합의하도록 설득했다. 재판에 넘기기로 한 열 사람은 곧 달아났다. 이 일이 정리되자 그는 배를 몰고 떠나려 했으나, 민중파의 지도자들이 맞선 편이 움직일 마음을 덜 먹게 하려면 그의 배 가운데 다섯 척을 남겨 달라고 그를 움직였고, 대신 자기들 배 같은 수에 사람을 채워 그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가 동의하자마자 그들은 그 배에 태울 사람으로 자기들의 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적들은 아테네로 보내질까 두려워 디오스쿠로이 신전에 탄원자로 앉았다. 니코스트라토스가 그들을 안심시켜 일어나게 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민중파는 이것을 구실로 무장하고서 맞선 편이 자기들과 함께 배를 타기를 마다한 것이 그 속뜻이 텅 비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집에서 무기를 꺼내 갔으니, 니코스트라토스가 막지 않았다면 마주친 자들 몇을 죽였을 것이다. 그 당파의 나머지는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고 헤라 신전에 탄원자로 앉았는데 그 수가 400명에 못 미치지 않았다. 민중파는 그들이 무슨 막다른 결단을 내릴까 두려워 그들을 일으켜 신전 앞의 섬으로 건네 보냈고, 먹을 것을 그리로 실어 보냈다.

내란이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을 섬으로 옮긴 뒤 나흘인가 닷새 만에 펠로폰네소스 함선들이 도착했다. 이오니아에서 돌아온 뒤로 머물러 있던 킬레네에서 온 53척이었고, 여전히 알키다스가 지휘했으나 브라시다스도 그의 조언자로 배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대륙의 항구인 시보타에 닻을 내렸다가 날이 새자 코르키라로 배를 몰았다.

코르키라인은 도시의 사정과 침입자가 다가오는 것에 크게 어지러워하고 놀라, 곧 배 60척을 갖추어 사람이 채워지는 대로 적을 향해 내보냈다. 아테네인이 자기들을 먼저 나가게 하고 코르키라인은 뒤에 배를 모두 모아 한꺼번에 따라오라고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들의 배가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채로 적에게 다가가자 두 척은 곧바로 이탈했고, 다른 배에서는 선원들이 저희끼리 싸우고 있어 무엇 하나 질서 있게 되는 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펠로폰네소스인은 그 혼란을 보고 함선 20척을 코르키라인 쪽에 맞세우고 나머지는 아테네 함선 12척에 맞세워 늘어놓았는데, 그 12척 가운데에는 살라미니아와 파랄로스 두 척이 있었다.

코르키라인이 분별 없이 작은 무리로 나뉘어 치다가 이미 제 잘못으로 힘을 잃고 있는 동안, 아테네인은 적의 수와 포위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본진은 물론 자기들에게 맞선 부대의 중앙조차 치려 하지 않고 그 날개를 덮쳐 배 한 척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펠로폰네소스인은 원을 이루어 진을 짰고, 아테네인은 그 둘레를 노 저어 돌며 그들을 어지럽히려 했다. 이것을 알아본, 코르키라인 쪽에 맞섰던 부대는 나우팍토스의 재앙이 되풀이될까 두려워 제 편을 도우러 왔고, 이제 함대 전체가 하나로 뭉쳐 아테네인에게 몰려들었다. 아테네인은 그 앞에서 노를 거꾸로 저어 물러났는데, 적을 그렇게 붙들어 두는 동안 코르키라인이 달아날 시간을 벌어 주려고 되도록 천천히 물러났다. 이 해전의 성격은 그러했고, 싸움은 해가 질 때까지 이어졌다.

코르키라인은 이제 적이 이긴 기세를 몰아 도시로 배를 몰고 와 섬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 내거나 그만큼 결정적인 다른 타격을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그 사람들을 다시 헤라 신전으로 건너 데려오고 도시를 지켰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인은 해전에서 이겼음에도 도시를 치려 하지 않고, 사로잡은 코르키라 배 13척을 끌고 자기들이 떠나온 대륙으로 돌아갔다. 이튿날도 그들은 도시를 치지 않았다. 도시의 혼란과 공포가 극에 이르렀고 브라시다스가 상관인 알키다스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고 전하는데도 그러했다. 그들은 레우킴메 곶에 올라 들을 짓밟았다.

그러는 동안 코르키라의 민중파는 함대가 자기들을 칠까 여전히 크게 두려워하여 도시를 건지려고 탄원자들과 그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 가운데 몇을 설득해 배에 타게 했다. 다가올 공격에 맞서 그들은 아직 배 30척에 사람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인은 한낮까지 들을 짓밟은 뒤 배를 몰고 떠났고, 밤이 되어 갈 무렵 봉화 신호로 투클레스의 아들 에우리메돈이 지휘하는 아테네 함선 60척이 레우카스 쪽에서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함대는 내란이 일어났다는 소식과 알키다스의 함대가 코르키라로 향한다는 소식에 아테네인이 보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펠로폰네소스인은 곧 밤을 타 서둘러 해안을 따라 본국으로 떠났고, 레우카스의 지협을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지 않도록 배를 육지로 끌어 그 지협을 넘겨 그렇게 떠났다. 코르키라인은 아테네 함대가 다가온다는 것과 적이 떠났다는 것을 알고 성벽 밖에 있던 메세니아인을 도시 안으로 들였으며, 사람을 채워 둔 함대에 힐라이코스 항구로 돌아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그 함대가 그렇게 하는 동안 그들은 손에 잡히는 적들을 죽였고, 배에 타도록 설득했던 자들도 뒤에 육지에 내리는 대로 죽였다. 다음으로 그들은 헤라의 성소로 가서 50명쯤을 설득해 재판을 받게 하고 모두 죽음을 선고했다. 그렇게 하기를 마다한 탄원자 대다수는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보고 그 거룩한 땅에서 서로를 죽였다. 어떤 이들은 나무에 목을 매었고, 다른 이들은 저마다 할 수 있는 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에우리메돈이 함선 60척을 이끌고 머문 이레 동안 코르키라인은 자기들의 적으로 여긴 동료 시민들을 도륙하는 일에 매달렸다. 씌워진 죄목은 민주 정치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것이었으나, 사사로운 미움 때문에 죽은 자도 있었고 자기에게 빚진 자들의 손에 그 빚 때문에 죽은 자도 있었다. 죽음이 그렇게 온갖 모습으로 날뛰었고, 그런 때에 흔히 그러하듯 폭력이 가지 않은 데가 없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손에 죽었고, 탄원자가 제단에서 끌려 나오거나 제단 위에서 죽임을 당했다. 어떤 이들은 디오니소스 신전 안에 벽으로 막혀 갇힌 채 거기서 죽기까지 했다.

내란이 걸어간 길은 그렇게 피로 물들었고, 그것이 남긴 인상은 그런 일이 일어난 첫 사례 가운데 하나였던 까닭에 더욱 컸다. 뒷날에는 그리스 세계 전체가 뒤흔들렸다고 말할 수 있으니, 어디서나 민중의 우두머리들은 아테네인을 끌어들이려 다투었고 과두파는 스파르타인을 들여오려 다투었다. 평화로운 때라면 그런 초청을 할 구실도 그럴 마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어느 당파든 맞선 편을 해치고 그만큼 제 이익을 얻기 위해 언제든 동맹을 불러 쓸 수 있었으므로, 내란을 일으킨 당파들에게 남의 나라 사람을 끌어들일 기회가 모자란 적이 없었다. 내란이 도시들에 안긴 고통은 많고 끔찍했으며, 그런 고통은 전에도 있었고 사람의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 것이다. 다만 경우가 저마다 다름에 따라 더 심하거나 덜하고 그 증상도 달라진다. 평화롭고 넉넉한 때에는 나라도 개인도 더 나은 마음을 지닌다. 거스를 수 없는 다급함 앞에 갑자기 놓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은 날마다 쓰는 것이 쉽게 들어오던 길을 끊어 버리며,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의 됨됨이를 제 처지와 같은 높이로 끌어내리는 거친 주인임을 드러낸다. 내란은 그렇게 도시에서 도시로 제 길을 달렸고, 그것이 가장 늦게 닿은 곳들은 앞서 저질러진 일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궁리를 한층 더 극단으로 정교하게 밀고 갔으니, 그것이 그들의 계획의 교활함과 보복의 잔학함으로 드러났다. 낱말은 본래의 뜻을 버리고 이제 새로 주어지는 뜻을 걸쳐야 한다. 앞뒤 없는 담대함은 충실한 동맹에게 어울리는 용기로 여겨지고, 신중한 망설임은 겉만 그럴듯한 비겁함이 된다. 절제는 사내답지 못함을 가리는 외투로 통하고, 문제의 모든 면을 볼 줄 아는 능력은 그 어느 면에서도 행동할 줄 모르는 무능이 된다. 미친 듯한 폭력은 사내다움의 속성이 되고, 조심스럽게 꾸미는 음모는 자기를 지키는 정당한 수단이 된다. 극단의 방책을 주장하는 자는 언제나 믿을 만한 사람이고, 그에게 맞서는 자는 의심할 사람이다. 음모를 이루어 내는 것은 머리가 날카로운 것이고 음모를 알아채는 것은 그보다 더 날카로운 것이다. 그러나 그 둘 가운데 어느 쪽도 하지 않아도 되게 미리 손을 쓰려는 것은 제 당파를 깨뜨리는 것이며 맞선 편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요컨대 죄를 지으려는 자를 앞질러 손쓰는 것이나 그런 생각이 없는 자에게 죄지을 생각을 일러 주는 것이나 똑같이 칭송을 받으니, 마침내 피붙이의 끈이 당파의 끈보다 약해지기에 이른다. 당파로 묶인 자들이 거리낌 없이 무슨 일에나 더 선선히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런 결사는 이미 세워진 제도에서 나오는 복을 바라보지 않고 그것을 뒤엎으려는 야심에서 만들어지며, 구성원들이 서로를 믿는 근거는 어떤 종교의 제재보다도 함께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 있다. 맞선 편이 내미는 공정한 제안에 두 편 가운데 더 강한 쪽은 너그러운 믿음이 아니라 시기하는 경계로 답한다. 복수가 자기 보존보다 더 무겁게 여겨진다. 화해의 맹세는 어느 쪽에서든 당장의 어려움을 넘기려고 내밀어지는 것이므로 다른 무기가 손에 닿지 않는 동안만 유효하다. 그러나 기회가 오면 먼저 그것을 낚아채어 적의 방심을 노린 자는 이런 배신의 복수가 드러내 놓고 하는 복수보다 더 달다고 여긴다. 안전을 헤아리는 문제를 접어 두더라도, 속임수로 얻은 성공이 그에게 더 뛰어난 지혜의 월계관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실로 사람들은 어수룩한 자를 정직하다고 부르기보다 악당을 영악하다고 부르기를 더 선선히 하며, 영악한 자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어수룩한 자로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흔히 그러하다. 이 모든 악의 원인은 탐욕과 야심에서 생기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며, 한번 겨룸에 들어선 당파들의 폭력은 그 열정에서 나온다. 도시마다 우두머리들은 저마다 가장 그럴듯한 명분을 갖추고서, 한쪽은 민중의 정치적 평등을 외치고 다른 쪽은 절도 있는 귀족 정치를 외치며, 자기들이 아끼는 척하는 그 공공의 이익 속에서 제 몫의 상을 찾는다. 그리고 우위를 얻으려는 다툼에서 어떤 수단에도 물러서지 않으며 가장 참혹한 지나침에 뛰어든다. 복수에 나설 때에는 그보다 더 멀리까지 가서, 정의가 요구하는 것에도 나라의 좋음이 요구하는 것에도 멈추지 않고 그때그때 당파의 변덕만을 하나뿐인 기준으로 삼으며, 그 순간의 원한을 실컷 채우기 위해 부당한 판결의 유죄 선고든 힘센 팔의 권위든 똑같이 선선히 불러들인다. 그리하여 어느 편에서도 종교는 기림을 받지 못하고, 죄 있는 목적에 이르기 위해 고운 말을 쓰는 일이 높은 평판을 얻는다. 그러는 동안 시민 가운데 온건한 쪽은 두 편 사이에서 죽어 간다. 다툼에 끼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시기가 그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지러움 탓에 그리스 나라들에는 온갖 형태의 불의가 뿌리를 내렸다. 명예가 크게 들어 있던 옛 순박함은 비웃음을 받아 사라졌고, 사회는 아무도 제 동료를 믿지 않는 진영들로 갈라졌다. 이것을 끝낼 만한 것으로는 믿고 기댈 약속도, 존중을 불러낼 맹세도 없었다. 오히려 모든 당파는 사정이 오래 그대로 있을 가망이 없다는 것을 셈에 넣고 있었으므로 서로를 믿을 수 있기보다 자기를 지키는 일에 더 마음을 쏟았다. 이 겨룸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것은 머리가 둔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제 모자람과 맞선 자들의 영악함을 걱정하여 말다툼에서 밀릴까, 더 재주 있는 상대의 꾀에 허를 찔릴까 두려워했고, 그래서 곧바로 담대하게 행동에 손을 댔다. 반면 그 맞선 자들은 때가 되면 알게 되리라고, 계략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을 행동으로 확보할 필요는 없다고 건방지게 생각하다가 미리 조심하지 않은 탓에 흔히 희생되었다.

그러는 동안 코르키라는 여기서 말한 죄들의 대부분에 첫 사례를 내놓았다. 다스리는 자들에게서 공평한 대접은 물론 오만함 말고는 아무것도 겪어 본 적 없는 다스림받던 자들이 제 때가 오자 받아 낸 보복의 첫 사례였다. 몸에 익은 가난을 벗어 버리려는 마음에서 이웃의 재물을 뜨겁게 탐한 자들이 내린 사악한 결의의 첫 사례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급의 정신이 아니라 당파의 정신으로 그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이 다스릴 수 없는 열정에 몰려 빠져든 야만스럽고 가차 없는 지나침의 첫 사례였다. 도시들의 삶이 그렇게 어지러움 속에 던져진 가운데, 언제나 법에 맞서 반항하며 이제는 법의 주인이 된 사람의 본성은 열정에 다스려지지 않고 정의를 존중하는 마음 위에 올라서며 뛰어난 것이면 무엇이든 원수로 삼는 모습을 기꺼이 드러냈다. 시기의 저 치명적인 힘이 없었다면 복수가 종교 위에, 이득이 정의 위에 놓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사람들은 복수를 밀고 나가면서, 역경에 빠진 누구나 똑같이 구원을 바랄 수 있는 저 보편의 법들을 위험한 날 그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 그대로 서 있게 두는 대신, 스스로 나서서 그것을 없애는 본을 보이는 일이 너무나 흔하다.

내란의 열정이 그렇게 코르키라의 당파 싸움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사이에 에우리메돈과 아테네 함대는 배를 몰고 떠났다. 그 뒤 달아나는 데 성공한 코르키라 망명자 500명쯤이 대륙의 요새 몇을 빼앗고 바다 건너 코르키라 영토의 주인이 되어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섬에 있는 제 나라 사람들을 노략했고, 그 해가 하도 커서 도시에 심한 기근이 일었다. 그들은 또 스파르타와 코린트에 사절을 보내 제 복귀를 교섭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하자 뒤에 배와 용병을 모아 모두 600명쯤으로 섬에 건너갔고,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것 말고는 아무 희망도 남지 않도록 배를 태워 버린 뒤 이스토네 산으로 올라가 거기에 요새를 쌓고 도시에 있는 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하여 들을 손에 넣었다.

같은 여름이 끝날 무렵 아테네인은 멜라노포스의 아들 라케스와 에우필레토스의 아들 카로이아데스의 지휘 아래 함선 20척을 시칠리아로 보냈는데, 그곳에서는 시라쿠사인과 레온티노이인이 전쟁을 하고 있었다. 시라쿠사인은 카마리나를 뺀 모든 도리스 도시를 동맹으로 두고 있었는데, 이 도시들은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스파르타 동맹에 들어 있었으나 그 전쟁에 몸으로 나선 적은 없었다. 레온티노이인 편에는 카마리나와 칼키디케계 도시들이 섰다. 이탈리아에서는 로크리스인이 시라쿠사인 편이었고, 레기온인은 제 친족인 레온티노이인 편이었다. 레온티노이인의 동맹들은 이제 아테네로 사람을 보내 옛 동맹과 같은 이오니아 혈통을 들어, 시라쿠사인이 육지와 바다에서 자기들을 봉쇄하고 있으니 함대를 보내 달라고 아테네인을 설득했다. 아테네인은 같은 혈통이라는 명분을 들어 함대를 보냈으나, 실제로는 시칠리아의 곡물이 펠로폰네소스로 실려 나가는 것을 막고 시칠리아를 예속시킬 수 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탈리아의 레기온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동맹들과 힘을 합쳐 전쟁을 이어 갔다.

주

  1. 1. 프록세노스 — 어떤 도시가 다른 도시에 둔 대리인. 자기 도시에 살면서 상대 도시에서 온 사절과 시민을 돌보고 그 이익을 대변했다. 국가가 주는 공직이 아니라 개인이 맡은 구실이었으므로, 본문의 '자발적 프록세노스'는 상대 도시가 정식으로 지명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 일을 맡은 사람을 뜻한다.

  2. 2. 헬롯 — 스파르타에 예속되어 땅을 갈던 신분.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딸린 예속민으로, 수가 많아 스파르타인은 늘 그들의 봉기를 경계했다.

  3. 3. 델포이의 세발솥 — 페르시아 전쟁에서 이긴 뒤 그리스인이 델포이에 바친 청동 기념물. 세 마리 뱀이 몸을 꼬아 올린 기둥 위에 황금 세발솥을 얹은 것으로, 기둥에는 그 전쟁에 함께 나선 나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4. 4. 200피트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5. 5.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탈란톤은 6,000드라크메에 해당했다고 전한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6. 6. 스타테르 — 그리스의 은화 단위. 도시마다 무게와 값이 달랐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