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어제 오후는 안개가 끼고 추워서, 히스 덤불과 진창을 헤치고 워더링 하이츠까지 가느니 서재 난롯가에서 오후를 보낼까 하는 마음이 반쯤 들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위층으로 올라와 보니(덧붙여 둔다. 나는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다. 이 집에 딸린 붙박이 세간처럼 집과 함께 넘겨받은 가정부는 듬직한 부인인데, 다섯 시에 식사를 차려 달라는 내 부탁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알아듣지 않으려 했는지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게으른 마음을 품고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서 보니, 하녀 하나가 솔이며 석탄 통에 둘러싸여 무릎을 꿇고 앉아 잿더미를 퍼부어 불을 끄면서 지옥 같은 먼지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 광경에 나는 곧장 쫓겨나듯 물러났고, 모자를 집어 들고 4마일을 걸어서 히스클리프의 정원 문 앞에 닿았을 때 마침 눈보라의 첫 깃털 같은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해 가까스로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황량한 언덕 꼭대기의 땅은 검은 서리에 꽁꽁 얼어 있었고, 공기는 온 팔다리가 덜덜 떨리도록 차가웠다. 사슬을 풀 수가 없어서 나는 문을 뛰어넘었고, 제멋대로 자란 구스베리 덤불이 늘어선 판석 길을 달려 올라가 들여보내 달라고 문을 두드렸지만, 손가락 마디가 얼얼해지고 개들이 울부짖을 때까지 두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한심한 사람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렇게 무례하게 손님을 박대하다니, 너희는 인간이라는 동족에게서 영영 떨어져 외따로 살아도 싸다. 나라면 적어도 대낮에 이렇게 문에 빗장을 질러 두고 손님을 내쫓지는 않겠다. 상관없다. 들어가고 말 테다!" 그렇게 마음먹고 걸쇠를 움켜쥐고 세차게 흔들고 있으려니, 식초를 마신 듯한 얼굴의 조지프가 헛간의 둥근 창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뭣 하러 왔소?" 그가 소리쳤다. "쥔 양반은 저 아래 가축 우리에 있구려. 쥔한테 할 말이 있으면 헛간 끝으로 돌아가 보시오."
"안에서 문을 열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소?" 나도 소리 질러 대답했다.
"안엔 마님밖에 없소. 댁이 밤이 되도록 그 요란한 난리를 쳐 봐야 마님은 문을 안 열어 주겄소."
"어째서요? 내가 누군지 부인께 좀 알려 줄 수 없겠소, 조지프?"
"난 싫소! 그런 일엔 손도 안 대겄소." 머리가 그렇게 웅얼거리더니 쑥 사라졌다.
눈발이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번 해 보려고 손잡이를 움켜잡았는데, 그때 웃옷도 걸치지 않고 쇠스랑을 어깨에 멘 젊은 사내가 뒤뜰에 나타나 따라오라고 나를 불렀다. 우리는 빨래하는 곳을 지나고, 석탄 헛간과 펌프와 비둘기장이 있는 돌 깔린 마당을 지나, 마침내 지난번에 나를 맞았던 그 크고 따뜻하고 아늑한 방에 이르렀다. 석탄과 토탄과 장작을 섞어 지핀 엄청난 불길이 방을 기분 좋게 밝히고 있었고, 넉넉한 저녁상이 차려진 식탁 가까이에서 나는 반갑게도 그 '마님'을 보았는데, 그런 사람이 이 집에 있으리라고는 그때까지 짐작조차 못 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앉으라고 권해 주겠거니 하고 기다렸지만, 부인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없었다.
"날씨가 사납습니다!" 내가 말을 꺼냈다. "히스클리프 부인, 하인들이 하도 느긋하게 시중을 드는 바람에 애꿎은 문만 그 대가를 치른 것 같습니다. 안에서 제 소리를 듣게 하느라고 꽤나 애를 먹었거든요."
부인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빤히 쳐다보았고, 부인도 빤히 쳐다보았다. 어쨌든 부인은 차갑고 무심한 눈길을 내게서 떼지 않았는데, 그 눈길이 어찌나 거북하고 불쾌하던지 나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랐다.
"앉으시오." 젊은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곧 들어올 거요."
나는 시키는 대로 앉았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고 그 악당 주노를 불렀는데, 주노는 두 번째 만남이라고 황송하게도 꼬리 끝을 아주 살짝 움직여 나를 알아본다는 표시를 해 주었다.
"아름다운 짐승입니다!" 나는 다시 말을 붙였다. "새끼들은 남에게 주실 생각이십니까, 부인?"
"내 개들이 아니에요." 상냥하신 안주인이 대답했다. 히스클리프 본인이라도 그보다 더 쌀쌀맞게 대꾸하지는 못했으리라.
"아, 그럼 부인께서 아끼시는 것들은 이 가운데 있군요?" 나는 고양이 같은 것이 가득 들어 있는 듯한 어둑한 구석의 방석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별난 걸 아끼는군요!" 부인이 비웃듯이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죽은 토끼 더미였으므로, 나는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고 화롯가로 바싹 다가앉으며, 오늘 저녁 날씨가 참으로 사납다는 말을 아까 한 그대로 되풀이했다.
"나오지 말았어야죠." 부인이 일어나 벽난로 선반에서 색칠한 깡통 두 개를 내리려고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까는 부인이 앉은 자리가 빛을 등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몸매와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호리호리했고 겉보기에 소녀 티를 갓 벗은 듯했는데, 몸매가 훌륭했고 얼굴은 내가 여태 보는 즐거움을 누린 얼굴 가운데 가장 앙증맞고 고왔다. 이목구비는 자그마했고 살결은 아주 희었으며, 아마빛이라기보다 금빛이라 해야 할 고수머리가 가냘픈 목덜미에 풀어진 채 늘어져 있었다. 눈은, 표정만 상냥했더라면 누구도 견디지 못했을 눈이었다. 쉽게 반하는 내 마음으로서는 다행하게도, 그 눈에 드러난 감정이라고는 경멸과 일종의 절망 사이를 오가는 것뿐이었는데, 그런 감정이 그런 눈에 깃들어 있다는 것은 기이할 만큼 부자연스러웠다. 깡통은 부인의 손이 잘 닿지 않는 데 있었으므로, 내가 거들려고 몸을 움직이자, 부인은 금화를 세는 수전노가 누가 거들겠다고 나서면 그러듯이 홱 돌아서서 나를 노려보았다.
"도움은 필요 없어요." 부인이 톡 쏘았다. "나 혼자 내릴 수 있어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나는 얼른 대답했다.
"차 마시라고 초대받았어요?" 부인이 단정한 검은 옷 위에 앞치마를 두르고, 찻잎을 한 숟가락 떠서 주전자 위에 든 채로 서서 따지듯 물었다.
"한 잔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초대받았느냐고요?" 부인이 되풀이해 물었다.
"아니요." 나는 반쯤 웃으며 말했다. "초대해 주실 분이 바로 부인이시지요."
부인은 숟가락째 찻잎을 도로 내던지고 토라져서 다시 의자에 앉았는데, 이마에는 주름이 잡히고 빨간 아랫입술은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 아이처럼 삐죽 나와 있었다.
그사이 젊은 사내는 누가 봐도 낡아 빠진 웃옷을 몸에 걸치고는 불길 앞에 꼿꼿이 서서, 꼭 우리 사이에 아직 갚지 못한 철천지원수라도 있는 것처럼 눈꼬리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 사내가 하인인지 아닌지 나는 슬슬 의심스러워졌는데, 옷차림도 말씨도 모두 거칠었고 히스클리프 씨 내외에게서 엿보이는 품위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숱 많은 갈색 고수머리는 손질 한 번 안 해 부스스했고, 구레나룻은 곰처럼 뺨을 덮어 들어왔으며, 손은 막일꾼처럼 햇볕에 그을려 있었는데, 그런데도 몸가짐은 거리낌이 없다 못해 거의 거만했고, 안주인을 시중드는 하인다운 부지런함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신분을 알 만한 분명한 증거가 없으니 그 별난 행동은 못 본 척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섯 분쯤 지나 히스클리프가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이 거북한 처지에서 어느 정도 놓여났다.
"보십시오, 약속대로 이렇게 왔습니다!" 나는 쾌활한 척하며 외쳤다. "그런데 날씨 때문에 반 시간쯤 발이 묶일 것 같으니, 그동안만이라도 이 댁에서 눈보라를 피하게 해 주실 수 있다면 고맙겠습니다."
"반 시간?" 그가 옷에 묻은 흰 눈송이를 털어 내며 말했다. "하필 눈보라가 한창인 때를 골라 산책을 나오다니 놀랍구려. 늪에서 길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걸 알기나 하오? 이 황야를 손바닥 보듯 아는 사람들도 이런 저녁에는 곧잘 길을 잃는다오. 그리고 장담하는데 지금으로선 날씨가 바뀔 가망이 전혀 없소."
"그럼 댁의 일꾼 가운데 길잡이를 하나 얻을 수 있겠지요. 그 사람은 아침까지 그레인지에서 묵어 가면 될 테고요. 한 사람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 못 내주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 슬기에 맡기는 수밖에요."
"흥!"
"차 끓일 거야, 말 거야?" 낡은 웃옷 차림의 사내가 사나운 눈길을 내게서 젊은 아가씨에게로 옮기며 따졌다.
"저 사람도 줘야 해요?" 부인이 히스클리프에게 물었다.
"준비나 해, 알았어?" 하는 대답이 어찌나 사납게 튀어나왔던지 나는 흠칫 놀랐다. 그 말투에는 꾸밈없는 못된 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고, 나는 이제 히스클리프를 멋진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준비가 다 되자 그가 "자, 의자를 당겨 앉으시오" 하고 권했고, 그 시골뜨기 젊은이까지 우리는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는데, 식사하는 내내 엄숙한 침묵만이 흘렀다.
내가 이 먹구름을 몰고 왔다면 그것을 걷어 내려고 애쓰는 것이 내 도리라고 생각했다. 설마 저 사람들이 날마다 이렇게 음산하고 말없이 앉아 있을 리는 없었다. 아무리 성미가 고약한 사람들이라 해도, 모두가 얼굴에 덮어쓰고 있는 저 한결같은 찌푸림이 그들의 평소 얼굴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기한 일입니다."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다음 잔을 받는 사이에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습관이 우리의 취향과 생각을 그렇게 빚어 낸다는 게 신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히스클리프 씨? 선생처럼 세상에서 완전히 떨어져 귀양살이하듯 사는 삶에도 행복이 깃들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할 사람이 아마 많을 겁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 가족에 둘러싸여 지내시는 데다 상냥하신 부인께서 이 댁과 선생의 마음을 두루 다스리는 수호신으로 계시니……"
"상냥하신 부인이라!" 그가 거의 악마 같은 비웃음을 띠며 말을 끊었다. "어디 있소, 그 상냥하신 부인이?"
"히스클리프 부인 말입니다. 선생의 부인이요."
"아, 그렇지. 아하, 그러니까 내 아내의 육신은 떠났어도 그 영혼이 보살펴 주는 천사 노릇을 맡아 워더링 하이츠의 운수를 지켜 준다는 뜻이구려. 그런 말이오?"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바로잡으려 했다. 사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너무 커서 부부일 것 같지 않다는 것쯤은 진작 알아보았어야 했다. 한 사람은 마흔쯤이었는데, 마흔은 정신이 한창 굳센 나이라서 그 나이의 사내가 처녀들이 사랑 때문에 자기와 결혼한다는 착각을 품는 일은 드물다. 그런 꿈은 늘그막의 위안으로 남겨 두는 법이다. 다른 한 사람은 열일곱 살도 안 되어 보였다.
그때 퍼뜩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 옆에서 대접에 차를 따라 마시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빵을 집어 먹는 이 촌뜨기가 저 부인의 남편일지도 모른다. 물론 히스클리프 2세겠지. 산 채로 묻혀 사는 결과가 이것이다. 세상에 더 나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조차 몰라서 저 무지렁이한테 제 몸을 내던져 버린 것이다! 참 딱하다. 내가 저 부인이 제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이 마지막 생각은 자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는데, 내 옆 사람은 거의 혐오스러울 지경으로 보였고, 나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내가 꽤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부인은 내 며느리요." 히스클리프가 내 짐작을 굳혀 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부인 쪽으로 묘한 눈길을 던졌는데, 그것은 증오의 눈길이었다. 그의 얼굴 근육이 남들의 근육과는 달리 영혼의 말을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아주 비뚤어진 근육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 물론이지요. 이제 알겠습니다. 그 너그러운 요정을 차지하는 복을 누리시는 분이 바로 댁이시군요." 나는 옆 사람에게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나빴다. 젊은이는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누가 봐도 한 대 칠 작정인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듯, 나를 두고 거칠게 욕을 한마디 웅얼거리는 것으로 그 폭풍을 눌러 삼켰고, 나는 그 욕을 못 들은 척하느라 꽤 신경을 써야 했다.
"짐작이 영 빗나갔소." 집주인이 말했다. "우리 둘 다 댁이 말하는 그 착한 요정을 차지하는 복은 누리지 못하오. 그 짝은 죽었소. 내 며느리라고 했잖소. 그러니 내 아들과 결혼했을 수밖에."
"그럼 이 젊은이는……"
"내 아들은 분명히 아니오."
히스클리프가 다시 웃었다. 저 곰 같은 녀석의 아비 노릇을 자기에게 떠맡기다니 농담치고는 지나치게 대담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내 이름은 헤어턴 언쇼요." 젊은이가 으르렁거렸다. "그 이름을 존중해 주는 게 좋을 거요!"
"무례하게 군 적 없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가 제 이름을 밝힐 때 보인 그 대단한 위엄에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그가 나를 노려보는 눈길은 내가 마주 쳐다보고 싶은 시간보다 오래 이어졌는데, 더 오래 마주 보다가는 그의 따귀를 갈기고 싶어지거나 웃음소리를 내고 말 것 같았다. 이 즐거운 가족 모임에서 내가 영락없이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음울한 정신의 기운이 내 둘레를 감싼 따뜻한 몸의 안락을 짓누르고도 남았고, 나는 저 서까래 밑에 세 번째로 발을 들일 때는 단단히 조심하리라 마음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아무도 정다운 말 한마디 하지 않자, 나는 날씨를 살피러 창가로 다가갔다. 서글픈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캄캄한 밤이 때 이르게 내려앉고 있었고, 하늘과 언덕은 사나운 바람과 숨 막히는 눈이 한데 엉켜 몰아치는 쓰라린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로 뒤섞여 있었다.
"이젠 길잡이 없이는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길은 벌써 눈에 묻혔을 테고, 설령 드러나 있다 해도 지금 같아서는 한 발짝 앞도 분간하기 어렵겠습니다."
"헤어턴, 저 양 열두 마리를 헛간 처마 밑으로 몰아넣어라. 밤새 우리에 두면 눈에 파묻히겠다. 앞에 널빤지도 하나 대 놓고."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점점 화가 치밀어 말을 이었다.
내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둘러보니 조지프가 개들에게 줄 죽을 한 통 들고 들어오고, 히스클리프 부인이 불 위로 몸을 숙이고서 성냥 한 묶음을 태우며 노닥거리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 성냥은 부인이 찻잎 깡통을 제자리에 올려놓다가 벽난로 선반에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조지프는 짐을 내려놓더니 방 안을 꼬치꼬치 살피고는 갈라진 목소리로 꽥꽥 내질렀다. "남들은 죄다 밖에 나갔는데 어찌 그리 빈둥빈둥 서 있을 맘이 드는지 모르겄구먼! 허나 넌 쓸모없는 것이니 말해 봐야 소용없지. 그 못된 버릇은 평생 못 고치고 네 에미처럼 곧장 마귀한테 가겄지!"
나는 잠깐 이 웅변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고, 몹시 화가 나서 그 늙은 악당을 문밖으로 걷어차 낼 작정으로 성큼 다가갔는데, 히스클리프 부인의 대꾸가 나를 멈춰 세웠다.
"이 고약한 늙은 위선자!" 부인이 대꾸했다. "마귀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산 채로 끌려갈까 봐 겁나지도 않아? 경고하는데 날 약 올리지 마. 안 그러면 특별히 부탁해서 영감을 잡아가게 할 테니까! 잠깐! 이것 좀 봐, 조지프." 부인은 선반에서 길고 시커먼 책 한 권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내 흑마술 솜씨가 얼마나 늘었는지 보여 줄게. 머지않아 이 집을 말끔히 비워 버릴 수 있을 거야. 붉은 암소가 그냥 우연히 죽은 게 아니고, 영감의 류머티즘도 하늘이 내린 시련이라고 쳐 주기는 어려울걸!"
"오, 사악해라, 사악해!" 노인이 숨을 헐떡였다. "주여,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아니, 이 타락한 늙은이! 영감은 버림받은 자야. 꺼져, 안 그러면 혼쭐을 내 줄 테니까! 너희를 모조리 밀랍과 진흙으로 빚어 놓을 거야! 내가 정한 금을 맨 먼저 넘는 놈은…… 무슨 꼴을 당할지는 말 안 할래. 하지만 두고 봐! 가, 내가 지켜보고 있어!"
꼬마 마녀는 아름다운 두 눈에 꾸민 악의를 담았고, 조지프는 진심으로 겁에 질려 떨면서 기도를 하고 "사악해"를 외치며 허둥지둥 나갔다. 부인의 행동은 일종의 음울한 장난에서 나왔으리라고 나는 생각했고, 이제 둘만 남았으니 내 곤경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써 주기를 바라며 말을 걸었다.
"히스클리프 부인." 나는 간곡하게 말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감히 부탁드리는 것은, 그런 얼굴을 하신 분이라면 마음씨가 착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알아볼 만한 표지를 좀 일러 주십시오. 지금 저는 부인께서 런던 가는 길을 모르시는 만큼이나 저도 그 집으로 가는 길을 전혀 모르겠습니다!"
"왔던 길로 가세요." 부인이 촛불 하나를 켜 놓고 그 긴 책을 앞에 펼친 채 의자에 푹 파묻히며 대답했다. "짧은 충고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중에선 제일 쓸 만한 충고예요."
"그럼 제가 늪이나 눈이 가득 찬 구덩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으셔도, 그게 얼마쯤은 부인 탓이라고 양심이 귓가에 속삭이지는 않겠습니까?"
"어째서요? 난 바래다줄 수 없어요. 정원 담장 끝까지도 못 가게 할걸요."
"부인이요! 이런 밤에 제 편하자고 부인께 문턱을 넘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내가 외쳤다. "저는 길을 일러 달라는 겁니다. 보여 달라는 게 아니라요. 아니면 히스클리프 씨께 길잡이를 하나 붙여 주시라고 말씀이라도 좀 해 주시든지요."
"누구를요? 여기엔 그 사람과 언쇼, 질라, 조지프, 그리고 나밖에 없어요. 누구를 데려가시겠어요?"
"농장에 사내아이들은 없습니까?"
"없어요. 그게 다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묵을 수밖에 없겠군요."
"그건 집주인하고 정하세요. 난 상관없어요."
"이번 일로 이 언덕에서 다시는 무모하게 나다니지 않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소." 부엌 어귀에서 히스클리프의 엄한 목소리가 외쳤다. "여기서 묵는 거라면, 난 손님을 재울 방을 따로 두지 않소. 굳이 묵겠다면 헤어턴이나 조지프하고 한 침대를 써야 할 거요."
"이 방 의자에서 자도 됩니다." 내가 대답했다.
"안 되오, 안 되오! 부자건 가난뱅이건 낯선 사람은 낯선 사람이오. 내가 지키지 않는 사이에 누가 이 집 안을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내버려 둘 수는 없소!" 그 무례한 작자가 말했다.
이 모욕에 내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나는 역겹다는 말을 한마디 내뱉고 그를 밀치고 마당으로 나갔는데, 서두르다가 그만 언쇼와 부딪쳤다. 어찌나 캄캄한지 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헤매고 다니는 동안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점잖게 대하는지 보여 주는 견본을 하나 더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젊은이가 내 편을 들어 줄 것 같았다.
"영지 어귀까지 같이 가 주겠소." 그가 말했다.
"같이 지옥에나 가라!" 그의 주인인지, 그와 무슨 사이인지 모를 사람이 소리쳤다. "그럼 말은 누가 돌보고, 응?"
"말을 하룻저녁 덜 돌보는 것보다는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잖아요. 누구든 가야 해요." 히스클리프 부인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정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네가 시켜서는 안 가!" 헤어턴이 쏘아붙였다. "저 사람이 그렇게 소중하면 입 다물고 있는 게 좋을걸."
"그럼 저분 유령이 너한테 들러붙기나 해라. 그리고 히스클리프 씨는 그레인지가 폭삭 무너져 폐허가 될 때까지 다시는 세입자를 못 얻었으면 좋겠어." 부인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들어 봐, 들어 봐, 저 계집애가 저주를 퍼붓는구먼!" 내가 그쪽으로 가던 조지프가 웅얼거렸다.
조지프가 말소리가 들리는 곳에 앉아 등불을 켜 놓고 소젖을 짜고 있었으므로, 나는 체면 차릴 것 없이 그 등불을 낚아채고는 내일 돌려보내겠다고 외치며 가장 가까운 쪽문을 향해 냅다 달렸다.
"쥔 양반, 쥔 양반, 저 사람이 등불을 훔쳐 가오!" 노인이 내 뒤를 쫓아오며 소리쳤다. "이놈, 내셔! 이놈아! 울프, 붙잡아라, 붙잡아!"
작은 문을 열자마자 털북숭이 괴물 두 마리가 내 목을 노리고 날아들어 나를 쓰러뜨리고 등불을 꺼 버렸고, 히스클리프와 헤어턴이 한데 어울려 터뜨린 웃음소리가 내 분노와 굴욕에 마지막 갓돌을 얹었다. 다행히 짐승들은 나를 산 채로 뜯어 먹기보다는 앞발을 쭉 뻗고 하품을 하고 꼬리를 흔드는 데 더 정신이 팔린 듯했지만, 내가 일어나는 것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아서, 나는 그 심술궂은 주인들이 구해 주고 싶어질 때까지 그대로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모자도 없이 분노로 떨며, 그 못된 것들에게 나를 내보내라고 명령했다. 나를 단 1분이라도 더 붙잡아 두었다가는 각오하라고 했고, 복수하겠다는 앞뒤 없는 협박도 몇 마디 늘어놓았는데, 그 독기가 끝 모르게 깊어서 리어왕의 냄새가 났다.
너무 흥분한 탓에 코피가 줄줄 쏟아졌다. 그래도 히스클리프는 웃었고, 그래도 나는 호통을 쳤다. 나보다 좀 더 이성적이고 집주인보다는 더 인정 많은 사람이 하나 곁에 없었더라면 그 장면이 어떻게 끝났을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바로 건장한 가정부 질라였다. 질라는 마침내 무슨 소동인지 알아보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누군가가 내게 손찌검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감히 주인에게 덤빌 수는 없었으므로 입으로 퍼붓는 대포를 젊은 악당 쪽으로 돌렸다.
"아이고, 언쇼 도련님." 질라가 소리쳤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벌이려우? 이젠 우리 집 문간 돌계단에서 사람까지 죽일 참이우? 이 집은 영 나하고는 맞지 않겠구려. 저 가엾은 젊은이 좀 봐요, 숨이 넘어가겠네! 쉿, 쉿, 그러면 못써요. 들어와요, 내가 고쳐 줄게요. 자, 가만히 있어요."
그 말과 함께 질라는 느닷없이 얼음장 같은 물 한 됫박을 내 목덜미에 끼얹고는 나를 부엌으로 끌고 들어갔다. 히스클리프 씨가 뒤따라 들어왔는데, 어쩌다 터져 나온 그의 웃음은 금세 늘 그렇던 침울함 속으로 사그라들고 말았다.
나는 몹시 메스껍고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그의 지붕 밑에서 하룻밤 묵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질라에게 내게 브랜디 한 잔을 주라고 이르고는 안쪽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질라는 내 딱한 꼴을 안쓰러워하며 그가 시킨 대로 브랜디를 주었고, 그 덕에 내가 조금 기운을 차리자 나를 잠자리로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