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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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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린턴 아가씨는 늘 말없이, 그리고 거의 언제나 눈물을 흘리며 영지와 뜰을 힘없이 서성였고, 아가씨의 오빠는 펼쳐 보지도 않는 책들 사이에 틀어박혀 있었다. 내 짐작으로는 캐서린이 제 행동을 뉘우치고 제 발로 찾아와 용서를 빌고 화해를 청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줄곧 품고 기다리느라 지쳐 가는 듯했다. 그리고 마님은 끼니마다 에드거가 자기가 없어서 목이 메고 자존심만 아니면 당장 달려와 자기 발밑에 몸을 던질 거라고 여기는지 고집스럽게 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레인지의 담장 안에 분별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뿐이고 그 하나가 바로 내 몸속에 들어 있다고 굳게 믿으며 집안일을 돌보았다. 나는 아가씨에게 위로의 말을 허비하지 않았고 마님에게도 타이르는 말을 허비하지 않았으며,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이름이라도 듣고 싶어 애태우는 주인의 한숨에도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알아서들 제자리로 돌아오게 내버려 두기로 마음먹었고, 지루할 만큼 더디긴 했지만 마침내 일이 나아지는 기미가 희미하게 밝아 오는 것 같아서 기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흘째 되는 날 린턴 부인은 문빗장을 벗기고, 물주전자와 유리병의 물을 다 마셨으니 물을 새로 가져오고 귀리죽도 한 그릇 가져오라고 했는데, 자기가 죽어 가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것을 에드거의 귀에 들어가라고 하는 말로 여겼고, 그런 말은 조금도 믿지 않았으므로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고 마님에게 차와 마른 토스트를 가져다주었다. 마님은 허겁지겁 먹고 마시더니 다시 베개에 털썩 기대어 주먹을 움켜쥐고 신음했다. "아, 나는 죽을 거야." 마님이 외쳤다. "아무도 나를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으니까. 그걸 먹지 말걸 그랬어." 그러고 한참 뒤에 마님이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안 죽을 거야. 그 사람이 좋아할 테니까. 그 사람은 나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아. 내가 없어도 아쉬워하지 않을 거야!"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마님?" 나는 마님의 섬뜩한 얼굴과 이상하게 과장된 거동에도 겉으로는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고 물었다.

"그 무심한 인간은 뭘 하고 있어?" 마님이 여윈 얼굴에서 짙게 엉킨 머리채를 밀어젖히며 따져 물었다. "혼수상태에라도 빠졌어, 아니면 죽었어?"

"둘 다 아니에요." 내가 대답했다. "린턴 나리 말씀이시라면요. 나리는 그런대로 괜찮으신 것 같아요, 다른 말벗이 없으니 줄곧 책 속에 묻혀 계셔서 공부에 마땅한 정도보다 좀 더 오래 매달려 계시긴 하지만요."

마님의 진짜 상태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님이 병의 일부를 꾸며서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책 속에!" 마님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외쳤다. "나는 죽어 가는데! 무덤 문턱에 서 있는데! 맙소사!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 사람은 알기나 해?" 마님은 맞은편 벽에 걸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저게 캐서린 린턴이야? 그 사람은 내가 토라져 있다고, 어쩌면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나 봐. 이게 무시무시한 진심이라고 네가 알려 줄 수 없어? 넬리, 너무 늦지 않았다면 그 사람 마음이 어떤지 알게 되는 대로 나는 둘 중 하나를 고르겠어, 당장 굶어 죽든지(그 사람한테 마음이라는 게 있어야 그게 벌이 되겠지만), 아니면 몸을 추슬러서 이 고장을 떠나든지. 지금 그 사람 이야기를 사실대로 하는 거야? 조심해. 그 사람이 정말 내 목숨에 그렇게까지 아무 관심이 없어?"

"아니, 마님." 내가 대답했다. "나리께서는 마님이 정신이 어지러우시다는 건 꿈에도 모르세요. 그리고 물론 마님이 굶어서 돌아가시게 내버려 두실 거라고는 걱정하지 않으시고요."

"그렇게 생각해? 내가 정말 그럴 거라고 그 사람한테 말해 줄 수 없어?" 마님이 대꾸했다. "그 사람을 설득해 줘! 네 생각이라고 하고, 내가 꼭 그러고 말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해!"

"아니에요, 마님은 잊으셨나 봐요." 내가 넌지시 말했다. "오늘 저녁에 음식을 맛있게 좀 드셨잖아요. 내일이면 그 덕을 보실 거예요."

"그게 그 사람을 죽일 거라는 확신만 있다면," 마님이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당장 내 목숨을 끊겠어! 이 끔찍한 사흘 밤 동안 나는 눈꺼풀 한 번 붙이지 못했어. 아, 얼마나 시달렸는지! 넬리, 나는 무언가에 홀려 있었어! 그런데 이제 보니 너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이상도 하지! 사람들이 다 서로 미워하고 업신여겨도 나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몇 시간 사이에 다들 원수가 되어 버렸어. 다들 그랬어, 틀림없어. 이 집 사람들이. 그 차가운 얼굴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다니 얼마나 쓸쓸할까! 이저벨라는 겁에 질리고 질겁해서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겠지. 캐서린이 떠나가는 걸 지켜보는 건 너무 끔찍할 테니까. 그리고 에드거는 엄숙하게 곁에 서서 끝나는 걸 지켜보다가, 제 집에 평화를 되찾아 주셨다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는 제 책으로 돌아가겠지! 내가 죽어 가는데, 느낌이라는 걸 가진 모든 것의 이름으로 묻겠는데, 그 사람이 책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야 해?"

린턴 씨가 철학자처럼 체념하고 있다는 생각을 내가 머릿속에 심어 준 탓에 마님은 그 생각을 견디지 못했다. 마님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열에 들뜬 혼란을 광기로 키워 가더니 이로 베개를 물어뜯었고, 그러고는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몸을 일으키며 창을 열어 달라고 했다. 한겨울이었고 북동쪽에서 바람이 세게 불어서 나는 안 된다고 했다. 마님의 얼굴에 스쳐 가는 표정이며 시시각각 바뀌는 기분이 나를 몹시 놀라게 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예전에 마님이 앓았던 병과, 마님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던 의사의 당부가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납게 날뛰던 마님은 이제 한쪽 팔로 몸을 버티고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방금 찢어 놓은 틈에서 깃털을 뽑아 종류대로 홑이불 위에 늘어놓는 데서 어린애 같은 재미를 찾는 듯했다. 마님의 마음은 다른 생각으로 흘러가 버린 뒤였다.

"이건 칠면조 깃털이야." 마님이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들오리 거고, 이건 비둘기 거야. 아, 베개에 비둘기 깃털을 넣었구나. 내가 죽지 못한 것도 당연해! 누울 때는 잊지 말고 이걸 바닥에 내던져야지. 그리고 이건 수컷 뇌조 거고, 이건, 천 개 가운데서도 알아볼 수 있어, 댕기물떼새 거야. 예쁜 새. 황야 한복판에서 우리 머리 위를 빙빙 돌곤 했지. 구름이 언덕 마루에 닿아 비가 올 것 같으니까 둥지로 돌아가고 싶어 했어. 이 깃털은 히스 벌판에서 주운 거야. 그 새는 총에 맞지 않았어. 우리는 겨울에 그 둥지를 봤는데, 작은 뼈다귀들이 가득 차 있었어. 히스클리프가 그 위에 덫을 놓아서 어미 새들이 감히 오지 못했던 거라, 그 뒤로는 절대로 댕기물떼새를 쏘지 않겠다고 내가 그 애한테 약속을 받았고, 그 애는 정말 쏘지 않았어. 그래, 여기 또 있네! 그 애가 내 댕기물떼새들을 쏘았어, 넬리? 그중에 빨간 게 있어? 어디 봐."

"그 애들 장난은 그만두세요!" 나는 말을 끊고 베개를 빼앗아 구멍 난 쪽을 매트리스 쪽으로 돌려놓았다. 마님이 속에 든 것을 한 움큼씩 꺼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워서 눈을 감으세요. 헛소리를 하고 계세요. 이 난장판 좀 봐! 솜털이 눈처럼 날리네."

나는 여기저기 다니며 그것을 주워 모았다.

"넬리, 너를 보니까." 마님이 꿈꾸듯 말을 이었다. "늙은 여자가 보여. 머리는 하얗게 셌고 어깨는 굽었어. 이 침대는 페니스톤 바위산 밑의 요정 동굴이고, 너는 우리 암송아지들을 해코지하려고 요정의 화살촉을 줍고 있어, 내가 곁에 있으니까 그게 그냥 양털 뭉치인 척하면서 말이야. 쉰 해 뒤에 너는 그렇게 될 거야.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건 알아. 나는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잘못 안 거야, 그렇지 않다면 나는 네가 정말로 그 쭈그렁 할멈이라고 믿을 테고, 내가 지금 정말로 페니스톤 바위산 밑에 있다고 생각할 거야. 나는 지금이 밤이라는 걸 알고, 탁자 위에 촛불 두 자루가 켜져서 그 검은 장롱이 흑옥처럼 반짝인다는 것도 알아."

"검은 장롱이요? 그게 어디 있는데요?" 내가 물었다. "주무시면서 잠꼬대를 하시는 거예요!"

"늘 그렇듯이 벽에 붙어 있잖아." 마님이 대답했다. "정말 이상해 보여. 그 안에 얼굴이 보여!"

"이 방에는 장롱이 없어요. 있었던 적도 없고요."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마님을 지켜볼 수 있게 침대 휘장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너는 저 얼굴이 안 보여?" 마님이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아무리 해도 그것이 마님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듣게 할 수가 없어서, 나는 일어나 숄로 거울을 덮었다.

"아직 저 뒤에 있어!" 마님이 불안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움직였어. 누구야? 네가 나가면 저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 넬리, 이 방에 귀신이 있어! 혼자 있기가 무서워!"

나는 마님의 손을 잡고 진정하라고 일렀는데, 잇따라 오싹하는 떨림이 마님의 몸을 뒤흔들었는데도 마님은 기어이 거울 쪽으로 눈길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아무도 없어요!" 나는 우겼다. "그건 마님 자신이었어요. 조금 전에는 마님도 아셨잖아요."

"나 자신!" 마님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시계가 열두 시를 치고 있어! 그럼 정말이구나! 끔찍해!"

마님이 손가락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끌어당겨 눈을 덮자, 나는 남편을 부르려고 살그머니 문 쪽으로 가 보려 했지만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다시 불려 돌아왔다. 숄이 거울틀에서 흘러내렸던 것이다.

"아니, 대체 왜 그러세요?" 내가 외쳤다. "이제 누가 겁쟁이예요? 정신 차리세요! 저건 유리예요, 거울이라고요, 마님. 거기 마님 모습이 비치는 거고, 저기 마님 곁에 저도 있잖아요."

마님은 떨면서 어리둥절한 채 나를 꼭 붙들었지만, 차츰 얼굴에서 공포가 걷혔고 창백하던 얼굴은 부끄러워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 어쩌나! 나는 집에 있는 줄 알았어." 마님이 한숨을 쉬었다. "워더링 하이츠의 내 방에 누워 있는 줄 알았어. 몸이 약해져서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나 봐.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곁에 있어 줘. 잠들기가 무서워. 꿈이 너무 끔찍해."

"푹 주무시면 나아지실 거예요, 마님."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고생하셨으니 다시는 굶으실 생각을 안 하시면 좋겠어요."

"아, 그 옛집의 내 침대에만 누워 있을 수 있다면!" 마님이 두 손을 비틀며 쓰라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격자창 옆 전나무에서 울리는 그 바람 소리. 그 바람을 좀 느끼게 해 줘. 황야에서 곧장 내려오는 바람이야. 한 번만 숨 쉬게 해 줘!"

나는 마님을 달래려고 여닫이창을 몇 초 동안 조금 열어 주었다. 찬 바람이 휙 몰려 들어왔고, 나는 창을 닫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마님은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로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몸이 지칠 대로 지쳐서 기운이 완전히 꺾였고, 그 불같던 우리 캐서린은 칭얼대는 아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여기 틀어박힌 지 얼마나 됐어?" 마님이 별안간 기운을 되찾아 물었다.

"월요일 저녁이었어요."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은 목요일 밤, 아니 이제는 금요일 아침이고요."

"뭐라고! 같은 주의?" 마님이 외쳤다. "겨우 그것밖에 안 됐어?"

"찬물하고 부아만 먹고 살기에는 충분히 긴 동안이지요." 내가 말했다.

"글쎄, 지긋지긋하게 긴 시간 같은데." 마님이 미심쩍은 듯 중얼거렸다. "틀림없이 더 됐을 거야. 두 사람이 싸우고 난 뒤에 내가 거실에 있었던 것, 에드거가 잔인하게 내 속을 긁었던 것, 그리고 내가 절망해서 이 방으로 뛰어 들어왔던 게 기억나. 문에 빗장을 지르자마자 캄캄한 어둠이 나를 덮쳤고 나는 바닥에 쓰러졌어. 그 사람이 계속 나를 들볶으면 내가 틀림없이 발작을 일으키거나 미쳐 날뛰게 되리라는 걸 그때 내가 얼마나 확실히 느꼈는지 에드거한테 설명할 수가 없었어! 혀도 머리도 말을 듣지 않았고, 그 사람은 아마 내 고통을 짐작도 못 했겠지. 그 사람한테서, 그 사람 목소리한테서 달아나려고 애쓸 정신만 겨우 남아 있었어. 다시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돌아오기 전에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는데, 넬리,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이 자꾸자꾸 되살아나서 내 정신이 어떻게 될까 봐 무서웠는지 말해 줄게. 저 탁자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서 창의 잿빛 네모를 어렴풋이 바라보는데, 나는 내가 집에 있는 참나무 상자 침대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막 깨어나서 무엇인지 떠올릴 수 없는 어떤 큰 슬픔 때문에 가슴이 아팠어. 나는 그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애를 태웠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내 삶의 지난 일곱 해가 통째로 텅 비어서, 그런 세월이 있었다는 것조차 떠오르지 않았어! 나는 어린아이였고, 아버지는 막 땅에 묻혔고, 내 괴로움은 힌들리가 나를 히스클리프한테서 떼어 놓으라고 명령한 데서 생긴 거였어. 나는 처음으로 혼자 잠자리에 눕혀졌고, 밤새 울다가 음울한 선잠에서 깨어나 상자 침대의 판자 문을 밀어젖히려고 손을 들었는데, 손이 탁자 윗면에 부딪쳤어! 내가 그 손을 양탄자 위로 쓸어내리는 순간 기억이 와락 밀려들었고, 방금 전의 괴로움은 그보다 더 크게 터져 나온 절망에 삼켜져 버렸어. 왜 그렇게 미칠 듯이 비참했는지 나도 모르겠어.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게 틀림없어. 그럴 까닭이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봐. 열두 살 때 내가 하이츠에서, 어릴 적의 모든 것에서, 그때 히스클리프가 그랬듯이 내 전부였던 것에서 억지로 뜯겨 나와서, 단번에 린턴 부인이,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안주인이, 낯선 사람의 아내가 되어 버렸다고. 그때부터 나의 세상이었던 곳에서 쫓겨나 떠도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말이야. 내가 기어 다니던 그 구렁텅이를 너도 얼핏은 짐작할 수 있을 거야! 고개를 저을 테면 저어, 넬리. 나를 이렇게 흔들어 놓은 데는 너도 한몫했어! 너는 에드거한테 말했어야 했어, 정말 그랬어야 했어. 그래서 나를 조용히 내버려 두게 만들었어야 했어! 아, 몸이 타는 것 같아! 밖에 나가 있으면 좋겠어! 다시 계집애가 되면 좋겠어. 반쯤 야만스럽고 억세고 자유롭고, 상처를 입어도 미쳐 날뛰는 대신 웃어넘기던 그때로! 나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왜 몇 마디 말에 내 피가 지옥처럼 들끓을까? 저 언덕의 히스 덤불 속에 한 번만 들어가 있으면 틀림없이 다시 나 자신이 될 거야. 창을 다시 활짝 열어. 열린 채로 고정해 놔! 빨리, 왜 꼼짝도 안 해?"

"마님을 추위에 얼어 죽게 해 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대답했다.

"나를 살게 해 줄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거겠지." 마님이 뚱하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못 할 만큼 힘이 없지는 않아. 내 손으로 열겠어."

그러고는 내가 막을 새도 없이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아주 비틀거리며 방을 가로질러 가더니, 창을 활짝 젖히고 몸을 내밀었는데, 칼날처럼 날카롭게 어깨를 에는 서릿바람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애원했고 마침내 억지로라도 물러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정신이 나간 사람의 힘이 내 힘보다 훨씬 세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마님이 정말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는 것은 그 뒤에 마님이 한 짓과 헛소리를 보고 확신하게 되었다). 달은 없었고 아래로는 모든 것이 안개 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멀든 가깝든 어느 집에서도 불빛 하나 반짝이지 않았다. 다들 진작에 불을 끈 뒤였고, 워더링 하이츠의 불빛은 원래 여기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님은 그 불빛이 보인다고 우겼다.

"봐!" 마님이 들떠서 외쳤다. "저게 촛불이 켜진 내 방이고, 그 앞에서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어. 다른 촛불은 조지프의 다락방에 켜져 있는 거야. 조지프는 밤늦게까지 안 자, 그렇지? 내가 집에 돌아오면 대문을 잠그려고 기다리는 거야. 흥, 아직 한동안은 기다려야 할걸. 거칠고 험한 길이고, 그 길을 가려면 마음이 슬퍼. 그리고 그 길을 가려면 기머턴 교회를 지나가야 해! 우리는 둘이서 그 교회의 유령들한테 몇 번이나 맞섰고, 무덤들 사이에 서서 유령들더러 나와 보라고 하는 내기를 하곤 했지. 그런데 히스클리프, 지금 내가 내기를 걸면 너는 해 볼 거야? 해 보겠다면 너를 놓아주지 않을 거야. 나는 거기에 혼자 눕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나를 12피트 깊이에 묻고 그 위에 교회를 무너뜨려 덮어도, 네가 내 곁에 올 때까지 나는 쉬지 않을 거야. 절대로!"

마님은 말을 멈추었다가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애가 생각하고 있어. 차라리 내가 자기한테 와 주면 좋겠대! 그럼 길을 찾아봐! 저 교회 묘지를 지나지 않는 길로. 넌 참 굼뜨구나! 그래도 됐어, 너는 늘 나를 따라왔으니까!"

미친 사람한테 이치를 따져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나는 마님을 붙든 손을 놓지 않은 채 마님에게 둘러 줄 무언가를 어떻게 손에 넣을까 궁리하고 있었다(활짝 열린 격자창 옆에 마님을 혼자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문손잡이가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제야 서재에서 나오는 길이던 린턴 씨가 방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나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주인은 현관 복도를 지나다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는 호기심에서인지 걱정이 되어서인지 그 늦은 시각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와 본 길이었다.

"아, 나리!" 나는 눈앞의 광경과 방 안의 싸늘한 공기를 보고 주인의 입술에 터져 나오려던 외침을 막으며 외쳤다. "가엾은 마님이 편찮으신데, 제 힘으로는 감당이 안 돼요. 도무지 어쩔 수가 없어요. 제발 이리 오셔서 주무시라고 마님을 좀 설득해 주세요. 노여움은 잊으세요. 마님은 마님 뜻이 아니면 아무리 해도 말을 안 들으시니까요."

"캐서린이 아프다고?" 주인이 우리 쪽으로 서둘러 오며 말했다. "창을 닫아요, 엘렌! 캐서린! 아니, 왜……"

주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린턴 부인의 초췌한 모습에 주인은 말문이 막혀서 겁에 질린 얼굴로 마님과 나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마님은 여기서 속을 태우고 계셨어요."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거의 아무것도 안 드시고, 한 번도 불평을 안 하셨는데, 오늘 저녁까지 우리 가운데 아무도 들이지 않으셔서 우리도 마님 형편을 몰랐으니 나리께 알려 드릴 수도 없었어요. 그래도 별일 아니에요."

변명을 하면서도 내 말이 어색하다는 것을 느꼈다. 주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별일 아니라고, 엘렌 딘?" 주인이 엄하게 말했다. "이 일을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을 좀 더 분명하게 해명해야 할 거요!" 그러고는 아내를 품에 안고 괴로운 얼굴로 아내를 들여다보았다.

처음에 마님은 남편을 알아보는 눈길을 조금도 보내지 않았다. 넋 나간 마님의 눈에는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이 아주 나가 버린 것은 아니어서, 바깥 어둠을 바라보던 눈을 거두어들이자 마님은 차츰 남편에게 눈길을 모았고, 자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아! 왔구나, 에드거 린턴?" 마님이 성난 기세로 말했다. "당신은 필요 없을 때는 꼭 눈에 띄고 필요할 때는 절대로 안 보이는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야! 이제 슬퍼하는 소리를 실컷 듣게 생겼군,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저기 저 바깥의 내 비좁은 집으로 가는 걸 막지는 못할 거야. 봄이 다 가기 전에 나는 그 쉴 곳으로 가게 되어 있어! 저기야. 잘 들어 둬, 예배당 지붕 밑 린턴 집안 사람들 틈이 아니라, 하늘이 트인 바깥에 묘비 하나 세워 놓고. 그러니 당신은 그 사람들한테 가든지 나한테 오든지 마음대로 해!"

"캐서린,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요?" 주인이 말을 꺼냈다. "이제 나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오? 당신은 그 몹쓸 놈 히스……"

"쉿!" 린턴 부인이 외쳤다. "당장 입 다물어! 그 이름을 입에 올리면 이 창에서 뛰어내려 당장 모든 걸 끝내 버리겠어! 지금 당신 손에 닿는 건 가져도 좋아. 하지만 당신이 다시 내게 손을 대기 전에 내 영혼은 저 언덕 꼭대기에 가 있을 거야. 나는 당신을 원하지 않아, 에드거. 당신을 원할 때는 지나갔어. 당신 책으로 돌아가. 당신한테 위안거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나한테서 당신이 가졌던 건 다 사라졌으니까."

"마님은 정신이 오락가락하세요, 나리." 내가 끼어들었다. "저녁 내내 헛소리를 하셨어요. 그래도 조용히 쉬시게 하고 제대로 돌봐 드리면 기운을 차리실 거예요. 앞으로는 마님 속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당신 충고는 더 듣고 싶지 않소." 린턴 씨가 대답했다. "당신은 마님의 성품을 알면서도 나더러 아내를 들볶게 부추겼소. 그리고 이 사흘 동안 아내가 어땠는지 귀띔 한마디 해 주지 않다니! 정말 매정하오! 몇 달을 앓아도 이렇게 변하지는 않았을 거요!"

남이 제멋대로 고약하게 군 것을 두고 내가 꾸중을 듣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린턴 마님이 고집 세고 휘어잡으려 드는 성품이라는 건 저도 알았어요." 나는 외쳤다. "하지만 나리께서 마님의 그 사나운 성미를 북돋아 주고 싶어 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마님 비위를 맞추려면 히스클리프 씨를 못 본 척해야 하는 줄도 몰랐고요. 저는 나리께 말씀드려서 충실한 하인의 도리를 다했는데, 충실한 하인의 품삯을 톡톡히 받는군요! 좋아요, 다음번에는 조심하라는 교훈으로 삼지요. 다음번에는 나리께서 손수 소식을 알아보세요!"

"다음번에 또 그런 이야기를 들고 오면 이 집을 나가야 할 거요, 엘렌 딘." 주인이 대답했다.

"그럼 아무것도 듣지 않으시는 편이 낫다는 말씀이세요, 린턴 나리?" 내가 말했다. "히스클리프 씨가 아가씨한테 구애를 하러 오는 것도, 나리가 안 계신 틈을 타서 일부러 마님한테 나리 흉을 보러 드나드는 것도 허락하신다는 말씀이세요?"

캐서린은 정신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제게 맞춰 알아듣는 데는 눈치가 빨랐다.

"아! 넬리가 배신자 노릇을 했구나." 마님이 격하게 외쳤다. "넬리는 숨어 있던 내 원수야. 이 마녀! 그러니까 정말로 우리를 해코지하려고 요정의 화살촉을 찾아다녔구나! 놔줘, 저 여자를 뉘우치게 해 줄 테니! 울부짖으면서 제 말을 거둬들이게 해 주겠어!"

미친 사람의 분노가 마님의 눈썹 밑에서 불타올랐고, 마님은 린턴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는데, 나는 일이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꾸물거릴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내 책임으로 의사를 부르러 가기로 마음먹고 방을 나왔다.

길로 나가려고 뜰을 지나는데, 벽에 말고삐 거는 쇠고리가 박혀 있는 자리에서 무언가 하얀 것이 들쭉날쭉 움직이는 것이 보였는데, 바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움직이는 게 분명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그것이 저세상에서 온 무엇이었다는 믿음이 평생 내 머릿속에 박혀 버리지 않도록 나는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가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눈으로 보았다기보다 손으로 더듬어서 그것이 이저벨라 아가씨의 스패니얼 강아지 패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몹시 놀라고 어리둥절했는데, 패니는 손수건에 목이 매달려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나는 얼른 강아지를 풀어 주고 뜰 안으로 들어 옮겼다. 아가씨가 잠자리에 들러 위층으로 올라갈 때 그 강아지가 뒤따라가는 것을 보았으므로, 나는 강아지가 어떻게 여기 나와 있는지, 어떤 못된 인간이 이런 짓을 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쇠고리에 묶인 매듭을 푸는 동안 멀리서 말발굽이 내달리는 소리가 몇 번이고 들리는 것 같았지만, 머릿속에 생각할 일이 하도 많아서 그 일을 거의 마음에 두지 않았다. 새벽 두 시에 그런 곳에서 나기에는 이상한 소리였는데도 말이다.

다행히 내가 거리를 올라갈 때 케네스 선생이 마을의 환자를 보러 막 집을 나서던 참이었고, 캐서린 린턴의 병세를 듣고는 곧바로 나와 함께 돌아가 주기로 했다. 선생은 꾸밈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어서, 마님이 전보다 자기 지시를 더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는 한 이번 두 번째 발작을 견뎌 내기 어려울 거라는 의심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넬리 딘." 선생이 말했다. "아무래도 무슨 다른 까닭이 있는 것 같아. 그레인지에 무슨 일이 있었어? 이 위쪽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캐서린처럼 튼튼하고 건강한 처자가 하찮은 일로 앓아눕지는 않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앓아눕지 말아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열병 같은 걸 앓으면 낫게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거든. 어떻게 시작된 거야?"

"나리께서 말씀해 주실 거예요."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언쇼 집안 사람들 성미가 얼마나 사나운지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그리고 린턴 마님은 그중에서도 으뜸이세요. 이 말씀은 드릴 수 있어요. 말다툼에서 시작됐어요. 마님이 노발대발하시다가 발작 같은 걸 일으키셨어요. 적어도 마님 말씀으로는 그래요. 한창 화가 났을 때 뛰쳐나가서 방에 틀어박히셨거든요. 그 뒤로는 음식을 마다하셨고, 지금은 헛소리를 하시다가 반쯤 꿈속에 계시다가 하시는데, 곁에 있는 사람은 알아보시지만 머릿속은 온갖 이상한 생각과 헛것으로 가득 차 있어요."

"린턴 씨가 상심하겠지?" 케네스가 묻듯이 말했다.

"상심하다니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슴이 찢어지실 거예요!" 내가 대답했다. "쓸데없이 나리를 더 놀라게 하지는 마세요."

"글쎄, 조심하라고 내가 일렀는데." 내 길동무가 말했다. "내 경고를 흘려들었으니 그 대가는 치러야지! 요새 히스클리프 씨하고 가까이 지내지 않았나?"

"히스클리프는 그레인지에 자주 드나들어요." 내가 대답했다. "나리께서 그 사람과 어울리시는 걸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마님이 어릴 때부터 그 사람을 알았던 덕분이지요. 지금은 그 사람이 찾아오는 수고는 덜게 되었어요. 린턴 아가씨한테 주제넘은 마음을 품은 걸 드러냈거든요. 다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린턴 아가씨는 그 사람을 쌀쌀맞게 대하나?" 의사가 다음으로 물었다.

"아가씨가 저한테 속을 털어놓지는 않으세요." 나는 그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대꾸했다.

"그렇지, 그 아가씨는 속을 알 수가 없어." 선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 속을 남한테 안 내보이지! 하지만 정말 어리석은 아가씨야. 믿을 만한 데서 들었는데, 어젯밤(아주 고약한 밤이었지!) 그 아가씨하고 히스클리프가 너희 집 뒤 숲에서 두 시간 넘게 거닐었는데, 그 사람은 아가씨더러 다시 집에 들어가지 말고 그냥 자기 말에 올라타 함께 떠나자고 졸랐다는군! 내게 알려 준 사람 말로는, 다음에 만날 때는 떠날 채비를 해 두겠다고 아가씨가 명예를 걸고 약속해서야 겨우 그 사람을 떼어 놓을 수 있었다는 거야. 그게 언제인지는 못 들었다지만, 아무튼 린턴 씨더러 눈을 똑바로 뜨고 지키라고 해!"

이 소식에 나는 새로운 걱정으로 가득 차서 케네스를 앞질러 거의 내내 뛰다시피 돌아왔다. 강아지는 아직도 뜰에서 깽깽거리고 있었다. 나는 잠깐 짬을 내어 강아지에게 대문을 열어 주었지만, 강아지는 집 문으로 가지 않고 풀 냄새를 킁킁 맡으며 이리저리 내달렸고, 내가 붙잡아 안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길로 달아났을 것이다. 이저벨라의 방으로 올라가 보니 내 의심이 들어맞았다. 방은 비어 있었다. 내가 몇 시간만 일찍 왔더라면 린턴 마님의 병 때문에 아가씨가 그 경솔한 걸음을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와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당장 뒤쫓으면 따라잡을 가망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뒤쫓을 수 없었고, 집안사람들을 깨워서 온 집을 발칵 뒤집을 엄두도 나지 않았으며, 지금 당한 불행에 정신이 팔려 두 번째 슬픔을 견딜 여력이 없는 주인에게 그 일을 털어놓을 엄두는 더욱 나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일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케네스가 도착하자 나는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얼굴로 선생이 왔다고 알리러 갔다. 캐서린은 뒤숭숭한 잠에 빠져 있었다. 남편이 지나친 발작을 가까스로 가라앉힌 것이다. 주인은 이제 아내의 베개 위로 몸을 숙인 채, 괴로울 만큼 표정이 풍부한 아내의 얼굴에 스치는 그림자 하나 변화 하나를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의사는 손수 병세를 살펴보더니, 마님 둘레를 늘 완전히 고요하게 지켜 주기만 하면 좋은 결말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주인에게 희망 섞인 말을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앞으로 닥칠 위험이 죽음보다도 영영 정신을 잃는 쪽이라고 넌지시 일러 주었다.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린턴 씨도 그랬다. 실은 우리는 아예 자리에 눕지도 않았고, 하인들도 모두 여느 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살금살금 집 안을 돌아다녔고, 일하다가 서로 마주치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이저벨라 아가씨 말고는 다들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가씨가 참 곤히도 잔다고 수군대기 시작했고, 아가씨의 오빠도 누이가 일어났느냐고 묻고는 누이를 기다리며 조바심을 내고 올케를 그토록 걱정하지 않는다며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주인이 나더러 아가씨를 불러오라고 할까 봐 벌벌 떨었지만, 다행히 아가씨가 달아났다는 것을 맨 먼저 알리는 그 괴로운 일만은 면했다. 아침 일찍 기머턴에 심부름을 갔던 하녀 하나가, 생각 없는 계집애였는데, 입을 딱 벌린 채 헐레벌떡 위층으로 올라오더니 방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아이고, 아이고! 이번엔 또 무슨 일이래요? 주인 나리, 주인 나리, 우리 아가씨가……"

"조용히 해!" 나는 그 시끄러운 꼴에 화가 나서 얼른 소리쳤다.

"목소리를 낮춰라, 메리. 무슨 일이냐?" 린턴 씨가 말했다. "아가씨가 어쨌다는 거냐?"

"가셨어요, 가 버리셨어요! 저 히스클리프가 아가씨를 데리고 달아났대요!" 하녀가 숨을 헐떡였다.

"그건 사실이 아니야!" 린턴이 불안해서 일어서며 외쳤다.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그런 생각이 네 머리에 들어갔냐? 엘렌 딘, 가서 아가씨를 찾아보시오. 믿을 수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주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하녀를 문간으로 데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까닭을 대라고 다시 다그쳤다.

"저, 오는 길에 여기 우유를 가지러 오는 젊은이를 만났는데요." 하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레인지에 무슨 걱정거리가 생긴 거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마님이 편찮으신 걸 말하는 줄 알고 그렇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젊은이가 '누가 그 사람들 뒤를 쫓아갔겠지요?' 하는 거예요. 저는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걸 알고는, 자정이 조금 지나서 신사 한 분하고 숙녀 한 분이 기머턴에서 2마일 떨어진 대장간에 말편자를 박으려고 들렀다는 얘기를 해 줬어요! 대장장이 딸이 그 사람들이 누군지 엿보려고 일어났는데 둘 다 곧바로 알아봤대요. 그리고 그 남자가, 히스클리프였다고 딸은 확신했대요, 어차피 그 사람을 잘못 볼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요, 삯으로 1파운드 금화를 아버지 손에 쥐여 주는 걸 봤대요. 숙녀는 망토를 얼굴에 두르고 있었는데, 물을 한 모금 달라고 해서 그걸 마시는 사이에 망토가 뒤로 젖혀져서 딸이 그 숙녀 얼굴을 아주 똑똑히 봤대요. 다시 말을 타고 떠날 때는 히스클리프가 고삐 두 개를 다 쥐었고, 둘은 마을을 등지고 그 험한 길이 허락하는 한 있는 힘껏 빨리 달려갔대요. 그 딸은 아버지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오늘 아침 기머턴에 온통 소문을 냈대요."

나는 형식으로라도 이저벨라의 방에 달려가 들여다보았고, 돌아와서 하녀의 말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린턴 씨는 다시 침대 곁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다시 들어가자 눈을 들어 내 멍한 얼굴에서 그 뜻을 읽고는, 아무 분부도 내리지 않고 한마디 말도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아가씨를 따라잡아서 데려올 무슨 방도라도 써 볼까요?"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제 발로 간 거요." 주인이 대답했다. "원한다면 갈 권리가 있었소. 그 애 일로 더는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이제부터 그 애는 이름만 내 누이요. 내가 그 애를 저버려서가 아니라 그 애가 나를 저버렸기 때문이오."

그 일에 대해 주인이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주인은 더 묻지도 않았고 어떻게든 아가씨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다만 아가씨가 새로 사는 곳이 어디든 내가 그곳을 알게 되면 집에 있는 아가씨의 물건을 그리로 보내라고 일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