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어느 화창한 6월 아침, 내가 처음으로 맡아 기른 귀여운 젖먹이이자 유서 깊은 언쇼 가문의 마지막 핏줄이 태어났다. 우리가 멀리 떨어진 밭에서 건초를 거두느라 바쁘던 참에, 늘 아침을 날라 오던 계집아이가 여느 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풀밭을 가로지르고 오솔길을 달려 올라오며 나를 불렀다.
"아이고, 아주 훌륭한 아기야!" 그 애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세상에 태어난 사내아이 가운데 제일 잘난 아기야! 그런데 의사 말이 마님은 곧 가실 거래. 벌써 몇 달째 폐병을 앓고 계셨대. 의사가 힌들리 나리한테 그러는 걸 들었어. 이제는 마님을 붙잡아 둘 게 아무것도 없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돌아가실 거래. 너 당장 집에 가야 해. 네가 아기를 맡아 기르는 거야, 넬리. 설탕하고 우유를 먹이고, 밤낮으로 돌보고.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 마님이 안 계시게 되면 아기는 다 네 차지일 테니까!"
"그런데 마님이 그렇게 위중하셔?" 나는 갈퀴를 내던지고 모자 끈을 매며 물었다.
"그런가 봐. 그래도 겉으로는 씩씩해 보이셔." 계집아이가 대답했다. "아기가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서 볼 생각을 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셔. 아기가 워낙 예뻐서 기뻐 어쩔 줄을 모르셔! 내가 마님이라면 절대 안 죽을 거야. 케네스가 뭐라든 아기 얼굴만 봐도 나을 거야. 난 그 사람한테 정말 화가 났어. 아처 아주머니가 그 꼬마 천사를 큰방에 계신 나리한테 안고 내려갔는데, 나리 얼굴이 막 환해지려는 참에 그 불길한 소리만 하는 영감이 나서더니 이러는 거야. '언쇼 씨, 부인이 살아서 이 아들을 남기고 가게 되었으니 축복이오. 부인이 처음 왔을 때 나는 오래 붙들어 두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소. 그리고 이제 말해 두어야겠는데, 아마 이번 겨울이 부인의 끝이 될 거요. 너무 마음 쓰고 애태우지 마시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게다가 처음부터 그렇게 갈대 같은 처녀를 고르지 말았어야지!'"
"그래서 나리는 뭐라고 하셨어?" 내가 물었다.
"욕을 하신 것 같아. 하지만 난 나리는 신경도 안 썼어. 아기를 보려고 목을 빼고 있었거든." 그러고는 다시 아기 이야기를 황홀하게 늘어놓기 시작했고, 나도 그 애 못지않게 마음이 달아올라 내 눈으로 아기를 보려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지만, 힌들리를 생각하면 몹시 슬펐다. 도련님의 마음에는 아내와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 둘을 모실 자리밖에 없었고, 도련님은 둘 다 끔찍이 아끼며 그 가운데 하나는 숭배했으니, 그 하나를 잃으면 어떻게 견딜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워더링 하이츠에 닿으니 도련님이 현관에 서 있었다. 나는 들어가면서 "아기는 어때요?" 하고 물었다.
"벌써 뛰어다닐 기세야, 넬!" 도련님이 밝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 마님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사 말로는 마님이……"
"의사 따위는 빌어먹으라지!" 도련님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끊었다. "프랜시스는 멀쩡해. 다음 주 이맘때면 씻은 듯이 나을 거야. 위층에 올라가는 거야? 그럼 말을 안 하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가겠다고 전해 줘. 도무지 입을 다물지 않길래 나와 버렸어. 그 사람은 말을 하면 안 돼. 케네스 선생이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했다고 전해."
내가 그 말을 언쇼 부인에게 전하자 부인은 들뜬 기분인 듯 즐겁게 대답했다. "말은 거의 안 했어요, 엘렌. 그런데 저 사람이 벌써 두 번이나 울면서 나가 버렸지 뭐예요. 좋아요, 말 안 하겠다고 약속한다고 전해 줘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 사람을 보고 웃지 말라는 약속까지 한 건 아니에요!"
가엾은 사람! 죽기 일주일 전까지 그 쾌활한 마음은 한 번도 꺾이지 않았고, 남편은 아내의 건강이 날마다 좋아지고 있다고 고집스럽게, 아니 미친 듯이 우겼다. 케네스가 병이 이 지경에 이르면 약은 소용이 없으니 더 이상 왕진하느라 돈을 들일 필요도 없다고 경고하자, 도련님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필요 없다는 건 나도 아오. 그 사람은 멀쩡하니까. 당신이 더 돌봐 줄 필요는 없소! 그 사람은 처음부터 폐병 같은 건 앓지도 않았소. 열병이었고, 그것도 이제 나았소. 지금은 맥박도 나만큼 느리고 뺨도 나만큼 서늘하오."
도련님은 아내에게도 같은 말을 했고 아내도 그 말을 믿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내일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던 참에 아주 가벼운 기침이 터졌고, 남편이 아내를 두 팔로 안아 일으키자 아내는 두 손으로 남편의 목을 감쌌는데, 그러고는 얼굴빛이 변하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계집아이가 짐작한 대로 아기 헤어턴은 온전히 내 손에 맡겨졌는데, 언쇼 씨는 아기가 건강해 보이고 우는 소리만 들리지 않으면 아기에 관해서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도련님 자신은 자포자기에 빠졌는데, 그의 슬픔은 울며 하소연하지 않는 종류의 슬픔이어서, 울지도 기도하지도 않고 저주하고 대들며 하느님과 사람을 욕하고는 앞뒤 가리지 않는 방탕에 몸을 내맡겼다. 하인들은 그의 포악하고 못된 짓을 오래 견디지 못했고, 끝까지 남은 것은 조지프와 나 둘뿐이었다. 나는 내가 맡은 아기를 두고 떠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나리, 저는 도련님과 한 젖을 먹고 자란 사이라서 남보다 도련님의 행실을 쉽게 눈감아 주었거든요. 조지프는 소작인과 일꾼들 위에서 호령하려고 남았고, 또 꾸짖을 못된 짓이 넘쳐나는 곳에 있는 것이 그의 천직이었기 때문에 남았다.
주인의 못된 행실과 못된 친구들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에게 참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는데, 주인이 히스클리프를 대하는 꼴은 성인이라도 악마로 만들기에 넉넉했고, 정말로 그 무렵 그 아이는 무언가 악마 같은 것에 씐 것처럼 보였다. 그 애는 힌들리가 구제할 길 없이 타락해 가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았고, 날이 갈수록 사나운 뚱함과 흉포함으로 이름이 났다. 우리 집이 얼마나 지옥 같았는지 나는 그 반도 말할 수 없다. 부목사도 발길을 끊었고, 마침내는 에드거 린턴이 캐서린 아가씨를 찾아오는 것을 예외로 친다면 점잖은 사람이라곤 아무도 우리 집 근처에 오지 않게 되었다. 열다섯 살에 캐서린은 견줄 사람 하나 없는 이 고장의 여왕이었고, 그러다 보니 정말로 오만하고 고집 센 아가씨가 되고 말았다! 털어놓자면, 젖먹이 때가 지난 뒤로 나는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았고 아가씨의 거만함을 꺾어 보려다 자주 아가씨를 약 올렸지만, 그래도 아가씨가 나를 싫어하게 된 적은 없었다. 아가씨는 옛정에 놀랍도록 한결같아서, 히스클리프조차 아가씨의 마음을 변함없이 붙잡고 있었고, 젊은 린턴은 그 모든 우월함을 갖추고도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그분이 돌아가신 제 주인 나리예요. 벽난로 위에 걸린 게 그분 초상화고요. 예전에는 한쪽에 그분 초상화가, 다른 쪽에 마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마님 것은 치워 버렸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마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조금은 보실 수 있었을 텐데요. 잘 보이세요?
딘 부인이 촛불을 들어 올리자 부드러운 이목구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는데, 하이츠의 젊은 부인과 아주 닮았지만 표정은 더 생각에 잠기고 다정했다.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밝은 빛깔의 긴 머리칼이 관자놀이에서 살짝 말려 있었고, 눈은 크고 진지했으며, 몸매는 우아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였다. 캐서린 언쇼가 이런 사람 때문에 첫 친구를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은 놀랍지 않았으나, 이 생김새에 걸맞은 마음을 지닌 이 사람이 내가 그려 보는 캐서린 언쇼 같은 여자를 좋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몹시 놀라웠다.
"아주 보기 좋은 초상화로군요." 내가 가정부에게 말했다. "닮았소?"
"네." 부인이 대답했다. "하지만 생기가 돌 때는 더 보기 좋으셨어요. 저건 평소 얼굴이에요. 대체로 패기가 모자란 분이셨지요."
캐서린은 다섯 주 동안 린턴네 집에 머문 뒤로 그 집 사람들과 계속 사귀어 왔다. 그 집 사람들 앞에서는 거친 면을 드러낼 마음이 생기지 않았고, 한결같이 공손한 대접을 받는 곳에서 무례하게 구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도 알았으므로, 아가씨는 재치 있게 상냥한 태도로 늙은 내외를 저도 모르게 감쪽같이 속이고, 이저벨라의 감탄을 사고, 그 오빠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았다. 야심이 가득한 아가씨였으니 처음부터 그런 성과가 우쭐했을 것이고, 그래서 누구를 속일 생각은 딱히 없으면서도 두 얼굴을 갖게 되었다. 히스클리프를 '천박한 꼬마 불한당',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곳에서는 그 애처럼 굴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집에서는 비웃음만 살 예의범절을 차리거나 아무 칭찬도 명예도 가져다주지 않을 때 제멋대로인 성미를 누를 마음이 별로 없었다.
에드거 도련님은 드러내 놓고 워더링 하이츠를 찾아올 용기를 좀처럼 내지 못했다. 도련님은 언쇼의 평판이 무서워서 그와 마주치기를 꺼렸지만, 그래도 도련님이 오면 우리는 언제나 할 수 있는 한 정중하게 맞았다. 주인도 도련님이 왜 오는지 알았으므로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고, 상냥하게 굴 수 없을 때는 아예 자리를 피했다. 내 생각에 캐서린은 도련님이 거기 나타나는 것을 오히려 달갑지 않아 했는데, 아가씨는 꾀를 부리는 성격이 아니었고 교태를 부린 적도 없었지만, 두 친구가 아예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분명했다. 히스클리프가 린턴 앞에서 그를 깔보는 말을 하면 아가씨는 린턴이 없을 때처럼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고, 린턴이 히스클리프를 역겨워하고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놀이 동무를 깎아내리는 것쯤은 자기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가씨가 쩔쩔매는 모습과 남몰래 끙끙 앓는 고민을 보며 나는 자주 웃었는데, 아가씨는 내가 놀리지 못하게 감추려 애썼지만 헛일이었다. 심술궂게 들리겠지요. 하지만 아가씨가 워낙 거만해서, 혼이 좀 나서 겸손해지기 전에는 아가씨의 괴로움을 딱하게 여기는 게 정말로 불가능했어요. 마침내 아가씨는 마음을 꺾고 내게 털어놓으며 의지하게 되었는데, 상담 상대로 삼을 만한 사람이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오후 힌들리 도련님이 집을 비우자, 히스클리프는 그것을 핑계로 제멋대로 쉬기로 했다. 그때 그 애는 열여섯 살쯤이었던 것 같은데, 이목구비가 못나지도 않았고 머리가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속으로나 겉으로나 사람을 밀어내는 인상을 풍기는 재주가 있었다. 지금의 모습에는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무엇보다 그 무렵 그 애는 어려서 받은 교육의 덕을 다 잃어버린 뒤였다. 일찍 시작해 늦게 끝나는 고된 일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한때 지녔던 배움에 대한 호기심도, 책과 학문에 대한 애정도 모두 꺼져 버렸다. 언쇼 어른이 귀애해 준 덕에 어린 시절 몸에 배었던 우월감도 어느새 시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애는 오랫동안 캐서린의 공부를 따라잡으려고 애쓰다가 말없이 쓰라리게 아쉬워하며 손을 들었는데, 손을 들 때는 아주 완전히 들어 버려서, 어차피 예전 수준보다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나자 한 걸음이라도 위로 올라가 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생김새도 마음이 망가지는 데 맞장구를 쳐서, 걸음걸이는 구부정해지고 얼굴은 천해 보였으며, 본디 말이 없던 성미는 거의 바보스러울 만큼 지나치게 남과 어울리지 않는 뚱함으로 부풀었다. 그리고 그 애는 몇 안 되는 아는 사람들에게서 존경보다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데 음울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캐서린과 그 애는 그 애가 일을 쉬는 짬이면 여전히 늘 붙어 다녔다. 그러나 그 애는 더 이상 말로 아가씨를 좋아한다는 뜻을 드러내지 않았고, 아가씨가 소녀답게 다정하게 굴면 자기에게 그런 애정의 표시를 아낌없이 베풀어 봐야 아무 즐거움도 없을 거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성난 의심을 품고 움찔 물러났다. 앞서 말한 그날, 내가 캐서린 아가씨의 옷매무새를 거들고 있을 때 그 애가 큰방으로 들어와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가씨는 그 애가 놀 생각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온 집을 혼자 차지한 줄로 여겨서, 어떻게 해서인지 에드거 도련님에게 오빠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려 놓고 맞을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캐서린, 오늘 오후에 바빠?" 히스클리프가 물었다. "어디 가?"
"아니, 비가 오잖아."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럼 왜 비단 드레스를 입고 있어?" 그 애가 말했다. "아무도 안 오겠지?"
"내가 알기로는 없어." 아가씨가 더듬거렸다. "그런데 히스클리프, 넌 지금 밭에 나가 있어야 하잖아. 점심때가 지난 지 한 시간이나 됐어. 나간 줄 알았는데."
"힌들리가 그 저주받을 얼굴을 우리 앞에서 치워 주는 일은 흔치 않잖아." 그 애가 말했다. "오늘은 더 일 안 할 거야. 너하고 같이 있을래."
"아, 하지만 조지프가 이를 거야." 아가씨가 넌지시 말했다. "가는 게 좋을걸!"
"조지프는 페니스톤 바위산 저편에서 석회를 싣고 있어. 날이 저물어야 끝날 테니 절대 모를 거야."
그렇게 말하며 그 애는 어슬렁어슬렁 불가로 가서 앉았다. 캐서린은 손님이 들이닥치기 전에 길을 닦아 둘 필요가 있다고 여겼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저벨라하고 에드거 린턴이 오늘 오후에 들르겠다고 했어." 아가씨가 1분쯤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비가 오니까 안 올 것 같기는 한데, 올지도 몰라. 그러면 너는 괜히 혼만 날지도 몰라."
"엘렌한테 너 바쁘다고 전하라고 해, 캐서린." 그 애는 고집을 부렸다. "그 한심하고 멍청한 친구들 때문에 나를 쫓아내지 마! 가끔은 그 애들이…… 하고 불평하고 싶을 때가 있다니까. 아니, 안 할래……"
"그 애들이 뭐?" 캐서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애를 바라보며 외쳤다. "아, 넬리!" 아가씨가 내 손에서 고개를 홱 빼며 짜증스럽게 덧붙였다. "머리를 빗어서 컬이 다 풀렸잖아! 됐어, 그만 내버려 둬. 무슨 불평을 하고 싶다는 거야, 히스클리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저 벽에 걸린 달력이나 봐." 그 애는 창 가까이 걸린 액자 속의 커다란 종이 한 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가위표는 네가 린턴네 애들하고 보낸 저녁이고, 점은 나하고 보낸 저녁이야. 보여? 하루도 빠짐없이 표시해 놨어."
"그래, 아주 바보 같은 짓이야. 내가 그런 걸 신경 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캐서린이 짜증 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용인데?"
"나는 신경 쓴다는 걸 보여 주려고." 히스클리프가 말했다.
"그럼 내가 늘 너하고만 앉아 있어야 해?" 아가씨가 점점 더 짜증을 내며 따졌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좋은 일이 있는데? 넌 무슨 얘기를 하는데?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네가 하는 말이나 하는 짓을 보면, 너는 벙어리나 갓난아기라도 다를 게 없어!"
"내가 말이 너무 없다거나 나랑 같이 있는 게 싫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했잖아, 캐서린!" 히스클리프가 몹시 흥분해서 외쳤다.
"아는 것도 없고 하는 말도 없으면 같이 있는 게 아니지." 아가씨가 웅얼거렸다.
동무는 벌떡 일어섰지만 제 감정을 더 드러낼 틈이 없었다. 바로 그때 판석 위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살며시 두드리고 젊은 린턴이 뜻밖의 부름을 받은 기쁨으로 얼굴을 환하게 빛내며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들어오고 다른 친구는 나가는 그 순간, 캐서린은 틀림없이 두 친구가 얼마나 다른지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그 차이는 황량한 산골 탄광 지대에서 아름답고 기름진 골짜기로 옮겨 갈 때 보는 차이 같았고, 목소리와 인사하는 품도 생김새만큼이나 정반대였다. 도련님은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말했고, 낱말 하나하나를 나리처럼 발음했어요. 여기서 우리가 하는 말보다 덜 투박하고 더 부드럽게요.
"너무 일찍 온 건 아니지요?" 도련님이 나를 흘끗 보며 말했다. 나는 찬장 저쪽 끝에서 접시를 닦고 서랍을 정리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아니에요." 캐서린이 대답했다. "넬리, 거기서 뭐 해?"
"제 일이요, 아가씨." 내가 대답했다. (힌들리 도련님이 린턴이 따로 찾아올 때면 언제든 내가 세 번째 사람으로 끼어 있으라고 일러 두었던 것이다.)
아가씨는 내 뒤로 다가와 화난 목소리로 속삭였다. "걸레 들고 썩 나가. 집에 손님이 와 있을 때는 하인이 손님 있는 방에서 문지르고 닦고 하는 게 아니야!"
"주인 나리가 안 계시니 마침 좋은 기회잖아요."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나리는 제가 당신 앞에서 이런 걸 만지작거리는 걸 싫어하시거든요. 에드거 도련님은 틀림없이 이해해 주실 거예요."
"나는 네가 내 앞에서 만지작거리는 게 싫어." 아가씨가 손님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거만하게 외쳤다. 히스클리프와 조금 다툰 뒤로 아직 평정을 되찾지 못한 것이다.
"죄송하게 됐네요, 캐서린 아가씨."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열심히 하던 일을 계속했다.
아가씨는 에드거가 못 볼 거라고 여기고 내 손에서 걸레를 낚아채더니, 내 팔을 오래 비틀며 아주 악랄하게 꼬집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았고 가끔 아가씨의 허영심을 꺾어 주는 걸 오히려 즐겼는데, 게다가 몹시 아팠으므로 나는 무릎을 펴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 아가씨, 그건 아주 못된 짓이에요! 아가씨가 저를 꼬집을 권리는 없어요. 저는 이런 건 참지 않을 거예요."
"나는 너를 건드리지도 않았어, 이 거짓말쟁이!" 아가씨가 다시 꼬집고 싶어 손가락을 근질거리며, 분노로 귀까지 빨개진 채 외쳤다. 아가씨는 북받친 감정을 감출 줄을 도무지 몰라서, 화가 나면 늘 이마에서 목덜미까지 온 얼굴이 활활 타올랐다.
"그럼 이건 뭐예요?" 나는 아가씨의 말을 반박할 뚜렷한 보랏빛 증거를 내보이며 맞받았다.
아가씨는 발을 구르며 잠깐 머뭇거리다가, 속에 든 못된 기운에 떠밀려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눈에 눈물이 고일 만큼 얼얼하게 내 뺨을 철썩 때렸다.
"캐서린, 이런! 캐서린!" 린턴이 끼어들었다. 자기의 우상이 거짓말과 폭력이라는 두 가지 잘못을 한꺼번에 저지른 데 몹시 놀란 것이다.
"나가, 엘렌!" 아가씨가 온몸을 떨며 되풀이했다.
어디든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헤어턴이 내 곁 바닥에 앉아 있다가, 내 눈물을 보고는 저도 울기 시작하더니 '못된 캐서린 고모'를 탓하며 흐느꼈고, 그 바람에 아가씨의 분노가 그 불운한 아이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아가씨는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가엾은 아이의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흔들어 댔고, 에드거는 아이를 구하려고 무심코 아가씨의 두 손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한 손이 비틀려 빠져나왔고, 깜짝 놀란 젊은이는 농담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손찌검이 제 귀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도련님은 질겁해서 물러섰고, 나는 헤어턴을 안아 들고 부엌으로 걸어가면서, 두 사람이 다툼을 어떻게 수습하는지 지켜보고 싶어서 사이 문을 열어 두었다. 모욕당한 손님은 창백한 얼굴에 입술을 떨며 모자를 놓아 둔 자리로 갔다.
"옳지!" 나는 속으로 말했다. "정신 차리고 어서 가시라고요! 아가씨의 진짜 성미를 슬쩍이라도 보게 된 게 다행이에요."
"어디 가요?" 캐서린이 문으로 다가서며 따졌다.
도련님은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 했다.
"가면 안 돼요!" 아가씨가 힘주어 외쳤다.
"가야 해요. 갈 거예요!" 도련님이 억누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돼." 아가씨가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고집을 부렸다. "아직은 안 돼, 에드거 린턴. 앉아. 나를 이런 기분으로 두고 갈 수는 없어. 그러면 나는 밤새 비참할 거고, 너 때문에 비참해지기는 싫어!"
"당신이 나를 때렸는데 내가 남아 있을 수 있겠어요?" 린턴이 물었다.
캐서린은 말이 없었다.
"당신 때문에 무섭고 부끄러워졌어요." 도련님이 말을 이었다.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어요!"
아가씨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게다가 일부러 거짓말까지 했잖아요!" 도련님이 말했다.
"안 했어!" 아가씨가 다시 말문이 트여 외쳤다. "일부러 한 건 하나도 없어. 그래, 가고 싶으면 가. 꺼져 버려! 이제 나는 울 거야. 앓아누울 때까지 울 거야!"
아가씨는 의자 옆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정말로 섧게 울기 시작했고, 에드거는 마당까지는 굳게 마음먹은 대로 나갔지만 거기서 머뭇거렸고, 나는 도련님을 부추겨 주기로 했다.
"아가씨는 지독하게 제멋대로예요, 도련님."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버릇없이 자란 어느 아이 못지않게 고약하시니까, 어서 말을 타고 댁으로 가시는 게 좋겠어요. 안 그러면 아가씨는 그저 우리 속을 태우려고 앓아누울 테니까요."
그 물러 터진 도련님은 창 너머로 곁눈질을 했는데, 고양이가 반쯤 죽인 쥐나 반쯤 먹은 새를 두고 떠날 수 있는 만큼밖에 도련님에게는 떠날 힘이 없었다. 아, 저 도련님은 구할 길이 없겠구나, 운명이 정해졌고 제 발로 그 운명을 향해 날아가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과연 그랬다. 도련님은 홱 돌아서서 서둘러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얼마 뒤 내가 언쇼가 미친 듯이 취해서 집을 통째로 무너뜨릴 기세로 돌아왔다고 알리러 들어갔을 때(그 꼴이 되면 늘 그런 기세였다), 나는 그 다툼이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툼이 젊은 수줍음의 바깥 성벽을 허물어서, 두 사람은 우정이라는 탈을 벗어 던지고 서로 연인임을 고백하게 되었던 것이다.
힌들리 도련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린턴은 서둘러 말에게로, 캐서린은 제 방으로 달아났다. 나는 어린 헤어턴을 숨기러 갔고, 미친 듯이 흥분하면 가지고 노는 버릇이 있어서 자기를 성나게 하거나 조금이라도 눈에 띄게 구는 사람은 누구든 목숨이 위태롭게 만드는 주인의 엽총에서 산탄을 빼냈다. 정말로 방아쇠를 당기는 데까지 가더라도 해를 덜 끼치게 산탄을 빼 두는 꾀를 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