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달아난 두 사람은 두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 두 달 사이에 린턴 부인은 뇌열이라고 불리는 병의 가장 모진 고비를 맞았다가 이겨 냈다. 에드거는 어떤 어머니도 외아들을 그토록 헌신적으로 돌보지는 못했을 만큼 아내를 극진히 간호해서, 밤이고 낮이고 곁을 지키며 곤두선 신경과 흔들린 정신이 안겨 줄 수 있는 온갖 성가신 일을 참을성 있게 견뎌 냈다. 그리고 주인이 무덤에서 건져 낸 사람은 앞으로 끊임없는 근심거리가 되는 것으로나 그 정성에 보답할 거라고, 사실은 사람의 허물어진 껍데기 하나를 지키려고 주인의 건강과 기운이 희생되고 있다고 케네스가 말했지만, 캐서린의 목숨이 위험을 넘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주인의 고마움과 기쁨에는 끝이 없었다. 주인은 몇 시간이고 아내 곁에 앉아서 몸이 차츰 회복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아내의 정신도 다시 제 균형을 찾아 머지않아 예전 모습을 온전히 되찾을 거라는 헛된 생각으로 지나치게 부푼 희망을 달래곤 했다.
마님이 처음으로 침실을 나선 것은 이듬해 3월 초였다. 그날 아침 린턴 씨는 마님의 베개 위에 금빛 크로커스를 한 줌 놓아두었는데, 오랫동안 기쁨의 빛이라고는 모르던 마님의 눈이 잠에서 깨자마자 그 꽃을 알아보고는, 꽃을 허겁지겁 끌어모으며 기쁨으로 반짝였다.
"하이츠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이에요." 마님이 외쳤다. "이 꽃을 보면 눈을 녹이는 부드러운 바람이며, 따뜻한 햇볕이며, 거의 다 녹은 눈이 생각나요. 에드거, 남풍이 불지 않아요? 눈은 거의 다 녹지 않았어요?"
"이 아래에서는 눈이 말끔히 녹았어요, 여보." 남편이 대답했다. "황야 언덕 전체에서도 하얀 데가 딱 두 군데밖에 안 보여요. 하늘은 파랗고 종다리가 노래하고 개울이며 시내가 다 넘칠 듯이 차 있어요. 캐서린, 지난봄 이맘때 나는 당신을 이 지붕 밑에 데려오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지금은 당신이 저 언덕 위로 1, 2마일쯤 올라가 있었으면 해요. 바람이 하도 상쾌하게 불어서 그 바람이 당신을 낫게 해 줄 것 같아요."
"나는 거기에 딱 한 번만 더 가게 될 거예요." 병자가 말했다. "그때 당신은 나를 두고 떠날 테고, 나는 영원히 거기 남겠지요. 내년 봄이면 당신은 또 나를 이 지붕 밑에 두고 싶어 하면서, 오늘을 돌아보며 그때는 행복했다고 생각할 거예요."
린턴은 마님을 더없이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가장 살가운 말로 기운을 북돋우려 애썼지만, 마님은 꽃을 멍하니 바라보며 속눈썹에 맺힌 눈물이 뺨으로 흘러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마님이 정말로 나아졌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렇게 낙심하는 것은 한곳에 오래 갇혀 지낸 탓이 크고 주위를 바꾸어 주면 얼마쯤은 덜어질 거라고 판단했다. 주인은 몇 주 동안 비워 두었던 거실에 불을 피우고 창가 햇볕 드는 자리에 안락의자를 놓으라고 나에게 일렀다. 그러고는 마님을 안아 내려왔고, 마님은 오랫동안 앉아서 따사로운 온기를 즐겼으며, 우리가 바란 대로 둘레의 물건들을 보고 기운을 차렸는데, 눈에 익은 물건들이었지만 마님이 싫어하던 병실에 얽힌 우울한 기억은 묻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자 마님은 몹시 지쳐 보였는데도 아무리 달래도 그 방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아서, 나는 다른 방을 마련할 때까지 거실 소파에 잠자리를 펴 드려야 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어 드리려고 우리는 지금 나리가 누워 계신 이 방을 꾸몄어요. 거실과 같은 층에 있는 방이지요. 그리고 마님은 곧 에드거의 팔에 기대어 이 방과 거실 사이를 오갈 수 있을 만큼 기운을 차렸다. 아, 이렇게 시중을 받으니 마님은 나을지도 몰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랄 까닭이 갑절로 있었다. 마님의 목숨에 또 하나의 목숨이 달려 있었기 때문인데, 우리는 머지않아 상속자가 태어나서 린턴 씨의 마음이 기뻐지고 그 땅이 남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말도 해 두어야겠다. 이저벨라는 집을 떠난 지 여섯 주쯤 지나 오빠에게 짧은 쪽지를 보내 히스클리프와 결혼했다고 알렸는데,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쪽지였지만 맨 밑에 연필로 흐릿한 사과의 말이 덧붙어 있었다. 자기가 한 일이 오빠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너그럽게 기억해 주고 화해해 주기를 바란다면서, 그때는 어쩔 수 없었고 이미 저지른 일이라 이제는 되돌릴 힘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린턴은 아마 거기에 답장을 하지 않았던 것 같고, 다시 두 주가 지나서 나는 긴 편지를 받았는데,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새색시의 펜에서 나온 편지치고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읽어 드릴게요. 아직도 간직하고 있거든요. 살아서 아끼던 사람이라면 죽은 뒤에 남긴 것은 무엇이든 소중하지요.
사랑하는 엘렌(편지는 이렇게 시작해요). 어젯밤 워더링 하이츠에 와서야 나는 캐서린이 몹시 앓았고 아직도 앓고 있다는 걸 처음 들었어. 캐서린한테는 편지를 쓰면 안 되겠지. 그리고 오빠는 너무 화가 났거나 너무 마음이 아파서 내가 보낸 쪽지에 답장도 안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편지를 써야겠고 나한테 남은 사람은 너밖에 없어.
에드거한테 전해 줘. 오빠 얼굴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이라도 내주겠다고. 내 마음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떠난 지 스물네 시간 만에 그리로 돌아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오빠와 캐서린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가득 품고 거기 있다고! 그래도 나는 그 마음을 따라갈 수가 없어(이 말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어요). 그러니 나를 기다리지 말라고, 그리고 마음대로 짐작들 하라고 해. 다만 그걸 내 의지가 약하거나 정이 모자란 탓으로 돌리지는 말아 달라고.
이 편지의 나머지는 너 혼자만 읽어. 너한테 두 가지를 묻고 싶어. 첫째는 이거야. 네가 여기 살 때 어떻게 사람다운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 내 둘레 사람들한테서는 나와 같은 감정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어.
둘째 물음이 나한테는 무척 중요해. 이거야. 히스클리프 씨는 사람이야? 사람이라면 미친 거야? 사람이 아니라면 악마야? 왜 이런 걸 묻는지는 말하지 않을래. 하지만 할 수 있으면 내가 어떤 것과 결혼했는지 제발 설명해 줘. 나를 보러 올 때 말이야. 엘렌, 너는 꼭 와야 해, 아주 빨리. 편지는 쓰지 말고 와 줘. 에드거한테서 무엇이든 가지고 와 줘.
이제 내가 새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들려줄게. 앞으로 하이츠가 내 집이 될 거라고들 하니까. 겉으로 보이는 편안함이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내 기분을 풀려는 거야. 그런 것들은 아쉬울 때가 아니면 한 번도 내 머릿속을 차지하지 않으니까. 그게 없는 게 내 불행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다 터무니없는 꿈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나는 기뻐서 웃고 춤이라도 덩실덩실 출 거야!
우리가 황야로 접어들 때 해가 그레인지 뒤로 지는 걸 보고 나는 여섯 시쯤 되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내 길동무는 영지며 뜰이며, 아마 집 자체까지 될 수 있는 대로 살펴보느라 30분이나 말을 세워 두었어. 그래서 우리가 농가의 돌 깔린 마당에서 말을 내렸을 때는 날이 어두웠고, 네 옛 동료 하인 조지프가 심지 양초 불빛을 들고 우리를 맞으러 나왔어. 그 사람이 우리를 맞는 예의는 그 사람의 명예를 드높일 만한 것이었지. 그 사람이 맨 처음 한 일은 횃불을 내 얼굴 높이까지 쳐들고, 독살스럽게 곁눈질을 하고, 아랫입술을 쑥 내민 다음 홱 돌아서 버리는 거였어. 그다음에는 말 두 마리를 끌고 마구간으로 들어갔다가, 우리가 무슨 옛 성에라도 사는 것처럼 바깥 대문을 잠그러 다시 나타났어.
히스클리프는 그 사람한테 할 말이 있다고 남았고,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어. 거무칙칙하고 어수선한 굴이었어. 네가 맡고 있을 때하고는 하도 달라져서 너는 아마 알아보지도 못할 거야. 난롯가에는 팔다리가 튼튼하고 옷차림이 더러운 불한당 같은 아이 하나가 서 있었는데, 눈매와 입가에 캐서린의 모습이 어려 있었어.
'이 애는 법으로 따지면 에드거의 조카고, 어떤 의미로는 내 조카이기도 해.' 나는 생각했어. '악수를 해야지. 그래, 입도 맞춰 줘야지. 처음부터 사이좋게 지내는 게 옳으니까.'
나는 다가가서 그 애의 통통한 주먹을 잡으려 하며 말했어. "잘 지냈니, 얘야?"
그 애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대답했어.
"우리 친구 할까, 헤어턴?" 이번에는 그렇게 말을 걸어 보았지.
내가 끈질기게 굴었더니 돌아온 건 욕설 한마디, 그리고 썩 '꺼지지' 않으면 스로틀러를 나한테 풀어놓겠다는 으름장이었어.
"이봐, 스로틀러!" 그 쬐그만 몹쓸 것이 구석의 잠자리에서 잡종 불독 한 마리를 깨우며 속삭였어. "자, 이제 썩 안 꺼질 거야?" 그 애가 으스대며 물었어.
목숨이 아까워서 나는 시키는 대로 했어. 문지방을 넘어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지. 히스클리프 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조지프를 따라 마구간으로 가서 같이 들어가 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빤히 쳐다보며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코를 찡그리며 대답했어. "새침, 새침, 새침! 기독교인이 이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겄어? 오물오물 깨작깨작! 뭐라는지 내가 어찌 알아듣겄어?"
"집 안으로 같이 들어가 달라고 했어!" 나는 그 사람이 귀가 먹은 줄 알고, 그래도 그 무례함에 몹시 정나미가 떨어져서 소리쳤어.
"난 싫구먼! 나는 딴 할 일이 있어." 그 사람은 대답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어. 그동안 홀쭉한 턱을 우물거리면서 내 옷차림과 얼굴을 더없이 업신여기는 눈으로 훑어보았지(옷은 너무 고왔고, 얼굴은 틀림없이 그 사람이 바랄 만큼 서글펐을 거야).
나는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쪽문을 지나 다른 문으로 갔어. 좀 더 예의 바른 하인이 나와 주기를 바라며 감히 문을 두드렸지. 잠깐 기다리니 키가 크고 바싹 마른 사내가 문을 열었는데, 목도리도 두르지 않았고 다른 데도 아주 지저분했고, 어깨까지 늘어진 텁수룩한 머리 뭉치에 얼굴이 파묻혀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 사람의 눈도 캐서린의 눈을 닮았는데, 아름다움이라고는 깡그리 사라져 버린 유령 같은 캐서린의 눈이었어.
"여기 무슨 볼일이오?" 그 사람이 험악하게 따져 물었어. "당신은 누구요?"
"제 이름은 이저벨라 린턴이었어요." 내가 대답했어. "전에 저를 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얼마 전에 히스클리프 씨와 결혼했는데, 그이가 저를 여기로 데려왔어요. 아마 나리께서 허락하셨겠지요."
"그럼 그놈이 돌아왔단 말이오?" 그 은둔자가 굶주린 늑대처럼 눈을 번득이며 물었어.
"네, 방금 왔어요." 내가 말했어. "그런데 그이는 나를 부엌문 앞에 두고 갔고, 내가 들어가려고 하니까 나리의 어린 아드님이 거기서 보초를 서다가 불독을 시켜서 나를 쫓아냈어요."
"그 지옥 같은 악당이 약속을 지켰다니 다행이군!" 장차 나를 묵게 할 집주인이 히스클리프가 있나 싶어 내 뒤의 어둠을 뒤지듯 둘러보며 으르렁거리더니, 혼잣말로 욕설을 퍼붓고, 그 '악마'가 자기를 속였더라면 어떻게 해 줬을지 으름장을 늘어놓았어.
나는 이 두 번째 문으로 들어오려 한 걸 후회했고, 그 사람이 욕을 다 퍼붓기 전에 살그머니 빠져나갈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지만, 내가 그러기도 전에 그 사람은 들어오라고 하고는 문을 닫고 다시 빗장을 질렀어. 커다란 불이 피워져 있었는데, 그 넓은 방의 불빛이라고는 그것뿐이었고, 바닥은 온통 같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내가 어릴 때 눈길을 끌던 그 반짝이던 백랍 접시들도 녹이 슬고 먼지가 앉아 똑같이 흐릿했어. 나는 하녀를 불러 침실로 데려다 달라고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어! 언쇼 씨는 대답도 해 주지 않았어. 그 사람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왔다 갔다 하며 내가 있다는 것도 아주 잊어버린 것 같았는데, 생각에 빠진 정도가 하도 깊어 보이고 온 모습이 하도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나는 다시 말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어.
엘렌, 너도 놀라지 않을 거야. 그 정 없는 난롯가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도 못한 신세로 앉아 있으려니, 그리고 4마일 떨어진 곳에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사람들이 사는 내 즐거운 집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내가 유난히 서글펐다고 해도 말이야. 그 4마일 대신 대서양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해도 다를 게 없었어. 나는 그 4마일을 건너갈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스스로 물었어. 어디서 위안을 찾아야 하지? 그리고, 에드거한테도 캐서린한테도 말하면 안 돼, 다른 모든 슬픔 위로 이 슬픔이 가장 높이 솟아올랐어, 히스클리프에게 맞서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거나 되어 주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 절망 말이야! 나는 거의 기쁜 마음으로 워더링 하이츠에 몸을 의탁하러 왔어. 그렇게 하면 그 사람하고 단둘이 살지 않아도 될 테니까.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가 함께 살게 될 사람들이 어떤지 알았고, 그 사람들이 끼어들 거라고는 걱정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앉아서 한참을 서글프게 생각에 잠겼어. 시계가 여덟 시를 치고 아홉 시를 쳤는데도 내 동석자는 고개를 가슴에 떨군 채 여전히 왔다 갔다 하며 아무 말이 없었고, 이따금 신음 소리나 쓰디쓴 외마디가 저절로 새어 나올 뿐이었어. 나는 집 안에 여자 목소리가 없나 귀를 기울였고, 그사이 미칠 듯한 후회와 음울한 예감에 사로잡혔는데, 그게 마침내 참을 수 없는 한숨과 울음이 되어 소리로 터져 나왔어. 내가 얼마나 드러내 놓고 슬퍼하는지 나도 몰랐는데, 꼬박꼬박 걷던 언쇼가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새삼 놀란 듯 나를 빤히 쳐다보고서야 알았어. 그 사람이 다시 정신을 차린 틈을 타서 나는 외쳤어. "여행하느라 지쳤어요. 이제 자고 싶어요! 하녀는 어디 있어요? 하녀가 나한테 오지 않으니까 내가 갈 수 있게 어디 있는지 알려 주세요!"
"하녀는 없소." 그 사람이 대답했어. "당신 시중은 당신이 들어야 하오!"
"그럼 나는 어디서 자야 해요?" 나는 흐느꼈어. 지치고 비참한 마음에 짓눌려 체면 같은 건 돌볼 겨를이 없었어.
"조지프가 히스클리프의 방을 알려 줄 거요." 그 사람이 말했어. "저 문을 열어 보시오. 조지프는 저 안에 있소."
내가 그 말대로 하려는데 그 사람이 별안간 나를 붙잡더니 아주 이상한 말투로 덧붙였어. "부디 자물쇠를 돌리고 빗장을 질러 두시오. 잊지 말고!"
"알겠어요!" 내가 말했어. "그런데 왜요, 언쇼 씨?" 일부러 히스클리프하고 함께 방에 틀어박힌다는 생각이 달갑지 않았거든.
"이걸 보시오!" 그 사람이 조끼 속에서 묘하게 생긴 권총 한 자루를 꺼내며 대답했어. 총신에 양날 용수철 칼이 달려 있었어. "절망한 사람한테는 아주 큰 유혹거리지, 안 그렇소? 나는 밤마다 이걸 들고 올라가서 그놈 방문을 열어 보지 않고는 못 배기오. 한 번이라도 문이 열려 있으면 그놈은 끝장인데, 1분 전까지 그러지 말아야 할 까닭을 백 가지나 떠올리고 있었다 해도 나는 언제나 그렇게 하고 말지. 그놈을 죽여서 내 계획을 내 손으로 망치게 만드는 건 무슨 악마가 나를 부추기는 거요. 당신은 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 그 악마와 싸워 보시오. 때가 오면 하늘의 천사들이 다 나서도 그놈을 구하지 못할 테니까!"
나는 호기심에 차서 그 무기를 살펴보았어. 끔찍한 생각이 번뜩 떠올랐어. 저런 연장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강해질까! 나는 그 사람 손에서 그것을 받아 들고 칼날을 만져 보았어. 그 사람은 잠깐 사이에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란 것 같았어. 그건 공포가 아니라 탐욕이었으니까. 그 사람은 샘이라도 난 듯 권총을 홱 낚아채더니 칼을 접어 도로 감춰 둔 곳에 넣었어.
"그놈한테 말해도 상관없소." 그 사람이 말했어. "조심하라고 일러 주고 그놈을 지켜 주시오. 보아하니 우리 사이가 어떤지 아는 모양이군. 그놈이 위험하다는데도 놀라지 않는 걸 보니."
"히스클리프가 당신한테 무슨 짓을 했어요?" 내가 물었어. "무슨 해를 끼쳤기에 이렇게 끔찍하게 미워하는 거예요? 그 사람더러 이 집을 나가라고 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요?"
"안 되오!" 언쇼가 벼락같이 소리쳤어. "그놈이 나를 두고 떠나겠다고 나서는 날이면 그놈은 죽은 목숨이오. 그놈더러 떠나 보라고 부추기면 당신은 살인자가 되는 거요! 내가 되찾을 기회 하나 없이 모든 걸 잃어야 한단 말이오? 헤어턴이 거지가 되어야 한단 말이오? 아, 빌어먹을! 나는 반드시 되찾고 말겠소. 그리고 그놈의 금화도 차지하고, 그다음엔 그놈의 피를 보고, 그놈의 영혼은 지옥에 보내 버릴 거요! 그 손님이 들어가면 지옥은 전보다 열 배는 더 시커메질 거요!"
엘렌, 네가 옛 주인의 버릇을 나한테 이야기해 준 적이 있지. 그 사람은 분명히 미치기 직전이야. 적어도 어젯밤에는 그랬어. 나는 그 사람 곁에 있는 게 소름이 끼쳐서, 그 하인의 버릇없는 퉁명스러움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이 다시 침울하게 서성거리기 시작하자 나는 걸쇠를 들어 올리고 부엌으로 도망쳤어. 조지프는 불 위로 몸을 굽히고 그 위에 매달린 큰 냄비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가까운 긴 의자 위에는 귀리 가루가 담긴 나무 사발이 놓여 있었어. 냄비 속 물이 끓기 시작하자 조지프는 돌아서서 사발에 손을 쑥 집어넣었어. 나는 이게 아마 우리 저녁거리일 거라고 짐작했고, 배가 고팠으니 먹을 만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그래서 "죽은 내가 쑬게!" 하고 날카롭게 외치고는 그릇을 그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데로 치운 다음 모자와 승마복을 벗기 시작했어. "언쇼 씨가 내 시중은 내가 들라고 하더라." 나는 말을 이었어. "그렇게 할게. 너희들 사이에서 숙녀 노릇을 하다가는 굶어 죽을 테니까."
"주여!" 그 사람이 주저앉아 골 진 양말을 무릎에서 발목까지 쓸어내리며 중얼거렸어. "새 분부가 내려온다니, 쥔 양반 둘한테 겨우 익숙해졌더니만 이젠 내 머리 위에 마님까지 모셔야 한다니, 짐 싸서 떠날 때가 된 것 같구먼. 이 옛집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그날이 머잖았어!"
나는 그 넋두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시작했어. 이런 일이 모두 즐거운 장난이던 때가 있었던 걸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지만, 그 생각은 얼른 떨쳐 버려야 했어. 지난날의 행복을 떠올리는 게 괴로웠고, 그 환영이 불려 나올 위험이 커질수록 죽 젓는 막대는 더 빨리 돌았고 귀리 가루 한 움큼 한 움큼은 더 빨리 물속으로 떨어졌어. 조지프는 내가 음식 만드는 꼴을 보며 점점 더 분개했어.
"저것 봐라!" 그 사람이 소리쳤어. "헤어턴, 오늘 밤엔 네 죽 못 먹겄다. 내 주먹만 한 덩어리밖에 없겄구먼. 저것 봐, 또! 내가 너라면 사발이고 뭣이고 죄다 쏟아붓겄다! 거기, 거품이나 걷어 내고 치워 버려. 쿵, 쿵. 냄비 밑이 안 빠진 게 다행이구먼!"
부어 놓고 보니 정말로 꽤 엉망인 죽이었다는 건 나도 인정해. 사발 넷이 준비되어 있었고, 낙농장에서 갓 짠 우유를 1갤런들이 주전자에 가져왔는데, 헤어턴이 그걸 움켜쥐고 넓은 주둥이로 흘려 가며 마시기 시작했어. 나는 나무라면서 그 애 몫은 잔에 따라 주라고 했어. 그렇게 더럽게 다룬 걸 나는 맛볼 수 없다고 했지. 그 늙은 비꼬기쟁이는 내가 까다롭게 군다고 일부러 몹시 기분 나쁜 척하더니, '그 애도 너하고 하나도 다를 게 없고 하나도 덜 깨끗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장담했고, 내가 어찌 그리 잘난 척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어. 그러는 동안 그 꼬마 불한당은 계속 쪽쪽 빨아 마시며 주전자에 침을 흘리면서 나를 대들 듯이 노려보았어.
"나는 다른 방에서 저녁을 먹겠어." 내가 말했어. "거실이라고 부르는 데는 없어?"
"거실이라!" 그 사람이 비웃듯 따라 했어. "거실! 아니, 우리 집엔 거실 같은 건 없어. 우리하고 같이 있는 게 싫으면 쥔 양반 방이 있고, 쥔 양반이 싫으면 우리가 있을 뿐이구먼."
"그럼 위층으로 가겠어." 내가 대답했어. "방을 하나 보여 줘."
나는 내 사발을 쟁반에 올려놓고 우유를 좀 더 가지러 직접 갔어. 그 사람은 투덜투덜하며 일어나서 앞장서 계단을 올라갔어. 우리는 다락방까지 올라갔고, 그 사람은 지나가는 방들을 들여다보느라 이따금 문을 열었어.
"여기 방이 있구먼." 마침내 그 사람이 경첩 달린 삐걱거리는 널빤지 문을 홱 젖히며 말했어. "죽 몇 술 먹기엔 이만하면 넉넉하겄지. 저 구석에 곡식 자루가 하나 있는데 제법 깨끗하구먼. 그 잘난 비단옷 더럽힐까 겁나면 그 위에 손수건이나 펴 놓든지."
그 '방'이라는 건 엿기름과 곡식 냄새가 진동하는 잡동사니 헛간 같은 데였어. 그런 것들이 든 자루가 사방에 쌓여 있고 가운데만 넓게 비어 있었어.
"아니, 이봐." 나는 화가 나서 그 사람을 마주 보며 외쳤어. "여긴 잘 데가 아니잖아. 내 침실을 보고 싶다고."
"침실이라!" 그 사람이 놀리는 말투로 되풀이했어. "여기 있는 침실은 죄다 보여 주지. 저게 내 방이여."
그 사람은 두 번째 다락방을 가리켰는데, 첫 번째 방과 다른 점이라고는 벽이 더 휑하고 한쪽 끝에 남빛 누비이불을 덮은 휘장 없는 크고 낮은 침대가 하나 있다는 것뿐이었어.
"네 방이 나한테 무슨 소용이야?" 내가 쏘아붙였어. "설마 히스클리프 씨가 지붕 꼭대기 방에서 묵지는 않겠지, 그렇지?"
"아! 네가 찾는 게 히스클리프 쥔 양반 방이구먼?" 그 사람이 무슨 새로운 걸 알아내기라도 한 듯 외쳤어. "진작 그렇다고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이 수고 없이 일러 줬을 텐데. 그 방만은 네가 볼 수가 없어. 쥔 양반이 늘 잠가 두고, 쥔 양반 말고는 아무도 손을 못 대니까."
"집 한번 좋구나, 조지프."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어. "식구들도 참 유쾌하고. 내 운명을 이 사람들과 묶은 그날, 이 세상 온갖 광기를 졸여 낸 진액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 같아! 하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지. 다른 방들도 있잖아. 제발 서둘러서 어디든 자리를 잡게 해 줘!"
그 사람은 이 간청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나무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더니 어떤 방 앞에서 멈춰 섰는데, 거기서 멈춘 걸 보나 가구가 더 좋은 걸 보나 제일 좋은 방인 것 같았어. 양탄자가 깔려 있었는데, 좋은 양탄자였지만 무늬는 먼지에 묻혀 보이지 않았어. 벽난로에는 오려 낸 종이 장식이 걸려 있었는데 갈가리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멋진 참나무 침대에는 꽤 값비싼 천으로 요즘 유행하게 지은 넉넉한 진홍빛 휘장이 달려 있었지만, 거칠게 다룬 게 틀림없었어. 휘장 위쪽 장식 천은 고리에서 뜯겨 나가 꽃줄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그걸 받치는 쇠막대는 한쪽이 활처럼 휘어서 휘장이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어. 의자들도 망가져 있었는데 그중 여럿은 아주 심하게 부서져 있었고, 벽 판자에도 깊이 움푹 팬 자국들이 나서 흉했어. 내가 들어가서 이 방을 차지하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그 바보 같은 길잡이가 알려 주었어. "여긴 쥔 양반 방이구먼." 그때쯤에는 내 저녁밥은 식어 버렸고 입맛은 달아났고 참을성은 바닥이 났어. 나는 당장 몸을 피해 쉴 곳을 마련해 달라고 우겼어.
"대체 어디 말이여?" 그 독실한 늙은이가 말을 꺼냈어. "주여, 우리를 축복하소서! 주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대체 지옥 어디로 가겄다는 거여? 이 버릇 나쁘고 진저리 나는 쓸모없는 것아! 헤어턴의 쪼끄만 방 말고는 다 봤구먼. 이 집에 몸 누일 구멍이라곤 더는 없구먼!"
나는 하도 화가 나서 쟁반을 음식째 바닥에 내던져 버렸어. 그러고는 계단 꼭대기에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어.
"에헤! 에헤!" 조지프가 소리쳤어. "잘한다, 캐서린 아가씨! 잘한다, 캐서린 아가씨! 허나 쥔 양반이 저 깨진 그릇에 걸려 나자빠지기만 하면 그때 뭔 소리가 나겄지. 어떻게 되는지 볼 만하겄구먼. 이 쓸모없는 미친 것아! 그 고약한 성질에 하느님이 주신 귀한 음식을 발밑에 내던지다니, 이제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쫄쫄 굶어도 싸지! 허나 네가 그 성깔을 오래 부리지는 못할 거여, 내 말이 틀리면 내 손에 장을 지지지. 히스클리프가 그런 고운 짓을 참아 줄 것 같으냐? 네가 그 꼴을 하고 있을 때 그 양반한테 딱 걸렸으면 좋겄구먼. 딱 걸렸으면 좋겄어."
그 사람은 그렇게 계속 꾸짖으며 촛불을 들고 아래층 제 굴로 내려갔고, 나는 어둠 속에 남았어. 그 어리석은 짓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존심을 누르고 분노를 삼키고 내가 저지른 일을 치우려고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어. 그때 뜻밖의 도우미가 스로틀러의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이제 보니 그 개는 우리 옛 스컬커의 새끼로, 그레인지에서 강아지 시절을 보내다가 아버지가 힌들리 씨한테 준 개였어. 그 개는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어. 인사라도 하듯 내 코에 제 코를 비비더니 서둘러 죽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고, 그동안 나는 한 계단 한 계단 더듬으며 깨진 그릇 조각을 주워 모으고 손수건으로 난간에 튄 우유를 닦아 냈어. 우리가 일을 겨우 끝냈을 때 복도에서 언쇼의 발소리가 들려서, 내 조수는 꼬리를 말고 벽에 몸을 바싹 붙였고 나는 가장 가까운 문간으로 살그머니 숨어들었어. 그 개는 그 사람을 피하려다 실패한 모양이었어. 아래층으로 허둥지둥 달아나는 소리와 길고 애처로운 깨갱 소리가 들렸으니까. 나는 운이 좋았어. 그 사람은 그냥 지나쳐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거든. 곧이어 조지프가 헤어턴을 재우려고 데리고 올라왔어. 나는 헤어턴의 방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늙은이는 나를 보더니 말했어. "이젠 이 집에 너하고 네 그 잘난 자존심이 같이 들어갈 방이 있겄구먼. 큰방이 비었으니 너 혼자 다 차지해라. 이렇게 고약한 패거리 속엔 늘 셋째로 끼어드는 마귀하고 같이 말이여!"
나는 그 말을 반갑게 따랐어. 그리고 난롯가 의자에 털썩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다가 잠이 들었어. 잠은 깊고 달콤했지만 너무 빨리 끝나 버렸어. 히스클리프 씨가 나를 깨웠어. 그 사람은 막 들어와서, 그 다정한 말투로 내가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어. 나는 이렇게 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은 까닭을 말했어. 그 사람이 우리 방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라는 낱말이 그 사람을 몹시 노엽게 했어. 그 사람은 그 방이 내 방이 아니고 앞으로도 절대 내 방이 되지 않을 거라고 욕을 퍼부었고, 그리고 그 사람은…… 아니, 그 사람이 한 말을 되풀이하지도, 그 사람이 늘 하는 짓을 늘어놓지도 않을래.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혐오하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고 지칠 줄을 몰라! 나는 이따금 그 사람을 보며 너무나 놀라서 두려움마저 무뎌질 때가 있어. 하지만 정말이야, 호랑이나 독사도 그 사람만큼 나를 겁에 질리게 하지는 못할 거야. 그 사람은 캐서린이 앓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오빠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몰아세웠어. 그리고 에드거를 손에 넣을 때까지는 내가 대신 고통을 받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어.
나는 정말로 그 사람이 미워. 나는 비참해. 나는 바보였어! 그레인지에서는 아무한테도 이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마. 날마다 너를 기다릴게. 나를 실망시키지 마! 이저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