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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제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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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그날 저녁 뒤로 며칠 동안 히스클리프 씨는 식사 때 우리와 마주치기를 피했지만, 그렇다고 헤어턴과 캐시를 식탁에서 내쫓겠다고 대놓고 정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는 제 감정에 그렇게 고스란히 굴복하는 것이 싫어서 차라리 자기가 자리를 비우는 쪽을 택했고, 스물네 시간에 한 번 먹는 것으로 그에게는 충분한 끼니가 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밤, 식구들이 다 잠자리에 든 뒤에 나는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앞문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다시 들어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아침이 되어 보니 그는 아직도 나가고 없었다. 그때는 사월이었는데, 날씨는 달콤하고 따뜻했고, 풀은 소나기와 햇볕이 만들 수 있는 만큼 푸르렀으며, 남쪽 담장 가까이에 선 키 작은 사과나무 두 그루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캐시는 나더러 의자를 가지고 나가서 집 끝 전나무 밑에 앉아 바느질을 하라고 졸랐고, 사고에서 말끔히 나은 헤어턴을 구슬려서 제 작은 꽃밭을 파고 가꾸게 했는데, 그 꽃밭은 조지프가 투덜거리는 바람에 그 구석으로 옮겨져 있었다. 나는 둘레의 봄 향기와 머리 위의 곱고 부드러운 푸른 하늘을 편안히 누리고 있었는데, 그때 꽃밭 가장자리에 심을 앵초 뿌리를 캐러 대문 가까이까지 뛰어 내려갔던 아가씨가 손에 반쯤만 든 채 돌아와서 히스클리프 씨가 들어오고 있다고 알렸다. "그리고 나한테 말을 걸었어." 아가씨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덧붙였다.

"뭐라고 했는데?" 헤어턴이 물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꺼지라고 했어."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런데 여느 때하고 너무 다른 얼굴이어서 잠깐 멈춰 서서 쳐다봤어."

"어떻게?" 헤어턴이 물었다.

"글쎄, 거의 밝고 즐거워 보였어. 아니, 거의가 아니라…… 아주 많이 들떠 있고, 사납고, 기뻐 보였어!"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럼 밤에 쏘다니는 게 재미있나 보네요." 나는 무심한 척하며 말했지만, 실은 아가씨만큼이나 놀랐고 아가씨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고 싶어 조바심이 났는데, 주인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 것은 날마다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아닐 테니까. 나는 핑계를 지어내서 안으로 들어갔다. 히스클리프는 열린 문간에 서 있었는데, 얼굴은 창백했고 몸을 떨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는 분명히 이상하게 기쁜 빛이 번득여서 얼굴 생김새가 온통 달라 보였다.

"아침 좀 드시겠어요?" 내가 말했다. "밤새 돌아다니셨으니 시장하시겠어요!" 나는 그가 어디 있었는지 알아내고 싶었지만 대놓고 묻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배 안 고파." 그는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는데, 그가 기분이 좋은 까닭을 내가 알아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듯 꽤 경멸하는 투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참에 한마디 충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잠자리에 들지 않고 바깥을 돌아다니시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아무튼 이렇게 축축한 철에는 현명한 일이 아니에요. 틀림없이 지독한 감기나 열병에 걸리실 거예요. 지금도 어딘가 탈이 나셨잖아요!"

"견딜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네가 나를 가만 내버려 두기만 하면 더없이 기꺼이 견딜 거야. 들어가, 성가시게 굴지 말고."

나는 그 말을 따랐는데, 지나가면서 보니 그는 고양이처럼 빠르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앓아눕게 생겼구나.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짐작도 안 가.'

그날 한낮에 그는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서, 그동안 굶은 것을 벌충하려는 듯 수북이 담은 접시를 내 손에서 받아 들었다.

"감기도 열병도 안 걸렸어, 넬리." 그는 아침에 내가 한 말을 빗대어 말했다. "그리고 네가 주는 음식을 제대로 먹어 줄 참이야."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고 막 먹기 시작하려다가, 갑자기 먹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 것 같았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식탁에 내려놓고 애타는 눈길로 창 쪽을 바라보더니, 일어나서 나가 버렸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는 동안 그가 정원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는데, 언쇼는 우리가 무슨 일로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며 왜 점심을 안 드는지 가서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래, 오신대?" 사촌이 돌아오자 캐시가 소리쳤다.

"아니." 헤어턴이 대답했다. "하지만 화가 난 건 아니야. 정말 보기 드물게 기분이 좋아 보였어. 다만 내가 두 번이나 말을 거니까 조바심을 내더니 너한테 가 있으라고 했어.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나는 그의 접시를 식지 않게 난로 울 위에 올려놓았다. 한두 시간 뒤에 방이 비었을 때 그가 다시 들어왔는데, 조금도 가라앉아 있지 않았다. 그 검은 눈썹 밑에는 여전히 그 부자연스러운,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기쁨의 빛이 서려 있었고, 핏기 없는 얼굴빛도 그대로였으며, 이따금 웃음 같은 것을 지을 때면 이가 드러났고, 몸은 떨고 있었는데, 추위나 기운이 없어서 떠는 것이 아니라 팽팽히 당겨진 줄이 울리듯 떠는 것이어서, 떨림이라기보다 세찬 진동이었다.

물어봐야겠어,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묻겠어? 그래서 나는 외쳤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들으셨어요, 히스클리프 씨? 유난히 생기가 넘쳐 보이세요."

"나한테 좋은 소식이 어디서 오겠어?" 그가 말했다. "배가 고파서 생기가 넘치는 거야. 그런데 보아하니 나는 먹으면 안 되는 모양이야."

"점심은 여기 있어요." 내가 말했다. "왜 안 드세요?"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아." 그가 서둘러 중얼거렸다. "저녁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리고 넬리, 이번 한 번만 부탁하는데, 헤어턴하고 그 다른 애가 나한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줘. 아무한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이곳을 나 혼자 쓰고 싶어."

"이렇게 쫓아내시는 데 무슨 새로운 까닭이라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왜 그렇게 이상하신지 말씀해 주세요, 히스클리프 씨. 어젯밤에 어디 계셨어요? 쓸데없는 호기심에서 묻는 게 아니라……"

"아주 쓸데없는 호기심에서 묻는 거지." 그는 웃으며 내 말을 끊었다. "그래도 대답은 해 주마. 어젯밤에 나는 지옥의 문턱에 있었어. 오늘은 내 천국이 눈에 보이는 데 있어. 내 눈은 거기 박혀 있는데, 나를 거기서 떼어 놓는 건 3피트도 안 돼! 그러니 이제 가는 게 좋을 거야! 엿보지만 않으면 너를 놀라게 할 건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할 테니."

나는 난롯가를 쓸고 식탁을 닦고 나서 어느 때보다 더 어리둥절한 채 물러 나왔다.

그는 그날 오후에 다시는 집을 나가지 않았고, 아무도 그의 고독을 방해하지 않았는데, 여덟 시가 되자 나는 부르지는 않았지만 촛불과 저녁을 가져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열린 격자창 턱에 기대어 있었지만 바깥을 내다보고 있지는 않았고, 얼굴은 방 안의 어둠 쪽을 향하고 있었다. 불은 사그라져 재가 되어 있었고, 방 안은 흐린 저녁의 축축하고 포근한 공기로 가득했으며, 어찌나 고요한지 기머턴 아래쪽 개울의 졸졸거리는 소리뿐 아니라, 조약돌 위로 물결이 이는 소리며 물이 미처 덮지 못한 큰 돌 사이로 꾸르륵거리며 흐르는 소리까지 가려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쓸쓸한 난로를 보고 못마땅한 소리를 내뱉고는 여닫이창을 하나씩 닫기 시작해서 마침내 그가 있는 창에 이르렀다.

"이것도 닫을까요?" 그가 꼼짝도 하지 않았으므로 정신이 들게 하려고 내가 물었다.

내가 말하는 순간 불빛이 그의 얼굴에 확 비쳤다. 아, 록우드 나리, 그 얼굴을 언뜻 본 순간 내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놀랐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그 깊고 검은 눈! 그 웃음과 송장 같은 창백함! 내 눈에는 그게 히스클리프 씨가 아니라 도깨비로 보였고, 나는 겁에 질려 촛불을 벽 쪽으로 기울이는 바람에 어둠 속에 남고 말았다.

"그래, 닫아." 그가 귀에 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런, 순전히 서투른 탓이로군! 왜 초를 옆으로 눕혀 들었어? 얼른 가서 다른 초를 가져와."

나는 어리석게도 겁에 질려 서둘러 나가서 조지프에게 말했다. "주인 나리가 불을 가져다 드리고 난롯불을 다시 피워 달래요." 그때는 내가 다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지프는 부삽에 불덩이를 덜그럭덜그럭 담아 가지고 갔지만, 곧 그것을 도로 가지고 왔는데, 다른 손에는 저녁 쟁반을 들고 있었고, 히스클리프 씨가 잠자리에 들 거라서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곧 그가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늘 쓰던 방으로 가지 않고 참나무 상자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방 창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누구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넓어서, 나는 그가 우리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는 한밤의 나들이를 또 꾸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송장 귀신일까, 흡혈귀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런 끔찍한 악마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내가 그를 갓난아기 때부터 돌보았고, 그가 젊은이로 자라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의 한평생을 거의 끝까지 따라왔다는 것을 떠올리며, 그런 무서운 느낌에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헛소리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 조그맣고 시커먼 것은 어디서 왔을까, 착한 사람이 품어 주었다가 화를 입은 그것은?" 내가 까무룩 잠이 들 때 미신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반쯤 꿈을 꾸면서 그에게 걸맞은 부모가 누구였을까 상상하느라 기진했고, 깨어 있을 때 하던 생각을 되풀이하며 그의 한살이를 처음부터 다시 더듬어 갔는데, 거기에 음산한 변주가 덧붙었고, 마침내 그의 죽음과 장례를 그려 보았다. 그 가운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묘비에 새길 글을 불러 주는 일을 맡아 몹시 속을 끓이며 교회지기와 그 일을 의논했다는 것뿐인데, 그는 성이 없고 우리는 그의 나이도 알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히스클리프'라는 한 마디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우리는 정말 그렇게 했어요. 교회 묘지에 들어가 보시면 그의 묘비에는 그 이름과 그가 죽은 날짜만 적혀 있을 거예요.

새벽이 오자 나는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일어나서, 사물이 보이자마자 정원으로 나가 그의 창 밑에 발자국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발자국은 없었다. '집에 있었구나.'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괜찮겠지.' 나는 늘 하던 대로 식구들 아침을 준비했지만, 주인이 늦게까지 누워 있었으므로 헤어턴과 캐시에게는 주인이 내려오기 전에 먼저 먹으라고 했다. 두 사람은 바깥 나무 밑에서 먹고 싶어 해서 나는 두 사람이 쓸 작은 탁자를 차려 주었다.

다시 들어가 보니 히스클리프 씨가 아래층에 있었다. 그는 조지프와 농사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의논하는 일에 대해 똑똑하고 꼼꼼하게 지시를 내리기는 했지만 말이 빨랐고 자꾸만 고개를 옆으로 돌렸으며, 그 들뜬 표정은 그대로인 데다 더 심해져 있었다. 조지프가 방을 나가자 그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았고, 나는 그 앞에 커피 한 사발을 놓았다. 그는 사발을 끌어당기더니 식탁에 두 팔을 괴고 맞은편 벽을 바라보았는데, 내가 짐작하기로는 번득이는 불안한 눈으로 벽의 어느 한 부분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고, 어찌나 열심히 들여다보는지 반 분 동안이나 숨을 멈추고 있었다.

"자, 어서요." 나는 그의 손에 빵을 밀어 주며 외쳤다. "따뜻할 때 이걸 드시고 마시세요.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그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래도 웃었다. 그렇게 웃는 걸 보느니 차라리 이를 가는 걸 보는 게 나았을 것이다.

"히스클리프 씨! 주인 나리!" 내가 소리쳤다. "제발, 이 세상 것이 아닌 환영이라도 보시는 것처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제발,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 지르지 마." 그가 대답했다. "돌아서 봐, 그리고 말해 봐, 여기 우리 둘뿐이야?"

"물론이지요." 내가 대답했다. "물론 우리 둘뿐이에요."

그런데도 나는 꼭 그렇다는 확신이 없는 사람처럼 저도 모르게 그의 말을 따랐다. 그는 손을 휘저어 아침 그릇들 사이 앞쪽에 빈자리를 치우더니, 더 편하게 바라보려고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제야 나는 그가 벽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그 사람 하나만 눈여겨보면 그가 2야드 안쪽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기쁨과 고통을 둘 다 더할 나위 없이 극단으로 안겨 주는 듯했다. 적어도 그의 얼굴에 서린, 괴로워하면서도 황홀해하는 표정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상상의 대상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도 않아서, 그의 눈은 지칠 줄 모르고 부지런히 그것을 좇았고, 나한테 말을 할 때조차 거기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지만 헛일이었는데, 내가 비는 대로 무언가를 집으려고 몸을 움직이거나 빵 한 조각을 집으려고 손을 뻗을 때도, 그의 손가락은 빵에 닿기도 전에 오그라들어서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어버린 채 식탁 위에 그대로 머물렀다.

나는 참을성의 본보기처럼 앉아서 그가 빠져 있는 생각에서 그의 눈길을 끌어내려고 애썼는데, 마침내 그는 짜증을 내며 일어서더니, 왜 자기가 끼니를 먹고 싶을 때 먹게 내버려 두지 않느냐고 묻고는, 다음부터는 기다릴 필요 없이 음식만 차려 놓고 가도 된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는 집을 나가 정원 길을 천천히 어슬렁어슬렁 내려가더니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조마조마하게 느릿느릿 흘러갔고, 또 저녁이 왔다. 나는 늦게까지 자리에 들지 않았고, 자리에 들어서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자정이 넘어 돌아왔는데, 잠자리에 드는 대신 아래층 방에 틀어박혔다. 나는 귀를 기울이며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마침내 옷을 입고 내려갔다. 거기 누워 백 가지 쓸데없는 걱정으로 머리를 들볶고 있자니 너무 괴로웠다.

방바닥을 쉬지 않고 서성이는 히스클리프 씨의 발소리가 들렸는데, 그는 신음 같은 깊은 숨을 들이쉬며 자주 침묵을 깨뜨렸다. 그는 띄엄띄엄 낱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캐서린이라는 이름 하나뿐이었는데, 그 이름에는 무언가 사랑에 미친 말이나 괴로움에 찬 말이 붙어 있었고,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 그 이름을 불렀는데, 낮고 간절하게, 영혼 밑바닥에서 쥐어짜듯 했다. 나는 곧장 그 방으로 걸어 들어갈 용기는 없었지만 그를 그 몽상에서 끌어내고 싶어서, 부엌 불을 공연히 들쑤시고 휘저으며 재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생각보다 빨리 그가 나왔다. 그는 곧바로 문을 열고 말했다. "넬리, 이리 와 봐. 아침이야? 불 가지고 들어와."

"네 시를 치고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위층에 가져가실 초가 필요하시군요. 이 불에서 붙이시면 되잖아요."

"아니, 위층에는 가고 싶지 않아." 그가 말했다. "들어와서 나한테 불을 좀 피워 주고, 방에서 할 일이 있으면 뭐든 해 줘."

"불을 옮겨 가려면 먼저 석탄을 불어서 빨갛게 달궈야 해요." 나는 의자와 풀무를 가져오며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거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이리저리 서성였는데, 무거운 한숨이 어찌나 잇달아 쏟아지는지 그 사이에 여느 숨을 쉴 틈도 없었다.

"날이 새면 그린 변호사를 부르러 보낼 거야." 그가 말했다. "그런 일에 생각을 쏟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침착하게 처리할 수 있을 때 법률 문제를 좀 물어보고 싶어. 나는 아직 유언장을 쓰지 않았는데, 재산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정할 수가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땅 위에서 그 재산을 깡그리 없애 버리고 싶어."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히스클리프 씨." 내가 끼어들었다. "유언장은 잠시 미뤄 두세요. 그 많은 몹쓸 짓을 뉘우칠 날이 아직 남아 있을 거예요! 나리 신경이 탈이 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지금은 정말 놀라울 만큼 탈이 났고, 그건 거의 다 나리 탓이에요. 요 사흘을 그렇게 보내셨으니 거인이라도 녹초가 되었을 거예요. 제발 뭘 좀 드시고 좀 쉬세요. 거울만 들여다보셔도 둘 다 얼마나 필요한지 아실 거예요. 볼은 움푹 꺼지고 눈은 핏발이 서서, 꼭 굶주려 죽어 가고 잠을 못 자서 눈이 멀어 가는 사람 같아요."

"먹지도 쉬지도 못하는 건 내 탓이 아니야." 그가 대답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무슨 작정을 하고 그러는 게 아니야. 할 수 있게 되면 곧바로 둘 다 할 거야. 하지만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한테 물가가 팔 하나 길이밖에 안 남았는데 거기서 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나는 먼저 거기 닿아야 하고, 그다음에 쉴 거야. 그래, 그린 변호사는 신경 쓰지 마. 내 몹쓸 짓을 뉘우치라는 말인데, 나는 아무 몹쓸 짓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아. 나는 너무 행복해. 그런데도 충분히 행복하지는 않아. 내 영혼의 더없는 기쁨이 내 몸을 죽이는데, 그래도 그 기쁨은 채워지지 않아."

"행복하시다고요, 주인 나리?" 내가 외쳤다. "참 이상한 행복이네요! 화내지 않고 들어 주신다면, 나리를 더 행복하게 해 드릴 충고를 하나 드릴 수 있을 텐데요."

"그게 뭔데?" 그가 물었다. "말해 봐."

"히스클리프 씨도 아시다시피," 내가 말했다. "나리는 열세 살 때부터 제 몸만 아는,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삶을 살아오셨고, 그동안 아마 성경을 손에 들어 보신 적도 거의 없을 거예요. 성경에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도 잊어버리셨을 테고, 지금은 성경을 찾아볼 겨를도 없으실지 몰라요. 그러니 누군가를, 어느 교파든 상관없으니 목사님을 한 분 불러서 성경을 풀이해 달라고 하고, 나리가 그 가르침에서 얼마나 멀리 빗나가셨는지,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에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성경이 말하는 천국에 얼마나 맞지 않는 사람이 될지 보여 달라고 하면 해로울 게 있을까요?"

"화가 나기는커녕 고맙구나, 넬리." 그가 말했다. "네 덕분에 내가 어떻게 묻히고 싶은지 생각났으니까. 저녁에 교회 묘지로 실려 가고 싶어. 너하고 헤어턴은 원한다면 따라와도 좋아. 그리고 두 관에 대한 내 지시를 교회지기가 따르는지 특히 잘 봐 둬! 목사는 올 필요 없고, 내 무덤 위에서 아무 말도 할 필요 없어. 정말이지 나는 내 천국에 거의 다 닿았고, 남들의 천국은 나한테는 아무 가치도 없고 탐나지도 않아."

"그런데 나리가 그렇게 고집스럽게 굶다가 그 때문에 돌아가셔서, 사람들이 나리를 교회 울타리 안에 묻어 주지 않겠다고 하면요?" 그의 하느님을 모르는 무심함에 충격을 받아 내가 말했다. "그러면 어떠시겠어요?"

"그러지 않을 거야." 그가 대답했다. "그런다면 네가 나를 몰래 옮겨 줘야 해. 그 일을 소홀히 했다가는 죽은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네 눈으로 똑똑히 알게 될 거다!"

집안의 다른 식구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는 제 굴로 물러갔고, 나는 숨을 좀 더 편히 쉬었다. 그러나 오후에 조지프와 헤어턴이 일하러 나가 있는 사이에 그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와서, 사나운 눈빛으로 나더러 큰방에 와서 앉아 있으라고 하면서, 누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거절하면서, 그의 이상한 말과 태도가 무섭고 단둘이 그의 곁에 있을 배짱도 마음도 없다고 똑똑히 말했다.

"너는 나를 마귀로 여기는 모양이구나." 그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점잖은 지붕 밑에서 살기에는 너무 끔찍한 무언가로." 그러고는 거기 있다가 그가 다가오자 내 뒤로 숨은 캐시 쪽으로 돌아서서 반쯤 비웃듯이 덧붙였다. "너는 오겠니, 아가? 해치지 않을게. 아니야! 너한테 나는 악마보다 더 고약한 놈이 되어 버렸지. 그래, 내 곁에 있는 걸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어! 맙소사! 그 사람은 사정을 봐주지 않아. 아, 빌어먹을! 피와 살을 가진 몸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야, 내 몸으로도."

그는 더는 누구에게도 같이 있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어스름이 내리자 그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밤새도록, 그리고 아침이 한참 될 때까지, 그가 신음하며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헤어턴은 들어가 보고 싶어 애를 태웠지만, 나는 케네스 선생을 모셔 오라고 하고 선생이 오면 들어가서 그를 보라고 했다. 선생이 와서 내가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며 문을 열려 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고, 히스클리프는 우리더러 지옥에나 가라고 했다. 자기는 좀 나아졌으니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고 했고, 그래서 의사는 돌아갔다.

이튿날 저녁에는 비가 몹시 내렸는데, 정말이지 새벽까지 억수같이 퍼부었고, 아침에 집을 한 바퀴 돌아보다가 나는 주인 방의 창이 활짝 열린 채 흔들거리고 비가 곧장 들이치는 것을 보았다. 침대에 누워 있을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저런 소나기라면 흠뻑 젖고 말았을 테니까. 일어나 있거나 나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더는 법석 떨지 말고 대담하게 가서 들여다보자.

다른 열쇠로 문을 여는 데 성공하자 나는 방이 비어 있었으므로 판자를 열려고 달려갔고, 재빨리 판자를 밀어젖히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히스클리프 씨가 거기 반듯이 누워 있었다. 그의 눈이 어찌나 날카롭고 사납게 내 눈과 마주쳤던지 나는 흠칫 놀랐는데, 그러자 그가 웃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죽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의 얼굴과 목은 빗물에 씻겨 있었고 이불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으며 그는 완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덜컹거리던 격자창이 창턱에 얹힌 한쪽 손을 스쳐 놓았는데, 그 벗겨진 살갗에서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고, 내가 손가락을 대 보자 더는 의심할 수 없었는데, 그는 죽어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창을 걸쇠로 잠그고, 그의 이마에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고, 그의 눈을 감기려고 애썼는데, 될 수만 있다면 다른 누가 보기 전에 그 무시무시하고 살아 있는 것 같은 의기양양한 눈길을 꺼 버리고 싶었다. 눈은 감기지 않았고, 내가 애쓰는 것을 비웃는 것 같았으며, 벌어진 입술과 날카로운 흰 이도 비웃고 있었다! 또다시 겁이 덜컥 나서 나는 조지프를 불렀다. 조지프는 발을 질질 끌며 올라와서 법석을 떨었지만, 시신에는 끝까지 손대려 하지 않았다.

"마귀가 저 영혼을 낚아채 갔구먼." 조지프가 소리쳤다. "덤으로 저 송장까지 가져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여! 에이! 죽음을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 꼴이 참 사악하기도 하구먼!" 그러고는 그 늙은 죄인도 비웃듯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나는 조지프가 침대 둘레를 돌며 깡충깡충 춤이라도 출 작정인 줄 알았는데, 조지프는 갑자기 마음을 가다듬더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정당한 주인과 오랜 핏줄이 제 권리를 되찾았다고 감사 기도를 올렸다.

나는 그 끔찍한 일에 넋이 나간 듯했고, 어쩔 수 없이 옛 시절이 떠올라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정말로 몹시 괴로워한 사람은 가장 큰 해를 입은 가엾은 헤어턴 하나뿐이었다. 헤어턴은 밤새 시신 곁에 앉아서 서럽게, 진심으로 울었다. 그는 시신의 손을 꼭 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마 보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그 비웃는 듯한 사나운 얼굴에 입을 맞추었으며, 담금질한 강철처럼 단단하기는 해도 너그러운 마음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그 강한 슬픔으로 그를 애도했다.

케네스 선생은 주인이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판정하지 못해 쩔쩔맸다. 나는 그가 나흘 동안 아무것도 삼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말썽이 될까 봐 감추었는데, 나는 그가 일부러 굶은 게 아니라고 믿는데, 굶은 것은 그 이상한 병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우리는 그가 바란 대로 그를 묻었고, 온 동네가 그 일로 수군거렸다. 언쇼와 나, 교회지기, 그리고 관을 메고 간 여섯 사람이 장례에 온 사람의 전부였다. 여섯 사람은 관을 무덤 속에 내려놓고는 떠났고, 우리는 남아서 무덤이 덮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헤어턴은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된 채 푸른 뗏장을 떠다가 갈색 흙 위에 손수 덮었는데, 지금 그 무덤은 곁에 있는 무덤들만큼이나 반반하고 파랗고, 나는 그 무덤 임자도 그만큼 곤히 잠들어 있기를 바라요. 하지만 이 고장 사람들은 물어보면 그가 돌아다닌다고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할 거고, 교회 근처에서, 황야에서, 심지어 이 집 안에서 그를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하시겠지요, 나도 그렇게 말해요. 그런데도 부엌 난롯가의 저 늙은이는 그가 죽은 뒤로 비 오는 밤이면 언제나 그 둘이 그의 방 창으로 내다보는 걸 보았다고 우기는데, 한 달쯤 전에는 나한테도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어느 날 저녁 나는 그레인지로 가는 길이었는데, 천둥이 칠 것 같은 캄캄한 저녁이었고, 하이츠 모퉁이를 막 도는데 양 한 마리와 새끼 양 두 마리를 앞세운 어린 사내아이와 마주쳤는데, 아이가 몹시 울고 있어서, 나는 새끼 양들이 날뛰며 말을 안 듣는 줄로만 알았지요.

"무슨 일이니, 꼬마야?" 내가 물었다.

"저기 바위 밑에 히스클리프하고 어떤 여자가 있어요." 아이가 엉엉 울며 말했다. "무서워서 못 지나가겄어요."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양도 아이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아서 아이에게 아래쪽 길로 가라고 일렀다. 아마 그 아이는 혼자 황야를 지나면서 부모와 동무들이 되뇌던 헛소리를 떠올리다가 그런 허깨비를 지어냈을 거예요. 그래도 나는 이제 어두울 때 바깥에 나가는 게 싫고, 이 음산한 집에 혼자 남아 있는 것도 싫은데 어쩔 수가 없으니, 그 사람들이 이 집을 떠나 그레인지로 옮겨 가면 나는 기쁠 거예요.

"그럼 그 사람들이 그레인지로 가는 거요?" 내가 말했다.

"네." 딘 부인이 대답했다. "결혼하자마자요. 혼례는 설날에 올려요."

"그럼 여기는 누가 살게 되오?"

"글쎄요, 조지프가 집을 돌볼 거고, 아마 말동무로 젊은 녀석이 하나 같이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은 부엌에서 지내고 나머지는 닫아 둘 거예요."

"여기 살고 싶어 하는 유령들이 쓰라고 말이오?"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록우드 나리." 넬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죽은 사람들이 편히 쉬고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죽은 사람들을 두고 가볍게 말하는 건 옳지 않아요."

그때 정원 문이 덜컥 닫혔다. 산책 나갔던 이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군." 창 너머로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투덜거렸다. "둘이 함께라면 사탄과 그 군대라도 맞서겠군."

두 사람이 문간 돌에 올라서서 달을,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달빛에 비친 서로를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보려고 멈춰 섰을 때, 나는 또다시 두 사람을 피해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딘 부인의 손에 정표를 쥐여 주고, 무례하다고 말리는 부인의 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사람이 큰방 문을 여는 사이에 부엌으로 빠져나가 사라졌는데, 다행히 조지프가 발밑에서 울리는 1파운드 금화의 고운 소리를 듣고 나를 점잖은 사람으로 알아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동료 하인이 경박하게 사내를 끌어들인다는 조지프의 생각을 굳혀 주고 말았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교회 쪽으로 돌아가느라 길이 길어졌다. 교회 담장 밑에 이르러 보니 일곱 달 사이에도 허물어짐이 꽤 진행되어 있었다. 창 여러 개가 유리가 빠진 채 시커먼 구멍을 드러내고 있었고, 슬레이트가 여기저기 지붕의 반듯한 선 밖으로 비죽 삐져나와 있어서 다가오는 가을 폭풍에 차츰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황야 쪽 비탈에 있는 묘비 세 개를 찾아다니다가 곧 찾아냈다. 가운데 것은 잿빛이고 반쯤 히스에 파묻혀 있었고, 에드거 린턴의 것은 그 밑동을 타고 올라온 뗏장과 이끼로 겨우 어우러져 있었으며, 히스클리프의 것은 아직 맨 그대로였다.

나는 그 너그러운 하늘 아래 무덤 곁을 서성였다.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팔랑이며 나는 나방들을 바라보고, 풀잎 사이로 숨 쉬듯 지나가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저토록 고요한 땅 밑에 잠든 이들에게 고요하지 못한 잠이 있으리라고 대체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