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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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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또 한 주가 지났다. 그만큼 나는 건강에, 그리고 봄에 가까워졌다! 이제 나는 가정부가 더 중요한 일에서 짬을 낼 때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앉아 들려준 덕분에 이웃 사람의 내력을 다 들었으니, 이야기는 그 부인의 말 그대로, 다만 조금 줄여서 이어 적으려 한다. 부인은 대체로 썩 공정한 이야기꾼이어서, 내가 그 말투를 더 낫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날 저녁, 하고 부인은 말했다, 내가 하이츠에 다녀온 그날 저녁, 나는 눈으로 본 것처럼 히스클리프 씨가 집 둘레 어딘가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기를 피했는데, 그 사람의 편지를 아직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있었고 더는 그 사람한테 위협을 받거나 들볶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편지를 받으면 캐서린이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주인이 어디 출타하기 전에는 편지를 건네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고, 그 바람에 편지는 사흘이 지나도록 마님에게 닿지 못했다. 나흘째는 일요일이었는데, 나는 식구들이 교회에 간 뒤에 그 편지를 마님 방으로 가지고 갔다. 나와 함께 집을 지키라고 남자 하인 하나가 남아 있었고, 예배 시간에는 으레 문을 잠가 두는 것이 우리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날씨가 하도 따뜻하고 좋아서 나는 문을 활짝 열어 두었고, 누가 올지 알고 있었으므로 약속을 지키려고, 마님이 오렌지를 몹시 드시고 싶어 하니 마을에 달려가서 몇 개 사 오되 값은 내일 치르기로 하라고 동료 하인에게 일렀다. 하인이 떠나자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린턴 부인은 헐렁한 흰 옷을 입고 어깨에 가벼운 숄을 두른 채 여느 때처럼 열린 창의 우묵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숱 많고 긴 머리는 병이 시작될 무렵 얼마쯤 잘라 냈고, 이제는 타고난 머리채 그대로 관자놀이와 목 위로 수수하게 빗어 내리고 있었다. 내가 히스클리프에게 말한 대로 마님의 모습은 변해 있었지만, 마님이 차분할 때면 그 변화 속에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번득이던 눈빛 대신 꿈꾸는 듯한 우울한 부드러움이 자리 잡았고, 그 눈은 더 이상 둘레의 물건들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고, 언제나 그 너머를, 아득히 먼 그 너머를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나리도 보셨다면 이 세상 밖을 보고 있다고 하셨을 거예요. 게다가 얼굴의 창백함은, 살이 다시 오르면서 초췌한 기색은 가셨지만, 마음의 상태에서 오는 그 독특한 표정과 어우러져 그 까닭을 떠올리게 해서 괴롭기는 했어도 마님이 자아내는 애틋한 마음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언제나 그랬고, 내 생각에는 마님을 본 누구의 눈에나 그랬을 텐데, 그 창백함은 회복되고 있다는 더 뚜렷한 증거들을 뒤엎고 마님을 시들어 갈 운명에 놓인 사람으로 못 박아 두었다.

마님 앞 창턱에는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고, 느껴질까 말까 한 바람이 이따금 그 책장을 팔락거렸는데, 아마 린턴이 거기 놓아두었을 것이다. 마님은 책을 읽거나 무슨 일을 하며 기분을 돌리려 애쓰는 법이 없었고, 린턴은 마님이 예전에 즐기던 무언가로 마님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몇 시간씩 애를 쓰곤 했기 때문이다. 마님은 남편의 뜻을 알고 있었고, 기분이 좋을 때면 남편의 애씀을 덤덤히 참아 주었고, 다만 이따금 지친 한숨을 삼키는 것으로 그 애씀이 소용없다는 것을 드러냈고, 마침내는 더없이 서글픈 미소와 입맞춤으로 남편을 멈추게 했다. 다른 때에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려 두 손에 얼굴을 묻거나 심지어 화를 내며 남편을 밀쳐 내기까지 했다. 그러면 남편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으므로 아내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기머턴 예배당의 종은 아직 울리고 있었고, 골짜기를 흐르는 개울의 넉넉하고 그윽한 물소리가 귀를 달래듯 들려왔다. 나무에 잎이 무성할 때면 그레인지 둘레에서 그 물소리를 덮어 버리는 여름 나뭇잎의 속삭임이 아직 없는 것을 달콤하게 대신해 주는 고운 소리였다. 워더링 하이츠에서는 큰 해빙이나 긴 장마 뒤 조용한 날이면 늘 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캐서린은 그 소리를 들으며 워더링 하이츠를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을 하거나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면 말이지만, 마님의 얼굴에는 앞서 말한 그 흐릿하고 아득한 표정이 떠 있어서, 귀로도 눈으로도 이 세상 것을 알아보는 기색이 없었다.

"마님께 편지가 왔어요." 나는 마님의 무릎 위에 놓인 한 손에 편지를 살며시 쥐여 드리며 말했다. "답장을 기다리는 편지라 당장 읽으셔야 해요. 봉인을 뜯어 드릴까요?" "그래." 마님은 눈길을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내가 편지를 열어 보니 아주 짧았다. "자, 이제 읽어 보세요." 내가 말을 이었다. 마님은 손을 거두어 떨어뜨렸다. 나는 편지를 다시 마님의 무릎에 올려놓고 마님이 내려다볼 마음이 날 때까지 서서 기다렸지만, 그 움직임이 하도 오래 미뤄져서 마침내 다시 말을 꺼냈다. "제가 읽어 드릴까요, 마님? 히스클리프 씨가 보낸 편지예요."

마님은 흠칫 놀랐고, 무언가 떠오른 듯 괴로운 빛이 스쳤으며, 생각을 가다듬으려 애쓰는 기색이 보이더니, 마님은 편지를 집어 들고 읽는 듯했고 서명에 이르자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마님이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는데, 대답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마님은 그저 그 이름을 가리키며 슬프고도 무언가 묻고 싶어 애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이다.

"저, 그 사람이 마님을 뵙고 싶대요." 나는 마님에게 풀어서 말해 줄 사람이 있어야겠다고 짐작하고 말했다. "지금쯤은 뜰에 와 있을 거예요. 제가 무슨 대답을 가져갈지 알고 싶어 애가 타 있을 거고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 나는 아래쪽 볕 드는 풀밭에 누워 있던 큰 개가 짖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가 다시 귀를 뒤로 눕히고 꼬리를 흔들어, 낯선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다가온다고 알리는 것을 보았다. 린턴 부인은 앞으로 몸을 숙이고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잠시 뒤 발소리가 현관 복도를 가로질렀다. 문이 활짝 열린 집은 히스클리프에게 들어오지 않고는 못 배길 유혹이었다. 아마 내가 약속을 저버리려 한다고 여기고 자기 배짱만 믿기로 했을 것이다. 캐서린은 애타게 몸이 달아 방 문간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곧바로 방을 찾아내지 못했다. 마님은 그를 들이라고 나에게 손짓을 했지만, 내가 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는 방을 찾아냈고, 한두 걸음에 마님 곁에 와서 마님을 두 팔로 움켜안았다.

그는 5분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끌어안은 팔을 풀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그가 퍼부은 입맞춤은 아마 그때까지 평생 한 입맞춤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입을 맞춘 것은 마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너무나 괴로워서 마님의 얼굴을 차마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마님을 본 순간부터 그도 나와 똑같은 확신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거기에는 끝내 회복될 가망이 없었다. 마님은 죽을 운명이었고, 틀림없이 죽을 터였다.

"아, 캐서린! 아, 내 목숨! 이걸 어떻게 견디라고?" 그가 맨 처음 한 말은 그것이었고, 그 목소리는 절망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그가 하도 뚫어지게 마님을 바라보아서, 나는 그 눈길이 너무 강렬해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눈은 괴로움으로 타오를 뿐 녹아내리지 않았다.

"이제 와서 뭐야?" 캐서린이 뒤로 몸을 기대며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눈길을 마주 보았다. 마님의 기분은 쉴 새 없이 바뀌는 변덕에 따라 도는 바람개비일 뿐이었다. "너하고 에드거가 내 가슴을 찢어 놨어, 히스클리프! 그래 놓고 둘 다 마치 자기들이 불쌍한 사람인 양 나한테 와서 그 짓을 슬퍼하고 있어! 나는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거야. 절대로. 너는 나를 죽였고, 내가 보기엔 그걸로 더 잘 살아왔어. 너는 참 튼튼하구나! 내가 죽은 뒤에 몇 해나 더 살 작정이야?"

히스클리프는 마님을 끌어안으려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가 일어나려 하자 마님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일어나지 못하게 눌렀다.

"너를 붙잡고 있을 수 있으면 좋겠어." 마님이 쓰라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둘 다 죽을 때까지! 네가 무슨 고통을 겪든 상관없어. 나는 네 괴로움 따위 아무렇지도 않아. 너라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나는 괴로운데! 너는 나를 잊을 거야? 내가 땅에 묻히면 너는 행복할 거야? 스무 해 뒤에 이렇게 말할 거야? '저건 캐서린 언쇼의 무덤이야. 오래전에 그 여자를 사랑했고, 그 여자를 잃어서 비참했지. 하지만 다 지난 일이야. 그 뒤로 나는 다른 사람을 많이 사랑했어. 나한테는 그 여자보다 내 아이들이 더 소중해.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그 여자한테 간다고 기뻐하지는 않을 거야. 아이들을 두고 가야 한다고 슬퍼하겠지!' 그렇게 말할 거야, 히스클리프?"

"네가 미친 것처럼 나까지 미칠 때까지 나를 괴롭히지 마." 그가 머리를 비틀어 빼내고 이를 갈며 외쳤다.

냉정하게 지켜보는 사람의 눈에는 두 사람이 이상하고도 무서운 그림으로 보였을 테니, 캐서린이 죽어서 몸을 버릴 때 제 성품까지 함께 버리지 않는다면 천국은 마님에게 귀양살이 땅이 될 거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지금 마님의 얼굴은 하얀 뺨과 핏기 없는 입술과 번득이는 눈에 사나운 앙심이 서려 있었고, 움켜쥐었던 머리카락 한 줌을 쥔 주먹 속에 그대로 쥐고 있었다. 마님의 상대는 한 손으로 몸을 일으키면서 다른 손으로 마님의 팔을 붙잡았는데, 그의 다정함이 마님의 형편이 요구하는 데에 어찌나 턱없이 모자랐던지, 그가 손을 놓았을 때 핏기 없는 살갗에 퍼런 자국이 네 군데나 또렷이 남은 것이 보였다.

"악마한테 씌기라도 했어?" 그가 사납게 말을 이었다. "죽어 가면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그 말이 하나하나 내 기억에 낙인으로 찍혀서, 네가 떠난 뒤에도 영원히 더 깊이 파고들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내가 너를 죽였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건 너도 알잖아. 그리고 캐서린, 내가 너를 잊는다는 건 나 자신을 잊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도 너는 알잖아! 네가 평안히 쉬는 동안 나는 지옥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야 한다는 걸로는, 네 그 지옥 같은 이기심이 아직도 성에 안 차?"

"나는 평안하지 않을 거야." 캐서린이 신음했다. 이렇게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겉으로 보이고 들릴 만큼 거세고 고르지 않게 뛰는 심장 때문에, 마님은 제 몸이 약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은 것이다. 발작이 가라앉을 때까지 마님은 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윽고 좀 더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겪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너한테 바라는 게 아니야, 히스클리프. 나는 그저 우리가 절대로 헤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니까, 나중에라도 내 말 한마디가 너를 괴롭히거든 나도 땅속에서 똑같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를 위해서 나를 용서해 줘! 이리 와서 다시 무릎을 꿇어! 너는 평생 나를 해친 적이 없어. 아니, 네가 화를 품고 있으면 그게 내 모진 말보다 더 괴로운 기억이 될 거야! 다시 이리로 오지 않을래? 와 줘!"

히스클리프는 마님의 의자 뒤로 가서 몸을 숙였지만, 감정이 북받쳐 납빛이 된 얼굴을 마님이 볼 수 있을 만큼 숙이지는 않았고, 마님이 몸을 돌려 그를 보려 했지만 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홱 돌아서서 벽난로로 걸어가더니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말없이 서 있었다. 린턴 부인의 눈길이 의심스러운 듯 그를 따라갔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마님의 마음에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한참 말없이 바라보던 끝에 마님은 다시 말을 꺼냈는데, 이번에는 분하고 실망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 봐, 넬리. 저 사람은 나를 무덤에서 지켜 주려고 잠깐도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아. 내가 받는 사랑이 저런 거야! 흥, 상관없어. 저건 내 히스클리프가 아니야. 나는 그래도 내 히스클리프를 사랑할 거고, 그 애를 데리고 갈 거야. 그 애는 내 영혼 속에 있으니까. 그리고," 마님은 생각에 잠겨 덧붙였다. "결국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이 부서진 감옥이야. 여기 갇혀 있는 게 지긋지긋해. 나는 저 찬란한 세상으로 빠져나가 언제까지나 거기 있고 싶어 못 견디겠어, 눈물 너머로 흐릿하게 바라보거나 아픈 가슴의 벽 너머로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 세상과 함께, 그 세상 속에 있고 싶어. 넬리, 너는 네가 나보다 낫고 운이 좋다고 생각하겠지. 건강하고 튼튼하니까. 그래서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하지만 머지않아 그게 뒤바뀔 거야. 내가 너를 불쌍하게 여기게 될 거야. 나는 너희 모두를 견줄 수도 없을 만큼 넘어서서 높이 올라가 있을 거야. 저 사람이 왜 내 곁에 오지 않는지 모르겠어!" 마님은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저 사람도 그러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히스클리프, 내 사랑! 이제는 뾰로통해 있으면 안 돼. 나한테 와 줘, 히스클리프."

마님은 마음이 급해서 일어나 의자 팔걸이에 몸을 기댔다. 그 간절한 부름에 그는 아주 절망한 얼굴로 마님에게 돌아섰다. 크게 뜬 젖은 눈이 마침내 마님을 향해 사납게 번득였고 가슴은 경련하듯 들썩였는데, 한순간 둘은 떨어져 서 있다가 그다음에 어떻게 맞붙었는지 나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캐서린이 몸을 날렸고, 그가 마님을 받아 안았고, 두 사람은 서로 꽉 끌어안았는데, 나는 우리 마님이 그 품에서 살아서는 풀려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 눈에는 마님이 곧바로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내가 마님이 기절했는지 알아보려고 허둥지둥 다가가자, 미친개처럼 나한테 이를 갈며 거품을 물고는 탐욕스러운 질투로 마님을 제 품에 끌어당겼다. 나는 나와 같은 종류의 생물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말을 걸어도 그는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몹시 당황한 채 물러서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곧 캐서린이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나는 조금 마음이 놓였는데, 마님이 손을 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그가 안고 있는 대로 제 뺨을 그의 뺨에 갖다 댔다. 그러자 그는 그 보답으로 미친 듯이 마님을 어루만지며 정신없이 말했다.

"이제야 네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나한테 가르쳐 주는구나. 잔인하고 거짓되었다는 걸. 왜 나를 업신여겼어? 왜 네 마음을 배신했어, 캐서린? 나는 위로의 말을 한마디도 해 줄 수 없어. 너는 이런 꼴을 당해도 싸. 너는 너 자신을 죽였어. 그래, 나한테 입 맞추고 울어도 좋아. 내 입맞춤과 눈물을 짜내도 좋아. 그게 너를 시들게 하고 너를 저주할 거야. 너는 나를 사랑했어. 그런데 무슨 권리로 나를 버렸어? 무슨 권리로, 대답해 봐, 린턴한테 느낀 그 보잘것없는 홀림 때문에? 비참함도 타락도 죽음도, 하느님이나 사탄이 내릴 수 있는 그 무엇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했을 텐데, 네가 네 뜻으로, 너 스스로 그렇게 했어. 내가 네 가슴을 찢은 게 아니야. 네가 찢었어. 그리고 네 가슴을 찢으면서 내 가슴까지 찢었어. 내가 튼튼하다는 게 나한테는 그만큼 더 나쁜 거야. 내가 살고 싶을 것 같아? 네가, 아, 하느님! 네 영혼이 무덤에 들어가 있는데 너라면 살고 싶겠어?"

"나를 내버려 둬. 나를 내버려 둬." 캐서린이 흐느꼈다. "내가 잘못했다면 그 대가로 지금 죽어 가고 있잖아. 그걸로 충분해! 너도 나를 버렸어. 하지만 너를 탓하지 않을게! 너를 용서해. 나를 용서해 줘!"

"용서하기는 어려워. 그 눈을 보면서, 그 야윈 손을 만지면서는." 그가 대답했다. "다시 입 맞춰 줘. 그리고 네 눈은 보이지 마! 네가 나한테 한 짓은 용서할게. 나는 나를 죽인 사람은 사랑해. 하지만 너를 죽인 사람은!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얼굴을 서로 맞대어 묻고, 서로의 눈물로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양쪽이 다 울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큰일을 당하면 히스클리프도 울 수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러는 동안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오후가 빠르게 저물어 가고 있었고, 심부름을 보냈던 하인이 돌아왔으며, 골짜기 위로 비치는 서쪽 햇살에 기머턴 예배당 현관 밖으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예배가 끝났어요." 내가 알렸다. "주인 나리께서 30분 안에 오실 거예요."

히스클리프는 신음하듯 욕을 내뱉으며 캐서린을 더 꼭 끌어안았다. 마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하인들 한 무리가 부엌 쪽 별채를 향해 길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린턴 씨도 멀지 않은 뒤에 있었는데, 주인은 손수 대문을 열고 천천히 거닐며 올라왔는데, 여름처럼 부드럽게 숨 쉬는 아름다운 오후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이제 오셨어요." 나는 외쳤다. "제발 서둘러 내려가세요! 앞 계단에서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 어서요. 그리고 나리께서 안으로 다 들어가실 때까지 나무들 사이에 숨어 계세요."

"가야겠어, 캐서린." 히스클리프가 마님의 팔에서 몸을 빼내려 하며 말했다. "하지만 살아 있으면 네가 잠들기 전에 다시 보러 올게. 네 창에서 5야드도 떨어지지 않을 거야."

"가면 안 돼!" 마님이 힘이 닿는 한 그를 꽉 붙들며 대답했다. "못 가, 정말이야."

"한 시간만." 그가 간절하게 빌었다.

"1분도 안 돼." 마님이 대답했다.

"가야 해. 린턴이 금방 올라올 거야." 겁이 난 침입자가 고집했다.

그가 일어서서 그 바람에 마님의 손가락을 떼어 내려 했지만, 마님은 숨을 헐떡이며 꽉 매달렸고, 그 얼굴에는 미친 듯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안 돼!" 마님이 비명을 질렀다. "아, 가지 마, 가지 마. 이게 마지막이야! 에드거는 우리를 해치지 않을 거야. 히스클리프, 나 죽을 거야! 나 죽을 거야!"

"빌어먹을 바보 같으니! 저기 왔군." 히스클리프가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외쳤다. "쉿, 내 사랑! 쉿, 쉿, 캐서린! 여기 있을게. 이대로 그자가 나를 쏜다 해도 나는 입술에 축복을 머금고 숨을 거둘 거야."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꼭 붙어 버렸다. 주인이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는 겁에 질렸다.

"마님 헛소리를 들으실 작정이에요?" 내가 격하게 말했다. "마님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세요. 마님이 스스로 어쩔 정신이 없다고 해서 마님을 망치실 작정이에요? 일어나세요! 당장이라도 빠져나갈 수 있잖아요. 이건 히스클리프 씨가 지금까지 한 짓 가운데 가장 악마 같은 짓이에요. 우리는 다 끝장이에요. 주인도 마님도 하인도요."

나는 두 손을 비틀며 소리를 질렀고 린턴 씨는 그 소리에 걸음을 재촉했는데, 정신없이 허둥대는 와중에도 나는 캐서린의 팔이 힘없이 늘어지고 머리가 축 처진 것을 보고 진심으로 기뻤다.

'기절했거나 죽었구나.' 나는 생각했다. '그편이 차라리 낫지. 질질 목숨을 끌면서 둘레 사람들 모두에게 짐이 되고 괴로움을 안기느니 죽는 편이 훨씬 나아.'

에드거는 놀라움과 분노로 하얗게 질려서 청하지도 않은 손님에게 달려들었다. 주인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는 숨이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 몸을 주인의 품에 안겨 주어, 대뜸 그 모든 기세를 꺾어 버렸다.

"저걸 봐!" 그가 말했다. "당신이 악마가 아니라면 먼저 이 사람부터 살리시오. 그다음에 나하고 이야기합시다!"

그는 거실로 들어가 앉았다. 린턴 씨가 나를 불렀고, 우리는 무척 애를 쓰고 갖은 방법을 다 쓴 끝에 겨우 마님의 정신이 돌아오게 했지만, 마님은 정신이 몹시 어지러워서 한숨을 쉬고 신음하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에드거는 아내를 걱정하느라 아내의 미운 친구는 잊어버렸다. 나는 잊지 않았다. 나는 틈이 나자마자 그 사람에게 가서, 캐서린은 좀 나아졌으니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아침에 내가 알려 주겠다고 단언하며 제발 가 달라고 빌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마다하지 않겠어."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뜰에 있을 거야. 그리고 넬리, 내일 약속 꼭 지켜. 나는 저 낙엽송 밑에 있을 거야. 잊지 마! 안 그러면 린턴이 있든 없든 또 찾아올 테니까."

그는 반쯤 열린 방문 틈으로 재빨리 안을 훑어보고는 내 말이 사실인 것 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불운한 존재를 집에서 거두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