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장 이름난 미코미코나 공주 이야기를 이어 가며 다른 우스운 모험들도 곁들인다
산초는 이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적잖이 마음이 아팠다. 자기 작위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연기가 되어 가고, 어여쁜 미코미코나 공주는 도로테아로, 거인은 돈 페르난도로 바뀌어 버렸는데, 주인은 그동안 일어난 일은 아랑곳없이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테아는 자기가 누리는 행복이 꿈이 아닌지 믿을 수가 없었다. 카르데니오도 같은 생각이었고, 루스신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돈 페르난도는 받은 은총에 대해, 그리고 하마터면 명예와 영혼을 잃을 뻔했던 그 얽히고설킨 미로에서 자기를 꺼내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했다. 요컨대 객줏집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토록 엉키고 절망적이던 일들이 이렇게 잘 풀린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신부는 슬기로운 사람답게 모든 일을 제자리에 앉히며 저마다에게 얻은 복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기뻐하고 흡족해한 사람은 객줏집 안주인이었으니, 돈키호테 때문에 입은 손해와 그 손해에 딸린 셈까지 모두 갚아 주겠다고 카르데니오와 신부가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듯이 괴롭고 불운하고 슬픈 사람은 산초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무룩한 얼굴로 막 잠이 깬 주인에게 들어가 말했다.
"슬픈 얼굴 나리, 이제는 거인을 죽일 걱정도, 공주님께 왕국을 되찾아 드릴 걱정도 없이 실컷 주무셔도 돼요. 벌써 다 끝나고 마무리됐거든요."
"그야 그렇겠지."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내 평생 다시는 없을 만큼 엄청나고 사나운 싸움을 그 거인과 벌였으니 말이다. 칼을 한 번 되받아 휘둘러, 휙! 그놈의 머리를 땅바닥에 떨궜는데, 쏟아진 피가 어찌나 많았던지 물이 흐르듯 땅 위로 시내를 이루어 흘렀다."
"붉은 포도주가 흐르듯, 하고 말씀하셨으면 더 맞았을 거예요." 산초가 대답했다. "나리께서 모르신다면 알려 드리는데, 죽은 거인은 구멍 난 가죽 부대고, 피는 그 배 속에 들어 있던 붉은 포도주 여섯 아로바고, 잘린 머리는 저를 낳은 화냥년이에요. 몽땅 사탄이나 물어 가라죠."
"무슨 소리냐, 이 미친놈아?" 돈키호테가 되받았다. "정신이 있느냐?"
"일어나 보세요, 나리." 산초가 말했다. "나리께서 벌여 놓으신 근사한 꼴하고 우리가 물어내야 할 것을 보시게 될 거예요. 여왕님이 도로테아라는 평범한 아가씨로 바뀐 것도 보실 거고요. 그 밖에도 눈치채시면 깜짝 놀라실 일들이 있어요."
"그런 일이라면 하나도 놀랍지 않다." 돈키호테가 되받았다. "네가 잘 기억한다면, 지난번 여기 묵었을 때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마법의 소행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이번에도 그렇다 한들 대수로울 것이 없다."
"저도 다 믿겠어요." 산초가 대답했다. "제가 담요에 헹가래 쳐진 일도 그런 부류였다면요. 그런데 그건 아니었어요. 진짜로, 정말로 있었던 일이에요. 오늘 여기 있는 이 객줏집 주인이 담요 한 귀퉁이를 잡고, 아주 신나고 힘차게, 힘만큼이나 웃음도 잔뜩 섞어서 저를 하늘로 밀어 올리는 걸 똑똑히 봤거든요.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일이라면, 제가 비록 무식하고 죄 많은 놈이지만 제 생각엔 마법이고 뭐고 없어요. 실컷 두들겨 맞는 일하고 고약한 운수만 잔뜩 있을 뿐이죠."
"자, 됐다. 하느님께서 바로잡아 주시겠지." 돈키호테가 말했다. "옷을 입혀 다오. 밖에 나가 봐야겠다. 네가 말하는 그 일들과 둔갑한 것들을 보고 싶구나."
산초가 옷을 입혀 주었다. 그가 옷을 입는 동안 신부는 돈 페르난도와 다른 이들에게 돈키호테의 미친 짓을 이야기하고, 아씨에게 퇴짜를 맞았다고 여기며 그가 틀어박혀 있던 가난한 바위산에서 그를 끌어내려고 쓴 꾀도 들려주었다. 산초가 이야기한 모험들도 거의 다 들려주자 그들은 적잖이 놀라고 웃었는데, 누구에게나 그렇게 보이듯 그들에게도 그것은 엉뚱한 머릿속에 들어설 수 있는 가장 기이한 종류의 광기로 보였다. 신부는 또, 도로테아 아씨의 일이 잘 풀려 이제 처음 계획을 밀고 나갈 수 없게 되었으니 그를 고향으로 데려갈 다른 꾀를 꾸며 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카르데니오가 시작한 일을 자기가 이어 가겠다고 나서며, 도로테아의 역할은 루스신다가 맡아 하면 되리라고 했다.
"아니오." 돈 페르난도가 말했다. "그래서는 안 되오. 나는 도로테아가 꾸민 이야기를 그대로 이어 가기를 바라오. 이 착한 기사의 마을이 여기서 아주 멀지만 않다면, 그를 고칠 방도를 찾는 일을 나도 기꺼이 돕겠소."
"여기서 이틀 길밖에 안 되오."
"더 멀다 해도, 이렇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길을 기꺼이 가겠소."
그때 돈키호테가 나왔다. 장비를 모두 갖추고, 찌그러지긴 했어도 맘브리노의 투구를 머리에 쓰고, 둥근 방패를 팔에 끼고, 막대기인지 긴 창인지에 몸을 기댄 차림이었다. 돈 페르난도와 다른 이들은 돈키호테의 기이한 모습에 얼이 빠졌다. 반 레과는 됨 직한 기다란 얼굴은 바싹 마르고 누렇게 떴으며, 갖춘 무구는 하나도 짝이 맞지 않았고, 몸가짐만은 점잖았다. 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려고 잠자코 있었는데, 그는 아주 근엄하고 차분하게 아름다운 도로테아에게 눈길을 두고 말했다.
"아름다운 아씨, 나의 이 종자에게서 들으니 그대의 위대하심이 스러지고 그대의 존재가 허물어져, 예전의 여왕이자 위대한 귀부인에서 한낱 평범한 아가씨로 바뀌었다 하오. 그것이 그대의 아버님이신 강령술사 왕께서, 내가 그대에게 마땅하고 필요한 도움을 드리지 못할까 두려워하신 탓이라면, 분명히 말하노라. 그분은 미사의 절반도 모르셨고 지금도 모르시며, 기사도 이야기에 그리 밝지 못하셨소. 그분이 나처럼 주의 깊게, 나처럼 넉넉한 시간을 들여 그 이야기들을 읽고 훑으셨더라면, 나보다 이름이 덜 난 기사들이 더 어려운 일을 해낸 예를 걸음마다 보셨을 것이오. 하찮은 거인 하나쯤 죽이는 일은 그놈이 아무리 오만하다 해도 그리 어렵지 않소. 몇 시간 전에도 내가 그놈과 맞붙었는데……, 아니, 입을 다물겠소.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들 할 테니. 그러나 모든 것을 드러내는 시간이, 우리가 생각지도 않을 때 말해 주리라."
"나리가 맞붙은 건 거인이 아니라 가죽 부대 두 개였죠." 그때 객줏집 주인이 말했다.
돈 페르난도가 주인에게 입을 다물고 어떤 일이 있어도 돈키호테의 말을 끊지 말라고 이르자, 돈키호테는 말을 이었다.
"요컨대 높으시고 물려받을 나라를 빼앗기신 아씨여, 내 말하노라. 앞서 말한 까닭으로 그대의 아버님께서 그대의 몸에 이런 둔갑술을 부리셨다면 조금도 믿지 마시오. 이 땅에 내 칼이 길을 뚫지 못할 위험은 하나도 없으니, 이 칼로 그대 원수의 머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머지않아 그대 머리에 그대 나라의 왕관을 씌워 드리리라."
돈키호테는 더 말하지 않고 공주의 대답을 기다렸다. 공주는 돈키호테를 고향까지 데려갈 때까지 속임수를 이어 가기로 돈 페르난도가 정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아주 재치 있고 근엄하게 대답했다.
"용맹한 슬픈 얼굴의 기사여, 제가 제 본모습에서 바뀌고 달라졌다고 그대에게 말한 이가 누구든, 그 사람은 참말을 하지 않았나이다.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저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물론 행운이 깃든 어떤 일들이 제게 얼마간 변화를 가져오기는 했지요. 그 일들은 제가 바랄 수 있었던 가장 좋은 행운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예전의 제가 아니게 된 것도 아니고, 그대의 용맹하고 무적인 팔이 지닌 용맹에 기대어 힘을 얻으려던, 늘 품어 온 그 생각을 버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나리, 그대의 너그러움으로 저를 낳아 주신 아버님께 명예를 돌려 드리시고, 그분을 앞일을 내다보는 신중한 분으로 여겨 주소서. 그분은 그 학식을 써서 제 불행을 바로잡을 이토록 쉽고 참된 길을 찾아내셨으니까요. 나리, 그대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누리는 이 행운을 결코 얻지 못했으리라 믿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참된지는 여기 계신 이분들 대부분이 좋은 증인이십니다. 남은 일은 내일 길을 떠나는 것뿐이나이다. 오늘은 이제 얼마 가지 못할 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바라는 좋은 결말의 나머지는 하느님과 그대 가슴의 용맹에 맡기겠나이다."
슬기로운 도로테아가 이렇게 말하자, 돈키호테는 그 말을 듣자마자 산초에게 돌아서서 몹시 화난 기색으로 말했다.
"이제 말하마, 산초 녀석아, 너는 에스파냐에서 제일가는 악당 녀석이다. 말해 봐라, 이 떠돌이 도둑놈아, 이 공주님이 도로테아라는 아가씨로 바뀌었다고, 내가 거인에게서 베었다고 여기는 머리가 너를 낳은 화냥년이라고, 그 밖에도 내 평생 그토록 갈피를 못 잡은 적이 없을 만큼 나를 어지럽힌 헛소리를 방금 늘어놓지 않았느냐? 맹세코……" 그러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너를 혼쭐을 내서, 앞으로 이 세상에 있을 편력 기사들의 거짓말쟁이 종자들 모두의 정수리에 소금을 쳐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주고 싶구나!"
"진정하세요, 주인 나리." 산초가 대답했다. "미코미코나 공주 아씨가 둔갑한 일이라면 제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거인의 머리, 아니 적어도 가죽 부대에 구멍이 난 일하고 피가 붉은 포도주였다는 일만큼은, 하느님께 맹세코 제가 잘못 안 게 아니에요. 가죽 부대들이 나리 침대 머리맡에 찢어진 채로 있고, 붉은 포도주가 방을 호수로 만들어 놨거든요. 못 믿으시겠으면 달걀 부칠 때 보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주인장 나리께서 손해 본 걸 몽땅 물어내라고 하실 때 보시게 될 거란 말이죠. 나머지 일, 여왕 아씨가 예전 그대로 계신 일은 저도 진심으로 기뻐요. 이웃집 자식 누구나처럼 저한테도 제 몫이 걸려 있으니까요."
"이제 내가 말하마, 산초." 돈키호테가 말했다. "너는 얼간이다. 용서해 다오. 그만하자."
"그만합시다." 돈 페르난도가 말했다. "이 이야기는 더 하지 맙시다. 공주님께서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떠나자고 하시니 그렇게 하기로 하고, 오늘 밤은 다가올 날까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보냅시다. 내일은 우리 모두 돈키호테 나리를 모시고 가겠소. 나리께서 떠맡으신 이 큰일을 이루어 가는 동안 해내실 용맹하고 전대미문인 무훈의 증인이 되고 싶으니 말이오."
"그대들을 섬기고 모실 사람은 바로 나요."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내게 베푸는 호의와 나를 좋게 보아 주는 마음에 깊이 감사하오. 그 평판이 참이 되도록 애쓰겠소. 그러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을 것이고, 목숨보다 더한 것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것까지 내놓겠소."
돈키호테와 돈 페르난도 사이에 정중한 말과 섬기겠다는 말이 숱하게 오갔다. 그러나 그때 객줏집에 들어선 나그네 하나가 이 모든 말을 잠재웠다. 그는 옷차림으로 보아 무어인의 땅에서 갓 돌아온 그리스도교도였다. 푸른 모직으로 지은 웃옷은 자락이 짧고 소매가 반쯤이며 깃이 없었고, 바지도 푸른 아마포였으며, 같은 빛깔의 챙 없는 모자를 썼다. 대추야자 빛 반장화를 신었고, 가슴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칼띠에 무어식 언월도를 차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당나귀를 탄 여자 하나가 들어왔는데, 무어 옷차림을 하고 머리에 쓴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금실 비단으로 지은 작은 모자를 쓰고, 어깨에서 발끝까지 덮는 알말라파라는 겉옷을 걸치고 있었다. 사내는 몸집이 다부지고 보기 좋았으며, 나이는 마흔을 조금 넘었고, 얼굴은 좀 가무잡잡하고, 콧수염이 길고 턱수염은 아주 단정했다. 한마디로 그의 풍채로 보아, 옷만 잘 입었더라면 사람들은 그를 지체 높고 가문 좋은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방을 달라고 했다가 객줏집에 빈방이 없다는 말을 듣자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옷차림으로 보아 무어 여자인 듯한 이에게 다가가 두 팔로 안아 당나귀에서 내려 주었다. 루스신다, 도로테아, 객줏집 안주인과 그 딸, 마리토르네스는 처음 보는 낯선 옷차림에 이끌려 무어 여자를 에워쌌다. 늘 상냥하고 정중하고 슬기로웠던 도로테아는, 그 여자도 그 여자를 데려온 사람도 방이 없어 애태우는 듯해 그 여자에게 말했다.
"아씨, 여기 편히 모실 것이 없다고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객줏집에는 원래 그런 게 없는 법이니까요. 그래도 저희와 함께 지내시겠다면……" 그러면서 도로테아는 루스신다를 가리켰다. "……이 길을 오시는 동안 이보다 못한 대접을 받은 곳도 있었을 거예요."
얼굴을 가린 여자는 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가슴 위에 엇갈려 얹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굽혔을 뿐인데, 고맙다는 표시였다. 그 여자가 말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은 틀림없이 무어 여자라서 그리스도교도의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때 그때까지 다른 일을 보던 포로가 왔다. 여자들이 모두 자기와 함께 온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여자가 무슨 말을 들어도 잠자코만 있는 것을 보자 그가 말했다.
"아씨들, 이 아가씨는 내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제 나라 말 말고는 다른 어떤 말도 할 줄 모르오. 그래서 여쭌 말에 대답하지 못했고 지금도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오."
"다른 걸 묻는 게 아니에요." 루스신다가 대답했다. "오늘 밤 저희와 함께 지내시면서 저희가 묵을 자리를 나눠 쓰시라고 권할 뿐이에요. 형편이 닿는 대로 편히 모실게요. 도움이 필요한 낯선 분이라면 누구든 기꺼이 섬겨야 마땅하지만, 섬기는 분이 여자라면 더욱 그렇지요."
"이 아가씨와 나를 대신해" 포로가 대답했다. "아씨의 손에 입 맞추오. 베풀어 주신 호의를 마땅히 그래야 하는 만큼 깊이 고맙게 여기오. 이런 때에, 아씨의 모습이 보여 주는 그런 분들께서 베푸시는 호의이니 아주 큰 호의임이 분명하오."
"말씀해 보세요, 나리." 도로테아가 말했다. "이분은 그리스도교도인가요, 무어인인가요? 옷차림과 말 없음을 보니 저희가 바라지 않는 쪽이 아닐까 싶어서요."
"옷차림과 몸은 무어인이지만, 영혼은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교도요. 그리스도교도가 되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그럼 세례는 받지 않았나요?" 루스신다가 되물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소." 포로가 대답했다. "제 조국이자 고향인 알제를 떠나온 뒤로 말이오. 그리고 지금까지는, 우리 어머니 거룩한 교회가 정한 의식을 먼저 다 배우지 않고서라도 세례를 주어야 할 만큼 죽음이 가까이 닥친 위험을 겪은 적도 없었소.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머지않아 이 사람의 신분에 걸맞은 격식을 갖추어 세례를 받게 될 것이오. 이 사람은 이 옷차림과 내 옷차림이 보여 주는 것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오."
이 말에 듣고 있던 이들은 모두 그 무어 여자와 포로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때는 내력을 캐물을 때가 아니라 쉬게 해 줄 때라고 보았기에 아무도 묻지 않았다. 도로테아는 그 여자의 손을 잡아 자기 곁에 앉히고 얼굴 가리개를 벗어 달라고 청했다. 무어 여자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달라는 듯 포로를 바라보았다. 그가 아랍어로, 얼굴 가리개를 벗어 달라고들 하니 그렇게 하라고 일러 주자 그 여자는 가리개를 벗었다. 드러난 얼굴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도로테아는 그 여자가 루스신다보다 아름답다고 여겼고, 루스신다는 도로테아보다 아름답다고 여겼다. 둘러선 사람들은 모두, 두 사람의 얼굴에 견줄 만한 얼굴이 있다면 바로 그 무어 여자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았고, 어떤 점에서는 그 여자가 더 낫다고 보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움에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뜻을 끌어당기는 특권과 은총이 있는 법이어서, 모두가 곧 그 아름다운 무어 여자를 섬기고 보살피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돈 페르난도가 포로에게 무어 여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렐라 소라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여자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도에게 무엇을 물었는지 알아듣고, 안타까움과 애교가 가득한 얼굴로 몹시 서둘러 말했다.
"아니, 아니, 소라이다 아니! 마리아, 마리아!" 소라이다가 아니라 마리아라는 이름이라는 뜻이었다.
무어 여자가 그 말을 할 때 담긴 깊은 마음이, 듣고 있던 이들 몇몇의 눈에서, 특히 본디 마음이 여리고 인정 많은 여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한 방울 넘게 자아냈다. 루스신다는 그 여자를 깊은 사랑으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래요. 마리아, 마리아."
무어 여자가 그 말에 대답했다.
"그래, 그래. 마리아. 소라이다 마칸헤!" 마칸헤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는 사이 밤이 다가왔다. 돈 페르난도와 함께 온 이들의 분부에 따라 객줏집 주인은 힘닿는 대로 가장 좋은 저녁을 차리려고 부지런히 정성을 쏟았다. 때가 되자 모두 하인들 식당에나 있을 법한 긴 식탁에 둘러앉았는데, 객줏집에는 둥근 식탁도 네모난 식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키호테가 사양하는데도 상석, 곧 맨 윗자리를 그에게 내주었다. 돈키호테는 자기가 미코미코나 아씨의 호위자이니 아씨가 자기 곁에 앉아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에 루스신다와 소라이다가 앉고, 그 맞은편에 돈 페르난도와 카르데니오가, 그다음에 포로와 다른 기사들이 앉았으며, 아씨들 곁에는 신부와 이발사가 앉았다. 그렇게 그들은 아주 즐겁게 저녁을 먹었는데, 돈키호테가 먹기를 멈추고, 산양치기들과 저녁을 먹을 때 그토록 길게 말하게 했던 것과 같은 기운에 이끌려 입을 열자 즐거움은 더욱 커졌다.
"참으로, 잘 생각해 보면, 여러분, 편력 기사도의 규율을 받드는 사람들은 크고 전대미문인 일들을 보게 되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이 성의 문으로 들어와 우리가 이렇게 있는 모습을 보는 사람 가운데, 우리가 바로 우리라고 판단하고 믿을 이가 이 세상 산 사람 중에 누가 있겠소? 내 곁에 있는 이 아씨가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위대한 여왕이고, 내가 명성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슬픈 얼굴의 기사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소? 이제 의심할 것이 없소. 이 기예와 직분은 사람들이 고안해 낸 다른 모든 기예와 직분을 넘어서며, 더 많은 위험에 놓일수록 그만큼 더 귀히 여겨야 하오. 학문이 무예보다 낫다고 말하는 자들은 내 앞에서 물러나라 하시오. 그들이 누구든 나는 그들에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해 주겠소. 그런 자들이 흔히 내세우고 가장 굳게 기대는 이치는, 정신의 수고가 몸의 수고를 넘어서며 무예는 몸으로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오. 마치 무예가 힘만 세면 그만인 막노동꾼의 일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혹은 무예를 업으로 삼는 우리가 무예라 부르는 것 속에, 실행하려면 큰 지성이 필요한 굳센 용기의 행위들이 담겨 있지 않기라도 하다는 듯이, 혹은 군대를 거느리거나 포위된 도시를 지키는 일을 맡은 전사의 마음이 몸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으로도 수고하지 않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이오. 그렇지 않다면, 적의 의도와 계획과 계략과 어려움을 알아내고 짐작하는 일, 두려운 손해를 미리 막는 일을 몸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지 보시오. 이 모든 일은 지성의 행위이고, 거기에 몸은 아무 몫도 없소. 그러니 무예에도 학문처럼 정신이 필요하다면, 이제 학자의 정신과 전사의 정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수고하는지 봅시다. 그것은 저마다 향해 가는 목적과 종착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오. 더 고귀한 목적을 겨누는 뜻일수록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하니까 말이오. 학문의 목적과 종착지는……, 지금 나는 신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오. 신학은 영혼을 하늘로 이끌고 인도하는 것을 과녁으로 삼으니, 이렇게 끝없는 목적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견줄 수 없소. 내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문이오. 그 목적은 분배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저마다 제 몫을 받게 하고, 좋은 법이 지켜지도록 헤아리고 힘쓰는 데 있소. 참으로 너그럽고 높고 크게 칭송받을 만한 목적이오. 그러나 무예가 겨누는 목적만큼 칭송받을 만하지는 않소. 무예는 평화를 과녁이자 목적으로 삼는데, 평화야말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선이오. 그래서 세상이 처음 받고 사람들이 처음 받은 기쁜 소식은, 우리의 낮이 된 그 밤에 천사들이 하늘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선한 뜻을 품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하고 노래하며 전한 소식이었소. 그리고 하늘과 땅의 가장 훌륭한 스승께서 가까운 이들과 아끼는 이들에게 가르치신 인사는, 어느 집에 들어가거든 '이 집에 평화가 있을지어다' 하고 말하라는 것이었소. 또 여러 번 그들에게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남기노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그런 손이 주고 남긴 보석이요 담보라 할 만하오. 그 보석이 없으면 땅에도 하늘에도 어떤 선도 있을 수 없소. 이 평화가 전쟁의 참된 목적이오. 무예라 하든 전쟁이라 하든 같은 말이니까. 그러면 전쟁의 목적은 평화이고 이 점에서 학문의 목적보다 낫다는 이 진리를 앞에 놓고서, 이제 학자의 몸이 치르는 수고와 무예를 업으로 삼는 이의 몸이 치르는 수고로 넘어가 어느 쪽이 더 큰지 봅시다."
돈키호테가 어찌나 조리 있고 훌륭한 말로 이야기를 이어 갔던지, 그때만큼은 듣고 있던 사람 누구도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길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 대부분이 무예를 제 몫으로 타고난 기사들이었으므로 아주 기꺼이 귀를 기울였고,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학생의 수고는 이러하다고 말하겠소. 무엇보다 가난이오. 학생이 모두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경우를 될 수 있는 데까지 극단으로 밀어 보자는 것이오. 그런데 가난을 겪는다고 말했으니 그의 불운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을 듯하오. 가난한 사람에게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는 이 가난을 여러 갈래로 겪소. 굶주림으로, 추위로, 헐벗음으로, 때로는 그 모두를 한꺼번에. 그래도 아주 못 먹을 만큼 가난하지는 않소. 남들 먹는 때보다 좀 늦더라도, 부자들이 남긴 찌꺼기일지라도 먹기는 먹소. 학생들끼리 '수프 얻어먹으러 다닌다'고 부르는 이것이 학생의 가장 큰 비참이오. 그리고 남의 화로나 벽난로 하나쯤은 아주 없지 않으니, 덥혀 주지는 못해도 추위를 누그러뜨리기는 하고, 밤에는 그래도 지붕 밑에서 자오. 다른 자잘한 일들, 이를테면 속옷이 모자라고 신발이 넉넉지 않은 것, 옷이 닳고 보풀이 다 빠진 것, 그리고 운 좋게 잔치라도 얻어걸리면 그토록 신이 나서 배가 터지게 먹어 대는 일까지 들추고 싶지는 않소. 내가 그린 이 거칠고 험한 길을 따라, 여기서 비틀거리고 저기서 넘어지고 저쪽에서 일어나고 이쪽에서 또 넘어지며 그들은 바라던 학위에 이르오. 그 학위를 얻고 나서 많은 이들이 저 시르티스 여울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지나, 마치 순풍 같은 행운에 실려 날아가듯, 의자 하나에 앉아 세상을 호령하고 다스리는 것을 우리는 보았소. 그들의 굶주림은 배부름으로, 추위는 서늘한 쉼으로, 헐벗음은 화려한 옷으로, 거적 위의 잠은 홀란드 아마포와 다마스크 비단 위에서 누리는 쉼으로 바뀌었으니, 그들의 덕에 마땅히 돌아갈 상이오. 그러나 그들의 수고를 병사요 전사인 이들의 수고와 맞대어 견주어 보면, 곧 말하겠지만, 모든 점에서 한참 뒤처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