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돈키호테가 라만차의 슬기로운 신사와 겪은 일
앞서 말한 그 기쁨과 흐뭇함과 우쭐함을 안고 돈키호테는 길을 이어 갔다. 지난번 승리로 그는 자기가 이 시대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편력 기사라고 여겼고, 앞으로 자기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험은 모두 이미 끝냈고 다행스럽게 마무리했다고 셈했으며, 마법이니 마법사니 하는 것은 하찮게 여겼다. 기사도를 행하는 동안 얻어맞은 셀 수 없는 몽둥이찜질도, 이를 절반이나 부러뜨린 돌팔매도, 갤리선 죄수들의 배은망덕도, 양구에스 사람들의 무례함과 소나기처럼 쏟아진 말뚝 세례도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자기 아씨 둘시네아의 마법을 풀 재주나 수나 방도를 찾아낸다면, 지난 세기의 가장 운 좋은 편력 기사가 얻었거나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행운도 부럽지 않으리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가 이런 상상에 온통 사로잡혀 가고 있을 때 산초가 말했다.
"나리, 신기하지 않아요? 아직도 제 눈앞에 제 친구 토메 세시알의 그 터무니없이 큰, 치수를 넘는 코가 어른거려요."
"그런데 산초, 너는 혹시 거울의 기사가 학사 카라스코였고 그의 종자가 네 친구 토메 세시알이었다고 믿느냐?"
"그 말씀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산초가 대답했다. "제가 아는 건, 그 사람이 제 집이며 마누라며 자식들에 대해 일러 준 표지는 그 사람 말고는 아무도 일러 줄 수 없다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코를 떼고 나니 얼굴이 토메 세시알의 얼굴 그대로였어요. 제가 우리 마을에서, 바로 우리 집 담 하나 건너에서 여러 번 본 그 얼굴 말이에요. 말소리도 똑같았고요."
"이치를 따져 보자, 산초." 돈키호테가 맞받았다. "이리 와 보아라. 학사 삼손 카라스코가 치는 무기와 막는 무기로 무장하고 편력 기사가 되어 나와 싸우러 왔다는 게 무슨 생각으로 말이 되겠느냐? 내가 혹시 그의 원수였느냐? 내가 그에게 나를 미워할 빌미를 준 적이 있느냐? 내가 그의 연적이냐, 아니면 그가 무예를 업으로 삼아서 내가 무예로 얻은 명성을 시샘하기라도 한다는 거냐?"
"그럼 나리" 산초가 대답했다. "그 기사가, 누구였든 간에, 학사 카라스코를 그렇게 쏙 빼닮고, 그 종자는 제 친구 토메 세시알을 그렇게 빼닮은 걸 두고는 뭐라고 해야 해요? 나리 말씀대로 그게 마법이라면, 세상에 그 둘 말고 닮을 만한 사람이 둘도 없었대요?"
"모두가 나를 쫓아다니는 사악한 마법사들의 술수요 꾀다."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그자들은 내가 싸움에서 이기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고, 진 기사가 내 벗인 학사의 얼굴을 보이도록 손을 써 두었다. 내가 그에게 품은 우정이 내 칼날과 내 팔의 매서움 사이에 끼어들어 내 마음의 정당한 분노를 누그러뜨리게 하고, 그렇게 해서 속임수와 거짓으로 내 목숨을 빼앗으려던 자가 제 목숨을 건지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 증거로, 오, 산초, 너도 거짓말을 하거나 속지 못하게 할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마법사들에게는 얼굴을 이 얼굴에서 저 얼굴로 바꾸어 아름다운 것을 추하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쉬우냐. 이틀도 안 된 일인데, 너는 비할 데 없는 둘시네아의 아름다움과 늠름함을 흠 하나 없이 본래 모습 그대로 제 눈으로 보았고, 나는 눈에 백태가 끼고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투박한 농사꾼 아낙의 추하고 천한 모습으로 보았다. 게다가 그토록 고약한 둔갑을 감히 저지른 그 사악한 마법사라면, 내 손에서 승리의 영광을 빼앗으려고 삼손 카라스코와 네 친구로 둔갑시키는 일쯤은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는 해도 나는 위안을 얻는다. 결국 어떤 모습이었든 나는 내 원수를 이긴 승자로 남았으니까."
"하느님께서 모든 일의 진실을 아시겠지요." 산초가 대답했다.
산초는 둘시네아의 둔갑이 자기가 꾸민 꾀요 속임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인의 허황한 생각이 흡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다가 제 속임수가 들통날까 봐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이런 말을 나누고 있을 때, 그들 뒤에서 같은 길을 따라오던 사내 하나가 그들을 따라잡았다. 그는 아주 아름다운 얼룩 회색 암말을 타고, 황갈색 벨벳 조각을 덧댄 고운 초록 모직 외투를 입고, 같은 벨벳으로 지은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암말의 마구는 들판용 짧은 등자 마구였는데, 이것도 자줏빛과 초록빛이었다. 초록과 금빛으로 된 넓은 칼띠에 무어식 언월도를 매달고 있었고, 반장화도 칼띠와 같은 솜씨로 만든 것이었다. 박차는 금도금이 아니라 초록 칠을 한 것이었는데, 어찌나 매끈하게 윤이 났던지 옷 전체와 어우러져 순금으로 만든 것보다 더 보기 좋았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다가오자 공손하게 인사하고 암말에 박차를 가해 앞질러 가려 했다. 그러자 돈키호테가 그에게 말했다.
"멋쟁이 나리, 혹시 나리께서 우리와 같은 길을 가시고 서두를 일이 없으시다면, 함께 가 주시면 고맙겠소."
"사실" 암말을 탄 사내가 대답했다. "제 암말과 함께 있으면 그 말이 날뛸까 봐 걱정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앞질러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괜찮아요, 나리." 이때 산초가 대답했다. "나리의 암말 고삐를 늦추셔도 괜찮아요. 우리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얌전하고 점잖은 말이거든요. 이런 일에서 한 번도 못된 짓을 한 적이 없어요. 딱 한 번 제멋대로 그런 짓을 했다가 주인 나리와 제가 일곱 곱절로 갚았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원하시면 걸음을 멈추셔도 돼요. 그 암말을 두 접시 사이에 담아 대령한대도 우리 말은 틀림없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까요."
나그네는 고삐를 당겨 멈추고 돈키호테의 풍채와 얼굴을 보고 놀랐다. 돈키호테는 투구를 쓰지 않았는데, 산초가 그것을 잿빛 당나귀의 길마 앞턱에 짐 보따리처럼 매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초록 옷의 사내가 돈키호테를 유심히 보았다면, 돈키호테는 초록 옷의 사내를 그보다 훨씬 더 유심히 보았다. 그가 반듯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는 쉰쯤 되어 보였고, 흰머리는 몇 가닥 안 되었으며, 얼굴은 매부리코였고, 눈빛은 쾌활하면서도 진지했다. 결국 옷차림과 풍채로 보아 그는 좋은 자질을 갖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초록 옷의 사내가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보고 판단하기로는, 이런 차림새나 이런 생김새의 사람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돈키호테가 탄 말의 길쭉함, 그의 몸집의 큼직함, 그의 얼굴의 여윔과 누런 빛, 그의 갑옷, 그의 몸짓과 몸가짐에 놀랐다. 그 고장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볼 수 없던 모습이요 꼴이었다. 돈키호테는 나그네가 자기를 그토록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을 잘 알아차렸고, 그가 넋을 놓고 있는 데서 그의 바람을 읽었다. 그는 몹시 예의 바르고 모두를 기쁘게 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상대가 무엇을 묻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말했다.
"나리께서 내게서 보신 이 모습이 하도 새롭고 흔히 보는 모습에서 벗어나 있으니, 나리께서 놀라셨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겠소.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듯 이렇게 말씀드리면 나리도 놀라기를 그치실 것이오. 나는 기사요.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기사들,
모험을 찾아 떠나는 기사들 말이오.
"나는 고향을 떠났고, 재산을 저당 잡혔고, 편안한 삶을 버리고, 운명의 여신의 품에 몸을 맡겼소. 여신이 가장 좋다고 여기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도록 말이오. 나는 이미 죽어 버린 편력 기사도를 되살리고 싶었소. 여러 날 동안 여기서 걸려 넘어지고 저기서 쓰러지고, 이쪽에서 굴러떨어지고 저쪽에서 일어서며, 나는 과부들을 돕고 아가씨들을 지키고 유부녀와 고아와 피후견인을 보살피면서 내 바람의 큰 부분을 이루었소. 그것이 편력 기사들의 본래 타고난 소임이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용맹하고 수많고 그리스도교도다운 무훈 덕분에 이미 세상의 거의 모든, 아니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쇄된 책에 실릴 만한 사람이 되었소. 내 이야기는 3만 권이 찍혔고, 하늘이 막지 않는다면 3만의 수천 배는 찍혀 나올 기세요. 결국 모든 것을 몇 마디로, 아니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나는 라만차의 돈키호테요. 다른 이름으로는 슬픈 얼굴의 기사라고 불리오. 제 입으로 하는 칭찬은 사람을 천하게 만들지만, 나는 이따금 내 칭찬을 내 입으로 할 수밖에 없소. 그것을 대신 말해 줄 사람이 곁에 없을 때 말이오. 그러니 신사 나리, 내가 누구이고 무슨 업을 하는지 이제 아셨으니, 앞으로는 이 말도, 이 창도, 이 방패도, 이 종자도, 이 갑옷을 다 합친 것도, 내 얼굴의 누런 빛도, 내 깡마른 몸도 나리를 놀라게 하지 못할 것이오."
이렇게 말하고 돈키호테는 입을 다물었다. 초록 옷의 사내는 대답이 늦어지는 것으로 보아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 뒤에 그가 말했다.
"기사 나리, 나리께서는 제가 넋을 놓은 것을 보고 제 바람을 잘 알아맞히셨습니다. 그러나 나리를 뵙고 제가 느낀 놀라움을 거두어 주시지는 못했습니다. 나리 말씀대로 나리가 누구인지 알면 그 놀라움이 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알고 나니 더 어리둥절하고 놀랍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편력 기사가 있고, 참된 기사도를 다룬 이야기가 인쇄되어 나와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오늘날 이 땅에 과부를 돕고 아가씨를 지키고 유부녀의 명예를 받들고 고아를 보살피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고, 제 눈으로 나리에게서 보지 않았더라면 믿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에 찬미를! 나리께서 인쇄되었다고 하시는 나리의 드높고 참된 기사도 이야기 덕분에, 세상에 가득하던 꾸며 낸 편력 기사들의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은 잊혔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좋은 풍속을 크게 해치고 좋은 역사책들을 망치고 그 믿음을 떨어뜨렸으니까요."
"편력 기사들의 이야기가 꾸며 낸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는"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할 말이 많소."
"아니, 그런 이야기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초록 사내가 대답했다.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의심하오."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 둡시다. 우리 길이 길어진다면, 그것들이 참되지 않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가신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하느님께 기대어 나리께 깨우쳐 드리고 싶소."
돈키호테의 이 마지막 말에서 나그네는 그가 얼빠진 사람임이 틀림없다는 낌새를 챘고, 다른 말로 그것이 확인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돈키호테는 자기가 자기의 처지와 삶을 털어놓았으니 그도 자기가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청했다. 이 말에 초록 외투의 기사가 대답했다.
"슬픈 얼굴의 기사 나리, 저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오늘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갈 마을 태생의 시골 귀족입니다. 보통보다는 넉넉한 재산이 있고, 이름은 돈 디에고 데 미란다라고 합니다. 아내와 자식들과 벗들과 함께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 소일거리는 사냥과 낚시지만, 매나 사냥개는 기르지 않고 길들인 미끼 자고새나 겁 없는 흰족제비 정도를 둡니다. 책은 여섯 다스쯤 있는데, 에스파냐 말로 된 것도 있고 라틴어로 된 것도 있으며, 역사책도 있고 신앙 서적도 있습니다. 기사 소설은 아직 우리 집 문턱을 넘어온 적이 없습니다. 저는 신앙 서적보다 세속의 책을 더 자주 넘겨 보는데, 점잖은 오락이 되고 말씨로 즐거움을 주며 지어낸 이야기로 놀라게 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라면 말입니다. 하기야 에스파냐에는 그런 책이 아주 드물지요. 이따금 이웃과 벗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을 자주 초대합니다. 제 잔치는 깔끔하고 정갈하며 결코 인색하지 않습니다. 저는 험담을 좋아하지 않고 제 앞에서 남을 험담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남의 삶을 캐고 들지 않고, 남이 하는 일을 살쾡이처럼 엿보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미사에 가고, 제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되 선행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위선과 허영이 제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데, 그것들은 아무리 조심하는 마음이라도 슬그머니 사로잡는 원수들이니까요. 사이가 틀어진 줄 아는 사람들은 화해시키려고 애쓰고, 성모님을 공경하며, 우리 주 하느님의 끝없는 자비를 늘 믿습니다."
산초는 그 시골 귀족이 털어놓는 삶과 소일거리 이야기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착하고 거룩한 삶이며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기적을 행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잿빛 당나귀에서 훌쩍 뛰어내려, 허둥지둥 그의 오른쪽 등자를 붙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또 맞추었다. 그것을 보고 시골 귀족이 물었다.
"여보게, 무얼 하는 겐가? 이게 무슨 입맞춤인가?"
"입 맞추게 해 주세요." 산초가 대답했다. "제가 평생 처음 본, 짧은 등자로 말 타신 성인이 나리 같거든요."
"나는 성인이 아닐세." 시골 귀족이 대답했다. "큰 죄인이지. 자네야말로 착한 사람이 틀림없네. 자네의 순박함이 그걸 보여 주니까."
산초는 다시 길마 위로 돌아갔다. 그는 주인의 깊은 우울 속에서 웃음을 끌어냈고, 돈 디에고를 새삼 놀라게 했다. 돈키호테는 그에게 자식이 몇이냐고 물었고, 참된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옛 철학자들이 지고의 선으로 꼽은 것 가운데 하나가 타고난 복과 재물의 복, 벗이 많은 것, 그리고 훌륭한 자식이 많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돈키호테 나리, 저는" 시골 귀족이 대답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애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애가 못돼서가 아니라 제가 바라는 만큼 착하지 않아서입니다. 나이는 열여덟쯤 됩니다. 그 가운데 여섯 해를 살라망카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며 보냈지요. 그런데 다른 학문을 공부하게 하려 했더니, 시라는 학문, 그것을 학문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만, 거기에 어찌나 푹 빠져 있는지 제가 공부했으면 하는 법학도, 모든 학문의 여왕인 신학도 도무지 거들떠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애가 제 가문의 면류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는 임금님들께서 덕 있고 훌륭한 학문에 높은 상을 내리시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덕 없는 학문은 거름 더미 속의 진주니까요. 그 애는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의 어느 시행을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마르티알리스가 어느 풍자시에서 외설스러웠는지 아닌지, 베르길리우스의 이런저런 시행을 이렇게 읽어야 하는지 저렇게 읽어야 하는지 따지느라 하루를 다 보냅니다. 결국 그 애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앞서 말한 시인들의 책, 그리고 호라티우스, 페르시우스, 유베날리스, 티불루스의 책과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에스파냐 말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별로 쳐주지 않지요. 그렇게 에스파냐 말로 쓴 시를 싫어하는 티를 내면서도, 지금은 살라망카에서 보내온 네 행짜리 시에 글로사, 곧 풀이시를 짓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시 겨루기에 낼 시인 것 같습니다."
이 모든 말에 돈키호테가 대답했다.
"나리, 자식은 부모의 오장육부 한 조각이오. 그러니 착하든 못됐든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영혼을 사랑하듯 사랑해야 하오. 부모가 할 일은 어려서부터 자식을 덕과 좋은 가르침과 착하고 그리스도교도다운 풍속의 길로 이끌어서, 자식이 자라서 부모의 노년을 받치는 지팡이가 되고 후손의 영광이 되게 하는 것이오. 이 학문을 공부하라, 저 학문을 공부하라 억지로 시키는 것은 옳다고 여기지 않소. 설득하는 것은 해롭지 않겠지만 말이오. 그리고 밥벌이를 위해(pane lucrando) 공부할 필요가 없을 때, 그러니까 하늘이 그런 걱정을 덜어 줄 부모를 내려 준 운 좋은 학생이라면, 나는 그 학생이 가장 마음이 끌리는 학문을 따르게 내버려 두라고 하겠소. 시라는 학문은 쓸모보다는 즐거움이 더 크지만, 그것을 지닌 사람의 명예를 더럽히는 학문은 아니오. 시골 귀족 나리, 내 생각에 시는 어리고 여리며 더없이 아름다운 아가씨와 같소. 다른 많은 아가씨들, 곧 다른 모든 학문이 그 아가씨를 풍요롭게 하고 다듬고 꾸미는 일을 맡고 있소. 그 아가씨는 그 모든 학문을 부려야 하고, 모든 학문은 그 아가씨에게서 권위를 얻어야 하오. 그러나 이 아가씨는 함부로 주무르거나 거리로 끌고 다니거나 광장 모퉁이나 궁궐 구석구석에 드러내 놓기를 바라지 않소. 이 아가씨는 놀라운 힘을 지닌 연금술로 빚어져서, 그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그를 값을 매길 수 없는 순금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오. 그를 지닌 사람은 그를 단단히 붙들어서 천박한 풍자시나 몰염치한 소네트로 흘러가게 두지 말아야 하오. 영웅 서사시나 비통한 비극이나 즐겁고 잘 짜인 희극이라면 모를까, 결코 팔아넘길 것이 되어서도 안 되오. 그 아가씨가 감춘 보물을 알아볼 줄도 귀히 여길 줄도 모르는 광대들이나 무지한 무리가 그를 다루게 두어서도 안 되오. 그리고 나리, 내가 여기서 무지한 무리라고 부르는 것이 천하고 낮은 백성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귀족이든 왕자든 무지한 무리의 축에 들 수 있고 또 들어야 마땅하오. 그러니 내가 말한 그런 조건을 갖추어 시를 다루고 지니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문명한 나라에서 이름이 나고 귀히 여겨질 것이오. 그리고 나리께서 아드님이 에스파냐 말로 쓴 시를 별로 쳐주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그다지 옳은 생각이 아니오. 그 까닭은 이렇소. 위대한 호메로스는 그리스 사람이었으니 라틴어로 쓰지 않았고, 베르길리우스는 라틴 사람이었으니 그리스어로 쓰지 않았소. 요컨대 옛 시인들은 모두 젖과 함께 빨아들인 말로 썼고, 제 생각의 드높음을 밝히려고 남의 나라 말을 찾아 나서지 않았소. 사정이 이러하니, 이 관습이 모든 나라에 퍼져서 독일 시인이 제 나라 말로 쓴다고 업신여겨지지 않고, 카스티야 시인도, 심지어 비스카야 시인도 제 말로 쓴다고 업신여겨지지 않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오. 그러나 나리, 내가 짐작하기로 아드님은 에스파냐 말로 쓴 시와 사이가 나쁜 것이 아니라, 타고난 충동을 꾸며 주고 일깨우고 도와줄 다른 말도 다른 학문도 모르는 채 그저 에스파냐 말로만 시를 쓰는 시인들과 사이가 나쁜 것이오. 그런데 이 점에서도 잘못이 있을 수 있소. 참된 견해에 따르면 시인은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오. 타고난 시인은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시인으로 나온다는 말이오. 하늘이 준 그 기질로, 더 공부하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시를 지으니, '우리 안에 신이 계시다(est Deus in nobis)……' 운운한 사람의 말을 참말로 만드는 것이오.1 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교의 도움을 받는 타고난 시인은 기교만 알아서 시인이 되려는 시인보다 훨씬 나을 것이고 그를 앞지르리라는 것이오. 기교는 자연을 앞지르지 못하고 자연을 완전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자연과 기교가, 기교와 자연이 어우러지면 더없이 완전한 시인이 나올 것이오. 시골 귀족 나리, 그러니 내 이야기의 결론은 이것이오. 나리께서는 아드님이 제 별이 부르는 길로 가게 내버려 두시오. 아드님은 틀림없이 훌륭한 학생일 테고, 이미 학문의 첫 계단인 말의 계단을 다행스럽게 올랐으니, 그 말을 딛고 스스로 인간 학문의 꼭대기에 오를 것이오. 인간의 학문은 망토와 칼을 찬 신사에게 참 잘 어울려서, 주교에게 주교관이, 노련한 법률가에게 법복이 그러하듯 그를 꾸며 주고 명예롭게 하고 드높여 주오. 아드님이 남의 명예를 해치는 풍자시를 짓거든 나리께서 꾸짖고 벌하고 그 시를 찢어 버리시오. 그러나 호라티우스가 그토록 우아하게 했듯이 악덕을 두루 나무라는 호라티우스풍 풍자시를 짓거든 칭찬해 주시오. 시인이 시샘을 꾸짖는 글을 쓰고 시샘하는 자들을 시로 헐뜯는 것은, 다른 악덕도 마찬가지로, 누구를 짚어 가리키지만 않는다면 허락된 일이니까. 그러나 고약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폰토스의 섬들로 귀양 갈 위험도 무릅쓰는 시인들이 있소. 시인이 품행이 깨끗하면 그의 시도 깨끗할 것이오. 펜은 영혼의 혀요. 영혼에서 어떤 생각이 잉태되느냐에 따라 그 글도 그러할 것이오. 그리고 임금과 왕자들은 시라는 기적 같은 학문이 사려 깊고 덕 있고 진중한 사람들에게 깃든 것을 보면 그들에게 명예를 주고 귀히 여기고 재물을 내리며, 벼락도 해치지 못하는 나무의 잎으로 관을 씌워 주기까지 하오. 그런 관으로 관자놀이가 명예롭게 꾸며진 이들은 아무에게도 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표시로 말이오."
초록 외투의 기사는 돈키호테의 이야기에 몹시 놀랐고, 그를 얼빠진 사람으로 여기던 생각을 차츰 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한창일 때 산초는 그 이야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길에서 벗어나 곁에서 양젖을 짜던 양치기들에게 우유를 좀 얻으러 갔다. 시골 귀족이 돈키호테의 슬기와 훌륭한 언변에 더없이 흡족해하며 다시 이야기를 이으려던 참에, 돈키호테는 고개를 들어 그들이 가는 길로 왕실 깃발을 가득 단 수레 하나가 오는 것을 보았다. 무슨 새 모험이 틀림없다고 믿은 그는 큰 소리로 산초를 불러 투구를 가져오라고 했다. 산초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자 양치기들을 두고 잿빛 당나귀를 부리나케 몰아 주인이 있는 곳에 다다랐는데, 그 주인에게는 무시무시하고 터무니없는 모험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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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비디우스의 『행사력』에 나오는 구절이다. 뒤에 나오는 「폰토스의 섬들」로 귀양 간 시인도 오비디우스로,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노여움을 사 흑해 기슭 토미스로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