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Don Quixote제49장 산초 판사가 섬을 순찰하다 겪은 일
Contents
Log in

제49장 산초 판사가 섬을 순찰하다 겪은 일

우리는 위대한 통치자가 그림 그리듯 떠벌린 능구렁이 농사꾼 때문에 화가 나 시무룩해 있는 모습을 남겨 두고 왔다. 그 농사꾼은 집사에게서, 집사는 공작에게서 꾀를 일러 받아 산초를 놀리고 있었지만, 산초는 바보에 무뚝뚝하고 뚱뚱한 사람이었으면서도 그들 모두에게 꿋꿋이 맞섰다. 그는 함께 있던 사람들과, 공작의 편지에 관한 비밀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홀에 들어와 있던 페드로 레시오 박사에게 말했다.

"이제야 참으로 알겠소. 재판관과 통치자는 청동으로 되어 있어야 하고, 아니 되어 있을 수밖에 없겠소. 그래야 볼일 있다는 자들의 성화를 느끼지 않을 테니까. 그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제 볼일만 생각해서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제 말을 들어 주고 일을 처리해 주기를 바란단 말이오. 그리고 가엾은 재판관이 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고 일을 처리해 주지 않으면, 그럴 수가 없어서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도록 정해 둔 때가 아니어서든, 당장 재판관을 저주하고 뒤에서 수군거리고 뼈를 갉아 대고 집안 내력까지 들추어낸단 말이오. 볼일 있는 멍청이야, 볼일 있는 얼간이야, 서두르지 마라. 볼일을 보려면 알맞은 때와 형편을 기다려라. 밥 먹을 때나 잘 때 오지 마라. 재판관도 살과 뼈로 된 사람이라 본성이 저절로 요구하는 것을 본성에 주어야 한다. 나만 빼고 말이다. 나는 내 본성에 먹을 것을 주지 못하니까. 여기 앞에 계신 페드로 레시오 티르테아푸에라 박사 나리 덕분이지. 이 사람은 내가 굶어 죽기를 바라면서 이 죽음이 삶이라고 우기는데, 하느님께서 그런 삶을 이 사람과 이 사람 같은 무리 모두에게 내려 주시기를. 내 말은 못된 의사들 무리 말이오. 좋은 의사들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와 월계관을 받아 마땅하니까."

산초 판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그토록 우아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는데,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어서, 무거운 직무와 자리는 사람의 지성을 다듬어 주거나 아니면 둔하게 만들기 마련이라는 데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페드로 레시오 아구에로 데 티르테아푸에라 박사는 히포크라테스의 모든 잠언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 밤 그에게 저녁을 먹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통치자는 흡족해져서 밤이 오고 저녁 먹을 시각이 오기를 몹시 애타게 기다렸는데, 그가 보기에는 시간이 한자리에 꼼짝 않고 멈춰 서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토록 바라던 시각이 마침내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에게 양파를 곁들인 쇠고기 무침과 나이가 좀 든 송아지의 삶은 족발을 저녁으로 내주었다. 그는 밀라노의 들꿩이나 로마의 꿩, 소렌토의 송아지 고기, 모론의 자고새, 라바호스의 거위를 내준 것보다 더 맛있게 그것을 몽땅 먹어 치웠다. 그리고 저녁을 먹는 동안 박사 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보시오, 박사 나리. 앞으로는 나한테 사치스러운 것이나 맛이 별난 음식을 먹이려고 애쓸 것 없소. 그건 내 위장을 제자리에서 끌어내는 일이 될 테니까. 내 위장은 산양 고기, 쇠고기, 돼지 비계,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 순무와 양파에 길들어 있소. 그래서 다른 궁중 음식을 넣어 주면 깨작거리며 받아들이고 어떤 때는 역겨워하기까지 하오. 식사 시중장이 해 줄 수 있는 건 오야 포드리다라고 하는 이 잡탕 냄비를 나한테 갖다주는 거요. 이건 잡탕일수록 냄새가 좋고, 먹을 것이기만 하면 뭐든 원하는 대로 그 안에 쓸어 넣고 담아 둘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 주면 나는 고마워하고 언젠가 그 값을 치르겠소. 그리고 아무도 나를 놀리지 마시오. 우리가 사람이면 사람이고 아니면 아닌 거요. 우리 모두 사이좋게 어울려 살고 먹읍시다. 하느님께서 날을 밝히시면 모두에게 밝히시니까. 나는 '뇌물은 받지 말고 권리는 잃지 말라'는 말대로 이 섬을 다스리겠소. 그러니 모두 눈을 부릅뜨고 제 화살이나 잘 살피라고 하시오. 내가 알려 두는데, 악마가 칸티야나에 와 있으니 나한테 빌미를 주면 놀라운 꼴을 보게 될 거요. 아니, 꿀이 되어 보라지요, 파리 떼가 빨아 먹을 테니."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통치자 나리." 식사 시중장이 말했다. "나리께서 하신 말씀은 다 지당합니다. 저는 이 섬의 모든 섬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이 더없이 정성껏, 사랑과 호의를 다해 나리를 섬기겠노라고 약속드립니다. 나리께서 이 첫머리에 보여 주신 부드러운 통치는 나리께 해가 될 일을 하거나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으니까요."

"그러리라 믿소." 산초가 대답했다. "다른 짓을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들은 멍청이일 거요. 다시 말하지만 내 먹을 것과 내 잿빛 당나귀 먹을 것을 잘 챙겨 주시오. 이 일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요긴한 일이오. 그리고 때가 되면 순찰을 나갑시다. 나는 이 섬에서 온갖 더러운 것과 떠돌이, 게으름뱅이, 못된 짓으로 소일하는 자들을 쓸어 낼 생각이오. 벗들이여, 알아 두시오. 빈둥거리고 게으른 사람들은 나라에서, 부지런한 일벌들이 만든 꿀을 먹어 치우는 벌집의 수벌이나 마찬가지요. 나는 농사꾼을 보살피고, 시골 귀족에게는 그들의 특권을 지켜 주고, 덕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무엇보다 종교와 성직자들의 명예를 존중할 생각이오. 벗들이여, 이걸 어떻게 생각하시오? 내가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 거요, 아니면 괜히 머리만 쥐어짜는 거요?"

"통치자 나리, 어찌나 많은 말씀을 하시는지" 집사가 말했다. "저는 나리처럼 학식이 없는, 제가 알기로는 하나도 없으신 분이 금언과 깨우침으로 가득 찬 그런 말씀을 그렇게 많이 하시는 걸 보고 놀랄 따름입니다. 우리를 보낸 분들도, 여기 온 우리도 나리의 재주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지는 못했으니까요. 세상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군요. 장난이 참말이 되고, 놀리던 사람이 놀림을 당하게 되니 말입니다."

밤이 되었고, 통치자는 레시오 박사 나리의 허락을 받아 저녁을 먹었다. 그들은 순찰 채비를 했다. 통치자는 집사와 비서와 식사 시중장, 그리고 그의 행적을 기록에 남기는 일을 맡은 기록관과 함께 나섰고, 포졸과 서기들도 따랐는데,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웬만한 부대 하나를 이룰 만했다. 산초는 지팡이를 들고 그 한가운데에서 걸어갔는데, 그것은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마을 거리를 몇 군데 지나지 않아 칼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로 달려가 보니 단둘이서 싸우고 있었는데, 그들은 관헌이 오는 것을 보자 꼼짝 않고 섰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말했다.

"하느님과 임금님의 이름으로 사람 살려요! 사람 사는 이 마을에서 도둑질을 하고, 길 한복판에서 날강도 짓을 하는 걸 어떻게 참고 보란 말입니까?"

"진정하시오, 점잖은 양반." 산초가 말했다. "그리고 이 싸움의 까닭이 무엇인지 나한테 이야기해 보시오. 내가 통치자니까."

그러자 상대편 사내가 말했다.

"통치자 나리, 제가 아주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리께서 아셔야 할 것은, 이 신사 양반이 바로 맞은편 이 노름집에서 방금 1천 레알도 넘게 땄다는 겁니다. 어떻게 땄는지는 하느님이나 아시겠지요. 저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제 양심이 일러 주는 것을 모조리 거스르면서 미심쩍은 판을 한 번 이상 이 사람에게 유리하게 판정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딴 돈을 챙겼고, 저는 적어도 에스쿠도 한 닢쯤은 개평으로 주리라고 기대했지요. 좋은 판이든 나쁜 판이든 지켜보며 억지를 거들어 주고 싸움을 막아 주는 저 같은 점잖은 사람들한테 개평을 주는 게 관례요 관습이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은 돈을 주머니에 넣고 노름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분해서 이 사람을 쫓아와 좋고 점잖은 말로 적어도 8레알만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점잖은 사람이고, 제 부모가 가르쳐 주지도 물려주지도 않아서 직업도 벌이도 없다는 걸 이 사람도 아니까요. 그런데 이 능구렁이는 카쿠스 못지않은 도둑이요 안드라디야 못지않은 사기 노름꾼인데, 4레알밖에 안 주겠다지 뭡니까. 통치자 나리, 이 얼마나 낯가죽 두껍고 양심 없는 짓인지 보십쇼! 맹세코, 나리께서 오지 않으셨더라면 딴 돈을 토해 내게 하고 저울추가 몇 근짜리인지 똑똑히 알려 주었을 겁니다."

"이 말에 그대는 뭐라고 하겠소?" 산초가 물었다.

그러자 다른 사내는 상대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지만, 4레알밖에 주지 않으려 한 것은 자기가 그에게 여러 번 개평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개평을 바라는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하고, 딴 사람이 사기 노름꾼이고 그 돈이 부정하게 딴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알지 못하는 한 딴 사람과 셈을 따지지 말고 주는 대로 기쁜 얼굴로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자기가 그의 말처럼 도둑이 아니라 점잖은 사람이라는 증거로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보다 더 큰 증거가 없으니, 사기 노름꾼들은 늘 자기 정체를 아는 구경꾼들에게 공물을 바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습니다." 집사가 말했다. "통치자 나리, 이 사내들을 어떻게 하실지 보십시오."

"이렇게 하면 되겠소." 산초가 대답했다. "그대, 딴 사람은, 착하든 나쁘든 그저 그렇든, 당장 여기 그대에게 칼을 휘두른 이 사람에게 1백 레알을 주시오. 그리고 감옥의 가난한 죄수들 몫으로 30레알을 더 내놓아야 하오. 그리고 그대, 직업도 벌이도 없이 이 섬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은 당장 그 1백 레알을 받고 내일 하루 안에 이 섬을 떠나 십 년 동안 추방되는 거요. 그것을 어기면 남은 기한은 저세상에서 채우게 될 거요. 내가 그대를 칼 씌우는 기둥에 매달 테니까. 적어도 내 명령에 따라 사형 집행인이 매달 거요. 그리고 아무도 나한테 말대꾸하지 마시오. 손을 매섭게 대 줄 테니."

한 사람은 돈을 내놓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받았으며, 받은 사람은 섬을 떠나고 내놓은 사람은 집으로 갔는데, 통치자는 남아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가 힘이 없든지, 아니면 이 노름집들을 없애 버리든지 둘 중 하나요. 내가 어렴풋이 보기에는 아주 해로운 것들이니까."

"적어도 이 집은" 서기 하나가 말했다. "나리께서 없애지 못하실 겁니다. 아주 높은 분이 하는 곳인데, 그분이 해마다 잃는 돈이 카드로 버는 돈보다 비교도 안 되게 많거든요. 더 하찮은 다른 노름판에는 나리께서 힘을 보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데가 해를 가장 많이 끼치고 무례한 짓을 가장 많이 감추고 있으니까요. 귀한 기사님들이나 영주님들 댁에서는 이름난 사기 노름꾼들도 감히 속임수를 쓰지 못합니다. 노름이라는 악습이 이제 흔한 놀이가 되어 버렸으니, 어느 장인 집에서 노름을 하느니 귀한 댁에서 하는 편이 낫습니다. 장인 집에서는 불운한 사람 하나를 붙잡아 한밤중이 지나도록 산 채로 가죽을 벗겨 먹으니까요."

"그래, 서기 양반." 산초가 말했다. "그 일에는 할 말이 많다는 걸 나도 아오."

그때 포리 하나가 젊은이 하나를 붙잡아 와서 말했다.

"통치자 나리, 이 젊은 녀석이 우리 쪽으로 오다가 관헌이 보이자마자 돌아서서 사슴처럼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죄를 지은 놈이 틀림없다는 표시지요. 제가 쫓아갔는데, 녀석이 걸려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붙잡지 못했을 겁니다."

"이놈아, 왜 달아났느냐?" 산초가 물었다.

그 말에 젊은이가 대답했다.

"나리, 관헌들이 묻는 그 많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고요."

"무슨 일을 하느냐?"

"직조공입니다."

"무얼 짜느냐?"

"창날을 짭니다요, 나리께서 너그러이 허락하신다면."

"자네 나한테 재롱을 떠나? 익살꾼 행세를 하겠다는 건가? 좋네! 그래, 지금 어디 가던 길이었나?"

"나리, 바람 쐬러요."

"그럼 이 섬에서는 어디서 바람을 쐬나?"

"바람 부는 데서요."

"좋아. 아주 제대로 대답하는군! 자네 똑똑하네, 젊은이. 하지만 내가 그 바람이라 치고, 내가 자네 뒤에서 순풍을 불어 감옥으로 보낸다고 생각하게. 여봐라, 이놈을 붙잡아 끌고 가라. 오늘 밤은 거기서 바람 없이 자게 해 주마!"

"맹세코" 젊은이가 말했다. "나리께서 저를 감옥에서 재우실 수 있다면 저를 임금으로도 만드실 수 있겠습니다!"

"그럼 왜 내가 너를 감옥에서 재우지 못한다는 거냐?" 산초가 대답했다. "나한테는 내가 원할 때마다 너를 잡아 가두고 풀어 줄 힘이 없다는 거냐?"

"나리께 아무리 큰 힘이 있다 해도" 젊은이가 말했다. "저를 감옥에서 재우실 만큼은 안 될 겁니다."

"어째서 안 된다는 거냐?" 산초가 맞받았다. "당장 이놈을 끌고 가라. 거기서 제 눈으로 똑똑히 깨닫게 될 거다. 간수가 제 잇속 차리느라 아무리 너그럽게 굴고 싶어도 소용없다. 간수가 너를 감옥에서 한 발짝이라도 내보내면 두카도 2천 닢을 물리겠다."

"그게 다 웃기는 소리지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요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이 다 덤벼도 저를 감옥에서 재우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말해 봐라, 이 악마 같은 놈아." 산초가 말했다. "내가 채우라고 할 족쇄를 풀어 주고 너를 꺼내 줄 천사라도 있느냐?"

"그럼, 통치자 나리" 젊은이가 아주 멋들어지게 대답했다. "이치를 따져 보고 요점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나리께서 저를 감옥으로 끌고 가라고 명령하시고, 거기서 저한테 족쇄와 쇠사슬을 채우고 지하 감옥에 처넣고, 간수가 저를 내보내면 무거운 벌을 내린다고 하시고, 간수가 명령받은 대로 그대로 지킨다고 쳐 보십시오. 그래도 제가 자고 싶지 않아서 밤새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깨어 있겠다고 하면, 나리께서 아무리 힘이 있으셔도 제가 원하지 않는데 저를 재우실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못 하시지요." 비서가 말했다. "이 사람이 뜻한 대로 해냈군요."

"그러니까" 산초가 말했다. "자네가 잠을 자지 않는 건 오로지 자네 뜻 때문이지 내 뜻을 거스르려고가 아니라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나리." 젊은이가 말했다. "꿈에도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하느님과 함께 가게." 산초가 말했다. "자네 집에 가서 자게. 하느님께서 단잠을 주시기를. 나는 자네 잠을 빼앗고 싶지 않네. 하지만 충고하는데 앞으로는 관헌을 놀리지 말게. 언젠가 그 장난을 자네 머리통에 되돌려 줄 관헌을 만날 테니까."

젊은이는 떠났고 통치자는 순찰을 계속했다. 조금 뒤에 포리 둘이 사내 하나를 붙잡아 와서 말했다.

"통치자 나리, 사내처럼 보이는 이 사람은 사내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그것도 못생기지 않은 여자인데 남자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들이 그 사람의 눈앞에 등불 두세 개를 갖다 대자, 그 불빛에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열여섯 살이나 조금 더 되어 보였고, 금실과 초록 비단실로 짠 그물망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으며, 진주 천 알처럼 아름다웠다. 그들이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니, 진홍빛 비단 긴 양말에 흰 호박단 대님을 매었고 대님에는 금실과 작은 진주로 술을 달았다. 통 넓은 반바지는 초록빛 금란이었고, 같은 천으로 지은 헐렁한 짧은 윗옷을 걸쳤는데, 그 밑에는 금빛과 흰빛이 섞인 아주 고운 천으로 지은 조끼를 입었으며, 신발은 흰색 남자 신이었다. 칼은 차지 않았고 아주 값비싼 단검 하나를 찼으며, 손가락에는 아주 좋은 반지를 많이 끼고 있었다. 마침내 그 아가씨는 모두의 눈에 좋아 보였는데, 아가씨를 본 사람 가운데 누구 하나 그 아가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고장 사람들은 누구인지 짐작도 못 하겠다고 했고, 산초에게 칠 장난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놀랐다. 이 사건과 발견은 그들이 꾸며 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머뭇거리며 기다렸다.

산초는 아가씨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고 무슨 일로 그런 차림을 했느냐고 물었다. 아가씨는 더없이 얌전하게 부끄러워하며 땅에 눈을 박고 대답했다.

"나리, 이토록 비밀로 해 두어야 할 일을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다만 한 가지만은 알아주셨으면 해요. 저는 도둑도 죄인도 아니고, 질투의 힘에 못 이겨 정숙함이 지켜야 할 체면을 깨뜨리고 만 불운한 처녀예요."

그 말을 듣자 집사가 산초에게 말했다.

"통치자 나리, 사람들을 물리시지요. 이 아가씨가 부끄러움을 덜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요."

통치자가 그렇게 명령하자 집사와 식사 시중장과 비서만 남고 모두 물러났고, 자기들끼리만 남게 되자 아가씨는 말을 이어 갔다.

"여러분, 저는 이 고장의 양털 도급업자 페드로 페레스 마소르카의 딸이에요. 그분은 저희 아버지 댁에 자주 오시곤 해요."

"그건 말이 안 되오, 아가씨." 집사가 말했다. "나는 페드로 페레스를 아주 잘 아는데 그 사람에게는 아들딸 할 것 없이 자식이 하나도 없소. 게다가 그 사람이 아가씨 아버지라고 하더니 곧바로 그 사람이 아가씨 아버지 댁에 자주 온다고 하는구려."

"나도 벌써 그걸 알아챘소." 산초가 말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은 저는 디에고 데 라 야나의 딸이에요. 여러분도 모두 아실 거예요."

"그건 말이 되는구려." 집사가 대답했다. "나는 디에고 데 라 야나를 아는데, 지체 높고 부유한 시골 귀족이고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었소. 그리고 홀아비가 된 뒤로 이 고장에서 그 딸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소. 해조차 들여다보지 못하게 딸을 꽁꽁 가두어 두었으니까. 그런데도 소문으로는 그 딸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하오."

"그건 사실이에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딸이 바로 저예요. 제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여러분이 저를 보셨으니 벌써 아셨겠지요."

그러면서 아가씨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비서가 식사 시중장의 귀에 입을 대고 아주 나직하게 말했다.

"이 가엾은 아가씨에게 무슨 큰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소. 그토록 지체 높은 집안 아가씨가 이런 차림으로 이런 시각에 집 밖을 나다니니 말이오."

"그건 의심할 것도 없소." 식사 시중장이 대답했다. "게다가 아가씨의 눈물이 그 의심을 굳혀 주는구려."

산초는 자기가 아는 가장 좋은 말로 아가씨를 달래면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하며, 모두가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해 그 일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겠다고 했다.

"사정은 이래요, 여러분." 아가씨가 대답했다. "아버지는 저를 열 해째 가두어 두셨어요. 어머니가 땅에 묻힌 지 꼭 그만큼 되었지요. 미사는 집 안의 화려한 기도실에서 드렸고, 그동안 저는 내내 낮에는 하늘의 해를, 밤에는 달과 별을 본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거리와 광장과 성당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아버지와 남동생 하나와 도급업자 페드로 페레스 말고는 남자도 몰라요. 페드로 페레스는 늘 저희 집에 드나드니까, 제 아버지를 밝히지 않으려고 그분이 제 아버지라고 말하고 싶어진 거예요. 이렇게 갇혀 지내고 성당에조차 나가지 못하게 하니 벌써 여러 날, 여러 달째 마음이 몹시 울적했어요. 저는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아니면 적어도 제가 태어난 마을이라도요. 이 바람이 지체 높은 집안 처녀가 스스로 지켜야 할 체면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투우를 한다느니, 죽창 놀이를 한다느니, 연극을 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저보다 한 살 아래인 남동생에게 그게 무엇이며 제가 보지 못한 다른 많은 것은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물었지요. 동생은 아는 대로 가장 잘 설명해 주었지만, 그럴수록 그것을 보고 싶은 마음만 더 타올랐어요. 마침내, 제가 신세를 망친 이야기를 줄여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동생에게 빌고 졸랐어요. 차라리 그런 걸 빌지도 조르지도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집사가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가씨, 계속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저 이야기해 주시오. 아가씨의 말과 눈물에 우리 모두 애가 타는구려."

"말씀드릴 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흘려야 할 눈물은 많이 남았지만요. 엉뚱한 데 둔 바람은 그런 대가밖에 가져다주지 못하니까요."

아가씨의 아름다움은 식사 시중장의 넋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았다. 그는 아가씨를 다시 보려고 또 등불을 갖다 대었는데, 아가씨가 흘리는 것이 눈물이 아니라 작은 진주알이나 들판의 이슬처럼 보였고, 그는 그것을 더 높이 쳐서 동양의 진주에까지 견주며, 아가씨의 울음과 한숨이 내비치는 만큼 그 불운이 크지 않기를 바랐다. 통치자는 아가씨가 이야기를 질질 끄는 데 애가 타서, 시간이 늦었고 마을을 돌아볼 데가 아직 많이 남았으니 더는 애태우게 하지 말고 이야기를 끝내라고 했다. 아가씨는 끊어지는 흐느낌과 제대로 나오지 않는 한숨 사이로 말했다.

"제 불운도, 제 불행도 다른 게 아니에요. 저는 동생에게 동생 옷 한 벌로 저를 남자 차림으로 꾸며 주고, 아버지가 주무시는 밤에 저를 데리고 나가 온 마을을 구경시켜 달라고 빌었어요. 동생은 제가 하도 졸라 대니 제 바람을 들어주었어요. 그래서 저한테 이 옷을 입히고 자기는 제 옷 한 벌을 입었는데, 그 옷이 타고난 것처럼 잘 어울려요. 동생은 수염이 하나도 없어서 꼭 아주 아름다운 처녀처럼 보이거든요. 오늘 밤, 한 시간쯤 전에 우리는 집을 나섰어요. 그리고 젊은 혈기에 엉뚱한 생각에 이끌려 온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사람들이 떼를 지어 오는 게 보였어요. 그러자 동생이 저한테 말했어요. '누나, 저건 순찰대인가 봐. 발을 재게 놀리고 발에 날개를 달아서 나를 따라 뛰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게. 들키면 큰일 나.' 그렇게 말하더니 동생은 돌아서서, 뛰었다고 하기보다는 날아가기 시작했어요. 저는 여섯 걸음도 못 가서 놀란 나머지 넘어졌고, 그때 관헌의 일꾼이 와서 저를 여러분 앞에 데려왔어요. 그래서 저는 못되고 변덕스러운 짓을 한 탓에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가씨" 산초가 말했다. "다른 불상사는 하나도 없었고, 아가씨가 이야기 첫머리에 말한 대로 질투 때문에 집을 나온 것도 아니란 말이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질투 때문에 나온 것도 아니고요. 그저 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이 마을 거리를 보는 것 이상은 아니었어요."

아가씨의 말이 참말이라는 것은, 누나에게서 떨어져 달아나다가 포리 하나에게 따라잡힌 아가씨의 동생을 포리들이 붙잡아 오면서 확인되었다. 동생은 화려한 짧은 치마에 금실 장식 끈을 두른 파란 다마스크 작은 망토 하나만 걸쳤을 뿐, 머리에는 머릿수건도 쓰지 않고 다른 꾸밈도 없이 제 머리카락뿐이었는데, 머리카락이 금발에 곱슬곱슬해서 금반지들 같았다. 통치자와 집사와 식사 시중장은 동생을 따로 데리고 가서 누나가 듣지 못하게 왜 그런 차림으로 다니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누나 못지않게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워하며 누나가 한 이야기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고, 사랑에 빠진 식사 시중장은 그것을 듣고 몹시 기뻐했다. 그러나 통치자는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참으로 이건 큰 철부지 장난이었소. 이런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이야기하는 데 이렇게 길게 끌 것도, 이렇게 많은 눈물과 한숨도 필요 없었소. '우리는 아무개와 아무개인데, 그저 호기심에서, 다른 아무 뜻도 없이 이런 꾀를 내어 바람 쐬러 부모님 집을 나왔습니다.' 이렇게만 말했으면 이야기가 끝났을 텐데, 찔끔찔끔 흐느끼고 훌쩍훌쩍 울어 댈 것 없이 말이오."

"그건 맞는 말씀이에요." 아가씨가 대답했다. "하지만 여러분, 제가 어찌나 당황했던지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걸 알아주세요."

"잃은 건 하나도 없소." 산초가 대답했다. "갑시다. 두 사람을 아버지 댁에 데려다주겠소. 어쩌면 아버지는 두 사람이 없어진 줄도 모를 거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철부지처럼 굴지 말고 그렇게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하지 마시오. 정숙한 처녀는 다리가 부러진 듯 집에 있어야 하고, 여자와 암탉은 나돌아다니다가 금세 길을 잃으며, 보고 싶어 하는 여자는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는 법이오. 더는 말하지 않겠소."

젊은이는 자기들을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통치자의 호의에 고마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집으로 향했는데, 그곳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들이 집에 이르러 동생이 쇠창살 창문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지자 곧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하녀 하나가 내려와 문을 열어 주었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두 사람의 맵시와 아름다움에 놀랐고, 밤에, 그것도 마을을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보고 싶어 한 그 바람에도 놀랐지만, 모든 것을 두 사람이 아직 어린 탓으로 돌렸다.

식사 시중장은 마음이 꿰뚫려서, 자기는 공작의 하인이니 거절당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바로 이튿날 아가씨의 아버지에게 딸을 아내로 달라고 청하리라 마음먹었다. 산초에게도 그 젊은이를 자기 딸 산치카와 혼인시키고 싶은 마음과 어렴풋한 기대가 생겨서, 통치자의 딸이라면 어떤 신랑도 마다할 리 없다고 여겨 때가 되면 그 이야기를 꺼내 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날 밤의 순찰은 끝났고, 이틀 뒤에는 통치도 끝났으며, 그와 함께 그의 계획은 모두 뿌리째 뽑혀 지워져 버렸는데, 그 일은 뒤에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