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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제4장 셋째 아들 알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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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셋째 아들 알료샤

그때 그는 겨우 스무 살이었다(형 이반은 그때 스물네 살째, 맏형 드미트리는 스물여덟 살째였다). 무엇보다 먼저 밝혀 두지만, 이 젊은이 알료샤는 결코 광신자가 아니었고,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신비주의자도 전혀 아니었다. 내 생각을 미리 다 말해 두겠다. 그는 그저 일찍 깨어난 박애주의자였을 뿐이고, 그가 수도원의 길로 뛰어들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 무렵 그 길만이 그를 사로잡았고, 말하자면 세상의 악의 어둠을 뚫고 사랑의 빛으로 나아가려 몸부림치던 그의 영혼에 출구의 이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이 그를 사로잡은 것도 오직 그가 그 길에서, 그의 생각으로는 범상치 않은 존재를, 우리 수도원의 이름난 장로 조시마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채워질 줄 모르는 제 마음의 뜨거운 첫사랑을 다해 그 장로에게 매달렸다. 하기야 그가 그때 이미 몹시 이상했다는 것, 그것도 요람에서부터 그랬다는 것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그를 두고 이미 말했지만, 그는 겨우 네 살째에 어머니를 여의었는데도 그 뒤로 평생 어머니를, 그 얼굴과 그 손길을 "마치 살아 있는 어머니가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기억했다. 이런 기억은(이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더 어린 나이에서도, 두 살 때부터도 남을 수 있다. 다만 평생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점들처럼, 다 꺼지고 사라져 버린 거대한 그림에서 찢겨 나와 그 한 귀퉁이만 남은 것처럼 떠오를 뿐이다. 그에게도 꼭 그랬다. 그는 어느 저녁을 기억했다. 여름이었고, 고요했고, 창문이 열려 있었고, 지는 해의 비스듬한 빛줄기가 비쳐 들었다(무엇보다 그 비스듬한 빛줄기가 기억에 남았다). 방 한구석에 성상이 있었고, 그 앞에 성상 등잔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성상 앞에는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히스테리라도 일으킨 듯 비명과 외침을 섞어 가며 흐느끼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를 두 팔로 움켜잡고 아플 만큼 꽉 끌어안은 채 그를 위해 성모께 기도하면서, 마치 성모의 보호 아래 맡기려는 듯 품에 안았던 그를 두 손으로 성상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모가 뛰어 들어와 겁에 질려 어머니에게서 그를 빼앗아 간다. 이런 그림이다! 알료샤는 그 순간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했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 만큼으로 보아 그 얼굴은 넋이 나가 있었지만 아름다웠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기억을 누구에게 털어놓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그는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고 말수도 적었다. 그렇다고 남을 믿지 못해서도, 겁이 많거나 음울하게 사람을 피해서도 아니었고,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데서, 이를테면 무슨 속마음의 근심 같은 데서 비롯되었다. 오로지 저 혼자만의, 남과는 상관없는 근심이었지만 그에게는 어찌나 중요했던지 그 때문에 그는 남들을 잊어버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는 평생 사람을 온전히 믿으며 살아온 것 같았는데도, 그를 숙맥이나 순진한 사람으로 여긴 이는 아무도,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가 사람의 심판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남을 단죄하는 짐을 떠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단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해 주고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그리고 평생 그랬다).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자주 몹시 쓰라리게 슬퍼하면서도 조금도 단죄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이런 뜻에서 그는 아무도 그를 놀라게 하거나 겁먹게 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르렀고, 그것도 아주 이른 젊은 시절부터 그랬다. 스무 살째에 아버지에게, 그야말로 더러운 방탕의 소굴로 들어온 그는, 순결하고 깨끗한 젊은이였건만 차마 볼 수 없을 때면 말없이 자리를 피할 뿐, 누구에게도 경멸이나 단죄의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때 식객이었던 만큼 모욕에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라, 처음에는 미덥지 않은 듯 음울하게 그를 맞았지만("말이 너무 없고 혼자 생각이 너무 많단 말이야"), 얼마 안 가, 고작 두 주일쯤 지나서는 끔찍하게 자주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사실 취한 눈물을 흘리며 술기운에 젖은 감상 속에서 그랬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깊이, 물론 그런 사람이 일찍이 누구도 그렇게 사랑해 본 적이 없을 만큼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어디에 나타나든 모두에게 사랑받았고, 그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은인이자 양육자인 예핌 페트로비치 폴레노프의 집에 들어가자, 그는 이 집안의 모든 사람을 어찌나 제게 정들게 했던지 그 집에서는 그를 영락없이 친자식처럼 여겼다. 그런데 그가 이 집에 들어간 것은 아이에게서 계산된 꾀나 약삭빠름이나 비위를 맞추어 마음에 들려는 재주, 남들이 저를 사랑하게 만드는 솜씨 따위를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갓난아기 같은 나이였다. 그러니 남에게 특별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재능을 그는, 말하자면 타고난 본성 속에, 꾸밈없이 곧바로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보기에는 그는 바로 친구들의 불신을, 때로는 조롱을, 어쩌면 미움까지 불러일으키는 그런 아이에 속했을 듯도 하다. 이를테면 그는 생각에 잠기곤 했고,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구석으로 가서 책을 읽기를 좋아했는데, 그런데도 친구들이 그를 어찌나 좋아했던지 학교에 다니는 내내 그를 영락없이 모두의 귀염둥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는 좀처럼 장난을 치지 않았고 좀처럼 명랑하지도 않았지만, 그를 본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그에게 무슨 음울함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가 차분하고 맑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또래들 사이에서 그는 한 번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바로 그래서 그는 한 번도 누구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년들은 그가 제 겁 없음을 조금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마치 제가 용감하고 겁이 없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처럼 바라본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는 모욕을 마음에 담아 두는 법이 없었다. 모욕을 당하고 한 시간쯤 지나서 그가 모욕한 아이에게 대답을 하거나 스스로 말을 거는 일이 있었는데,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토록 믿음 어린 맑은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그럴 때 모욕을 어쩌다 잊어버린 척하거나 일부러 용서한 척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것을 모욕으로 여기지 않았을 뿐이고, 그것이 아이들의 마음을 영락없이 사로잡고 굴복시켰다. 그에게는 김나지움의 모든 학년에서, 가장 낮은 학년부터 가장 높은 학년까지 친구들이 늘 그를 놀려 대고 싶게 만드는 기질이 딱 하나 있었다. 심술궂게 비웃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게 아이들에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질이란 거칠고 지나칠 만큼의 수줍음과 순결함이었다. 그는 어떤 말들, 여자에 관한 어떤 이야기들을 듣지 못했다. 이 "어떤" 말과 이야기는 불행히도 학교에서 뿌리 뽑을 수가 없다. 마음과 영혼이 깨끗한 소년들, 아직 거의 어린아이인 아이들이 교실에서 저희끼리, 심지어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를 무척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일, 그런 장면과 모습은 병사들조차 늘 입에 올리지는 않을 것들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 지식층과 상류 사회의 그토록 어린아이들에게는 이 방면에서 이미 익숙한 많은 것을 병사들은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여기에는 아마 아직 도덕적 타락은 없을 것이다. 냉소도, 진짜 방탕하고 속 깊은 냉소는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냉소는 있고, 바로 그것을 아이들은 흔히 무언가 섬세하고 세련되고 사내다운, 본받을 만한 것으로까지 여긴다. "알료시카 카라마조프"가 "그 이야기"만 나오면 손가락으로 재빨리 귀를 틀어막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이따금 일부러 그의 곁에 우르르 몰려서서 억지로 그의 손을 귀에서 떼어 내고는 양쪽 귀에 대고 더러운 말을 소리쳐 댔다. 그러면 그는 몸부림치며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드러누워서 얼굴을 가렸고, 그러는 내내 그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욕하지도 않고, 말없이 모욕을 견뎌 냈다. 그래도 끝내는 아이들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고, 더는 "계집애"라고 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점에서는 오히려 그를 딱하게 여기며 바라보았다. 덧붙이자면, 학급에서 그는 공부로는 늘 가장 잘하는 축에 들었지만 한 번도 일등으로 꼽힌 적은 없었다.

예핌 페트로비치가 죽은 뒤 알료샤는 현의 김나지움에서 두 해를 더 보냈다. 예핌 페트로비치의 슬픔을 달랠 길 없는 아내는 남편이 죽자마자 거의 곧바로, 모두 여자들뿐인 온 가족을 데리고 오래 머물 작정으로 이탈리아로 떠났다. 알료샤는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두 부인, 예핌 페트로비치의 무슨 먼 친척 여자들의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어떤 조건으로 가게 되었는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그가 누구의 돈으로 사는지 한 번도 마음 쓰지 않았다는 것 역시 그를 잘 보여 주는, 그것도 아주 잘 보여 주는 기질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형 이반 표도로비치와 완전히 정반대였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대학의 처음 두 해를 제 힘으로 먹고살며 몹시 고생했고, 아주 어릴 때부터 제가 은인 집에서 남의 빵을 먹으며 산다는 것을 쓰라리게 느꼈다. 그러나 알렉세이의 성격에 있는 이 이상한 기질은 그다지 엄하게 탓할 수 없을 듯했다. 그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사람이면 누구나 이 문제가 나오자마자, 알렉세이가 틀림없이 일종의 성 바보 같은 젊은이에 속한다고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젊은이는 갑자기 큰 재산이 통째로 굴러들어 와도, 처음 달라는 사람에게, 좋은 일에든, 어쩌면 그저 약삭빠른 사기꾼이 달라고 해도 그 사기꾼에게든 서슴없이 내주고 말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말해서, 그는 돈의 값어치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그가 한 번도 달라고 한 적 없는 용돈을 받으면, 그는 몇 주일씩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거나, 아니면 몹시 헤프게 굴어 돈이 금세 사라져 버렸다. 돈 문제와 부르주아적 정직함에서 무척 까다로운 사람인 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 미우소프는 나중에 한번 알렉세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나서 그를 두고 이런 경구를 남겼다. "이 사람이야말로 어쩌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일 겁니다. 이 사람을 갑자기 돈 한 푼 없이 인구 백만의 낯선 도시 광장에 혼자 남겨 두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않을 테고 굶어 죽지도 얼어 죽지도 않을 겁니다. 곧바로 누군가 먹여 주고, 곧바로 누군가 자리를 마련해 줄 테니까요. 만약 아무도 마련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곧바로 자리를 잡을 텐데, 그게 그에게는 아무런 수고도 아무런 굴욕도 들지 않을 테고,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에게도 아무 짐이 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오히려 기쁨으로 여길지도 모르지요."

그는 김나지움 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아직 한 해가 꼬박 남아 있었는데, 그는 느닷없이 제 부인들에게 문득 마음에 떠오른 어떤 일로 아버지에게 가겠다고 밝혔다. 부인들은 그를 무척 안쓰러워하며 보내 주려 하지 않았다. 차비는 아주 싸게 들었고, 부인들은 그가 제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지 못하게 했다. 그 시계는 은인 집안이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준 선물이었다. 부인들은 그에게 넉넉하게 돈을 마련해 주었고, 새 옷과 속옷까지 챙겨 주었다. 그러나 그는 꼭 삼등칸에 타겠다면서 돈의 절반을 부인들에게 돌려주었다. 우리 읍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처음 꼬치꼬치 묻는 "과정도 다 마치지 않고 대체 뭣 하러 납셨느냐?"라는 물음에 그는 아무 대답도 똑바로 하지 않았고, 사람들 말로는 여느 때와 달리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어머니의 무덤을 찾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때 그는 바로 그 때문에 왔다고 스스로 털어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방문의 까닭이 그것으로 다 설명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때 저 자신도 몰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체 무엇이 갑자기 제 영혼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더니, 그를 무슨 새롭고 알 수 없으나 이미 피할 수 없게 된 길로 거스를 수 없이 이끌었는지.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둘째 아내를 어디에 묻었는지 아들에게 알려 줄 수 없었다. 관 위에 흙을 덮은 뒤로 그 무덤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고,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그때 아내를 어디에 묻었는지 아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는 그전에 오랫동안 우리 읍에 살지 않았다. 둘째 아내가 죽은 지 서너 해쯤 지나서 그는 러시아 남부로 떠났고, 결국 오데사에 자리 잡고 몇 해를 내리 살았다. 그는 처음에는, 그 자신의 말로는 "수많은 유대 놈, 유대 녀석, 유대 꼬마, 유대 새끼"와 사귀었다가, 끝내는 "유대 놈들"뿐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대접받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는 바로 이 시기에 돈을 긁어모으고 쥐어짜는 특별한 재주를 제 안에 길렀을 것이다. 그가 우리 읍으로 아주 돌아온 것은 알료샤가 오기 겨우 세 해쯤 전이었다. 예전에 알던 사람들은 그가 무섭도록 늙어 버렸다고 보았지만, 그는 아직 그렇게 늙은 나이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몸가짐이 전보다 점잖아졌다기보다 어쩐지 더 뻔뻔해졌다. 이를테면 예전의 어릿광대에게, 남들을 어릿광대로 만들고 싶다는 뻔뻔한 욕구가 생겼다. 여자들과 추잡하게 노는 것도 예전처럼 좋아했을 뿐 아니라 어쩐지 더 역겹게 좋아하게 된 듯했다. 얼마 안 가 그는 군 곳곳에 새 선술집을 여럿 차렸다. 그에게 어쩌면 10만 루블쯤, 아니면 그보다 조금 모자라는 돈이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읍과 군의 많은 주민이 곧바로 그에게 빚을 졌다. 물론 더없이 확실한 담보를 잡히고서였다. 그런데 아주 최근 들어 그는 어쩐지 몸이 퉁퉁 붓고, 어쩐지 침착함과 자기 분별을 잃기 시작했으며, 무슨 경솔함에까지 빠져서 한 가지를 시작해 놓고 다른 것으로 끝내는가 하면, 어쩐지 이것저것 흩어 놓고 점점 더 자주 술에 곯아떨어졌다. 그 무렵 꽤 늙어 버린 바로 그 하인 그리고리가 때로는 거의 가정 교사처럼 그를 돌보지 않았더라면,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어쩌면 큰 탈 없이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알료샤가 온 것은 그에게 도덕적인 면에서까지 효과를 낸 것 같았다. 때 이르게 늙어 버린 이 노인의 영혼에서 이미 오래전에 시들어 버린 것들 가운데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너 알고 있니?" 그는 알료샤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자주 말하기 시작했다. "네가 그 여자를 닮았다는 걸, 그 클리쿠샤를 말이야." 그는 세상을 떠난 아내, 알료샤의 어머니를 그렇게 불렀다. "클리쿠샤"의 무덤은 결국 하인 그리고리가 알료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알료샤를 우리 읍의 공동묘지로 데리고 가서 저 먼 구석에 있는, 비싸지는 않지만 말끔한 무쇠 묘비를 가리켜 보였다. 묘비에는 고인의 이름과 신분과 나이와 죽은 해가 새겨진 비문까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중간층 사람들의 무덤에 흔히 쓰이는 옛 묘지 시구에서 따온 넉 줄짜리 시 같은 것까지 적혀 있었다. 놀랍게도 이 묘비는 그리고리가 한 일이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이 무덤 이야기를 수없이 꺼내 성가시게 했는데,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무덤뿐 아니라 제 모든 추억까지 내팽개치고 마침내 오데사로 떠나 버렸고, 그 뒤에 그리고리가 제 돈을 들여 가엾은 "클리쿠샤"의 무덤 위에 손수 세운 것이었다. 알료샤는 어머니의 무덤에서 무슨 특별한 감상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는 묘비를 세운 일에 대한 그리고리의 근엄하고 사리에 맞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서 있다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떠났다. 그 뒤로 그는 어쩌면 그 한 해 내내 묘지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도 이 작은 일화는 나름의, 그것도 아주 별난 효과를 냈다. 그는 별안간 1천 루블을 들고 우리 수도원으로 가서 아내의 영혼을 위한 추도를 부탁했다. 그런데 그것은 둘째 아내, 알료샤의 어머니, "클리쿠샤"가 아니라 그를 두들겨 패던 첫 아내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를 위해서였다. 그날 저녁 그는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알료샤 앞에서 수도사들을 욕했다. 그 자신은 신앙심 깊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평생 성상 앞에 5코페이카짜리 초 한 자루 세워 본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 이런 부류의 인간에게는 별안간의 감정과 별안간의 생각이 이상하게 치솟는 일이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몸이 몹시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무렵 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 전체의 성격과 본질을 날카롭게 증언하는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늘 뻔뻔하고, 의심스럽고, 비웃는 듯한 그의 작은 눈 밑에 길고 살찐 주머니가 처져 있고, 작지만 기름진 그 얼굴에 깊은 주름이 수없이 패어 있는 데다, 뾰족한 턱 밑으로는 커다란 목젖 살이 지갑처럼 살찌고 길쭉하게 매달려 있어서, 그것이 그에게 어쩐지 역겨울 만큼 호색한 모습을 주었다. 거기에 두툼한 입술이 달린, 고기를 탐하는 듯한 기다란 입을 보태 보라. 그 입술 사이로 거의 다 썩은 검은 이의 작은 동강들이 보였다. 그는 말을 시작할 때마다 침을 튀겼다. 하기야 그 자신도 제 얼굴을 두고 농담하기를 좋아했고, 그러면서도 제 얼굴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특히 제 코를 가리켰는데,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몹시 가늘고 콧등의 혹이 불룩 튀어나온 코였다. "진짜 로마 코라고." 그는 말했다. "목젖 살까지 합치면 몰락기의 고대 로마 귀족 얼굴이 따로 없지." 그는 이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무덤을 찾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알료샤가 별안간 아버지에게,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고 수도사들도 자기를 수련 수사로 받아 줄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제 간절한 소원이며, 아버지로서 엄숙히 허락해 주기를 청한다고 설명했다. 노인은 수도원의 은수처(隱修處)에서 구원의 길을 닦고 있는 조시마 장로가 제 "얌전한 아이"에게 남다른 인상을 남겼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장로야 물론 그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정직한 수도사지." 그는 알료샤의 말을 말없이 생각에 잠겨 듣고 나서 입을 열었는데, 아들의 부탁에 거의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흠, 그러니까 네가 가고 싶은 데가 거기란 말이지, 내 얌전한 아이야!" 그는 반쯤 취해 있었고, 별안간 그 기다랗고 반쯤 취했지만 꾀와 취한 교활함이 없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흠, 그런데 나는 네가 이런 걸로 끝장을 보리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단다, 상상이 가니? 넌 바로 그쪽으로 가려고 별러 왔잖니. 그래 뭐, 좋겠지. 너한테는 네 몫의 2천 루블이 있으니 그게 네 지참금이다. 그리고 내 천사야, 나는 너를 결코 버리지 않을 거다. 지금도 거기서 내야 할 게 있다면 내가 대신 내 주마, 달라고 하면 말이다. 달라고 하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나설 건 없겠지, 안 그러냐? 넌 돈을 카나리아처럼 쓰잖니. 한 주에 낟알 두 알씩…… 흠. 너 아니? 어느 수도원에는 근교에 마을이 하나 있는데, 거기엔 '수도원 아내들'만 산다는 걸 다들 안단다. 거기서 그렇게들 부르지. 아내가 서른 마리쯤은 될 거다, 내 생각엔…… 내가 거기 가 봤는데, 너 알지, 재미있더라. 물론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골라 보는 맛으로 말이다. 고약한 건 하나뿐이야. 끔찍하게 러시아 것뿐이라 프랑스 여자는 아직 하나도 없더라.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돈은 넉넉하거든. 소문이 나면 오겠지. 그런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엔 수도원 아내는 없고 수도사만 이백 마리쯤 있지. 정직하단 말이야. 금식하는 사람들이고. 인정하마…… 흠. 그래, 너는 수도사들한테 가고 싶다고? 그런데 나는 네가 가엾구나, 알료샤. 정말이지, 믿겠니,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됐단다…… 하기야 마침 잘됐다. 우리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 다오. 여기 들어앉아 너무 많이 죄를 지었거든. 나는 늘 그 생각을 했단다. 언젠가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줄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귀여운 녀석, 나는 이 문제에서는 끔찍하게 어리석단다. 너는 어쩌면 안 믿겠지? 끔찍하게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단다. 나는 어리석기는 해도 이 일을 줄곧 생각하고 또 생각한단다. 물론 이따금이지, 늘 그러는 건 아니고. 내가 죽을 때 악마들이 갈고리로 나를 저희한테 끌고 가는 걸 잊어버릴 리는 없다고 생각한단 말이다. 그래서 생각하지. 갈고리라? 그런데 그놈들은 그걸 어디서 구하지? 무엇으로 만들지? 쇠로? 그럼 어디서 벼리지? 거기에 무슨 공장이라도 있나? 저기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아마 지옥에 이를테면 천장이 있다고 여기겠지. 그런데 나는 천장만 없다면 지옥을 믿어 줄 용의가 있다. 그쪽이 어쩐지 더 점잖고 더 개화된 것 같거든, 루터파식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천장이 있든 없든 매한가지 아니냐? 바로 그 빌어먹을 물음의 핵심이 거기 있단 말이다! 그래, 천장이 없으면 갈고리도 없는 거다. 갈고리가 없으면 모든 게 다 상관없는 거고, 그러니 또 믿을 수가 없지. 그럼 누가 나를 갈고리로 끌고 가지? 나를 끌고 가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세상에 정의는 어디 있단 말이냐? 만들어 내야 할 판이다(Il faudrait les inventer),1 그 갈고리 말이다. 일부러 나를 위해서, 나 하나만을 위해서. 알료샤, 내가 얼마나 낯 두꺼운 인간인지 네가 알기만 한다면!……"

"네, 거기엔 갈고리가 없어요." 알료샤가 아버지를 유심히 바라보며 조용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 갈고리의 그림자들만 있겠지. 안다, 알아. 어떤 프랑스 사람이 지옥을 그렇게 그렸지. '나는 마부의 그림자가 솔의 그림자로 마차의 그림자를 닦는 것을 보았다(J'ai vu l'ombre d'un cocher, qui avec l'ombre d'une brosse frottait l'ombre d'un carrosse).' 얘야, 너는 갈고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아니? 수도사들 곁에서 좀 지내 봐라, 다른 노래를 부르게 될 거다. 그렇지만 어쨌든 가거라. 거기 가서 진실에 닿거든 와서 이야기해 다오. 저세상이 어떤 곳인지 확실히 알면 그래도 저세상으로 가기가 한결 쉬울 테니까. 게다가 너는 나하고, 술 취한 늙은이하고 계집애들하고 있는 것보다 수도사들 곁에 있는 게 더 어울리겠지…… 너는 천사 같아서 무엇 하나 너한테 들러붙지 않겠지만. 그래, 거기서도 아마 무엇 하나 너한테 들러붙지 않을 거다. 바로 그래서 내가 너를 보내 주는 거란다. 그 마지막 것에 기대를 걸고 말이다. 너도 머리가 모자란 녀석은 아니니까. 타오르다 꺼지고, 병이 나으면 돌아오겠지. 그럼 나는 너를 기다리마. 나는 느끼거든, 네가 이 땅에서 나를 단죄하지 않은 단 하나뿐인 사람이라는 걸. 귀여운 내 아이야, 나는 그걸 느낀단다,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

그러고는 훌쩍훌쩍 울기까지 했다. 그는 감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심술궂고 감상적인 사람이었다.

주

  1. 1. 볼테르의 시구 「신이 없다면 신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Si Dieu n'existait pas, il faudrait l'inventer)」를 비튼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