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뜨거운 마음의 고백. 시로
알료샤는 아버지가 수도원을 떠나며 마차에서 소리쳐 내린 명령을 듣고, 한동안 몹시 어리둥절한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기둥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몹시 불안한 가운데서도 곧바로 수도원장의 부엌에 들러 제 아버지가 위층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볼 겨를을 냈고, 그러고 나서 읍내로 가는 길에 자기를 괴롭히는 문제를 어떻게든 풀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길을 떠났다. 미리 말해 두지만, 그는 아버지의 고함도, "베개와 요를 가지고" 집으로 옮겨 오라는 명령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 내어, 그렇게 보란 듯이 소리치며 내린 이사 명령은 "흥분해서", 말하자면 멋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았다. 얼마 전 바로 그들의 읍내에서 흥청망청 술을 마신 어느 읍민이 제 명명일에 손님들 앞에서, 보드카를 더 주지 않는다고 화가 나서 갑자기 제 그릇을 깨부수고, 제 옷과 아내의 옷을 찢고, 제 가구를 부수고, 마침내 집 유리창까지 깼는데, 그것도 또 멋으로 그런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물론 지금 아버지에게도 그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튿날 그 흥청거리던 읍민은 물론 술이 깨자 깨진 찻잔과 접시를 아까워했다. 알료샤는 노인도 이튿날이면 틀림없이 그를 다시 수도원으로 보내 주리라는 것을, 어쩌면 오늘 당장이라도 보내 주리라는 것을 알았고, 게다가 아버지가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자기만은 모욕하려 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알료샤는 온 세상 누구도 언제든 자기를 모욕하려 하지 않으리라고, 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으리라고 믿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공리였고, 따질 것 없이 단번에 영영 주어진 것이었으며, 그는 이런 뜻에서 조금도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 순간 그의 안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어떤 두려움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그 자신도 그것을 정의할 수 없었기에 그 두려움은 더욱 괴로웠다. 바로 여자에 대한 두려움, 그것도 바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그 여자는 아까 호흘라코바 부인이 전해 준 쪽지에서 무엇 때문인지 자기에게 와 달라고 그토록 간곡하게 애원했다. 이 요청과 꼭 가야 한다는 필연은 곧바로 그의 가슴에 무언가 괴로운 감정을 심어 놓았고, 그 감정은 그 뒤 수도원에서 일어난 온갖 장면과 사건들에도, 방금 수도원장에게서 있었던 일 등등에도 불구하고, 아침 내내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더욱 아프게 그의 안에서 쑤셔 왔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그 여자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자기가 무엇이라고 대답할지 모른다는 점이 아니었고, 그가 그 여자에게서 두려워한 것은 여자 일반도 아니었다. 그는 물론 여자를 잘 몰랐지만, 그래도 평생, 갓난아기 때부터 수도원에 들어갈 때까지 오직 여자들하고만 살았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바로 이 여자, 바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그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 그 여자를 본 그때부터 그 여자를 두려워했다. 그가 그 여자를 본 것은 모두 한두 번, 어쩌면 세 번쯤뿐이었고, 한번은 우연히 몇 마디를 나누기까지 했는데, 그 여자의 모습은 아름답고 오만하고 위엄 있는 처녀로 그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를 괴롭힌 것은 그 여자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었고, 바로 자기 두려움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 그 두려움을 더욱 키웠다. 그 처녀의 목적은 더없이 고결했고 그는 그것을 알았으니, 그 여자는 이미 자기에게 잘못을 저지른 그의 형 드미트리를 구하려 애썼고, 그것도 오로지 너그러움에서 그러했다. 그런데 그 모든 아름답고 너그러운 감정을 알고 그 감정들에 마땅히 바쳐야 할 공정한 평가를 바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도, 그 여자의 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등줄기에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는 그 여자와 그토록 가까운 이반 표도로비치 형은 그 여자 집에서 만나지 못하리라고 헤아렸다. 이반 형은 틀림없이 지금 아버지와 함께 있을 것이다. 드미트리 형은 더더욱 만나지 못할 터였고, 그는 그 까닭을 예감했다. 그러니 그들의 대화는 단둘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숙명적인 대화에 앞서 드미트리 형을 먼저 만나 형에게 잠깐 들르고 싶은 마음이 몹시 들었다. 편지는 보여 주지 않고도 형과 무언가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드미트리 형은 멀리 살았고, 틀림없이 지금은 집에 없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던 그는 마침내 단단히 마음을 정했다. 그는 익숙한 손짓으로 서둘러 성호를 긋고, 곧바로 무엇 때문인지 미소를 짓고는, 무서운 그 부인에게로 단호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여자의 집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로로 나갔다가 광장을 지나는 등등의 길로 가자면 꽤 멀었는데, 우리의 작은 읍내는 몹시 흩어져 있어서 거리가 꽤 먼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어쩌면 아버지는 아직 제 명령을 잊지 않았을 테고 변덕을 부릴 수도 있었으니, 이쪽저쪽 다 때맞춰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이 모든 생각 끝에 그는 뒷길로 질러가 길을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읍내의 그런 샛길이라면 그는 다섯 손가락처럼 훤히 알고 있었다. 뒷길로 간다는 것은 길이랄 것도 거의 없이, 인적 없는 울타리를 따라, 때로는 남의 바자울을 넘고 남의 마당을 지나간다는 뜻이었는데, 하기야 그런 마당에서도 누구나 그를 알았고 모두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길로 가면 대로에 절반 거리로 닿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군데서는 아버지 집 바로 곁을, 다름 아니라 아버지 집과 이웃한 정원 곁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 정원은 창이 넷 달린, 낡고 작고 기우뚱한 오두막에 딸린 것이었다. 알료샤가 알기로 그 오두막의 주인은 읍내의 한 읍민 여자로, 다리를 못 쓰는 노파였다. 노파는 딸과 함께 살았는데, 딸은 수도에서 세련된 하녀 노릇을 하며 얼마 전까지도 줄곧 장군 댁들을 옮겨 다니다가, 노파가 병이 나는 바람에 한 해쯤 전에 집으로 돌아와 멋들어진 옷을 뽐내고 다녔다. 그러나 이 노파와 딸은 지독한 가난에 빠져서, 이웃인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부엌으로 날마다 수프와 빵을 얻으러 다니기까지 했고, 마르파 이그나티예브나는 기꺼이 그들에게 수프를 떠 주었다. 그러나 딸은 수프를 얻으러 다니면서도 제 옷을 한 벌도 팔지 않았고, 그 가운데 한 벌에는 아주 긴 옷자락까지 달려 있었다. 이 마지막 사정을 알료샤는 물론 전혀 우연히, 그 읍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연코 다 알고 있는 친구 라키틴에게서 들었는데, 듣고 나서는 물론 곧바로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제 이웃 여자의 정원과 나란히 이르자, 그는 갑자기 바로 그 옷자락을 떠올리고는 생각에 잠겨 숙이고 있던 고개를 재빨리 들었다가…… 갑자기 더없이 뜻밖의 만남과 맞닥뜨렸다.
이웃집 정원의 바자울 너머에 그의 형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무엇인가를 딛고 올라서서 가슴까지 몸을 내밀고, 온 힘을 다해 그에게 손짓을 하며 그를 부르고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누가 들을까 봐 소리치기는커녕 소리 내어 말 한마디 하기도 겁내는 것이 분명했다. 알료샤는 곧바로 바자울로 달려갔다.
"네가 스스로 돌아보아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너를 소리쳐 부를 뻔했어."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기쁘게, 다급하게 그에게 속삭였다. "이리 넘어와! 어서! 아, 네가 와서 정말 잘됐다. 막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알료샤도 기뻤고, 다만 바자울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미탸"가 장사 같은 손으로 그의 팔꿈치를 붙잡아 뛰어넘는 것을 도왔다. 알료샤는 수도복 안옷 자락을 걷어 올리고, 맨발로 다니는 읍내 사내아이처럼 날렵하게 뛰어넘었다.
"자, 신나게 가자, 가자고!" 미탸의 입에서 열광에 찬 속삭임이 터져 나왔다.
"어디로?" 알료샤도 속삭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기들 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완전히 텅 빈 정원이었다. 정원은 작았지만 그래도 주인의 오두막은 그들에게서 적어도 쉰 걸음은 떨어져 있었다. "여기엔 아무도 없잖아. 왜 속삭여?"
"왜 속삭이냐고? 아, 제기랄."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갑자기 있는 대로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그래, 내가 왜 속삭이고 있지? 봐라, 자연이 이렇게 갑자기 뒤죽박죽이 될 수 있다니까. 나는 여기서 잠복하며 비밀을 지키고 있어. 설명은 나중에 하지. 그런데 비밀이라는 걸 아니까 말까지 갑자기 비밀스럽게 하게 되어서, 그럴 필요도 없는데 바보처럼 속삭이고 있구나. 가자! 저쪽으로! 그때까지는 입 다물고 있어. 너한테 입 맞추고 싶다!
세상에 계신 지고하신 분께 영광,
내 안에 계신 지고하신 분께 영광!……
"방금 여기 앉아서 네가 오기 전에 이걸 되뇌고 있었어……"
정원은 넓이가 1데샤티나1이거나 그보다 조금 넓었지만, 나무는 네 울타리를 따라 빙 둘러서만 심겨 있었는데, 사과나무, 단풍나무, 보리수, 자작나무였다. 정원 한가운데는 비어 있었고 풀밭이었는데, 여름이면 거기서 건초를 몇 푸드쯤 베었다. 여주인은 봄이면 몇 루블을 받고 정원을 세놓았다. 산딸기와 구스베리와 까치밥나무 이랑도 있었는데, 그것들도 모두 울타리 곁에 있었고, 집 바로 곁에는 채소 이랑이 있었는데, 하기야 얼마 전에 일군 것이었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손님을 정원에서 집과 가장 멀리 떨어진 한구석으로 데려갔다. 거기서 빽빽이 선 보리수들과 묵은 까치밥나무 덤불, 딱총나무, 가막살나무, 라일락 사이로 갑자기 무언가 아주 오래된 초록 정자의 폐허 같은 것이 드러났다. 거무스름하게 바래고 기우뚱해진 정자로, 벽은 격자였지만 지붕은 덮여 있어서 아직 비를 피할 수는 있었다. 정자는 언제 지어졌는지 하느님이나 아실 일이었지만, 전해 오는 말로는 쉰 해쯤 전에 그 무렵 이 오두막의 주인이던 퇴역 중령 알렉산드르 카를로비치 폰 시미트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미 썩어 문드러져서, 마루는 삭았고 마룻널은 모두 흔들렸으며 나무에서는 눅눅한 냄새가 났고, 정자 안에는 땅에 박아 세운 초록빛 나무 탁자가 있었고, 둘레에는 역시 초록빛인 걸상들이 놓여 있었는데 아직은 앉을 만했다. 알료샤는 곧바로 형이 열광에 들떠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정자에 들어서자 작은 탁자 위에 코냑 반병과 작은 술잔 하나가 보였다.
"코냑이야!" 미탸가 껄껄 웃었다. "그런데 너는 벌써 '또 술을 퍼마시는군' 하는 눈으로 보는구나? 허깨비를 믿지 마라.
공허하고 거짓된 무리를 믿지 마라,
네 의심일랑 잊어라……
"나는 퍼마시는 게 아니라 그저 '군것질'을 할 뿐이야. 네 돼지 같은 라키틴 말대로지. 그놈은 5등 문관이 될 거고, 평생 '군것질'이라는 말을 쓰겠지. 앉아라. 알료시카, 너를 붙잡아 가슴에 꽉 껴안고 싶다, 으스러지도록. 왜냐하면 온 세상에서…… 정말로…… 정, 말, 로…… (새겨들어! 새겨들어!) 나는 오직 너 하나만 사랑하니까!"
그는 마지막 줄을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내뱉었다.
"너 하나, 그리고 또 '비열한' 여자 하나. 그 여자한테 반해서 그 길로 끝장이 났지. 하지만 반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달라. 반하는 건 미워하면서도 할 수 있거든. 기억해 둬! 지금은 신이 나니까 말하는 거야! 여기 탁자 앞에 앉아라. 나는 옆에 비껴 앉아 너를 보면서 다 말할 테니. 너는 내내 잠자코 있고 나는 내내 말할 거야. 때가 왔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생각해 보니 정말 조용히 말해야겠어. 여기는…… 여기는…… 더없이 뜻밖의 귀가 열릴 수 있으니까. 다 설명할게. 말했잖아,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중에. 내가 왜 너한테 달려가고 싶었는지, 왜 지금 너를 갈망했는지, 요 며칠 내내, 그리고 지금도? (나는 벌써 닷새째 여기 닻을 내리고 있어.) 요 며칠 내내? 너한테만 다 말할 테니까, 그래야 하니까, 네가 필요하니까, 내일 내가 구름 위에서 떨어지니까, 내일 삶이 끝나고 또 시작되니까. 산에서 구덩이로 떨어지는 걸 겪어 본 적 있어, 꿈에서 본 적 있어? 그래, 나는 지금 꿈이 아니라 정말로 떨어지고 있어. 그런데 무섭지 않아. 너도 무서워하지 마. 아니, 무섭기는 한데 달콤해. 아니, 달콤한 게 아니라 환희야…… 에이, 제기랄, 무엇이든 상관없어. 센 기운이든, 약한 기운이든, 계집 같은 기운이든, 무엇이든! 자연을 찬양하자. 봐라, 햇빛이 얼마나 많은지, 하늘은 또 얼마나 맑은지, 잎사귀는 모두 푸르고, 아직 한여름이야. 오후 네 시, 이 고요함! 어디 가던 길이었어?"
"아버지한테 가는 길이었어. 그 전에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댁에 들르려고 했고."
"그 여자한테, 그리고 아버지한테! 우와! 우연의 일치로군! 내가 왜 너를 불렀는데, 왜 너를 바랐는데, 왜 영혼의 굽이굽이로, 갈비뼈로까지 너를 목마르게 갈망했는데? 바로 너를 내 대신 아버지한테 보내고, 그다음엔 그 여자한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한테 보내서, 그것으로 그 여자하고도 아버지하고도 끝장을 내려고. 천사를 보내려고. 아무나 보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천사를 보내야 했어. 그런데 너는 제 발로 그 여자한테, 그리고 아버지한테 가는구나."
"정말 나를 보내려고 했어?" 알료샤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얼굴과 함께 말이 터져 나왔다.
"잠깐, 너는 그걸 알고 있었어. 너는 모든 걸 단번에 알아차렸구나. 하지만 입 다물어, 지금은 입 다물어. 가엾게 여기지도 말고 울지도 마!"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일어나 생각에 잠기더니 손가락을 이마에 댔다.
"그 여자가 너를 직접 불렀구나, 너한테 편지를 썼거나 뭔가를 해서. 그래서 그 여자한테 가는 거지. 아니면 네가 갔겠어?"
"여기 쪽지가 있어." 알료샤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미탸는 재빨리 쪽지를 훑어보았다.
"그런데 너는 뒷길로 왔구나! 오, 신들이여! 이 애를 뒷길로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옛이야기에서 늙은 바보 어부에게 걸린 금붕어처럼 이 애가 나한테 걸려들었구나. 들어 봐, 알료샤, 들어 봐, 동생아. 이제 나는 다 말할 작정이야. 누구에게든 말을 하기는 해야 하니까. 하늘의 천사에게는 이미 말했지만, 땅의 천사에게도 말해야 해. 너는 땅의 천사야. 너는 다 들어 줄 거고, 판단해 줄 거고, 용서해 줄 거야…… 그리고 나한테 필요한 게 바로 그거야. 누군가 더 높은 이가 나를 용서해 주는 것. 들어 봐. 두 존재가 갑자기 땅의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가 남다른 곳으로 날아간다면, 아니면 적어도 그중 하나가 그렇다면, 그리고 그가 날아가기 전에, 또는 죽기 전에 다른 하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면, 나한테 이런저런 일을 해 다오, 아무도 결코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는, 오직 임종 자리에서나 부탁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해 다오, 한다면, 정말 그는 들어주지 않겠어…… 친구라면, 형제라면?"
"들어줄게.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말해 줘, 어서 말해 줘." 알료샤가 말했다.
"어서라…… 흠. 서두르지 마, 알료샤. 너는 서두르고 불안해하는구나. 이제 서두를 것 없어. 이제 세상은 새 거리로 나섰어. 에이, 알료샤, 네가 환희에까지 생각이 미친 적이 없다니 안타깝다! 아니, 그런데 내가 이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네가 생각이 미친 적이 없다니! 이 멍청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람이여, 고결하라!
이건 누구 시지?"
알료샤는 기다리기로 했다. 어쩌면 정말로 지금 자기의 모든 일이 오직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깨달았다. 미탸는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손바닥에 고개를 기댄 채 잠깐 생각에 잠겼다. 둘 다 잠시 말이 없었다.
"료샤." 미탸가 말했다. "너만은 웃지 않을 거야! 나는 시작하고 싶어…… 내 고백을…… 실러의 「환희의 송가」로. 「환희에게(An die Freude)」! 하지만 나는 독일어를 몰라. 아는 거라곤 '환희에게'라는 것뿐이야. 그리고 내가 취해서 지껄인다고 생각하지도 마. 전혀 취하지 않았어. 코냑은 코냑이지만, 나는 두 병은 마셔야 취해.
얼굴 불콰한 실레노스가
비틀거리는 나귀를 타고,
"그런데 나는 4분의 1병도 안 마셨고, 실레노스도 아니야. 실레노스가 아니라 실팍한 놈이지. 영원한 결심을 했으니까. 말장난은 용서해 줘. 너는 오늘 말장난뿐 아니라 많은 걸 나를 용서해야 해. 걱정 마, 나는 늘어놓는 게 아니라 할 말을 하는 거고, 금방 요점으로 갈 거야. 질질 끌지는 않을게. 잠깐, 그게 어떻게 되더라……"
그는 고개를 들고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열광에 차서 읊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 벌거벗은 채 사납게
혈거인은 바위 동굴에 숨어 살았고,
유목민은 들판을 떠돌며
들판을 황폐하게 했다.
창과 화살을 든 사냥꾼은
무섭게 숲을 내달렸다……
파도에 휩쓸려 반겨 줄 이 없는
기슭에 내던져진 자들에게 화 있으라!
올림포스의 봉우리에서
어머니 케레스가 내려온다,
빼앗긴 프로세르피나의 뒤를 좇아.
그 앞에 세상은 거칠게 누워 있다.
여신에게 몸 둘 곳도 대접도
그곳 어디에도 없고,
신을 섬기는 마음을
어느 신전도 증언하지 않는다.
들의 열매도 달콤한 포도송이도
잔칫상에서 빛나지 않고,
피 묻은 제단 위에서
주검의 남은 살만 연기를 피운다.
그곳에서 케레스가
슬픈 눈으로 어디를 둘러보아도
깊은 굴욕에 빠진
사람만 어디서나 보인다!
미탸의 가슴에서 갑자기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알료샤의 손을 붙잡았다.
"친구야, 친구야, 굴욕 속에, 지금도 굴욕 속에 있어. 사람이 땅 위에서 견뎌야 할 것이 무섭도록 많고, 사람에게 닥치는 불행이 무섭도록 많아! 내가 코냑이나 마시고 방탕하게 노는, 장교 계급을 단 상놈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마. 동생아, 나는 거의 이것만 생각해. 굴욕을 당한 이 사람만.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하느님, 이제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제 자랑을 하지 않게 해 주소서. 내가 이 사람을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야.
사람이 비천함에서
영혼을 일으켜 세우려면
오랜 어머니 대지와
영원한 동맹을 맺어야 하리.
"그런데 문제는 이거야. 내가 어떻게 대지와 영원한 동맹을 맺지? 나는 대지에 입 맞추지도 않고 대지의 가슴을 갈아엎지도 않아. 그럼 농군이나 목동이 되란 말이야? 나는 가면서도 모르겠어. 내가 악취와 치욕 속에 빠진 건지, 빛과 기쁨 속에 들어선 건지. 바로 그게 탈이야. 세상 모든 게 수수께끼니까! 그리고 내가 방탕의 가장, 가장 깊은 치욕 속에 빠져들 때마다(그리고 나한테는 그런 일만 있었지) 나는 늘 케레스와 사람에 관한 이 시를 읊었어. 그 시가 나를 고쳐 주었냐고? 단 한 번도! 나는 카라마조프니까. 나는 심연으로 날아들 거라면 곧장, 거꾸로 곤두박질쳐 떨어지니까, 그것도 바로 이런 굴욕스러운 꼴로 떨어지는 게 흡족하기까지 하고, 그걸 나한테 어울리는 아름다움으로 여기니까. 그리고 바로 그 치욕 속에서 나는 갑자기 찬가를 시작해. 내가 저주받았어도, 내가 천하고 비열해도, 나도 내 하느님이 두르신 옷자락 끝에 입 맞추게 해 다오, 내가 그와 동시에 악마의 뒤를 따라간다 해도, 나는 그래도 당신의 아들입니다, 주님,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고, 기쁨을 느낍니다. 그 기쁨 없이는 세상이 서 있을 수도, 있을 수도 없지요.
하느님이 지으신 것의 영혼을
영원한 기쁨이 적셔 주고,
발효의 신비한 힘으로
생명의 잔을 불태운다.
기쁨은 풀잎을 빛으로 꾀어내고,
혼돈을 펼쳐 태양들을 이루어
별 보는 이의 눈이 닿지 않는
허공에 흩뿌렸다.
자애로운 자연의 젖가슴에서
숨 쉬는 모든 것이 기쁨을 마시고,
모든 피조물, 모든 민족을
기쁨은 제 뒤로 이끈다.
불행 속에서 우리에게 벗을 주고,
포도즙과 카리스 여신들의 화관을 주었으며,
벌레에게는 호색을……
천사는 하느님 앞에 선다.
"하지만 시는 그만! 나는 눈물을 쏟았으니 너도 나를 울게 내버려 둬. 모두가 비웃을 어리석은 짓이라 해도, 너만은 비웃지 않겠지. 봐라, 네 눈도 반짝이잖아. 시는 그만. 이제 '벌레'에 대해, 하느님이 호색을 선물로 주신 그 벌레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벌레에게는 호색을!
"동생아, 내가 바로 그 벌레야. 이건 특별히 나를 두고 한 말이야. 그리고 우리 카라마조프 사람들은 모두 그래. 천사인 네 안에도 그 벌레가 살면서 네 핏속에 폭풍을 일으켜. 이건 폭풍이야, 호색은 폭풍이니까, 폭풍보다 더하니까! 아름다움은 무섭고 끔찍한 것이야! 무서운 건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고, 정의할 수 없는 건 하느님이 수수께끼만 내놓으셨기 때문인데, 여기서는 양쪽 기슭이 맞닿고, 여기서는 모든 모순이 함께 살아. 동생아, 나는 배운 게 정말 없지만 이걸 두고는 많이 생각했어, 비밀이 무섭도록 많고 너무 많은 수수께끼가 땅 위에서 사람을 짓누르지. 알아서 풀어 보고, 물에서 젖지 않고 빠져나와 봐라. 아름다움! 게다가 나는 이걸 견딜 수가 없어, 마음까지 고결하고 높은 지성을 지닌 어떤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에서 시작해서 소돔의 이상으로 끝난다는 거. 더 무서운 건, 이미 영혼에 소돔의 이상을 품은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도 부정하지 않고, 그 이상 때문에 그의 가슴이 불타오르고, 참으로, 참으로 불타오른다는 거야. 티 없던 젊은 시절처럼. 아니, 사람은 넓어, 너무나 넓어. 나라면 좁히겠어. 이게 대체 뭔지 귀신이나 알겠지, 바로 그거야! 이성에는 치욕으로 보이는 것이 마음에는 온통 아름다움이야. 소돔에 아름다움이 있을까? 믿어 둬,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은 바로 그 소돔에 들어앉아 있어. 너는 이 비밀을 알았어, 몰랐어? 끔찍한 건 아름다움이 무서울 뿐 아니라 신비롭기까지 하다는 거야. 여기서 악마가 하느님과 싸우고, 그 싸움터가 바로 사람의 마음이야. 하기야 아픈 사람이 아픈 데 얘기를 하는 법이지. 들어 봐, 이제 본론으로 가자."
주
1. 러시아의 넓이 단위. 1데샤티나는 약 1.09헥타르. 뒤에 나오는 푸드는 무게 단위로, 1푸드는 약 16.4킬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