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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제13장 사상의 간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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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사상의 간음자

"배심원 여러분, 제 의뢰인을 파멸시키는 것은 사실들의 총체만이 아닙니다." 그는 외쳤다. "아닙니다, 제 의뢰인을 참으로 파멸시키는 것은 단 하나의 사실, 바로 늙은 아버지의 시체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살인이었다면, 사실 하나하나를 총체로가 아니라 따로따로 살펴볼 때 그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증거가 없고 공상적인지 보시고, 여러분은 고발을 물리치셨을 것입니다. 적어도, 아아, 그가 그토록 자초한 선입견 하나만으로 한 인간의 운명을 망치기를 망설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아버지 살해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압도하고, 그것도 얼마나 압도하는지, 고발하는 사실들의 하찮음과 증거 없음조차 이제는 그리 하찮지도 그리 증거가 없지도 않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도 가장 선입견 없는 머리에서조차 말입니다. 그래, 이런 피고를 어떻게 무죄로 하겠느냐? 만약 그가 죽였는데 벌받지 않고 빠져나간다면 어쩌겠느냐, 누구나 거의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마음속에서 이렇게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나를 낳아 준 사람의 피,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의 피, 나를 위해 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의 피, 내 어린 시절부터 내 병을 함께 앓아 주고, 평생 내 행복을 위해 고통받고, 오직 내 기쁨과 내 성공으로 살아온 사람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오, 그런 아버지를 죽인다니, 그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아버지란 무엇입니까, 참된 아버지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얼마나 위대한 말이며, 이 이름에는 얼마나 무섭도록 위대한 사상이 담겨 있습니까? 우리는 방금 참된 아버지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얼마간 짚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모두가 그토록 매달려 있고 우리 영혼을 아프게 하는 이번 사건에서는, 이번 사건에서는 아버지, 고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가 방금 우리 마음에 떠오른 아버지라는 개념에 조금도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불행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어떤 아버지는 불행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 불행을 좀 더 가까이 살펴봅시다. 배심원 여러분, 앞에 놓인 결정이 이토록 중대하니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재능이 뛰어나신 검사님의 멋진 표현대로, 특히 지금 우리는 아이들이나 겁 많은 여자들처럼 어떤 사상을 두려워하거나 이를테면 손사래 쳐서 내쫓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제 상대는(제가 첫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이미 상대였던 분은) 열띤 연설에서 여러 번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니, 나는 누구에게도 피고를 변호하게 두지 않겠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변호인에게 그의 변호를 양보하지 않겠다, 나는 고발자이면서 변호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여러 번 외쳤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 무서운 피고가 어린 시절 아버지 집에서 자기를 귀여워해 준 단 한 사람에게서 받은 호두 1푼트를 그토록 꼬박 스물세 해 동안이나 고마워했다면, 반대로 그런 사람이 인정 많은 의사 게르첸시투베의 표현대로 '장화도 신지 않은 채 단추 하나로 겨우 채운 바지를 입고 뒷마당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던 것을 이 스물세 해 내내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언급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오, 배심원 여러분, 무엇 하러 우리가 이 '불행'을 더 가까이 살펴보며 모두가 이미 아는 것을 되풀이하겠습니까! 제 의뢰인이 이곳 아버지에게 왔을 때 무엇을 만났습니까? 그리고 왜, 왜 제 의뢰인을 무감각한 사람, 이기주의자, 괴물로 그려 보입니까? 그는 고삐가 풀렸고, 그는 거칠고 사납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를 심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누구 탓입니까. 좋은 성향과 고결하고 감수성 깊은 마음을 지녔는데도 그가 그토록 터무니없는 교육을 받은 것은 누구 탓입니까? 누가 그에게 사리를 가르쳐 주었습니까, 그가 학문으로 계몽되었습니까, 누가 어린 시절 그를 조금이라도 사랑해 주었습니까? 제 의뢰인은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다시 말해 들짐승처럼 자랐습니다. 어쩌면 그는 오랜 이별 끝에 아버지를 보기를 갈망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는 그 전에 꿈결처럼 자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 꿈에 나타났던 역겨운 유령들을 천 번이나 쫓아 버리고, 온 영혼으로 자기 아버지를 변명해 주고 껴안기를 갈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를 맞은 것은 냉소에 찬 조롱과 의심과 다툼거리인 돈을 둘러싼 트집뿐입니다. 그는 날마다 '코냑을 마시며' 마음이 뒤집힐 이야기와 처세훈만 듣고, 마침내 아버지가 아들인 자기에게서, 그것도 아들의 돈으로 애인을 가로채는 것을 봅니다. 오, 배심원 여러분, 이것은 역겹고 잔인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노인이 모두에게 아들이 공손하지 않고 잔인하다고 불평하고, 사교계에서 그를 더럽히고, 그를 해치고, 그를 헐뜯고, 그를 감옥에 넣으려고 그의 차용 증서를 사들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런 영혼들, 제 의뢰인처럼 겉보기에 모질고 거칠고 고삐 풀린 이런 사람들은 몹시 여린 마음을 지닌 경우가 있고, 그것도 가장 흔합니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 뿐입니다. 웃지 마십시오, 제 생각을 비웃지 마십시오! 재능 있는 검사는 아까 제 의뢰인이 실러를 좋아하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좋아한다고 내세우며 그를 무자비하게 비웃었습니다. 제가 그분 자리에, 검사 자리에 있었다면 저는 그것을 비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마음들은, 오, 그토록 드물게 그토록 부당하게 이해되는 이런 마음들을 변호하게 해 주십시오, 이런 마음들은 아주 자주 부드러운 것, 아름다운 것, 정의로운 것을 갈망하고, 그것도 바로 자기 자신과, 자기의 거칢과, 자기의 잔인함과 대조라도 이루듯이 무의식중에 갈망합니다. 바로 갈망합니다. 겉으로는 정열적이고 잔인한 그들은 이를테면 한 여인을 괴로울 만큼 사랑할 수 있고, 그것도 틀림없이 영적이고 드높은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또다시 저를 비웃지 마십시오. 이런 천성에서는 바로 이런 일이 가장 흔합니다! 다만 그들은 때로 몹시 거친 자기 정열을 감추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을 놀라게 하고, 바로 이것이 눈에 띄고, 사람의 속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정열은 모두 금세 채워지지만, 고결하고 아름다운 존재 곁에서 이 겉보기에 거칠고 잔인한 사람은 새로워지기를 찾고, 바로잡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숭고하고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찾습니다. 이 말이 아무리 웃음거리가 되었어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아까 저는 제 의뢰인과 베르호프체바 양의 소설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반마디쯤은 해도 되겠지요. 우리가 아까 들은 것은 진술이 아니라 광분하여 복수하는 여인의 외침일 뿐이었고, 배신을 나무랄 사람은 그 여자가, 오, 그 여자가 아닙니다. 그 여자 자신이 배신했으니까요! 정신을 차릴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여자는 그런 증언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 그 여자를 믿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제 의뢰인은 그 여자가 부른 것처럼 '악당'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사랑하신 분은 자기 십자가를 지러 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나니, 하나라도 멸망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도 한 인간의 영혼을 멸망시키지 맙시다! 저는 방금, 아버지란 무엇이냐고 묻고, 그것은 위대한 말이며 귀한 이름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배심원 여러분, 말은 정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니 저는 그 대상을 그 자체의 말로, 그 자체의 이름으로 부르겠습니다. 살해된 카라마조프 노인 같은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불릴 수 없고, 그렇게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그럴 만하게 해 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터무니없는 일이며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사랑을 지어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는 하느님만이 지어내십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사도는 사랑으로 타오르는 자기 마음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지금 제 의뢰인을 위해 이 거룩한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버지를 위해 이 말씀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누가 저에게 아버지들을 가르칠 이런 권세를 주었습니까? 아무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저는 부르짖습니다. 산 자들을 부른다(vivos voco)!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것은 오래지 않고, 우리는 나쁜 일을 많이 하고 나쁜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어울리는 알맞은 순간을 모두 붙잡아 서로 좋은 말도 해 줍시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동안 저는 제 순간을 씁니다. 이 연단이 드높은 뜻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는 말은 러시아 전체가 듣습니다. 저는 이곳의 아버지들만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아버지에게 외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먼저 우리 스스로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고, 그때에야 우리 아이들에게도 요구할 수 있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원수이며,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의 원수이고, 우리 스스로 그들을 원수로 만든 것입니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은 이제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복음서가 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헤아림을 받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리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우리의 헤아림으로 우리를 헤아린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나무라겠습니까? 얼마 전 핀란드에서 하녀로 일하는 한 처녀가 남몰래 아이를 낳았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그 여자를 지켜보다가 집의 다락 구석 벽돌 뒤에서 아무도 몰랐던 그 여자의 궤짝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을 열자 그 여자가 죽인 갓난아기의 작은 시체가 나왔습니다. 같은 궤짝에서 그 여자가 전에 낳아 태어나는 순간 역시 그 여자가 죽인 갓난아기 둘의 해골이 나왔고, 그 여자는 이것을 자백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 여자가 제 아이들의 어머니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여자가 아이들을 낳았지만, 그 여자가 아이들에게 어머니입니까? 우리 가운데 누가 감히 그 여자에게 어머니라는 거룩한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배심원 여러분, 대담해집시다, 무엄해지기까지 합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래야 할 의무까지 있으며, '쇠붙이'니 '유황불'이니 하는 말을 무서워하는 모스크바 상인 아낙들처럼 어떤 말과 사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1 아닙니다, 오히려 지난 몇 해의 진보가 우리의 발달에도 닿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똑바로 말합시다. 낳은 자가 곧 아버지인 것은 아니며, 아버지란 낳고 또 그럴 만하게 해 준 자입니다. 오, 물론 '아버지'라는 말에는 다른 뜻, 다른 풀이도 있습니다. 내 아버지가 설령 제 아이들에게 악당이고 악한이라 해도 오로지 나를 낳았다는 그 까닭 하나로 그래도 내 아버지로 남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풀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말하자면 신비적인 뜻이어서, 저는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더 정확히 말하면 믿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종교가 믿으라고 명하는 다른 많은 것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면 이것은 현실 생활의 영역 밖에 남아 있게 합시다. 자기 권리를 지닐 뿐 아니라 스스로 크나큰 의무를 지우기도 하는 현실 생활의 영역에서는, 이 영역에서는 우리가 인도적이고자 한다면,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도인이고자 한다면, 이성과 경험으로 정당화되고 분석의 용광로를 거친 신념만을 펼쳐야 하고 또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사람을 괴롭히고 파멸시키지 않도록, 꿈이나 헛소리 속에서처럼 분별없이 하지 말고 분별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바로, 바로 그때에야 이것은 참된 그리스도교의 일, 신비적일 뿐인 일이 아니라 분별 있고 이미 참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법정의 여러 곳에서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오려 했지만, 페튜코비치는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듯이 두 손을 내젓기까지 했다. 모든 것이 곧바로 잠잠해졌다. 연설가는 말을 이었다.

"배심원 여러분, 이런 물음들이 우리 아이들을, 이미 청년이 되었다고 합시다, 이미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합시다, 그런 우리 아이들을 비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비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불가능한 절제를 요구하지 맙시다! 못난 아버지의 모습은, 특히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게 있는 다른 훌륭한 아버지들과 견주어 볼 때, 청년에게 저도 모르게 괴로운 물음들을 일러 줍니다. 그 물음에 사람들은 관청 투로 대답해 줍니다. '그는 너를 낳았고 너는 그의 피다. 그러니 너는 그를 사랑해야 한다.' 청년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깁니다. '그런데 그가 나를 낳을 때 나를 사랑했던가?' 그는 점점 더 놀라며 묻습니다. '그가 나를 위해 나를 낳았던가? 그 순간에, 어쩌면 술로 달아오른 정열의 순간에 그는 나도, 내 성별조차도 몰랐고, 기껏해야 나에게 술버릇을 물려주었을 뿐이다. 그것이 그가 베푼 은혜의 전부다…… 그런데 왜 내가 그를 사랑해야 하는가, 그가 나를 낳았다는 그것 하나로, 그러고는 평생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오, 여러분께는 어쩌면 이런 물음들이 거칠고 잔인해 보이겠지만, 젊은 머리에 불가능한 절제를 요구하지는 마십시오. '본성을 문으로 내쫓으면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쇠붙이'와 '유황불'을 두려워하지 말고, 신비적인 개념이 명하는 대로가 아니라 이성과 인간애가 명하는 대로 이 물음을 풉시다.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풉시다. 아들이 자기 아버지 앞에 서서 생각을 갖추어 아버지 자신에게 묻게 합시다. '아버지, 말해 주세요. 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나요?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세요.' 그리고 이 아버지가 대답하고 증명해 줄 힘과 능력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신비적인 편견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엄격하게 인도적인 기초 위에 선 참되고 정상적인 가정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 아버지가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곧바로 끝장입니다. 그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아니며, 아들은 앞으로 자기 아버지를 남으로, 심지어 자기 원수로 여길 자유와 권리를 얻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우리 연단은 진리와 건전한 개념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연설가는 걷잡을 수 없는, 거의 광분에 찬 박수로 말이 끊겼다. 물론 법정 전체가 박수를 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법정의 절반은 박수를 쳤다.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 박수를 쳤다. 부인들이 앉아 있던 위층에서는 날카로운 소리와 외침이 들렸다. 손수건을 흔들었다. 재판장은 있는 힘을 다해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법정의 소란에 눈에 띄게 짜증이 나 있었지만, 조금 전에 으름장을 놓은 대로 법정을 "비울" 엄두는 결코 내지 못했다. 뒤쪽 특별석에 앉은 고관들, 연미복에 훈장 별을 단 노인들까지 연설가에게 박수를 치고 손수건을 흔들었으니, 소란이 가라앉았을 때 재판장은 법정을 "비우겠다"는 앞서의 더없이 엄한 약속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만족했고, 의기양양하고 흥분한 페튜코비치는 다시 연설을 이어 갔다.

"배심원 여러분, 오늘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오간 그 무서운 밤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다. 아들이 울타리를 넘어 아버지의 집으로 숨어들어, 마침내 자기를 낳은 자이자 원수이며 모욕한 자와 얼굴을 마주하고 섰던 그 밤 말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주장합니다. 그 순간 그가 달려온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미 앞서 설명했듯이 강도죄의 고발은 터무니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버지에게 뛰어든 것은 죽이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 아닙니다. 그에게 미리 계획한 그런 뜻이 있었다면 적어도 무기라도 미리 마련해 두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리 절굿공이는 그가 무엇 하러 그러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움켜쥔 것입니다. 그가 신호로 아버지를 속였다고 합시다, 그가 아버지에게 숨어들었다고 합시다. 저는 이 전설을 한순간도 믿지 않는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합시다, 할 수 없지요, 한순간 그렇다고 추측해 봅시다! 배심원 여러분, 모든 거룩한 것을 걸고 여러분께 맹세합니다. 그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남남인 모욕자였다면, 그는 방들을 달려 지나가며 그 여자가 이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기 연적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쏜살같이 달아났을 것입니다. 어쩌면 때리거나 떠밀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뿐이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럴 겨를이 없었고 시간이 없었으며, 그는 그 여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아버지, 아버지는, 오, 모든 것을 저지른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모습, 어릴 적부터 자기를 미워한 자, 자기의 원수, 자기를 모욕한 자, 그리고 이제는 괴물 같은 연적의 모습이었습니다! 증오의 감정이 저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그를 사로잡았고, 따져 볼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들고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광기와 착란의 격정이었지만, 자연의 격정, 자연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걷잡을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자기의 영원한 법칙을 위해 복수하는 자연의 격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살인자는 이때에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단언합니다, 저는 이것을 외칩니다. 아닙니다, 그는 다만 역겨운 분노에 차서 절굿공이를 휘둘렀을 뿐, 죽이려 하지도 않았고 죽이게 되리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 운명의 절굿공이가 그의 손에 없었다면, 그는 어쩌면 아버지를 때리기만 했을 뿐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달아나면서 그는 자기가 쓰러뜨린 노인이 죽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살인은 살인이 아닙니다. 이런 살인은 아버지 살해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런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아버지 살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살인은 오직 편견에 따라서만 아버지 살해로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살인이 정말로, 정말로 있었습니까, 제 영혼 깊은 곳에서 저는 여러분께 거듭, 거듭 부르짖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우리가 그를 유죄로 판결하면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내 운명을 위해, 내 양육을 위해, 내 교육을 위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나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나를 먹이지도 마시게 하지도 않았고, 옥에 갇혀 헐벗었을 때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들이 나를 유형지로 보냈다. 나는 셈을 치렀다. 나는 이제 그들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고, 영원무궁토록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다. 그들이 악하니 나도 악해지겠다. 그들이 잔인하니 나도 잔인해지겠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리고 맹세합니다. 여러분은 유죄 판결로 그를 홀가분하게 해 줄 뿐입니다. 그의 양심을 홀가분하게 해 줄 뿐이고, 그는 자기가 흘린 피를 뉘우치지 않고 저주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여러분은 그의 안에 아직 있을 수 있는 인간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는 평생 악하고 눈먼 채로 남을 테니까요. 그러나 여러분은 그를 무섭게, 엄하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벌로 벌하되, 그의 영혼을 영원히 구하고 되살리려 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비로 그를 짓눌러 주십시오! 여러분은 보실 것이고, 그의 영혼이 얼마나 떨며 두려워하는지 들으실 것입니다. '내가 이 자비를 견딜 수 있을까, 나에게 이토록 큰 사랑이라니, 내가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는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오, 저는 압니다, 저는 이 마음을, 이 거칠지만 고결한 마음을 압니다, 배심원 여러분. 이 마음은 여러분의 위업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이며, 위대한 사랑의 행위를 갈망하고, 불타올라 영원히 부활할 것입니다. 편협함 때문에 온 세상을 탓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혼을 자비로 짓눌러 주시고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이 영혼은 자기가 한 일을 저주할 것입니다. 이 영혼 안에는 선한 싹이 그토록 많으니까요. 영혼은 넓어져서, 하느님이 얼마나 자비로우시고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의로운지 볼 것입니다. 뉘우침과, 앞으로 그에게 놓인 셀 수 없는 빚이 그를 두렵게 하고 짓누를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그때 '나는 셈을 치렀다'고 말하지 않고 '나는 모든 사람 앞에 죄가 있고, 모든 사람보다 못나다'고 말할 것입니다. 뉘우침의 눈물과 불타는 듯한 고통에 찬 감동 속에서 그는 외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보다 낫다, 나를 파멸시키려 하지 않고 구하려 했으니까!' 오, 여러분에게 이것은, 이 자비의 행위는 이토록 쉬운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진실 같은 증거가 하나도 없는데 '그렇다, 유죄다' 하고 선고하기는 여러분에게 너무나 무거울 테니까요. 죄 없는 사람 하나를 벌하느니 죄 있는 사람 열을 놓아주는 편이 낫다. 들리십니까, 우리의 영광스러운 역사의 지난 세기에서 들려오는 이 장엄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보잘것없는 제가 감히 여러분께 일깨워 드려야 하겠습니까, 러시아의 재판은 형벌일 뿐 아니라 파멸한 사람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른 민족들에게는 글자와 형벌이 있다 해도, 우리에게는 정신과 의미가, 파멸한 사람들의 구원과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정말로 러시아와 러시아의 재판이 그렇다면, 앞으로 나아가라 러시아여! 그리고 우리를 겁주지 마십시오, 오, 모든 민족이 역겨워하며 비켜서는 여러분의 미쳐 날뛰는 트로이카로 우리를 겁주지 마십시오! 미쳐 날뛰는 트로이카가 아니라 장엄한 러시아의 마차가 엄숙하고 평온하게 목적지에 이를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제 의뢰인의 운명이 있고, 여러분의 손에 우리 러시아의 진리의 운명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구하실 것이고, 그것을 지키실 것이며, 그것을 지킬 사람이 있고 그것이 좋은 손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주

  1. 1. 오스트롭스키의 희곡 『힘든 나날』(1863)에서 모스크바의 상인 아낙이 '쇠붙이(металл)'니 '유황불(жупел)'이니 하는 낯선 말을 듣고 무서워하는 장면을 빗댄 것. 알 수 없는 말을 덮어놓고 두려워하는 무지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