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돈키호테가 붉은 포도주 가죽 부대들과 벌인 용감하고 엄청난 싸움과 객줏집에서 일어난 다른 희한한 일들을 다룬다
그러고 있는데 객줏집 문간에 서 있던 주인이 말했다.
"저기 멋진 손님 일행이 오네요. 저 사람들이 여기 묵으면 잔치(gaudeamus)가 벌어지겠는데요."
"어떤 사람들이오?" 카르데니오가 말했다.
"사내 넷이요." 주인이 대답했다. "짧은 등자로 말을 타고 창과 가죽 방패를 들었는데, 다들 검은 복면을 썼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하고 같이 흰옷 입은 여자 하나가 여자 안장에 앉아 오는데, 그 여자도 얼굴을 가렸고요. 걸어서 따라오는 젊은이도 두 명 있어요."
"가까이 왔소?" 신부가 물었다.
"아주 가까이요." 주인이 대답했다. "벌써 다 왔어요."
이 말을 듣자 도로테아는 얼굴을 가렸고, 카르데니오는 돈키호테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할 틈도 거의 없었는데, 주인이 말한 사람들이 모두 객줏집으로 들어왔다. 풍채와 몸매가 아주 훤칠한 말 탄 네 사내는 말에서 내리자 여자 안장에 앉아 온 여자를 내려 주러 갔다. 그중 하나가 여자를 두 팔에 안아, 카르데니오가 숨은 방 입구에 놓인 의자에 앉혔다. 그동안 여자도 사내들도 복면을 벗지 않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여자는 의자에 앉으며 깊은 한숨을 쉬고는, 병들어 까무러친 사람처럼 두 팔을 늘어뜨렸다. 걸어온 젊은이들은 말들을 마구간으로 끌고 갔다.
신부는 그것을 보고 그런 차림을 하고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젊은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 그중 하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젊은이가 대답했다.
"맙소사, 나리,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요. 다만 아주 지체 높은 사람들 같다는 것만 알아요. 특히 나리께서 보신 그 아씨를 두 팔로 안아 내린 사람이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받들고, 그 사람이 분부하고 명령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그럼 그 아씨는 누군가?" 신부가 물었다.
"그것도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오는 내내 얼굴을 못 봤거든요. 한숨 쉬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어요. 신음 소리도 내는데, 한 번 낼 때마다 영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더라니까요. 저희가 지금 말씀드린 것밖에 모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어요. 저하고 제 동무는 이 사람들을 따라온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됐거든요. 길에서 이 사람들을 만났는데, 품삯을 아주 넉넉히 주겠다면서 안달루시아까지 같이 가자고 부탁하고 설득해서요."
"그럼 저 사람들 가운데 누구의 이름이라도 들은 적이 있나?" 신부가 물었다.
"정말이지 없어요." 젊은이가 대답했다. "다들 놀랄 만큼 말없이 길을 가거든요. 그 사람들 사이에서 들리는 거라곤 가엾은 아씨의 한숨과 흐느낌뿐인데, 그게 저희 마음을 아프게 해요. 저희는 그 아씨가 어디로 가든 억지로 끌려가는 게 틀림없다고 믿어요. 옷차림으로 짐작해 보면 수녀이거나 수녀가 되러 가는 길인데, 아마 그게 맞을 거예요. 그리고 수녀가 되는 게 제 뜻에서 나온 게 아니라서 보시다시피 저렇게 슬퍼하는 모양이에요."
"다 그럴 수도 있겠지." 신부가 말했다.
그리고 신부는 그들을 두고 도로테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도로테아는 복면한 여자가 한숨 쉬는 소리를 듣고 타고난 연민에 이끌려 그 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씨, 어디가 아프세요? 여자들이 흔히 다뤄 보고 고칠 줄 아는 병이라면 말씀해 보세요. 저로서는 기꺼이 아씨를 돌봐 드리고 싶어요."
이 모든 말에도 가엾은 아씨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도로테아가 더 정성스럽게 도와주겠다고 거듭 말했지만, 아씨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다른 이들이 모두 그를 따른다고 젊은이가 말한 그 복면한 기사가 다가와 도로테아에게 말했다.
"아씨, 그 여자에게 아무것도 주려고 애쓰지 마시오. 그 여자는 남이 자기를 위해 해 주는 것을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이 버릇이오. 그 여자의 입에서 무슨 거짓말을 듣고 싶지 않거든 대답을 들으려 하지도 마시오."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소."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오히려 너무 참되고 거짓 꾀를 부릴 줄 몰라서 지금 이토록 불행한 처지가 되었소. 그 증인은 바로 당신이 되어 주시오. 나의 순전한 진실이 당신을 거짓되고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으니까."
카르데니오는 이 말을 아주 또렷하고 분명하게 들었다. 그 말을 하는 사람과 그 사이에는 돈키호테의 방문 하나만 있을 만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느님 맙소사! 이게 무슨 소리지? 내 귀에 들려온 이 목소리는 무엇이지?"
그 외침에 그 아씨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고, 누가 외치는지 보이지 않자 일어나 그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기사가 그것을 보고 붙들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 여자는 당황하고 허둥대다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비단 천이 흘러내려,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과 기적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나 얼굴은 핏기가 없고 넋이 나가 있었다. 눈이 닿는 곳을 모두 어찌나 열심히 눈으로 훑었던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 여자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면서 도로테아도, 그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모두 그 몸짓을 보고 몹시 가엾게 여겼다. 기사는 그 여자의 등 뒤에서 그 여자를 꽉 붙잡고 있었는데, 붙잡느라 바빠서 흘러내리는 복면을 추켜올릴 수가 없었고, 결국 복면은 아예 벗겨지고 말았다. 그때 그 아씨를 끌어안고 있던 도로테아가 눈을 들어 보니, 역시 그 아씨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남편 돈 페르난도였다. 도로테아는 그를 알아보자마자 오장육부 깊은 데서부터 길고 몹시도 슬픈 '아!' 소리를 토해 내며 뒤로 까무러쳐 쓰러졌다. 바로 곁에 있던 이발사가 두 팔로 받아 주지 않았더라면 땅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신부가 곧바로 달려가 얼굴에 물을 끼얹어 주려고 도로테아의 가리개를 벗겼다. 그 얼굴이 드러나자마자 다른 여자를 끌어안고 있던 돈 페르난도가 도로테아를 알아보았고, 도로테아를 보자 죽은 사람처럼 굳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루스신다를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려 애쓰는 여자가 바로 루스신다였다. 루스신다는 탄식 소리로 카르데니오를 알아보았고, 카르데니오도 루스신다를 알아보았다. 카르데니오는 또 도로테아가 까무러치며 지른 '아!' 소리를 듣고 그것이 루스신다라고 믿어 겁에 질려 방에서 뛰쳐나왔는데, 맨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루스신다를 끌어안고 있는 돈 페르난도였다. 돈 페르난도도 곧 카르데니오를 알아보았다. 그리하여 루스신다와 카르데니오와 도로테아 세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거의 모른 채 말을 잃고 얼어붙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로테아는 돈 페르난도를, 돈 페르난도는 카르데니오를, 카르데니오는 루스신다를, 루스신다는 카르데니오를. 그러나 맨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루스신다였다. 루스신다는 돈 페르난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놓아주시오, 돈 페르난도 나리. 다른 까닭으로는 그러지 않더라도, 나리라는 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생각해서라도 놓아주시오. 내가 담쟁이로 기대어 사는 담에게 가게 해 주시오. 나리의 성가신 졸라 댐도, 나리의 위협도, 나리의 약속도, 나리의 선물도 나를 떼어 놓지 못한 그 버팀목에게 말이오. 보시오, 하늘이 낯설고 우리에게는 숨겨진 길로 나의 참된 남편을 내 앞에 데려다 놓았소. 그리고 나리는 값비싼 숱한 경험으로, 오직 죽음만이 그분을 내 기억에서 지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니 이토록 뚜렷한 깨우침을 보고, 다른 것은 할 수 없다면 사랑을 분노로, 바람을 원한으로 바꾸어 그 분노로 내 목숨을 끊으시오. 나의 착한 남편 앞에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면 나는 그 목숨을 잘 쓴 것으로 여기겠소. 어쩌면 내 죽음으로 그분은 내가 목숨의 마지막 고비까지 그분께 지킨 믿음을 보고 흡족해하실 것이오."
그사이 도로테아는 정신이 들어 루스신다가 하는 말을 모두 듣고 있었고, 그 말로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도로테아는 돈 페르난도가 아직도 루스신다를 품에서 놓지 않고 그 말에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있는 힘을 다해 일어나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름답고 애처로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그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리, 그대 품에서 빛을 잃은 이 해의 햇살이 그대 눈의 빛을 빼앗아 흐리게 하지 않았다면, 그대 발치에 무릎 꿇은 이 여자가 그대가 바라는 동안은 불운하고 가엾은 도로테아라는 것을 벌써 알아보았겠지. 나는 그대가 그대의 착함으로든 그대의 즐거움으로든 그대의 것이라 불릴 수 있는 높은 자리로 끌어올리려 했던 그 비천한 농사꾼 처녀다. 나는 정숙함의 울타리 안에 갇혀 흡족하게 살다가, 그대가 졸라 대는 목소리와 정당하고 사랑에 넘쳐 보이는 그대의 감정에 이끌려 조신함의 문을 열고 그대에게 내 자유의 열쇠를 건넨 바로 그 여자다. 그대는 그 선물을 그토록 고마워할 줄 몰랐으니, 내가 그대가 지금 나를 찾아낸 이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내가 그대를 지금 보는 이런 모습으로 보게 된 것이 그것을 똑똑히 보여 준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불명예의 발걸음으로 여기 왔다고 그대가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그대에게 잊힌 괴로움과 슬픔의 발걸음뿐이니까. 그대는 내가 그대의 것이 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바랐으니 이제 와서 내가 그대의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해도 그대가 나의 것이 아닐 수는 없다. 나리, 생각해 봐라. 그대가 나를 버리고 택한 그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내가 그대에게 품은 비할 데 없는 마음이 갚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름다운 루스신다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대는 나의 것이니까. 루스신다도 그대의 것이 될 수 없다. 카르데니오의 것이니까. 잘 생각해 보면, 그대를 미워하는 여자의 마음을 돌려 그대를 사랑하게 하는 것보다 그대를 우러르는 여자를 사랑하도록 그대의 마음을 돌리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그대는 나의 방심을 꾀었고, 그대는 나의 굳은 마음에 빌었고, 그대는 내 신분을 모르지 않았고, 그대는 내가 어떻게 그대의 뜻에 나를 온전히 내맡겼는지 잘 안다. 그대에게는 속았다고 핑계 댈 자리도 피할 곳도 없다. 그리고 이것이 그렇다면, 정말 그렇지만, 그리고 그대가 기사인 만큼 그리스도교 신자이기도 하다면, 그대는 왜 처음에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듯이 끝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이렇게 에둘러 미루는가?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곧 그대의 참되고 정당한 아내로 원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를 그대의 종으로라도 원하고 받아들여 다오. 그대의 손안에 있기만 하면 나는 나를 복되고 운 좋은 여자로 여길 테니까. 나를 버리고 내팽개쳐 내 불명예를 두고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게 하지 마라. 내 부모에게 그토록 험한 노년을 주지 마라. 착한 신하로서 그대의 부모를 늘 충실하게 섬겨 온 그분들은 그런 일을 당할 까닭이 없다. 그리고 내 피와 섞으면 그대의 피가 더럽혀진다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이 길을 거치지 않은 귀족 가문은 거의, 아니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해 봐라. 그리고 이름난 가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자 쪽에서 받은 피가 아니다. 더구나 참된 고귀함은 덕에 있으니, 그대가 마땅히 내게 갚아야 할 것을 거절하여 그 덕을 잃는다면, 고귀함으로 치면 내가 그대보다 더 낫게 될 것이다. 끝으로, 나리,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이것이다.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그대의 아내다. 그대의 말이 증인이다. 그대가 나를 업신여기는 바로 그것을 자랑으로 삼는다면, 그대의 말은 거짓일 리도 없고 거짓이어서도 안 된다. 그대가 한 서명이 증인이 될 것이고, 그대가 내게 약속한 것의 증인으로 그대가 불러낸 하늘이 증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없다 해도 그대의 양심이 그대의 기쁨 한가운데서 소리 없이 외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이 진실을 지키며 그대의 가장 좋은 즐거움과 기쁨을 어지럽힐 것이다."
가엾은 도로테아는 이런저런 말을 어찌나 슬프게 눈물을 흘리며 했던지, 돈 페르난도와 함께 온 사람들까지,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눈물을 흘렸다. 돈 페르난도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그 말을 들었다. 마침내 도로테아가 말을 끝내고 흐느낌과 한숨을 시작하자, 그 숱한 괴로움의 표시를 보고도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청동으로 된 심장이었을 것이다. 루스신다는 도로테아를 바라보며, 그 슬픔에 마음 아파하는 만큼 그 깊은 슬기와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루스신다는 도로테아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몇 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자기를 꽉 붙잡은 돈 페르난도의 팔이 놓아주지 않았다. 혼란과 놀람에 가득 찬 돈 페르난도는 한참 동안 도로테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팔을 풀어 루스신다를 놓아주며 말했다.
"이겼다, 아름다운 도로테아여, 그대가 이겼다. 이토록 많은 진실을 한꺼번에 부정할 배짱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
까무러쳤던 루스신다는 돈 페르난도가 놓아주자 바닥에 쓰러지려 했다. 그러나 돈 페르난도에게 알아보이지 않으려고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카르데니오가 바로 곁에 있다가, 모든 두려움을 제쳐 두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루스신다를 붙들었다. 그리고 루스신다를 두 팔로 안으며 말했다.
"자비로운 하늘이 이제 네가 쉬기를 바라고 원한다면, 충실하고 굳세고 아름다운 나의 아씨, 지금 너를 받아 안는 이 팔보다 더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운명이 내게 너를 내 사람이라 부르게 허락했던 그 옛날에도 너를 받아 안았던 이 팔보다."
이 말에 루스신다는 카르데니오에게 눈길을 주었다. 먼저 목소리로 그를 알아보기 시작해 눈으로 그가 맞음을 확인하자, 루스신다는 거의 정신을 잃은 채 정숙한 예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카르데니오의 얼굴에 제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그래요, 나리, 당신이야말로 당신의 이 포로의 참된 주인이오. 아무리 거스르는 운명이 막는다 해도, 당신의 목숨에 기대어 사는 이 목숨을 아무리 위협한다 해도."
이것은 돈 페르난도에게도, 둘러선 모든 사람에게도 기이한 광경이었고, 다들 그 보도 듣도 못한 일에 놀랐다. 도로테아가 보기에 돈 페르난도는 얼굴빛을 잃었고, 카르데니오에게 복수하려는 몸짓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칼에 손을 대려고 손을 뻗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도로테아는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보도 못한 날램으로 그의 무릎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꼭 붙들어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눈물을 잠시도 그치지 않은 채 그에게 말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고비에, 나의 단 하나뿐인 피난처여, 그대는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그대 발치에는 그대의 아내가 있고, 그대가 아내로 삼으려는 여자는 제 남편의 품에 안겨 있다. 하늘이 한 일을 되돌리는 것이 그대에게 옳은 일인지, 아니 그럴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 봐라. 아니면 모든 거리낌을 제쳐 두고 제 진실과 굳은 마음을 굳혀, 사랑의 눈물로 제 참된 남편의 얼굴과 가슴을 적시며 그대 눈앞에서 남편에게 눈을 맞추고 있는 그 여자를 그대와 나란한 자리로 끌어올리려 하는 것이 그대에게 맞는 일인지. 하느님의 이름으로 비노니, 그리고 그대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간청하노니, 이토록 뚜렷한 깨우침이 그대의 분노를 키우지 말고 오히려 누그러뜨려, 이 두 연인이 하늘이 허락하는 동안 내내 그대의 방해 없이 평온하고 고요하게 그 깨우침을 누리게 해 다오. 그러면 그대는 그 이름나고 고귀한 가슴의 너그러움을 보여 주게 될 것이고, 세상은 그대에게서 욕정보다 이성이 더 힘센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도로테아가 이 말을 하는 동안 카르데니오는 루스신다를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돈 페르난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가 자기를 해치려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이 보이면, 목숨을 잃더라도 자신을 지키며 자기를 해치려고 나서는 자들을 모두 있는 힘껏 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돈 페르난도의 벗들과, 모든 일을 지켜보던 신부와 이발사가 달려왔고, 착한 산초 판사도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돈 페르난도를 둘러싸고, 도로테아의 눈물을 굽어보아 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그들이 틀림없이 믿듯이 도로테아가 한 말이 참말이라면, 그토록 정당한 희망을 저버리고 도로테아를 속은 채로 두지 말라고 했다. 그들이 모두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 한데 모인 것은 보기처럼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특별한 섭리이니 그것을 헤아려 보라고 했다. 그리고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오직 죽음만이 루스신다를 카르데니오에게서 떼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두라고, 칼날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해도 그들은 그 죽음을 더없이 행복한 것으로 여길 것이라고, 돌이킬 수 없는 매듭 앞에서는 스스로를 억누르고 이겨 너그러운 가슴을 보여 주며 오직 그의 뜻으로 두 사람이 하늘이 이미 허락한 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슬기라고. 또한 도로테아의 아름다움에도 눈을 돌려 보라고 권했다. 그러면 그 아름다움에 맞설 여자는 거의, 아니 하나도 없고 더 나은 여자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아름다움에 도로테아의 겸손과 그를 향한 지극한 사랑까지 더해 보라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기사이자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자랑으로 여긴다면 준 약속을 지키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는 데 모두 입을 모았다. 약속을 지키면 하느님께 도리를 다하고 슬기로운 사람들을 흡족하게 할 것이다. 슬기로운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비천한 사람에게 있더라도 정숙함을 갖추기만 하면, 끌어올려 자기와 나란히 하는 사람에게 아무 흠도 되지 않고 어떤 높은 자리에도 올라 나란히 설 수 있는 것이 아름다움의 특권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죄가 끼지 않는 한, 즐거움의 강한 법을 따르는 사람은 탓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요컨대 모두가 이 말에 이런저런 말을 숱하게 보태자, 돈 페르난도의 용맹한 가슴은(결국 이름난 피를 먹고 자란 가슴답게) 누그러져, 그가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었을 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자기에게 내놓인 좋은 의견에 항복하고 몸을 맡겼다는 표시로 몸을 굽혀 도로테아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일어나시오, 나의 아씨. 내가 내 영혼 속에 품은 사람이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옳지 않소.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의 표시를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하늘의 뜻이었는지도 모르오.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그 믿음을 그대에게서 보고, 그대를 마땅한 만큼 귀히 여길 줄 알게 하려는 뜻 말이오. 그대에게 비는 것은 내 못된 처사와 크나큰 소홀함을 꾸짖지 말아 달라는 것이오. 나로 하여금 그대를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한 바로 그 계기와 힘이 나를 그대의 사람이 되지 않으려 애쓰게 몰아붙였으니까. 이것이 참말임을 알고 싶거든 돌아서서 이제 흡족해진 루스신다의 눈을 보시오. 그 눈에서 내 모든 잘못의 변명을 찾게 될 것이오. 그리고 루스신다는 바라던 것을 찾아 얻었고 나는 그대에게서 내게 마땅한 것을 찾았으니, 루스신다는 카르데니오와 함께 길고 행복한 세월을 마음 놓고 흡족하게 살기를. 나는 내 도로테아와 함께 그런 세월을 살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겠소."
이렇게 말하며 그는 다시 도로테아를 끌어안고 그 얼굴에 제 얼굴을 맞대었는데, 그 마음이 어찌나 애틋했던지 눈물이 그의 사랑과 뉘우침을 틀림없는 표시로 드러내 버리지 않게 무척 애를 써야 했다. 루스신다와 카르데니오의 눈물은,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의 눈물은 그렇게 참아지지 않았다. 어떤 이는 제 기쁨에, 어떤 이는 남의 기쁨에 어찌나 많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던지, 꼭 무슨 크고 나쁜 일이 모두에게 닥친 것만 같았다. 산초 판사까지 울었다. 하기야 나중에 그는, 자기가 운 것은 도로테아가 자기 생각과 달리 미코미코나 여왕이 아니어서, 그토록 많은 은혜를 바랐던 여왕이 아니어서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울음과 함께 놀라움이 모두에게 이어졌다. 그러다 카르데니오와 루스신다가 돈 페르난도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그가 베푼 은혜에 감사하는데, 그 말이 어찌나 정중했던지 돈 페르난도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두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깊은 사랑과 정중함을 보이며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는 도로테아에게, 자기 고향에서 그토록 먼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말해 달라고 했다. 도로테아는 짧고 슬기로운 말로, 앞서 카르데니오에게 들려준 것을 모두 이야기했다. 돈 페르난도와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어찌나 즐거웠던지 더 길게 이어지기를 바랄 정도였다. 도로테아가 제 불운을 이야기하는 솜씨가 그토록 매력이 있었다. 도로테아가 이야기를 마치자 돈 페르난도는, 루스신다의 가슴 속에서 루스신다가 카르데니오의 아내이므로 자기 아내가 될 수 없다고 밝힌 쪽지를 찾아낸 뒤 그 도시에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루스신다를 죽이려 했고, 루스신다의 부모가 막지 않았더라면 정말 죽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분하고 창피한 마음으로, 더 좋은 기회에 앙갚음하리라 마음먹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이튿날 루스신다가 부모의 집에서 사라졌고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몇 달 뒤 마침내 루스신다가 어느 수녀원에 있으며, 카르데니오와 함께 살 수 없다면 평생 그곳에 머물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알자마자 저 세 기사를 길동무로 골라 루스신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자기가 와 있다는 것을 알면 수녀원의 경계가 더 삼엄해질까 두려워 루스신다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수녀원 문간이 열리는 날을 기다렸다가, 두 사람에게 문을 지키게 하고 자기는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수녀원에 들어가 루스신다를 찾았는데, 루스신다는 회랑에서 수녀 하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루스신다에게 다른 틈을 주지 않고 낚아채 어느 마을로 데려왔고, 거기서 루스신다를 데려가는 데 필요한 것을 마련했다고 했다. 수녀원이 마을에서 꽤 떨어진 들판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이 모든 일을 아무 탈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는 루스신다가 자기 손에 들어온 것을 알자 정신을 잃었고, 정신이 든 뒤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울고 한숨만 쉬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침묵과 눈물을 길동무 삼아 이 객줏집에 이르렀는데, 그에게는 그것이 땅 위의 모든 불행이 매듭지어지고 끝나는 하늘에 이른 것과 같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