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돈키호테인가
차례
로그인

인가

인가

평의회 의원들의 위임과 명령에 따라 나는 이 청원서에 담긴 책을 살펴보게 하였다. 신앙이나 선한 풍속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허락할 만한 즐거움이 가득하며 도덕 철학이 많이 섞인 책이다. 그러므로 인쇄 허가를 내주어도 좋다. 1615년 11월 5일 마드리드에서.

박사 구티에레 데 세티나.

인가

평의회 의원들의 위임과 명령에 따라 나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가 지은 『라만차의 돈키호테 제2부』를 살펴보았다. 우리의 거룩한 가톨릭 신앙이나 선한 풍속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점잖은 휴양과 즐거운 기분 전환거리가 많은데, 옛사람들은 이런 것을 저마다의 나라에 이롭다고 판단하였다. 엄격하기로 이름난 라케다이몬 사람들의 나라에서도 웃음의 신상을 세웠고, 테살리아 사람들은 웃음에 축제를 바쳤다. 이는 보시우스가 『교회의 표징에 관하여』 제2권 제10장에서 인용한 파우사니아스가 전하는 바와 같다. 그렇게 해서 시든 마음과 우울한 정신에 기운을 불어넣었으니, 툴리우스도 『법률론』 제1권에서 이를 떠올렸고, 시인도 이렇게 노래하였다.

그대의 근심 사이사이에 이따금 기쁨을 끼워 넣어라(Interpone tuis interdum gaudia curis).

저자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진지함에 익살을, 달콤함에 유익함을, 교훈에 재담을 섞고, 재치라는 미끼 속에 꾸짖음이라는 낚싯바늘을 감추었다. 그러면서 기사 소설을 몰아내려는 적절한 목표를 이루어 가니, 부지런히 솜씨 좋게 이 나라들에서 그 전염병을 씻어 내는 셈이다. 이 책은 그의 큰 재주에 몹시 걸맞은 작품이요, 우리 나라의 영예와 광채이며, 다른 나라들에는 감탄과 시샘의 대상이다. 이것이 나의 소견이다. 다만 더 나은 판단이 있다면 그에 따른다. 1615년 3월 17일 마드리드에서.

석사 호세프 데 발디비엘소.

인가

폐하의 궁정이 있는 이 마드리드 시의 총대리 구티에레 데 세티나 박사의 위임에 따라, 나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가 지은 『기발한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 제2부』라는 이 책을 살펴보았다. 그리스도교 신자의 열성에 어울리지 않는 것도, 좋은 본보기에 마땅히 갖추어야 할 품위나 도덕적 덕목과 어긋나는 것도 이 책에서 찾지 못하였다. 오히려 학식과 유익함이 많다. 허황되고 거짓된 기사 소설은 그 전염이 마땅한 정도보다 훨씬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이 책은 그것을 뿌리 뽑으려는 목표를 꾸준히 잘 지켜 나가고, 카스티야 말을 짜증스럽고 꾸민 티 나는 겉치레로 더럽히지 않고 담백하게 쓴다. 겉치레는 분별 있는 사람들이 미워할 만한 악습이다. 또 날카로운 이야기로 두루 악습을 건드려 바로잡으면서도 그리스도교의 꾸짖음이 지켜야 할 법도를 매우 슬기롭게 지키므로, 이 책이 고치려는 병에 걸린 사람은 그 약의 달고 맛있는 맛에 끌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거리낌이나 역겨움도 없이, 자기 악습을 미워하게 하는 유익한 약을 즐겁게 마셔 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즐거우면서도 꾸지람을 들은 처지가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루기 가장 어려운 일이다. 유익한 것과 달콤한 것을 알맞게 누그러뜨리고 섞을 줄 몰라서 애써 쓴 성가신 글을 송두리째 땅에 내던진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디오게네스의 철학과 학식은 흉내 내지 못하면서, 무엄하게도, 방종하고 앞뒤 분간 없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의 냉소만 흉내 내려 한다. 그들은 험담에 몸을 맡기고,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어 자기가 건드리는 악습을 매섭게 꾸짖을 거리로 삼으며, 어쩌면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던 악습의 길을 열어 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들은 꾸짖는 사람은 못 되고 기껏해야 그 악습의 스승이 되고 만다. 그들은 사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백성 사이에서는 그들의 글을 받아들일 신용을 잃는다. 신용이란 것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말이다. 그들이 성급하고 경솔하게 바로잡으려던 악습은 전보다 훨씬 나쁜 상태로 남는다. 모든 종기가 한꺼번에 처방이나 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종기는 부드럽고 순한 약을 훨씬 잘 받아들이고, 신중하고 학식 있는 의사는 그런 약을 써서 종기를 삭게 하는 목적을 이룬다. 그렇게 얻는 결말이 쇠붙이로 엄하게 다스려 얻는 결말보다 나을 때가 많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글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도 다른 나라들도 생각이 전혀 다르다. 그 품위와 단정함, 이야기의 부드럽고 순함 때문에 에스파냐,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플랑드르가 두루 갈채를 보내며 받아들인 책들이니, 사람들은 그 저자를 기적처럼 보고 싶어 한다. 나는 진실로 증언한다. 올해 1615년 2월 25일, 나의 주인이신 톨레도 추기경 대주교 돈 베르나르도 데 산도발 이 로하스 각하께서 프랑스 대사의 방문에 답례하러 가셨다. 대사는 프랑스 왕자들과 에스파냐 왕자들의 혼인에 관한 일을 협의하러 와서 각하를 찾아뵌 바 있었다. 그때 대사를 수행해 온 많은 프랑스 기사들이, 예의 바른 만큼 학식도 있고 좋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는데, 나와 추기경 각하의 다른 사제들에게 다가와 어떤 재주 있는 책들이 가장 인기가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러다 마침 내가 검열하고 있던 이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들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입을 모아 칭찬하기 시작하며, 프랑스에서도 그 이웃 나라들에서도 그의 작품을 얼마나 높이 치는지 힘주어 말하였다. 『라 갈라테아』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제1부를 거의 외울 정도였고, 『모범 소설집』도 그러하였다. 칭찬이 하도 대단해서 나는 그 작품들의 저자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나섰고, 그들은 간절히 바라는 기색을 천 가지로 드러내며 고마워하였다. 그들은 그의 나이와 직업, 신분과 재산을 아주 자세히 물었다. 나는 그가 늙었고, 병사였으며, 시골 귀족이고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바로 이런 말로 대답하였다. '아니, 그런 사람을 에스파냐는 나라의 금고로 부자가 되게 하고 먹여 살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 기사들 가운데 또 한 사람이 이 생각을 받아 아주 날카롭게 말하였다. '가난이 그에게 글을 쓰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결코 넉넉해지지 않기를 하느님께 빕니다. 그래야 그는 가난하더라도 그의 작품으로 온 세상을 부자로 만들 테니까요.' 검열서치고는 좀 길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누군가는 이 글이 아첨하는 찬사의 경계에 닿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짧게 말한 것의 진실이 비평가에게서는 의심을, 내게서는 걱정을 지워 준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아첨꾼의 부리를 채워 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 아첨꾼은 다정한 척 거짓으로 장난처럼 말하지만, 보수만은 진짜로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1615년 2월 27일 마드리드에서.

석사 마르케스 토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