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장 포로가 아직도 자기 이야기를 이어 간다
"보름도 지나지 않아 우리 배교자는 서른 명 넘게 탈 수 있는 아주 좋은 배 한 척을 사 두었소. 그리고 제 일을 확실히 해 두고 그럴듯하게 꾸미려고, 알제에서 오랑 쪽으로 30레과 떨어진 사르헬이라는 곳으로 장삿길을 한 번 다녀오려 했고, 실제로 다녀왔소. 그곳은 말린 무화과 거래가 많은 곳이오. 그는 앞서 말한 타가리노와 함께 두세 번 이 길을 오갔소. 바르바리에서는 아라곤의 무어인을 타가리노라 부르고 그라나다의 무어인을 무데하르라 부르며, 페스 왕국에서는 무데하르를 엘체라고 부르는데, 그 왕이 전쟁에서 가장 많이 부리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오.
"그런데 그는 배를 몰고 지나갈 때마다, 소라이다가 기다리는 정원에서 쇠뇌 두 바탕 거리도 안 되는 작은 만에 닻을 내렸소. 그리고 거기서 일부러 노 젓는 무어인 젊은이들과 함께 살라를 드리기도 하고, 정말로 하려는 일을 장난 삼아 미리 연습해 보기도 했소. 그렇게 해서 소라이다의 정원에 가서 과일을 청하면, 그 아버지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과일을 내주었소. 나중에 그가 내게 한 말로는, 소라이다에게 말을 걸어 자기가 내 지시로 그 여자를 그리스도교도의 땅으로 데려갈 사람이니 마음 놓고 안심하라고 일러 주고 싶었지만 끝내 그럴 수가 없었다 하오. 무어 여자들은 남편이나 아버지가 시키지 않는 한 어떤 무어인이나 튀르크 사람에게도 얼굴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오. 그리스도교도 포로와는 오히려 마땅한 정도를 넘어설 만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말을 나누지만. 나로서는 그가 그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면 오히려 마음이 쓰였을 것이오. 제 일이 배교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알면 그 여자가 겁을 먹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 다르게 정하시어 우리 배교자의 좋은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소. 그는 사르헬을 아주 안전하게 오가고, 마음 내키는 때에 마음 내키는 곳에 마음대로 닻을 내리며, 동업자 타가리노도 제 뜻대로만 움직이고, 나는 이미 몸값을 치렀으니 이제 노 저을 그리스도교도 몇 사람을 구하는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알자, 몸값을 치른 이들 말고 누구를 데려갈지 정해서, 우리가 떠나기로 정한 첫 금요일에 맞추어 미리 말해 두라고 내게 일렀소. 그래서 나는 에스파냐 사람 열두 명에게 말을 걸었소. 모두 노를 잘 젓는 용감한 사내들이었고, 도시를 가장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들이었소. 그 무렵 그만한 사람을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소. 해적선 스무 척이 나가 있어 노 저을 사람들을 모두 데려갔기 때문이오. 이들도, 주인이 조선소에서 소형 갤리선 한 척을 마무리하느라 그해 여름 해적질을 나가지 않고 남지 않았더라면 찾지 못했을 것이오. 나는 그들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첫 금요일 오후에 하나씩 눈에 띄지 않게 빠져나와 아히 모라토의 정원 쪽으로 가서 내가 갈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라고만 했소. 저마다 따로따로 이렇게 일러 두면서, 거기서 다른 그리스도교도들을 보더라도 내가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다는 말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소.
"이 일을 마치고 나니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는데, 그것이 내게 가장 요긴한 일이었소. 곧 일이 어디까지 되었는지 소라이다에게 알려, 그리스도교도의 배가 돌아오리라고 그 여자가 짐작하는 때보다 앞서 우리가 느닷없이 들이닥치더라도 놀라지 않도록 미리 채비를 갖추고 마음을 놓게 하는 일이었소. 그래서 나는 정원에 가서 그 여자와 말을 나눌 수 있을지 보기로 마음먹었소. 떠나기 하루 전 나는 풀을 좀 뜯는다는 핑계로 그곳에 갔는데, 처음 마주친 사람이 그 여자의 아버지였소. 온 바르바리에서, 아니 콘스탄티노플에서까지 포로와 무어인들 사이에 통하는 말이 있소. 무어 말도 카스티야 말도 아니고 다른 어느 나라 말도 아니며, 모든 말이 뒤섞여 누구나 알아듣는 말이오. 그는 바로 그런 말로 자기 정원에서 무엇을 찾느냐고, 누구의 노예냐고 물었소. 나는 아르나우테 마미의 노예라고 대답했소. 그가 아르나우테 마미와 아주 가까운 벗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샐러드를 만들 온갖 풀을 찾는다고 했소. 그러자 그는 이어서 몸값을 받을 사람이냐 아니냐, 주인이 나를 얼마에 내놓으려 하느냐고 물었소. 이런 문답을 주고받고 있는데, 정원 안 집에서 아름다운 소라이다가 나왔소. 그 여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보아 왔소. 앞서 말했듯 무어 여자들은 그리스도교도에게 모습을 보이는 것을 조금도 수줍어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으니, 그 여자는 아버지가 나와 함께 있는 곳으로 거리낌 없이 다가왔소. 오히려 아버지는 딸이 천천히 오는 것을 보자마자 불러서 가까이 오라고 했소.
"내가 사랑하는 소라이다가 그때 내 눈앞에 나타난 모습, 그 많은 아름다움과 기품과 화려하고 값진 꾸밈새를 지금 다 말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오. 다만 그 더없이 아름다운 목과 귀와 머리칼에 드리운 진주가 머리에 난 머리칼보다 많았다고만 말하겠소. 그 여자는 자기네 풍습대로 발목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거기에 아주 순금으로 된 카르카헤를 두 개 차고 있었소(무어 말로 발목 고리, 곧 발찌를 그렇게 불렀소). 다이아몬드가 어찌나 많이 박혀 있었던지, 나중에 그 여자가 말하기를 아버지는 그것을 1만 도블라로 쳤다 하고, 손목에 찬 팔찌도 그만한 값이 나갔다 하오. 진주는 아주 많고 아주 좋은 것이었소. 무어 여자들의 가장 큰 멋과 자랑은 값진 진주와 잔진주로 꾸미는 것이어서, 무어인들 사이에는 다른 어느 민족보다 진주와 잔진주가 많소. 소라이다의 아버지는 알제에서 가장 좋은 진주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소문이 났고, 에스파냐 돈으로 20만 에스쿠도가 넘는 재산을 가졌다는 소문도 났는데, 지금은 내 아씨인 이 여자가 그때는 그 모든 것의 아씨였소. 그 모든 꾸밈새를 한 그때 그 여자가 아름다웠는지 아닌지는, 그 숱한 고생을 겪은 뒤에도 남아 있는 자취를 보면 좋은 시절에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오. 알다시피 어떤 여자들의 아름다움에는 날과 철이 있어서, 줄어들거나 늘어나려면 여러 계기가 필요하고, 마음의 정념이 그 아름다움을 돋우거나 떨어뜨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오. 대개는 망가뜨리고 말지만.
"요컨대 그때 그 여자는 더할 나위 없이 차려입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소. 적어도 내게는 그때까지 본 여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워 보였소. 그리고 그 여자가 내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니, 내 기쁨과 내 구원을 위해 땅에 내려온 하늘의 여신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소. 그 여자가 다가오자 아버지는 자기네 말로, 내가 그의 벗 아르나우테 마미의 포로이고 샐러드 거리를 찾으러 왔다고 일러 주었소. 그 여자는 말을 받아, 앞서 말한 그 뒤섞인 말로 내가 기사인지, 왜 몸값을 치르지 않는지 물었소. 나는 이미 몸값을 치렀으며, 주인이 나를 1천5백 솔타니에 내주었으니 그 값을 보면 주인이 나를 얼마나 쳐주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소. 그러자 그 여자가 대답했소. '정말이지 그대가 우리 아버지 것이었다면 그 두 배를 준대도 내주지 말라고 했을 거다. 그대들 그리스도교도는 하는 말마다 늘 거짓말을 하고, 무어인을 속이려고 가난한 척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소, 아씨.' 내가 대답했소. '그러나 정말이지 나는 주인에게 참되게 굴었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도 세상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오.' '그럼 언제 떠나느냐?' 소라이다가 말했소. '내일일 것 같소.' 내가 말했소. '여기 프랑스 배가 한 척 있는데 내일 돛을 올리니 그 배로 떠날 생각이오.' '에스파냐 배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배로 가는 게 낫지 않으냐?' 소라이다가 되받았소. '그대들과 벗도 아닌 프랑스 배로 가느니 말이다.' '아니오.' 내가 대답했소. '에스파냐 배가 벌써 온다는 소식이 참이라면 그래도 기다리기는 하겠지만, 내일 떠나는 쪽이 더 확실하오. 내 고향에 가서 아끼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하도 커서, 다른 기회가 늦어진다면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기다릴 수가 없을 것이오.' '그대는 틀림없이 고향에 아내가 있구나.' 소라이다가 말했소. '그래서 아내를 보러 가고 싶은 거지.' '나는 장가들지 않았소.' 내가 대답했소. '다만 그곳에 가면 혼인하기로 약속해 두었소.' '그 약속을 한 아씨는 예쁘냐?' 소라이다가 말했소. '어찌나 예쁜지' 내가 대답했소. '그 사람을 치켜세우며 참말을 하자면, 그대를 아주 많이 닮았소.' 이 말에 그 여자의 아버지는 진심으로 웃으며 말했소. '왈라(알라께 맹세코), 그리스도교도야, 내 딸을 닮았다면 정말 예쁘겠구나. 내 딸은 이 나라 전체에서 가장 예쁘니까. 못 믿겠거든 잘 보아라. 내 말이 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게다.' 이런 말과 이야기의 대부분은 소라이다의 아버지가 통역해 주었소. 그가 그 말에 더 능했으니까. 소라이다도 앞서 말한 그곳의 잡탕 말을 하기는 했지만, 말보다는 손짓으로 제 뜻을 더 많이 드러냈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무어인 하나가 달려와 큰 소리로, 튀르크 사람 넷이 정원 울타리인지 담인지를 넘어 들어와 덜 익은 과일을 따고 있다고 외쳤소. 노인은 깜짝 놀랐고 소라이다도 그랬소. 무어인들이 튀르크 사람을, 특히 병사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흔하고 거의 타고난 일이오. 튀르크 병사들은 어찌나 거만하고 자기들에게 매인 무어인들을 어찌나 함부로 부리는지, 제 노예보다 더 모질게 다루니까. 아무튼 아버지가 소라이다에게 말했소. '얘야, 내가 가서 이 개들과 이야기하는 동안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가라. 그리고 그리스도교도야, 너는 네 풀을 찾아서 잘 가거라. 알라께서 너를 무사히 고향으로 데려가 주시기를.' 내가 머리를 숙이자, 그는 나를 소라이다와 단둘이 남겨 두고 튀르크 사람들을 찾으러 갔소. 소라이다는 아버지가 시킨 곳으로 가려는 기색을 보였소. 그러나 아버지가 정원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마자, 그 여자는 내게 돌아서서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말했소. '아메시, 그리스도교도, 아메시?' 「가느냐, 그리스도교도, 가느냐?」라는 말이오. 나는 그 여자에게 대답했소. '그렇소, 아씨. 하지만 결코 그대 없이 가지는 않소. 첫 주마에 나를 기다리시오. 우리를 보더라도 놀라지 마시오. 우리는 틀림없이 그리스도교도의 땅으로 갈 것이오.'
"내가 이 말을 어찌나 알아듣기 쉽게 했던지, 그 여자는 우리가 주고받은 말을 모두 아주 잘 알아들었소. 그러고는 한 팔로 내 목을 감고 기운 빠진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소. 그런데 하늘이 다르게 정하지 않았더라면 아주 나쁜 쪽으로 흘렀을지도 모를 운이 끼어들었소. 우리 둘이 지금 이야기한 그 모습 그 자세로, 그러니까 한 팔로 목을 감은 채 걸어가는데, 튀르크 사람들을 쫓아내고 돌아오던 그 여자의 아버지가 우리가 가는 꼴을 보았고, 우리도 그가 우리를 본 것을 알았소. 그러나 눈치 빠르고 슬기로운 소라이다는 내 목에서 팔을 풀려 하지 않았소. 오히려 내게 더 바싹 다가와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무릎을 조금 꺾으며 기절하는 표시를 분명하게 내보였고, 나도 마지못해 그 여자를 붙들고 있는 척했소. 아버지는 우리 있는 곳으로 달려와 딸이 그런 꼴인 것을 보고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소. 그러나 딸이 대답하지 않자 아버지가 말했소. '이 개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놀라서 틀림없이 기절했구나.' 그러고는 딸을 내 가슴에서 떼어 제 가슴에 안았소. 그러자 딸은 한숨을 쉬며 아직 눈물도 마르지 않은 눈으로 다시 말했소. '아메시, 그리스도교도, 아메시.' 「가라, 그리스도교도, 가라」라는 말이오. 이에 아버지가 대답했소. '얘야, 그리스도교도가 가든 말든 상관없다. 그 사람은 너한테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고, 튀르크 놈들은 이미 갔다. 아무것도 놀랄 것 없다. 너를 언짢게 할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말했듯 튀르크 놈들은 내가 부탁하니 들어온 데로 돌아갔다.' '나리 말씀대로 그놈들이 아씨를 놀라게 했구려.' 내가 아버지에게 말했소. '하지만 아씨가 나더러 가라고 하니 아씨를 언짢게 하고 싶지 않소. 평안히 계시오. 허락해 주신다면 필요할 때 이 정원에 다시 풀을 뜯으러 오겠소. 내 주인 말이, 샐러드 거리로는 이 정원만 한 데가 없다 하니까.'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다시 와도 된다.' 아히 모라토가 대답했소. '내 딸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너나 다른 그리스도교도가 언짢게 해서가 아니다. 튀르크 놈들더러 가라고 한다는 것이 너더러 가라고 한 게지. 아니면 네가 풀을 찾을 때가 되었다고 그랬거나.'
"이 말에 나는 곧 두 사람에게 작별을 고했소. 그 여자는 넋이 빠져나가는 듯한 얼굴로 아버지와 함께 갔고, 나는 풀을 찾는다는 핑계로 정원을 마음껏 샅샅이 돌아보았소. 드나드는 길과 집의 튼튼함과, 우리 일을 쉽게 해 줄 형편이 어떤지 잘 살펴 두었소. 그렇게 하고 돌아와 배교자와 동료들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알렸소. 그리고 운이 아름답고 고운 소라이다를 통해 내게 내밀어 준 복을 놀랄 일 없이 누릴 때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소.
"마침내 시간이 흘러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날, 그 기한이 다가왔소. 우리는 모두 슬기롭게 따지고 오래 궁리하여 여러 번 정해 둔 순서와 의견을 따랐고, 바라던 대로 일이 잘 풀렸소. 내가 정원에서 소라이다와 이야기한 날 다음 금요일, 해가 질 무렵 우리 배교자는 더없이 아름다운 소라이다가 있는 곳 거의 맞은편에 배를 대고 닻을 내렸소. 노를 저을 그리스도교도들은 이미 채비를 마치고 그 일대 여기저기에 숨어 있었소. 모두 마음 졸이며 들떠서 나를 기다렸고, 눈앞에 있는 배를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어 했소. 그들은 배교자와 짜 놓은 일을 몰랐고, 배 안에 있는 무어인들의 목숨을 빼앗아 팔심으로 자유를 얻어 내야 하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오.
"그런데 나와 동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숨어 있던 다른 이들이 모두 우리를 보고 다가왔소. 그때는 이미 성문이 닫혔고 그 들판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소. 다 모이자 우리는 먼저 소라이다를 데리러 갈지, 배에서 노를 젓는 바가리노 무어인들부터 제압할지 망설였소.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우리 배교자가 와서, 무엇을 꾸물거리느냐고, 이제 때가 되었고 자기 무어인들은 모두 마음을 놓고 있으며 대부분 자고 있다고 했소. 우리가 무엇을 망설이는지 말하자 그는, 무엇보다 먼저 배를 제압해야 하는데 그건 아주 쉽고 아무 위험 없이 할 수 있으며, 그런 다음 소라이다를 데리러 가면 된다는 의견이었소. 우리 모두 그 말이 옳다고 여겨 더 지체하지 않고 그를 앞세워 배에 이르렀소. 그는 먼저 배 안으로 뛰어들어 언월도를 빼 들고 무어 말로 말했소. '목숨을 잃고 싶지 않거든 아무도 여기서 꼼짝하지 마라.' 이때는 이미 그리스도교도들이 거의 다 배에 올라 있었소. 겁 많은 무어인들은 자기네 선장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자 얼이 빠졌고, 누구 하나 무기에 손을 대지 않았소. 무기라고는 거의, 아니 아예 없기도 했지만.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두 손을 묶였소. 그리스도교도들은 아주 재빨리 그들을 묶으며, 어떻게든 소리를 지르면 당장 모두 칼로 베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소.
"그 일을 마치자 우리 편 절반이 그들을 지키러 남고, 남은 우리는 이번에도 배교자를 앞세워 아히 모라토의 정원으로 갔소. 다행히 문을 열려고 다가가니 마치 잠겨 있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쉽게 열렸소. 그래서 우리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아주 조용히 소리 없이 집에 이르렀소. 더없이 아름다운 소라이다는 창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 기척이 나자 낮은 목소리로 우리가 니사라니냐고 물었소. 우리가 그리스도교도냐고 말하는 것, 아니 묻는 말이었소. 나는 그렇다고, 내려오라고 대답했소. 나를 알아보자 그 여자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 한마디 없이 순식간에 내려와 문을 열었는데, 모두 앞에 드러난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화려하게 차려입었던지 나로서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소. 그 여자를 보자마자 나는 그 손을 잡고 입 맞추기 시작했고, 배교자와 내 두 동료도 그렇게 했소.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도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했으니, 마치 우리가 그 여자에게 고마움을 드리고 우리 자유의 아씨로 받드는 것만 같았소. 배교자는 무어 말로 아버지가 정원에 있느냐고 물었소. 그 여자는 있다고, 자고 있다고 대답했소. '그럼 깨워서' 배교자가 되받았소. '이 아름다운 정원에 있는 값진 것들과 함께 우리가 데려가야겠소.' '안 돼.' 그 여자가 말했소.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 그리고 이 집에는 내가 가져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걸로도 너희 모두 넉넉하고 흡족해질 만큼 많다. 잠깐만 기다려라, 곧 보게 될 거다.' 그렇게 말하고 그 여자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서, 곧 돌아올 테니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소. 내가 배교자에게 그 여자와 무슨 말을 나눴는지 묻자 그가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어떤 일에서도 소라이다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그에게 말했소. 그 여자가 겨우 들 수 있을 만큼 금화 에스쿠도가 가득 든 작은 상자를 들고 돌아오는 참에, 불운하게도 그사이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 정원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소. 그는 창으로 내다보더니 곧 정원에 있는 이들이 모두 그리스도교도라는 것을 알아보고, 크고 사납게 소리소리 지르며 아랍어로 외치기 시작했소. '그리스도교도다, 그리스도교도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그 외침에 우리는 모두 몹시 두렵고 어쩔 줄 모르게 되었소. 그러나 배교자는 우리가 처한 위험을 보고, 들키기 전에 이 일을 해치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아주 재빨리 아히 모라토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고, 우리 가운데 몇이 그와 함께 갔소. 나는 기절한 듯 내 품에 쓰러진 소라이다를 감히 내버려 둘 수 없었소. 요컨대 올라간 이들은 어찌나 솜씨 좋게 해냈던지 순식간에 아히 모라토를 데리고 내려왔소. 두 손을 묶고 입에는 수건을 물려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하고는, 말을 하면 목숨을 잃으리라고 으름장을 놓았소. 딸은 아버지를 보자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가렸고, 아버지는 딸이 얼마나 제 뜻으로 우리 손에 들어왔는지 모른 채 아연했소. 그러나 이제는 발이 더 필요한 때라, 우리는 서둘러 재빨리 배에 올랐소. 배에 남아 있던 이들은 우리에게 무슨 변이라도 생겼나 두려워하며 기다리고 있었소.
"밤이 겨우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우리는 모두 배에 올라 있었소. 배에서 소라이다의 아버지의 손을 묶은 끈과 입에 물린 수건을 풀어 주었지만, 배교자는 다시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그러면 목숨을 빼앗겠다고 일렀소. 그는 거기서 딸을 보자 몹시 애처롭게 한숨짓기 시작했고, 내가 딸을 꼭 끌어안고 있는데 딸이 뿌리치지도 불평하지도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자 더욱 그랬소. 그래도 배교자가 퍼붓는 숱한 으름장이 실제로 벌어질까 두려워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소. 소라이다는 이제 배에 오른 것을, 우리가 노를 물에 담그려는 것을, 거기 아버지와 다른 무어인들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배교자에게 내게 말을 전해 달라고 했소. 그 무어인들을 풀어 주고 아버지에게 자유를 주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그토록 자기를 아껴 준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자기 눈앞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바다에 몸을 던지겠다고 말이오. 배교자가 내게 그 말을 전했고 나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대답했소. 그러나 그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소. 그들을 거기 남겨 두면 곧 온 땅에 알려 도시를 들끓게 할 테고, 쾌속선 몇 척을 몰고 우리를 찾아 나서 뭍과 바다를 막을 테니 우리가 빠져나갈 수 없게 될 테니까. 할 수 있는 일은 그리스도교도의 첫 땅에 닿거든 그들을 풀어 주는 것뿐이라는 말이었소. 우리는 모두 이 의견에 따랐고,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당장 하지 않는 까닭을 일러 주자 소라이다도 납득했소. 그러자 곧 우리 용감한 노잡이들은 저마다 기쁨에 찬 침묵 속에 신이 나서 부지런히 노를 잡았고, 우리는 온 마음으로 하느님께 몸을 맡기며 가장 가까운 그리스도교도의 땅인 마요르카 섬들을 향해 배를 몰기 시작했소.
"그러나 북풍이 조금 불고 바다가 좀 거칠어 마요르카 뱃길을 따라갈 수 없었소. 그래서 몹시 언짢았지만 어쩔 수 없이 뭍을 따라 오랑 쪽으로 가야 했소. 그 해안에서 알제로부터 60마일 떨어진 사르헬 마을에 들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소. 또 그 근방에서 테투안에서 늘 장삿짐을 싣고 오는 소형 갤리선을 만나지 않을까도 두려웠소. 그래도 우리는 저마다, 그리고 다 함께, 해적질하는 배가 아니라 장삿배를 만난다면 우리가 망하기는커녕 더 안전하게 뱃길을 마칠 배를 빼앗을 수 있으리라고 여겼소. 배가 가는 동안 소라이다는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고 내 두 손 사이에 머리를 묻고 있었고, 렐라 마리엔께 우리를 도와 달라고 부르는 소리가 내게 들려왔소.
"족히 30마일은 나아갔을 무렵 날이 밝았는데, 우리는 뭍에서 화승총 세 방 거리쯤 떨어져 있었소. 뭍은 온통 황량해서 우리를 알아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그래도 우리는 팔심으로 노를 저어, 이제 좀 잔잔해진 바다로 조금 나아갔소. 거의 2레과쯤 나아가자 무언가 먹는 동안 교대로 노를 젓기로 했소. 배에는 먹을 것이 넉넉히 실려 있었으니까. 그러나 노 젓는 이들은 지금은 쉴 때가 아니니 노를 젓지 않는 사람들이 먹여 달라고, 자기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노를 손에서 놓지 않겠다고 했소. 그렇게 하는데 순풍이 불기 시작해, 우리는 곧 돛을 올리고 노를 놓았으며, 다른 뱃길로 갈 수 없었으므로 오랑으로 뱃머리를 돌렸소. 모든 일이 아주 재빨리 이루어졌고, 그리하여 우리는 돛을 달고 한 시간에 8마일이 넘는 빠르기로 나아갔소. 해적선을 만날까 하는 것 말고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소.
"우리는 바가리노 무어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배교자는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며 첫 기회에 풀어 줄 것이라고 그들을 달랬소. 소라이다의 아버지에게도 같은 말을 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소. '오, 그리스도교도들이여, 그대들의 너그러움과 좋은 처신이라면 다른 무엇이든 바라고 믿을 수 있겠소. 그러나 나를 풀어 준다는 것만은, 그런 것을 곧이들을 만큼 나를 어리석게 여기지 마시오. 그대들은 이토록 너그럽게 돌려주려고 내 자유를 빼앗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 아닐 테니까. 더구나 내가 누구인지, 나를 풀어 주면 그대들에게 무슨 이득이 돌아갈지 알면서 말이오. 그 이득에 값을 매기고 싶다면, 나와 이 불행한 내 딸을 위해, 아니면 딸 하나만이라도 위해, 그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금 여기서 내놓겠소. 딸은 내 영혼의 가장 크고 가장 좋은 부분이니까.' 이렇게 말하고 그가 어찌나 서럽게 울기 시작했던지 우리 모두 가엾은 마음이 들었고, 소라이다도 그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소.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보자 소라이다는 마음이 여려져 내 발치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끌어안으러 갔고, 얼굴을 맞댄 두 사람이 어찌나 애처롭게 울었던지 거기 있던 우리 가운데 많은 이가 함께 울었소.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잔치 옷차림을 하고 그토록 많은 보석을 지닌 것을 보고 자기네 말로 말했소. '얘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어제 해 질 무렵, 우리가 이런 끔찍한 불행을 당하기 전에는 늘 입던 집안 옷차림이었는데, 지금은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었고 차려입고 꾸밀 만한 기쁜 소식을 들은 것도 아닌데, 우리 운이 가장 좋았을 때 내가 해 줄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은 꼴이라니. 이 물음에 대답해라. 이게 지금 내가 당한 불행보다 더 나를 얼떨떨하고 놀라게 하는구나.'
"무어인이 딸에게 하는 말을 배교자가 모두 우리에게 풀어 주었는데, 딸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소. 그러나 그는 배 한쪽에 딸이 늘 보석을 넣어 두던 작은 상자가 있는 것을 보자 더욱 어리둥절해졌소. 그 상자를 정원으로 가져오지 않고 알제에 두고 온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그 상자가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왔으며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었소. 그러자 배교자가 소라이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대답했소. '나리, 따님 소라이다에게 그렇게 많은 것을 묻느라 애쓰지 마시오. 내가 한 가지만 대답하면 그 모든 물음이 다 풀릴 테니까. 알아 두시오. 따님은 그리스도교도요. 우리 사슬을 끊은 줄칼이요, 우리 포로 신세에 찾아온 자유가 바로 따님이오. 따님은 제 뜻으로 여기 와 있소. 내가 짐작하기로는,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괴로움에서 영광으로 나오는 사람처럼 이렇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소.' '이자 말이 참이냐, 얘야?' 무어인이 말했소. '그래.' 소라이다가 대답했소. '그러니까 정말로' 노인이 되받았소. '네가 그리스도교도이고, 제 아비를 원수들 손에 넘긴 게 너란 말이냐?' 그러자 소라이다가 대답했소. '그리스도교도인 건 나야. 하지만 아버지를 이 지경에 빠뜨린 건 내가 아니야. 아버지를 버리거나 아버지한테 해를 끼치려는 마음은 한 번도 없었어. 그저 나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 네가 너 자신에게 한 좋은 일이란 게 뭐냐, 얘야?' '그건' 딸이 대답했소. '렐라 마리엔께 여쭈어 봐. 렐라 마리엔이 나보다 더 잘 말해 주실 거야.'
"무어인은 이 말을 듣자마자 믿을 수 없을 만큼 재빨리 바다로 거꾸로 몸을 던졌소. 입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긴 옷이 그를 물 위에 잠시 붙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빠져 죽었을 것이오. 소라이다가 그를 건져 내라고 소리쳤고, 우리는 모두 곧 달려들어 알말라파를 붙잡고 반쯤 물에 빠져 정신을 잃은 그를 끌어올렸소. 소라이다는 이 일로 어찌나 마음 아파했던지, 아버지가 이미 죽기라도 한 듯 그 위에 엎드려 애달프고 서럽게 울었소. 우리는 그를 엎어 놓았고, 그는 물을 많이 토하더니 두 시간 뒤에 정신이 들었소. 그사이 바람이 바뀌어 우리는 뭍 쪽으로 돌아가야 했고, 뭍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힘껏 노를 저어야 했소.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작은 곶 곁의 후미에 닿았는데, 무어인들은 그 곶을 카바 루미아의 곶이라 부르오. 우리말로 '나쁜 그리스도교도 여자'라는 뜻이오. 무어인들 사이에는 에스파냐를 잃게 한 카바가 그곳에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소.1 그들 말로 카바는 나쁜 여자, 루미아는 그리스도교도 여자라는 뜻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을 때 거기 닻을 내리는 것조차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면 결코 닻을 내리지 않소. 그러나 바다가 그토록 거칠던 때에 우리에게 그곳은 나쁜 여자의 은신처가 아니라 우리를 구해 줄 안전한 항구였소.
"우리는 뭍에 보초를 세우고 노를 손에서 한 번도 놓지 않았소. 배교자가 마련해 둔 것을 먹고, 이토록 복된 시작을 무사히 끝맺도록 도와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온 마음으로 하느님과 성모님께 빌었소. 소라이다가 간청하여, 그 여자의 아버지와 거기 묶여 온 다른 무어인들을 모두 뭍에 내려 주기로 했소. 아버지가 묶여 있고 제 고향 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것을 눈앞에서 보기에는 그 여자의 기운이 모자랐고, 그 여린 속으로는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우리는 떠날 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소.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 거기 남겨 두어도 위험할 것이 없었소. 우리 기도는 하늘이 들어주지 않을 만큼 헛되지 않았소. 곧 바람이 우리 편으로 바뀌고 바다가 잔잔해져, 시작한 뱃길을 기쁘게 이어 가라고 우리를 불렀으니까.
"이것을 보고 우리는 무어인들을 풀어 하나씩 뭍에 내려 주었는데, 그들은 어리둥절해했소. 그러나 이제 제정신이 다 돌아온 소라이다의 아버지를 내려 주려 하자 그가 말했소. '그리스도교도들이여, 이 못된 계집이 왜 그대들이 나를 풀어 주는 것을 반기는지 아시오? 나를 가엾게 여겨서라고 생각하시오? 천만에. 제 못된 욕망을 실행하려 할 때 내가 있으면 걸림돌이 되니까 그러는 것이오. 그리고 이 애가 종교를 바꾼 것이 그대들의 종교가 우리 종교보다 낫다는 것을 깨달아서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그대들 땅에서는 우리 땅에서보다 음탕한 짓을 더 자유롭게 하는 줄 알아서요.' 그가 무슨 엉뚱한 짓을 하지 않도록 나와 다른 그리스도교도 하나가 그의 두 팔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는 소라이다에게 돌아서서 말했소. '오, 이 파렴치한 계집, 꾐에 넘어간 철부지야! 눈멀고 정신 나가서 어디로 가느냐, 이 개들, 우리의 타고난 원수들 손에 이끌려? 내가 너를 낳은 그 시각은 저주받아라, 너를 길러 낸 그 귀여움과 호사도 저주받아라!' 그러나 그가 금방 그칠 기색이 아니어서 나는 서둘러 그를 뭍에 내려놓았는데, 그는 거기서 큰 소리로 저주와 탄식을 이어 가며, 무함마드에게 알라께 빌어 우리를 멸하고 어지럽히고 끝장내 달라고 해 달라고 빌었소. 우리가 돛을 올려 그의 말이 더는 들리지 않게 되자, 이번에는 그가 하는 짓이 보였소. 수염을 쥐어뜯고 머리칼을 잡아 뜯으며 땅바닥을 뒹굴었소. 그러나 한 번은 어찌나 목청을 돋우었던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소. '돌아오너라, 사랑하는 딸아, 뭍으로 돌아오너라. 다 용서하마. 그 돈은 그 사람들에게 넘겨주어라, 이미 그들 것이다. 그리고 이 슬픈 아비를 달래러 돌아오너라. 네가 이 아비를 버리면 이 아비는 이 황량한 모래밭에서 목숨을 버릴 게다!' 소라이다는 이 모든 말을 들으며 마음 아파하고 울었지만, 아버지에게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말했소. '알라께서 바라시기를, 아버지, 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게 하신 렐라 마리엔께서 아버지의 슬픔을 달래 주시기를. 알라께서는 잘 아셔. 나는 내가 한 것 말고는 달리 할 수가 없었고, 이 그리스도교도들은 내 뜻에 아무 빚도 없어. 이 사람들과 함께 오지 않고 집에 남고 싶었다 해도 그럴 수가 없었을 거야.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나쁘다고 여기시지만 나한테는 그만큼 좋아 보이는 이 일을 해내라고 내 영혼이 그토록 나를 재촉했으니까.' 그 여자가 이 말을 했을 때는 이미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았고, 우리도 이제 그를 볼 수 없었소. 그래서 나는 소라이다를 달래고, 우리는 모두 뱃길에 힘을 쏟았소. 바람까지 우리 뱃길을 거들어 주니, 이튿날 새벽이면 에스파냐 해안에 닿으리라고 우리는 굳게 믿었소.
"그러나 좋은 일은 그것을 흐리거나 놀라게 하는 어떤 나쁜 일과 함께 오거나 뒤따르지 않고 순수하고 온전하게 오는 법이 거의, 아니 아예 없으니, 우리 운이, 아니 어쩌면 그 무어인이 딸에게 퍼부은 저주가(어느 아버지의 저주든 늘 두려워해야 하는 법이오) 일을 이렇게 몰아갔소. 우리가 이미 먼바다로 나가 밤이 거의 세 시간쯤 지났을 때, 순풍이 노를 쓸 수고를 덜어 주어 노를 묶어 두고 돛을 위에서 아래까지 활짝 펴고 가는데, 환히 빛나는 달빛 아래 가까이에 돛을 모두 펼친 가로돛 범선 한 척이 키를 조금 바람 쪽으로 틀고 우리 앞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소. 어찌나 가까웠던지 부딪치지 않으려고 우리는 돛을 내려야 했고, 저쪽도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키를 힘껏 돌렸소.
"그들은 뱃전에 나와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소. 그러나 프랑스 말로 묻기에 우리 배교자가 말했소. '아무도 대답하지 마시오. 저자들은 틀림없이 닥치는 대로 털어 가는 프랑스 해적들이오.' 이 말을 듣고 아무도 한마디 대답하지 않았소. 조금 앞으로 지나가 그 배가 바람 아래쪽에 남게 되었을 때, 그들은 느닷없이 대포 두 방을 쏘았소. 보아하니 둘 다 사슬탄이었는데, 한 방으로 우리 돛대를 한가운데서 끊어 돛과 함께 바다에 떨어뜨렸고, 곧이어 쏜 다른 한 방은 우리 배 한가운데 맞아 배를 활짝 갈라놓았소. 다른 해는 입히지 않았지만, 배가 가라앉는 것을 보자 우리는 모두 큰 소리로 살려 달라고, 물에 빠져 죽게 생겼으니 받아 달라고 범선 사람들에게 빌었소. 그러자 그들은 돛을 내리고 거룻배를 바다에 띄웠고, 화승총에 불붙인 화승까지 갖추고 잘 무장한 프랑스 사람 열두어 명이 거기 타고 우리 배 곁으로 왔소.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적은지, 배가 얼마나 가라앉고 있는지 보고 우리를 거두어 주며, 대답하지 않는 무례를 저질렀으니 이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 했소. 우리 배교자는 소라이다의 보물 상자를 집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바다에 던져 버렸소. 결국 우리는 모두 프랑스 사람들 배로 옮겨 탔는데, 그들은 우리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을 모두 캐묻고 나서 철천지원수를 대하듯 우리가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았고, 소라이다에게서는 발에 찬 카르카헤까지 벗겨 갔소. 그러나 내게는 그들이 소라이다에게 주는 괴로움보다, 그들이 더없이 값지고 귀한 보석을 빼앗는 데서 나아가 가장 값지고 그 여자가 가장 귀히 여기는 보석까지 빼앗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괴로웠소. 그러나 그 사람들의 욕심은 돈에서 그치고, 돈에 대한 그들의 탐욕은 결코 채워지는 법이 없소. 그때 그 탐욕이 어찌나 심했던지, 우리 포로 옷도 쓸모가 있었다면 벗겨 갔을 것이오. 그들 사이에는 우리를 모두 돛에 싸서 바다에 던지자는 의견도 있었소. 브르타뉴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에스파냐의 몇몇 항구에서 장사를 할 작정이었는데, 우리를 산 채로 데려가면 도둑질이 드러나 벌을 받게 될 테니까. 그러나 내 사랑하는 소라이다를 털어 간 선장이, 자기는 얻은 전리품으로 만족하며 에스파냐의 어느 항구에도 들르지 않고 밤에, 아니면 어떻게든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떠나온 라로셸로 돌아가겠다고 했소. 그래서 그들은 자기네 배의 거룻배와 우리에게 남은 짧은 뱃길에 필요한 것을 모두 주기로 뜻을 모았고, 이튿날 에스파냐 땅이 보이는 곳에서 실제로 그렇게 했소. 그 땅을 보자 우리가 겪은 괴로움과 가난은 마치 우리에게 일어난 적이 없었던 듯 깡그리 잊혔소. 잃었던 자유를 되찾는 기쁨이란 그토록 큰 것이오.
"그들이 우리를 거룻배에 태운 것은 한낮 무렵이었을 것이오. 물 두 통과 건빵을 조금 주었소. 그리고 선장은 무슨 자비심이 동했는지 모르겠으나, 더없이 아름다운 소라이다가 배에 오를 때 금화 40에스쿠도쯤을 주었고, 지금 입고 있는 바로 이 옷만은 병사들이 벗겨 가지 못하게 했소. 우리는 거룻배에 오르며 그들이 베푼 은혜에 감사했고, 원망보다 고마움을 더 내보였소. 그들은 해협 쪽 뱃길을 따라 멀어져 갔고,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땅 말고는 다른 북극성을 보지 않고 어찌나 서둘러 노를 저었던지, 해 질 무렵에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 밤이 깊기 전에 닿을 수 있겠다 싶었소. 그러나 그날 밤은 달이 뜨지 않고 하늘이 어두웠으며,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도 몰랐으므로 뭍에 배를 대는 것이 안전해 보이지 않았소. 우리 가운데 많은 이는, 바위투성이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뭍에 대자고 했소. 바르바리에서 해 질 녘에 떠나 에스파냐 해안에서 날이 새고, 흔히 사람을 잡아다가 제 집에 돌아가 잠드는 테투안 해적선들이 그 근방에 다닐지 모르니, 그렇게 하면 그 마땅한 두려움을 덜 수 있으리라 여겼으니까. 그러나 엇갈린 의견 가운데 결국 조금씩 다가가다가 바다가 잔잔해지면 내릴 수 있는 곳에 내리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졌소.
"그대로 했고, 자정이 조금 못 되었을 때 우리는 엄청나게 크고 높은 산기슭에 닿았소. 산이 바다에 바짝 붙어 있지는 않아 편히 내릴 만한 땅이 조금 있었소. 우리는 모래밭에 배를 대고 뭍에 올라 땅에 입 맞추었고, 더없이 기쁜 눈물을 흘리며 모두 우리 주 하느님께 그 비할 데 없는 은혜에 감사드렸소. 거룻배에서 먹을 것을 꺼내고 배를 뭍으로 끌어올린 다음, 산을 한참 올라갔소. 거기까지 와서도 아직 가슴을 놓을 수 없었고, 우리를 떠받치는 땅이 그리스도교도의 땅이라는 것을 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오. 내 생각에 날은 우리가 바라던 것보다 늦게 밝았소. 우리는 산을 끝까지 올라가 거기서 어떤 마을이나 양치기 오두막이라도 보이는지 살폈소. 그러나 아무리 멀리 눈을 뻗어도 마을도 사람도 오솔길도 길도 보이지 않았소. 그래도 우리는 땅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소. 곧 그 땅에 관해 알려 줄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여겼으니까.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소라이다가 그 험한 곳을 걸어서 가는 모습이었소. 몇 번 그 여자를 어깨에 업기도 했지만, 그 여자에게는 제가 쉬는 편안함보다 내가 지치는 괴로움이 더 컸기에 다시는 내가 그 수고를 하지 못하게 했소. 그 여자는 아주 참을성 있게, 기쁜 기색을 보이며 줄곧 내 손을 잡고 걸었소. 그렇게 4분의 1레과가 조금 못 되게 걸었을 즈음 작은 방울 소리가 들려왔는데, 근처에 가축이 있다는 분명한 표시였소. 모두 누가 보이는지 눈여겨 살피다가, 코르크참나무 밑에서 아주 한가롭고 태평하게 칼로 막대기를 깎고 있는 젊은 양치기 하나를 보았소. 우리가 소리쳐 부르자 그는 고개를 들고 날쌔게 일어섰소. 나중에 알고 보니 맨 먼저 그의 눈에 띈 것이 배교자와 소라이다였는데, 그들이 무어인 옷차림인 것을 보고는 바르바리 사람들이 모두 들이닥친 줄 알았다 하오. 그는 놀랄 만큼 날쌔게 숲속으로 달려 들어가며 세상에 둘도 없을 만큼 크게 외쳐 댔소. '무어인이다, 무어인들이 쳐들어왔다! 무어인이다, 무어인이다! 무기를 들어라, 무기를 들어라!'
"이 외침에 우리는 모두 어쩔 줄 몰라 어찌해야 할지 몰랐소. 그러나 양치기의 외침이 온 땅을 들끓게 할 테고 해안 기병대가 곧 무슨 일인지 보러 오리라는 생각에, 배교자가 튀르크 옷을 벗고 우리 가운데 하나가 곧 내준 질레쿠엘코, 곧 포로들이 입는 웃옷을 입기로 했소. 옷을 내준 사람은 속옷 바람이 되었지만. 그렇게 하느님께 몸을 맡기고, 우리는 양치기가 간 바로 그 길을 따라가며 해안 기병대가 언제 덮칠지 줄곧 기다렸소. 우리 생각은 틀리지 않았소.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덤불을 빠져나와 평지에 이르렀을 때, 말 탄 사람 쉰 명쯤이 고삐를 반쯤 늦추고 아주 날쌔게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소. 그들을 보자 우리는 가만히 서서 기다렸소. 그러나 그들은 다가와서 찾던 무어인 대신 그 많은 가련한 그리스도교도를 보고 어리둥절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양치기가 무기를 들라고 소리친 것이 혹시 우리 때문이냐고 물었소. '그렇소.' 내가 말했소. 그리고 내 사정과 우리가 어디서 왔고 누구인지 말하기 시작하려는데, 우리와 함께 온 그리스도교도 하나가 우리에게 물은 기병을 알아보고는 내가 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말했소. '여러분, 우리를 이렇게 좋은 곳으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내가 잘못 알지 않았다면,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은 벨레스말라가요. 포로로 지낸 세월이 내 기억을 앗아 가지 않았다면, 우리가 누구냐고 물으신 나리, 당신은 내 숙부 페드로 데 부스타만테시오.' 그 그리스도교도 포로가 이 말을 하자마자 기병은 말에서 뛰어내려 젊은이를 끌어안으러 와서 말했소. '내 영혼이요 내 목숨인 조카야, 이제 알아보겠다. 나도, 네 어머니인 내 누이도, 아직 살아 있는 네 식구들도 모두 네가 죽은 줄 알고 울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살려 두시어 너를 보는 기쁨을 누리게 하셨구나. 네가 알제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네 옷차림과 이 일행 모두의 옷차림을 보니 기적처럼 자유를 얻은 모양이로구나.' '그렇소.' 젊은이가 대답했소. '모두 이야기해 드릴 시간은 넉넉하오.'
"기병들은 우리가 그리스도교도 포로라는 것을 알자 말에서 내려, 저마다 자기 말을 내주며 1레과 반 떨어진 벨레스말라가 시로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했소. 몇은 우리가 거룻배를 둔 곳을 듣고 배를 시로 가져가려고 되돌아갔고, 다른 이들은 우리를 말 엉덩이에 태웠소. 소라이다는 그 그리스도교도의 숙부의 말 엉덩이에 탔소. 먼저 달려간 누군가에게서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터라 온 고을 사람들이 우리를 맞으러 나왔소. 풀려난 포로나 붙잡힌 무어인을 보고 놀라지는 않았소. 그 해안 사람들은 모두 그런 이들을 보는 데 익숙하니까. 그러나 그들은 소라이다의 아름다움에 놀랐소. 그때 그 여자는 마침 가장 아름다울 때였소. 길을 오느라 지치기도 했고, 이제 그리스도교도의 땅에 와서 잘못될까 두려워할 일이 없다는 기쁨도 있어 얼굴에 그런 빛이 돌았으니, 그때 애정이 나를 속인 것이 아니라면 감히 말하건대 세상에 그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었소. 적어도 내가 본 사람 가운데는.
"우리는 곧장 성당으로 가서 받은 은혜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렸소. 소라이다는 성당에 들어서자 거기 렐라 마리엔을 닮은 얼굴들이 있다고 했소. 우리는 그것이 성모님의 상이라고 일러 주었고, 배교자가 될 수 있는 대로 그 뜻을 깨우쳐 주어, 그 상 하나하나가 그 여자에게 말을 건넸던 바로 그 렐라 마리엔이기라도 한 듯 공경하게 했소. 지성이 좋고 타고난 성품이 막힘없고 밝은 그 여자는 상에 관해 들은 것을 곧 모두 알아들었소. 거기서 사람들은 우리를 고을의 여러 집으로 나누어 데려갔소. 그러나 배교자와 소라이다와 나는 우리와 함께 온 그 그리스도교도가 제 부모 집으로 데려갔는데, 그 집은 재산이 그럭저럭 넉넉했고, 우리를 제 아들만큼이나 정성껏 대접해 주었소.
"우리는 벨레스에서 엿새를 지냈소. 엿새가 지나자 배교자는 필요한 증언을 모두 갖추어, 거룩한 종교 재판소를 거쳐 교회의 더없이 거룩한 품으로 돌아가려고 그라나다로 떠났소. 풀려난 다른 그리스도교도들도 저마다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났소. 남은 것은 소라이다와 나 둘뿐이었는데, 가진 것이라고는 프랑스 선장이 친절을 베풀어 소라이다에게 준 에스쿠도뿐이었소. 그 돈으로 나는 그 여자가 타고 온 이 짐승을 샀소. 그리고 지금까지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요 종자로서 그 여자를 섬기며, 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신지, 동생들 가운데 누가 나보다 나은 운을 만났는지 알아보러 가는 길이오. 하늘이 나를 소라이다의 길동무로 삼아 주셨으니, 아무리 좋은 운이라도 이보다 더 귀히 여길 운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오. 소라이다가 가난이 몰고 오는 고생을 견디는 참을성과 어서 그리스도교도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어찌나 크고 갸륵한지, 나는 감탄하며 평생 그 여자를 섬기고 싶어지오. 그러나 내가 그 여자의 사람이 되고 그 여자가 내 사람이 되는 이 기쁨도, 내 고향에 그 여자를 들일 구석 하나라도 찾을 수 있을지, 세월과 죽음이 아버지와 동생들의 재산과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지, 그들이 없다면 나를 알아볼 사람 하나 찾기도 어렵지 않을지 몰라 흐려지고 무너지오. 여러분, 내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요. 이 이야기가 즐겁고 진기한지는 여러분의 훌륭한 판단에 맡기겠소. 나로서는 더 짧게 이야기했으면 좋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소. 여러분을 지루하게 할까 두려워 자잘한 사정을 네 가지도 넘게 혀끝에서 거두어들였지만 말이오."
주
1. 에스파냐 전설에서 서고트 왕 로드리고에게 몸을 더럽힌 훌리안 백작의 딸 플로린다. 아버지가 앙갚음하려고 무어인을 끌어들여 711년 에스파냐가 정복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