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장 진술서
이 책에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 한, 그리고 향유고래의 습성 가운데 아주 흥미롭고 신기한 점 한두 가지를 간접으로나마 건드린다는 점에서도, 앞 장의 앞부분은 이 책을 통틀어 손꼽힐 만큼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그 요지는 제대로 이해되려면 더 넓고 더 친숙하게 풀어 놓아야 한다. 게다가 이 일 전체를 깊이 모르는 탓에 이 사건의 요점이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인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 의심도 걷어 내야 한다.
내 일 가운데 이 부분을 체계적으로 해낼 마음은 없고, 포경선원으로서 몸소 겪어 알거나 믿을 만하게 아는 항목들을 하나씩 따로 들어 바라는 인상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 놓으면, 내 생각에, 노리는 결론은 저절로 따라 나올 것이다.
첫째, 나는 작살을 맞은 고래가 완전히 달아났다가 얼마 뒤(한 번은 삼 년 뒤) 같은 사람의 손에 다시 맞아 죽고, 그 몸에서 같은 사사로운 표시가 새겨진 작살 두 자루가 나온 경우를 몸소 세 번 알고 있다. 두 작살을 던진 사이에 삼 년이 흐른 경우에는(내 생각에는 그보다 좀 더 되었을지도 모른다), 작살을 던진 사람이 그사이에 마침 무역선을 타고 아프리카로 항해를 떠났다가 거기서 뭍에 올라 탐험대에 끼어 내륙 깊숙이 들어갔고, 거의 두 해 동안 그곳을 여행하며 뱀과 야만인과 호랑이와 독을 품은 습한 기운, 그 밖에 미지의 땅 한복판을 떠돌 때 따르기 마련인 온갖 흔한 위험에 자주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동안 그가 맞힌 고래도 제 나름의 여행길에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지구를 세 바퀴나 돌며 옆구리로 아프리카의 온 해안을 스치고 지나갔으리라. 그러나 소용없었다. 이 사람과 이 고래는 다시 만났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쓰러뜨렸다. 거듭 말하지만 나 자신이 이와 비슷한 경우를 세 번 알고 있다. 곧 그 가운데 두 번은 고래가 작살을 맞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고, 두 번째 공격 뒤에 저마다 표시가 새겨진 작살 두 자루가 나중에 죽은 고래에게서 뽑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삼 년 만의 경우에는 마침 처음과 마지막 두 번 다 내가 그 보트에 타고 있었는데, 마지막 때 고래의 눈 밑에 있는 기묘하게 커다란 점을 똑똑히 알아보았다. 삼 년 전에 거기서 본 점이었다. 삼 년이라고 했지만 그보다 더 되었다고 거의 확신한다. 그러니 내가 몸소 진실을 아는 경우가 여기 세 가지 있다. 그러나 그 밖에도 이 일에 관해 말의 참됨을 의심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서 다른 경우를 많이 들었다.
둘째, 뭍의 세상은 아무리 모른다 해도 향유고래 포경업에서는 잘 알려져 있듯이, 대양의 어느 한 고래가 멀리 떨어진 때와 곳에서 널리 알아보이던, 기억할 만한 역사상의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고래가 그렇게 이름이 난 까닭은 처음부터 오로지 다른 고래와 구별되는 몸의 특이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고래가 그 점에서 아무리 특이하다 해도, 사람들은 곧 그놈을 죽여 특이하게 값진 기름으로 졸여 버림으로써 그 특이함에 끝장을 내 버리기 때문이다. 아니다. 까닭은 이것이었다. 포경업의 치명적인 경험 때문에 그런 고래에게는, 리날도 리날디니에게 그랬듯이, 위험하다는 무시무시한 명성이 따라다녀서, 대부분의 어부들은 그놈이 바다에서 제 곁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발견하면 더 가까이 사귀려 들지 않고 그저 방수모에 손을 대어 아는 체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뭍에서 성미 고약한 대인물을 어쩌다 알게 된 가련한 녀석들처럼, 그들은 길에서 그에게 멀찍이서 눈에 띄지 않게 인사한다. 더 가까이 사귀려 들었다가는 건방지다고 대뜸 한 대 얻어맞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이 이름난 고래들은 저마다 대단한 개인적 명성, 아니, 대양을 덮는 명성이라 불러도 좋을 그것을 누렸을 뿐 아니라, 살아서 이름을 떨치고 죽은 지금은 앞갑판 선원실의 이야기 속에서 불멸할 뿐 아니라, 이름이 지닌 모든 권리와 특권과 영예까지 인정받았다. 실로 캄비세스나 카이사르만큼이나 버젓한 이름을 가졌다. 그렇지 않았느냐, 오 티모르 톰이여! 빙산처럼 상처투성이인 이름 높은 리워야단, 그 이름을 딴 동양의 해협에 그토록 오래 숨어 있었고, 옴바이의 야자수 늘어선 해변에서 그 물줄기가 자주 보였던 너여. 그렇지 않았느냐, 오 뉴질랜드 잭이여! 문신의 땅 근처에서 네 항적을 가로지른 모든 순항선의 공포여. 그렇지 않았느냐, 오 모르콴이여! 일본의 왕, 그 높은 물기둥이 때로 하늘을 배경으로 눈처럼 흰 십자가 모양을 띠었다고들 하는 너여. 그렇지 않았느냐, 오 돈 미겔이여! 늙은 거북처럼 등에 신비로운 상형 문자가 새겨진 칠레의 고래여! 쉬운 산문으로 말하면, 고전학자에게 마리우스나 술라가 그렇듯 고래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잘 알려진 고래 네 마리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뉴질랜드 톰과 돈 미겔은 여러 때에 여러 배의 보트들 사이에서 큰 난리를 일으킨 끝에 마침내 용감한 포경선 선장들에게 쫓기고 차근차근 추적당하고 사냥당해 죽었는데, 그 선장들이 바로 그 목적을 똑똑히 눈앞에 두고 닻을 올린 것은, 옛날 버틀러 대위가 내러갠싯 숲을 지나 길을 나설 때 인디언 필립 왕의 으뜸 전사인 악명 높은 살인자 야만인 애너원을 사로잡겠다는 뜻을 품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흰 고래 이야기 전체, 특히 그 파국이 모든 점에서 사리에 맞음을 인쇄된 글로 입증해 준다는 점에서 내게 중요해 보이는 한두 가지 다른 일을 이야기하기에, 바로 여기보다 나은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것은 진실이 오류만큼이나 떠받쳐 줄 것을 필요로 하는, 맥 빠지는 경우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뭍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뚜렷하고 손에 잡힐 듯한 경이 가운데 몇 가지를 너무도 모르므로, 포경업에 관한 역사적인 사실과 그 밖의 뻔한 사실을 조금이라도 귀띔해 주지 않으면 모비 딕을 괴물 같은 꾸며 낸 이야기로, 아니 더 나쁘고 더 가증스럽게는 흉측하고 견딜 수 없는 알레고리로 비웃을지도 모른다.
첫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거대한 포경업의 일반적인 위험에 관해 막연하고 스쳐 가는 생각을 얼마쯤 품고 있지만, 그 위험과 그 위험이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는지에 대해서는 확고하고 생생한 관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한 가지 까닭은 아마, 포경업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재난과 사고사가 쉰에 하나도 고향에서 공적인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 기록이 아무리 덧없고 곧바로 잊힌다 해도 말이다. 저기 저 가련한 녀석, 어쩌면 바로 이 순간 뉴기니 앞바다에서 작살줄에 걸려 잠수하는 리워야단에게 바다 밑바닥으로 끌려 내려가고 있을 그 녀석 말이다. 그 가련한 녀석의 이름이 내일 아침 식사 때 그대가 읽을 신문 부고란에 실리리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여기와 뉴기니 사이에는 우편이 아주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사실, 뉴기니에서 곧바로든 돌아서든 정기 소식이라 할 만한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말해 두지만, 내가 태평양으로 나간 어느 항해에서 우리는 다른 많은 배들 가운데 서른 척과 말을 주고받았는데, 그 배들은 하나같이 고래 때문에 사람이 죽은 일이 있었고, 그 가운데 몇 척은 한 사람 넘게 죽었으며, 세 척은 저마다 보트 한 척의 선원을 통째로 잃었다. 제발, 등잔과 초를 아껴 써라! 그대가 태우는 기름은 한 갤런도 빠짐없이 적어도 사람 피 한 방울을 흘려 얻은 것이다.
둘째, 뭍사람들도 고래가 엄청난 힘을 지닌 엄청난 생물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실로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이중의 엄청남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예를 들려줄 때면 그들은 늘 의미심장하게 내 익살을 추어올렸다. 맹세코 말하건대, 그때 나는 이집트에 내린 재앙의 역사를 쓰던 모세만큼도 익살을 부릴 생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여기서 세우려는 특별한 요점은 나 자신의 증언과는 전혀 상관없는 증언으로 입증할 수 있다. 그 요점은 이렇다. 향유고래는 경우에 따라, 미리 꾀하고 곧바로 덤벼 큰 배를 들이받아 박살 내고 송두리째 부수어 가라앉힐 만큼 힘세고 영리하며 분별 있게 악의적이다. 게다가 향유고래는 실제로 그렇게 해냈다.
첫째, 1820년 낸터킷의 폴러드 선장이 이끄는 에식스호가 태평양을 돌고 있었다. 어느 날 배는 물줄기를 보고 보트를 내려 향유고래 떼를 쫓았다. 머지않아 고래 몇 마리가 상처를 입었다. 그때 갑자기 아주 큰 고래 한 마리가 보트들을 벗어나 떼에서 나오더니 곧장 배를 향해 내리 덮쳤다. 놈은 이마로 선체를 들이받아 배를 어찌나 박살 냈던지 "10분"도 안 되어 배는 가라앉으며 쓰러졌다. 그 뒤로 살아남은 판자 한 쪽 보이지 않았다. 혹독한 고난을 겪은 끝에 선원 일부가 보트를 타고 뭍에 이르렀다. 마침내 고향에 돌아온 폴러드 선장은 다시 한 번 다른 배를 이끌고 태평양으로 떠났지만, 신들은 미지의 암초와 부서지는 파도 위에 그를 또다시 난파시켰다. 두 번째로 그의 배는 송두리째 사라졌고, 그는 곧장 바다를 버리겠다고 맹세하고는 그 뒤로 다시는 바다를 넘보지 않았다. 오늘날 폴러드 선장은 낸터킷에 산다. 나는 그 비극이 일어날 때 에식스호의 일등 항해사였던 오언 체이스를 만나 보았고, 그가 쓴 소박하고 충실한 수기를 읽었으며, 그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모든 일은 그 참사가 벌어진 곳에서 몇 마일 안 되는 곳에서였다.1
여기 그가 배를 떠나고 얼마 뒤, 어느 캄캄한 밤 지붕 없는 보트 위에서 사람을 맞아 줄 해안에 닿으리라는 희망을 거의 잃었을 때 품은 생각이 있다. "어두운 대양과 부풀어 오르는 물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떤 무서운 폭풍에 삼켜지거나 숨은 바위에 부딪혀 박살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그 밖에 두려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온갖 흔한 것들도 잠시 생각할 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음산한 모습의 난파선과 그 고래의 무시무시한 모습과 복수가 다시 날이 밝을 때까지 내 생각을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다른 곳(45쪽)에서 그는 "그 짐승의 수수께끼 같은, 치명적인 공격"을 말한다.
둘째, 역시 낸터킷의 배인 유니언호가 1807년 아조레스 제도 앞바다에서 비슷한 공격을 받아 송두리째 사라졌다. 그러나 이 참사에 관해 믿을 만한 자세한 사정은 우연히라도 만나 본 적이 없다. 다만 고래 사냥꾼들에게서 이따금 지나가는 말로 그 일을 넌지시 들었을 뿐이다.
셋째, 열여덟 해인가 스무 해 전, 당시 미국 일급 슬루프형 군함을 지휘하던 J 아무개 제독이 샌드위치 제도 오아후의 항구에 정박한 낸터킷 배 위에서 포경선 선장 여럿과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야기가 고래로 흘러가자, 제독은 그 자리에 있던 전문가 신사들이 고래에게 돌리는 놀라운 힘을 짐짓 의심해 보였다. 이를테면 그는 어떤 고래도 제 튼튼한 슬루프형 군함을 쳐서 골무 하나만큼이라도 물이 새게 할 수는 없다고 딱 잘라 부인했다. 아주 좋다. 그러나 할 이야기가 더 있다. 몇 주 뒤 제독은 이 난공불락의 배를 타고 발파라이소로 떠났다. 그러나 가는 길에 어느 풍채 좋은 향유고래가 그를 멈춰 세우고, 은밀히 볼일이 있으니 잠깐 시간을 내 달라고 청했다. 그 볼일이란 제독의 배에 어찌나 세찬 한 방을 먹이는 것이었던지, 그는 펌프를 모두 돌리면서 배를 기울여 수리하려고 가장 가까운 항구로 곧장 가야 했다. 나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지만, 제독과 그 고래의 면담은 하늘의 뜻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소 사람 사울도 비슷하게 혼쭐이 나서 불신에서 돌아서지 않았던가? 말해 두지만, 향유고래는 허튼소리를 봐주지 않는다.
이제 랑스도르프의 「항해기」에서 이 점에 꼭 맞는, 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특히 흥미로운 작은 사정 하나를 소개하겠다. 그런데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랑스도르프가 이번 세기 초 러시아 제독 크루젠슈테른의 이름난 탐험 원정대에 딸려 있었다는 점이다. 랑스도르프 선장은 그의 열일곱째 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5월 13일까지 우리 배는 떠날 채비를 마쳤고, 이튿날 우리는 오호츠크로 가는 길에 너른 바다로 나와 있었다. 날씨는 아주 맑고 좋았지만 견딜 수 없이 추워서 털옷을 계속 입고 있어야 했다. 며칠 동안 바람이 거의 없었고, 19일이 되어서야 북서쪽에서 센 바람이 일었다. 몸뚱이가 배 자체보다 더 큰, 보기 드물게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수면에 거의 닿을 듯이 누워 있었는데, 돛을 가득 펴고 달리던 배가 거의 그 위에 올라탈 때까지 배 안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해서, 배가 놈에게 부딪히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더없이 다급한 위험에 놓였다. 이 거대한 생물이 등을 치켜올려 배를 적어도 3피트나 물 밖으로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돛대들이 휘청거리고 돛들이 모조리 떨어져 내렸다. 그사이 아래에 있던 우리는 모두 바위에 부딪혔다고 여기고 곧바로 갑판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바위는커녕 그 괴물이 더없이 진지하고 엄숙하게 헤엄쳐 가는 것이 보였다. 드울프 선장은 배가 그 충격으로 무슨 손상을 입었는지 알아보려고 곧바로 펌프를 살폈지만, 아주 다행히도 배는 전혀 다친 데 없이 무사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배를 지휘했다고 언급된 드울프 선장은 뉴잉글랜드 사람으로, 선장으로서 남다른 모험으로 가득한 긴 생애를 보낸 뒤 지금은 보스턴 근처 도체스터 마을에 산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그의 조카다. 나는 랑스도르프의 이 대목에 관해 특별히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사실이라고 확인해 준다. 그러나 그 배는 결코 큰 배가 아니었다. 시베리아 해안에서 지은 러시아 배로, 삼촌이 고향에서 타고 떠난 배를 팔아 치운 뒤 사들인 것이었다.
고풍스러운 모험을 담은 꾸밈없이 사내다운 책, 게다가 정직한 경이로 가득한 그 책, 곧 옛 댐피어의 오랜 벗 가운데 하나인 라이어널 웨이퍼의 항해기에서, 나는 방금 랑스도르프에게서 인용한 것과 무척 닮은 작은 일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으므로, 확증하는 예로, 그런 것이 필요하다면, 여기 끼워 넣지 않을 수 없다.
라이어널은 아마 "존 퍼디낸도"로 가던 길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오늘날의 후안페르난데스를 그렇게 부른다. "그리로 가는 길에," 하고 그는 말한다. "새벽 네 시쯤, 우리가 아메리카 본토에서 150리그쯤 떨어져 있을 때 우리 배가 무시무시한 충격을 받았다. 그 바람에 우리 사람들은 어찌나 놀랐던지 자기가 어디 있는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 죽을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로 그 충격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거세었으므로 우리는 배가 바위에 부딪혔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놀람이 조금 가라앉자 측연을 던져 깊이를 재 보았지만 바닥이 닿지 않았다. …… 충격이 갑작스러워서 대포가 포가 위에서 튀어 오르고 선원 몇 명은 해먹에서 흔들려 떨어졌다. 대포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던 데이비스 선장은 선실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라이어널은 이어서 그 충격을 지진 탓으로 돌리고, 대략 그 무렵 큰 지진이 실제로 스페인 땅 연안에 큰 피해를 입혔다고 적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이른 새벽의 어둠 속에서 그 충격이 결국 보이지 않는 고래가 아래에서 선체를 곧추 들이받아 생긴 것이었다 해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을 것이다.
향유고래가 때때로 보여 주는 큰 힘과 악의에 관해, 이런저런 경로로 내가 아는 예를 몇 가지 더 들 수도 있겠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놈은 공격하는 보트들을 저희 배까지 도로 쫓아 보냈을 뿐 아니라 배 자체를 뒤쫓으며 그 갑판에서 던지는 온갖 창을 오래도록 견뎌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배 퍼지홀호가 그 점에 관해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 수 있다. 그리고 놈의 힘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해 두자. 달리는 향유고래에 매인 작살줄을 바람이 잔잔할 때 배로 옮겨 거기 단단히 매어 두었더니, 말이 수레를 끌고 가듯 고래가 그 거대한 선체를 끌고 물을 헤쳐 간 예가 있었다. 또, 향유고래가 일단 작살을 맞은 뒤 다시 기운을 차릴 틈을 얻으면, 그때 놈은 맹목적인 분노로 날뛰기보다 쫓는 자들을 부수려는 고의적이고 계획된 의도로 움직일 때가 많다는 것이 아주 자주 관찰된다. 공격을 받으면 놈이 자주 입을 벌리고 그 무시무시하게 벌린 채로 몇 분이고 내리 있는 것도 놈의 성격을 웅변으로 드러내는 바가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예를 하나만 더, 마지막으로 들고 만족해야 한다. 그것은 놀랍고 더없이 뜻깊은 예이므로, 그대는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이 오늘날의 명백한 사실로 뒷받침될 뿐 아니라 이 경이들이 (모든 경이가 그렇듯) 여러 시대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음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백만 번째로 솔로몬과 함께 아멘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서기 6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의 기독교도 행정관 프로코피우스가 살았다. 유스티니아누스가 황제이고 벨리사리우스가 장군이던 시절이다. 많은 사람이 알듯이 그는 자기 시대의 역사를 썼는데, 모든 점에서 보기 드문 가치를 지닌 저작이다. 가장 권위 있는 이들은 그를 늘 더없이 믿을 만하고 과장하지 않는 역사가로 여겨 왔다. 한두 가지 점만은 예외지만, 그것도 곧 말할 일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 역사서에서 프로코피우스는, 자신이 콘스탄티노플의 지사로 있던 동안 이웃한 프로폰티스, 곧 마르마라해에서 커다란 바다 괴물 한 마리가 잡혔다고 적는다. 놈은 쉰 해가 넘는 동안 그 바다에서 이따금 배들을 부숴 온 끝에 잡혔다. 이렇게 착실한 역사에 적힌 사실은 쉽사리 반박할 수 없다. 반박해야 할 까닭도 없다. 이 바다 괴물이 정확히 어떤 종이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놈이 배를 부쉈으니, 또 다른 까닭들로도, 놈은 고래였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향유고래였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강하게 기운다. 그 까닭을 말하겠다. 오랫동안 나는 향유고래가 지중해와 그에 이어진 깊은 바다에는 늘 알려지지 않은 채였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그 바다들이 지금 같은 사물의 질서에서는 놈이 무리 지어 늘 드나드는 곳이 아니며, 어쩌면 결코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최근 더 조사해 보니, 근대에 들어 지중해에 향유고래가 나타난 따로따로의 경우들이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 들은 바로는, 바르바리 해안에서 영국 해군의 데이비스 제독이라는 사람이 향유고래의 뼈대를 발견했다. 그런데 군함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쉽게 지나가니, 향유고래도 같은 길로 지중해를 빠져나와 프로폰티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알아낼 수 있는 한, 프로폰티스에는 참고래의 먹이인 브릿이라는 그 특이한 물질이 전혀 없다. 그러나 향유고래의 먹이인 오징어, 곧 갑오징어가 그 바다 밑바닥에 숨어 산다고 믿을 만한 까닭은 충분하다. 그 종류 가운데 결코 가장 큰 것은 아니지만 커다란 생물들이 그 바다 수면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진술들을 제대로 짜 맞추고 그것을 두고 조금만 따져 보면, 사람의 모든 이치로 보아, 로마 황제의 배들을 반세기 동안 박살 낸 프로코피우스의 바다 괴물은 십중팔구 향유고래였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그대는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주
1. 체이스의 수기에서 뽑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실로 보아 나는 놈의 행동을 이끈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는 듯했다. 놈은 짧은 간격을 두고 배를 두 번 따로 공격했는데, 두 번 다 그 방향으로 보아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도록 꾀한 것이었다. 정면으로 덤벼 두 물체의 속력을 합쳐 충격을 키웠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놈이 한 그 정확한 움직임이 꼭 필요했다. 놈의 모습은 더없이 무시무시했고, 원한과 분노를 드러내는 듯했다. 놈은 우리가 바로 전에 들어갔던 고래 떼, 우리가 놈의 동료 세 마리를 작살로 맞힌 그 떼에서 곧장 나왔다. 마치 동료들이 당한 고통에 복수심으로 불타오른 듯이." 또. "어쨌든, 모든 정황을 한데 모아 보면, 그 모든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났고 그때 내 마음에 고래 쪽의 확고하고 계산된 해코지라는 인상을 남겼으므로(그 인상 가운데 많은 것을 지금은 떠올릴 수 없다), 나는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