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장 구명부표
이제 에이해브가 수평으로 맞춘 강철 바늘을 따라 남동쪽으로 배를 몰고, 오직 에이해브의 수평 측정판과 측정줄로만 나아간 거리를 정하며, 피쿼드호는 적도를 향해 제 길을 이어 갔다. 그토록 사람의 발길이 드문 바다를 지나는 그토록 긴 항해,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가운데, 머지않아 한결같은 무역풍에 옆으로 떠밀려 단조롭게 잔잔한 물결 위를 가는 항해, 이 모든 것이 무언가 소란스럽고 필사적인 장면을 앞둔 기이하게 고요한 전주곡 같았다.
마침내 배가 이를테면 적도 어장의 변두리에 가까워지고, 새벽을 앞둔 깊은 어둠 속에서 바위투성이 작은 섬 무리 곁을 지나고 있을 때, 그때 플래스크가 이끌던 당직 선원들은 어찌나 애처롭고 사납고 이 세상 것 같지 않은지,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 모든 무고한 아기들의 유령이 반쯤 말을 이루어 울부짖는 것 같은 외침에 소스라쳐 놀랐다. 그래서 하나같이 모두 몽상에서 퍼뜩 깨어나, 그 사나운 외침이 들리는 동안 한동안 서거나 앉거나 기댄 채 조각된 로마 노예처럼 꼼짝 않고 귀를 기울였다. 선원 가운데 기독교도나 문명인 쪽은 인어라고 말하며 몸서리쳤다. 그러나 이교도 작살잡이들은 겁먹지 않았다. 그런데 백발의 맨섬 노인은, 모든 선원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뱃사람인 그는, 들려온 그 사납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바다에 막 빠져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단언했다.
아래 해먹에 있던 에이해브는 잿빛 새벽이 되어 갑판에 올라올 때까지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고, 그때 플래스크가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무언가 어두운 뜻이 있다는 암시가 없지 않았다. 그는 공허하게 웃더니, 그 기이한 일을 이렇게 풀어 주었다.
배가 지나온 그 바위섬들은 엄청나게 많은 바다표범이 모여드는 곳이어서, 어미를 잃은 새끼 바다표범 몇 마리나 새끼를 잃은 어미 바다표범 몇 마리가 배 가까이 떠올라 배를 따라오며 사람 같은 울음으로 울고 흐느낀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몇몇 선원을 더욱 동요하게 했을 뿐이었는데, 대부분의 뱃사람은 바다표범에 대해 아주 미신적인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인데, 그 감정은 바다표범이 괴로울 때 내는 독특한 소리뿐 아니라, 뱃전 옆 물에서 기웃거리며 솟아오르는 그 둥근 머리와 반쯤 지혜로워 보이는 얼굴의 사람 같은 모습에서도 생겨난다. 바다에서 어떤 상황에서는 바다표범을 사람으로 잘못 본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불길한 예감은 그날 아침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의 운명으로 더없이 그럴듯하게 확인될 참이었다. 해가 뜰 때 이 사람은 해먹에서 나와 앞돛대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아직 잠에서 반도 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뱃사람들은 때로 잠과 깸 사이의 상태로 돛대에 오르기도 한다), 그가 정말 그랬는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가 망보는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침 소리가 들렸다. 외침과 무언가 휙 내닫는 소리였고, 사람들이 위를 올려다보니 허공에서 떨어지는 환영이 보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다의 푸른빛 속에 흰 거품이 작게 무더기로 일렁이고 있었다.
구명부표, 곧 길고 가느다란 통이 고물에서 떨어뜨려졌다. 그 통은 늘 교묘한 용수철에 매여 고분고분 거기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붙잡으려고 솟아오르는 손은 하나도 없었고, 해가 오랫동안 이 통을 내리쬔 탓에 통이 쪼그라들어 있어서, 통 속으로 천천히 물이 찼고, 바싹 마른 나무에도 구멍마다 물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징을 박고 쇠테를 두른 통은 그 선원을 따라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마치 그에게 베개를 내주려는 것처럼. 실은 딱딱하기 짝이 없는 베개였지만.
그리하여 흰 고래만의 독특한 어장에서 흰 고래를 찾으려고 돛대에 오른 피쿼드호의 첫 사람, 그 사람은 깊은 바다에 삼켜졌다. 그러나 그때 그것을 생각한 사람은 아마 드물었으리라. 사실 어떤 점에서 그들은, 적어도 징조로서는, 이 일을 슬퍼하지 않았으니, 이 일을 앞으로 올 불행의 전조가 아니라 이미 예고된 불행의 실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간밤에 들은 그 사나운 비명의 까닭을 이제 알겠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늙은 맨섬 노인은 이번에도 아니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구명부표를 이제 새로 갖추어야 했다. 스타벅에게 그 일을 맡겼다. 그러나 충분히 가벼운 통을 찾을 수 없었고, 항해의 위기가 다가오는 듯한 그 들뜬 열기 속에서 모두가 그 마지막 목적에 곧장 이어지는 일이 아니면 어떤 수고도 참지 못했기에, 그 목적이 무엇으로 드러나든 간에, 그래서 그들은 배의 고물에 부표 없이 그냥 두려던 참이었다. 그때 퀴퀘그가 어떤 이상한 손짓과 넌지시 하는 말로 자기 관에 대해 귀띔해 주었다.
"관으로 구명부표를!" 스타벅이 흠칫 놀라며 외쳤다.
"좀 별나긴 하오, 내 생각엔." 스터브가 말했다.
"그만하면 쓸 만한 부표가 될 거요." 플래스크가 말했다. "여기 목수가 쉽게 꾸밀 수 있소."
"가져오게. 다른 수가 없군." 스타벅이 침울하게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그걸 꾸미게, 목수. 나를 그렇게 보지 말고. 관 말일세. 내 말 들리나? 꾸미게."
"그럼 뚜껑에 못을 박을까요, 항해사님?" 목수가 망치질하듯 손을 움직였다.
"그래."
"그럼 이음매에 뱃밥을 메울까요, 항해사님?" 목수가 뱃밥 메우는 쇠를 쥔 듯 손을 움직였다.
"그래."
"그럼 그 위에 역청을 바를까요, 항해사님?" 목수가 역청 단지를 든 듯 손을 움직였다.
"썩 가게! 대체 뭐에 씌어서 이러나? 관으로 구명부표를 만들게, 그뿐일세. 스터브, 플래스크, 나와 함께 앞으로 가세."
"발끈해서 가 버리시는군. 통째로는 견디면서, 부분에서는 꽁무니를 뺀단 말이야. 거참, 이건 마음에 안 드는데. 내가 에이해브 선장님한테 다리를 만들어 드리면 선장님은 그걸 신사답게 달고 다니신다. 그런데 퀴퀘그한테 모자 상자를 만들어 주면 퀴퀘그는 거기 머리를 넣으려 하지 않는다. 그 관에 들인 내 수고가 모두 헛것이 되어야 하나? 그리고 이제 그걸로 구명부표를 만들라는 명령이다. 헌 웃옷을 뒤집어 짓는 거나 같지. 이번엔 살을 안쪽 말고 바깥쪽으로 내놓을 판이다. 나는 이런 땜질 같은 일이 싫다. 아주 질색이다. 품위가 없다. 내 할 일이 아니다. 땜장이 자식 놈들이나 땜질을 하라지. 우리는 그놈들보다 나은 사람이다. 나는 깨끗하고, 손때 묻지 않고, 반듯반듯한 수학 같은 일만 맡고 싶다. 처음에서 꼬박꼬박 시작해서, 중간쯤 가면 중간에 있고, 끝날 때 끝에 이르는 일 말이다. 중간에서 끝나 버리고, 끝에 가서야 처음에 서 있는 신기료장수의 일은 싫다. 땜질 일을 맡기는 건 늙은 아낙들의 수작이야. 주여! 늙은 아낙들은 어쩌면 그리 하나같이 땜장이를 좋아하는지. 예순다섯 살 먹은 노파가 대머리 젊은 땜장이와 눈이 맞아 달아난 걸 나는 하나 알지. 그래서 내가 바인야드에서 일감 가게를 할 때 뭍에 사는 외로운 늙은 과부 일은 절대 하지 않았던 거다. 그 외로운 늙은 머리에 나와 함께 달아날 생각이라도 떠오르면 어쩌나 싶어서. 하지만 아이고! 바다에는 모자 쓴 아낙은 없고 흰 물마루 모자뿐이지. 어디 보자. 뚜껑에 못을 박는다. 이음매에 뱃밥을 메운다. 그 위에 역청을 바른다. 단단히 널빤지를 대어 막고, 튕김 용수철을 달아 배의 고물에 매단다. 관을 가지고 이런 짓을 한 적이 전에도 있었나? 미신을 믿는 늙은 목수라면 이 일을 하느니 차라리 삭구에 묶이고 말 거다. 하지만 나는 옹이 많은 아루스투크 솔송나무로 만든 몸이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관을 꽁무니 끈처럼 매달다니! 묘지 쟁반을 달고 항해하다니!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 나무 다루는 일꾼들은 관과 영구차뿐 아니라 신혼 침대와 카드 탁자도 만든다. 우리는 달로 일하기도 하고, 일감으로 일하기도 하고, 이익을 보고 일하기도 한다. 우리 일의 이유와 까닭을 묻는 건 우리 몫이 아니다. 너무 빌어먹을 땜질 같은 일이라면 몰라도. 그럴 땐 할 수만 있으면 집어치우지. 흠! 이제 그 일을 정성껏 해야겠다. 어디 보자, 배에 탄 사람이 모두 몇이더라? 잊어버렸군. 아무튼 터크스헤드 매듭을 단 구명줄을 따로따로 서른 개, 저마다 3피트 길이로 관 둘레에 빙 둘러 매달아야겠다. 그러면 선체가 가라앉을 때 팔팔한 친구 서른 명이 모두 관 하나를 차지하려고 싸우겠지. 해 아래에서 그리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자, 망치야, 뱃밥 쇠야, 역청 단지야, 밧줄 바늘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