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장 덜 틀린 고래 그림과 참된 포경 장면 그림에 대하여
괴물 같은 고래 그림과 관련하여, 나는 여기서 옛 책과 요즘 책, 특히 플리니우스, 퍼처스, 해클루트, 해리스, 퀴비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래에 관한 그보다 더 괴물 같은 이야기들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그 일은 그냥 지나가겠다.
거대한 향유고래의 윤곽을 그려 출판한 것으로 내가 아는 것은 네 가지뿐이다. 콜넷의 것, 허긴스의 것, 프레데리크 퀴비에의 것, 그리고 빌의 것이다. 앞 장에서 콜넷과 퀴비에는 이미 언급했다. 허긴스의 것은 그들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나 단연 가장 좋은 것은 빌의 것이다. 빌이 그린 이 고래 그림은 모두 좋다. 다만 그의 둘째 장 머리에 실린, 여러 자세를 한 고래 세 마리 그림의 가운데 형상만은 예외다. 향유고래를 공격하는 보트들을 그린 그의 권두화는, 틀림없이 몇몇 응접실 신사들의 점잖은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하지만, 전체 효과에서 놀랍도록 정확하고 생생하다. J. 로스 브라운의 책에 실린 향유고래 그림 몇 장은 윤곽이 꽤 정확하다. 그러나 판각이 형편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참고래의 가장 좋은 윤곽 그림은 스코어즈비의 책에 있다. 그러나 너무 작은 축척으로 그려져 바람직한 인상을 전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포경 장면 그림이 하나뿐인데, 이것은 슬픈 결함이다. 살아 있는 사냥꾼들이 보는 살아 있는 고래에 대해 참된 생각 비슷한 것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런 그림, 그것도 조금이라도 잘 그린 그림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통틀어 보면,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고래와 포경 장면 그림 가운데 세부 몇 군데에서 가장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연 가장 훌륭한 것은, 가르느레라는 사람의 그림을 바탕으로 잘 새긴 프랑스의 큰 판화 두 장이다. 그것들은 각각 향유고래와 참고래를 공격하는 장면을 나타낸다. 첫 번째 판화에는 고귀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힘의 온전한 위엄을 지닌 채, 대양의 깊은 곳에서 보트 밑으로 막 솟아올라 박살 난 판자의 무시무시한 잔해를 등에 얹어 공중 높이 쳐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보트의 이물은 일부가 부서지지 않은 채 괴물의 등뼈 위에서 막 균형을 잡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이물에 서서, 헤아릴 수 없는 그 한순간의 번쩍임 속에, 고래의 성나 끓어오르는 물줄기에 반쯤 휩싸인 채 벼랑에서 뛰어내리듯 막 뛰어내리려는 노잡이 하나가 보인다. 전체의 움직임이 놀랍도록 훌륭하고 참되다. 반쯤 빈 작살줄 통이 하얗게 된 바다 위에 떠 있고, 쏟아진 작살들의 나무 자루가 그 속에서 비스듬히 까딱거린다. 헤엄치는 선원들의 머리가 고래 둘레에 흩어져 저마다 다른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사이 폭풍 이는 검은 먼 곳에서 배가 그 장면을 향해 내리 달려오고 있다. 이 고래의 해부학적 세부에서는 심각한 흠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넘어가자.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만큼 잘 그리지 못할 테니까.
두 번째 판화에서는 보트가, 따개비 붙은 옆구리를 드러내고 달리는 큰 참고래 곁으로 막 다가붙고 있다. 고래는 파타고니아의 벼랑에서 무너져 내린 이끼 낀 바위 더미처럼 해초 덮인 검은 몸뚱이를 바다에 굴린다. 그 물줄기는 곧추서고 가득하며 그을음처럼 검다. 그래서 굴뚝에서 그렇게 넉넉히 연기가 나니 그 아래 커다란 창자 속에서는 푸짐한 저녁 식사가 끓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만하다. 바닷새들이 참고래가 때로 역병 같은 등에 싣고 다니는 작은 게와 조개와 그 밖의 바다 사탕과 마카로니를 쪼아 먹는다. 그리고 그동안 내내 입술 두툼한 리워야단은 깊은 바다를 헤치고 내달리며, 그 항적에 소란스러운 흰 엉긴 젖을 몇 톤씩 남기고, 가냘픈 보트를 원양 증기선의 외륜 가까이 붙잡힌 작은 배처럼 너울 속에서 흔들리게 한다. 그렇게 앞쪽은 온통 사나운 소동이다. 그러나 뒤쪽에는 놀랍도록 예술적인 대조로, 바람 잠든 바다의 거울 같은 수면과, 힘을 잃은 배의 풀기 없이 처진 돛과, 정복된 요새처럼 죽은 고래의 꼼짝 않는 덩어리가 있다. 그 숨구멍에 꽂힌 고래 장대에는 사로잡았다는 깃발이 느긋하게 늘어져 있다.
화가 가르느레가 누구인지, 혹은 누구였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말하건대, 그는 제 주제를 실제로 겪어 잘 알았거나, 아니면 어느 경험 많은 포경선원에게서 놀랍도록 잘 배웠다. 프랑스 사람들이야말로 움직임을 그리는 데 으뜸가는 녀석들이다. 가서 유럽의 모든 그림을 바라보라. 그리고 베르사유의 저 승리의 전당 말고 어디서 캔버스 위에 살아 숨 쉬는 소동을 그만큼 모아 놓은 화랑을 찾을 수 있겠는가? 거기서 보는 이는 프랑스의 큰 전투들을 차례로 뚫고 뒤죽박죽 길을 헤쳐 나가고, 칼 하나하나가 북극광의 번쩍임 같으며, 잇따라 무장한 왕들과 황제들이 왕관 쓴 켄타우로스들의 돌격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 가르느레의 이 바다 전투 그림들은 그 화랑에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전혀 없지 않다.
사물의 그림 같은 면을 붙잡는 프랑스 사람들의 타고난 솜씨는 그들이 지닌 포경 장면의 그림과 판화에서 유난히 드러나는 것 같다. 포경업에서 영국의 십분의 일만큼도, 미국의 천분의 일만큼도 경험이 없으면서, 그들은 그래도 두 나라에 고래 사냥의 참된 정신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완성된 스케치를 내놓았다. 대체로 영국과 미국의 고래 제도사들은 고래의 텅 빈 옆모습처럼 사물의 기계적인 윤곽만 내놓는 것으로 아주 만족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그림 같은 효과로 말하자면 피라미드의 옆모습을 스케치하는 것과 맞먹는다. 참고래잡이로 마땅히 이름 높은 스코어즈비조차 그린란드고래의 뻣뻣한 전신상과 일각고래와 돌고래의 섬세한 세밀화 서너 점을 보여 준 뒤에는, 보트 갈고리와 다지는 칼과 갈고리 닻을 그린 고전적인 판화들을 줄줄이 대접한다. 그러고는 레이우엔훅 같은 현미경의 부지런함으로, 확대한 북극 눈 결정의 복제화 아흔여섯 장을 떨고 있는 세상의 검사에 내놓는다. 그 훌륭한 항해자를 깎아내리려는 뜻은 없다(나는 그를 노련한 이로 존경한다). 그러나 그토록 중대한 일에서 결정 하나하나마다 그린란드 치안 판사 앞에서 맹세한 진술서를 받아 두지 않은 것은 분명히 실수였다.
가르느레의 그 훌륭한 판화들 말고도, 자기를 "H. 뒤랑"이라고 서명한 어떤 사람의 프랑스 판화 두 장도 주목할 만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지금 우리 목적에 꼭 들어맞지는 않지만 다른 점에서 언급할 만하다. 그것은 태평양 섬들 사이의 고요한 한낮 풍경이다. 프랑스 포경선 한 척이 바람 잔잔한 날 해안 가까이 닻을 내리고 느긋하게 물을 싣고 있다. 배의 느슨하게 풀린 돛과 뒤쪽 야자수의 긴 잎이 바람 없는 공기 속에 함께 늘어져 있다. 억센 어부들을 그들이 드물게 누리는 동양적인 휴식의 모습 가운데 하나로 보여 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효과가 아주 훌륭하다. 다른 판화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배가 너른 바다 위에, 리워야단의 삶 바로 한복판에서 참고래 한 마리를 옆에 끼고 멈춰 서 있다. 배는 (해체 작업 중이라) 부두에 대듯 그 괴물 쪽으로 기울어 있고, 보트 한 척이 이 일터에서 서둘러 떠나 멀리 있는 고래들을 쫓으려 하고 있다. 작살과 창은 쓸 수 있게 겨누어 놓여 있다. 노잡이 셋이 막 돛대를 구멍에 세우고 있다. 그사이 바다가 갑자기 출렁이는 바람에 그 작은 배는 앞발을 치켜든 말처럼 물 밖으로 반쯤 곧추서 있다. 배에서는 끓는 고래가 겪는 고통의 연기가 대장간 마을 위의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바람 불어오는 쪽에서는 돌풍과 비를 예고하며 솟아오르는 검은 구름이, 흥분한 선원들의 움직임을 더욱 재촉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