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장
"리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다." 마차가 읍내를 빠져나갈 때 외삼촌이 말했다. "정말이지, 진지하게 따져 보니 아까보다 훨씬 더 큰언니처럼 생각하고 싶어지는구나. 결코 돌봐 줄 사람이 없지도 않고 친구가 없지도 않은 아가씨를, 그것도 바로 자기 연대장 댁에 머물고 있던 아가씨를 두고 젊은 남자가 그런 꿍꿍이를 품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법하지 않아서, 나는 좋은 쪽으로 기대를 걸고 싶은 마음이 크다. 리디아 친척들이 가만있으리라고 그 사람이 생각했겠니? 포스터 대령에게 그런 모욕을 안기고 나서 연대에서 다시 얼굴을 들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겠니? 그런 위험을 무릅쓸 만큼 큰 유혹은 아니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엘리자베스가 잠깐 얼굴이 밝아지며 물었다.
"나도 외삼촌 생각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어."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체면과 명예와 제 이익을 그렇게까지 저버리는 일이니, 그 사람이 그런 짓을 저질렀을 리 없어. 나는 위컴을 그렇게까지 나쁘게 생각할 수가 없구나. 리지, 너 자신은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그 사람을 완전히 단념할 수 있겠니?"
"제 이익을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밖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저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정말 외숙모 말씀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감히 그런 기대는 못 하겠어요. 정말 그렇다면 왜 스코틀랜드까지 가지 않았겠어요?"
"우선," 가디너 씨가 대답했다.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가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어."
"아, 하지만 경마차에서 삯마차로 갈아탔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이 가잖아요! 게다가 바넷 길에서는 두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고요."
"그럼 좋아, 두 사람이 런던에 있다고 쳐 보자. 런던에 있는 건 몸을 숨기려는 뜻일 수 있지, 그보다 더 나쁜 뜻은 아닐 수도 있어. 어느 쪽이든 돈이 아주 넉넉할 것 같지는 않으니, 스코틀랜드보다 런던에서 결혼하는 편이 빠르지는 않아도 돈은 덜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왜 그렇게 숨어요? 왜 들킬까 봐 겁을 내요? 왜 결혼을 남몰래 해야 해요?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언니 편지로 보셨겠지만, 그 사람하고 가장 가까운 친구도 그 사람이 리디아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확신했어요. 위컴은 돈 없는 여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그럴 형편이 못 되니까요. 그리고 리디아한테 젊음과 건강과 쾌활함 말고 무슨 내세울 것이, 무슨 매력이 있다고 그 사람이 리디아를 위해 좋은 데 장가가서 한몫 볼 기회를 다 버리겠어요? 연대 안에서 망신당할 걱정이 리디아를 데리고 부끄럽게 달아나는 일을 얼마나 막아 줄지는 제가 판단할 수 없어요. 그런 짓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외삼촌의 다른 반론은 들어맞기 어려울 것 같아요. 리디아한테는 나서 줄 오빠도 남동생도 없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아버지가 하는 걸 보고, 아버지가 늘 게으르시고 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거의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걸 보고, 이런 일이 생겨도 아버지는 세상 어느 아버지보다 손을 덜 쓰고 생각도 덜 하실 거라고 짐작했을지 몰라요."
"그렇지만 리디아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말고는 모든 걸 잊어버려서, 결혼이 아닌 다른 조건으로 그 사람과 함께 살겠다고 할 정도라고 생각하니?"
"동생이 그런 일에서 체면과 정숙함을 지킬지 의심스러워 보인다니, 정말 기막힌 일이에요." 엘리자베스는 눈물이 맺힌 채 대답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그 애를 너무 박하게 보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애는 아주 어린 데다 진지한 일을 생각하라고 배운 적이 한 번도 없고, 지난 반년, 아니 한 해 내내 놀고 멋 부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시간을 더없이 한가하고 경박하게 써도, 눈에 띄는 대로 아무 생각이나 받아들여도 다들 그냥 내버려 두었어요. ○○셔 연대가 처음 메리턴에 주둔한 뒤로는 머릿속에 연애와 시시덕거림과 장교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 일을 생각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안 그래도 타고나기를 쉽게 들뜨는 그 애 감정을 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더 쉽게 달아오르게 하려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그리고 위컴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생김새와 말솜씨를 다 갖춘 사람이라는 건 우리 모두 알잖아요."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제인은," 외숙모가 말했다. "위컴이 그런 짓을 꾀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아."
"언니가 언제 누구를 나쁘게 생각한 적이 있나요? 예전에 어떻게 처신했든, 증거가 나오기 전에 그런 짓을 꾀할 수 있다고 언니가 믿을 사람이 대체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위컴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는 언니도 저만큼 알아요. 그 사람이 말 그대로 온갖 뜻에서 방탕했고, 성실함도 명예도 없고, 남의 마음에 파고드는 솜씨만큼이나 거짓되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 둘 다 알아요."
"너 정말 그걸 다 알고 있니?" 가디너 부인이 소리쳤다. 엘리자베스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알아요."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지난번에 그 사람이 다아시 씨한테 얼마나 파렴치하게 굴었는지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 외숙모도 지난번 롱번에 오셨을 때, 자기한테 그토록 너그럽고 관대하게 대해 준 사람을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직접 들으셨고요. 다른 사정들도 있는데, 그건 제가 말할 처지가… 굳이 이야기할 만한 게 못 돼요. 하지만 펨벌리 집안 전체에 대한 그 사람의 거짓말은 끝이 없어요. 다아시 양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저는 오만하고 쌀쌀하고 불쾌한 아가씨를 보게 되리라고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 자신은 그 반대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다아시 양이 우리가 직접 보았듯이 상냥하고 꾸밈없는 아가씨라는 걸 모를 리 없어요."
"하지만 리디아는 이런 걸 하나도 모른단 말이니? 너하고 제인이 그렇게 잘 아는 걸 리디아는 모를 수가 있니?"
"아, 네! 그게, 그게 가장 나쁜 점이에요. 켄트에 가서 다아시 씨와 그분 친척인 피츠윌리엄 대령을 그렇게 자주 보기 전까지는 저도 진실을 몰랐고,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셔 연대가 한 주나 2주 뒤면 메리턴을 떠날 참이었어요. 사정이 그러니, 제가 모든 걸 털어놓은 언니도 저도 우리가 아는 걸 세상에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을 좋게 보고 있는데, 그때 와서 그 평판을 뒤엎는 게 누구한테 무슨 소용이 있어 보였겠어요? 리디아가 포스터 부인을 따라가기로 정해졌을 때도, 그 애한테 그 사람의 사람됨을 똑똑히 알려 줘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리디아가 그 속임수에 넘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어요.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 외숙모도 쉽게 믿으실 거예요."
"그럼 다들 브라이턴으로 옮겨 갔을 때, 둘이 서로 좋아한다고 믿을 까닭은 전혀 없었다는 말이구나?"
"조금도요. 어느 쪽에서도 애정의 기미를 본 기억이 없고, 그런 기색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우리 집이 그런 걸 그냥 흘려 넘길 집안이 아니라는 건 외숙모도 아시잖아요. 그 사람이 처음 연대에 들어왔을 때는 리디아도 곧잘 그 사람한테 반했지만,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였어요. 처음 두 달 동안은 메리턴과 그 근방의 아가씨란 아가씨는 다 그 사람한테 정신이 나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리디아한테 특별히 관심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한동안 정신없이 들떠 반해 있다가 마음이 식었고, 리디아를 더 특별하게 대해 주는 연대의 다른 장교들이 다시 리디아의 마음에 들게 되었어요."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거듭 주고받아 봤자 두려움과 희망과 짐작에 새로 보탤 것은 거의 없었지만, 여행하는 내내 다른 어떤 이야기도 그들을 이 이야기에서 오래 떼어 놓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생각에서는 이 일이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모든 고통 가운데 가장 날카로운 고통인 자책이 그 생각을 붙박아 두었으므로, 엘리자베스는 잠시도 마음을 놓거나 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서둘러 길을 갔고, 길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이튿날 저녁 식사 무렵 롱번에 닿았다. 제인이 오래 기다리느라 지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엘리자베스는 위안이 되었다.
그들이 방목장으로 들어서자 경마차를 보고 끌려 나온 가디너 씨네 어린아이들이 현관 계단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차가 문 앞으로 다가가자, 아이들의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깡충깡충 뛰고 껑충거리는 온몸으로 드러난 즐거운 놀라움이, 그들을 맞는 반가움의 첫 기분 좋은 표시였다.
엘리자베스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서둘러 입을 맞춘 뒤 현관으로 달려갔는데, 마침 어머니 방에서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제인이 곧장 엘리자베스를 맞았다.
엘리자베스는 두 사람 눈에 다 눈물이 고인 채 언니를 다정하게 끌어안으면서, 달아난 두 사람에 대해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느냐고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아직 없어." 제인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 외삼촌이 오셨으니 다 잘될 거야."
"아버지는 런던에 계셔?"
"응, 편지에 쓴 대로 화요일에 가셨어."
"아버지한테서 소식은 자주 왔어?"
"딱 한 번 왔어. 수요일에 몇 줄 써 보내셨는데,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과 내가 꼭 알려 달라고 부탁드렸던 거처를 알려 주셨어. 그리고 중요한 일이 생기기 전에는 편지를 다시 쓰지 않겠다는 말만 덧붙이셨어."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떠셔? 다들 어떻게 지내?"
"어머니는 그럭저럭 괜찮으신 것 같아. 마음은 몹시 흔들리셨지만. 위층에 계신데, 다들 보시면 아주 반가워하실 거야. 아직 옷 방에서 나오지는 않으셔. 메리하고 키티는 아주 잘 있어. 하늘에 감사할 일이지!"
"하지만 언니는, 언니는 어때?" 엘리자베스가 힘주어 말했다. "얼굴이 창백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언니는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엘리자베스를 안심시켰다. 가디너 씨 부부가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이어지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일행이 모두 다가오자 끝이 났다. 제인은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달려가, 웃다가 울다가 하며 두 사람을 맞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모두 응접실에 모이자 엘리자베스가 이미 했던 질문을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되풀이했는데, 곧 제인에게는 전해 줄 소식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제인의 착한 마음이 불러일으킨 좋은 일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은 아직 제인을 떠나지 않았다. 제인은 모든 일이 잘 끝나리라고, 그리고 아침마다 리디아나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와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알려 주고 어쩌면 결혼 소식도 전해 주리라고 여전히 기대하고 있었다.
몇 분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눈 뒤 모두 베넷 부인의 방으로 올라갔는데, 베넷 부인은 짐작할 수 있는 그대로 그들을 맞았다. 눈물을 쏟으며 애통해했고, 위컴의 악랄한 짓을 욕했고, 자기가 겪는 괴로움과 부당한 대접을 하소연했으며, 딸이 저지른 잘못의 책임이 누구보다 큰 사람, 곧 분별없이 딸을 오냐오냐한 그 사람만 빼고는 모두를 탓했다.
"내가 우리 식구들을 다 데리고 브라이턴에 가겠다는 뜻만 이루었어도," 베넷 부인이 말했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불쌍한 우리 리디아는 돌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 포스터 부부는 대체 왜 그 애를 눈에서 놓쳤대? 틀림없이 그 사람들이 뭔가 크게 소홀했던 거야. 잘 보살펴 주기만 했어도 그 애는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거든. 나는 처음부터 그 사람들이 그 애를 맡기에는 영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늘 그렇듯 내 말은 묵살당했지. 불쌍한 우리 아기! 그런데 이제 그이마저 떠나 버렸으니, 그이는 어디서든 위컴을 만나기만 하면 결투를 할 테고, 그러다 죽고 말 텐데, 그럼 우리는 다 어떻게 되는 거야? 그이 몸이 무덤 속에서 식기도 전에 콜린스 부부가 우리를 쫓아낼 거야. 동생, 동생마저 우리한테 잘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모두 그런 끔찍한 생각은 하지 말라고 입을 모아 말렸다. 그리고 가디너 씨는 누님과 누님의 가족 모두를 아낀다고 두루 다짐한 다음, 바로 이튿날 런던으로 가서 리디아를 되찾으려는 베넷 씨의 노력을 무엇이든 돕겠다고 말했다.
"쓸데없이 겁내지 마세요." 가디너 씨가 덧붙였다. "가장 나쁜 경우에 대비하는 건 옳지만, 그걸 확실한 일로 볼 까닭은 없어요. 두 사람이 브라이턴을 떠난 지 아직 한 주도 안 됐어요. 며칠만 더 지나면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았고 결혼할 생각도 없다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이 일을 끝난 일로 치지 맙시다. 런던에 닿는 대로 매형을 찾아가서 그레이스처치 거리 우리 집으로 모셔 올 거예요. 그다음에 어떻게 할지 함께 의논하면 돼요."
"아, 동생," 베넷 부인이 대답했다. "그게 바로 내가 제일 바라던 거야. 그러니 런던에 가거든 꼭 두 사람을 찾아내 줘. 어디 있든지.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면 억지로라도 결혼시켜. 혼례 옷은 그것 때문에 기다리게 하지 말고, 리디아한테 결혼하고 나면 옷 살 돈은 원하는 만큼 주겠다고 전해 줘. 그리고 무엇보다 그이가 결투하지 못하게 막아 줘. 내가 얼마나 끔찍한 상태인지 말해 줘. 내가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온몸이 그렇게 떨리고 그렇게 두근거리고, 옆구리가 그렇게 결리고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그렇게 뛰어서 밤에도 낮에도 쉴 수가 없다고. 그리고 우리 리디아한테, 나를 만나기 전에는 옷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맡기지 말라고 전해 줘. 그 애는 어느 가게가 제일 좋은지 모르거든. 아, 동생, 정말 고마워! 동생이 다 알아서 해 줄 줄 알았어."
가디너 씨는 이 일에 힘껏 애쓰겠다고 다시 다짐하면서도 희망이든 두려움이든 조금 누그러뜨리라고 권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식탁이 차려질 때까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다음 모두 베넷 부인을 남겨 두고 내려왔다. 베넷 부인은 딸들이 없는 동안 곁을 지키는 하녀장에게 마음껏 하소연을 쏟아 놓았다.
동생 부부는 베넷 부인이 그렇게 식구들과 떨어져 지낼 까닭이 정말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굳이 말리려 하지 않았다. 식탁에서 시중드는 하인들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만큼 조심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 일에 대한 베넷 부인의 온갖 두려움과 걱정을 집안사람 가운데 한 사람만, 그것도 가장 믿을 만한 한 사람만 다 알고 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식당에는 곧 메리와 키티가 합류했다. 두 사람은 저마다 제 방에서 너무 바빠서 그때까지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한 사람은 책을 보다 왔고, 다른 한 사람은 몸단장을 하다 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얼굴은 그런대로 차분했고, 어느 쪽에서도 달라진 데는 보이지 않았는데, 다만 가장 아끼던 동생을 잃은 탓인지 이 일로 자기가 산 노여움 탓인지, 키티의 목소리에는 여느 때보다 짜증이 조금 더 묻어났다. 메리로 말하면, 식탁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자베스에게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렇게 속삭일 만큼 자신을 다스리고 있었다.
"정말 불행한 일이야. 아마 말들이 많겠지. 하지만 우리는 악의의 물결을 막아 내고, 자매의 위로라는 향유를 상처 입은 서로의 가슴에 부어 주어야 해."
그러고는 엘리자베스가 대꾸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메리는 이렇게 덧붙였다. "리디아에게는 불행한 일이 틀림없지만, 우리는 이 일에서 유익한 교훈을 하나 끌어낼 수 있어. 여자가 정조를 잃으면 다시 되찾을 수 없고, 한 번 발을 헛디디면 끝없는 파멸에 빠지게 되며, 여자의 평판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깨지기 쉽고, 그럴 자격이 없는 남자들 앞에서는 아무리 몸가짐을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교훈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어이가 없어 눈을 들었지만, 너무 짓눌려 있어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메리는 눈앞의 불행에서 그런 도덕적 교훈을 뽑아내며 계속 스스로를 위로했다.
오후가 되자 베넷 집안의 두 큰딸은 30분 동안 단둘이 있을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그 틈을 타서 이것저것 물었고, 제인도 그만큼 대답해 주고 싶어 했다. 엘리자베스는 거의 틀림없다고 여기고 베넷 양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하지 못한, 이 사건의 끔찍한 결말을 두고 함께 탄식한 뒤에, 엘리자베스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하지만 내가 아직 못 들은 걸 다, 하나도 빼놓지 말고 말해 줘. 더 자세히 알려 줘. 포스터 대령은 뭐라고 하셨어? 둘이 달아나기 전에 다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대? 두 사람이 붙어 다니는 걸 줄곧 보았을 텐데."
"포스터 대령님은 무슨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특히 리디아 쪽에서 그런 것 같다고 자주 생각하긴 했지만 걱정할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고 털어놓으셨어. 대령님한테 정말 미안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을 써 주시고 친절하셨어.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가지 않았다는 건 생각지도 못하셨을 때, 대령님은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려고 정말로 우리한테 오시던 길이었어. 그 걱정이 처음 퍼지자 걸음을 더 서두르신 거고."
"그리고 데니는 위컴이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대? 두 사람이 달아날 생각인 걸 알고 있었대? 포스터 대령이 데니를 직접 만나 보셨어?"
"응. 그런데 대령님이 물으셨을 때 데니는 두 사람의 계획을 전혀 모른다고 하고, 그 일에 대한 진짜 생각은 말하려 하지 않았대.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다시 말하지도 않았고. 그러니 그걸 보면, 전에 데니 말이 잘못 전해졌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싶어."
"그럼 포스터 대령이 직접 오시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정말 결혼했다는 걸 의심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지?"
"어떻게 그런 생각이 우리 머리에 들어올 수 있었겠어? 나는 조금 불안했어. 그 사람의 처신이 늘 아주 옳지만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과 결혼해서 동생이 정말 행복할 수 있을지 조금 두려웠던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건 전혀 모르셨고, 그저 얼마나 경솔한 결혼인지만 생각하셨어. 그러자 키티가 자기가 우리보다 더 많이 안다는 걸 아주 당연하게 으스대면서, 리디아가 마지막 편지에서 이런 일을 미리 귀띔해 두었다고 털어놓았어. 키티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걸 몇 주 전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브라이턴에 가기 전부터는 아니었지?"
"응,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포스터 대령도 위컴을 나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 그 사람의 진짜 사람됨을 아셔?"
"솔직히 말하면 위컴을 예전처럼 좋게 말씀하지는 않으셨어. 경솔하고 낭비가 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어. 그리고 이 슬픈 일이 생긴 뒤로, 위컴이 메리턴에 빚을 잔뜩 지고 떠났다는 말이 돌아.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아, 언니, 우리가 덜 숨겼더라면,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걸 말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랬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 언니가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지난 잘못을 들춰내는 건 옳지 않은 일 같았어. 우리는 가장 좋은 뜻으로 그렇게 한 거야."
"포스터 대령은 리디아가 부인한테 남긴 쪽지 내용을 자세히 전해 주실 수 있었어?"
"우리 보라고 그 쪽지를 가지고 오셨어."
그러고 나서 제인은 수첩에서 쪽지를 꺼내 엘리자베스에게 건넸다. 내용은 이러했다.
"해리엇에게."
"내가 어디로 갔는지 알면 너 웃을 거야. 내일 아침 내가 없어진 걸 알고 네가 놀랄 걸 생각하면 나도 웃음이 나서 못 참겠어. 나 그레트나 그린으로 가. 누구랑 가는지 못 맞히면 너 바보야. 세상에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딱 한 사람뿐이고, 그 사람은 천사거든. 그 사람 없이는 절대 행복할 수 없으니까 떠나는 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키지 않으면 롱번에는 내가 떠났다는 걸 알리지 않아도 돼. 그래야 내가 편지를 쓰면서 리디아 위컴이라고 서명할 때 다들 더 놀랄 테니까. 진짜 재밌겠지! 웃겨서 글씨를 제대로 못 쓰겠어, 깔깔. 오늘 밤 프랫하고 춤추기로 한 약속을 못 지킨다고 프랫한테 잘 좀 말해 줘. 사정을 다 알면 이해해 줄 거라고, 다음 무도회에서 만나면 기꺼이 같이 춤추겠다고 전해 줘. 옷은 롱번에 가서 가지러 보낼게. 그런데 짐 싸기 전에 수놓은 모슬린 드레스에 크게 찢어진 데가 있으니까 샐리한테 꿰매 두라고 말해 주면 좋겠어. 안녕. 포스터 대령님께 안부 전해 줘. 우리 여행이 잘되라고 건배해 줘."
"너를 아끼는 친구가, 리디아 베넷."
"아, 생각 없는, 정말 생각 없는 리디아!" 다 읽고 나서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이런 때 이런 편지를 쓰다니! 하지만 적어도 리디아는 이번 길을 떠나면서 진지했다는 건 알 수 있어. 나중에 그 사람이 무슨 말로 꾀었든, 리디아 쪽에서 부끄러운 짓을 꾸민 건 아니었어. 불쌍한 아버지! 얼마나 충격이 크셨을까!"
"그렇게 충격받은 사람은 처음 봤어. 꼬박 10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하셨어. 어머니는 곧바로 앓아누우셨고, 온 집안이 얼마나 뒤죽박죽이었는지!"
"아, 언니," 엘리자베스가 힘주어 말했다. "그날이 다 가기 전에 이 집 하인 가운데 그 일을 다 모르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모르겠어.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런 때에 조심하기란 정말 어려워. 어머니는 발작을 일으키셨고,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다 돌봐 드리려고 애썼지만 할 수 있었던 만큼 해 드리지는 못한 것 같아.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 너무 무서워서 정신을 거의 놓고 있었거든."
"어머니 시중이 언니한테는 너무 힘에 겨웠던 거야. 얼굴이 안 좋아. 아, 내가 언니 곁에 있었더라면! 언니 혼자 그 모든 수고와 걱정을 다 짊어졌잖아."
"메리와 키티도 아주 잘해 줬고, 힘든 일은 무엇이든 함께 나누려고 했을 거야. 그건 틀림없어. 하지만 나는 두 사람 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키티는 몸이 가냘프고 약하고, 메리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쉬는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되거든. 필립스 이모가 아버지 떠나신 뒤 화요일에 롱번에 오셔서, 고맙게도 목요일까지 나하고 함께 계셔 주셨는데, 우리 모두한테 큰 도움과 위로가 되었어. 루커스 부인도 아주 친절하셨어. 수요일 아침에 걸어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쓸모가 있다면 자기든 딸들이든 무엇이든 돕겠다고 하셨어."
"집에 가만히 계시는 편이 나았을 텐데." 엘리자베스가 힘주어 말했다. "뜻은 좋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런 불행을 당했을 때는 이웃을 아무리 덜 봐도 지나치지 않아. 도움은 받을 수 없고, 위로는 견딜 수가 없어. 멀리서 우리를 보며 고소해하라지. 그걸로 만족하라고 해."
그러고 나서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런던에 있는 동안 딸을 되찾으려고 어떤 방법을 쓸 생각이었는지 물었다.
"내 생각에는," 제인이 대답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말을 바꾼 엡섬에 가서 역마차 마부들을 만나 무엇이라도 알아낼 수 있을지 해 보실 생각이었던 것 같아. 아버지가 가장 알아내고 싶으신 건 두 사람을 클래펌에서 태우고 간 삯마차의 번호일 거야. 그 마차는 런던에서 손님을 태우고 왔대. 신사와 숙녀가 마차를 바꿔 타면 사람들 눈에 띄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셔서, 클래펌에서 수소문해 보실 생각이었어. 어떻게든 그 마부가 앞서 태운 손님을 어느 집에 내려 주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그 집에 가서 물어보기로 마음먹으셨고, 그 마차가 서 있던 자리와 번호를 알아내는 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고 기대하셨어. 아버지가 세우신 다른 계획은 나도 몰라. 워낙 서둘러 떠나셨고 마음도 몹시 어지러우셔서, 그만큼 알아내는 것도 힘들었거든."